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티잔 FK 역대 베스트 일레븐

클럽 올스타 짜보기/UEFA

파르티잔 FK 역대 베스트 일레븐

토르난테 2024. 11. 29.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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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컨텐츠 제작 시간에 대한 부담으로 우선 베스트 일레븐부터 올리고 서브 멤버는 추후 채워나가는 방식으로 할 예정입니다.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에펨네이션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스텟기준은 2024년 11월 29일 기준

 


FK 파르티잔 (FK Partizan)

 

창단: 1945년 10월 4일

소속리그: 유고슬라비아 탑 리그 → 세르비아 수페르리가

연고지: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홈구장: 스타디온 파르티자나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11회 우승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리그: 8회 우승

세르비아 수페르리가: 8회 우승

유고슬라비아컵: 6회 우승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컵: 3회 우승

세르이바컵: 7회 우승

UEFA 챔피언스리그: 1회 준우승 (1965-66 시즌)

미트로파컵: 1회 우승 (1977-78)

 


베스트 11

 

골키퍼

 

 

이름: 밀루틴 쇼슈키치
출생년도: 1937년 12월 31일
포지션: 골키퍼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7kg

활약 기간: 1955~1966
통산 기록: 410경기

 

1960년대 상반기 야신 다음가는 골키퍼로 평가받았던 선수 중 하나로 성실한 훈련 자세로 큰 부상을 입은 뒤에도 빠른 속도로 재활에 성공해 활약했을 정도로 몸 관리를 잘했으며 강력한 완력을 통해 공을 멀리 던지며 빌드업을 이끌기도 했다.

파르티잔에서 데뷔해 구단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의 반열에 오른 쇼슈키치는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4회 우승 및 1956-57 시즌 유고슬라브 컵 우승, 그리고 1965-66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리베로

 

 

이름: 벨리보르 바소비치
출생년도: 1939년 10월 3일
포지션: 리베로, 센터백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4kg

활약 기간: 1939년 10월 3일
통산 기록: 367경기 74골

 

1960년대 후반 세계 최고의 리베로로 '죽기 아니면 살기'라고 불리는 강인한 정신력과 정교한 패싱력을 활용해 빌드업 과정에 크게 기여했고 뛰어난 전술 이해도를 자랑했음은 물론 강력한 리더십으로도 유명했다.

파르티잔에서 데뷔해 잠시 츠르베나 즈베즈다로 떠났다가 반년만에 다시 파르티잔으로 돌아와 활약한 바소비치는 파르티잔의 전성기릉 이끌며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4회 우승을 이뤄냈고 1965-66 시즌에는 낭트, 베르더 브레멘, 스파르타 프라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모두 꺾고 유러피언 컵 결승에 올랐는데 그는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선제골을 득점했지만 70분 대에 두 골을 실점하며 아쉽게 역전패했으며 이후 해외 무대에 도전해 아약스로 떠났다.

즈베즈다에서 돌아오는 과정에서 그의 복귀를 반대했던 사무총장 및 그를 지지하는 유수피 외 몇 명의 선수들과의 파벌 다툼을 벌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AC 밀란과의 경기에서 바소비치가 페루 출신의 수비수 빅토르 베니테스와의 주먹다툼을 벌였고 이로 인해 벤치 클리어링이 벌어졌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난투극으로 인해 파르티잔은 파벌 다툼을 완벽하게 해소하고 팀의 단합을 공고히 했다.

 

 

센터백

 

 

이름: 네나드 스토이코비치
출생년도: 1956년 5월 26일
포지션: 센터백, 라이트백, 레프트백, 리베로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9kg

활약 기간: 1974~1984
통산 기록: 492경기 30골

 

1970년데 후반~80년대 초반 유고슬라비아 무대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키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적절한 위치선정 및 빠른 스피드를 앞세워 수비라인 빈자리를 커버하는데 장기를 드러냈고 축구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수비라인의 전 포지션에서 활약할 수 있었다.

파르티잔에서 데뷔해 10년간 활약한 스토이코비치는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3회 우승 및 1977-78 시즌 미트로파 컵 우승에 큰 공을 세웠으며 스토이코비치 개인도 1978년 유고슬라비아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다. 이후에도 우수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1982년에 미국 뉴저지에서 열린 유럽 올스타 vs 세계 올스타 간 친선전에도 선발되었다.

 

 

라이트백

 

 

이름: 브루노 벨린
출생년도: 1929년 1월 16일
포지션: 라이트백,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라이트윙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68kg

활약 기간: 1951~1962
통산 기록: 463경기 41골

 

1950년대 하반기 유럽 무대에서 명성을 떨친 라이트 풀백으로 다른 풀백들과 비교해 압도적으로 스피드가 빨랐으며 정밀도 높은 롱패스로 필드의 최후방에서 최전방으로 볼을 넘겨 팀 빌드업의 중추 역할을 담당하던 당시로서는 매우 새로운 유형의 수비수였고 축구지능도 우수해 라이트 하프와 아웃사이드 라이트도 겸비할 수 있었다.

