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Top 20

국가의 영웅들/브라질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Top 20

토르난테 2022. 9. 21.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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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브라질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RSSSF와 트렌스퍼마크트이며 둘의 기록이 상충할 경우에는 전자를 우선적으로 따릅니다.
*기록일은 2022년 9월 21일 기준입니다.


20위 루이스 파비아누

 


생년월일: 1980년 11월 8일
A매치 기록: 45경기 28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세비야

 

2000년대 후반 브라질 대표팀의 최전방을 책임진 양발잡이 스트라이커로 화려함은 선배들에 비해 부족했지만 안정적인 볼 컨트롤과 우수한 양발 슈팅을 겸비했으며 동료들을 활용한 연계 플레이와 헌신적인 전방 압박으로 이름을 날렸다.

상 파울루에서 처음 이름을 날리며 2002 시즌 브라질 세리 A 득점왕에 올랐으며 2004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득점왕과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올랐으며 이후 포르투를 거쳐 세비야에서 코파 델 레이 2회 우승과 UEFA컵 2연패를 이뤄냈으며 2006년에는 UEFA 슈퍼컵 우승도 이뤄냈는데 2005-06 시즌 UEFA컵에서는 결승전에서 미들즈브러를 상대로 선제골을 기록하며 4-0 대승의 포문을 열기도 했고 이후 상 파울루로 다시 돌아와 2012 시즌 코파 수다메리카나 우승을 이뤄내며 맹활약했다.

파비아누는 셀레상에서도 2004 코파 아메리카에서 호나우두 대신 출전해 아드리아누와 환상의 호흡을 보여줬으며 이후 아드리아누의 슬럼프와 프레드의 부진으로 생긴 스트라이커의 공백을 잘 메워내며 2009 컨페드컵에서 조국의 우승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득점왕에 오르는 등 큰 공을 세워 실버볼을 수상했으며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중원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파비아누는 제 역할을 다 하며 대회에서 3골을 기록했다.

 

19위 세르지뉴 슐라파

 


생년월일: 1953년 12월 23일
A매치 기록: 20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91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상 파울루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브라질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장신 스트라이커로 비록 오른발을 거의 쓰지 못했지만 압도적인 피지컬을 바탕으로 포스트 플레이에 능해 헤더로 직접 득점하거나 머리로 공을 떨궈주며 다른 공격수에게 기회를 만들어주는 역할에 모두 능했으며 강력하면서도 정확한 왼발 슈팅으로도 이름을 날렸다.

상 파울루 주의 상 파울루와 산투스에서 전성기를 누렸는데 전자의 구단에서는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3회 우승과 1977 시즌 브라질 세리 A 우승을 이뤄냈으며 득점왕도 세 번이나 수상했으며 1983년에는 세리 A 득점왕에 올랐으며 구단 통산 최다 득점자에 올라있으며 후자의 구단에서는 1984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우승을 이뤄냈으며 개인도 득점왕에 올랐다.

셀레상에서는 1979 코파 아메리카와 1982 스페인 월드컵에 출전했으며 특히 후자의 대회에서는 1970년의 셀레상 이후로 가장 강한팀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팀에 주전 공격수로 활약하며 1차 조별리그 뉴질랜드 전과 2차 조별리그 아르헨티나전에서 득점 찬스를 만들어냈지만 지쿠, 파우캉, 소크라치스가 만든 수많은 찬스를 날려 비판받기도 했는데 심지어 브라질 국내에서는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의 실패를 온전히 그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로 한동안 민심이 좋지 못했다.

