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생 독일국적 올스타

국대 올스타 짜보기/스페셜

1940년대생 독일국적 올스타

토르난테 2024. 11. 9.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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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1. 대부분의 건조폼 사진 출처는 에펨네이션에서 활동하는 법정스님의 소유님.

2. 보통의 국가대표팀 컨텐츠와는 다르게 국대활약 비중을 높이지 않고 선수 자체의 위상과 퍼포먼스를 기준으로 선정함. 단 최소한의 밸런스는 맞춤.

3. 서독과 동독을 모두 포함

 


1군

 

골키퍼

 

 

이름: 제프 마이어

생년월일: 1944년 2월 28일
A매치 기록: 95경기 73실점 / 43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20세기 독일 최고의 골키퍼이자 바이에른 뮌헨 통산 출전 1위에 랭크된 마이어는 안칭의 고양이라는 별명답게 날렵한 반사신경과 유연성을 자랑했다.

바이에른 뮌헨의 원 클럽 맨이자 구단 역사상 최다 출전자로 분데스리가 4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3회 연속 우승을 포함해 13회의 우승컵을 들었으며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세 번 수상했고 특히 1975년에는 유러피언 컵 우승 과정에서 크게 기여하며 발롱도르 투표에서 5위를 차지하는 영광을 누렸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안정적인 활약을 펼치며 UEFA 유로 1972 우승, 1974 서독 월드컵 우승, 그리고 유로 1976 준우승을 달성하며 메이저 대회 3회 연속 결승 진출에 성공했으며 마이어 본인도 1974 서독 월드컵에서 대회 최우수 골키퍼로 선정되었다.

 

 

리베로

 

 

이름: 프란츠 베켄바우어

생년월일: 1945년 9월 11일
A매치 기록: 103경기 14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부정할 수 없는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로 수비 라인에서의 자유인을 넘어 전 경기장을 자유롭게 누비는 독일식 리베로의 시조로 서독 대표팀의 전성시대를 열었으며 그리고 당대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바비 찰튼을 지워냈을 정도로 대인 마킹에도 능했다.

상술한 능력을 바탕으로 독일 내에서도 평범한 클럽이었던 바이에른 뮌헨이 독일 최고의 클럽으로 올라서는데 크게 공헌하며 분데스리가와 DFB포칼에서 각각 4회 우승을 달성했고 유럽 대항전에서도 컵 위너스컵 우승을 시작으로 유러피언 컵 3연패를 이뤄냈으며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12회 선정되었다.

베켄바우어의 맹활약은 디 만샤프트에서도 이어졌는데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던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야신을 상대로 중거리 슈팅으로 득점하거나 바비 찰튼을 완벽하게 봉쇄하는 등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월드컵 신인상에 올랐으며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준결승전에서 만난 이탈리아를 상대로 쇄골이 다치는 부상을 입으면서도 풀타임으로 경기를 마치며 철인의 풍모를 보여줬다.

1970년대에 들어서 리베로로 출전한 1972 유로에서는 독일식 리베로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유로 우승을 이끌어 트레블을 이룬 크루이프를 밀어내고 발롱도르를 수상했으며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팀의 우승에 크게 공헌했으나 크루이프에 밀려 월드컵 실버볼을 받았고 1976 유로에서는 팀의 결승행을 이끌었고 비록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대단한 퍼포먼스로 복수의 언론으로부터 대회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 27회는 덤.

 

 

센터백

 

 

이름: 볼프강 베버

생년월일: 1944년 6월 26일
A매치 기록: 53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FC 쾰른

 

분데스리가 초창기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엄청난 완력과 정력적이며 열정적인 대인 수비를 보여주며 황소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견고한 수비력 외에도 안정적인 패싱력과 볼 키핑도 겸비해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도 곧잘 해냈다.

FC 쾰른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로 평가받는 베버는 쾰른에 머무는 동안 분데스리가 2회 우승과 3회 준우승, 그리고 1976-77 시즌 DFB포칼 3회 우승을 이뤄냈고 이 과정에서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 4회 선정 및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는 13회 선정되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60년대 독일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한 볼프강 베버는 1966 잉글랜드 월드컵 결승 진출을 이뤄냈으며 결승전에서도 후반 종료 직전 동점골을 성공시키며 승부를 연장까지 끌고 가는 활약을 보여줬다.

 

 

라이트백

 

 

이름: 베르티 포그츠

생년월일: 1946년 12월 30일
A매치 기록: 96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7kg
주 소속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유럽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백으로 통하며 특히 크루이프마저 완전히 지워버린 발군의 대인 마킹 실력은 당대는 물론 역대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며 팬들로부터 마치 사냥개와 같다고 'Der Terrier'라고 불렸다.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클럽 커리어의 전부를 보낸 원 클럽맨 포그츠는 분데스리가 5회 우승과 UEFA컵 2회 우승, 그리고 1976-77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이뤘던 중심에는 모두 그가 있었으며 1972-73 시즌에는 포칼을 우승하며 황금기를 보냈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맡으며 황금기에 기여한 포그츠는 3회의 월드컵과 2회의 유럽 선수권 대회에 참가했는데 특히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결승전에서 크루이프를 완벽하게 봉쇄하며 숨은 공로자 역할을 했으며 1976 유로와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포그츠 개인도 묀헨글라트바흐와 서독 대표팀에서 활약하는 동안 많은 개인상을 수상했는데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8회 선정되었으며 1971년과 1979년에는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고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노미네이트에 5회 선정되어 10위 안에 네 번 들었으며 1975년에는 발롱도르 4위에 오르며 라이트백 포지션에서는 발롱도르 역대 최고의 순위에 올랐다.

 

 

레프트백

 

 

이름: 베르나르트 디츠

생년월일: 1948년 3월 22일
A매치 기록: 53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MSV 뒤스부르크

 

1970년대 하반기와 1980년대 상반기를 수놓은 분데스리가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로 야생마 같은 빠른 스피드와 지치지 않는 지구력은 물론 기술적으로도 훌륭했는데 공수 밸런스가 우수했으며 훌륭한 포지셔닝은 물론 헤딩 경합에도 능했으며 프로 생활 동안 단 한 장의 레드카드도 받지 않았을 정도로 깔끔한 수비를 선보였다.

