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사이드백 Top 10

국가의 영웅들/이탈리아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사이드백 Top 10

토르난테 2025. 5. 5.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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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이탈리아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오리운디의 경우에도 이탈리아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는 모두 포함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일은 2025년 5월 2일 기준입니다.

 


10위 안토넬로 쿠쿠레두

 


생년월일: 1949년 10월 4일
A매치 기록: 13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70년대 하반기에 활약한 수비수로 건실한 지구력과 뛰어난 대인 수비 능력은 물론 패싱력과 크로스, 그리고 슈팅과 같은 공격수와 미드필더에게 요하는 부분에도 약점이 없었음은 물론 높은 축구 지능을 바탕으로 주 포지션인 라이트백은 물론 스토퍼, 수비형 미드필더, 심지어는 윙어까지도 소화하는 등 다양한 포지션에서 뛸 수 있었던 멀티플레이어였다.

트라파토니 체제에의 유벤투스에서 구단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이끈 쿠쿠레두는 비안코네리의 유니폼을 입고 세리에 A 6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6-77 시즌에는 UEFA컵에서 빌바오를 꺾고 우승하며 구단 역사상 첫 유럽 대항전 트로피를 들어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젠틸레와 카브리니의 약진으로 주전경쟁에서 밀려나며 피오렌티나로 이적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는 다소 아쉬웠는데 파케티, 젠틸레, 카브리니에게 밀려 주로 백업으로 나선 쿠쿠레두는 유일하게 참가한 메이저 국가대항전인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도 젠틸레와 카브리니의 백업으로 나섰다.

 

9위 마우로 타소티

 


생년월일: 1960년 1월 19일
A매치 기록: 7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AC 밀란

19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 이탈리아 무대 정상급 라이트백으로 활약한 선수로 공격보다는 수비에 중점을 둔 라이트백이었으며 뛰어난 운동능력과 왕성한 활동량, 그리고 거친 태클을 앞세워 오른쪽을 견고하게 방어했다.

라치오에서 데뷔해 AC 밀란으로 이적해 전성기를 누린 타소티는 구단의 암흑기를 겪었는데 암흑기를 지탱하다가 베를루스코니의 투자와 사키 감독의 부임으로 팀이 정상궤도로 올라서자 바레시, 코스타쿠르타, 말디니와 함께 10년간 철의 포백을 구성해 상대의 맹공을 막아내는데 일조하며 세리에 A 5회 우승 및 UEFA 챔피언스리그 3회 우승을 이뤄냈고 그 과정에서 세운 공로를 인정받아 옹즈 몽디알이 선정한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고 은퇴한 뒤에는 AC 밀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는 베르고미에게 밀려 오랜 세월 백업 신세를 면치 못했는데 은사였던 아리고 사키 부임 이후 사키와 베르고미의 갈등으로 인해 1994 미국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주전으로 도약했고 본선에서도 초반에는 주전으로 나섰으나 노쇠화로 인한 부진은 물론 8강 스페인전에서는 엘보우로 루이스 엔리케를 가격한 행위가 경기 종료 이후 드러나며 8경기 출장 정지를 당했고 그것이 타소티의 마지막 대표팀 경기였다.

 

8위 세르지오 체르바토

 


생년월일: 1929년 10월 22일
A매치 기록: 28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피오렌티나

1950년대 WM 시스템의 정상급 레프트백 중 하나로 수비수임에도 간헐적으로 공격에 가담했으며 뛰어난 킥력을 바탕으로 세트피스를 도맡아 처리했다.

1950년대 피오렌티나의 약진을 이끈 체르바토는 베르나르디니 감독이 이끌던 1955-56 시즌에는 팀의 첫 리그 우승을 이뤄냈고 이듬해에는 유러피언 컵 결승에 진출했고 그 뒤에도 4년 연속 준우승을 기록하는데 큰 공을 세워 훗날 피오렌티나 구단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유벤투스로 이적해서도 전성기를 이어나간 체르바토는 트리오 마지코의 뒤를 받쳐주며 세리에 A 2연패에 공헌한다. 다만 아주리 군단에서는 암흑기에 활약한 인물인지라 큰 활약상은 없었으며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했다.

 

7위 지안루카 잠브로타

 


생년월일: 1977년 2월 19일
A매치 기록: 98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2000년대 초중반, 월드클래스 측면 수비수로 평가받았던 인물로 빠른 스피드와 왕성한 활동량을 겸비했으며 뛰어난 오른발 킥을 활용한 날카로운 크로스로 오른쪽을 지배했으며 안정적인 수비력도 겸한 것은 물론 우수한 전술안과 양발 사용 능력을 통해 레프트백과 수비형 미드필더, 메짤라의 위치에서도 활약했다.

