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Top 20

국가의 영웅들/브라질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Top 20

토르난테 2022. 9. 18.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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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브라질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RSSSF와 트렌스퍼마크트이며 둘의 기록이 상충할 경우에는 전자를 우선적으로 따릅니다.
*기록일은 2022년 9월 17일 기준입니다.

 


20위 오스카르

 


생년월일: 1991년 9월 9일
A매치 기록: 48경기 12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67kg
주 소속팀: 첼시 FC

 

2010년대 상반기 브라질의 주축 공격형 미드필더로 남미보다는 유럽 스타일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선배 브라질 출신 공격형 미드필더들에 비해 화려함은 부족하지만 왕성한 활동량에서 나오는 헌신적인 수비 가담과 전방 압박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오프 더 볼 능력이 뛰어나 패스를 받기 최적의 위치를 선점하거나 박스 침투 이후 대포알 같은 슈팅을 날려 득점하는 부분에서 강검을 보여준 선수였다.

인테르나시오나우에서 처음 이름을 날린 뒤 잠재력을 인정받아 첼시로 이적해 주축 선수로 활약하며 프리미어리그 2회 우승, 2012-13 시즌 UEFA 유로파 리그 우승과 2014-15 시즌 리그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셀레상에서도 주전 선수로 활약하며 2012 런던 올림픽 은메달과 2014 브라질 월드컵 준결승 진출을 이뤄냈으며 미네이랑의 비극 속에서도 유일한 득점에 성공하며 다른 선수들에 비해선 비판을 적게 받기도 했으며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는 영예도 누렸다.

그러나 오스카르는 기복이 심해 결국 2016-17 시즌에 첼시의 주전에서 밀려났으며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중국 슈퍼리그의 상하이 상강으로 떠나 브라질 축구팬들에게 아쉬움을 줬다.

 

19위 알렉스

 


생년월일: 1977년 9월 14일
A매치 기록: 48경기 12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페네르바흐체

 

1990년대와 2000년대 브라질과 터키 무대에서 활약한 플레이메이커로 감각적인 볼 컨트롤과 전방으로 길게 찔러주는 롱패스로 이름을 날렸으며 기가 막힌 왼발 킥력으로 오픈 플레이 상황과 데드볼 상황을 가리지 않고 많은 득점을 터트리며 커리어 통산 421골을 득점하는 위력을 보여줬다.

코리티바에서 1996 시즌 캄페오나투 파라나엔세 MVP를 수상하며 세상에 이름을 날렸고 1990년대 말에는 파우메이라스의 에이스로 1999 시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뤄냈으며 비록 파르마에서는 적응에 실패해 브라질의 여러 팀으로 임대를 다녔다가 크루제이루로 복귀해 크루제이루의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2회 우승과 2003 브라질 세리 A 우승을 이뤄냈고 그 공로로 브라질 전국리그 MVP를 수상했으며 이후 페네르바흐체로 이적해서는 터키 수페르리가 3회 우승을 이뤄내고 리그 MVP에 2회 선정되었으며 2007-08 시즌에는 페네르바체의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에 큰 공을 새워 대회 도움왕에 오르면서 구단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올라섰다.

셀레상에서는 1999년에 백업 멤버로 코파 아메리카와 컨페드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2004년에는 아드리아누, 파비아누와 호흡을 맞춰 조국의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끌며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으나 월드컵 무대에는 한 번도 나서지 못했다.

 

18위 필리페 쿠치뉴

 


생년월일: 1992년 6월 12일
A매치 기록: 68경기 21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리버풀 FC

 

2010년대 하반기에 PL을 빛낸 테크니션으로 측면에서 중앙으로 들어오며 날카로운 중거리 슈팅을 날렸으며 풋살 선수 시절부터 단련한 우수한 발재간을 통해 상대 수비수들을 교묘하게 따돌리는데도 능했다.