 

18위 자다 마라빌랴

 


생년월일: 1946년 3월 4일
A매치 기록: 7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1960년대 하반기와 70년대 브라질 무대를 주름잡던 득점기계로 왕성한 지구력과 빠른 가속력으로 쉴 새 없이 상대 페널티 박스를 공략했으며 원샷원킬이라 불리는 오른발 슈팅력과 우수한 헤더로 이름을 날리며 벌새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브라질 무대의 여러 클럽 무대를 돌아다닌 저니맨으로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에서는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2회 우승과 1971 시즌 브라질 세리 A 우승을 이뤄냈으며 스포르트에서는 캄페오나투 페르남부카누 우승을 이뤄냈으며 인테르나시오날에서는 1976 시즌 캄페오나투 가우초와 브라질 세리 A 더블 우승을 이뤄냈으며 바이아에서는 캄페오나투 바이아누 우승을, 고이아스에서는 캄페오나투 고이아누 우승을 이뤄내며 5개 주립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으며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득점왕을 4회 수상했으며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을 세 번 차지했다.

다만 대표팀에서는 펠레와 토스탕이라는 큰 벽을 넘지는 못했으며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백업 멤버로 참가해 예선과 본선 전승 우승을 경험했다.

 

 

17위 파울루 발렌침

 

 

생년월일: 1933년 11월 20일
A매치 기록: 5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보타포구

 

1950년대와 60년대 초반 남미 무대에서 전성기를 이뤄낸 선수로 적절한 위치 선정과 유려한 발밑에서 나오는 우수한 테크닉은 물론 단단한 바디 밸런스와 빠른 스피드를 겸비했으며 양발과 헤더를 모두 잘 활용해 다채로운 득점 루트를 선보였다.

발렌침은 아틀레티쿠 미네이루에서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3연패를 이뤄냈으며 보타포구에서는 1957 시즌에 가린샤, 콰렌치냐와 함께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우승을 이뤄내며 득점왕에 올라섰으며 이후 1960년에는 아르헨티나 무대에 도전해 보카 주니오스에서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라이벌 리버 플레이트와의 수페르클라시코에서는 7경기에 나서 10골을 득점하며 라이벌에 강한 면모를 보여줬다.

다만 셀레상에서는 1959 코파 아메리카에만 참가해 펠레와 합을 맞춰 5골을 득점하며 8골을 득점한 펠레, 6골을 득점한 파라과이의 호세 아베이로에 이어 득점 3위에 올랐으나 월드컵에서는 바바, 아우타피니, 아마리우두 등 걸출한 선수들과의 주전 경쟁에서 밀려났다.

 

16위 코치뉴

 


생년월일: 1943년 6월 11일
A매치 기록: 15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산투스 FC

 

산투스 유소년 팀을 거쳐 산투스에서 데뷔한 프랜차이즈 스타로 10년간 펠레와 투톱 콤비를 구성해 활약했으며 '페널티 박스 안의 천재'라 불렸던 엄청난 포처로 뛰어난 위치 선정과 정확한 슈팅으로 무수히 많은 골을 기록했으며 펠레는 그를 두고 "코치뉴는 페널티 박스 안에서만큼은 나보다 더 뛰어났다. 그의 냉정함은 가히 초자연적이었다."라고 칭찬했다.

산투스 통산 최다 득점 3위에 올라있는 코치뉴는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6회 우승과 브라질 전국 리그 5회 우승을 기록했으며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2연패를 기록하며 당대 최강의 팀으로 군림했으며 특히 1962년에는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와 전국리그를 모두 석권함은 물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는 당대 남미 최강의 팀인 페냐롤을 꺾으며 트레블을 달성했고 추가로 인터콘티넨탈컵에서는 유럽 최강의 팀인 에우제비우의 벤피카를 꺾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결승전에서 페냐롤과의 1차전에서는 멀티골을 넣으며 팀의 2-1 역전승을 이뤄냈고 인터콘티넨탈컵에서 벤피카를 상대로도 홈과 원정에서 모두 득점을 기록했으며 1963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결승전에서는 보카 주니오스를 상대로 홈과 어웨이 두 경기 모두 득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대표팀에서는 펠레, 바바, 토스탕과 같은 거물 공격수들에 의해 거의 기용되지 못하는 비운의 선수였다.

