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팀

국대 올스타 짜보기/북유럽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팀

토르난테 2022. 8. 24.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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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

 

별칭: 바이킹 군단, 블라굴트

월드컵: 출전 12회, 준우승 1회

유로: 출전 6회, 4강 1회

올림픽: 출전 10회, 금메달 1회

최다 출전 선수: 안데르스 스벤손, 148경기

최다 득점 선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62골

 


베스트 11

 

골키퍼

 

이름: 로니 헬스트룀
생년월일: 1949년 2월 21일
신체조건: 키 192cm / 몸무게 84kg
포지션: 골키퍼

대표팀 활약 기간: 1968~1980
A매치 기록: 77경기 81실점 / 28클린시트

 

1970년대 유럽 성상급 골키퍼로 안정적인 수비 조율 능력과 뛰어난 선방 능력을 겸비했다.

독일 분데스리가의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 활약하며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을 받은 이력이 있는 헬스트룀은 세 번의 월드컵에 참가해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313분 무실점 행진을 달성하며 팀의 8강 2차 조별 리그 진출에 공을 세웠다.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격인 스웨덴 굴드볼렌을 2회 수상한 헬스트룀은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4번 들었고 1978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6위에 랭크되었으며 이런 퍼포먼스를 인정받아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센터백

 

이름: 글렌 히센
생년월일: 1959년 10월 30일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80kg
포지션: 센터백, 리베로

대표팀 활약 기간: 1981~1990
A매치 기록: 68경기 7골

 

1980년대 하반기에 전성기를 누린 당대 유럽 최고의 센터백 중 한 명으로 강력한 대인 수비 능력괴 세련된 수비 스킬을 앞세워 활약했으며 리베로 역할도 곧잘 수행했다.

예테보리에서 UEFA컵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리버풀의 20세기 마지막 리그 우승을 이끈 히센은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는데 특히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경이로운 활약을 보여주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 알렉스 퍼거슨을 감동시켰으며 퍼거슨은 실제로 저녁 식사 자리까지 만들어가며 히센의 영입을 원했지만 그는 리버풀로 떠났다는 일화도 있다.

히센은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인 스웨덴 굴드불렌을 두 번이나 수상했으며 1987년에는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상술한 활약들을 인정받아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센터백

 

이름: 파트릭 안데르손
생년월일: 1971년 8월 18일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5kg
포지션: 센터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92~2002
A매치 기록: 96경기 3골

 

1990년대 하반기 분데스리가를 대표하던 스토퍼로 압도적인 제공권 장악 능력과 강력함과 세련됨을 겸비한 날카로운 태클 솜씨로 공격수를 잡아먹었다.

분데스리가의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와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으며 후자의 구단에서는 2000-01 시즌 분데스리가와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낸 안데르손은 대표팀에서도 유로 1992와 1994 미국 월드컵에서 바이킹 군단의 준결승행에 공을 세웠으며 유로 2000과 2002 한일 월드컵에도 참가했다.

파트릭 안데르손은 1995년과 2001년에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인 스웨덴 굴드불렌을 수상했으며 2001년에는 UEFA 올해의 팀에도 선정되었으며 분데스리가와 바이킹 군단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라이트백

 

이름: 오르바르 베리마크
생년월일: 1930년 11월 16일
신체조건: 키 180cm
포지션: 라이트백, 센터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51~1965
A매치 기록: 94경기 0골

 

북유럽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백으로 평가받으며 견고한 일대 일 수비 능력과 한 박자 빠르게 들어오는 슬라이드 태클을 앞세워 팀의 오른쪽을 철통같이 지켜냈다.

외레브로 SK에서 전성기를 누린 베리마크는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 견고한 수비로 스웨덴 대표팀의 현재로선 유일한 월드컵 결승 진출을 이끌어내며 복수의 매체로부터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1958년에는 상술한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인 스웨덴 굴드불렌에 선정되었으며 2003년에는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레프트백

 

이름: 에릭 닐손
생년월일: 1916년 8월 6일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84kg
포지션: 레프트백, 센터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38~1952
A매치 기록: 57경기 0골

 

1950년대 이전 북유럽 최고의 풀백으로 강력한 피지컬로 상대 공격수를 위협해 상대방은 에릭 닐손이 있으면 친선 경기를 하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을 정도로 신체 능력이 우수했으며 우수한 수비 포지셔닝과 훌륭한 전술안을 갖췄다.

선수생활을 모두 말뫼에서 보냈으며 2부 리그에 머물던 말뫼를 승격시킨 이후에 알스베스칸 5회 우승을 이끌어낸 에릭 닐손은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14년간 활약했는데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팀의 막내로 출전했으며 세계 대전 이후에 열린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팀의 주장으로 출전해 후자의 대회에서는 주장으로 팀의 3위를 이끌어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으며 1948 런던 올림픽에서는 그레놀리 삼총사의 뒤를 받혀주며 금메달을 획득했다.