뒤스부르크와 샬케에서 활약한 베르나트르 디츠는 소속팀이 좋지 않은 상황에 활약해 우승 커리어는 없지만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7회 선정되며 개인은 당대 최고의 리그에서 정상급 선수임을 확실하게 증명했고 특히 1977년에는 옹즈 몽디알 선정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팀 전력의 한계로 인해 야쉬웠던 클럽 커리어와는 다르게 디 만샤프트에서는 좋은 성과를 낸 디츠는 파울 브라이트너가 독일 축구협회와의 갈등으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뒤 대표팀에 뽑히지 못하자 빠르게 주전 레프트백 자리를 차지했으며 UEFA 유로 1976 준우승과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8강을 이뤄냈으며 UEFA 유로 1980에서는 주장 완장을 차고 팀의 우승을 이끌어냈다.

 

 

수비형 미드필더

 

 

이름: 헤어베르트 빔머

생년월일: 1944년 11월 9일
A매치 기록: 36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1970년대 분데스리가 정상급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평가받았던 선수로 기본기가 뛰어나며 축구 지능이 높아 공수 양면에서 우수한 활약을 펼쳤으며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고 엄청난 활동량으로 유명했으며 팬들 사이에서 'Der Iron Lung' 즉 강철 폐로 불렸다.

선수생활 전부를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보낸 원 클럽맨이자 구단 통산 출전 3위를 기록한 빔머는 분데스리가 5회 우승과 1974-75 시즌 UEFA컵 우승, 그리고 1976-77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에 크게 기여했고 빔머 개인도 1975-76 시즌에는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기도 했다.

디 먄샤프트에서도 UEFA 유로 1972에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한 빔머는 빠른 패스워크의 람바참바 풋볼을 보여주며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하는데 기여하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올랐고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후배 본호프와의 경쟁에서 밀려 백업 멤버로 밀려났으나 유로 1976에서는 본호프와 함께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대회 준우승을 이뤄냈다.

 

 

공격형 미드필더

 

 

이름: 귄터 네처

생년월일: 1944년 9월 14일
A매치 기록: 37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볼프강 오베라트와 함께 1960년대 하반기와 1970년대 상반기를 대표하는 독일 최고의 테너로 역사상 최고의 패스 마스터 중 하나로 손꼽혔을 정도로 패스를 잘해서 패스의 단위를 센티미터 단위로 조절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을 정도로 패싱력이 우수해 "센티미터 패서", "컴퓨터 패서"라 불렸다.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전성기를 보낸 네처는 키커 랑리스테 월드클래스 등급 4회와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 10회를 기록했으며 리그 2연패를 이끌었으나 감독 헤네스 바이스바일러와의 불화로 팀을 떠나게 되는데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마지막 경기인 1972-73 포칼에서는 부상을 핑계로 경기에 출장하지 않으려 했으나 쾰른과 묀헨글라트바흐가 연장에 돌입하자 이제 출전하겠다며 교체 출전하며 결승골을 넣고 팀에게 마지막까지 트로피를 주고 떠났다. 분데스리가를 떠난 뒤에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그 명성을 이어간 귄터 네처는 UEFA 유로 1972에서 그의 뛰어나면서도 창의적인 패스는 람바참바 풋볼에서 중요한 요소였기에 결국 대회를 압도적으로 우승한 뒤 베켄바우어 다음으로 게르트 뮐러와 함께 발롱도르 공동 2위를 수상했다. 다만 월드컵에서는 라이벌 볼프강 오베라트에게 밀려 벤치 신세를 지며 아쉬운 활약상을 보여줬다. 그래도 네처 개인은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7회 선정되었으며 월드 사커지 선정 세계 베스트 일레븐 3회 선정되었다.

 

 

공격형 미드필더

 

 

이름: 볼프강 오베라트

생년월일: 1943년 9월 29일
A매치 기록: 81경기 17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FC 쾰른

 

귄터 네처와 함께 1960년대 하반기와 1970년대 상반기를 대표하는 독일 최고의 테너로 뛰어난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물론이고 왕성한 활동량과 우수한 기동력을 겸비했으며 유사시에는 수비에도 적극 가담했던 현대적인 미드필더였다.

클럽 커리어의 전부를 쾰른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인 오베라트는 1963-64 시즌에 팀을 첫 번째 분데스리가 우승팀으로 만드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이후에도 2회 준우승을 추가로 이뤄냈으며 DFB포칼 결승에도 5회 진출해 2회 우승하며 디 가이스버커가 독일의 명문으로 올라서는데 큰 공을 세웠음은 물론 오베라트 개인도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에 8회 선정되었고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4회 선정되었다.

디 만샤프트에서는 월드컵에서 특히 강한 모습을 보였는데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데뷔해 준우승이라는 성적에 공헌했고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뛰어난 활약을 선보이며 발롱도르 투표에서 5위에 올랐다. 그러나 UEFA 유로 1972 당시에는 기량이 떨어져 명단에서 제외당하는 수모를 겪었으나 절치부심해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다시 주전 자리를 회복하며 특유의 왕성한 활동량으로 팀의 우승을 도왔다. 3번의 월드컵에서 총 59회의 찬스 메이킹을 기록했다.

 

 

라이트윙

 

 

이름: 위르겐 그라보브스키

생년월일: 1944년 7월 7일
A매치 기록: 44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67kg
주 소속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1970년대 상반기 유럽 최고의 라이트 윙 중 한 명으로 빠른 스피드와 지칠 줄 모르는 스테미너를 겸비했으며 상대 수비를 교란하는 드리블 돌파 능력은 물론 우수한 플레이메이킹 능력도 겸비해 공격형 미드필더로서도 우수한 모습을 보여주며 1977-78 시즌 전반기에는 해당 포지션에서 월드클래스 등급을 받으며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도 오르기도 했다.

클럽 커리어 전체를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이었던 그라보브스키는 비록 리가 우승은 이루지 못했지만 DFB 포칼 2회 우승을 이뤄냈고 개인적으로는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8회 선정되었고 1979-80 시즌에는 로타어 마테우스에게 살인태클이라 불릴만한 거친 태클을 당해 은퇴했으나 잔여 시즌동안 그의 몫까지 활약해준 동료들 덕분에 UEFA컵 결승전에서 묀헨글라트바흐를 이기고 우승 트로피를 들고 은퇴할 수 있었다.

