파라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팀

국대 올스타 짜보기/남미

파라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팀

토르난테 2025. 12. 16.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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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2025년 12월 7일 기준입니다.

 

기존에는 대표팀 활약에 가산점을 더 부여했지만 이 부분을 제외하고 다시 선정했습니다.

 

콜롬비아의 감독은 이견이 없습니다. 전체 성과, 국대 성과 모두 한 사람이 압도적입니다.

 

최소한의 밸런스는 챙길 예정이며 더블 리베로를 내는 현상이나 중앙 공격수로만 세 명이 나서는 현상은 최대한 피할 예정입니다.

 

선수 사진은 에펨네이션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을 주로 활용했습니다.

 

우선 베스트 일레븐만 공개하고 서브는 다음주에 보강하겠습니다.

 

보통 A매치 전적이 있어야 포함하지만 파라과이느 예외가 한 명 있습니다. 이 선수를 제외하고는 파라괴이 축구사를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1. 파라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별칭: 로스 과라니, 알비르로하

월드컵: 출전 10회, 8강 1회

코파 아메리카: 출전 36회, 우승 2회

올림픽: 출전 2회 , 은메달 1회

최다 출전 선수: 파울로 다 실바, 148경기

최다 득점 선수: 로케 산타크루즈, 32골


2. 베스트 일레븐

골키퍼

 


이름: 호세 루이스 칠라베르트
생년월일: 1965년 7월 27일
포지션: 골키퍼
A매치 기록: 74경기 8골 68실점 / 34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9cm / 몸무게 94kg
주 소속팀: 벨레스 사르스필드

1990년대 세계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로 특히 골 넣는 골키퍼로 유명했는데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페널티킥과 프리킥을 전담했으며 클럽 통산 59골과 대표팀 통산 8골, 프로 통산 67골을 기록하며 호제리우 세니 다음으로 많은 득점을 기록했다. 물론 득점력에 가려졌을 뿐 선방 능력도 당대 골키퍼 중 단연 으뜸이었다.

자국의 클루브 과라니에서는 파라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을 이뤄내며 주목받은 칠라베르트는 아르헨티나의 벨레스 사르스필드에 입단해 전성기를 누리며 아르헨티나 프리메라리가 전기리그 1회 우승 및 후기리그 3회 우승을 이뤄냈고 1994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결승전에서 압도적인 선방력으로 상파울루의 대회 스리핏을 저지하며 우승을 차지했고 인터콘티난텔컵에서도 AC 밀란을 상대로 무실점 승리를 이뤄냈다. 그리고 1996년에는 상술한 후기리그 우승을 포함해 코파 인터아메리카 우승 및 수페르코파 수다메리카나 우승을 이뤄냈고 1997년에는 레코파 수다메리카나 우승을 이뤄내며 무려 다섯 개의 국제전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에서는 2000-01 시즌 쿠프 드 프랑스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5번 키커로 나와 성공시키며 팀의 우승의 마침표를 찍기도 했다.

파라과이 대표팀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칠라베르트는 1991년 코파 아메리카부터 1997년 코파 아메리카까지 3개 대회에 출전했고 1998 프랑스 월드컵과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모두 16강에 진출하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16강에서도 연장 혈투 끝에 골든 골로 아쉽게 패했는데 특히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16강에서 탈락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르테즈와 함께 대회 올스타 팀 골키퍼로 선정되었으며 은퇴한 뒤인 2011년에는 코파 아메리카의 역사적인 드림팀의 일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IFFHS 월드 베스트 골키퍼에 3회 선정된 칠라베르트는 1996년에는 아르헨티나 올해의 축구선수 및 남아메리카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고 1994년부터 1999년까지 엘 파이스가 선정한 에퀴포 이데알 데 아메리카에 6회 연속으로 선정되었고 IFFHS 선정한 올해의 골키퍼를 3회 수상했다. 그리고 1999년에는 IFFHS가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골키퍼 6위에 오르기도 했다.

 

센터백

 


이름: 에리베르토 에레라
생년월일: 1926년 4월 24일
포지션: 센터백, 라이트백
A매치 기록: 5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파라과이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로 매우 빠르고 공중전에 뛰어났음은 물론 냉정하면서도 자신감이 넘치는 수비를 선보이며 상대의 공격 흐름을 완벽하게 끊어냈기에 세간으로부터 가위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파라과이의 나시오날 아순시온에서 데뷔해 두각을 나타냈는데 비록 리그 우승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에레라는 리그 최고의 수비수로 인정받아 파라과이 대표팀 주전으로 활약했고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결국 조국의 1953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수비수였음에도 대회 MVP를 수상했다.

스페인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활약한 에리베르토 에레라는 특히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는 데뷔전에서 디 스테파노를 앞세운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동점골을 득점하는 활약을 선보이기도 했다. 스페인 대표팀 소속으로 A매치 2경기를 뛰기도 했다.