 

15위 마르시우 아모로주

 


생년월일: 1974년 7월 5일
A매치 기록: 19경기 9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우디네세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이탈리아와 독일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스트라이커로 민첩한 몸놀림과 우수한 주력에서 나오는 공간 침투와 빠른 드리블 돌파를 활용해 상대 수비 라인 배후로 침투하는데 능했으며 박스 안에서의 효율적인 움직임과 높은 수준의 골 결정력은 물론 우수한 헤더까지 겸비했으며 볼 컨트롤에도 일가견이 있어 측면 공격수로도 기용되었다.

초년에는 브라질과 일본에서 활약하다가 1997-98 시즌 우디네세의 세리에 A 3위를 이끌었으며 비어호프가 떠난 뒤에는 1998-99 시즌에 세리에 A 득점왕에 올랐으나 파르마에서는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으나 도르트문트로 이적해서도 첫 시즌에는 2001-02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에 공헌하며 리가 득점왕에 올랐으나 이후에는 부상으로 고생하다가 말년에 상파울루로 이적해 2005 시즌에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FIFA 클럽 월드컵을 우승하며 FIFA 클럽 월드컵 득점왕을 차지했다.

클럽에서는 대단한 모습을 보인 아모로주는 셀레상에서는 호나우두, 호마리우, 베베투와 같은 거물 선수들에게 밀려나며 기회를 잘 받지 못했으나 1999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4골을 득점하며 히바우두, 호나우두와 함께 셀레상의 우승에 공헌했으나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조국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14위 지오바니 에우베르

 


생년월일: 1972년 7월 23일
A매치 기록: 15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분데스리가에서 이름을 날렸던 브라질리언 스트라이커로 강력한 피지컬과 부드러운 볼 터치 능력을 겸비했으며 양발을 모두 잘 써 어느 발로도 득점할 수 있었던 스트라이커였다.

AC 밀란에서 데뷔했으나 당대 스타들도 주전 경쟁을 장담할 수 없었던 구단이라 스위스로 밀려났으나 스위스의 그라스호퍼에서 1993-94 시즌 리그 우승과 득점왕은 물론 올해의 외국인 선수상을 수상하는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이며 슈투트가르트로 이적했으며 요하임 뢰브 체제에서는 발라코프, 보비치와 함께 마법의 삼지창 조합을 이루며 1996-97 시즌 DFB포칼 우승과 1997-98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이뤄냈으며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으며 바이에른의 제2 황금기를 이끌며 분데스리가 4회 우승과 포칼 3회 우승, 그리고 2000-01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에우베르 개인도 2002-03 시즌 분데스리가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 2000년대 초반에 뛰어난 활약상을 보여주며 바이에른 뮌헨 팬들의 큰 지지를 받았으며 은퇴한 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다만 셀레상에서는 1991년에 열리 U-20 월드컵에서 팀을 결승에 올리며 실버볼과 실버슈를 수상했으나 성인 대표팀에서는 호마리우, 호나우두, 베베투, 히바우두 등 경쟁자가 많아 큰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으며 1998 북중미 골드컵에 초청팀으로 참가할 때 명단에 포함되는데 그쳤다.

 

 

13위 헤이나우두

 


생년월일: 1957년 1월 11일
A매치 기록: 37경기 14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상반기 남미 정상급 스트라이커로 번개 같은 순간 스피드와 영리한 라인 브레이킹으로 상대 페널티 박스로 침투해 상대에게 다지선다를 강요하는 다양한 슈팅 스킬을 양발로 날렸으며 우수한 볼 컨트롤 능력도 겸비한 포처였다.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에서 전성기를 보낸 헤이나우두는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8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브라질 전국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으며 1977년에는 브라질 전국 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셀레상에서는 라이벌 호베르투 지나미치와 로테이션으로 출전했는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는 첫 두경기에서 선발 출전했지만 이후에는 지나미치에게 밀려나며 벤치에서 시작했다.

