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페슈트 FC 역대 베스트 일레븐

클럽 올스타 짜보기/Central Europe

우이페슈트 FC 역대 베스트 일레븐

토르난테 2025. 1. 2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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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컨텐츠 제작 시간에 대한 부담으로 우선 베스트 일레븐부터 올리고 서브 멤버는 추후 채워나가는 방식으로 할 예정입니다.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에펨네이션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스텟기준은 2025년 1월 21일 기준

 


우이페슈트 FC (Újpest FC)

 

창단: 1885년 6월 16일

소속리그: 헝가리 넴제티 버이녹샤그

연고지: 헝가리 부다페스트 우이페슈티구

홈구장: 주자 페렌츠 슈터디온

헝가리 넴제티 버이녹샤그: 20회 우승

넴제티 바이녹사그 II: 2회 우승

마자르 쿠파: 11회 우승

리가 쿠파: 3회 우승

마자르 수퍼르 쿠파: 3회 우승

유러피언 컵 /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1회 (1973-74)

UEFA 컵 위너스컵: 4강 1회 (1961-62)

미트로파컵: 2회 우승 (1929, 1939)

인터시티 페어스컵: 1회 준우승 (1968-69)

 


베스트 11

 

골키퍼

 

 

이름: 젱트미하이 언털
출생년도: 1939년 6월 13일
포지션: 골키퍼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8kg

활약 기간: 1965~1974
통산 기록: 283경기 0골

 

1960년대 헝가리를 대표하는 골키퍼로 평가받았으며 냉정침착한 성격으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는데 특히 상대 공격수와의 일대일 상황에서의 깔끔한 선방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우이페슈트 도사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헝가리 대표팀 주전 골키퍼까지 올라선 젱트미하이는 팀을 넴제티 버이녹샤그 6회 우승 및 마자르 쿠파 2회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역할을 하며 우이페슈트 도사 왕조를 세우는데 큰 역할을 했다.

 

 

센터 하프

 

 

이름: 주치 샨도르
출생년도: 1921년 11월 23일
포지션: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85kg

활약 기간: 1944~1951
통산 기록: 130경기 16골

 

1940년대 정상급 센터하프로 센터 포워드를 상대하는 대인 수비 능력이 특히 뛰어났으나 세베슈 구스타브가 로란트 줄라를 더 중용한 사실을 가지고 추론했을 때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하는 빌드업 능력은 상대적으로 뛰어나지 않았던 걸로 추정된다.

솔로크에서 데뷔해 약체라 불리던 팀을 데리고 1940-41 시즌 마자르 쿠파 우승에 큰 공을 새우며 주목받았던 주치 샨도르는 우이페슈트 도사에서는 넴제티 버이녹샤스 3연패를 이뤄내며 1940년대 헝가리를 대표하는 센터하프로 성장하며 대표팀에서도 수비라인의 에이스로 군림했다.

그러나 주치 샨도르는 유명 가수 에르지 코바치와의 불륜으로 인해 헝가리를 탈출해 인근의 자유주의 국가인 오스트리아로 망명할 계획을 세웠으나 준비가 허술한 탓에 정부에 의해 발각되었고 경찰 신분이었기에 국가와 당을 배신했다는 변절죄와 탈영죄를 동시에 적용받아 사형을 선고받았으며 푸스카스 페렌츠, 보직 요제프, 수서 페렌츠의 탄원에도 불구하고 결국 1951년 6월 4일, 주치 산도르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라이트 풀백

 

 

이름: 휘글 카로이
출생년도: 1895년 1월 19일
포지션: 센터백, 라이트백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3kg

활약 기간: 1914~1930
통산 기록: 249경기 15골
(확인된 최소값)

 

1920년대 유럽 최고의 라이트 풀백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날린 수비수로 우수한 대인 수비 능력과 적절한 커버 플레이로 유명했고 수비 진영을 진두지휘하는 수비라인의 리더였음은 물론 터프한 태클로 상대 공격수를 제압하는 부분에도 능숙했다.

