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일은 2025년 3월 9일 기준입니다.
10위 오를란두 페사냐

생년월일: 1935년 9월 20일
A매치 기록: 31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66kg
주 소속팀: 바스쿠 다 가마
1950년대와 60년대에 걸쳐 남미 무대에서 활약한 수비수로 강력한 몸싸움 능력이 장점이었으며 페어플레이를 중요하게 여기는 선수라 더럽거나 몰상식한 반칙이 난무하던 시대에 저런 반칙을 일절 저지르지 않아 사람들로부터 축구의 신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바스쿠 다 가마에서 두각을 나타낸 오를란두는 대표팀 파트너 일데랄두 벨리니와 함께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아르헨티나의 보카 주니오스로 이적한 뒤에는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고국의 클럽인 산투스로 돌아와서는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4회 우승과 브라질 전국 리그 2회 우승을 이뤄내며 전성기의 한 축을 담당했다.
셀레상에서는 일데랄두 벨리니와 함께 합을 맞춰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 우승을 기여하는 과정에서 4경기 연속 무실점을 이뤄냈으며 1962 칠레 월드컵에서는 아르헨티나에 머물고 있어 소집하지 못했으며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도 참가했다.
9위 오스카르 베르나르지

생년월일: 1954년 6월 20일
A매치 기록: 59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상 파울루
1980년대 남미 최고의 리베로 중 한 명으로 유려한 볼 컨트롤과 반칙을 저지르지 않고 상대로부터 영리하고 깔끔하게 볼을 빼앗아 오는 부분에 능했으며 우수한 수비라인 지휘력은 물론 일명 장거리 크루즈 패스라 불리는 우수한 롱볼 패스로 팀의 빌드업의 시작을 이끌었다.
폰지 프레타에서 처음 이름을 날렸다가 뉴욕 코스모스에서 잠시 북미무대를 거쳐 상 파울루로 이적해 전성기를 누린 오스카르는 트리컬러 파울리스타에서 우루과이 출신의 다리오 페레이라와 함께 당대 남미무대 최고의 센터백 조합을 구성해 활약하며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4회 우승을 이뤄냈고 1986년에는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는 라이벌 에지뉴와의 주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며 중용받았던 오스카르는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무패 3위를 이끌었고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도 에지뉴보다 상대적으로 수비적인 오스카르가 중용되며 황금의 사중주를 받쳐주는 역할을 맡았으나 2차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이탈리아의 파울로 로시에게 해트트릭을 허용해 탈락한 이후에는 에지뉴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려났고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벤치를 지켰다.
8위 에지뉴

생년월일: 1955년 6월 5일
A매치 기록: 45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우디네세
1980년대 남미 최고의 리베로 중 한 명으로 높은 수준의 지능과 수비 기술을 앞세운 영리한 수비로 정평이 났으며 뛰어난 수비라인 지휘 능력은 물론 공격에도 적극 가담해 우수한 킬패스로 득점 찬스를 만드는 부분은 물론 직접 득점에도 능했다
플루미넨시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누린 에진는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3회 우승을 이뤄냈고 전성기를 누린 우디네세에서는 소속팀 전력의 한계로 우승을 이뤄내지는 못했지만 에지뉴의 뛰어난 수비 덕에 빈공에 시달리면서도 1982-83 시즌에 6승 20무 4패라는 기이한 성적으로 세리에 A 6위를 기록했고 당대 최고의 무대라 불리는 세리에 A에서 다니엘 파사레야, 가에타노 시레아와 함께 정상급 리베로로 평가받았는데 그 증거로 에지뉴는 구에린 스포르티보 평점에서 1982-83 시즌과 1984-85 시즌에 리베로 평점 랭킹 2위에 올랐다.
셀레상에서도 오랜 기간 소집되어 활약한 에지뉴는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과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팀의 공수 밸런스 문제로 라이벌 오스카르에 밀려 벤치에 앉았으나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주장 완장을 차며 맹활약해 팀의 최후방에서 머물다가도 뛰어난 전진성을 앞세운 공격 가담으로 페널티 박스에 침투하는 플레이로 16강 폴란드전에서는 공격수 카레카의 패스를 받아 박스 안에서 우수한 페인팅으로 골키퍼와 수비수를 동시에 제친 뒤 득점을 만들어낸 장면은 명장면이라 할만했다.
7위 아우다이르