 

 

12위 엘레누 지 프레이차스

 


생년월일: 1929년 2월 12일
A매치 기록: 18경기 19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보타포구

 

1940년대와 50년대에 브라질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스트라이커로 초년에는 수비수로 활약했지만 다혈질적이며 거친 성격으로 잦은 반칙을 하자 보타포구의 감독은 그가 경고를 받을 가능성을 낮추고 팀이 세트피스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를 센터 포워드로 배치했는데 의외로 엘레누와 잘 맞는 포지션이라 적응을 잘했으며 빠른 스피드와 우수한 테크닉과 전술안은 겸비했음은 물론 강력한 피지컬에서 나오는 헤더와 강력하면서도 정확한 슈팅으로 무수히 많은 득점을 이뤄내며 활약했지만 상술했던 성격 문제가 발목을 잡아 커리어 내내 불화를 일으켰으며 이런 행동들 때문에 저주받은 왕자라 불렸다.

보타포구에서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42 시즌에는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바스쿠 다 가마에서도 1949 시즌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우승을 이뤄냈으며 대표팀에서도 1945년과 1946년 코파 아메리카에 나섰으나 황금세대의 아르헨티나를 막아내지는 못하고 준우승을 거뒀지만 엘레누는 1945년 대회에서는 득점왕에 오르는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남미 무대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엘레누는 뛰어난 활약에도 불구하고 무책임한 성격과 난폭한 행동 및 거친 언행으로 인해 셀레상의 감독 플라비우 코스타와 사이가 좋지 않아 1950 브라질 월드컵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으며 아메리카 클럽 풋볼에서는 첫 경기에서 팀 동료들을 모욕하며 25분 만에 퇴장당해 계약을 해지당하는 수모를 겪었으며 무절제한 사생활로 결혼을 했음에도 외관 여자들과 놀아났으며 술과 담배는 물론 마약과 도박에도 중독되며 정신 건강 문제로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 1959년에 만 39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11위 발타자르

 

 

생년월일: 1926년 1월 14일
A매치 기록: 31경기 17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코린치안스

 

1940년대와 50년대에 걸쳐 브라질 무대에서 활약하던 스트라이커로 처음에는 인사이드 라이트 포지션에서 시작했지만 센터 포워드로 자리잡았으며 기술적으로는 뛰어나지 못했지만 훌륭한 위치선정과 경이로운 점프력을 겸비했으며 키가 174cm에 불과했지만 상술한 능력을 통해 압도적인 헤더로 수많은 득점을 이뤄내며 황금 머리라 불렸으며 팬들은 펠레조차도 그만큼 헤더를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코린치안스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구단 통산 득점 2위에 랭크된 발타자르는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3회 우승과 리우-상파울루 토너먼트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셀레상에서도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 아데미르의 로테이션으로 활약하며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1953 코파 아메리카와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했다.

 

10위 아드리아누

 


생년월일: 1982년 2월 17일
A매치 기록: 48경기 27골
신체조건: 키 189cm / 몸무게 91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2000년대 초반 엄청난 기대를 받았던 스트라이커로 전성기 시절인 2000년대 중반에는 축구사 전체를 통틀어 봐도 매우 희귀한 완벽에 가까운 공격수였는데 강력한 피지컬과 축구 역사상 최고 수준이라는 왼발 킥력은 물론 덩치에 맞지 않게 빠른 스피드와 우수한 테크닉을 겸비했으며 인테르 시절의 동료 이반 코르도바는 그를 두고 "호나우두의 재능과 이브라히모비치의 피지컬을 겸비한 존재"라고 평가했다.

플라멩구에서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2연패를 이끌며 인테르로 이적했고 인테르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2004-05 시즌과 2005-06 시즌 코파 이탈리아 2연패를 이뤄냈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2004년 6위와 2005년 7위에 랭크되었으며 셀레상에서도 2004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압도적인 활약으로 셀레상의 우승을 이끌며 대회 득점왕과 MVP를 동시에 석권했으며 2005 컨페드컵에서도 우승을 이뤄냈으나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다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줬으며 이후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몰락하며 인테르의 전성기를 함께 하지 못하고 방황하며 은퇴했다가 브라질의 플라멩구로 돌아왔다.