우이페슈트에서 전성기의 대부분을 보낸 휘글 카로이는 헝가리 대표팀과 소속팀 우이페슈트에서 동생인 휘글 요제프와 함께 수비조합을 갖춰 호흡을 맞췄는데 서로 형제지간이었던 탓에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유명했는데 세간에서는 이를 두고 휘글 게이트라고 불렸으며 그 어떤 공격수도 쉽사리 뚫지 못하는 유럽 최고의 관문이라고 칭송받았다.

비록 휘글 카로이는 오르트가 주력이 된 MTK와 타카시 요제프와 투러이 요제프를 앞세운 페렌츠바로시의 강세에 막혀 오랫동안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1929년 미트로파컵에서 유럽의 강호인 스파르타 프라하, 라피트 빈, 그리고 슬라비아 프라하를 상대로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1929-30 시즌에는 백업 멤버로 첫 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레프트 풀백

 

 

이름: 휘글 요제프
출생년도: 1897년 8월 14일
포지션: 센터백, 레프트백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7kg

활약 기간: 1918~1931
통산 기록: 295경기 8골
(확인된 최소값)

 

1920년대 유럽 최고의 레프트 풀백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날린 수비수로 우수한 대인 수비 능력은 물론이고 우수한 왼발 킥력도 겸비하며 데드볼을 전담하기도 했다.

선수생활을 우이페슈트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인 휘글 요제프는 헝가리 대표팀과 소속팀 우이페슈트에서 동생인 휘글 요제프와 함께 수비조합을 갖춰 호흡을 맞췄는데 서로 형제지간이었던 탓에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유명했는데 세간에서는 이를 두고 휘글 게이트라고 불렸으며 그 어떤 공격수도 쉽사리 뚫지 못하는 유럽 최고의 관문이라고 칭송받았다.

비록 요제프 카로이는 오르트가 주력이 된 MTK와 타카시 요제프와 투러이 요제프를 앞세운 페렌츠바로시의 강세에 막혀 오랫동안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1929년 미트로파컵에서 유럽의 강호인 스파르타 프라하, 라피트 빈, 그리고 슬라비아 프라하를 상대로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고 말년에 버셔시로 떠난 형과 다르게 계속 우이페슈트에 남아 1929-30 시즌과 1930-31 시즌에도 주축으로 활약하며 넴제티 버이녹샤그 2연패를 이뤄냈다.

 

 

라이트 하프

 

 

이름: 쉬츠 죄르지
출생년도: 1912년 3월 12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센터백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7kg

활약 기간: 1932~1940
통산 기록: 187경기 5골

 

1930년대 헝가리 무대에서 위명을 떨치던 하프백으로 우수한 제공권 경합 능력을 바탕으로 헤딩 클리어링에 능했고 양발을 모두 잘 썼기에 정확한 양발 패스로 후방에서 경기를 풀어주는 역할 역시 능숙하게 소화했기에 오늘날의 후방 플레이메이커와 같은 역할에도 능숙했다.

선수 생활을 우이페슈트 도사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인 쉬츠는 설러이 언털과 함께 견고한 중원라인을 형성하며 넴제티 바이녹사그 4회 우승 및 4회 준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워 구단의 첫 전성기를 이끌었는데 특히 1939년에는 리그에 이어 미트로파 컵을 동시에 우승했는데 결승전에서는 헝가리 무대의 패권을 두고 다투던 라이벌 페렌츠바로시를 상대로 홈과 원정에서 도합 6-3 대승을 이끌었다.

 

 

레프트 하프

 

 

이름: 설러이 언탈
출생년도: 1912년 3월 12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2kg

활약 기간: 1930~1940
통산 기록: 178경기 2골

 

1930년대 헝가리 무대에서 위명을 떨치던 하프백으로 볼을 받기 최선의 위치를 선정했고 본인 역시 정확한 패싱력을 바탕으로 팀의 볼 점유율을 높이는데 공헌했고 테크닉도 뛰어나 상대 하프백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았다. 그리고 투지 역시 강해 드넓은 범위의 수비라인을 적극적으로 커버했다.

