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사이드백 Top 21~30

국가의 영웅들/이탈리아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사이드백 Top 21~30

토르난테 2025. 5. 3.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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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이탈리아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오리운디의 경우에도 이탈리아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는 모두 포함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일은 2025년 5월 2일 기준입니다.

 


30위 파올로 네그로

 


생년월일: 1972년 4월 16일
A매치 기록: 8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SS 라치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이탈리아 무대에서 명성을 떨친 라이트백으로 파워풀한 몸싸움과 태클, 그리고 우수한 제공권 장악 능력을 겸비했고 이를 바탕으로 주 포지션인 라이트백은 물론 센터백까지 볼 수 있었던 수비적인 라이트백이지만 공격 상황에서는 적절한 오버래핑으로 팀에 기여했던 노력파였다.

라치오의 황금기를 이끈 네그로는 1997-98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시작으로 1998-99 시즌에는 컵 위너스 컵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 역사상 최초로 유럽 대항전에서 우승하는데 공헌했고 여름에는 UEFA 슈퍼컵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승리했으며 1999-2000 시즌에는 세리에 A와 코파 이탈리아를 모두 제패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는 UEFA 유로 2000 전후로 주로 소집된 네그로는 UEFA 유로 2000에서는 백업으로 준우승을 경험했다.

 

29위 쥐세페 판카로

 


생년월일: 1971년 8월 26일
A매치 기록: 19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4kg
주 소속팀: SS 라치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이탈리아 무대를 풍미했던 측면 수비수로 우수한 피지컬과 빠른 스피드, 그리고 한혈마와도 같은 강인한 지구력을 겸비해 공수 양면에서 쉴 새 없이 활약했는데 피지컬을 활용한 수비력은 물론 빠른 패스와 날카로운 크로스를 통해 공격 찬스를 만드는 공격적인 부분에도 능했으며 세트피스 상황에서는 헤더로 상대의 골문을 위협하기도 했다.

칼리아리에서 두각을 나타낸 판카로는 라치오로 이적해 전성기를 누리며 1998-99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을 시작으로 여름에는 UEFA 슈퍼컵에서 퍼거슨이 이끌던 지난 시즌 트레블 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승리했으며 연달아서 축구 역사상 우승 경쟁이 가장 치열한 리그로 불렸던 1999-2000 시즌에는 세리에 A와 코파 이탈리아를 모두 제패하는 과정에서 큰 공을 세웠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백업으로 종종 소집되었던 판카로는 라치오를 떠나서는 AC 밀란으로 입단해 백업으로 대기하며 2003-04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다.

 

28위 쥐세페 파발리

 


생년월일: 1972년 1월 8일
A매치 기록: 8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SS 라치오

라치오 구단 역사상 가장 위대한 레프트백으로 스피드와 체격은 평범했지만 적절한 타이밍에 상대의 볼을 뺏는 태클과 집요한 대인 수비, 그리고 적절한 수비라인 커버 능력을 자랑했음은 물론 센터백까지 소화할 수 있었을 정도로 수비적인 레프트백이지만 공격 상황에서는 왼발 크로스로 지원하기도 했다.

라치오 통산 출전 2위에 랭크된 파발리는 1997-98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시작으로 1998-99 시즌에는 컵 위너스 컵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 역사상 최초로 유럽 대항전에서 우승했고 여름에는 UEFA 슈퍼컵에서 퍼거슨이 이끌던 지난 시즌 트레블 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승리했다. 그리고 1999-2000 시즌에는 세리에 A와 코파 이탈리아를 모두 제패하는 기염을 토하며 구단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구단의 전성기가 끝난 마지막 시즌에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팬들에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선물하고 팀을 떠났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종종 소집되었지만 기회를 잡는데 실패한 파발리는 라치오를 떠나 인테르로 이적해 로테이션 멤버로 활약했다가 인테르가 마이콩, 그로소, 막스웰 등 거물급 사이드백들을 영입하자 팀을 떠나 AC 밀란에서 백업으로 말년을 보냈는데 네스타의 부상으로 생각보다 많은 기회가 왔고 결국 2006-07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했다.

 

27위 알도 말데라

 


생년월일: 1953년 10월 14일
A매치 기록: 10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AC 밀란

1970년대 AC 밀란을 대표하던 레프트백으로 전임자 슈넬링어와는 다르게 왕성한 체력과 빠른 스피드를 활용해 측면에서 활발한 오버래핑을 하며 공격을 지원해 미친 말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특히 그의 왼발 슈팅은 알도골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AC 밀란의 암흑기를 지탱한 레전드였던 알도 말데라는 1976-77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과 1978-79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고 토토네로 스캔들로 강등당한 밀란에 남아 바레시, 베트, 콜로바티 등과 함께 1980-81 시즌 세리에 B 우승을 이끌었다.

