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3선 미드필더 Top 11~20

국가의 영웅들/이탈리아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3선 미드필더 Top 11~20

토르난테 2025. 5. 7.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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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이탈리아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오리운디의 경우에도 이탈리아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는 모두 포함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일은 2025년 5월 6일 기준입니다.

 


20위 안토니오 잔니

 


생년월일: 1904년 9월 19일
A매치 기록: 23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토리노 FC

1920년대와 30년대에 중원에서 활약했던 선수로 2-3-5 시스템의 하프백과 인사이드 포워드를 소화할 수 있었는데 높은 수준의 테크닉과 광활한 시야, 그리고 적재적소에 들어가는 숏패스와 롱패스를 바탕으로 팀의 빌드업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20년대 토리노 중원의 핵심인 잔니는 20년대 중후반에 합류한 발론치에리와 리보나티의 뒤를 받쳐줬고 그 덕택에 두 선수는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며 우승을 이뤄냈지만 이 우승은 알레만디 이적 스캔들로 인해 박탈당했다. 그러나 오랜 시간 팀에 헌신했던 잔니는 이에 굴하지 않았고 다음 시즌인 1927-28 시즌에는 팀 역사상 최초로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데 공을 세우며 토리노가 명문으로 도약하는 길을 열었다.

1920년대 이탈리아 대표팀 주전으로 활약한 잔니는 1924 파리 올림픽과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 이탈리아 대표팀의 주축으로 참가했는데 후자의 대회에서는 조국의 3위를 이끌며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러나 1930년대에는 전성기에서 내려왔기에 월드컵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19위 카를로 안첼로티

 


생년월일: 1959년 6월 10일
A매치 기록: 26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AC 밀란

현세대의 팬들에게는 UEFA 챔피언스리그 최다 우승 감독으로 더 유명하지만 1980년대에는 이탈리아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중앙 미드필더로 스피드는 느렸지만 왕성한 활동량과 영리한 판단력, 그리고 강력한 중거리 슈팅으로 경기 흐름을 뒤집는 능력도 있었던 미드필더였다.

당시 하부리그에 있던 파르마에서 AS 로마로 이적한 뒤 전성기를 누린 안첼로티는 코파 이탈리아 4회 우승과 1982-83 시즌에는 40년 만에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으며 1983-84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결승에 진출하며 리드홀름 체제에서의 구단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그리고 아리고 사키 체제의 AC 밀란에서 말년을 보내면서도 레이카르트와 함께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세리에 A 2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2연패를 이뤄냈다.

선수생활 후반부에는 아주리 군단에서도 주전으로 도약한 안첼로티는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바니와 데 나폴리의 조합에 밀려 서브로 활약했지만 UEFA 유로 1988과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주전으로 데 나폴리와 호흡을 맞춰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조국의 준결승 진출에 힘을 보탰다.

 

18위 디노 바조

 


생년월일: 1971년 7월 24일
A매치 기록: 60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파르마

1990년대 하반기에 이탈리아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수비형 미드필더로 왕성한 활동량으로 경기장 전역을 뒤흔들었고 강함과 효율을 겸비한 수비로 상대의 공격 흐름을 끊어냈으며 강력한 슈팅으로 경기의 흐름을 바꾸기도 했다.

토리노의 세리에 A 승격을 이끌었으며 유벤투스의 1992-93 시즌 UEFA컵 우승을 이뤄낸 디노 바조는 파르마에서 전성기를 맞이하는데 1994-95 시즌 UEFA컵 결승전에서 유벤투스를 상대로 1차전에 결승골, 2차전의 동점골을 모두 득점하며 파르마의 첫 UEFA컵 우승을 이뤄냈고 1998-99 시즌에는 코파 이탈리아와 UEFA컵 더블 우승을 이뤄냈으며 말년에는 라치오에서 활약했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1994 미국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한 디노 바조는 조별리그 노르웨이전과 8강 스페인전에서 중거리포로 득점하며 조국의 결승 진출에 공헌했으나 승부차기에서 패하며 아쉽게 결승에 머물렀음에도 그 해 옹즈 몽디알이 뽑은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이후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다.