상술한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인해 1950년에는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인 스웨덴 굴드불렌을 수상한 에릭 닐손은 상술한 활약을 인정받아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었다.

 

수비형 미드필더

 

이름: 글렌 스트룀베리
생년월일: 1960년 1월 5일
신체조건: 키 191cm / 몸무게 85kg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82~1990
A매치 기록: 52경기 7골

 

일명 금발의 바이킹이라 불렸던 1980년대 스웨덴과 이탈리아 무대에서 활약했던 당대 정상급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90분 내내 지치지 않고 왕성한 활동량으로 아군과 상대 진영을 가리지 않고 뛰어다녀 마라톤 선수라 불렸으며 거대한 피지컬로 경합 상황에서 상대를 압도하기도 했다.

예테보리의 UEFA컵 우승을 이뤄낸 스트룀베리는 아탈란타에서는 1986-87 시즌 코파 이탈리아 준우승을 이뤄내며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평가받았을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스트룀베리는 대표팀에서도 1980년대 내내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했으나 암흑기라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다가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천신만고 끝에 본선에 진출해 활약했다.

스트룀베리는 1985년에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인 굴드불렌을 수상했으며 상술한 활약상을 인정받아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라이트 메짤라

 

이름: 군나르 그렌
생년월일: 1920년 10월 31일
신체조건: 키 175cm
포지션: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윙어

대표팀 활약 기간: 1940~1958
A매치 기록: 57경기 32골

 

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 초반에 이름을 날렸던 그레노리 삼총사의 일원으로 영리한 공간 활용 능력과 동료 활용 능력은 물론 우수한 판단력으로 최적의 위치로 패스를 찔러줬으며 득점력도 훌륭했으며 특히 높은 축구 지능으로 유명해 교수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예테보리에서 알스베스칸 우승을 이뤄냈으며 1947년에는 득점왕도 차지했던 그렌은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그레노리 트리오를 구축해 대한민국을 12-0으로 대파하는 등의 활약을 하며 1948 런던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으며 이후 세리에 A의 AC 밀란으로 이적하면서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의 규정에 의해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으나 1958 스웨덴 월드컵을 앞두고 리드홀름, 스코그룬트 등 해외파들과 함께 대표팀에 복귀해 스웨덴의 결승 진출에 공을 세웠다.

1946년에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인 굴드불렌을 최초로 수상했던 그렌은 상술한 활약을 바탕으로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레프트 메짤라

 

이름: 닐스 리드홀름
생년월일: 1922년 10월 8일
신체조건: 키 185cm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포워드, 중앙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47~1958
A매치 기록: 23경기 12골

 

1950년대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창의적이면서도 우수한 축구 지능과 뛰어난 리더십, 그리고 유려한 볼 컨트롤 능력을 겸비했으며 정교한 패싱력과 넓은 시야를 지녔으며 2년간 패스미스를 하지 않다가 2년 만에 패스미스를 하자 관중들이 박수를 쳤다는 일화도 있다.

자국 리그의 IFK 노르셰핑에서 알스베스칸 2연패를 이뤄낸 리드홀름은 바이킹 군단의 일원으로 1948 런던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으나 이후 프로리그인 세리에 A의 AC 밀란으로 이적하면서 아마추어 선수만 대표팀에 뽑는다는 스웨덴 축구 협회의 방침으로 오랫동안 대표팀에 뽑히지 못하다가 1958 스웨덴 월드컵을 앞두고 이 룰이 해제되자 다시 복귀해 조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조국의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스웨덴 대표팀에서는 올림픽 금메달과 월드컵 준우승을, AC 밀란에서는 세리에 A 4회 우승과 라틴 컵 2회 우승과 유러피언컵 준우승이라는 대단한 업적을 세운 리드홀름은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과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에 모두 헌액되었다.

 

라이트윙

 

이름: 쿠르트 함린
생년월일: 1934년 11월 19일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0kg
포지션: 라이트윙, 레프트윙

대표팀 활약 기간: 1953~1965
A매치 기록: 32경기 17골

 

줄리뉴, 가린샤와 함께 당대 최고의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평가받았던 선수로 새라고 불렸을 정도로 민첩한 몸놀림과 양발을 가리지 않는 강력한 대포알 슈팅으로 득점에도 능했던 윙어다.

피오렌티나에서 전성기를 구가하며 컵 위너스컵 우승과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AC 밀란에서 말년을 보내며 컵 위너스컵 우승과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룬 함린은 대표팀에서도 대단한 활약을 펼치며  1958 스웨덴 월드컵에 참가해 4골을 기록하며 바이킹 군단의 결승 진출에 크게 공헌했으나 브라질 대표팀의 압도적인 퍼포먼스에 가려지기도 했다.