 

센터백

 


이름: 카를로스 가마라
생년월일: 1971년 2월 17일
포지션: 센터백
A매치 기록: 110경기 12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SC 인테르나시오나우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중반, 파라과이 축구의 전성기를 이끈 센터백으로 지역 방어에 대한 이해도와 대인 수비에 대한 이해도가 모두 높았으며 뛰어난 리더십과 우수한 라인 컨트롤, 그리고 기술적인 태클과 타점 높은 재공권 경합 능력으로 이름을 날렸다. 

남미의 여러 팀에서 족적을 남긴 저니맨 센터백 가마라는 클루브 세로 포르테뇨에서 파라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2회 우승을 이뤄내며 주목받았고 브라질 무대에선 본격적인 전성기를 누리며 인테르나시오나우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1997년 캄페오나투 가우초 우승을 이뤄냈고 코린치안스에서는 1998년 브라질 세리 A와 1999년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우승을 이뤄냈으며 플라멩구에서도 2001년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우승을 이뤄내며 3개의 주립 리그에서 우승을 이뤄냈다.

가마라 개인도 브라질 전국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4회 선정되었고 엘 파이스가 선정한 에퀴포 이데알 데 아메리카에 5회 선정되었으며 파라과이 올해의 선수에 2회 선정되었다. 특히 1998년에는 에퀴포 이데알 데 아메리카, 파라과이 올해의 선수, 브라질 세리 A 시즌 베스트 일레븐은 물론 남미축구협회 선정 최우수 수비수에도 선정되었다. 그러나 유럽 무대의 벤피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인테르 밀란 등에서는 제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고 그나마 AEK 아테네에서는 리그 정상급 선수로 활약했다.

파라과이 대표팀에서도 칠라베르트, 셀소 아얄라, 프란시스코 아르세 등과 함께 남미의 이탈리아라고 불리던 수비라인을 구축한 가마라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시작으로 다섯 번의 코파 아메리카와 세 번의 월드컵에 주전으로 나섰는데 특히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16강에서 탈락했음에도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고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와일드카드로 참가해 조국의 준우승을 이뤄내며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라이트백

 


이름: 프란시스코 아르세
생년월일: 1971년 4월 2일
포지션: 라이트백
A매치 기록: 61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파우메이라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파라과이 대표팀의 약진을 이끌었던 공격형 라이트백으로 왕성한 오버래핑으로 오른쪽 측면을 지배했으며 정교한 킥력에서 나오는 오른발 크로스로 공격을 지원하는 부분은 물론 직접 득점을 노리는 부분에도 능했다.

세로 포르테뇨에서 정규리그 3회 우승을 이끌며 남미 무대의 주목을 한 몸에 받은 아르세는 그레미우에서 1995년과 1996년에 캄페오나투 가우슈 2연패를 이뤄낸 것을 시작으로 1995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끌었고 1996년에는 레코파 수다메리카나와 브라질 세리 A 우승도 이뤄내며 3관왕을 이뤄냈다. 1990년대 후반에는 파우메이라스로 이적한 뒤에는 1999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뤄냈다. 아르세 개인도 남미 올해의 팀 7회 선정 및 브라질 세리 A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다.

파라과이 대표팀에서도 칠라베르트-가마라- 셀소 아얄라와 함께 남미판 이탈리아라고 불렸던 견고한 수비라인을 구성해 황금기를 이끈 아르세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시작으로 세 번의 코파 아메리카와 두 번의 월드컵에 나섰고 1998년과 2002년, 두 번의 월드컵에서 조국의 16강행에 공헌했다.

 

레프트백

 


이름: 후안 토랄레스
생년월일: 1956년 3월 9일
포지션: 레프트백, 라이트백, 센터백
A매치 기록: 77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클루브 리베르타드

파라과이 축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백으로 수비적인 부분에서는 강력한 대인방어와 적절한 수비 커버로 이름을 날렸고 공격적으로는 윙어를 해도 될 만큼의 돌파력과 왼발 크로스도 겸비했는데 사이드에서의 기민한 몸놀림으로 '도마뱀'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타고난 오른발잡이지만 왼발도 잘썼던 양발잡이로 양쪽 사이드백 및 센터백을 모두 소화할 수 있었다.

클루브 리베르타드에서 전성기를 보낸 토랄레스는 비록 소속팀 전력의 한계로 클럽 무대에서 우승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토랄레스 만큼은 빛났고 파라과이 대표팀에서는 코파 아메리카에 4회 참가해 1979 코파 아메리카 우승에 기여했고 1986 멕시코 월드컵에도 참가했다.

 

수비형 미드필더

 


이름: 마누엘 플레이타스 솔리치
생년월일: 1900년 12월 30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A매치 기록: 32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90cm / 몸무게 83kg
주 소속팀: 보카 주니어스

1920년대와 30년대에 걸쳐 파라과이 축구를 대표했던 스타플레이어이자 정상급 하프백으로 우수한 볼 테크닉과 정밀도 높은 패싱력을 겸비해 팬들로부터 마법사라 불렸다.