 

17위 조르지뉴

 


생년월일: 1991년 12월 20일
A매치 기록: 57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65kg
주 소속팀: 첼시 FC

2010년대 후반~2020년대 초반 유럽 무대 톱클래스 후방 플레이메이터로 우수한 축구지능과 높은 수준의 전술안, 그리고 날카로운 시야를 바탕으로 경기의 흐름을 완벽하게 읽어냈고 양질의 롱패스를 활용한 플레이메이킹으로 유명했으나 스피드가 느리고 몸싸움에 취약해 포백을 보호하는 수비적인 부분과 탈압박 부분에서는 다소 약점을 드러냈기에 우수한 수비력과 활동량을 지닌 파트너가 필요했다.

엘라스 베로나에서 데뷔해 두각을 나타냈고 나폴리로 이적해서는 2013-14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내는 등 세리에 A 수위급 미드필더로 성장했다. 첼시에서는 캉테와 조합하며 전성기를 누렸는데 2018-19 시즌 UEFA 유로파 리그 우승을 이뤄내며 대회 올스타팀에 포함되었고 2020-21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및 UEFA 슈퍼컵과 FIFA 클럽 월드컵을 연달아 제패하는데 큰 공을 세우며 UEFA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다.

브라질 국적이 있었음에도 이탈리아 대표팀을 선택하며 주축으로 활약한 조르지뉴는 코로나로 인해 2021년에 열린 UEFA 유로 2020에서 바렐라, 베라티와 함께 중원의 핵으로 활약하며 우승 과정에서 큰 공을 세웠고 UEFA 유로 토너먼트의 팀에 선정되었음은 물론 다소 논란은 있었지만 2021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3위를 기록했다.

 

16위 페르난도 데 나폴리

 


생년월일: 1964년 3월 15일
A매치 기록: 54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SSC 나폴리

이름부터가 나폴리의 레전드인 데 나폴리는 1980년대 이탈리아 무대를 대표하는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왕성한 활동량과 우수한 볼 컨트롤 능력과 양발 사용 능력은 물론 상대의 패스 흐름을 끊는 지능적인 인터셉트와 기습적인 공격 가담에 모두 뛰어났다.

나폴리에서 전성기를 누린 데 나폴리는 1986-87 시즌 도메스틱 더블을 포함해 세리에 A 2회 우승과 준우승 2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와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 1회는 물론 이탈리아 밖에서도 1988-89 시즌 UEFA컵 우승을 이뤄냈다. 그러나 AC 밀란으로 이적한 뒤에는 많은 우승 트로피를 따냈지만 주전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장기간 주전으로 활약한 데 나폴리는 1986 멕시코 월드컵과 UEFA 유로 1988, 그리고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바니, 안첼로티 등과 조합해 주전으로 활약했는데 UEFA 유로 1988과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뛰어난 퍼포먼스로 조국을 4강에 올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15위 파비오 카펠로

 


생년월일: 1946년 6월 18일
A매치 기록: 32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현세대의 축구팬들에겐 밀란의 전설적인 감독으로 더 유명하지만 1970년대 이탈리아 무대를 수놓은 후방 플레이메이커로 우수한 전술안과 드넓은 시야와 정확한 판단력에서 나오는 적절한 양발 패스로 경기를 설계하는데 능해 엘 지오메트라, 즉 기하학자라 불렸으며 우수한 볼 컨트롤 능력과 성실한 자기관리 능력으로 이름을 날렸다.

SPAL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카펠로는 AS 로마에서는 1968-69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내 주목받았고 유벤투스에서 세리에 A 3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1972-73 시즌에는 트레블을 노리며 리그 우승은 물론 코파 이탈리아와 유러피언 컵 결승에 오르는 활약을 선보였다.

AC 밀란에선는 1976-77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과 1978-79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내는 등 꾸준한 활약을 보인 카펠로였지만 아주리 군단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는데 1974 서독 월드컵에 참가했는데 8번 미드필더 성향의 카펠로가 수비형 미드필더로 섰고 공존이 어렵다는 게 증명된 리베라와 마촐라가 동시에 나오는 등 이미 팀 밸런스가 무너진 상황이라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는다.