서독 대표팀에서도 팀 동료이자 측면 공격 콤비 횔첸바인과 함께 뛰어난 활약을 펼친 그라보브스키는 UEFA 유로 1972와 1974 서독 월드컵을 연속으로 제패했는데 특히 후자의 대회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해 우승 과정에서 큰 공을 세웠다.

 

 

레프트윙

 

 

이름: 유프 하인케스

생년월일: 1945년 5월 9일
A매치 기록: 39경기 14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현세대의 축구 팬들한테는 바이에른 뮌헨의 트레블을 이끈 명장으로 더 유명하지만 현역 시절에는 스트라이커와 레프트윙 두 포지션에서 모두 훌륭한 모습을 보여줬던 공격수였으며 당대 유럽에서 가장 빠르다고 평가받았던 엄청난 순간 스피드와 뛰어난 공간지각 능력을 활용해 상대 수비라인 뒤로 침투해 날카로운 양발 슈팅으로 득점하는 전천후 공격수였다.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와 하노버에서 선수 생활을 보낸 하인케스는 특히 묀헨글라트바흐에서는 분데스리가 3연패를 포함해 분데스리가 4회 우승과 1972-73 DFB포칼 우승, 1974-75 UEFA컵 우승, 그리고 1976-77 시즌 유러피언 컵 결승 진출을 이뤄냈으며 하인케스 개인도 분데스리가 득점왕은 물론 3대 유럽 대항전에서 모두 득점왕에 오른 이력이 있다. 그리고 키커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고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으며 특히 1974-75 시즌의 활약이 대단해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7위에 랭크되었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주전과 백업을 오가며 좋은 활약을 펼친 하인케스는 UEFA 유로 1972에서 게르트 뮐러와 함께 훌륭한 파트너십을 보여주며 팀을 우승시키고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포함되었으나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백업 멤버로 우승을 경험했다.

 

 

스트라이커

 

 

이름: 게르트 뮐러

생년월일: 1945년 11월 3일
A매치 기록: 62경기 68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하나로 빠른 스피드와 화려한 테크닉, 좋은 신체 조건까지 어느 것도 갖추지 못했으나 완벽한 축구 지능과 훌륭한 골감각과 위치 선정, 그리고 동료를 이용하는 영리한 플레이를 펼치며 득점은 물론 도움도 많이 기록했던 완성형 공격수였다.

바이에른 뮌헨에서 데뷔해 선수 생활 대부분을 보낸 게르트 뮐러는 압도적인 득점력을 바탕으로 분데스리가와 DFB포칼 각 4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컵 위너스컵 우승과 유러피언컵 3연패를 이뤄냈고 바이에른 뮌헨 통산 최다 득점자를 비롯해 분데스리가에서 골에 관련된 기록 대부분은 게르트 뮐러의 타이틀이다. 비록 현재는 레반도프스키가 갱신했지만 오랜 시간 동안 한 시즌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했음은 물론 분데스리가 득점왕을 7회 수상했으며 유러피언 컵 득점왕도 4회 수상했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자신의 첫 메이저 대회인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펠레나 자이르지뉴 같은 쟁쟁한 공격수들을 제치고 10골이나 넣으며 득점왕을 수상한 게르트 뮐러는 이때의 활약으로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UEFA 유로 1972에서도 4골로 득점왕에 올랐으며 1974 월드컵 결승전에서는 결승전에서 미헬스와 크루이프의 네덜란드를 상대로 결승골을 기록하며 우승에 방점을 찍었다. 유로와 월드컵을 모두 석권하며 화려하게 국가대표팀을 은퇴했다.

특히 결승전에 강력한 모습을 보이며 13회의 결승전에서 전승을 기록했음은 물론 11골을 득점했으며 그중 결승골 5개를 기록한 대기록을 세운 게르트 뮐러는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4회 선정되었으며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에 8회 선정되었고 국가대표팀과 클럽을 포함해 13회나 득점왕을 수상했으며 1970년에는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감독

 

 

이름: 오트마어 히츠펠트

생년월일: 1949년 1월 12일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주 포메이션: 3-4-1-2

 

독일 분데스리가 역사상 최고의 감독으로 평가받는 인물로 화려함은 다소 부족하지만 굉장히 견고한 독일식 카테나치오 전술에 매우 능통한 인물이었는데 리베로와 공격형 미드필더에게 많은 부분을 맡기는 3-4-1-2 포메이션과 안정감이 우수한 4-4-2 포메이션을 다루는데 능했고 다소 지루하다는 비판을 받았어도 항상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던 승부사였다.

위르겐 클롭과 함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역대 최고의 감독으로 불리던 히츠펠트는 도르트문트의 지휘봉을 잡아 분데스리가 2연패와 1996-97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는데 이때 세리에 A에서 밀려나 도르트문트로 버려지듯 이적한 마티아스 자머, 안드레아스 묄러와 같은 선수들의 잠재력을 만개시켰다. 그러나 도르트문트 구단측은 그를 감독 자리에서 내려와 허울뿐인 기술이사직에 임명했고 그렇게 황금기는 끝났다.

1998-99 시즌을 앞두고 히츠펠트는 바이에른 뮌헨의 지휘봉을 잡았는데 분데스리가 5회 우승과 DFB포칼 3회 우승, 그리고 1998-99 시즌 챔피언스리그 준우승과 1999-2000 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에 이어 2000-01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어냈고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우도 라텍, 유프 하인케스와 함께 바이에른 뮌헨의 명장 3걸로 평가받는데 그중에서도 으뜸으로 평가받았다. 2000년대 이후에는 시대에 뒤처졌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그럼에도 스위스 대표팀에서 안정적인 성과를 냈다.

