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렌츠 데아크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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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렌츠 데아크의 이야기

토르난테 2020. 3. 5.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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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동축아썰 관리자 박수용입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굉장히 화려하게 보이는 것이 있을 겁니다. 사람이던 단체던 말이죠.

근데 그런 것들을 속을 자세히 들여보면 굉장히 어두운 면이 있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오늘은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바로 축구 역사상 최고의 팀 중 하나로 꼽히는 매직 마자르의 어두운 이면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1950년대 상반기를 수놓은 매직 마자르. 다른 이름으로는 골든 팀이라 불리던 헝가리 국가대표팀의 선수들입니다.

이들에 대한 전략글은 사실 더 잘 나온 쪽이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전략은 설명에 꼭 필요할 때만 간략히 언급할 계획입니다.

세베슈 구스타브의 소셜리스트 풋볼은 그동안 축구계에 존재하지 않았던 포지션 체인지와 투 톱과 쓰리 톱, 쓰리 백과 포 백으로 유동적으로 변하는 화려무쌍한 모습을 보이며 다른 나라의 A 대표팀들을 압살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복잡한 전술을 구사하려면 오랜 시간 발을 맞추며 조직력을 가다듬어야 하는데 어떻게 클럽 팀도 아니고 국가대표팀에서 이렇게 훌륭한 조직력을 보여줬을까요?

그것은 바로 헝가리가 공산권 독재국가에 있는 팀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의 신분이었죠.

그리고 이들은 공산주의 독재국가였으며 나라가 개인에게 큰 영향력을 쉽게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이들은 대부분 군대 팀인 부다페스트 혼베드나 비밀경찰 AVH이 인수한 MTK 헝가리아 (다른 이름으로는 부다페스트 보로스 로보고 또는 MTK 부다페스트)가 있습니다.

정부는 조직력과 리그의 흥행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으려고 이렇게 다른 팀의 선수들을 강제로 빼앗아서 두 팀에 몰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저항하며 국가대표팀에서 멀어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쿠발라 라슬로와 데아크 페렌츠입니다.

쿠발라 라슬로는 버셔시에서 뛰다가 이런 국가 정책에 반발하여 체코슬로바키아와 이탈리아를 거쳐 스페인의 바르셀로나까지 떠나고 맙니다.

오늘 말할 선수는 바로 데아크 페렌츠인데 이는 쿠발라처럼 처음부터 저항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워낙 득점력이 좋아서 한 시즌에 리그에서만 66골을 넣기도 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줬던 득점 기계라 처음에는 세베슈 감독이 기용했습니다.

하지만 왕성하게 뛰는 걸 싫어하며 아마추어 스포츠를 동경한 데아크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고 심지어 공산당의 이적 명령 요청도 거부하고 페렌츠바로시란 시민 구단에서 활약합니다.

거기에 데아크가 국가 안기부 요원을 폭행하는 일이 발생하자 국가대표팀에 다시는 뽑히지 못했다.

거기에 그는 실형을 받았으며 협박과 회유 끝에 결국 가족을 저버리지 못하고 내무수 산하 클럽인 우이페슈티 도사로 이적합니다.

매직 마자르가 헬싱키 올림픽에서 유고를 이기고 우승하고 잉글랜드를 홈과 원정에서 도합 13-4로 이기며 웸블리에서의 첫 패배를 안기고 대한민국을 9-0으로 제압하고 남미의 두 강호 브라질과 우루과이마저 제압하면서 황금기를 보낼 때 데아크는 고통 속에서 보냈습니다.

자신과 함께 페렌츠바로시에서 활약하던 후배 코치시 산도르는 자신과 다르게 부다페스트 혼베드로 가서 푸스카스와 투 톱을 이루며 매직 마자르의 영광을 누렸을 때 데아크는 이적의 자세한 내막을 몰랐던 페렌츠바로시 팬들에게는 변절자라 불리며 초상화가 불태워졌으며 정부에게도 미운털이 단단히 바뀐 상태였습니다.

즉 마자르는 축구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누리는데 축구 선수인 자신은 그 빛 속에 어둠으로 남아 고통받았으며 하다못해 쿠발라처럼 탈출이라도 했으면 선수로서 커리어는 이뤘을 테지만 그조차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1956년에 정치인 너지 임레를 구심점으로 민중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공산주의자들을 몰아내자고 일어난 헝가리 혁명이 일어납니다.

혁명군은 처음에는 헝가리 정부를 이기고 혁명 정부를 수립했지만 공산주의자들이 불러온 소련군에 의해 헝가리 혁명군은 2500명이 죽고 13000명이 다쳤으며 헝가리는 다시 공산정권으로 회귀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 소용돌이 속에서 큰 상처를 받은 매직 마자르의 일부 멤버가 스페인으로 망명하면서 매직 마자르가 해체되었으며 영광을 누렸던 멤버들인 푸스카스, 코츠시스, 치보르 등은 스페인으로 탈출하여 반공운동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반공의 선봉장이던 데아크 페렌츠는 생계 곤란으로 인해 결국 수상 카다르 야노시의 경호원이 되는 굴욕을 당했습니다.

카다르 야노시가 어떤 인물이냐면 원래는 혁명 정부와 한 배를 탔으나 권력욕에 의해 결국 동지들을 배신하고 소련군을 불러와 헝가리 시민군을 학살하는데 앞장섰던 인물이었습니다.

이를 본 헝가리 사람들은 데아크를 매우 나쁘게 보고 폄하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1989년이 되고 헝가리도 공산 정권에서 해방되어 민주화가 된 이후에는 스페인으로 떠나 공산정권을 비판했던 매직 마자르의 인물들은 영웅이 되었으나 데아크는 죽을 때까지 매국노로 비판받습니다.

데아크는 1998년에 사망했으며 사후 2년 뒤인 2000년에나 그의 명예는 회복되어 헝가리 축구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면서 재평가를 받고 그의 결백이 하나하나 밝혀지며 그는 다시 헝가리 축구 역사에 훌륭한 선수로 남습니다.

이렇게 매직 마자르가 축구계에서 화려하게 활약하던 기록은 영원히 남고 회자되며 비얄롱가나 미헬스 같은 명장들에 의해 연구되면서 영원히 높은 평가를 받는 팀으로 평가받습니다.

저 매직 마자르의 멤버들은 가볍게 즐기는 축구팬분들도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정도로 족적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희생된 여러 선수들도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합니다.

그나마 쿠발라는 리그의 패권을 잠시나마 바르셀로나에게 가져오며 전 세계의 꾸레들에게 기억되었으며 서양 동전을 가지고 있는 것을 걸려서 대표팀에서 축출되었다가 헝가리 혁명 이후에 독일로 망명한 카제카스 아르파드는 바이에른 뮌헨의 암흑기에 헌신한 선수가 되며 독일에서는 인정받습니다.

하지만 데아크 페렌츠는 친정팀에서도 오랜 기간 외면받았으며 헝가리 국민들에게 동정받던 저들과는 달리 죽을 때까지 경멸을 받았으며 위상에서도 헝가리 사람들이나 축구 역사 마니아들만 아는 정도의 선수로 전락했습니다.

넴제티 버이녹샤그란 당대에 상위권으로 평가받는 리그에서 한 시즌에 66골을 넣은 대공 격 수임에도 그런 운명을 피해 갈 수 없었죠.

상대는 독재국가였으며 데아크는 그를 거스른 대가를 너무나도 가혹하게 치렀습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화려함 뒤에 감춰진 어두운 이면을 보며 그 어두운 이면에 상처받고 도태되며 왜곡된 누군가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항상 생각하는 여러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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