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3선 미드필더 Top 21~30

국가의 영웅들/이탈리아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3선 미드필더 Top 21~30

토르난테 2025. 5. 6.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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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이탈리아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오리운디의 경우에도 이탈리아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는 모두 포함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일은 2025년 5월 6일 기준입니다.

 


30위 니콜라 베르티

 


생년월일: 1967년 4월 14일
A매치 기록: 39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19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 이름을 날린 다재다능한 미드필더로 중원과 측면을 가리지 않고 좋은 퍼포먼스를 선보였으며 드리블 돌파나 볼 컨트롤같은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평범했지만 왕성한 활동량과 영리한 축구지능, 그리고 강력한 승부욕이 돋보이는 미드필더였다.

파르마에서 데뷔해 피오렌티나에서 두각을 나타낸 뒤 인테르에서 전성기를 보낸 보내며 10년간 활약한 베르티는 인테르 데뷔 시즌에 1988-89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낸 것을 포함해 1990년대에는 UEFA컵 2회 우승을 이뤄내며 맹활약했고 베르티 개인도 1994년에는 인테르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체사레 말디니에게 발탁되어 청소년 대표팀 시절부터 엘리트 코스트를 밟은 베르티는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백업으로 준결승에 진출하는 경험을 했고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하며 준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했다.

 

29위 마리오 베르티니

 


생년월일: 1944년 1월 7일
A매치 기록: 25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1960년대와 70년대 세리에 A에서 이름을 날렸던 수비형 미드필더로 화려함은 덜 부각되었지만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성실하면서도 투지 넘치는 플레이를 바탕으로 상대의 공격형 미드필더를 견제하면서 포백라인을 안전하게 보호했고 간간히 공격진영으로 올라가 기습적인 중거리 슈팅으로 득점을 터트리기도 했던 실속 넘치는 미드필더였다.

하부리그의 프라토에서 데뷔해 피오렌티나에서 첫 전성기를 맞은 베르티니는 1965-66 시즌 코파 이탈리아와 미트로파컵을 동시에 우승하는데 공헌했고 인테르로 이적해서도 베딘의 후계자로 활약하며 1970-71 시즌 세리에 A 우승 및 1971-72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냈음은 물론 암흑기에도 팀을 지탱하며 고군분투했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중용받은 베르티니는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 이탈리아 대표팀의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를 맡아 활약하며 공격형 미드필더와 포백 라인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며 팀의 결승 진출에 공헌했다.

 

28위 안토니오 줄리아노

 


생년월일: 1943년 1월 1일
A매치 기록: 18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SSC 나폴리

1960년대와 70년대 세리에에서 이름을 날렸던 레지스타로 드넓은 시야에서 나오는 정교한 오른발 패스로 팀의 플레이메이킹을 담당했으며 강력한 지구력과 영리한 수비력은 물론 우수한 볼 컨트롤로 볼 키핑에도 능한 육각형 미드필더였다.

나폴리에서 데뷔해 16년간 활약했고 그중 12년간 주장직을 역임하며 구단 역사상 가장 오래 주장직을 역임했던 줄리아노는 비록 초년에는 인테르와 AC 밀란, 말년에는 유벤투스의 강세로 리그우승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구단의 세리에 A 준우승 2회와 1975-76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내며 팀의 에이스로 군림했고 은퇴한 뒤에는 단장으로 할약하며 뤼트 크롤, 디에고 마라도나, 카레카 등을 영입하는 공을 세우며 나폴리의 구단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단기간에 구단의 명성을 올렸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지안카를로 데 시스티, 마리오 베르티니와 주전경쟁을 했던 줄리아노는 1966 잉글랜드 월드컵때부터 명단에 포함되어 UEFA 유로 1968에서는 결승전 재경기를 제외한 전 경기에 출전해 조국의 우승에 공헌했고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백업으로 준우승을 경험했으며 1974 서독 월드컵에서도 백업으로 나섰다.

 

27위 아르만도 카스텔라치

 


생년월일: 1904년 10월 7일
A매치 기록: 3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1930년대 상반기 세계구급 레프트 하프로 훤칠한 키와 긴 다리를 이용한 인터셉트로 상대 공격의 흐름을 끊는 부분은 물론 적극적으로 상대를 막아내며 볼을 탈취하는 부분에도 능했고 무엇보다 경기력이 일관적이고 꾸준했다.