플라멩구로 돌아와서는 정신을 차렸는지 2009 시즌 브라질 세리 A 우승을 이뤄냈으며 브라질 세리 A MVP와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며 부활하는 듯했지만 다시는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으며 AS 로마로 이적한 뒤에는 다시 몰락하며 컴퓨터 게임 위닝 일레븐에서의 영광을 현실에서는 이어나가지 못했다.

 

9위 호베르투 지나미치

 


생년월일: 1954년 4월 13일
A매치 기록: 38경기 20골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바스쿠 다 가마

 

1970년대와 80년대 브라질 무대를 주름잡았던 공격수로 거대한 체구에서 나오는 강력한 몸싸움과 압도적인 헤더가 빛났으며 반응속도도 빨랐으며 우수한 슈팅 스킬과 발재간으로 다양한 득점 패턴을 보여줬으며 상대의 압박을 유려하게 뚫어내는 개인기로도 유명했는데 사포와 일명 '알까기'는 강력한 헤더와 함께 지나미치의 트레이드 마크로 꼽혔다.

바스쿠 다 가마에서 20 시즌 가까이 활약한 지나미치는 공식전에서만 502골을 득점한 바스쿠 다 가마 구단 통산 최다 득점자였으며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5회 우승과 1974 시즌 브라질 세리 A 우승을 이뤄냈으며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득점왕을 3회 수상했으며 브라질 세리 A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도 3회 선정되었고 브라질 세리 A와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역대 최다 득점자로 이름을 날렸다.

셀레상에서는 클럽에서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는 주전 멤버로 활약하며 3골을 넣었으나 아르헨티나와 페루의 승부조작 논란이 있던 경기로 인해 2차 조별 리그 2위로 3.4위전에 진출해 3위에 그쳤으며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슐리파와의 경쟁에서 밀려 백업으로 밀려났으나 슐리파가 많은 찬스를 날렸기에 대회가 끝나고 다시 주전으로 올라서며 1983 코파 아메리카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으며 지나미치 개인은 득점왕에 올랐다.

 

8위 바바

 


생년월일: 1934년 11월 12일
A매치 기록: 20경기 15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바스쿠 다 가마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1950년대 하반기와 1960년대 상반기에 이름을 날렸던 스트라이커로 드리블이 뛰어나진 않았지만 탄탄한 기본기와 우수한 위치선정, 그리고 날카로운 오른발 슈팅으로 마무리하는데 능했으며 지구력이 좋아 왕성한 활동량으로 중원으로 내려가 볼 순환에도 돕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며 팬들로부터 강철 폐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바스쿠 다 가마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그리고 파우메이라스에서 전성기를 누린 바바는 바스쿠 다 가마에서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3회 우승을 포함해 11개의 우승컵을 들었으며 유럽의 아틀레리코 마드리드에서는 코파 델 레이 2연패를 이뤄냈으며 월드컵에 나가기 위해 브라질의 파우메이라스로 돌아와서는 1963 시즌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우승에 기여했다.

바바는 셀레상에서도 펠레의 파트너로 맹활약하며 1958 스웨덴 월드컵과 1962 칠레 월드컵에서 주전 공격수로 우승했는데 전자의 대회에서는 5골을 득점했으며 후자의 대회에서는 4골을 득점하며 우승을 차지하는데 기여했으며 대회 공동 득점왕과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도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으며 월드컵 통산 9골을 기록했다.

 

7위 주제 아우타피니

 


생년월일: 1938년 7월 24일
A매치 기록: 8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AC 밀란

 

1960년대 초반 세리에 A 최고의 공격수 중 하나로 다부진 상체에서 나오는 우수한 신체 밸런스와 빠른 스피드는 물론 양발과 머리를 고루 이용한 슈팅 능력은 물론이고 우수한 테크닉을 활용한 드리블은 물론 오프 더 볼 상황에서의 영리한 움직임으로 동료들과 연계에도 능해 밀란의 팬들은 그에게 마치 레전드 발렌티노 마촐라와 같다고 해서 마촐라라고 불렀다.