브라질을 빛낼 유망주로 평가받아 트레블을 이뤄낸 인테르가 영입했으나 인테르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팀을 떠돌다가 리버풀에서 자리를 잡아 전성기를 누리며 2014-15 시즌 PFA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으며 2015-16 시즌 유로파리그 올해의 스쿼드에 포함되었으며 2014-15 시즌과 2015-16 시즌에는 리버풀 서포터즈 선정 올해의 선수와 리버풀 선수단 선정 올해의 선수상을 동시에 석권하는 활약을 보여줬으나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뒤에는 이적료 값과 연봉값을 못하는 활약으로 크게 비판받았으며 바이에른 뮌헨 임대 시절에는 코바치 체제에서는 주전으로 나섰지만 플리크 체제에서는 백업 멤버로 다시 밀려났으나 그래도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친정팀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멀티골을 득점해 8-2 대승에 공헌하며 2019-20 시즌 트레블에 기여했다.

셀레상에서 쿠치뉴는 처음에는 오스카르에 밀려 빛을 발휘하지 못하다가 2015년 이후로 오스카르를 밀어내고 주전 자리를 차지해 2015년과 2016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셀레상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대회 도움왕을 수상했으며 동시에 대회 올스타 팀과 팬투표로 선정하는 드림팀에 모두 선정되었으며 2019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셀레상이 12년 만에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했다.

 

 

17위 파울루 이시도루

 

 

생년월일: 1953년 8월 3일
A매치 기록: 41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64kg
주 소속팀: 그레미우

 

1970년대와 80년대 브라질 리그에서 이름을 날렸던 공격현 미드필더로 뛰어난 지구력에서 나오는 왕성한 활동량으로 넓은 지역에 영향력을 끼쳤으며 공격은 물론 수비 상황에서는 수비에 헌신적으로 가담했으며 상대 수비수를 속이는 페인팅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축구 지능이 높아 중앙 미드필더, 윙어, 그리고 측면 미드필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와 그레미우, 그리고 산투스에서 활약한 이시도루는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에서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그레미우에서는 1980 시즌 캄페오나투 가우초 우승과 1981 시즌 브라질 세리 A 우승을 이뤄내는데 우수한 퍼포먼스로 큰 공을 세워 1981 시즌 브라질 전국리그 MVP를 수상했으며 산투스에서는 1984 시즌 캄페오네투 파울리스타 우승을 이루며 3개의 주립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괴력을 뽐냈으며 브라질 전국리그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다.

다만 셀레상에서는 지쿠와 소크라치스, 지르세우 등 위대한 공격형 미드필더가 많아 주로 벤치에서 시작했으며 월드컵 50주년 기념 대회로 열린 1980 문디알리토와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 셀레상에 소집되었다.

 

16위 지뉴

 


생년월일: 1967년 6월 17일
A매치 기록: 57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파우메이라스

 

1990년대 브라질 무대를 풍미했던 왼발잡이 플레이메이커로 교묘한 드리블 돌파와 날카로운 왼발 슈팅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와 레프트윙을 겸할 수 있었다.

플라멩구와 파우메이라스에서 전성기를 누렸으며 전자의 구단에서는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3회 우승과 1992 시즌 브라질 세리 A 우승을 이뤄냈으며 파우메이라스에서는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2회 우승과 브라질 세리 A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99 시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에도 기여했으며 말년에는 그레미우에서 캄페오나투 가우초를 우승하며 3개의 주립 리그에서 우승하는 대기록을 세웠으며 2003년에는 크루제이루에서 브라질 세리 A 우승을 이뤄내며 3개의 구단에서 모두 브라질 세리 A 우승을 이뤄내는 기록을 세웠으며 브라질 세리 A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4회 선정되었다.

클럽에서의 활약을 셀레상에서도 인정받은 지뉴는 1993 코파 아메리카에 처음 메이저 대회에 데뷔했으며 1994 미국 월드컵 우승과 1995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전자의 대회에서의 우승으로 1994년 남아메리카 올해의 팀에 선정되기도 했다.