1958 스웨덴 월드컵의 활약으로 발롱도르 4위에 랭크된 함린은 이탈리아 무대에서와 바이킹 군단에서 이룬 업적을 인정받아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레프트윙

 

이름: 레나르트 스코그룬트
생년월일: 1929년 12월 24일
신체조건: 키 170cm
포지션: 레프트윙

대표팀 활약 기간: 1950~1964
A매치 기록: 11경기 1골

 

1950년대 인테르의 슈퍼 스타로 스피드와 기본기를 겸비한 당대 최고의 왼발 드리블 돌파의 스페셜리스트로 금발을 한 선수가 엄청난 스피드로 경기장을 뛰어다는다고 흔들리는 옥수숫대라 불렸다.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 팀을 결승 리그에 올리는 과정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준 후 인테르로 이적해 활약하며 밀란과 유벤투스를 밀어내고 네라주리 군단의 세리에 A 2연패를 이뤄낸 스코그룬트는 이탈리아로 이적해 프로선수가 된 대가로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지만 규정이 바뀌어 1958 스웨덴 월드컵에는 대표선수로 함린, 시몬센, 리드홀름, 그렌과 같은 왕년의 세리에 A 스타들과 함께 공격 편대를 이루며 조국을 월드컵 결승까지 올려놓았으나 펠레의 맹활약으로 인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다수의 매체에서 1958 스웨덴 월드컵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된 스코그룬트는 사후 그의 업적을 기려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스트라이커

 

이름: 군나르 노르달
생년월일: 1921년 10월 19일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90kg
포지션: 스트라이커

대표팀 활약 기간: 1942~1948
A매치 기록: 33경기 43골

 

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 초반 최고의 중앙 공격수로 평가받았던 188cm에 90kg에 달하는 엄청난 피지컬에서 나오는 강력한 몸싸움 능력과 벼락같은 슈팅력으로 상대 골키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스웨덴 시절 IFK 노르셰핑에서 알스베스칸 4연패를 이뤄낸 노르달은 스웨덴 대표팀 소속으로 1948 런던 올림픽에 참가해 그레노리 트리오의 중심으로 활약하며 금메달을 획득하는데 큰 공을 새웠으나 노르달이 세리에 A의 AC 밀란으로 이적하며 프로가 되자 아마추어들만 대표팀으로 뽑는 정책으로 인해 1950년대에는 스웨덴 대표팀으로 활약하지 못하는 비극을 겪었으며 이 규정이 해제된 뒤에는 노르달의 기량이 쇠퇴해 1958 스웨덴 월드컵 명단에 합류하지 못했다.

세리에 A 외국인 최다 득점자이자 세리에 A와 알스베스칸에서 각각 5회의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1948 런던 올림픽 득점왕을 차지해 통산 11회의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1948년에는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은 굴드불렌을 수상한 노르달은 상술한 활약상을 인정받아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감독

 

이름: 조지 레이너

출생일: 1907년 1월 13일

부임기간: 1946~1954, 1956~1958, 1961

 

스웨덴 축구의 전성시대를 이끈 잉글랜드인 명장으로서 스웨덴의 여러 클럽의 감독으로 재직하는 동안 대표팀 감독을 겸직하며 스웨덴에게 선진 축구인 잉글랜드 축구의 전략전술을 가르쳤다.

냉철한 두뇌와 열정적인 태도를 겸비한 레이너는 바이킹 군단을 이끌며 1948 런던 올림픽 금메달과 1950 브라질 월드컵 3위라는 성적을 이뤄냈으나 이후 핵심 선수들이 프로 선수로 분류되어 대표팀에 뽑히지 못하자 1954 스위스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탈락했으며 이후 1956년에 대표팀에 복귀하는 조건으로 프로 선수들도 대표팀에 기용할 수 있게 규정을 개정할 수 있게 요구해 이를 관철시켰으며 이후 화려한 선수단을 구성해 조국에서 열리는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 결승 진출까지 이끌었다.

 


토르난테 선정 스웨덴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

 


25인 스쿼드 / 서브 14인

 

 

이름: 토마스 라벨리
생년월일: 1959년 8월 13일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2kg
포지션: 골키퍼

대표팀 활약 기간: 1981~1997
A매치 기록: 143경기 133실점 / 58클린시트

 

1980년대와 90년대에 활약했던 당대 유럽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화려하진 않았지만 우수한 위치선정과 신속정확한 판단력으로 안정적으로 골문을 지켰으며 특히 예측력이 뛰어나 페널티킥 선방에 능했다.