2008년 독일 올해의 감독 수상자인 오트마어 히츠펠트는 개인으로도 많은 영광을 누렸는데 키커 올해의 감독 6회 선정 및 유럽 시즌의 축구 감독 2회 수상을 이뤄냈는데 특히 1997년에는 IFFHS 세계 최고의 클럽 감독과 월드 사커 올해의 감독, 그리고 유럽 시즌의 축구 감독 및 올해의 축구 감독에 선정되며 4관왕을 수상했고 2000-01 시즌에도 IFFHS 세계 최고의 클럽 감독을 포함해 UEFA 올해의 감독과 유럽 시즌의 축구 감독, 그리고 키커 올해의 감독을 수상해 4관왕을 이뤄냈다.

 

 

1940년대생 독일 올스타 팀 베스트 일레븐

 

 

 


2군

 

골키퍼

 

 

이름: 위르겐 크로아

생년월일: 1946년 10월 19일
A매치 기록: 88경기 75실점 / 37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BSG 작센링 츠비카우

 

동독 축구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로 평가받는 인물로 엄청난 순발력과 신속정확한 판단력에서 나오는 선방 능력은 제프 마이어, 디노 조프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고 전해진다.

소속팀 작센링 츠비카우에서 동독컵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5-76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 4강에 진출하는 등 군계일학의 활약을 펼치며 동독 올해의 선수상을 3회 수상했다.

동독 대표팀 소속으로도 1972 뮌헨 올림픽 동메달, 1974 서독 월드컵 8강, 그리고 1976 몬트리올 올림픽 금메달을 이뤄내는 기염을 토하는 등 뛰어난 기량을 바탕으로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2회 선정되었다.

 

 

리베로

 

 

이름: 클라우스 피히텔

생년월일: 1944년 11월 19일
A매치 기록: 23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65kg
주 소속팀: FC 샬케 04

 

23년의 현역 시절을 이어간 리베로로 프란츠 베켄바우어의 라이벌 중 하나로 평가받았으며 빠른 스피드와 지능적인 위치 선정과 수비 조율은 물론 우수한 볼 테크닉과 교묘하면서도 깔끔한 맨 마킹에 능해 23년의 프로생활 중 그가 받은 레드카드는 단 1장에 불과했다.

샬케에서 선수생활의 대부분을 보낸 피히텔은 비록 분데스리가 우승을 거두진 못했지만 뤼스만과 조합해 두 번의 준우승을 이뤄냈고 1971-72 시즌 DFB포칼 우승을 이뤄냈으며 피히텔 개인도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4회 선정되었다. 그리고 FC 샬케 구단 통산 최다 출전자이자 분데스리가 통산 출전 4위에 랭크된 업적을 인정받아 1999년에 선정된 샬케의 세기의 일레븐 (Jahrhundertelf)에 선정되기도 했다.

대표팀에서는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 주전 수비수로 나서며 디 만샤프트가 3위에 오르는데 공을 새웠으나 이후에는 프란츠 베켄바우어와 역할이 겹치는 불운으로 인해 중용받지는 못했다.

 

 

센터백

 

 

이름: 한스게오르크 슈바르첸벡

생년월일: 1948년 4월 3일
A매치 기록: 44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베켄바우어와 함께 바이에른 뮌헨의 전성기를 이끈 영혼의 파트너로 베켄바우어의 오버래핑을 넓은 커버 능력과 훌륭한 대인 수비력으로 바이에른 뮌헨의 뒷문을 확실히 책임지던 선수였기에 세간에서는 그를 두고 황제의 기사라고 불렀다.

선수 커리어 전부를 바이에른 뮌헨에서만 보낸 슈바르첸벡은 데어 카이저와 함께 팀의 첫 분데스리가 우승과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낸 것을 포함해 분데스리가 6회 우승 및 DFB포칼 3회 우승, 그리고 유러피언 컵 3연패라는 성적을 이뤄냈고 특히 첫 유러피언 컵 결승전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동점골을 기록하며 팀을 재경기로 이끌었고 재경기에서 승리하는 발판을 마련하며 첫 빅이어 획득에 공헌했고 은퇴한 이후에는 구단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황제의 기사로서 데어 카이저 베켄바우어를 보좌한 슈바르첸벡은 UEFA 유로 1972 우승과 1974 서독 월드컵 우승, 그리고 유로 1976 준우승의 대업을 이루는데 공헌했으나 베켄바우어가 대표팀을 은퇴한 뒤로는 슈바르첸벡도 대표팀 주전에서 멀어졌다.

 

 

라이트백

 

 

이름: 클라우스 우르반칙

생년월일: 1940년 6월 4일
A매치 기록: 34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케미에 할레

 

1960년대 유럽무대 정상급 라이트백으로 빠른 스피드와 날카로운 슬라이딩 태클로 상대 윙포워드들을 제압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동독의 중견팀 케미에 할레의 원 클럽맨이며 1963년 동독 언론지에서 세계 베스트 일레븐으로 선정된 이력이 있는 우르반칙은 동독 대표팀 소속으로 1964 도쿄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목에 건 일등 공신으로 평가받아 1964년 동독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축구 실력 이외에도 화재 속 영웅으로도 유명한 우르반칙은 1971년 9월 28일 '질베런 세페르트 호테루 화재 사건' 당시에는 화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구해냈다.

 

 

레프트백

 

 

이름: 호어스트디터 회트게스

생년월일: 1943년 9월 10일
A매치 기록: 66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베르더 브레멘

 

1960년대 중후에 명성을 떨친 견고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한 우수한 대인 마킹 능력으로 인해 철의 다리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수비 지역에서는 좌우 측면과 중앙을 안 가리고 훌륭한 활약을 보여줬다.

선수 생활 대부분을 베르더 브레멘에서 보낸 원 클럽맨이자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 회트게스는 디 그륀바이센의 1964-65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끌었으며 개인적으로도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도 3회 선정되었고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월드클래스 등급 1회,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 14회에 선정되었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베르티 포그츠가 대두하기 이전까지는 주축 멤버로 활약한 회트게스는 1966 잉글랜드 월드컵 준우승, 1970 멕시코 월드컵 3위, 그리고 UEFA 유로 1972 우승을 이끌어내는데 공헌했으며 1974 서독 월드컵에서도 백업 멤버로 우승의 영광을 함께했다.