생년월일: 1965년 11월 30일
A매치 기록: 80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AS 로마
1990년대 브라질을 대표하는 중앙 수비수로 발이 빠르진 않았지만 우수한 전술안과 강력한 힘, 그리고 전투적인 태클로 세리에 A 정상급 수비수로 군림했다
플라멩구에서 1987 시즌 브라질 세리A 우승을 이끌었으며 벤피카를 거쳐 AS 로마에서는 전성기를 누린 아우다이르는 잘로로시 군단에서 1990-91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고 2000-01 시즌에는 칠공주라 불렸던 치열한 시즌임에도 세리에 A에서 우승하는데 큰 공을 세워 구단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그리고 그의 등번호 6년은 10여 년간 영구 결번이었을 정도로 AS 로마 팬들의 사랑과 인정을 받았다.
셀레상에서도 오랜 기간 주전으로 활약한 아우다이르는 1989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시작으로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주춤했으나 1994 미국 월드컵에서 짠물 수비루 우승을 이뤄냈으며 1995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준우승을 이뤄냈고 1997년에 열린 컨페드컵과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을 이뤄냈으며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준우승을 이뤄내는데 셀레상의 센터백 라인이 항상 바뀌는 와중에도 아우다이르는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1990년대 셀레상의 핵심 수비수로 활약했다.
6위 마우루 하무스

생년월일: 1930년 8월 30일
A매치 기록: 28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산투스 FC
1940년대 후반부터 60년대 중반까지 롱런하며 명성을 누렸던 센터백으로 날카로운 태클과 뛰어난 제공권은 물론이고 우수한 수비 라인 지휘 능력으로 수비 라인의 리더로 팀의 수비를 이끌었다.
상 파울루와 산투스에서 모두 뛰어난 퍼포먼스를 선보인 하무스는 두 팀에서 개인 통산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9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산투스에서는 전국 리그 5연패는 물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2연패를 기록했고 셀레상에서도 1950년대 셀레상에서는 백업 멤버로 1949 코파 아메리카와 1958 스웨덴 월드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1962 칠레 월드컵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활약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어냈다.
우리 시대의 Ramos가 스페인 대표팀과 레알 마드리드를 당대 최고의 팀으로 끌어올렸다면 1950년대와 60년대에 걸쳐 활약했던 Ramos는 브라질 대표팀과 산투스를 세계 최고의 팀으로 끌어올렸다.
5위 일데랄두 벨리니

생년월일: 1930년 6월 7일
A매치 기록: 51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83kg
주 소속팀: 바스쿠 다 가마
1950년대 브라질을 대표하는 중앙 수비수였으며 선수단에게 인정받은 뛰어난 리더십과 부족한 기술을 근성 있는 집중력과 끈질긴 대인방어를 앞세운 헌신적인 플레이로 팀을 도왔다.
바스쿠 다 가마와 상 파울루에서 전성기를 보냈으며 특히 바스쿠 다 가마에서는 승리의 급행열차라 불리는 팀의 전성기에 활약하며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3회 우승을 이끌었다.
바스쿠 다 가마에서 우수한 활약을 펼친 베우리니는 셀레상에서도 수비의 핵으로 맹활약하며 두 번의 월드컵에서 우승했는데 특히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는 주장 완장을 차고 우승을 이뤄내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도 선정되었다. 지금은 다소 흔한 트로피를 쥐고 머리 위로 들어올리는 셀레브레이션을 최초로 보여준 베우리니의 모습은 지금도 브라질 대표팀의 메인 구장인 마라카냥 스타디움 앞에 동상으로 남아있다.
4위 치아구 시우바

생년월일: 1984년 9월 22일
A매치 기록: 113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파리 생제르맹
2010년대 최고의 센터백 중 하나로 특별한 약점이 없었고 세련된 태클과 훌륭한 수비라인 조율로 후방에서 큰 영향력을 끼쳤던 선수라서 대표팀 선배 호나우두는 그를 두고 "프란츠 베켄바우어의 족적을 따라가는 선수"라는 평가를 내렸다.
초년에는 변방을 떠돌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치아구 시우바는 AC 밀란에서 2010-11 시즌 세리에 우승을 이뤄냈고 세리에 A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되었고 본격적인 전성기를 누린 PSG에서는 리그앙 7회 우승과 팀 역사상 첫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했음은 물론 치아구 시우바 개인으로도 리그앙 올해의 팀에 7회 선정되었다. 말년에 이적한 첼시에서도 수비라인의 퀄리티를 올리며 2021-22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공헌했으며 UEFA 올해의 팀에 개인 통산 3회 선정되었다.
셀레상의 암흑기에도 굳건하게 좋은 모습을 보여준 치아구 시우바는 2014 브라질 월드컵 4강을 이끌었으며 그가 빠진 경기에서 브라질은 독일에게 7-1로 대패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중용받으며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2019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우승에 기여해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3위 루이스 페헤이라