외스테르스와 예테보리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개인 통산 알스베스칸 9회 우승을 이뤄낸 라벨리는 대표팀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을 시작으로 유로 1992, 그리고 1994 미국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골문을 지키며 두 대회에서 바이킹 군단의 준결승에 공헌했는데 특히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루마니아와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 단 페트레스쿠와 미오드라그 벨로데디치의 킥을 막아내며 조국을 준결승에 올린 활약은 백미였다.

1981년에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격인 스웨덴 굴드불렌을 받았으며 1994년에는 IFFHS 선정 세계 최고의 골키퍼에서 2위에 올랐으며 스웨덴 대표팀의 A매치 통산 출전 2위에 랭크된 라벨리는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름: 칼레 스벤손
생년월일: 1925년 11월 11일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6kg
포지션: 골키퍼

대표팀 활약 기간: 1948~1958
A매치 기록: 73경기 116실점 / 16클린시트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바이킹 군단의 영광을 이끌었던 골키퍼로 강렬한 카리스마로 수비라인을 지휘했으며 적절한 위치를 선점했으며 재빠른 반사신경에서 나오는 슈퍼세이브를 보여줬다.

헬싱보리에서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보낸 칼레 스벤손은 1948 런던 올림픽에서 그레놀리 삼총사의 뒤를 받쳐주며 금메달을 따는데 공을 세웠으며 그레놀리 삼총사가 이탈리아로 떠나 프로 무대에 데뷔하며 국가대표팀 자격을 상실한 뒤에도 묵묵히 골문을 지키며 1950 브라질 월드컵 3위, 1952 헬싱키 올림픽 동메달이라는 성적을 이뤄냈으며 프로 선수가 대표팀에 뛸 수 있게 규정이 바뀐 뒤에 열린 1958 스웨덴 올림픽에서는 조국의 결승 진출에 큰 공을 세웠으나 브라질 대표팀의 화력은 막아내지 못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1952년에 스웨덴 올림픽 대표팀의 동메달을 이끈 활약을 인정받아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인 스웨덴 굴드불렌을 받았던 칼레 스벤손은 상술한 활약들을 인정받아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름: 벵트 구스타프손
생년월일: 1928년 1월 13일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81kg
포지션: 센터백, 라이트백, 레프트백, 수비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51~1963
A매치 기록: 57경기 0골

 

1950년대와 60년대에 걸쳐 활약했던 수비수로 탁월한 수비라인 지휘 능력과 견고한 대인 수비 능력은 물론 수비형 미드필더 출신답게 정교한 롱패스를 통한 빌드업에도 능했다.

IFK 노르셰핑과 아탈란타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으며 전자의 구단에서는 알스베스칸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바이킹 군단에서도 팀의 1952 헬싱키 올림픽 동메달과 1958 스웨덴 월드컵 준우승을 이루는데 공헌했다.

1953년에는 스웨덴 굴드불렌을 수상한 구스타프손은 상술한 활약을 인정받아 2021년에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름: 비외른 노르드크비스트
생년월일: 1942년 10월 6일
신체조건: 키 178cm
포지션: 센터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63~1978
A매치 기록: 115경기 0골

 

1970년대 유럽 최고의 스토퍼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날렸던 선수로 강력한 대인 방어 능력과 선수단을 아우르는 리더십을 겸비했다.

노르셰핑과 PSV 에인트호번에서 전성기를 누린 노르드크비스트는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하며 1970 멕시코 월드컵부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까지 주장으로 활약했으며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주장 자리는 보 라르손에게 양보했지만 뛰어난 퍼포먼스를 펼치며 조국의 8강 2차 조별리그 진출에 공헌했다.

1968년에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인 스웨덴 굴드불렌을 수상했으며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 최초로 센츄리 클럽에 가입한 노르크드비스트는 상술한 활약들을 인정받아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름: 롤란드 닐손
생년월일: 1963년 11월 27일
신체조건: 키 179cm
포지션: 라이트백, 센터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86~2000
A매치 기록: 116경기 1골

 

1990년대 스웨덴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라이트백으로 지칠 줄 모르는 체력에서 나오는 적극적인 공수 가담 능력과 수비상황에서의 안정적인 수비력을 바탕으로 활약했다.

예테보리 소속으로 알스베스칸 3회 우승과 UEFA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셰필드 웬즈데이 소속으로 리그컵 우승을 이뤄내 활약한 롤란드 닐손은 스웨덴 대표팀 소속으로 1988 서울 올림픽을 시작으로 각각 두 번의 월드컵과 유럽선수권대회에 나섰으며 유로 1992와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조국의 준결승 진출에 큰 공을 세웠다.