 

 

수비형 미드필더

 

 

이름: 베른하르트 쿨만

생년월일: 1949년 11월 1일
A매치 기록: 40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FC 쾰른

 

1970년대 하반기에 전성기를 누린 리베로로 한때 프란츠 베켄바우어의 후계자로 거론되었을 정도로 공격력만큼은 뛰어났는데 전방으로부터 활강 드리블로 상대 중원과 수비를 붕괴시키며 우수한 패싱력으로 빌드업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하는 부분은 베켄바우어를 닮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수비형 미드필더도 능숙하게 볼 수 있었다.

쾰른에서 선수생활의 전부를 보낸 쿨만은 1972-73 시즌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며 이름을 알렸고 1977-78 시즌 쾰른의 분데스리가와 DFB포칼 더블 우승을 이뤄냈으며 이후에도 포칼을 두 번 더 우승하는 활약을 펼치며 구단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로 군림했다.

쾰른에서는 뛰어난 활약을 펼쳤지만 디 만샤프트에서는 중용을 받지 못했는데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베켄바우어와 라이너 본호프의 백업 멤버로 대기하며 우승을 경험했고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는 본 포지션이 라이트백인 만프레트 칼츠와의 경쟁에서 밀렸으며 UEFA 유로 1980에서는 울리 슈틸리케의 백업으로 우승을 경험했다.

 

 

공격형 미드필더

 

 

이름: 지크프리트 헬트

생년월일: 1942년 8월 7일
A매치 기록: 41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1960년대 서독을 대표하는 다재다능한 공격 자원으로 빠른 스피드를 활용해 중앙과 측면을 아우르며 폭넓게 움직이며 신속정확하게 배달되는 오른발 택배 크로스와 뛰어난 방향 전환 능력을 겸비해 수많은 득점 찬스를 만들어냈다.

도르트문트에서 레프트윙 로타어 에머리히와 함께 '끔찍한 쌍둥이'라는 공격 듀오로 활약하며 1965-66 시즌 분데스리가 준우승과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내며 활약했고 키커스 오펜바흐와 바이어 위어딩겐에서도 훌륭한 모습을 보이며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다.

서독 대표팀 멤버로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윙어로 활약하며 디 만샤프트의 결승 진출에 공을 세웠고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로테이션 멤버로 활약했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12회 선정되며 꾸준히 좋은 기량을 선보였음을 인정받았다.

 

 

공격형 미드필더

 

 

이름: 하인츠 플로에

생년월일: 1948년 1월 28일
A매치 기록: 39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FC 쾰른

 

1970년대 분데스리가 정상급 플레이메이커로 왕성한 활동량을 앞세워 경기장 곳곳을 누비며 킬패스를 배급해 득점 찬스를 만들었으며 특히 볼 키핑이 우수해 파울을 하지 않고서는 그에게 공을 뺴았는 일은 매우 어려웠다고 전해진다.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쾰른에서 보냈던 플로에는 1977-78 시즌 도메스틱 더블을 포함해 분데스리가 1회 우승과 포칼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플로에 개인도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되었다. 플로어 개인도 1977-78 시즌 전반기에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을 받았고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도 7회 선정되었다.

독일 대표팀에서는 귄터 네처, 볼프강 오베라트, 울리 회네스와 같은 선수들로 인해 오랜 기간 백업 역할을 맡았는데 백업 멤버로 1974 서독 월드컵 우승과 UEFA 1976 유로를 경험했으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는 로테이션 멤버로 활약했다.

 

 

라이트윙

 

 

이름: 라인하르트 리부다

생년월일: 1943년 10월 10일
A매치 기록: 26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FC 샬케 04

 

1960년대 후반과 70년대 전반을 빛냈던 로얄 블루스의 윙어로 뛰어난 테크닉과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훌륭한 드리블 돌파 실력을 자랑하며 스탠리 메튜스를 보는 것 같다고 "스탠"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샬케와 도르트문트에서 모두 맹활약해 베스트팔렌의 왕으로 불리기도 했다.

분데스리가 초창기 최고의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이름을 날린 리부다는 샬케에서 활약하다 도르트문트에서 1965-66 시즌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냈고 1965-66 시즌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된 뒤 다시 샬케로 돌아와서 1971-72 시즌 포칼 우승과 분데스리가 준우승을 이뤄내며 1999년에 샬케의 세기의 일레븐과 명예의 주장으로 선정되었다.

리부다는 디 만샤프트에서는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발탁되었는데 팀의 측면 공격을 이끌며 1골 3도움을 기록해 조국 서독이 준결승에 오르는데 기여했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4회 선정되었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4회 선정되었다.

 

 

레프트윙

 

 

이름: 베른트 횔첸바인

생년월일: 1946년 3월 9일
A매치 기록: 40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4kg
주 소속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그라보브스키와 함께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의 황금 날개진을 구성한 윙어로 인사이드 커터 유형의 선수로 측면에서 중앙으로 치고 들어와 직접 슈팅을 하며 득점을 노리거나 교묘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수의 반칙을 유도해 페널티킥을 유도하는 능력이 대단했다.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의 구단 통산 최다 출전자였던 횔첸바인은 비록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내지는 못했지만 DFB포칼 3회 우승과 1979-80 시즌 UEFA컵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1973-74 시즌 DFB포칼 득점왕과 1976-77 시즌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올랐고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11회 선정되었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영광의 시대를 함께했던 횔첸바인은 조국에서 열린 1974 서독 월드컵에서 주전 레프트윙으로 활약했는데 결승전에서 페널티킥을 유도해 동점을 만드는데 기여하며 역전 우승에 공헌했으며 UEFA 유로 1976에도 참가해 준우승을 거뒀다.

 

 

스트라이커

 

 

이름: 클라우스 피셔

생년월일: 1949년 12월 27일
A매치 기록: 45경기 32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FC 샬케 04

 

1970년대에 전성기를 누린 분데스리가 역대 통산 득점 3위에 랭크된 공격수로 영리한 위치선정과 페널티 박스에서의 감각적인 움직임과 정확한 슈팅을 보여주며 스트라이커로서의 기본기는 당연히 뛰어났으며 무엇보다도 피셔는 독일 축구사를 대표하는 바이시클킥 스페셜리스트로 아예 별명이 미스터 바이시클킥이었을 정도로 바이시클킥에 능했다.