 

 

15위 바우두 필류

 


생년월일: 1964년 1월 12일
A매치 기록: 45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파리 생제르맹

 

1980년대 하반기와 1990년대 브라질과 프랑스 무대에서 활약했던 플레이메이커로 화려한 볼 컨트롤과 드넓은 시야와 우수한 창의성에서 나오는 기가 막히는 쓰루패스는 상대가 발만 대도 득점할 수 있었을 정도로 정확해 마술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레미우에서 캄페오나투 가우초 4연패를 이끈 뒤 유럽 무대에 도전해 벤피카에서는 프리메이라리가 2회 우승과 1989-90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으며 파리에서는 1993-94 시즌 리그앙 우승과 1994-95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진출을 이끌어냈으며 브라질로 돌아와서는 1998년 크루제이루의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우승을 이끌면서 브라질 세리 A에서도 훌륭한 활약을 보여주며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셀레상에서는 1986 멕시코 월드컵에 처음 메이저 무대에 데뷔해 1989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내며 활약했으나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16강에서 탈락하며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다.

 

 

14위 아밀카르 바르부이

 


생년월일: 1893년 4월 29일
A매치 기록: 19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코린치안스


1910년대와 20년대에 프리덴라이히와 함께 브라질 축구의 태동기를 이끈 스타플레이어로 초창기에는 인사이드 포워드 및 센터 포워드에서 활약했으나 전성기 시절에는 하프백에서 주로 활약하며 경기 흐름을 완전히 꿰는 전술안과 펠레에 버금간다고 평가받는 볼 컨트롤, 그리고 대지를 가르는 우수한 롱패스를 활용한 플레이메이킹은 물론 강력한 슈팅으로 직접 득점에도 능했으며 정확한 슬라이딩 태클로 수비적인 역할도 잘 수행할 수 있었다.

코린치안스와 파우메이라스에서 활약하며 전자의 구단에서는 전신 대회를 포함해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4회 우승을 이뤄냈고 후자의 구단에서도 캄페오나투 파우리스타 2회 우승을 이뤄냈다.

셀레상에서는 센터 하프와 인사이드 포워드를 오가며 활약해 프리덴라이히, 네쿠, 마르쿠스 지 멘돈사와 함께 이름을 날리며 4회의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했으며 1919년과 1921년 대회에서는 조국의 우승을 이뤄냈다.

 

13위 지르세우 로페스

 

 

생년월일: 1946년 9월 3일
A매치 기록: 14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62cm / 몸무게 62kg
주 소속팀: 크루제이루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에 브라질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플레이메이커로 키는 작았지만 그의 명성은 커서 당대 브라질 무대를 호령했는데 작은 키였지만 한혈마와 같은 스피드와 지구력을 겸비했으며 미꾸라지와 같은 유려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수를 따돌렸으며 현란한 볼 테크닉 능력과 우수한 오프 더 볼 상황에서의 공간 침투에서 나오는 득점력도 우수한 완벽한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토스탕과 함께 크루제이루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 지르세우 로페스는 크루제이루에서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9회 우승과 1966년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그리고 1976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으며 크루제이루의 선전을 이끈 활약을 토대로 1971년 브라질 전국 리그 MVP를 수상했으며 브라질 전국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도 3회나 선정되었으나 셀레상에서는 호베르투 히벨리누, 파울루 세자르 카주, 아데미르 다 기아 등 여러 뛰어난 선수들에 의해 거의 소집되지 못하는 비운을 경험했다.

 

 

12위 주니뉴 파울리스타

 


생년월일: 1973년 2월 22일
A매치 기록: 49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59kg
주 소속팀: 미들즈브러


잉글랜드 무대에서 처음으로 명성을 떨친 브라질 출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작은 녀석으로 불렸을 정도로 체구가 왜소했지만 한혈마가 연상될 정도로 빠른 스피드와 우수한 지구력은 물론 경이로운 민첩성과 폭발적인 드리블, 그리고 날카로운 오른발 슈팅으로 마무리에도 능했으며 당시 잉글랜드에서는 드문 유형의 선수라 많은 잉글랜드 팬들이 주니뉴 파울리스타에 환호했다.

