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Top 21~30

국가의 영웅들/브라질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Top 21~30

토르난테 2025. 3. 11.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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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일은 2025년 3월 11일 기준입니다.

 


30위 단치

 



생년월일: 1983년 10월 18일
A매치 기록: 13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9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2010~20년대 독일과 프랑스 무대에서 명성을 떨친 왼발잡이 센터백으로 부드러운 발밑을 바탕으로 한 정확한 왼발 롱패스로 전방으로 한 번에 찔러주며 수비 국면에서 단번에 공격 국면으로 전환시키는데 능했고 탄탄한 피지컬과 판단력을 바탕으로 한 수비력과 큰 키에 뛰어난 헤더 스킬과 위치 선정을 바탕으로 세트피스 상황에서 득점을 만들어내는 능력 역시 탁월했지만 느린 스피드와 민첩성에서 약점을 보이며 대성하지는 못했다.

초년에는 벨기에 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냈다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2011-12 시즌 VDV 일레븐과 키커 올해의 팀에 선정되며 바이에른 뮌헨의 간택을 받았던 단치는 2012-13 시즌 바이에른 뮌헨의 트레블을 이끌며 ESM 올해의 팀, VDV 일레븐, 그리고 키커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이후에도 마이스터샬레를 2개 추가했으나 펩 체제에서 잘 맞지 않아 베나티아와의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며 팀을 떠났는데 OGN 니스에서 반등에 성공해 10년 가까이 활약하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다만 브라질 대표팀에서의 활약은 다소 아쉬운데 바이에른 뮌헨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2014 브라질 월드컵에 소집되어 쭉 벤치를 지키다가 주전인 치아구 시우바가 경고 누적으로 결장한 뒤인 4강전에 선발로 출장하게 되는데 하필이면 그 경기에서 파트너 다비드 루이스와 마르셀루가 최악의 폼을 보이자 단치도 함께 무너지며 독일에게 7-1로 대패했고 이 경기 이후로 단치는 브라질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다.

 

29위 마르시우 산투스

 



생년월일: 1969년 9월 15일
A매치 기록: 43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SC 인테르나시오나우

1990년대 브라질과 프랑스에서 명성을 떨친 고전파 센터백으로 기술적으로는 돋보이지 않았지만 강건한 어깨힘과 날카로운 태클을 앞세워 상대 공격수들을 막아내는 도살자와 같았던 스타일이었다.

여러 클럽을 떠돌아다녔던 저니맨 산투스는 인테르나시오나우에서 첫 전성기를 누리며 1991년 캄페오나투 가우초 우승을 이뤄냈고 마르시우 산투스 개인도 1991년 볼라 지 플라와 플라카르 선정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고 지롱댕 보르도와 피오렌티나, AFC 아약스에서도 활약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의 활약이 더 돋보였던 애국자형 수비수 마르시우 산투스는 1991년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을 시작으로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아우다이르와 함께 조국 브라질의 우승을 이끌며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1997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백업으로 우승을 경험했다.

 

28위 루이장

 


생년월일: 1981년 2월 13일
A매치 기록: 46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95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SL 벤피카

21세기 포르투갈 무대를 수놓은 브라질인 수비수로 큰 체구를 앞세워 제공권을 확실하게 장악했으며 우수한 수비라인 지휘력으로 견고한 수비를 이끌었으며 가끔씩 브라질 특유의 드리블로 기습적인 공격 가담을 펼쳤으며 중요한 순간에 세트피스로 득점하는 클러치 능력에도 강점을 보였다.

크루제이루에서 데뷔해 2003년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우승을 이뤄내며 두각을 나타낸 루이장은 벤피카로 이적해 구단 통산 출전 2위를 기록하며 오랫동안 활약했는데 프리메이라 리가 6회 우승과 타사 데 포르투갈 3회 우승을 포함해 20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었으며 유로파리그에서도 결승에 두 번 진출했으나 구트만의 저주를 넘지는 못하고 모두 준우승에 머물렀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는 루시우의 파트너 자리를 두고 주앙과 경합을 펼쳤는데 2004 코파 아메리카에서 주전으로 조국의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결승전에서는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동점골이자 자신의 국가대표 데뷔골을 기록해 승부차기로 끌고 가며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했고 2009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는 루시우와 함께 견고한 수비라인을 형성해 우승을 이뤄냈으나 월드컵에서는 항상 벤치를 지켰다.

 

27위 주앙

 


생년월일: 1979년 2월 1일
A매치 기록: 79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AS 로마

2000년대 중후반, 독일과 이탈리아 무대에서 명성을 떨쳤던 센터백으로 체구는 큰 편이 아니었고 몸싸움도 아주 강하지는 않았지만 스피드가 빠르고 수비에 대한 개념이 우수해 드넓은 지역을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위치로 커버할 수 있었고 발밑과 패싱력도 준수했다.