분데스리가 통산 득점 3위에 랭크되었을 정도로 꾸준하게 득점력을 유지한 피셔는 샬케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1971-72 시즌 포칼 우승과 두 번의 분데스리가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냈고 특히 1975-76 시즌에는 29골을 득점하며 게르트 뮐러를 제치고 득점왕에 올랐으며 1999년에 선정된 샬케의 세기의 일레븐과 명에의 주장에 선정되는 등 구단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했으며 이후 쾰른과 보훔에서도 쏠쏠하게 활약했다.

디 만샤프트에서는 게르트 뮐러 은퇴 이후에 주전으로 활약했지만 예선에서는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으나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본선에서는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으며 이후 UEFA 유로 1980에는 소집되지 못했으나 절치부심해 1982 스페인 월드컵 2차 조별 리그에서 다시 주전 자리를 차지하며 팀의 준우승을 이끈다.

 

 

감독

 

 

 

이름: 유프 하인케스

생년월일: 1945년 5월 9일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주 포메이션: 4-2-3-1

 

1980년대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30년 넘게 훌륭한 지도력을 보여준 사령탑으로 시대에 가장 유행하는 전술을 팀의 상황에 맞춰서 최적화하는 부분에 강점을 보였는데 감독 생활 초반에는 스리백 리베로 시스템을 메인 플랜으로 구사했으며 중반에는 사키이즘으로 대변되는 콤펙트한 압박 축구를, 2010년대에는 바르셀로나식 점유율 축구와 독일식 게겐프레싱을 적절하게 혼합해서 활용했음은 물론 로타어 마테우스, 라울 곤살레스와 같은 잠재력이 뛰어난 유명주를 스타 선수로 육성하는 부분에서도 일가견이 있었다.

선수 생활 전성기를 보냈던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코치로 재직하다가 우도 라텍의 뒤를 이어 감독직을 맡았던 하인케스는 비록 묀헨글라트바흐에서 우승을 차지하진 못했어도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며 키커 올해의 감독에 2회 선정되었다.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우도 라텍의 후임으로 지휘봉을 잡았는데 마테우스와 브레메의 이적에도 불구하고 분데스리가 2연패를 이뤄냈다. 그리고 스페인 무대에서도 아틀레틱 빌바오에서는 향후 10년간 팀의 동향이 될 유망주를 여럿 발굴했으며 중소구단이라 평가받는 테네리페에서는 UEFA컵 4강에 진출했다.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정규리그에서는 부진했지만 팀의 일곱 번째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레알 마드리드 감독직을 사임한 이후에는 계속해서 좋지 못한 시절을 보내다가 은퇴했지만 2008-09 시즌 후반에 클린스만이 망친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을 맡아 4승1무를 거두며 분데스리가 2위까지 올렸고 몰락해가던 레버쿠젠에서도 2010-11 시즌 분데스리가 2위를 기록하며 부활시켰다. 그리고  2012-13 시즌에는 축구 종목 역사상 가장 높은 승률을 기록하며 트레블을 이뤄냈는데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는  2010년대 초반 최고의 팀이라 불린 메시와 챠비의 바르셀로나와의 맞대결에서 홈과 원정 도합 7-0으로 대파하는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줬고 결승전에서도 도르트문트에게 승리하며 화려하게 은퇴했다.

트레블을 이뤄내며 화려하게 은퇴한 하인케스는 2013년 피파 올해의 감독상과 IFFHS 선정 세계 최고의 클럽 감독상을 포함해 8개의 매체에서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그러다가 2017-18 시즌에 안첼로티가 경질된 바이에른 뮌헨에 소방수로 부임해 분데스리가 우승 및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DFB포칼 준우승을 이뤄냈는데 챔피언스리그 4강 1,2차전과 DFB포칼 결승전에서는 오심으로 인해 패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훌륭한 임팩트를 보여주며 독일 올해의 축구감독과 VDV 올해의 축구 감독, 그리고 키커 올해의 감독을 수상했으며 2024년에는 독일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1940년대생 독일 올스타 팀 세컨드 일레븐

 

 

 


3군

 

골키퍼

 

 

이름: 노르베르트 니그부어

생년월일: 1948년 5월 8일
A매치 기록: 6경기 2실점 / 4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FC 샬케 04

 

1970년대 제프 마이어와 라이벌리를 구축했던 골키퍼로 특유의 반사신경과 유연성 덕분에 제프 마이어와 마찬가지로 고양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페널티킥 방어에 능해 통산 31번의 페널티킥 상황에서 무려 25번을 막아냈다.

샬케와 헤르타 BSC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며 전성기를 누렸던 니그부어는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으며 후자의 구단에서는 1971-72 시즌 DFB포칼 우승을 이뤄내며 1999년에 선정된 샬케의 세기의 일레븐에 선정되기도 했다.

독일 대표팀에서는 제프 마이어라는 존재로 인해 벤치에 자주 앉아있었으며 백업 멤버로 1974 서독 월드컵 우승을 경험했다. 그리고 니그부어 개인은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15회 선정되었다.

 

 

리베로

 

 

이름: 클라우스디터 질로프

생년월일: 1942년 2월 27일
A매치 기록: 14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VfB 슈투트가르트

 

복싱 선수 출신으로 1960년대에 이름을 날렸던 강력한 센터하프이자 리베로로 강력한 피지컬과 우수한 위치 선정 능력으로 상대 공격수를 집어삼켰고 경기 흐름을 읽는 우수한 전술안과 빠른 스프린트를 활용해 수비라인의 넓은 범위를 커버할 수 있었다.

오베리가 말기와 분데스리가 초기의 슈투트가르트의 수비라인을 이끌며 분데스리가 정상급 수비수로 이름을 날렸던 질로프는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는 공격형 리베로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며 분데스리가 2연패와 1972-73 시즌 포칼 우승을 이끌었으며 같은 시즌에 UEFA컵 결승에도 올랐으나 리버풀에게 1차전에서 3-0으로 패했으며 2차전에서 질로프와 하인케스의 맹활약으로 2-0까지 따라붙었지만 결국 준우승에 머물렀다.