브라질 무대의 파우메이라스에서 활약하며 대표팀에도 뽑혔으나 펠레와의 대표팀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자 세리에 A의 밀란으로 떠났으며 밀란에서는 리베라와 함께 로코의 카테나치오 체제에서 공격의 전권을 위임받아 활약하며 1960-61 시즌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에 올랐으며 세리에 A 2회 우승을 이뤄내며 그중 1961-62 시즌에는 세리에 A 득점왕을 수상했으며 1962-63 시즌 유러피언 컵 득점왕에 오르며 팀이 유럽 챔피언에 오르는데 크게 기여했으며 이후 나폴리와 유벤투스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며 유벤투스는 세리에 A 2회 우승을 이뤄냈다.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 주전 경쟁에서 밀렸으나 월드컵 우승을 경험했으며 비록 대표팀 활약은 미비하지만 그 대가로 이탈리아에 진출해 세리에 A, 코파 이탈리아, 그리고 유러피언컵에서 모두 득점왕에 오르며 부와 명예를 모두 챙기며 세리에 A의 전설적인 공격수로 추앙받았다.

 

6위 카레카

 


생년월일: 1960년 10월 5일
A매치 기록: 64경기 30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SSC 나폴리

 

1980년대 하반기 브라질을 이끌었던 스트라이커로 현란한 볼 컨트롤 능력과 발재간은 물론 반 박자 빠른 슛 타이밍을 통해 상대 수비진과 골키퍼롤 속이며 득점했는데 양발을 모두 잘 썼으며 오프 더 볼 상황에서도 전략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선정해 상대 수비수를 교란했으며 다른 공격수와의 연계 플레이도 우수했던 완성형 공격수였다.

18세의 어린 나이에 팀의 에이스로서 구아리니의 브라질 전국 리그 깜짝 우승을 이끌어냈으며 이후 상 파울루에서는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2회 우승과 1985년 득점왕에 올랐으며 1986 브라질 세리 A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워 브라질 세리 A MVP에 올랐으며 브라질에 머무는 동안 브라질 세리 A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으며 나폴리로 건너가서는 마라도나, 카르나빌레와 함께 삼각편대를 구성해 1988-89 시즌 UEFA컵 우승과 1989-90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UEFA컵에서는 바이에른 뮌헨과의 4강 1,2 차전과 슈투트가르트와의 결승 1,2차전에서 모두 득점에 성공하며 우승에 큰 공을 세우며 마라도나와 함께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1983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이후부터 1986 멕시코 월드컵과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 참가해 두 대회에서 7골을 넣었으나 준결승에도 진출하지 못하며 탈락하는 불운을 겪었다.

 

5위 아데미르

 


생년월일: 1922년 11월 8일
A매치 기록: 39경기 32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바스쿠 다 가마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1940년대 하반기와 1950년대 상반기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로 선수 생활을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시작했을 정도로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공간 침투 능력과 치명적인 골 결정력을 겸비했다.

바스쿠 다 가마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5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플라맹구에서 한번 더 우승하며 통산 여섯 번을 우승했으며 1948년에는 남아메리카 클럽 챔피언쉽에서 우승을 이뤄냈으며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득점왕을 2회 수상했다.

대표팀에서도 셀레상의 1949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끌며 대회 MVP를 수상했으며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무려 9골이나 넣으며 팀을 우승 직전까지 올려놓았으나 마라카냥에서 아쉽게 패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4위 아르투르 프리덴라이히

 


생년월일: 1892년 7월 18일
A매치 기록: 23경기 10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62kg
주 소속팀: CA 파울리스타노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축구 역사상 비공식전 포함 최다 득점자이자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초의 스타플레이어로 당시 브라질 축구계에 만연했던 인종차별이라는 장벽을 걷어내고 성공적인 커리어를 써내려갔으며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흑인이 활약할 수 있는 판을 깔아놓은 기념비적인 인물이며 특유의 저돌적이면서 날쎈 플레이스타일로 인해 호랑이라는 벼령으로 불렸다.