파라과이 클럽인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데뷔해 정규리그 2회 우승을 이뤄낸 솔리치는 아르헨티나의 보카 주니어스에서도 1930년과 1931년에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시비온 우승에 큰 공을 세웠다.

1920년대 초반, 파라과이 대표팀 소속으로도 주전선수 겸 감독으로 활약한 솔리치는 무려 여섯번이나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했는데 특히 1922년 대회에서는 우루과이를 제치고 결승에 진출했으나 결승 플레이오프에서 브라질에게 대패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라이트 메짤라

 


이름: 호메리투
생년월일: 1960년 8월 28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포워드
A매치 기록: 64경기 26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66kg
주 소속팀: 플루미넨시

본명은 훌리오 세사르 로메로로 한때 마라도나만큼이나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며 1980년대 남미 정상급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는데 창의적이면서 정교한 패스로 찬스를 만들어내는데 능했으며 우수한 볼 컨트롤 능력을 앞세워 상대의 압박을 피했으며 득점력도 우수했다.

스포르티보 루케뇨에서 데뷔했다가 미국의 뉴욕 코스모스에서 두 번의 북미 리그 우승을 이뤄낸 호메리투는 남미로 돌아왔는데 브라질의 플루미넨시로 이적해서 주립 리그 2연패와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워 1985 남미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잠깐 활약한 바르셀로나에서는 1989 UEFA 컵 위너스 컵 우승을 이뤄냈고 파라과이로 돌아와서는 스포르티보 루케뇨에 머물며 1990 시즌 리그 득점왕을 수상했다.

파라과이 대표팀에서도 핵심 선수로 활약한 호메리투는 1979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에 기여하며 남미 올해의 선수상 투표에서 마라도나 다음으로 2위에 올랐고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조국의 28년 만에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뤄내기도 했다.

 

레프트 메짤라

 


이름: 우고 탈라베라
생년월일: 1949년 10월 31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포워드
A매치 기록: 11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클루브 올림피아

1970년대 자타공인 파라과이 무대 최고의 선수이자 파라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역대 최고의 선수이자 역대 최고의 주장 중 한 명으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부드러운 패스와 유려한 볼 컨트롤 및 드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팀의 플레이메이킹을 주도하며 수많은 득점 찬스를 만들었고 때때로 탄탄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직접 돌파하면서 박스로 침투해 환상적인 골을 득점하기도 했다.

과라니에서 데뷔해 데비 2년 차에 세코 포르테뇨로 이적한 탈라베라는 세코 포르데뇨에서 또 다른 위대한 플레이메이커 사투르니노 아루아와 함께 1972년부터 1974년까지 파라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3연패의 업적을 세웠고 클루브 올림피아에서는 파라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7회 우승을 추가하며 개인 통산 10회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1979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결승전에서 보카 주니어스를 꺾고 구단 최초의 우승을 이뤄냈고 남미 챔피언 자격으로 치른 인터콘티넨탈컵에서는 유러피언 컵 준우승팀 말뫼를 상대로 홈과 원정에서 모두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했으며 이듬해에서는 코파 인터아메리카나에서 엘살바도르의 FAS를 상대로 1차전에는 비겼지만 2차전 5-0 대승을 거두며 국제대회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파라과이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한 탈라베라는 1975년 코파 아메리카와 1979년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해 1979년 대회에서 호메리투와 함께 조국의 우승을 이뤄냈는데 에콰도르를 상대로는 선제골을 터트렸고 4강 브라질전에서는 결승골을 득점했다. 여담으로 파라과이 대표팀과 클루브 올림피아의 전설적인 주장 탈라베라는 클럽과 대표팀에서 5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전설을 썼다.

 

라이트윙

 


이름: 앙헬 베르니
생년월일: 1931년 1월 9일
포지션: 라이트윙, 포워드, 스트라이커
A매치 기록: 7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70cm
주 소속팀: 산 로렌소

1940년대 중반~50년대 중반에 아르헨티나 무대에서 명성을 날린 아웃사이드 라이트 겸 인사이드 라이트로 포지션 위치에 구애받지 않고 프리롤처럼 활약하며 팀의 공격을 이끄는 플레이를 선호했는데 키가 작았지만 무게중심이 낮아 몸싸움을 잘 견뎠고 빠른 스피드와 탄탄한 볼 컨트롤을 활용한 고차원적인 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흔든 뒤에 벼락같은 슈팅으로 득점했다.

클루브 올림피아에서 데뷔해 데뷔시즌부터 우수한 퍼포먼스를 보여준 베르니는 1951년에는 엘도라도라고 불리며 엄청난 투자를 했던 콜롬비아의 보카 후니오르스 데 칼리로 이적해서 활약했는데 정규리그 2회 우승 및 1951 코파 콜롬비아 우승을 이뤄냈다. 1953년에는 잠시 파라과이로 돌아와 대표팀에 머물면서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해 전 경기에 출전해 4골을 득점하며 조국의 첫 우승을 이뤄냈다.