롤란드 닐손은 1996년에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인 굴드블렌을 수상했다.

 

 

이름: 스테판 슈바르츠
생년월일: 1969년 4월 18일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4kg
포지션: 레프트백, 레프트윙,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90~2001
A매치 기록: 69경기 6골

 

1990년대 유럽 무대에서 다재다능한 선수로 이름을 날린 슈바르츠는 우수한 스테미너를 바탕으로 폭넓은 지역에서 공수 양면으로 뛰어난 영향력을 보여줬으며 강력한 중거리 슈팅은 물론 우수한 축구 지능을 앞세워 레프트백은 물론 중앙 미드필더와 수비형 미드필더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다.

포르투갈의 벤피카와 잉글랜드의 아스날, 그리고 이탈리아의 피오렌티나와 비첸자 등 세계 여러 무대에서 활약했던 슈바르츠는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1990 이탈리아 월드컵을 시작으로 1992 UEFA 유로와 1994 미국 월드컵에서 팀의 준결승 진출에 공헌했다.

1999년에는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인 굴드불렌을 수상했던 슈바르츠는 상술한 활약을 인정받아 2020년에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름: 요나스 테른
생년월일: 1967년 3월 20일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3kg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리베로

대표팀 활약 기간: 1987~1997
A매치 기록: 75경기 6골

 

1980년대 하반기와 1990년대 상반기에 활약했던 중원 자원이자 리베로로 스피드가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우수한 볼 컨트롤 능력과 넓은 시야에서 나오는 양질의 패스로 팀의 빌드업을 주도했으며 기습적인 슈팅으로 득점하거나 분위기를 가져오는 부분에도 능했다.

말뫼와 벤피카를 거쳐 나폴리와 AS 로마에서 활약했으며 벤피카 시절에는 유러피언 컵 결승에도 올라본 테른은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1990 이탈리아 월드컵을 시작으로 유로 1992와 1994 미국 월드컵에서 바이킹 군단의 준결승 진출에 큰 공을 세웠다.

1989년에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인 굴드불렌을 수상한 테른은 상술한 활약을 인정받아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름: 보 라르손
생년월일: 1944년 5월 5일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0kg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스트라이커

대표팀 활약 기간: 1964~1978
A매치 기록: 70경기 17골

 

1960년대 하반기와 70년대 상반기에 이름을 날렸던 미드필더로 높은 전술안과 우수한 체력에서 나오는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경기장을 지배했으며 골 결정력도 출중해 가끔씩 스트라이커로 기용되기도 했다.

말뫼와 슈투트가르트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전자의 구단에서는 알스베스칸 6회 우승과 득점왕 3회 수상을 이뤄냈으며 후자의 구단에서는 1968-69 시즌 분데스리가 MVP를 타낸 보 라르손은 대표팀에서도 1970 멕시코 월드컵부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까지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주장 완장을 차고 바이킹 군단의 8강 2차 조별 리그 진출을 이뤄냈다.

1965년과 1973년에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인 굴드불렌을 수상한 보 라르손은 상술한 활약상을 바탕으로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름: 안데르스 스벤손
생년월일: 1976년 7월 17일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7kg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99~2013
A매치 기록: 148경기 21골

 

2000년대 바이킹 군단을 이끌었던 중원 사령관으로 피지컬은 평범했으며 체력이 좋진 않았지만 드넓은 시야와 압도적인 왼발 킥력을 바탕으로 양질의 전진패스와 롱패스를 적재적소에 공급하며 팀의 중원에서 플레이메이킹을 담당했으며 대표팀에서든 클럽팀에서든 세트피스 전담 키커를 도맡았다.

엘프스보리와 사우스햄튼에서 전성기를 누린 스벤손은 2002 한일 월드컵에서 국제무대에 데뷔해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환상적인 프리킥 골을 득점해 바이킹 군단이 조별리그를 1위로 통과하는데 기여했으며 유로 2004에서도 팀의 8강 진출에 공헌했으며 이후에도 2006 독일 월드컵과 유로 2008, 그리고 유로 2012에도 주축으로 참여하며 스웨덴 국가대표팀 통산 A매치 최다 출전자에 이름을 올렸다.

 

 

이름: 토마스 브롤린
생년월일: 1969년 11월 29일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6kg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라이트윙, 포워드

대표팀 활약 기간: 1990~1995
A매치 기록: 47경기 27골

 

스웨덴의 마라도나라 불렸던 선수로 별명에 맞는 뛰어난 센스와 우수한 볼 컨트롤에서 나오는 현란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진을 흔들었다.

이탈리아 세리에 A의 파르마에서 전성기를 누린 브롤린은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1990 이탈리아 월드컵을 시작으로 유로 1992와 1994 미국 월드컵에서 팀을 준결승에 올려놓는데 공헌했으며 유로에서는 공동 득점왕에 올랐고 미국 월드컵에서는 대회 올스타팀에 들었다.