상 파울루에서 데뷔해 로테이션 멤버로 1993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과 인터콘티넨탈컵 우승을 경험한 주니뉴 파울리스타는 이후 잉글랜드의 미들즈브러로 이적해 두 시즌 활약하며 1996-97 시즌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와 미들즈브러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했다가 다시 미들즈브러로 돌아와 활약했으며 이후 바스쿠 다 가마에서 브라질 세리 A 우승을 이뤄낸 뒤 다시 미들즈브러로 돌아와 활약했으나 다시 미들즈브러로 이적해 활약했다.

셀레상에서도 지뉴를 밀어내고 주전으로 활약하며 1995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과 1997 컨페드컵 우승을 이뤄냈으나 이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의 부진이 이어지며 셀레상에서도 멀어졌다가 2001년에 다시 합류해 2002 한일 월드컵 우승을 백업 멤버로 경험했다.

 

 

11위 주니뉴 페르남부카누

 


생년월일: 1975년 1월 30일
A매치 기록: 40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올림피크 리옹

 

축구 역사상 최고의 프리키커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선수로 데드볼 상황에서 다채로운 슈팅을 자유자재로 구사했고 무회전 슈팅을 연구하고 완성시킨 것으로 유명했는데 우수한 킥력뿐만 아니라 왕성한 활동량으로 경기장 전역에 영향력을 끼쳤고 화려한 볼 컨트롤과 창의적인 숏패스와 롱패스를 적재적소에 찔러주며 플레이메이킹을 하는 부분에서도 당대 정상급 실력을 자랑했다.

바스쿠 다 가마와 올림피크 리옹에서 전성기를 보낸 주니뉴는 전자의 클럽에서는 1998 시즌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우승 및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뤄내며 더블 우승과 브라질 세리 A 2회 우승을 이뤄냈고 2001-02 시즌 올림피크 리옹으로 이적한 이후에는 2001-02 시즌부터 2007-08 시즌까지 리그앙 7연패라는 전무후무한 성적을 이뤄내며 리옹의 리그앙 우승은 모두 주니뉴가 있을 때 이뤄냈을 정도로 구단 역사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친 선수였다. 주니뉴 개인도 ESM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되었으며 리그앙 올해의 팀에 3회 선정, 그리고 2005-06 시즌에는 리그앙 MVP를 수상했다.

셀레상에서도 2001 코파 아메리카에서 처음으로 발탁되었으나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대표팀에 선발되지 못했다. 하지만 2005 컨페드컵과 2006 독일 월드컵에서 로테이션 멤버로 활약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줬는데 전자의 대회에서는 우승컵을 차지했고 2006 독일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에서는 일본을 상대로 무회전 프리킥 골로 일본의 대패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10위 지르세우

 


생년월일: 1952년 6월 15
A매치 기록: 44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9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브라질과 스페인,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이름을 날렸던 공격형 미드필더로 양발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었던 양발잡이로 양발 모두를 사용하는 중거리 슈팅은 물론 온 더 볼 상황에서 빠른 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교란했으며 정확한 판단력에서 나오는 날카로운 패스로 찬스를 만드는 부분에도 뛰어났으며 데드볼 상황에서도 득점으로 곧잘 연결시키는 데드볼 스페셜리스트이기도 했다.

코르티바에서 캄페오나투 파라나엔세 2회 연속 우승을 이뤄냈으며 플루미넨시와 바스쿠 다 가마에서는 캄페오나투 카리오카에서 각각 1회 우승과 2회 우승을 이뤄냈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는 비록 우승을 이뤄내지는 못하지만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며 팀의 에이스로 3년간 군림했으며 이탈리아 무대에서는 베로나에서 활약하던 시절인 1982-83 시즌과 코모에서 활약하던 1985-86 시즌에 구에린 스포르티보가 채점한 세리에 A 외국인 선수 평점 5위 안에 들었다.

지르세우는 클럽 무대에서보다도 셀레상에서 더 큰 존재감을 보여줬는데 황금 세대 멤버들 다수가 대표팀에서 물러난 시점에서 1974 서독 월드컵에서 팀의 4위라는 성적을 이끌었으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는 팀이 무패로 3위를 하는데 크게 공헌해 브론즈볼을 타냈는데 특히 페루전에서 멋진 프리킥골을 보여줬으며 이 대회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1978 남미 올해의 선수상 투표에서 3위를 차지했으며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도 황금의 사중주의 백업으로 활약했다.