유벤투스에서 전성기를 누린 잠브로타는 칼치오폴리로 인해 두 번의 리그 우승이 취소되었음에도 세리에 A 우승 2회와 2002-03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뤄냈다. 그러나 칼치오폴리로 소속팀이 강등되자 바르셀로나로 갔으나 그때는 큰 활약을 펼치지 못하고 밀란으로 돌아왔으며 밀란에서도 전성기의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다.

2000년대 초중반 아주리 군단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한 잠브로타는 UEFA 유로 2000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했으나 준결승 네덜란드전에서 34분 만에 퇴장당하며 결승전에 나서지 못했고 UEFA 유로 2004에서는 팀은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음에도 개인으로는 대회 올스타 스쿼드에 들었다. 그리고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조국의 우승을 견인하며 대회 올스타팀과 UEFA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6위 타르치시오 부르니치

 


생년월일: 1939년 4월 25일
A매치 기록: 66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그란데 인테르 시대에 활약했던 라이트백으로 자이르 다 코스타의 위치에 따라 라이트백과 스토퍼로 자유자재로 변했으며 당대 최고의 대인 마킹 실력을 자랑하며 에우제비우나 푸스카스 같은 훌륭한 공격수들을 마킹하며 명성을 쌓았다.

그란데 인테르라 불렸던 시절의 황금기를 이끈 카테나치오의 한 축을 담당한 부르니치는 바위처럼 상대 공격수를 짓누르며 세리에 A 4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2회 우승을 이루는데 공을 세워 1964년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말년에는 나폴리에서 활약하며 리베로로 포지션을 변경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파케티와 함께 최고 레벨의 사이드백 라인을 구성한 부르니치는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북한과 소련에게 밀려나는 굴욕을 당했지만 이를 잘 극복하고 UEFA 유로 1968 우승과 1970 멕시코 월드컵 준우승을 이뤄내며 명예회복에 성공한다.

 

5위 클라우디오 젠틸레

 


생년월일: 1953년 9월 27일
A매치 기록: 71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 유럽무대 최고의 라이트백 중 한 명으로 거친 플레이 스타일로 리비아의 독재자인 "카다피"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이런 거친 수비 방식과는 별개로 오른발로 올리는 정교한 크로스는 그가 속한 팀의 공격 루트 중 하나로 활용되기도 했다.

유벤투스 구단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이끈 젠틸레는 비안코네리의 유니폼을 입고 세리에 A 6회 우승과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6-77 시즌에는 UEFA컵을 우승하며 팀의 첫 유럽 대항전 우승에 공헌했고 1983-84 시즌에는 컵 위너스컵 우승에도 기여했다. 그러나 1984-85 시즌에 피오렌티나로 떠나며 유러피언컵 우승은 이루지 못한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아주리 군단에서도 대단한 활약을 펼친 젠틸레는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과 UEFA 유로 1980에서는 조국의 준결승 진출을 견인했고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마라도나, 지쿠, 루메니게 등 당대 최고의 선수들을 틀어막으며 우승에 크게 기여했음은 물론 젠틸레 개인도 복수의 매체에서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4위 주세페 베르고미

 


생년월일: 1963년 12월 22일
A매치 기록: 81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1980년대 초반부터 90년대 후반까지 20년 가까이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라이트백이자 스토퍼로 우수한 수비 지능과 강인한 체력과 빠른 발 그리고 터프한 수비와 안정적인 볼 배급 능력을 모두 겸비했으며 두 포지션에서 모두 당대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공격력보다는 수비력이 부각되는 선수였음에도 공격 상황에서는 정교한 크로스로 득점 찬스를 만들기도 했다.

선수 생활을 인테르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 베르고미는 인테르에 20년간 헌신하며 20세기 마지막 세리에 A 우승을 드는데 큰 공을 세웠고 세 번의 UEFA 컵 제패에 공헌해 구단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은퇴한 뒤인 2020년에는 네라주리들의 투표로 인테르 밀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아주리 군단에서도 빛나는 활약을 이어간 베르고미는 만 19세의 어린 나이로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 로테이션 멤버였지만 큰 경기에서 선발로 나와 활약하며 우승을 차지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후에도 UEFA 유로 1988과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주장으로 준결승에 진출하는데 공헌했다. 그러나 새로 부임한 사키와의 갈등으로 인해 대표팀 일선에서 물러났다가 1998 프랑스 월드컵 때 로테이션 멤버로 복귀했으며 대회 도중 부상당한 네스타의 공백을 메웠으나 8강 프랑스전 승부차기에서 아쉽게 패했다.