아르헨티나의 산 로렌소로 이적하면서 파라과이 대표팀에 더 이상 소집되지 못한 베르니는 산 로렌소에서도 뛰어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1954년에 29골을 득점해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득점왕을 수상했고 1957년에는 준우승을 차지했으며 힘나시아를 거쳐 1960년에는 레알 베티스로 이적하기도 했다. 해외 무대에서 커리어의 대부분을 보냈기에 1953년에만 대표팀에 소집되었는데 그 기간에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차지한 경이로운 이력을 보유했다.

 

레프트윙

 


이름: 델핀 베니테스 카세레스
생년월일: 1910년 9월 24일
포지션: 포워드, 레프트윙, 스트라이커
A매치 기록: 15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67cm / 몸무게 67kg
주 소속팀: 보카 주니어스

아르세니오 에리코와 함께 아르헨티나 무대에서 파라과이 축구의 자존심을 보여준 다재다능한 공격수로 WM 시스템의 아웃사이드 레프트와 센터 포워드, 그리고 인사이드 레프트에서 뛰었는데 상대적으로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바디밸런스와 빠른 스피드, 그리고 훌륭한 드리블을 바탕으로 상대 수비수를 따돌리고 강력한 왼발 슈팅으로 마무리하는 부분에도 능했다.

클루브 리베르타드에서 데뷔해 1930년 파라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및 4회 준우승을 기록하며 주목받은 베니테즈는 아르헨티나의 보카 주니어스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체로, 바라요와 함께 공격 편대를 구성해 제네시스의 공격을 이끌며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2연패를 이뤄내는데 공헌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라싱 클루브로 이적해서 1940년 득점왕에 올랐고 페로 카릴 오예스테를 거쳐 엘도라도로 엄청난 투자를 거둔 콜로비아 무대의 스포르팅 데 바란키야로 이적해 말년을 보냈다.

파라과이 무대에서 활약하던 기간 동안 파라과이 대표팀에서 활약한 베니테스는 1929년 코파 아메리카와 1930 우루과이 월드컵에 주전으로 나섰다. 그러나 전성기 시절에는 아르헨티나에서 활약했기에 파라과이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다.

 

스트라이커

 


이름: 아르세니오 에리코
생년월일: 1915년 3월 30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대표팀 비공식전 기록: 56경기 26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CA 인디펜디엔테

1930년대 후반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당시로서는 큰 키인 183cm의 신장과 압도적인 점프력이 더해져 공중전에서 재미를 보았으며 프란시스코 바라요가 말하기를 "그의 헤딩은 궁수와 같아서 정확히 원하는 곳에 꽂을 수 있었다."라고 평가했으며 헤더뿐만이 아니라 슛 테크닉도 매우 뛰어난 선수라 스콜피온 킥을 최초로 사용한 선수라고 전해진다.

인디펜디엔테 구단 통산 최다 득점자에 랭크된 에리코는 데 라 마타, 사스트레와 함께 악마의 삼지창이라 불렸던 중앙 공격 듀오를 구성해 활약하며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2회 우승을 포함해 공식 대회 7회 우승을 기록했고 에리코 개인도 여덟 시즌 연속으로 두 자릿수 골을 기록했으며 그중 첫 시즌을 제외하고는 모두 20골을 넘겼는데 특히 1937 시즌부터 1939 시즌까지는 세 시즌 연속으로 시즌당 40골 이상을 득점하며 득점왕을 차지했다.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통산 최다 득점자에 오른 에리코는 은퇴 이후 1966년에 스포르트 선정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사후인 1999년에는 FFHS 선정 20세기 최고의 축구선수 49위에 선정되었고 2017년에는 베를린브리츠 선정 1930년대 최고의 선수 6위에 올랐다.

그러나 조국 파라과이가 전쟁 등을 겪으면서 코파 아메리카 등 국제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1937년 이후에는 파라과이가 다시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했지만 인데펜디엔테가 그의 참가를 만류했다. 그리고 에리코도 아르헨티나 축구협회의 귀화 제의를 거절했다. 본래 A매치 기록이 없으면 국대 베스트 일레븐에 최대한 포함하지 않지만 에리코를 제외하고는 파라과이 축구사를 설명할 수 없어 부득이하게 추가했다.

 


감독

 


이름: 마누엘 플레이타스 솔리치
생년월일: 1900년 12월 30일
부임기간: 1922~1929, 1939, 1942, 1945~1946, 1947~1953, 1962~1965

상술한 선수 시절부터 국가대표팀 감독을 겸직했던 떡잎부터 타고난 지도자로 한 팀에 꾸준히 머무르진 못했지만 남미의 여러 팀에서 꾸준히 성과를 냈던 우수한 감독으로 별명은 엘 부르요, 즉 마법사였다.