이탈리아 대표팀에도 종종 소집되던 우수한 인재였지만 파케티와 카브리니라는 역대급 레프트백의 틈바구니 속에서 백업으로 대기하는데 그쳤다.

 

26위 지오반니 프란치니

 


생년월일: 1963년 8월 3일
A매치 기록: 8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SSC 나폴리

1980년대 후반에 이름을 날렸던 수비적인 레프트백으로 빠른 스피드와 우수한 지구력으로 왼쪽 사이드에서 왕성한 활동량을 선보였고 정확한 왼발 크로스와 인사이드 커팅 같은 공격적인 부분에서도 우수한 모습을 보여줬으며 수비수로서는 아예 스토퍼도 볼 수 있었을 정도로 훌륭했다.

토리노에서 데뷔해 두각을 나타내며 1984-85 시즌 세리에 A 준우승을 이뤄냈고 나폴리로 이적해 구단의 황금기를 이끈 프란치니는 1988-89 시즌 UEFA컵 우승과 1989-90 시즌 세리에 A 우승과 1990년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 황금기에 왼쪽을 튼튼하게 책임졌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카브리니의 후계자 중 한 명으로 주목받았던 프란치니는 UEFA 유로 1988 쿼드에 포함되었으나 말디니에 밀려 벤치 멤버로 대기하며 4강 진출을 경험했다. 그러나 그 뒤로는 소집되지 못했다.

 

 

25위 모레노 토리첼리

 


생년월일: 1970년 1월 23일
A매치 기록: 10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90년대 이탈리아 무대를 풍미한 측면 수비수 중 하나로 다소 투박했지만 큰 체격과 우수한 운동능력을 겸비했으며 야수라 불렸을 정도로 집요한 대인 마킹 능력으로 정평이 났으며 본 포지션인 라이트백은 물론이고 스토퍼, 레프트백, 리베로를 모두 막힘없이 소화할 수 있었다.

아마추어 시절에는 목재 관련 일을 했었기에 팀동료 바조로부터 제페토라는 별명으로 불린 토리첼리는 유벤투스에서 첫 전성기를 누리며 세리에 A 3회 우승을 이뤄냈고 1994-95 시즌에는 세리에 A와 코파 이탈리아 더블을 이뤄냈으며 유럽 무대에서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3회 진출해 1995-96 시즌에는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1996년에는 유럽 챔피언 자격으로 참가한 인터콘티넨탈컵에서 제2의 라 마키나라 불렸던 리버 플레이트의 화려한 공격진을 제압하고 우승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유벤투스를 떠난 뒤에는 피오렌티나에서도 4년간 활약하며 2000-01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지만 팀의 파산으로 인해 에스파뇰로 이적해 라리가에 도전하기도 했던 토리첼리는 UEFA 유로 1996과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아주리 군단의 백업 멤버로 활약했다.

 

24위 파비오 그로소

 


생년월일: 1977년 11월 28일
A매치 기록: 48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90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US 팔레르모

2000년대 초중반에 전성기를 누린 장신의 측면 수비수로 유스 시절에는 공격형 미드필더 출신이었을 정도로 우수한 볼 컨트롤 능력을 보여줬고 빠른 스피드와 정력적인 오버래핑에 이어 날카로운 왼발 크로스와 강력한 킥력을 바탕으로 간간히 득점포를 가동했으며 이런 킥력을 활용해 페널티킥과 프리킥을 전담하기도 했다.

페루자에서 처음 두각을 나타낸 그로소는 인터토토컵 우승을 이뤄냈고 팔레르모에서도 팀의 승격을 주도했음은 물론 승격한 시즌인 2004-05 시즌엔 6위에 올랐고 2005-06 시즌에는 5위에 오르며 승격팀이 중상위권을 기록하는데 큰 공을 세워 대표팀에 뽑혔다. 그리고 2006-07 시즌에는 인테르로 이적했으나 그 뒤로는 부진한 활약을 펼치며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아주리 군단에서는 말디니가 은퇴한 뒤 무주공산이었던 레프트백의 주전자리를 차지한 그로소는 2006 독일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는데 특히 준결승전에서는 개최국 독일을 상대로 연장전에 득점했으며 결승전 승부차기에서는 마지막 키커로 나서며 페널티킥을 성공시키고 우승의 영광을 누렸으나 UEFA 유로 2008과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소속팀에서의 부진이 이어지며 조국의 조기 탈락을 막지 못했다.