플라멩구에서 데뷔해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4연패를 이뤄내며 주목받은 주앙은 레버쿠젠으로 이적해 2003-04 시즌에는 팀을 분데스리가 3위로 올려 파트너 루시우와 함께 키커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고 2007-08 시즌에는 AS 로마로 이적해 코파 이탈리아와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을 이뤄냈다. 전성기가 지난 뒤에는 브라질의 인테르나시오나우로 떠나 캄페오나투 가우초 3연패를 이뤄냈으며 친정팀 플라멩구로 돌아간 뒤에는 주립 리그 우승을 2회 더 추가하고 유종의 미를 거두며 은퇴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는 상술한 플레이스타일 덕에 공격적인 루시우와 호흡이 잘 맞아 경쟁자인 크리스, 루이장에 비해 중용받았는데 2004년과 2007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조국의 우승을 이끌며 두 대회에서 모두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2005년과 2009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도 우승을 경험했다. 그러나 2006 독일 월드컵과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했음에도 8강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26위 치코 포르미가

 



생년월일: 1930년 11월 11일
A매치 기록: 18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FC 산투스

1950년대 산투스의 약진을 이끈 수비자원으로 뛰어난 대인 수비와 적절한 수비라인 커버로 명성을 날렸으며 1957년 산투스를 처음 떠나 파우메이라스로 이적했을 때 당시 브라질 축구계 최고 이적료로 이적한 이력이 있는 수비수였다.

산투스에서 데뷔해 선수생활의 대부분을 보낸 포르미가는 엘비오와 수비라인을 구성해 활약하며 산투스에서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5회 우승과 브라질 전국리그 2연패를 이뤄냈으며 말년인 1962년에는 물고기 군단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지역리그와 전국리그는 물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 우승도 이뤄내며 4관왕을 이뤄낸 뒤 화려하게 은퇴했다.

브라질 대표팀 소속으로는 주로 2진으로 활약햇는데 1956 코파 아메리카 4위 및 1959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25위 마르셀루 보르돈

 


생년월일: 1976년 1월 7일
A매치 기록: 1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9cm / 몸무게 90kg
주 소속팀: FC 샬케 04

2000년대 분데스리가 정상급 센터백 중 한 명이었으며 탁월한 운동능력에서 나오는 강력한 태클과 수비라인을 아우르는 리더십과 수비 조율 능력을 겸비하며 팀의 리더로 활약했는데 모범적인 태도와 기복없는 스타일로 팬들과 동료들의 존경을 받았다.

상파울루에서 데뷔해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전성기를 누린 보르돈은 슈투트가르트로 이적해서는 유치원이라 불렸던 팀의 수비라인의 리더로 활약하며 UEFA 인터토토컵 2회 우승을 이뤄냈고 2001-02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2002-03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준우승을 이뤄냈다.

샬케에서는 특히 전성기를 누리며 팬들의 사랑을 받은 보르돈은 하피냐, 크르스타이치, 판더 또는 코비아슈빌리와 함께 2000년대 로얄 블루스 버전의 철의 포백이라 불리는 수비라인을 이끌었는데 이 수비라인은  여섯 시즌 중 무려 네 시즌이나 분데스리가 최소 실점을 달성했으며 두 번의 분데스리가 우승과 2004 UEFA 인터토토컵과 2005 리가포칼 우승을 이끌었다.

샬케의 명예의 오두막에 헌액된 보르돈은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에 슈투트가르트 소속으로 1회, 샬케 소속으로 4회 선정되며 총 5회 선정되었고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무려 9회 선정되는 등 당대 분데스리가 최정상급 수비수로 군림했다. 그러나 이런 훌륭한 실력을 가졌음에도 브라질 대표팀과는 인연이 없어 2004 코파 아메리카에서 백업으로 우승을 경험한게 전부였다.

 

24위 아마랄

 


생년월일: 1954년 12월 25일
A매치 기록: 56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과라니

19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 브라질 무대에서 이름을 떨쳤던 수비수로 키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흑인 특유의 탄력을 앞세운 운동능력으로 이를 극복했는데 뛰어난 점프력으로 제공권 경합에서 크게 밀리지 않았으며 단단한 수비력과 적절한 커버 플레이, 그리고 우수한 수비라인 지휘 능력을 바탕으로 명성을 쌓았고 빌드업 방식은 롱패스보다는 직접 드리블로 볼을 전방으로 몰고 가서 전개하는 부분을 선호했다.

상파울루 주의 여러 팀에서 활약한 아마랄은 과라니에서 데뷔해 브라질 정상급 수비수이자 과라니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비수의 반열에 올랐으며 1975년에는 브라질 전국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코린치안스로 이적해서는 골키퍼 하이로, 포백 라인의 제 마리아, 마우로, 블라디미르, 그리고 수비형 미드필더의 카사파바와 함께 '검은 벽'이라 불리는 수비라인을 형성해 활약하며 1979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우승을 이뤄냈으나 산투스 이적 후에는 기량이 떨어지며 백업으로 밀렸다.