1994 미국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발롱도르 4위에 올랐으며 1990년과 1994년에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인 굴드볼렌을 수상한 브롤린은 비록 전성기는 짧지만 굵은 활약을 바탕으로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름: 프레디 융베리
생년월일: 1977년 4월 16일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69kg
포지션: 라이트윙, 공격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98~2008
A매치 기록: 75경기 14골

 

2000년대 상반기 스웨덴 축구를 대표했던 윙어로 적토마라 불렸을 정도로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진에 균열을 냈으며 우수한 지구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양 측면 모두에서 뛸 수 있었다.

아스널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2003-04 시즌 무패우승과 2005-06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에 큰 공을 세운 융베리는 아스날에서 우수한 활약상을 바이킹 군단에서도 이어가며 팀의 에이스로 활약해 두 번의 월드컵과 세 번의 유럽선수권대회에 출전해 두 번의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을 이뤄냈으며 UEFA 유로 2004에서는 8강의 성적을 냈으며 특히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잉글랜드와 한 조가 되었음에도 죽음의 조에서 1위를 차지했다.

융베리는 2002년과 2006년에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인 굴드볼렌을 수상했으며 2001-02 시즌에 ESM 올해의 팀에 들었다.

 

 

이름: 스벤 리델
생년월일: 1905년 1월 14일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4kg
포지션: 포워드, 스트라이커

대표팀 활약 기간: 1923~1932
A매치 기록: 43경기 49골

 

1920년대 스웨덴 축구를 이끌었던 스웨덴 축구 최초의 스타 중 한 명으로 주로 인사이드 포워드 자리에서 활약하며 화려한 볼 컨트롤을 활용한 교묘한 드리블과 강력한 슈팅력을 이용한 득점력으로 이름을 날리며 팬들로부터 트롤구벤, 즉 괴물이라 불렸다.

외리튀레에서 활약했던 스벤 리델은 1924 파리 올림픽에서 5골을 득점했으며 동메달 결정전 재경기에서 선제골을 득점하며 네덜란드를 꺾고 동메달을 획득하는데 공을 세웠다.

스웨덴 대표팀 통산 득점 2위에 랭크된 리델은 사후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름: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생년월일: 1981년 10월 3일
신체조건: 키 195cm / 몸무게 95kg
포지션: 스트라이커, 포워드

대표팀 활약 기간: 2001~
A매치 기록: 121경기 62골

 

2000년대와 2010년대 세리에와 리그앙을 정복한 스트라이커로 강력한 몸싸움 능력과 부드러운 드리블과 유려한 볼 컨트롤을 모두 겸비했으며 직접 득점하는 능력은 물론 창의적인 패스로 찬스를 만드는 부분에서도 능했으며 2010-11 시즌 AC 밀란 이적 이후에는 약점으로 지적받던 제공권도 극복했다.

여러 클럽을 돌며 리그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으며 특히 인테르에서는 세리에 A 3연패를, PSG에서는 리그앙 4연패를 이뤄냈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대표팀에서는 예선전에는 강력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두 번의 월드컵과 네 번의 유럽선수권대회에서 본선에 진출했지만 본선 무대에서는 인상적인 활약은 펼치지 못했다.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11회나 선정되었으며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인 굴드불렌에 12회나 선정되었지만 국가대항전 본선 무대에서의 활약이 매우 저조해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를 서브로 두고 군나르 그렌을 주전으로 선택했다.

 

 

이름: 헨릭 라르손
생년월일: 1971년 9월 20일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4kg
포지션: 스트라이커

대표팀 활약 기간: 1993~2009
A매치 기록: 106경기 37골

 

1990년대 하반기와 2000년대 상반기에 스웨덴 축구를 이끌었던 공격수로 키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예술적인 볼 컨트롤과 탄탄한 바디 밸런스, 그리고 영리하게 빈 공간으로 파고들어 냉정하게 득점했다.

셀틱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유러피언 골든슈를 수상했으며 FIFA에서 작은 연못에 사는 큰 물고기라 불렀을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던 라르손은 대표팀에서는 1994 미국 월드컵 3,4위 결정전에서 데뷔해 불가리아를 상대로 득점하며 스웨덴의 3위를 이끌었으며 이후에도 두 번의 월드컵과 세 번의 유럽 선수권 대회에 출전해 주전으로 활약하며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나이지리아 전에서 멀티골을 득점하며 죽음의 F조에서 1위로 올라서는데 공을 세웠으며 유로 2004에서는 바이킹 군단을 8강에 올려놓았다.