 

3위 안토니오 카브리니

 


생년월일: 1957년 10월 8일
A매치 기록: 73경기 9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잘생긴 외모로 인해 아름다운 안토니오라 불렸던 선수로 1980년대 상반기를 빛낸 레프트백으로 윙어가 연상될 정도로 빠른 스피드와 정확한 크로스, 왕성한 활동량으로 왼쪽 측면을 지배했으며 이는 트라파토니의 조나 미스타를 효과적으로 구현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유벤투스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비안코네리 군단의 세리에 A 6회 우승, 1982-83 시즌 유러피언 컵을 포함해 3대 유럽 대항전을 모두 우승한 진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카브리니는 개인으로도 옹즈 몽디알이 뽑은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3회, 구에린 스포르티보가 선정한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며 당대 수위급 레프트백으로 인정받았다.

아주리에서도 약관의 나이에 주전으로 도약해 맹활약을 펼친 카브리니는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대중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 발롱도르 투표에서 13위에 올랐으며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아주리의 통산 세 번째 월드컵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2위 지아친토 파케티

 


생년월일: 1942년 7월 18일
A매치 기록: 94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91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인테르와 아주리의 위대한 캡틴이자 유럽 최초로 오버래핑을 시도하며 카테나치오의 매서운 역습을 상징하는 선수였다. 빠른 스피드와 탄탄한 기본기를 활용해 공격에 적극 가담하며 상대 수비진을 교란했으며 강력한 피지컬을 앞세운 대인 수비에도 능했다.

선수생활을 오직 인테르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 파케티는 그런데 인테르라 불리던 1960년대 중후반 전성기를 이끌며 세리에 A 4회 우승과 코파 이탈리아 1회 우승, 그리고 유러피언 컵과 인터콘티넨탈컵 2연패를 이뤄냈고 인테르의 대약진과 축구 전술사에 큰 영향을 끼친 공로를 인정받아 인테르는 그가 선수 시절에 달고 활약했던 등번호 3번은 영구결번 처리되었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는 첫 메이저 대회인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소련과 북한에게 패해 조기 탈락하는 굴욕을 겪었던 파케니는 UEFA 유로 1968에서는 주장이자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맡아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개최국 멕시코와 난적 서독을 이기고 결승에 진출했다. 언급한 두 대회에서 모두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과 인테르 명예의 전당에 동시에 헌액된 파케티는 월드 사커지 선정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 6회 선정되었고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도 총 7회 선정되어 그중 1965년에는 2위, 1968년에는 5위에 올랐다.

 

1위 파올로 말디니

 


생년월일: 1968년 6월 26일
A매치 기록: 126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AC 밀란

AC 밀란과 아주리의 위대한 캡틴이자 축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백 중 한 명으로 빠른 스피드와 세밀한 볼 컨트롤, 우수한 피지컬 능력과 교묘한 대인 수비를 모두 겸비한 완벽한 풀백이자 센터백이었다.

선수생활을 오직 AC 밀란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 말디니는 구단에서 두 차례의 황금기를 이끌며 세리에 A 7회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5회 우승을 포함해 밀란에서만 스물다섯 개의 우승컵을 들었는데 특히 1993-94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센터백으로 출전해 호마리우와 스토이치코프를 가볍게 무력화시킨 그의 수비력은 관중들을 경악하게하며 1993-94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되었고 2002-03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유벤투스의 알레제게 라인을 상대로 철벽수비를 선보이며 결승전 맨 오브 더 매치에 재차 선정되었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큰 족적을 남긴 말디니는 UEFA 유로 1988부터 2002 한일 월드컵까지 일곱 번의 메이저대회에 참가해 월드컵에서 두 번, 유로에서 세 번 베스트 일레븐에 드는 우수한 활약을 펼쳤고 바레시, 베르고미와 함께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최장시간 무실점 기록을 세웠으며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도 레프트백과 센터백을 오가며 혼신의 수비를 했으며 결승전에서도 바레시와 짝을 이뤄 호마리우와 베베투를 괴롭히며 승부차기 끝에 팀이 패했음에도 결승전 맨 오브 더 매치에 오르는 활약을 보여줬다.

축구사 최고의 레프트백답게 개인 커리어도 훌륭한 말디니는 발롱도르 10위 안에 여섯 번 들었고 1994년과 2003년에는 3위에 오르며 포디움에 들었는데 발롱도르 포디움에 두 번 든 유일한 측면 수비수이며 옹즈 몽디알이 뽑은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8회 선정, ESM 올해의 팀에 4회 선정되었다. 그리고 1994년에는 월드 사커지가 뽑은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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