 

14위 가브리엘레 오리알리

 


생년월일: 1952년 11월 25일
A매치 기록: 인테르 밀란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28경기 1골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 세리에 A를 대표하는 볼 위너였으며 뛰어난 체력에서 나오는 왕성한 활동량과 강력한 태클과 몸싸움은 물론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는 부분에도 뛰어난 완벽한 볼 위닝 미드필더로 이탈리아 언론에서는 그의 스타일을 두고 인콘트리스타, 즉 부딪히는 자라고 불렀다.

인테르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누린 오리알리는 네라주리 군단에 머물면서 세리에 A 2회 우승과 코파 이탈리아 우승 2회를 이뤄냈으며 1971-72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결승에 진출해 아약스의 크루이프를 상대하기도 했다, 그리고 전성기가 지난 이후에는 피오렌티나에서 활약했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한 오리알리는 UEFA 유로 1980 4위와 1982 스페인 월드컵 우승을 이뤄냈는데 그 과정에서 파울 브라이트너, 지쿠, 디에고 마라도나와 같은 플레이메이커들을 철저하게 견제하는 데 성공했다.

 

13위 레나토 자카렐리

 


생년월일: 1951년 1월 18일
A매치 기록: 25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토리노 FC

1970년대 중반 토리노의 약진을 이끌었던 미드필더로 드넓은 시야와 양발 모두를 사용한 정확한 패싱력을 활용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물론 우수한 볼 컨트롤과 강력한 킥력도 겸비했는데 축구 지능이 높고 다재다능해 중원의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으며 리베로에서도 우수한 모습을 보여줬다.

토리노 구단 역사상 최고의 3선 미드필더였던 자카렐리는 토리노 구단의 약진을 이끌며 1975-76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고 이후에도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며 1985-86 시즌에는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세리에 A 평점왕인 구에린 도르를 수상했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카펠로를 밀어내고 주전으로 활약한 자카렐리는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4위라는 성적을 이뤄내는데 공헌했으며 UEFA 유로 1980에도 백업 멤버로 참가했다.

 

12위 살바토레 바니

 


생년월일: 1956년 9월 25일
A매치 기록: 41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SSC 나폴리

1980년대 이탈리아 무대 최고의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팬들로부터 전사라는 별명으로 불렸을 정도로 강인하고 투지가 넘쳤으며 과한 태클로 상대 공격수를 짓밟거나 상대 관중을 도발하는 다혈질적이며 파이팅 넘치는 선수였으며 엄청난 활동량을 보여주는 성실성도 겸비해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탈리아의 다양한 구단에서 우수한 퍼포먼스를 선조인 바니는 페루자에서는 1978-79 시즌 세리에 A 무패 준우승을 이뤄내며 구단 통산 최고 순위를 기록했고 인테르에서는 1981-82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다. 전성기를 누린 나폴리에서는 데 나폴리와의 중원 조합으로 이름을 날리며 1986-87 시즌 세리에 A와 코파 이탈리아 더블 우승을 이뤄냈고 바니 개인도 1985-86 시즌 구에린 스포르티보 평점으로 수비현 미드필더 포지션에서 세리에 A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꽤 중용받은 바니는 1982 스페인 월드컵 명단에는 탈락해 월드컵 우승 멤버가 되지는 못했지만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디 젠나로, 데 나폴리와 함께 중원을 구성해 16강에 진출했으나 미셸 플라티니가 이끄는 프랑스에 패해 탈락하며 좋은 성적을 이뤄내진 못했다.

 

11위 지오반니 트라파토니

 


생년월일: 1939년 3월 17일
A매치 기록: 17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AC 밀란

펠레가 상대해 본 선수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선수 중 한 명으로 꼽았던 1960년대 최고의 하프백으로 탄탄한 수비력과 안정적인 볼 배급력을 갖췄으며 악착같으면서도 영리한 수비력으로 인해 중앙 수비수도 볼 수 있었다.

네레오 로코 감독 체제의 AC 밀란에서 카테나치오 전술의 키로 활약한 트라파토니는 구단의 두 번째 중흥기를 이끌었는데 세리에 A와 유러피언컵을 각각 2회 우승했고 1966-67 코파 이탈리아 우승과 1967-68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특히 1962-63 시즌 유러피언 컵 결승전에서는 당대 최고의 공격수이자 벤피카의 에이스 에우제비우를 깔끔하게 마킹하며 유명세를 떨치며 발롱도르 투표에서 8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지만 아주리 군단에서는 중용받지 못한 게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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