1998년과 2004년에 두 번의 굴드불렌을 수상한 라르손은 스코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도 유력하다.

 


25인 스쿼드 완성판

 

토르난테 선정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25인 스쿼드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리저브 팀 11인

 

 

이름: 안드레아스 이삭손
생년월일: 1981년 10월 3일
신체조건: 키 200cm / 몸무게 88kg
포지션: 골키퍼

대표팀 활약 기간: 2002~2016
A매치 기록: 133경기 131실점 / 52클린시트

 

21세기 스웨덴 최고의 골키퍼로 2m의 큰 키에서 나오는 공중볼 경합 능력이 우수했으며 안정적으로 골문을 지키는데 능했다.

스타드 렌과 PSV 에인트호벤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이삭손은 대표팀에서도 2002 한일 월드컵에 백업으로 데뷔한 이래 네 번의 유럽 선수권 대회와 2006 독일 월드컵에 나섰다.

바이킹 군단의 A매치 통산 최다 출전 3위에 오른 이삭손은 스웨덴 올해의 골키퍼에 10회 선정되었다.

 

 

이름: 오케 요한손
생년월일: 1928년 3월 19일
신체조건: 키 178cm
포지션: 센터백, 리베로, 수비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55~1965
A매치 기록: 53경기 1골

 

1950년대 스웨덴 축구를 이끈 센터 하프이자 최초로 리베로 룰을 도전했던 선수 중 한 명으로 우수한 수비 조율 능력과 뛰어난 예측력으로 영리한 플레이를 하던 수비수였으며 예술적인 태클로 지상에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은 물론 공중볼 경합 승률도 좋았던 완벽한 수비수였으며 브라질의 전설적인 윙어 가린샤에 의해 "상대하기 가장 힘들었던 선수 중 한 명이었다."라고 평가받았다.

노르셰핑의 원 클럽맨으로 알스베스칸 6회 우승을 이끈 요한손은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했으나 정작 1958 스웨덴 월드컵을 앞두고 큰 부상을 당했으며 회복했음에도 컨디션 문제로 경기에 나서지 못했으며 그가 결승전에 나섰더라면 스웨덴이 브라질을 누르고 월드컵을 우승했을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었을 정도로 기량이 뛰어났던 선수다.

1957년에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인 스웨덴 굴드불렌을 수상한 요한손은 상술한 재능과 업적을 인정받아 2014년에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름: 올로프 멜베리
생년월일: 1977년 9월 3일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84kg
포지션: 센터백, 라이트백

대표팀 활약 기간: 2000~2012
A매치 기록: 117경기 6골

 

2000년대 스웨덴 축구를 이끈 견고한 피지컬과 빠른 스피드를 겸비한 파이터형 수비수로 마치 바이킹 전사를 연상시키는 적극적인 볼 경합 능력은 물론 빠른 스피드와 성실한 공수가담 능력을 앞세워 라이트백으로 뛰기도 했다.

아스톤 빌라에서 전성기를 누린 멜베리는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첫 메이저 대회인 유로 2000을 포함해 두 번의 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했으며 네 번의 유럽 선수권에 대표팀 주전 멤버로 출전했으며 유로 2004에서는 대회 올스타 스쿼드에 들었을 정도로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2003년에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인 스웨덴 굴드불렌을 수상하고 스웨덴 대표팀의 센츄리 클럽에 들었던 멜베리는 향후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이 유력한 선수로 평가받는다.

 

 

이름: 요아킴 비에르클룬드
생년월일: 1971년 3월 15일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1kg
포지션: 센터백, 라이트백, 레프트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92~2000
A매치 기록: 78경기 0골

 

1990년대에 활약한 수비수로 뛰어난 예측력과 강력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우수한 공중볼 경합 능력을 보여줬으며 빠른 스피드를 겸비해 양 사이드백으로도 뛸 수 있었으며 헌신적인 플레이로 유명했다.

예테보리와 비첸자, 레인저스와 발렌시아 등 여러 클럽에서 활약했던 비에르클룬드는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중앙과 측면을 오가며 1992 UEFA 유로와 1994 미국 월드컵에서 헌신적인 수비를 보여주며 바이킹 군단을 준결승에 올렸으며 유로 2000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다.

 

 

이름: 잉게마르 엘란드손
생년월일: 1957년 11월 16일
신체조건: 키 177cm
포지션: 레프트백, 스트라이커

대표팀 활약 기간: 1978~1985
A매치 기록: 69경기 2골

 

1970년대 후반에 스웨덴 무대에서 전성기를 누린 선수로 초년에는 스트라이커로 뛰었으나 말뫼의 감독 바비 호턴의 지도 아래 레프트백으로 정착해 잠재력을 만개한 선수다.