선수 생활 전부를 파르티잔에서만 활약한 원 클럽맨 벨린은 파르티잔에 머물며 유고슬라브 컵 3회 우승 및 1960-61 시즌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우승을 이끌었으나 은퇴하고 코치로 재직 중이던 1962년 10월 20일에 베오그라드-자그레브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숨을 거뒀다. 파르티잔의 유소년 아카데미인 벨린-라자레비치-나도베자 유소년 학교는 그와 다른 2명의 선수들을 기념하며 명명되었다.

 

 

레프트백

 

 

이름: 파흐루딘 유수피
출생년도: 1939년 12월 8일
포지션: 레프트백, 라이트백, 센터백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2kg

활약 기간: 1957~1966
통산 기록: 183경기 2골

(유수피의 기록은 정규리그만 밝혀져있음)

 

1960년대 세계 정상급 라이트백이자 레프트백으로 '죽기 아니면 살기'를 플레이 신조로 삼았던 수비수로 격렬하고 거친 수비로 상대 공격수를 잠재우는 파이터형 측면 수비수였다.

1960년대 세계 5대 레프트백으로 평가받았던 유수피는 파르티잔에서 데뷔해 곧바로 팀 수비의 중핵으로 올라서며 유고슬라비아 탑 리그 4회 우승 및 1965-66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이뤄냈는데 이 과정에서 4강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천재로 유명했던 조지 베스트를 완벽하게 막아내기도 했다.

 

 

중앙 미드필더

 

 

이름: 즐라트코 차이코프스키
출생년도: 1923년 11월 24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64cm / 몸무게 66kg

활약 기간: 1946~1955
통산 기록: 391경기 97골

 

1950년대 상반기에 세계 최고의 하프백이라 평가받았음은 물론 한때는 그 평가를 넘어 역대 최고의 하프백 중 하나로 평가받았던 선수로 키가 매우 작았지만 악착같은 정신력과 재빠른 스피드, 그리고 왕성한 활동량과 뛰어난 패싱력을 모두 겸비한 우수한 하프백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국방부에 소속된 FK 파르티잔의 창단 멤버로 활약한 차이코프스키는 초창기 구단의 대약진을 이끄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2회 우승 및 유고슬라브 컵 3회 우승을 이뤄냈다. 이때의 활약을 바탕으로 이탈리아의 언론사 템포는 1954년에 선정한 축구사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그를 선정하기도 했다.

 

 

중앙 미드필더

 

 

이름: 모카 부코티치
출생년도: 1950년 6월 2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포워드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6kg

활약 기간: 1968~1978, 1979~1984
통산 기록: 791경기 339골

 

1970년대~80년대 유고슬라비아 무대를 수놓은 공격형 미드필더로 불확실한 롱패스를 거의 시도하지 않았으나 마법과도 같은 드리블로 상대 수비진을 뚫고 볼을 운반한 뒤에 파이널 서드 지역에서 짧은 킬러패스로 득점 찬스를 만들어내던 플레이메이커였다.

파르티잔 구단 통산 출전 2위 및 구단 통산 득점 4위에 랭크된 부코티치는 마테칼로의 아이들 세대의 전성기를 이끈 선수들이 은퇴하거나 해외로 떠났을 때 데뷔해 1970년대 파르티잔의 전성기를 외롭게 이끌며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3회 우승 및 1977-78 시즌 미트로파컵 우승을 이뤄냈다.

여담으로 1978-79 시즌을 앞두고 잠시 지롱댕 보르도로 떠났고 퍼포먼스도 준수했으나 파르티잔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해 한 시즌만에 다시 파르티잔으로 돌아와 활약하다가 1984년에 은퇴했다.

 

 

라이트윙

 

 

이름: 밀로스 밀루티노비치
출생년도: 1933년 2월 5일
포지션: 라이트윙, 포워드,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7kg

활약 기간: 1952~1958
통산 기록: 213경기 231골

 

1950년대를 수놓은 라이트윙으로 전성기가 짧고 폐 질환으로 꾸준하게 출전할 수 없었지만 전성기 기간에는 민첩한 몸놀림과 창의적인 드리블 돌파와 득점력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레알 마드리드와 인테르가 그를 탐내기도 했다.

파르티잔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누린 밀루티노비치는 데뷔 시즌부터 팀의 주축으로 자리잡아 유고슬라비아 컵 2회 우승에 기여했고 밀루티노비치 개인도 1955-56 시즌, 초대 유러피언 컵 득점왕에 올랐다. 그러나 폐 질환 문제로 1958-59 시즌에는 파르티잔에서 밀려났다.