선수 생활을 우이페슈트 도사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인 설러이는 후방 플레이메이커로 알려진 쉬츠 죄르지를 보좌하며 넴제티 바이녹사그 4회 우승 및 4회 준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첫 전성기를 이끌었다. 1935년에는 헝가리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1939년에는 리그에 이어 미트로파 컵을 동시에 우승했는데 결승전에서는 헝가리 무대의 패권을 두고 다투던 라이벌 페렌츠바로시를 상대로 홈과 원정에서 도합 6-3 대승을 이끌었다.

 

 

공격형 미드필더

 

 

이름: 젱겔러 줄라
출생년도: 1915년 12월 27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포워드,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3kg

활약 기간: 1936~1947
통산 기록: 350경기 415골
비공식전 포함 통산 기록: 551경기 747골

 

1930년대 후반과 1940년대 헝가리를 대표하던 공격수로 기술적인 드리블 실력과 정확한 패스를 바탕으로 동료들과 연계 능력도 뛰어났음은 물론 시즌 50골을 두 번이나 넘었을 정도로 압도적인 득점력을 자랑했다.

우이페슈트 구단 통산 득점 3위에 랭크된 젱겔러는 우이페슈트 도사의 첫 전성기를 이끌며 버이녹샤그 4회 우승을 이뤄냈고 젱겔러 개인도 헝가리 넴제티 버이녹샤그 득점왕을 5회 수상했다. 그리고 1939년과 1945년에는 헝가리를 넘어 유럽 리그 최다 득점자로 이름을 올렸다.

특히 1938-39 시즌에는 정규리그와 미트로파컵 우승은 물론 젱겔러 개인도 32경기에 나와 65골을 기록하는 경악스러운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넴제티 버이녹샤그와 미트로파컵에서 모두 득점왕에 올랐다. 그러나 1947년에 조국의 공산화에 반대하며 이탈리아로 떠나 우이페슈트에서의 생활이 마감되었다.

 

 

라이트윙

 

 

이름: 베네 페렌츠
출생년도: 1944년 12월 17일
포지션: 라이트윙, 포워드, 스트라이커, 레프트윙
신체조건: 키 171cm / 몸무게 70kg

활약 기간: 1961~1978
통산 기록: 600경기 431골
비공식전 포함 통산 기록: 868경기 837골

 

플로리안 알베르트와 함께 1960년대 헝가리 축구를 대표하던 전설적인 윙어로 오프 더 볼 상황에서 움직임이 뛰어나 공간 활용을 잘하며 동료들을 활용하며 파괴적인 득점력을 보여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비슷한 유형의 선수였다.

우이페슈트 도사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구단 통산 최다 출전 및 통산 득점 2위를 기록한 베네는 구단의 황금기를 이뤄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넴제티 버이녹샤그 8회 우승 및 마자르 쿠파 3회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유럽 무대에서도 1961-62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준결승 진출 및 1968-69 시즌 인터시티 페어스컵 준우승, 그리고 1973-74 시즌에는 팀을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 올렸다.

우이페슈트에서만 통산 800골 이상을 득점한 베네는 알베르트 플로리언과 함께 1960년대 헝가리 축구의 아이콘으로 군림하면서 개인으로도 수많은 영광을 누렸는데 넴제티 버이녹샤그 득점왕 6회, 헝가리 올해의 선수 2회 수상이라는 업적을 세웠고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노미네이트 6회 선정 및 1966년에는 6위에 올랐고 동독의 ADN이 선정한 동유럽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레프트윙

 

 

이름: 페테르 사보 가보르
출생년도: 1902년 10월 14일
포지션: 레프트윙
신체조건: 미상

활약 기간: 1926~1934
통산 기록: 160경기 96골

 

1920년대 후반~30년대 초반 헝가리 무대를 호령한 정상급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스피드가 빨랐는데 특히 볼에 대한 반응속도가 빨라 스루패스를 완벽하게 받아내며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을 만든 뒤에 침착하게 마무리하는 플레이에 능했으며 페널티킥에서도 강점을 보였다.