종종 감독직과 클럽을 겸직하며 남미의 다양한 팀을 맡았던 솔리치는 1943년에는 자국 리그의 클루브 리베르타드의 파라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을 이뤄냈고 플레잉 매니저 시절을 포함해서 11번의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했는데 가장 빛났던 순간은 1953녀 그룹 리그에서 2위를 차지해서 1위 브라질과 결승전에서 격돌해서 3-2 승리를 거둬 우승한 순간이었고 이 우승 이외에도 1922년과 1947년, 그리고 1949년 대회에서 총 3회 준우승을 거뒀으며 4위보다 낮은 성적을 기록한 적이 없으나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브라질을 꺾고 우승한 이후에는 브라질의 여러 팀에서 오퍼가 와서 감독을 맡았는데 플라멩구에서는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3연패를 이뤄냈고 1960년대에는 코린치안스, 플루미넨시릉 이끌면서도 파라과이 대표팀 감독을 겸직했으며 1966년에는 파우메이라스의 지휘봉을 잡아 펠레의 산투스를 꺾고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우승을 이뤄냈다.

 


베스트 일레븐

 

 

 


3. 서브 14인 포함 1군 스쿼드

 


이름: 로베르토 페르난데스
생년월일: 1954년 7월 9일
포지션: 골키퍼
A매치 기록: 78경기 88실점 / 33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92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세로 포르테뇨

1970~80년대 남미 무대에서 명성을 날린 골키퍼로 큰 키와 우수한 신체조건을 바탕으로 넓은 선방 범위를 자랑했으며 거기에 반사신경 역시 우수해 세간의 사람들로부터 고양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신속정확한 판단력으로 공격수와의 1vs1 선방과 페널티킥에서도 강점을 보였다.

리버 플레이트 아순시온에서 데뷔한 페르난데스는 스페인 무대의 발렌시아와 세비야에서는 고전했지만 자국의 세로 포르테뇨와 콜롬비아의 데포르티보 칼리에서는 우수한 퍼포먼스를 보였지만 우승을 차지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전성기가 지나고 세로 포르테뇨로 리턴한 뒤에는 1990년 파라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을 우승했고 브라질의 인테르나시오날에서는 캄페오나투 가우초 2회 우승 및 1992년 코파 두 브라질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말년에 다시 세로 포르테뇨를 돌아와서 1996년에 정규리그 우승을 또 추가했다.

칠라베르트 등장 이전, 파라과이 대표팀에서도 중용받았던 페르난데스는 1979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호메리투와 함께 대회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역할을 했고 이후에도 세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 더 나섰다. 그리고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16강 진출을 이뤄냈는데 그 과정에서 홈팀 멕시코의 에이스 우고 산체스의 페널티킥을 막아냈다. 그러나 칠라베르트가 본격적으로 성장하자 그에게 주전자리를 내줬다.

 

 

이름: 에베르 알메이다
생년월일: 1948년 7월 1일
포지션: 골키퍼
A매치 기록: 22경기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3kg
주 소속팀: 클루브 올림피아

우루과이의 살토 태생이지만 1975년 파라과이 귀화를 선택했던 골키퍼로 만 43세의 나이까지 활약했을 정도로 자기관리에 우수한 모습을 보였으며 기복이 적고 판단력이 우수했으며 수비라인 지휘에 강점을 보였다.

우루과이의 CA 세로에서 데뷔했지만 파라과이의 과라니를 거쳐 클루브 올림피아에서 18년간 활약하며 전성기를 누린 알메이다는 파라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에서 6연패를 포함해 10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도 역대 개인통산 최다출전을 기록했음은 물론 1979년과 1990년 대회에서는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1979년에는 자국리그와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인터콘티넨탈컵과 코파 인터 아메리카 4관왕을 석권했고 1990년에도 수페르코파 수다메리카나 우승을 이뤄냈으며 1991년에는 레코파 수다메리카나 우승을 이뤄내며 압도적인 국제전 경력을 자랑했다.

파라과이 대표팀의 암흑기에 활약했기에 메이저 대회 참가기록은 적은 편이며 1979년 이후에는 로베르토 페르난데스와의 경쟁에서 밀렸지만 1975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주전으로 나섰다.

 

 

이름: 로젤리오 델가도
생년월일: 1959년 10월 12일
포지션: 센터백
A매치 기록: 53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클루브 올림피아

1980년대 파라과이 대표팀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주장으로 우수한 대인 수비와 투지 넘치는 태클을 앞세워 상대 공격수를 저지했기에 파라과이의 사자라 불렸고 대표팀 주장완장을 찼을 정도로 우수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절륜한 수비라인 지휘력을 선보였다.

클루브 올림피아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누린 델가도는 파라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에서 5연패를 포함해 6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1979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인터콘티넨탈컵과 코파 인터 아메리카 우승도 차지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인디펜디엔테에서는 1988-89 시즌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을 이뤄냈고 칠레의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에서도 1994년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을 이뤄냈다.