 

 

레프트윙

 

 

이름: 브란코 제베치
출생년도: 1929년 5월 17일
포지션: 레프트윙, 레프트백, 중앙 미드필더, 센터백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9kg

활약 기간: 1951~1959
통산 기록: 270경기 120골

 

1950년대 유고슬라비아 축구계의 스타 중 한 명으로 축구화를 신고도 100m를 11초에 주파할 수 있는 엄청난 스피드를 바탕으로 상대 측면을 드리블로 초토화시킬 수 있었으며 굉장히 다재다능해 아웃사이드 레프트가 주 포지션이지만 인사이드 포워드, 레프트 하프, 레프트백, 센터백을 모두 무리 없이 소화했으며 특히 레프트백을 맡았을 때에는 뛰어난 임기응변 능력을 바탕으로 한 오버래핑을 보여주기도 했다.

초년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자그레브의 여러 팀을 떠돌다가 파르티잔에서 전성기를 누린 제베치는 파르티잔의 에이스로 군림하며 유고슬라비아 컵 3회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유고슬라비아 내무부의 회유와 본인도 리그 우승을 열망해 츠르베나 즈베즈다로 이적하며 파르티잔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포워드

 

 

이름: 스체판 보베크
출생년도: 1923년 12월 3일
포지션: 포워드,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82kg

활약 기간: 1945~1959
통산 기록: 478경기 425골

 

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 초반에 걸쳐 이름을 날렸던 인사이드 포워드로 우수한 테크닉을 활용한 드리블과 넓은 시야와 우수한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허를 찌르는 패스로 기회를 만들어 동료를 지원하거나 기가 막힌 슈팅으로 직접 득점에도 능한 만능 공격수였다.

파르티잔 구단 통산 최다 득점자에 랭크된 보베크는 센터 포워드로 데뷔해 크로아티아의 여러 팀을 떠돌다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국방부 소속으로 창단된 파르티잔의 창단 멤버로 활약하며 인사이드 포지션으로 바꿔서 당대 유고슬라비아 최고의 선수로 성장하며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2회 우승 및 유고슬라비아 컵 4회 우승을 이뤄내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1952년 컵 결승전에서는 더비 라이벌 츠르베나 즈베즈다와의 맞대결에서 6-0 대승을 이끌었던 보베크는 리그 득점왕을 2회 수상했고 현역으로 활약하던 1955년에는 파르티잔 서포터들이 그를 구단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별로 선정했다.

 

 

스트라이커

 

 

이름: 밀란 갈리치
출생년도: 1938년 3월 8일
포지션: 포워드,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5kg

활약 기간: 1958~1966
통산 기록: 182경기 97골

(갈리치의 기록은 정규리그만 밝혀져있음)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상반기에 이름을 날린 인사이드 포워드로 기술적인 드리블과 섬세한 볼 컨트롤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으며 우수한 신체 밸런스를 활용한 몸싸움과 양발과 머리를 가리지 않는 득점력도 대단해 수비수의 입장에서는 막기 어려운 선수였다.

유고슬라비아 국방부 산하팀인 파르티잔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누린 갈리치는 구단의 황금세대인 소위 '마테칼로의 아이들'의 일원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유고슬라비아 리그 4회 우승 및 1965-66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냈다. 혹자는 그가 1965-66 시즌 도중 군대만 가지 않았더라면 파르티잔이 레알 마드리드를 제치고 빅이어를 들어올렸을 가능성이 있었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감독

 

 

이름: 스피치 일리에스

출생년도: 1902년 2월 2일

재임기간: 1946~1951, 1953, 1954~1955

 

파르티잔 창단 초창기를 전성기로 일군 헝가리 출신의 유대인 감독으로 헝가리에서 시작된 다뉴브 학파의 유기적인 스위칭을 파르티잔에 입혀 훗날 유고슬라비아가 유럽의 브라질이라 불리는 계기를 마련한 인물이기도 했다.

1930년대 후반부터 유고슬라비아 무대에서 잔뼈가 굵었던 스피치는 나치 독일과 그 점령지 및 동맹국에서도 자행된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았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유고슬라비아 공산 정권이 들어선 뒤에 창단된 파르티잔의 감독으로 부임해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2회 우승 및 유고슬라브컵 우승을 이끌었으며 3기 시절에는 1954년 유고슬라브 컵 우승을 추가했다.

여담으로 당대 유고슬라비아 최고의 선수 보벡이 센터포워드에서 방황할 때 그의 포지션을 인사이드 포워드로 변경했는데 이는 유고슬라비아 축구계의 운명을 바꾼 대단한 업적이었다.

 


 


서브 및 리저브 멤버는 다음에 보강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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