 

9위 파울루 세자르 카주

 


생년월일: 1949년 6월 16일
A매치 기록: 57경기 1074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보타포구

 

특유의 큰 코로 인해 강철 코, 못생긴 독수리라 불렸던 선수로 1960년대 후반과 70년대 브라질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만능 공격 자원으로 우수한 축구 지능을 토대로 다양한 포지션에서 자유자재로 활약할 수 있었으며 공격 진영에서 다른 공격자원들과의 환상적인 연계 플레이는 물론 상대 수비수의 혼을 빼놓은 화려한 드리블과 완벽한 득점 찬스를 만드는 킬러 패스로도 이름을 날렸다.

보타포구, 플라멩구, 그리고 플루미넨시에서 모두 전성기를 누린 카주는 보타포구에서는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2회 우승과 1968 시즌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플라멩구에서도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2회 우승을 추가했고 플루미넨시에서도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2회 우승을 이뤄내며 개인 통산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6회 우승을 이뤄냈다. 카주 개인도 브라질 세리 A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4회 선정되었고 그레미우에서도 캄페오나투 가우초 2회 우승을 이뤄냈고 유럽 무대의 마르세유에서도 한 시즌 머물렀지만 좋은 모습을 보였다.

카주는 1970 멕시코 월드컵의 셀레상에 백업 멤버로 참여해 에두와 함께 펠레, 자이르지뉴, 토스탕, 히벨리누를 받치는 백업으로 예선과 본선 전승 우승에 기여했으며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주전 선수로 활약하며 대회 4위라는 성적을 이뤄냈다.

 

 

8위 아데미르 다 기아

 


생년월일: 1942년 4월 3일
A매치 기록: 9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파우메이라스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인 도밍구스 다 기아의 아들이자 1960년대 남미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유려한 볼 컨트롤 능력과 세련된 패싱력과 간결한 연계 능력을 바탕으로 골 찬스를 만드는데 능했다.

파우메리아스 구단 통산 최다 출전자로 902경기에 출전해 153골을 기록했으며 팀의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5회 우승과 브라질 전국리그 4회 우승, 그리고 타사 브라질 1회 우승과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준우승을 이뤄내며 팬들로부터 O Divino, 신이라고 불렸으며 1972년 남미 올해의 선수상 투표에서 5위를 랭크했다.

다만 셀레상에서는 전술 문제로 오랜 기간 주전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으나 1974 서독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팀을 4위로 이끌며 호부호자의 명성을 이어갔다.

 

 

7위 하이

 


생년월일: 1965년 5월 15일
A매치 기록: 49경기 17골
신체조건: 키 189cm / 몸무게 87kg
주 소속팀: 상 파울루

 

브라질의 황금의 사중주의 일원인 소크라치스의 동생으로 형 소크라치스와 마찬가지로 키가 컸으나 마른 체형이었던 형과 다르게 다부진 체형으로 몸싸움에서 장점을 드러냈으며 형보단 못했지만 그래도 브라질 대표팀 주전 경쟁 정도는 거뜬한 수준의 세련된 볼 컨트롤과 전진드리블 능력의 소유자였으며 드넓은 시야와 우수한 킥력을 토대로 골 찬스를 만드는 회심의 롱패스로 득점 찬스를 만들거나 강력한 슈팅으로 직접 골문을 노리는 부분에도 능했다.