파라과이 대표팀에서도 수비라인의 핵으로 활약한 델가도는 1983 코파 아메리카에서 데뷔해 세 차례의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했고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28년 만에 본선행을 이끌었음은 물론 16강에 진출했다.

 

 

이름: 후안 비센테 레즈카노
생년월일: 1937년 4월 5일
포지션: 센터백, 리베로, 라이트백, 레프트백
A매치 기록: 26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CA 페냐롤

파라과이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추앙받는 선수로 빠른 스피드와 우수한 바디밸런스를 바탕으로 완강한 대인 수비로 상대 공격수를 무력화시켰음은 물론 강력한 카리스마와 우수한 전술안으로 완벽한 수비조율을 보여주며 리베로 역할도 훌륭하게 소화하며 파라과이인 사령관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클루브 올림피아에서 파라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5연패를 이뤄낸 레즈카노는 파라과이 대표팀에서도 1958 스웨덴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고 1959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뒤를 이어 3위를 차지하는데 공헌했다.
 
당시 남미 챔피언 페냐롤에서도 러브콜을 받은 레즈카노는 데뷔 시즌부터 주전으로 활약하며 리그는 물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을 모두 제패하며 아우리네그로스의 3관왕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고 이를 포함해 아우리네그로스의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6회 우승을 포함해 우루과이 국내에서 크고 작은 우승트로피를 13개나 들었다. 1966년에는 비록 리그는 놓쳤지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를 우승했고 인터콘티넨탈컵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홈과 원정, 두 경기 모두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하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이름: 데니스 카니사
생년월일: 1974년 8월 29일
포지션: 라이트백, 레프트백, 센터백
A매치 기록: 100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산토스 라구나

199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파라과이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유틸리티 수비자원으로 주 포지션은 라이트백이지만 수비라인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을 정도로 축구지능이 높고 다재다능했으며 작은 체구로 그라운드 위를 왕성하게 뛰어다닌다고 하여 영국의 기자 팀 비커리에 의해 '파라과이의 노비 스타일스'라는 평가를 받았다.

클루브 올림피아에서 데뷔한 카니사는 파라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4회 우승을 기록했는데 특히 1997년부터 1999년까지 3회 연속을 기록했다. 그리고 멕시코의 산토스 라구나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2001년 베라노 우승을 차지했고 나시오날 아순시온으로 이적해서도 2009년 후기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파라과이 대표팀 소속으로도 센추르 클럽에 가입한 카니사는 두 번의 코파 아메리카와 네 번의 월드컵에 나섰는데 1998 프랑스 월드컵,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16강에 진출했고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8강에 진출하는데 공헌했다.

 

 

이름: 클라우디오 모렐
생년월일: 1978년 2월 2일
포지션: 레프트백,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레프트윙
A매치 기록: 35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보카 주니어스

2000년대 후반 남미 최고의 레프트백 중 한 명으로 날카로운 왼발 킥력을 바탕으로 팀의 스트라이커를 지원하는 러닝크로스로 명성을 날렸으며 프리킥 상황에서도 위협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체력이 우수하고 다재다능하며 포지션 이해도가 높아 주 포지션인 레프트백 이외에도 레프트윙,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를 소화할 수 있었다.

아르헨티나의 산 로렌소에서 데뷔해 2001년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클라우수라 우승 및 국제전에서도 코파 메르코수르와 코파 수다메리카나 우승을 이뤄냈고 보카 주니어스로 이적해서는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3회 우승 및 코파 수다메리카나 2회 우승, 그리고 레코파 수다메리카나 3회 우승을 이뤄냈고 2007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뤄내며 남미 올해의 선수 2위에 올랐고 2008년에는 파라과이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이 두 해에 남미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아버지 에우헤니오 모렐에 뒤를 이어 파라과이 대표팀에서도 활약하며 2000년대 후반, 타타 마르타노 체제에서 중용받았던 모렐은 2007 코파 아메리카와 2010 남아공 월드컵에 참가해 후자의 대회에서는 8강에 올랐다.

 

 

이름: 마누엘 가빌란
생년월일: 1920년 11월 30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라이트백
A매치 기록: 32경기 1골
신체조건: 미상
주 소속팀: 클루브 리베르타드

1940년대 후반~1950년대 중반에 파라과이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라이트 하프백 겸 라이트 풀백으로 뛰어난 수비력과 우수한 패싱력으로 파라과이 역대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선수생활 전부를 클루브 리베르타드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 가발란은 1955년 파라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을 이뤄냈고 파라과이 대표팀에서도 1947년과 1949년 코파 아메리카와 1950 브라질 월드컵 및 1953 코파 아메리카에서 주전으로 참가해 결승전에서 브라질과의 결승전에서 득점을 터트리며 3-2 승리하며 우승에 큰 공을 세웠다.

여담으로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에 파라과이 주전 센터백으로 나선 셀소 아얄라는 그의 외손자였다.