과라니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소집되어 오스카르 베르나르지와 함께 주전으로 활약한 아마랄은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는 무패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회방식의 문제로 3위에 그쳤고 1979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3위를 기록했다.

 

23위 조지무

 



생년월일: 1932년 6월 19일
A매치 기록: 35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65kg
주 소속팀: 방구

1950년대 브라질 무대 정상급 수비수로 신체적으로 강하진 않았지만 우수한 수비 스킬과 적절한 위치를 선점해 상대를 제압했으며 발밑이 좋아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도 잘 수행했다.

히우 데 자네이루 주에 소속된 방구에서 활약한 조지무는 토르네오 인시오 두 리우 데 자네이루 1회 우승 및 토르네오 인시오 두 리우-상파울루에서 1회 우승했으며 전성기가 지난 뒤 플라멩구로 이적해서는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1회 우승을 이뤄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꽤 중용받은 조지무는 1957 코파 아메리카에서 준우승을 이뤄냈고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는 백업으로 우승을 경험했으며 1962 칠레 월드컵에서는 마우루 하무스와 함께 주전으로 활약하며 우승을 이끌었다.

 

22위 마우루 가우방

 



생년월일: 1961년 12월 19일
A매치 기록: 24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SC 인테르나시오날

1980년대~90년대에 브라질 무대에서 군림한 이탈리아식 리베로로 공격력이 우수한 편은 아니었지만 탄탄한 자기관리를 바탕으로 기복이 적었고 엄청난 안정감을 선보였는데 특히 우수한 수비라인 지휘 능력과 탄탄한 대인 수비, 그리고 완벽한 커버 플레이로 상대 공격수를 곤란하게 했다. 게다가 1979년, 1985년, 그리고 1997년에 브라질 세리 베스트 일레븐에 각각 선정되었을 정도로 롱런했다.

인테르나시오나우에서 데뷔해 첫 전성기를 누린 가우방은 1979년 브라질 세리 A 우승을 이뤄낸 공을 인정받아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된 것을 시작으로 히우그란지두술 주에서도 라이벌 그레미우를 제치고 캄페오나투 가우초 4연패를 이뤄냈으며 방구에서는 1987년 타사 히우 우승을 이뤄냈고 보타포구에서는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2연패를 이뤄냈다.

스위스의 루가노에서도 1992-93 시즌 스위스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노장이 되어 브라질로 돌아온 뒤에도 그레미우에서 1996년 브라질 세리 A 우승을, 바스코 다 가마에서도 브라질 세리 A 2회 우승 및 1998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견인했는데 그 과정에서 1997년에는 브라질 세리 A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는 1984 LA 올림픽을 시작으로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백업으로 활약했다가 안정적인 수비를 중요시했던 세바스티앙 라자로니가 감독으로 부임하자 그의 5-3-2 포메이션의 리베로 역할을 맡아 1989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냈으나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16강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으며 대표팀 소집이 끊겼다.

 

21위 다비드 루이스

 



생년월일: 1987년 4월 22일
A매치 기록: 57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89cm / 몸무게 86kg
주 소속팀: 첼시 FC

2010년대 유럽 무대를 풍미한 수비수로 우수한 피지컬과 발 기술, 그리고 빼어난 킥 능력이 돋보이는 볼 플레잉 디펜더로 패싱 센스가 좋아 빌드업 기점 역할도 곧잘 수행하며, 후방에서 전방으로 한 번에 찔러주는 과감한 다이렉트 롱패스로 경기 흐름을 바꾸기도 했으며 뛰어난 제공권 경합 능력에서 나오는 헤더도 위협적이지만 집중력이 낮고 수비 지능이 높지는 않아서 불안한 모습도 보여줘 파트너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벤피카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전 유럽의 주목을 받은 다비드 루이스는 첼시에서 세계적인 센터백으로 도약하며 2011-12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2012-13 시즌과 2018-19 시즌 유로파리그 우승, 그리고 2016-17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을 세워 PFA 올해의 팀과 ESM 올해의 팀에 들었고 파리 생제르맹에서는 리그앙, 쿠프 드 프랑스, 그리고 쿠프 드  라 리그, 트로페 데 샹피옹을 모두 2년 내내 우승하며 2회 연속 도메스틱 쿼트레블을 기록했고 다비드 루이스 개인도 리그앙 올해의 팀에 2회 연속으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아스날에서는 2019-20 시즌 FA컵 우승을, 플라멩구에서는 2022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뤄냈다.

셀레상에서도 2011 코파 아메리카에서 데뷔한 다비드 루이스는 2012년 이후로는 치아구 시우바와 함께 주전으로 활약하며 2013 컨페드컵 우승을 이뤄냈고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조국이 준결승에 올리는데까지 공헌했으나 준결승전에서 독일에게 7-1 대패의 원흉이 되며 그간의 공적은 잊혀지고 큰 비난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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