텔레 산타나 체제에서 상 파울루가 구단의 황금기를 구가하던 시절에 팀의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하며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6회 우승과 1991 시즌 브라질 세리 A 우승, 그리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2연패를 이뤄냈으며 1992년에는 아름다운 축구로 유럽 무대를 제패했던 크루이프의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더 아름다운 축구를 보여줬으며 본업인 플레이메이킹 이외에도 하이는 멀티골을 득점하며 상파울루의 2-1 승리를 이끌며 인터콘티넨탈컵 MVP와 1992년 남미 올해의 선수를 수상했으며 유럽 무대의 파리 생제르맹으로 이적한 뒤에도 구단의 핵심으로 활약하며 1993-94 시즌 리그 앙 우승을 이뤄냈으며 1994-95 시즌에는 쿠프 드 프랑스와 리그컵을 각각 2회 우승과 과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을 이뤄냈고 1995-96 시즌에는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해당 시즌에 ESM 올해의 팀에도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하이는 형 소크라치스와 마찬가지로 대표팀에서도 중추로 활약했는데 1987 코파 아메리카에서 데뷔해 1991 코파 아메리카에서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조별 리그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했으나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파헤이라 감독이 토너먼트에서는 수비에 더 중점을 두기 위해 마지뉴를 중용하면서 백업 멤버로 밀려나 주장 완장을 둥가에게 양보했다.

 

 

6위 자이르 다 호사

 


생년월일: 1921년 3월 21일
A매치 기록: 39경기 22골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2kg
주 소속팀: 파우메리아스

 

무려 20년 가까이 브라질에서 맹위를 떨쳤던 인사이드 포워드이자 공격형 미드필더로 전광석화와 같은 스피드와 유려한 볼 컨트롤 능력을 겸비했으며 프로 통산 450골을 넘게 득점했을 정도로 득점력도 대단한 완성형 인사이드 포워드였다. 

마두레이라 시절부터 브라질 정상급 인사이드 포워드로 명성을 날렸으며 바스쿠 다 가마, 플라멩구, 파우메리아스, 산투스에서 모두 정상급 선수로 이름을 날렸으며 3개의 주립 리그에서 7번 우승했으며 1951년에는 파우메리아스 소속으로 유럽과 남미의 강팀이 참여한 토너먼트인 코파 리우에서 데니쉬 트리오를 앞세운 유벤투스를 꺾고 우승했으며 노장으로 접어들었을 때에는 산투스에서 자신보다 19살 어린 초신성 펠레와 같이 인사이드 포워드로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1949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결승전 멀티골을 포함해 8경기에서 9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에 오르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우승을 이뤄냈으며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지지뉴와 바스쿠 다 가마의 삼각 편대와 조합을 맞추며 압도적인 공격력을 보여줬으나 결승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우루과이에게 일격을 당하며 빛이 바랬다.

 

 

5위 소크라치스

 


생년월일: 1954년 2월 19일
A매치 기록: 60경기 22골
신체조건: 키 192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코린치안스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1980년대 브라질을 호령하던 축구선수이자 민주화 운동가이며 동시에 훌륭한 의사였던 소크라치스는 지쿠, 마라도나, 보치니와 함께 당대 남미를 수놓은 공격형 미드필더였는데 농구선수를 했어도 잘했을 거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드리블이 훌륭했으며 뒤에도 눈이 달려있다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로 드넓은 시야와 창의적인 패싱력을 겸비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보여줬으며 양발을 모두 잘 써 뛰어난 슈팅력을 보여줬으며 의사 면허를 땄을 정도로 지적이며 냉정한 성격이라 어려운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코린치안스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캄파오네투 파울리스타에서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80년에는 브라질 세리 A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1983년에는 공식 경기 52경기에 출전해 무려 36골을 득점하며 남미 올해의 선수상을 타내는 우수한 활약을 보여줬으며 피오렌티나에서도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지만 향수병으로 인해 브라질 무대로 복귀하며 플라멩구로 이적해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1회 우승을 이뤄내기도 했으며 브라질 무대에 머무는 동안 1983년 남미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 3회 선정되었다.

셀레상에서는 1982 스페인 월드컵을 앞두고 브라질 전국 리그에서는 라이벌리를 형성한 지쿠, 파우캉, 세레주와 함께 황금의 사중주를 구성하며 주장으로 이들을 이끌며 1970 브라질에 버금간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정작 대회 2차 리그에서 탈락했으며 1983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준우승에 그쳤으며 이후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승부차기 끝에 8강에서 탈락하는 등 결과적으로는 좋지 못했지만 팬들에게 우수한 퍼포먼스 자체는 인정을 받았다.