 

 

이름: 빅토리아노 레기사몬
생년월일: 1922년 3월 23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센터백
A매치 기록: 16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클루브 올림피아

1950년대 파라과이와 아르헨티나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하프백으로 2-3-5 시스템의 센터 하프로 주로 활약했는데 왕성한 활동량과 우수한 포백 보호 능력을 바탕으로 당대 남미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다.

리버 플레이트 아순시온에서 데뷔한 레기사몬은 1945년에는 클루브 리베르타드에서 우승했고 아르헨티나의 보카 주니어스로 잠시 이적했다가 클루브 올림피아로 돌아와서는 1956년 파라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에서 우승을 이뤄냈다.

파라과이 대표팀에서도 주전 센터하프로 중용받은 레기사몬은 1950 브라질 월드컵과 1953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해 조국의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했다.

 

 

이름: 로베르토 아쿠냐
생년월일: 1972년 3월 25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A매치 기록: 100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레알 사라고사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중반까지 파라과이 대표팀의 약진을 이끈 중앙 미드필더로 강력한 몸싸움 능력을 바탕으로 상대 미드필더와의 볼 경합에서 우위를 보여주며 중원을 완벽하게 장악했는데 이 모습을 본 팬들은 그를 두고 엘 토로, 즉 황소라 불렸다.

클루브 나시오날 아순시온에서 데뷔한 아쿠냐는 1995년 인디펜디엔테에서 수페르코파 수다메리카나 우승을 이뤄냈고 1996년에는 남미 올해의 팀에 선정되며 주목받았고 레알 사라고사에서 커리어의 피크를 누리며 2000-01 시즌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이뤄내며 2001년 파라과이 올해의 축구선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에서는 주전경쟁에서 밀려 임대를 다니다가 클럽 루비오 뉴에서 부활하기도 했다.

18년간 파라과이 데표팀에서 활약하며 센추리 클럽에도 가입한 아쿠냐는 네 번의 코파 아메리카와 세 번의 월드컵에 참가했는데 특히 1998 프랑스 월드컵과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조국의 16강행을 이뤄냈다.

 

 

이름: 에바리스토 이사시
생년월일: 1955년 11월 26일
포지션: 라이트윙, 포워드
A매치 기록: 17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73cm
주 소속팀: 클루브 올림피아

1970년대 후반~80년대 중반, 파라과이 축구계의 부흥을 이끈 라이트윙으로 빠른 스피드로 사이드라인을 질주해서 흑표점이라고 불렸으며 사이드라인을 질주하며 올리는 러닝크로스와 중앙으로 가로질러 돌파한 뒤에 정밀도 높은 슈팅으로 직접 골문을 노리는 플레이에 모두 능했던 파라과이 축구사 최고의 윙어였다.

제너럴 카바예로에서 데뷔했지만 데뷔 1년 만에 클루브 올림피아로 이적해서 전성기를 누린 아사시는 클루브 올림피아 1기 시절에는 파라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4회 우승을 이뤄냈고 1979년에는 정규리그는 물론이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도 우승을 이뤄냈고 남미 클럽 챔피언 자격으로 참가한 인터콘티넨탈컵과 인터아메리칸컵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콜롬비아의 데포르티보 톨리마, 인디펜디에 산타페에서 활약하다가 1983년에 클루브 올림피아로 돌아와서는 파라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을 2회 추가했다.

파라과이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한 아사시는 전방에서 레프트윙 에우헤니오 모렐, 스트라이커 밀시아데스 모렐과 함께 전방에서 활약하며 플레이메이커인 호메리투와 탈라바라의 지원을 받아 압도적인 공격력을 뽐내며 우승에 공헌했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에도 참가해 16강행을 이뤄냈다.

 

 

이름: 에우헤니오 모렐
생년월일: 1950년 2월 2일
포지션: 레프트윙, 포워드
A매치 기록: 14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75cm
주 소속팀: 클루브 리베르타드

1970년대 중반~80년대 초반에 아르헨티나와 파라과이에서 활약한 레프트윙으로 측면 공격수로 뛰었음에도 경기당 0.5골 정도는 득점했을 정도로 득점력이 우수했으며 다양한 왼발 슈팅 기술이 뛰어났는데 특히 1979 코파 아메리카 4강전 브라질과의 경기에서는 바이시클 킥으로 득점하며 경기장에 모인 5만명의 관중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유년 시절 아르헨티나로 이주해서 라싱 클루브에서 데뷔했으나 파라과이의 클루브 리베르타드로 돌아와서 전성기를 누리며 432경기에 출전해 231골을 터트렸는데 1976년에는 파라과이 무대를 독주하던 클루브 올림피아를 제치고 파라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을 차지했으며 1980년에는 아르헨티노 주니오스로 이적해 디에고 마라도나와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파라과이 대표팀에서는 2년간 활약했는데 1979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상술한 브라질전 바이시클킥 골을 포함해 촏 4골을 터트리며 득점왕에 올랐는데 결승전 2차전에서는 칠레의 미드필더 에두아르도 본발레트와 다툼으로 퇴장을 당하기도 했다. 여담으로 그의 아들 클라우디오 모렐도 파라과이 대표팀에서 레프트백으로 활약했다.