 

묀헨글라트바흐와 슈투트가르트 두 팀에서 도합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10회 선정된 질로프는 디 만샤프트에서도 베켄바우어, 빌리 슐츠, 볼프강 베버, 클라우스 피셔 등의 백업을 맡아 1966 잉글랜드 월드컵 준우승 및 1970 멕시코 월드컵 3위를 경험했다.

 

 

센터백

 

 

이름: 루드비히 뮐러
생년월일: 1941년 8월 25일
A매치 기록: 6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FC 뉘른베르크

 

19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독일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다재다능한 수비수로 대인 수비와 수비라인 지휘에 모두 능해 스토퍼와 리베로를 모두 완벽하게 소화했으며 우수한 테크닉을 바탕으로 팀의 빌드업의 시작점 연결은 물론이고 공격적으로 전진해 중거리 슈팅에도 능해 종종 직접 골문을 노리기도 했는데 이런 다재다능함으로 인해 중앙 수비수 이외에도 사이드백과 수비형 미드필더, 그리고 종종 공격수로도 기용되었다.

FC 하스푸르트에서 데뷔해 뉘른베르크로 이적해 1967-68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끌며 두각을 나타낸 루드비히 뮐러는 신흥강호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로 이적한 뒤에도 질로프와 함께 수비라인을 구성해 분데스리가 2회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밀려나 헤르타 BSC로 이적한 뒤에도 1974-75 시즌에 우베 킬리만과 함께 분데스리가 출범 이후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성적인 분데스리가 준우승을 이뤄내고 은퇴했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 7회 선정된 루드비히 뮐러는 대표팀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는데 이는 프란츠 베켄바우어를 위시한 그 당시 독일의 센터백들이 너무나도 뛰어났던 탓이 컸다.

 

 

라이트백

 

 

이름: 제프 피옹텍

생년월일: 1940년 3월 5일
A매치 기록: 6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베르더 브레멘

 

분데스리가 출범 초창기에 활약했던 수비수로 라이트백과 센터백을 모두 우수하게 소화했으며 가끔 패스미스를 범했지만 매우 강력한 몸싸움과 터프한 태클을 활용해 상대 공격수를 무력화시키는데 능했으며 라이트백으로 나선 경기에서는 가끔 기습적으로 공격에 가담해 크로스를 올려 찬스를 만들어냈다.

베르더 브레멘에서 커리어의 대부분을 보낸 피옹테크는 1960-61 DFB포칼 우승을 이뤄냈고 분데스리가 출범 이후에는 1964-65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과 1967-68 시즌 준우승을 이뤄내며 베르더 브레멘의 약진을 이끌었으며 피옹테크 개인도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2회 선정되었다.

 

 

레프트백

 

 

이름: 베른트 파츠케

생년월일: 1943년 3월 14일
A매치 기록: 24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1860 뮌헨

 

1960년대에 이름을 날린 분데스리가의 공격적인 레프트백으로 강력한 스테미너를 활용한 오버래핑과 사이드에서의 위협적인 롱패스로 득점 찬스를 만드는 부분에서 이름을 떨쳤으며 수비적으로도 우수해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도 곧잘 소화했다.

벨기에의 스탕다르 리에주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해 1962-63 시즌에 리그 우승을 이끌어낸 파츠케는 독일로 돌아온 뒤에는 1860 뮌헨과 헤르타 BSC에서 활약했는데 전자의 구단에서 전성기를 구가하며 1965-66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냈고 1968-69 시즌에는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에 11회 선정된 파츠케는 디 만샤프트에도 소집되어 활약했는데 슈넬링어의 백업 역할을 맡으며 1966 잉글랜드 월드컵 준우승과 1970 멕시코 월드컵 3위를 경험했다.

 

 

수비형 미드필더

 

 

이름: 유프 카펠만

생년월일: 1949년 12월 19일
A매치 기록: 5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1970년대 독일 분데스리가를 대표하는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양 사이드백 및 윙어를 모두 안정적으로 소화할 수 있었는데 우수한 드리블 실력을 바탕으로 상대의 압박을 벗어났으며 강력한 지구력을 바탕으로 한 부지런한 공수가담으로 팀에 보탬이 되었다.

쾰른에서 우수한 퍼포먼스를 보여 당시 분데스리가 최고 이적료 기록을 경신하며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한 카펠만은 1973-74 시즌, 분데스리가와 유러피언 컵 더블을 시작으로 유러피언 컵 3연패를 이뤄냈다. 카펠만 개인도 1976년 옹즈 몽디알이 뽑은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기도 했다.

 

카펠만은 디 먄샤프트에서는 주로 백업으로 대기하며 많은 기회를 받지 못했지만 1974 서독 월드컵에서 서브로 참가해 월드컵 우승을 경험하기도 했다.

 

 

공격형 미드필더

 

 

이름: 위르겐 슈파르바서
생년월일: 1948년 6월 4일
A매치 기록: 49경기 14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FC 마그데부르크

 

동독 축구 역사상 최고의 플레이메이커 중 한 명으로 뛰어난 기본기와 우수한 득점력을 겸비한 공격형 미드필더 겸 처진 공격수였으며 절륜한 플레이메이킹으로 팀의 공격을 지휘했다.

선수 생활 전부를 FC 마그데부르크에서 보낸 슈파르바서는 동독 오버리가 3회 우승 및 FDCB포칼 4회 우승을 이뤄냈고 1974년에는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냈는데 그의 활약에 힘입은 마그데부르크는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를 꺾고 결승에 올라온 AC 밀란을 상대로 2-0 완승을 거뒀다.

동독 대표팀에서도 조국의 전성기를 이끈 슈파르바서는 1972 뮌헨 올림픽 동메달과 1974 서독 월드컵 8강 진충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는데 특히 서독과의 조별리그 1차전 마지막 경기에서 결승골을 득점했는데 이 골은 동독과 서독이 정치적 갈등이 계속되던 상황에서 이 결승골은 동독 공산주의 정권의 선전 도구로서 이용되었는데 정작 슈파르바서는 본인의 인터뷰에서 밝히길 동독 정권으로부터 어떤것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공격형 미드필더

 

 

이름: 에리히 비어

생년월일: 1946년 12월 9일
A매치 기록: 24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67kg
주 소속팀: 헤르타 BSC

 

1970년대 하반기에 이름을 날렸던 공격형 미드필더로 체구는 작았지만 우수한 전술안과 정확한 양발 패싱력을 바탕으로 한 플레이메이킹은 물론 기습적인 1선 침투 이후 정확한 슈팅으로 직접 골문을 가르는 데에도 능해 1975-76 시즌에는 페널티킥과 프리킥을 차지 않고도 무려 분데스리가에서만 23골이나 득점한 적이 있는 미들라이커였다.