 

4위 카카

 


생년월일: 1982년 4월 22일
A매치 기록: 90경기 29골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AC 밀란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2000년대 하반기 브라질을 대표했던 트레콰르티스타이자 축구 선수로 화려한 볼 컨트롤 능력과 창의적인 킬패스는 물론 일명 치고 달리기를 활용해 역습 상황에서 상대 수비 라인을 순식간에 붕괴시키고 1선으로 침투해 득점하는 데 굉장히 능했으며 그의 스피드가 어찌나 빨랐던지 인테르의 전설적인 수비수 왈테르 사무엘은 카카의 연속적인 방향 전환을 따라가려다가 무릎이 돌아가버려 시즌 아웃을 당하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AC 밀란에서 전성기를 보냈으며 상 파울루에서 영입된 이후 후이 코스타와 히바우두 같은 거물들과의 주전 경쟁을 이기고 로쏘네리의 트레콰르티스타이자 에이스로 활약하며 2003-04 시즌에는 10골을 득점하며 세리에 A 우승을 이끌었으며 2006-07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에서만 10골 3도움을 기록하며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개인적으로도 득점왕과 UEFA 클럽 올해의 선수상을 석권했으며 2007-08 시즌과 2008-09 시즌에는 연속으로 리그 15골을 돌파했으며 거액의 이적료를 안겨주고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으나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부상 등으로 아쉬운 활약을 보여줬다. 

특히 밀란에 머무는 동안 카카의 개인상 이력은 굉장히 화려한데 2004-05 시즌 UEFA 클럽 올해의 미드필더, 2006-07 시즌 UEFA 클럽 올해의 공격수와 UEFA 클럽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UEFA 올해의 팀 3회 선정, 세리에 A 올해의 외국인 3회 선정과 올해의 선수 2회 선정은 물론 발롱도르 상위 11등 안에 네 번 들어 2007년에는 1위를 차지해 발롱도르를 수상했으며 그 해에 피파 올해의 선수상과 월드 사커지 선정 올해의 선수상은 물론 옹즈도르까지 수상하며 부정할 수 없는 2007년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다.

셀레상에서는 한일 월드컵에서 백업으로 우승을 경험한 것을 시작으로 2005 컨페드컵 우승과 2009 컨페드컵 우승을 경험했으나 2006 독일 월드컵과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연달아 8강에서 탈락하며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3위 호베르투 히벨리누

 


생년월일: 1946년 1월 1일
A매치 기록: 92경기 26골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코린치안스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펠레 이후, 지쿠 이전 브라질 대표팀의 아이콘이었던 선수로 플립플랩 드리블의 시조로 화려한 드리블을 보여줬으며 원자폭탄 킥이라 불렸던 매서운 왼발 프리킥을 보여줬다. 즉 킥과 드리블, 패스에서 모두 완벽한 모습을 보이는 플레이메이커였다.

코린치안스와 플루미넨시에서 전성기를 누렸으며 플루미넨시에서는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2연패를 이뤄냈으며 1971년에는 세리 A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으며 남미 올해의 선수 투표 10위 안에 네 번 들어 1977년에는 2위를 달성했다.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 지역예선과 본선에서 전승 우승을 거두며 화려하게 자신을 세상에 알린 히벨리누는 1970년에는 대회 올스타에 선정되었고 1974 서독 월드컵에서도 팀의 핵심 선수로 팀 공격을 이끌며 팀이 4위에 올라서는데 공헌했다.


 

2위 지지뉴

 


생년월일: 1921년 9월 14일
A매치 기록: 53경기 30골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63kg
주 소속팀: 플라멩구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펠레 이전 브라질 축구의 아이콘이었던 선수로 인사이드 포워드에게 필요한 모든 덕목을 가지고 있던 창의적인 플레이메이커로 이름을 날렸으며 이외에도 하프백이나 전방 공격수로도 훌륭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선수라 풋볼 마스터, 혹은 대가라는 뜻의 마에스트레라 불렸다.