CA 파울리스타노에서 활약하며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6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상파울루로 이적한 뒤에도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우승 횟수를 한번 추가했으며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득점왕에 개인 통산 9회 수상했다.

셀레상에서도 1919년과 1922년에 열린 코파 아메리카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했으며 특히 1919년 대회에서는 우승은 물론 득점왕과 MVP까지 모두 석권했다.

 

3위 레오니다스 다 시우바

 


생년월일: 1913년 9월 6일
A매치 기록: 19경기 21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플라멩구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펠레 이전 브라질 축구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으로 정확한 위치 선정과 정교하면서도 강력한 왼발 슈팅 능력을 갖췄으며 고무인간이라 불렸을 정도로 훌륭한 탄력성을 겸비해 축구 역사상 최초로 바이시클 킥을 시도했으며 득점 찬스를 만드는 부분에도 능해 인사이드 포워드로도 활약할 수 있었던 전천후 공격수였다.

바스쿠 다 가마, 보타포구, 플라멩구에서 캄파오네투 카리오카를 각각 한 번씩 우승하며 개인 통산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40년에는 득점왕도 거머쥐었으며 상 파울루로 이적한 이후에는 캄파오네투 파울리스타 5회 우승을 이뤄냈다.

레오니다스는 셀레상 유니폼을 입고도 맹활약했는데 특히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의 활약은 발군이었는데 그가 결장한 4강 이탈리아전에서 브라질은 패배를 당해 3위에 머물렀음에도 7골을 득점한 레오디나스의 활약은 대단해 결승에 오른 이탈리아와 헝가리의 선수들을 제치고 대회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다.

레오디나스의 활약과 인기가 대단해 브라질의 초콜릿 제조업체인 렛타는 레오디나스의 허락하에 그의 별명인 검은 다이너마이트의 포르투갈어인 Diamante Negro라는 이름의 초콜릿을 발매했다.

 

 

2위 호마리우

 


생년월일: 1966년 1월 29일
A매치 기록: 70경기 55골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골의 왕이라 불렸던 1990년대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동물적인 감각을 앞세워 상대의 오프사이드 트랩을 무너트려 득점했으며 신체 밸런스와 양발 사용 능력 모두 훌륭했으며 볼 컨트롤과 뛰어난 드리블 실력까지 자랑했다.

여러 클럽을 돌아다녔지만 PSV 에인트호번과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누렸으며 전자의 클럽에서는 에레데비시 3회 우승과 득점왕 3회 수상을, 후자의 클럽에서는 1993-94 시즌에 30골을 터트리며 라리가 우승을 이뤄냈고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챔피언스리그에서도 결승전에 진출했으며 브라질 리그의 바스쿠 다 가마에서도 전국 리그 우승을 이뤄내며 활약했으며 남미 무대에서도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득점왕 7회 수상과 브라질 세리 A 득점왕을 3회 수상했다.

셀레상에서도 1989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에 기여했으며 1994 미국 월드컵에서도 팀의 공격을 이끌며 우승해 월드컵 우승과 골든볼을 모두 석권했다. 그리고 1997년 컨페드컵에서는 호나우두와 투 톱을 이뤄 압도적인 활약을 보여줬다. 감독들과의 불화로 국가대표팀에 꾸준히 소집되지는 못했지만 30대 후반인 2005년에도 소집된 이력이 있을 정도로 롱런했다.