우이페슈트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보낸 가보르는 아바르 이스테반과 함께 팀의 공격의 주축으로 활약하며 1929년 미트로파컵에서 당대 유럽 정상급 클럽인 스파르타 프라하, 라피트 빈을 연파하고 결승전에서도 슬라비아 프라하를 홈과 원정에서 7-3으로 제압하고 우승했는데 그 과정에서 각각 1골씩 기록하며 우승에 큰 공을 세웠고 1930년에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대회 쿠프 드 나시옹 결승에서도 또다시 슬라비아 프라하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헝가리 무대에서도 3인자의 설움을 덜어내는데 큰 역할을 한 가보르는 1929-30 시즌에 이뤄낸 구단 역사상 첫 리그우승을 포함해 넴제티 버이녹샤그 3회 우승을 기록했다.

 

 

스트라이커

 

 

이름: 수서 페렌츠
출생년도: 1923년 12월 1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78cm

활약 기간: 1940~1961
통산 기록: 512경기 452골
비공식전 포함 통산 기록: 795경기 902골

 

1940~50년대 헝가리 축구 황금기에 활약했던 스트라이커로 이름이 같은 데아크 페렌츠와 유사하게 엄청난 득점력으로 유명했는데 양발과 머리를 모두 활용해 득점했는데 적어도 페널티 박스 안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고 전해진다.

선수 생활 전부를 우이페슈트 도사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이자 구단 통산 최다 득점자인 수서 페렌츠는 21년간 우에페슈티에서 군림하며 넴제티 버이녹샤그 4회 우승을 이뤄냈고 수서 개인도 정규리그에서만 393골을 기록했고 공식전에서는 452골을 기록했는데 마찬가지로 동세대에 엄청난 득점력을 선보였던 데아크 페렌츠와는 라이벌이었다.

1947년 헝가리 올해의 축구선수를 수상하며 당대 헝가리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던 수서 페렌츠는 라이벌인 데아크 페렌츠와 함께 고전적인 플레이스타일 탓에 매직 마자르라 불리던 헝가리 대표팀의 최전성기에는 함께하지 못했다.

 

 

스트라이커

 

 

이름: 아바르 이스테반
출생년도: 1905년 5월 28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76cm

활약 기간: 1928~1935
통산 기록: 182경기 205골
비공식전 포함 통산 기록: 359경기 495골

 

루마니아 출신이었으나 헝가리로 귀화해 전성기를 누린 센터포워드로 강력한 피지컬에서 나오는 엄청난 완력과 경이로운 폭발력에서 나오는 순간속도를 겨비해음은 물론 몸을 사리지 않고 수비수와 저돌적으로 경합해 "위험하게 산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초년에는 루마니아에서 활약하다가 헝가리로 귀화한 뒤에 우이페슈트로 이적해 전성기를 누린 아바르는 1929년 즁유럽의 챔피언스리그인 미트로파컵에서 스파르타 프라하, 라피트 빈, 그리고 결승전에서 만난 슬라비아 프라하를 모두 쓰러트리며 우승을 차지했는데 특히 결승전 1차전과 2차전에 모두 골을 기록한 것을 포함해 총 10골을 득점하며 득점왕에 올랐고 이후에는 넴제티 버이녹샤그 4회 우승을 이뤄내며 우이페슈트를 헝가리 무대의 명문으로 성장시켰다.

 

 

감독

 

 

이름: 구트만 벨라

출생년도: 1899년 1월 27일

부임기간: 1938~1939, 1947

 

헝가리와 브라질, 그리고 포르투갈을 돌며 다양한 축구를 경험했으며 이를 토대로 유기적인 스위칭 플레이를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또한 오늘날의 대중적인 수비 전술인 포백 지역방어 시스템을 처음 활용해 브라질의 세계 제패에 간접적으로 기여했던 인물이다.

헝가리와 루마니아의 여러 클럽을 돌아다니다가 우이페슈트에서 첫 전성기를 맞은 구트만은 1939년 넴제티 버이녹샤그와 미트로파컵 우승을 이끌며 구단의 첫 전성기에 방점을 찍었으나 유대인이라는 이후로 제2차 세계대전에 경력이 끊긴 것은 물론 나치에 의해 죽을뻔했지만 탈출했다. 그리고 종전 이후에는 다시 우이페슈트의 감독으로 돌아와 우승을 이뤄낸 뒤에 부다페스트 혼베드의 감독으로 팀의 기틀을 구축하기도 했다.

 



서브 및 리저브 멤버는 다음에 보강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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