선수 생활 전체를 인테르에서 보낸 원 클럽맨인 카스텔라치는 1929-30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낸 주역으로 활약했고 이외에도 리그 3회 준우승 및 1933년 미트로파컵 준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팬들의 지지가 대단해 현역 은퇴 직후에 곧바로 감독으로 팀을 이끌기도 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는 거의 중용받지 못했는데 자니, 베르톨리니, 페라리스 등 뛰어난 재능들이 많았기에 대표팀 주전으로 중용받지 못했다.

 

 

26위 우고 로카텔리

 


생년월일: 1916년 2월 5일
A매치 기록: 22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1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1930년대 하반기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 활약했던 하프백으로 키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빠른 스피드와 민첩한 몸놀림으로 유명했고 우수한 테크닉과 패싱력 및 정확한 슈팅으로 이름을 날렸던 윙 하프였다.

브레시아에서 센터포워드로 데뷔했으나 아탈란타 임대 시절 하프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한 뒤에 대성한 로카텔리는 인테르로 이적해 전성기를 누리며 세리에 A 2회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도중에는 유벤투스에서 활약하다가 심장 문제로 선수생활을 접었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베르톨리니, 몬티, 페라리스 이후 세대의 주역으로 활약한 로카텔리는 1936 베를린 올림픽 축구종목에서 우승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조국의 우승을 이뤄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국제대회가 잠정적으로 중단되자 더 높은 커리어를 세울 수는 없었다.

 

25위 루이지 베르톨리니

 


생년월일: 1904년 9월 13일
A매치 기록: 26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30년대 이탈리아 무대에서 활약한 하프백으로 2-3-5 포메이션의 레프트 윙하프로 주로 활약했는데 이탈리아의 작가 카를로 모리온도는 그를 두고 "길고 다소 단정치 못하지만 머리에 하얀 손수건을 쓰고 헤딩슛에서는 무적이었다. 이례적인 한 쌍의 다리로 그를 거대한 공간을 보증할 수 있었고 의지와 기술로 신체적인 구조의 약점을 커버했다."라고 평가했을 정도로 투지 넘치는 플레이와 용수철같은 점프력을 활용한 제공권 경합 능력과 헤더로 이름이 높아 "가공할만한 수비수로 꼭 머리에 공을 붙이고 다니는 느낌이었다."라고 평가를 받았다.

칼초 보르살리노에서 데뷔해 초년에는 스트라이커로 활약하다가 알레산드리아로 이적해서는 처음에는 주전에서 밀렸다가 당시 알레산드리아의 감독이었던 카를로 카르카노에 의해 영양 불량 문제가 있음이 밝혀졌고 동시에 포지션을 레프트 하프백으로 변경해 활약하며 단숨에 이탈리아 무대 최고의 하프백으로 올라선다. 그리고 유벤투스로 이적해서는 7년 동안 루이스 몬티와 함께 수비라인의 주축으로 활약해 세리에 A 5연패를 이뤄냈는데 그 과정에서 이탈리아 언론계 대부인 카를로 펠리페 치에사로부터 "유벤투스의 5연패와 포초의 황금기에서의 키맨 중 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카스텔라치와의 경쟁에서 이겨내며 주전으로 활약한 베르톨리니는 1934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 및 1933년부터 1935년까지 진행한 중유럽컵에서도 조국의 우승을 이뤄내며 이탈리아 축구계의 대약진을 이뤄냈다.

 

24위 아틸리오 페라리스

 


생년월일: 1904년 3월 26일
A매치 기록: 28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AS 로마

1930년대 이탈리아 무대에서 활약한 라이트 하프로 선수 초년에는 축구보다 여자를 유혹하는데 더 관심이 많았던 카사노바이자 애연가였지만 여러 지도자들의 지도를 받고 개과천선에 엄청난 활동량과 대인 수비 능력을 보여주며 대표팀 주전급 하프백으로 성장했다.

포르티투도에서 데뷔해 AS 로마에서 본격적으로 마음을 다잡고 축구를 시작하며 맹활약했으나 우승권과는 거리가 멀었고 결국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우승한 뒤 지역 라이벌 라치오로 이적해 팬들의 원성을 샀으나 바리를 거쳐 다시 AS 로마로 돌아와서 팬들의 용서를 받았으며 사후인 2013년에 AS 로마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핵심으로 활약한 페라리스는 1926년 5월 9일에 스위스를 상대로 첫 A매치를 치렀다. 그리고 암스테르담 올림픽에도 참가하였지만 경기를 뛰지는 못했고, 동메달을 가져오기는 못했고 마리오 피치올로와의 치열한 주전 경쟁을 벌였으나 결국 포초의 신임을 얻는 데 성공해 주전으로 활약하며 월드컵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잔피에로 콤비가 은퇴한 이후 페라리스는 이탈리아 대표팀의 새로운 주장이 되었다.