 

 

1위 호나우두

 


생년월일: 1976년 9월 22일
A매치 기록: 98경기 62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90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평가받으며 최전성기 시절에는 엄청난 스피드와 화려한 개인기, 그리고 뛰어난 슈팅 능력을 모두 겸비해 상대 수비수와 골키퍼를 무릎 꿇리며 압도적인 득점력은 물론 플레이메이킹 마저 능했던 스트라이커였으며 잦은 부상과 갑상선 비대증으로 인해 살이 찐 이후에도 엄청난 골 감각과 축구 센스, 그리고 적절한 위치 선정을 활용해 세계 최고의 스코어러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날렸다.

"어느 날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등장해, 네덜란드와 카탈루냐에서 별이 되었다. 이탈리아에서 우상이 되었고 스페인에서 신이 되었다."라는 칸토나의 말처럼 PSV 에인트호번에서 이름을 날리고 바르셀로나의 코파 델 레이와 컵 위너스 컵 우승은 물론 라리가 득점왕과 컵 위너스컵 결승전 MOM까지 이뤄내며 펠레와 마라도나에 비견되기 시작했으며 인테르에서 UEFA컵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UEFA컵 결승전에도 MOM에 선정되었으며 1997-98 시즌 UEFA 클럽 올해의 선수와 UEFA 클럽 올해의 공격수를 수상했으며 레알 마드리드로 돌아와서는 2002-03 시즌 라 리가 우승과 챔피언스리그에서 만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구장에서 그들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이뤄냈다. 다만 부상이 잦아 팀에 꾸준하게 기여해주지는 못했으며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내지 못했고 우승컵 자체도 호나우두의 명성에 비하면 아쉬운 부분은 사실이었다.

상대적으로 아쉬운 클럽 커리어에도 불구하고 호나우두가 역대 최고로 평가받는 부분은 역시 브라질 대표팀에서의 활약상이 크다. 특히 월드컵에서의 활약이 대단했는데 백업 멤버였던 1994 미국 월드컵을 제외하더라도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골든볼과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거뒀으며, 2002 한일월드컵에서는 득점왕과 우승, 그리고 실버볼을 제패했으며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월드컵 역사상 최다 골을 기록했었다가 지금은 클로제에게 자리를 내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로제의 월드컵 활약이 호나우두 이상이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1997년과 1999년에 우승을 이뤄냈으며 1997 코파 아메리카 MVP를 수상했으며 1999 코파 아메라카에서도 팀 동료 히바우두와 공동 득점왕과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활약을 펼쳤다.

호나우두는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9회 선정되어 포디움에 4회 들었으며 1997년과 2002년에는 1위를 기록해 발롱도르를 수상했으며 피파 올해의 선수상 3회 선정과 옹즈도르 2회 수상, 그리고 현역으로 활약하던 2006년에 이미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선정 인원 외 추가할 수 있는 명단

 

 

헤이토르

 


생년월일: 1898년 12월 20일
A매치 기록: 11경기 4골
신체조건: 미상
주 소속팀: 파우메이라스

 

카르발류 레이트

 


생년월일: 1912년 5월 26일
A매치 기록: 10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92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보타포구

 

 

왈도 마차도

 


생년월일: 1934년 9월 9일
A매치 기록: 5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78cm
주 소속팀: 발렌시아

 

누네스

 


생년월일: 1954년 5월 20일
A매치 기록: 6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78cm
주 소속팀: 플라멩구

 

발타자르 마리아 데 모라이스

 


생년월일: 1959년 7월 17일
A매치 기록: 6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그레미우

 

왈테르 카사그란지

 


생년월일: 1963년 4월 15일
A매치 기록: 19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91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코린치안스

 

툴리우 마라빌랴

 

 

생년월일: 1969년 6월 2일
A매치 기록: 15경기 13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보타포구

 

 

마리우 자르데우

 

 

생년월일: 1973년 9월 18일
A매치 기록: 10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88cm
주 소속팀: FC 포르투

 

프레드

 


생년월일: 1983년 10월 3일
A매치 기록: 39경기 18골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플루미넨시

 

히샬리송

 


생년월일: 1997년 5월 10일
A매치 기록: 36경기 14골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83kg
현 소속팀: 토트넘 핫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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