헤르타 BSC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1974-75 시즌 팀의 분데스리가 준우승을 이뤄낸 에리히 비어는 디 만샤프트에서도 오베라트와 네처가 은퇴한 뒤 유로 1976에 주전 미드필더로 참가해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도 출전했다. 기자들은 그의 이름 때문에 그를 두고 베를린 맥주 또는 베를린 곰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라이트윙

 

 

이름: 하네스 뢰어

생년월일: 1942년 7월 5일
A매치 기록: 20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FC 쾰른

 

분데스리가 역사상 가장 득점력이 뛰어났던 윙어로 측면에서 중앙으로 침투해 날카로운 왼발 슈팅과 정교한 헤더로 많은 득점을 만들어냈으며 윙어의 기본인 크로스와 드리블 돌파에도 능했다.

FC 쾰른에서 선수생활의 대부분을 누린 뢰어는 1977-78 시즌 도메스틱 더블을 포함해 DFB포칼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DFB포칼 득점왕에 세 번 올랐으며 1967-68 시즌에는 포칼에 이어 분데스리가에서도 득점왕에 오르며 득점왕 더블을 이뤄내기도 했으며 1969-70 시즌에는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디 만샤프트에서는 로테이션 멤버로 1970 멕시코 월드컵 3위와 UEFA 유로 1972 우승을 경험했고 훗날 1988년에는 서독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 서울 올림픽에 출전해 동메달을 따낸 이력도 있다.

 

 

레프트윙

 

 

이름: 로타어 에머리히

생년월일: 1941년 11월 29일
A매치 기록: 5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분데스리가 초창기를 대표하는 레프트윙으로 다부진 체구와 우수한 바디 밸런스를 활용해 상대 수비수들과의 경합 상황에서 손쉽게 우위를 점했으며 막강하면서도 정확한 슈팅력으로 무수한 득점을 이뤄내며 기관총이라 불렸으며 중앙과 왼쪽 측면의 공격수 자리를 두루 소화할 수 있었다.

짧지만 굵은 전성기를 누린 에머리히는 도르트문트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1963 독일 챔피언쉽 우승에 공헌했고 1965-66 시즌에는 지크프리트 헬트와 함께 '끔찍한 쌍둥이'라는 공격 듀오로 활약했다. 그리고 1965-66 시즌 분데스리가 준우승과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냈는데 이 과정에서 에머리히는 이 시즌에 분데스리가 득점왕과 컵 위너스컵 득점왕에 올랐으며 다음 시즌인 1966-67 시즌에도 득점왕에 올랐다.

서독 대표팀에서는 1966 잉글랜드 월드컵 본선에서 활약하며 스페인과의 조별 리그 3차전부터 잉글랜드와의 결승까지 모든 경기에 참가해 디 만샤프트의 준우승에 기여했다.

 

 

스트라이커

 

 

이름: 로타어 울사스
생년월일: 1940년 9월 9일
A매치 기록: 10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

 

1960년대 하반기 독일 무대를 수놓았던 포워드로 스트라이커와 인사이드 라이트, 그리고 공격형 미드필더에서 주로 활약했는데 아름답고 부드러운 볼 터치와 육중한 피지컬을 앞세운 저돌적인 드리블을 겸비했고 강력하면서도 정밀도 높은 슈팅으로 득점력도 우수했다.

아르마니아 하노버에서 데뷔해 두각을 나타낸 울사스는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팀의 1966-67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에 큰 공을 세웠고 본인도 1966-67 시즌과 1970-71 시즌에 키커 선정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으며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5회 선정되었다.

분데스리가에서의 뛰어난 활약에도 불구하고 우베 젤러와 게르트 뮐러가 버티던 디 만샤프트에서는 백업으로만 나섰던 로터어 울사스는 주어진 기회에서 최선의 활약을 펼쳤음에도 메이저 대회에 나서지도 못했다.

 

 

감독

 

 

이름: 프란츠 베켄바우어

생년월일: 1945년 9월 11일
주 소속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주 포메이션: 3-1-4-2

 

1980년대 하반기의 서독 대표팀의 약진을 이끈 명장으로 지도자 라이선스도 없이 선수시절의 명성을 바탕으로 감독으로 부임했음에도 선수시절부터 장점으로 꼽혔던 전술안을 잘 활용했는데 특히 전력상 우위의 상황에서 굳히는 부분에서 장기를 드러냈으며 카이저라 불렸을 정도로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스타플레이어들을 아우르며 원 팀으로 만들었다.

전임자 데어발이 UEFA 유로 1984에서 탈락한 뒤에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자 급하게 감독으로 부임한 베켄바우어는 데어발 시절부터 이어진 세대교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결승에 올랐고 유로 1988에서도 비록 네덜란드에게 석패하며 4강에서 탈락했지만 준수한 경기력을 보여줬다.

그리고 대망의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다들 수비적인 축구로 일관할 때 화려한 공격 축구로 UAE, 유고슬라비아, 네덜란드, 체코슬로바티아, 잉글랜드를 연파하며 결승에 갔으며 결승전에서는 과거 스승 헬무트 쇤이 크루이프를 봉쇄하기 위해 포그츠를 맨 마킹을 붙였던 것을 착안해 부흐발트를 마라도나 지우개로 붙이는 등 뛰어난 수싸움 능력을 보여줬다.

조국 독일의 통일 선물로 월드컵을 바친 베켄바우어는 대표팀 감독직에서 물러난 이후 올림피크 마르세유의 리그앙 우승을 이끌었으며 1994년에는 바이에른 뮌헨의 회장직을 수행하는 동안 감독 대행 도중에 분데스리가 우승과 UEFA컵 우승을 추가시켰다.

 

 

1940년대생 독일 올스타 팀 써드 일레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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