생년월일: 1949년 6월 21일
A매치 기록: 32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파우메이라스
1970년대를 호령한 스토퍼로 강하면서도 최적의 타이밍에 들어오는 태클은 상대 공격수들을 괴롭혔다. 수비라인 지휘 능력도 우수했으며 볼을 탈취한 이후에 역습을 주도하는 능력도 뛰어났다.
동갑내기였던 이메르송 레앙, 레이비냐와 함께 1970년대 초반, 제2의 아카데미아, 불멸의 소대라 불렸던 파우메이라스 구단 제2의 황금기를 이끈 루이스 페헤이라는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3회 우승 및 브라질 세리 A 2회 우승을 포함해 국내외의 크고 작은 대회에서 12회의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도 상승세를 이어가며 코파 델 레이와 라리가 우승에 공헌하며 월드 카서지 선정 월드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다.
셀레상 유니폼을 입고도 공격진이 무너진 상황에서 짠물 수비를 보여주며 공격수들에게 악명을 떨쳤던 루이스 페헤이라는 1974 서독 월드컵 준결승 진출에 크게 공헌했는데 그 덕분에 1974년 남미 올해의 선수 투표에서 4위에 올랐으며 1975년과 1976년에도 각각 5위에 올랐다.
2위 루시우

생년월일: 1978년 5월 8일
A매치 기록: 105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월드컵과 챔피언스리그를 모두 핵심 선수로 제패한 경험이 있는 2000년대 최고의 센터백 중 한 명으로 강력한 피지컬을 앞세워 거친 플레이와 전진 드리블과 전진 패스를 활용한 빌드업, 그리고 지능적이며 신속한 인터셉트와 뛰어난 공중전 능력과 위협적인 프리킥까지 겸비한 완벽한 수비수였다,
21세기 분데스리가 최고의 수비수로 이름을 날렸던 루시우는 2001-02 시즌 레버쿠젠에서는 트리플 준우승을 달성했는데 결승전에서도 비록 졌지만 득점을 기록하는 등 놀라운 퍼포먼스를 선보여 ESM 올해의 팀에 들었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19위에 올랐다. 이를 바탕으로 이적한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분데스리가 3회 우승을 이뤄냈고 2005-06 시즌에는 우수한 퍼포먼스로 ESM 올해의 팀에 들었다. 그리고 2009-10 시즌에는 인테르로 이적해 트레블을 이뤄내며 ESM 올해의 팀에 들어 세 개의 소속팀에서 모두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는 위대한 기록을 세웠다.
셀레상에서도 주장을 역임하며 브라질 대표팀 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루시우는 월드컵에 세 번, 컨페드컵에 네 번 참가했는데 특히 2002 한일 월드컵 우승과 두 번의 컨페드컵 우승을 이끌었는데 2009년에는 팀의 주장으로 우승하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1위 도밍구스 다 기아

생년월일: 1912년 11월 19일
A매치 기록: 30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플라멩구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 수비수 중 하나로 훌륭한 수비 기술과 강한 피지컬을 물론 그 당시 수비수로서는 드물게 훌륭한 발 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활용해 오히려 상대 공격수를 농락하기도 했다.
브라질 무대의 바스쿠 다 가마와 플라멩구에서 전성기를 보낸 도밍구스 다 기아는 개인 통산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4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33년에는 우루과이의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당대 최고의 수비수 호세 나사치와 조합해 우수한 수비력을 펼쳐 팬들로부터 신성한 마스터라 불렸으며 아르헨티나의 보카 주니어스에서도 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셀레상에서도 대체 불가능한 센터백이었던 도밍구스 다 기아는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 셀레상의 준결승 진출에 크게 공헌했으며 해당 대회에서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이후 1945년에 열린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팀은 준우승에 그쳤지만 본인은 MVP를 수상 받으며 대회 최고의 선수로 공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