플라멩구와 방구 AC에서 전성기를 누린 지지뉴는 전자의 클럽에서는 캄파오네투 카라오카 3회 우승을 이뤄내며 승리의 급행열차라 불리며 남미 최고의 클럽으로 군림한 바스쿠 다 가마 왕조를 잘 견제했다. 전성기 이후에 상파울루에서는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우승을 이뤄냈다. 지지뉴 개인도 방구에서 뛰던 1951년에는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득점왕에도 오르며 아데미르와 함께 브라질 최고의 스타로 군림했다.

지지뉴의 위대한 활약은 셀레상에서도 이어졌는데 코파 아메리카에 여섯 번 출전해 1949년 대회 우승과 네 번의 준우승을 기록했으며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팀은 마라카냥에서 우루과이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지지뉴는 골든볼을 수상했다.

 

1위 지쿠

 


생년월일: 1953년 3월 3일
A매치 기록: 71경기 46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플라멩구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1980년대 상반기를 수놓은 당대 최고의 선수이자 공격형 미드필더로 탄탄한 기본기와 교묘한 드리블, 창의적인 패싱 스킬과 양발 슈팅 스킬을 겸비했으며 스트라이커들을 초월하는 득점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특히 프리킥에 능해 프리킥 통산 최다골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전성기의 대부분을 플라멩구에서 보낸 구단 통산 최다 득점자 지쿠는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7회 우승과 브라질 전국리그인 세리 A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개인적으로도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득점왕 5회, 브라질 전국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5회 선정되었으며 1981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결승 1차전에서 멀티골을 넣어 2-1 승리를 이뤄냈으며 1승 1패 상황 최종전에서도 멀티골을 넣으며 2-0으로 승리하는데 크게 기여해 우승은 물론 대회 MVP를 수상했으며 인터콘티넨탈컵에서는 붉은 제국이라 불리는 리버풀을 3-0으로 완파하며 대회 MVP를 수상했다. 유럽 무대 도전을 위해 이탈리아 세리에 A의 우디네세로 이적해 활약하며 1983-84 시즌 올해의 선수에 올랐으나 향수병으로 다시 플라멩구로 돌아갔으며 말년에는 J 리그에서 새로운 도전을 했다.

셀레상에서는 개인은 훌륭했지만 팀 성적은 아쉬웠는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는 아르헨티나와 페루의 승부조작 의혹으로 2차 조별리그 2위로 밀려나 3위의 성적에 만족해야 했으며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본인은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드는 활약을 보이고도 이탈리아에게 역전패하며 아쉽게 탈락했다.

지쿠는 개인적으로도 1977년, 1981년, 1982년 세 차례나 남미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1983년에는 월드 사커지 선정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선정 인원 외 추가할 수 있는 명단

 

 

치네지뉴

 


생년월일: 1935년 9월 15일
A매치 기록: 17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파우메이라스

 

마리우 세르지우

 


생년월일: 1950년 9월 7일
A매치 기록: 8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SC 인테르나시오나우

 

 

아지우리우

 


생년월일: 1956년 5월 15일
A매치 기록: 2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6kg
주 소속팀: 플라멩구

 

헤나투

 


생년월일: 1957년 2월 21일
A매치 기록: 22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상 파울루

 

네투

 


생년월일: 1966년 9월 9일
A매치 기록: 16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코린치안스

 

자우밍야

 


생년월일: 1970년 12월 9일
A매치 기록: 14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엘라누

 

 

생년월일: 1981년 6월 14일
A매치 기록: 50경기 9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65kg
주 소속팀: 산투스 FC

 

 

자드송

 


생년월일: 1983년 10월 5일
A매치 기록: 8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7kg
주 소속팀: 샤흐타르 도네츠크

 

지에구

 


생년월일: 1985년 2월 28일
A매치 기록: 34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베르더 브레멘

 

헤나투 아우구스투

 


생년월일: 1988년 2월 8일
A매치 기록: 32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6kg
주 소속팀: 코린치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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