 

 

23위 페데리코 디마르코

 


생년월일: 1997년 11월 10일
A매치 기록: 28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현세대 최고의 레프트백 중 한 명으로 좌측 스토퍼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준수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매우 공격적인 스타일로 , 볼을 컨트롤하는 발밑이 부드럽고 공을 전진시키는 능력이 우수하며 특히 우수한 왼발 킥력을 바탕으로 한 날카로운 크로스는 시모네 인자기 체제 인테르의 주 공격루트로 활용했다.

인테르 유스 출신에 인테르 울트라스인 쿠르바 노르드 출신의 성공한 인테르 팬의 대명사인 디마르코는 초년에는 파르마, 엘라스 베로나로 임대를 떠났지만 시모네 인자기 체제에서는 괄목한 성장을 이뤄내며 2023-24 시즌 세리에 A 우승 및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과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3회 우승을 이뤄냈고 2022-23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큰 공을 세우며 UEFA 챔피언스리그 시즌의 스쿼드에 선정되었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하는 디마르코는 스피나촐라를 밀어내고 주전을 차지했는데 UEFA 유로 2024에서 주전을 차지했고 2024-25 UEFA 네이션스 리그 1차전 프랑스전에서 환상적인 연계에 이은 아름다운 발리 슛으로 동점골을 뽑아내며 3-1 승리에 기여했다.

 

22위 마테오 다르미안

 


생년월일: 1989년 12월 2일
A매치 기록: 46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오른발잡이지만 왼발도 잘 쓰고, 좌우 풀백과 센터백까지 소화 가능한 멀티 수비 자원으로 공격적인 부분에서는 세밀함의 부족으로 공격포인트를 생산하는데 어려움을 겪지만 수비 상황에서는 적절한 위치 선정과 태클로 각을 좁히고 길목을 차단하는 깔끔한 수비를 보여주며 사이드백 치고는 괜찮은 피지컬과 우수한 심리전을 바탕으로 공격수를 직접 막아내는 부분에도 능했다.

AC 밀란의 유스 출신이지만 밀란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다르미안은 토리노에서 세리에 A 최고 수준의 라이트백으로 성장해 세리에 A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되며 유럽의 여러 명문팀의 주목을 받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그러나 맨체스터에서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고 결국 파르마로 돌아와서 부활에 성공했고 인테르로 이적해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세리에 A 2회 우승 및 2021-22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 그리고 2022-23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뤄냈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연령별 대표팀을 두루 거치며 엘리트 코스를 밟은 다르미안은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나섰으나 죽음의 조에서 쓴맛을 봤고 UEFA 유로 2016에서는 백업으로 대기했다. 그리고 꽤 오랜 기간 소집되지 못하다가 스팔레티 체제 이후로는 다시 선발되는 중이다.

 

21위 지안루카 페소토

 


생년월일: 1970년 8월 11일
A매치 기록: 22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90년대 전성기를 누린 풀백으로 단신에 기술적으로도 훌륭하다 말하기 어려웠지만 우수한 축구 지능과 특유의 성실한 플레이에서 나오는 왕성한 활동량을 겸비해 작은 교수라고 불렸으며 포지션에 대한 이해도가 우수해 주 포지션인 좌우 측면 수비수는 물론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측면 미드필더, 메짤라의 위치에서 모두 활약할 수 있었다.

AC 밀란의 유스 출신으로 여러 클럽을 돌아다니다가 최종적으로 정착한 유벤투스에서 전성기를 누린 페소토는 세리에 A와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를 각각 4회 우승했으며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무대에 4회 진출해 1995-96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1996년에는 유럽 챔피언 자격으로 참가한 인터콘티넨탈컵에서 제2의 라 마키나라 불렸던 리버 플레이트의 화려한 공격진을 제압하고 우승하는데 기여했고 21세기에도 주축으로 활약해 2000년대 중반, 칼치오폴리로 취소되었지만 정규리그 2회 연속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아주리 군단에서도 주로 백업으로 소집되던 페소토는 1998 프랑스 월드컵과 UEFA 유로 2000에 참가했는데 특히 UEFA 유로 2000 결승에서는 준결승에서 잠브로타가 퇴장당하는 여파로 대신 출전했으나 프랑스에게 연장전에 골든골로 패하는 아쉬움을 삼키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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