 

 

이름: 아우렐리오 곤살레스
생년월일: 1905년 9월 25일
포지션: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스트라이커
A매치 기록: 14경기 10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올림피아 아순시온

1920년대 후반~30년대 중반, 파라과이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체격이 큰 편은 아니었지만 낮은 무게중심을 활용해 상대의 압박을 버텨냈고 빠른 스피드와 높은 수준의 볼 컨트롤을 활용한 호쾌한 드리블과 우수한 판단력과 창의적인 패싱력을 바탕으로 한 플레이메이킹 능력 및 정밀도 높인 슈팅으로 이름을 날렸다.

스포르티보 루케뇨에서 데뷔해서 1924년 파라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준우승을 이뤄낸 아우렐리오 곤살레스는 클루브 올림피아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파라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7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이 활약을 본 아르헨티나의 산 로렌소는 그를 거액의 연봉으로 영입하고자 했지만 그는 차코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오퍼를 거부했다.

파라과이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한 아우렐리오 곤살레스는 1929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해 조국의 준우승을 이뤄냈고 아우렐리오 곤살레스 개인도 득점왕에 올랐다. 그러나 1930 우루과이 월드컵에서는 자책골을 기록한 끝에 탈락했고 1937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2골을 득점하며 분전했지만 꼴찌로 탈락했다. 그러나 그의 사후인 2006년에 FIFA의 재조사에서 곤살레스의 자책골이라 알려졌던 것이 버트 파테노드의 골로 인정되어 76년간의 멍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름: 에울로히오 마르티네스
생년월일: 1935년 6월 11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포워드
A매치 기록: 9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1950년대 후반~60년대 초반 라리가 무대에서 명성을 떨친 스트라이커로 다부진 체격을 바탕으로 한 뛰어난 헤더와 빠른 스피드를 지녔으며 기술적으로도 깔끔한 마무리 능력과 테크니컬한 드리블로 명성을 떨쳤는데 1959-60 시즌 유러피언 컵 울버햄튼전에서는 훗날 크루이프 턴이라 불리던 기술을 최초로 사용하기도 했다.

클루브 리베르타드에서 데뷔시즌인 1955년에 파라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낸 마르티네스는 바르셀로나로 이적해서도 에레라 체제에서 팀의 최선봉을 맡아 활약하며 라리가 2연패 및 코파 델 레이 2회 우승, 그리고 인터시티 페어스컵 2회 우승을 이뤄내며 라리가 독주를 노리던 저승사자 군단이라 불리던 레알 마드리드를 견제했는데 1957년에 완공된 캄프 누에서 최초로 득점한 선수이기도 하다.

파라과이 대표팀에서도 1955년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한 이력이 있는 마르티네스는 바르셀로나 이적 이후에는 스페인 대표팀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이름: 로베르토 카바나스
생년월일: 1961년 4월 11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포워드
A매치 기록: 28경기 11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아메리카 데 칼리

1980년대 파라과이 축구의 중흥을 이끈 스트라이커로 재빠른 스피드와 환상적인 슈팅스킬을 바탕으로 엄청난 득점력을 선보였는데 특히 환상적인 발리슈팅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리고 몸싸움과 점프력도 준수해 헤더로 직접 득점을 노리는 부분과 포스트플레이에도 능했으며 그 당시 스트라이커로는 선구적으로 적극적인 수비가담 및 경기력이 잘 풀리지 않을 때에는 2선까지 내려와 공격을 풀어나가는 현대형 공격수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던 완성형 공격수였다.

세로 포르테뇨에서 데뷔했지만 곧바로 북미의 뉴욕 코스모스로 이적해서 펠레의 후계자 역할을 하며 호메리투와 함께 공격 듀오를 형성해 동부리그 4연패 및 북미 사커 리그 2회 우승을 이뤄냈고 카바나스 개인도 1983년 MVP를 석권했다. 그리고 북미 사커 리그가 해체되자 콜롬비아의 아메리카 데 칼리로 이적해서 전성기를 누리며 카테고리아 프리메라 A 2연패를 이뤄냈고 남미 무대에서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3회 연속 결승에 진출하기도 했는데 이 시기에 남미 올해의 선수상 투표에서 1985년 4위 및 1987년 2위에 올랐다. 프랑스 무대에 도전해서는 브레스트와 올림피크 리옹에서 활약하다가 보카 주니어스로 이적해서 1992년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전기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파라과이 대표팀에서도 뛰어난 퍼포먼스를 선보인 카바나스는 1979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백업으로 우승을 경험했고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하며 2골 1도움을 터트리며 16강 진출의 일등 공신으로 활약했다.

 

 


파라과이 역대 올스타 1군 25인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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