 

23위 니콜로 바렐라

 


생년월일: 1997년 2월 7일
A매치 기록: 41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현세대 세리에 A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왕성한 활동량과 빠른 스피드를 바탕으로 경기장 전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공수 양면에서 탄탄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수비보다는 공격 상황에서 더 좋은 퍼포먼스를 보이긴 한다.

칼리아리에서 2018-19 시즌 세리에 A 올해의 팀에 선정되며 두각을 나타낸 뒤 인테르에서는 리그 최고 수준의 선수로 성장한 바렐라는 2019-20 시즌 UEFA 유로파 리그 준우승을 시작으로 세리에 A 2회 우승 및 코파 이탈리아 2연패, 그리고 2022-23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바렐라 개인도 세리에 A 올해의 팀에 6회 선정되었고 2020-21 시즌과 2022-23 시즌에는 세리에 A 최우수 미드필더에 선정되었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중원의 핵으로 활약하는 바렐라는 UEFA 유로 2020에서는 조르지뉴, 베라티와 함께 탄탄한 중원라인을 구성하며 조국의 우승에 큰 공을 세웠고 현재도 주전으로 중용받는 중이다.

 

 

22위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

 


생년월일: 1986년 1월 19일
A매치 기록: 55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2000년대 후반기와 2010년대 세리에 A 무대 정상급 미드필더로 잘생긴 외모는 물론 우아한 볼 컨트롤을 활용한 유려한 탈압박과 세련되고 정확한 패싱력을 보여줬으며 축구 지능이 높고 다재다능해 미드필더의 전 포지션에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었는데 박스 투 박스와 레지스타는 물론 트레콰르티스타와 앵커맨을 모두 소화했음은 물론 처진 공격수도 맡아 소화할 수 있었다.

유벤투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초년의 엠폴리 임대 시절과 말년에 제니트에 잠시 머문 것을 제외하면 유벤투스에서 커리어 대부분을 보낸 마르키시오는 세리에 A 7연패와 코파 이탈리아 4연패를 이뤄냈고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준우승을 2회 기록했다. 제2의 타르델리라 불린 마르키시오 개인도 세리에 A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되었고 2014-15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 리그 시즌의 스쿼드:에 선정되었다.

아주리 군단에서도 적지 않은 경기를 소화한 마르키시오는 2010 남아공 월드컵을 시작으로 UEFA 유로 2012에서는 피를로, 데 로시와 함께 중원조합을 구성해 준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16강 진출이 걸린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우루과이의 미드필더 아레발로 리오스의 정강이를 걷어차며 퇴장당했고 팀 패배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21위 마르코 베라티

 


생년월일: 1992년 11월 5일
A매치 기록: 55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65cm / 몸무게 60kg
주 소속팀: 파리 생제르맹

2010년대 이탈리아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하나로 뛰어난 체력과 영리한 전술안을 바탕으로 한 압박 플레이와 놀라운 중장거리 패스, 그리고 유려한 볼 컨트롤 능력을 자랑하는 미드필더였다.

페스카라에서 세리에 B 우승을 이뤄낸는데 큰 공을 세워 세리에 B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며 명성을 떨친 베라티는 카타르 투자청이 인수한 파리 생제르맹에 합류해 팀의 중원에서 플레이메이커이자 엔진 역할을 하며 팀 전술의 핵심으로 활약하며 리그앙 9회 우승과 쿠프 드 프랑스와 쿠프 드 리그 6회 우승, 그리고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행에 공헌했다. 그리고 베라티 개인도 리그앙 올해의 팀 7회 선정 및 2013-14 시즌 리그앙 올해의 영 플레이어 수상, 그리고 2014-15 시즌에는 리그앙 올해의 외국인 선수에 선정되었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꽤 많은 경기를 소화한 베라티는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했으나 죽음의 조에서 조별리그 탈락을 막지는 못했고 이후로는 부상으로 메이저 대회에 나서지 못하다가 UEFA 유로 2020에서는 부상으로 나오지 못하다가 조별리그 3차전에 복귀했고 결승전에도 선발출전해 우승에 공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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