선수 생활을 오직 말뫼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으로 말뫼에서 리그 우승 2회와 1978-79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결승에 진출하는데 힘을 보탠 엘란드손은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바이킹 군단의 일원으로 활약했으며 이후 1980년대 상반기까지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했다.

 

 

이름: 수네 안데르손
생년월일: 1921년 2월 22일
신체조건: 키 184cm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47~1950
A매치 기록: 28경기 4골

 

1940년대 후반 북유럽 최고의 하프백으로 드넓은 시야와 뛰어난 패싱력을 바탕으로 정교한 롱패스와 숏패스를 적절하게 구사하며 팀의 플레이메이킹을 담당했으며 경기 도중 표정 변화가 거의 없어서 모나리자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AIK에서 활약하며 스웨덴 대표팀에 발탁된 안데르손은 1948 런던 올림픽에서는 그레놀리 삼총사를 지원해 금메달을 따는데 공헌했으며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팀의 결승 리그 진출에 공헌했으나 AS 로마로 떠난 뒤에는 대표팀 생황을 끝냈으며 이후에는 은퇴해 코치로 활약하다가 플레잉 코치로 복귀해 자국 무대에서 활약했다.

상술한 활약을 인정받은 수네 안데르손은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름: 킴 셸스트룀
생년월일: 1982년 8월 24일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9kg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레프트백

대표팀 활약 기간: 2001~2016
A매치 기록: 131경기 16골

 

2000년대 후반과 2010년대 초반 스웨덴의 중원을 책임졌던 다재다능한 미드필더로 공수 밸런스가 우수했으며 강력한 왼발 킥력이 주 무기였으며 중앙과 측면을 가리지 않고 미드필더 전 지역을 소화할 수 있었으며 때로는 레프트백도 봤을 정도로 전술이해도가 우수했다.

올림피크 리옹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티아구, 주니뉴, 툴라랑 등과 함께 강력한 미드필더 라인을 구성했으며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유로 2004에 데뷔했으나 오랫동안 스벤손에 밀려 백업 멤버로 활약하다가 유로 2012에서는 스벤손과 함께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했으며 이후 유로 2016까지 바이킹 군단에서 활약했다.

 

 

이름: 코니 토르스텐센
생년월일: 1949년 8월 28일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4kg
포지션: 라이트윙, 공격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72~1979
A매치 기록: 40경기 7골

 

1970년대 스웨덴과 독일 무대에서 활약한 라이트윙으로 뛰어난 드리블로 상대 수비수를 벗겨낸 뒤 원터치 패스로 찬스를 만드는데 능했으며 날카로운 오른발 슈팅력도 지녔지만 기복이 다소 심한 점은 단점으로 뽑혔다.

자국 클럽 오트비다베리 소속으로 산베리와 호흡을 맞췄으며 유러피언컵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맹활약하며 스카웃되어 바이에른에서 유러피언컵 3연패를 이끈 코르스텐손은 1974 서독 월드컵에서 바이킹 군단을 8강에 올려놓었으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도 참가했다.

바이에른 뮌헨과 대표팀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은 코르스텐손은 2020년에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름: 롤란트 산베리
생년월일: 1946년 12월 16일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2kg
포지션: 레프트윙, 라이트윙, 스트라이커

대표팀 활약 기간: 1969~1976
A매치 기록: 37경기 15골

 

1970년대 서독 분데스리가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엄청난 스피드를 활용하는 전력질주에 이은 크로스로 팀 공격의 포문을 열었으며 직접 득점하는 부분에도 능하고 양발을 모두 능숙하게 활용했기에 왼쪽과 오른쪽을 모두 소화했음은 물론 스트라이커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자국 클럽 오트비다베리 소속으로 코르스텐손과 호흡을 맞췄으며 알스베스칸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도 분데스리가 최고의 윙어 중 하나로 평가받았던 산베리는 바이킹 군단에서도 1974 서독 월드컵에 참가해 코르스텐손과 함께 상대 측면에서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스웨덴의 8강 2차 조별리그 진출을 이끌었다.

롤란트 산베리는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외국인 부문 인터내셔널 클래스 1등을 세 번이나 차지했으며 알스베스칸 득점왕에 두 번 올랐다.

 

 

이름: 오베 킨드발
생년월일: 1943년 5월 16일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66kg
포지션: 스트라이커,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65~1974
A매치 기록: 43경기 16골

 

1960년대와 70년대 스웨덴과 네덜란드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전천후 공격수로 키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재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공간침투 능력과 날카로운 오른발 슈팅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볼 컨트롤이 우수해 처진 공격수나 공격형 미드필더로도 자주 활약했다.

IFK 노르셰핑과 페예노르트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특히 후자의 구단에서는 1969-70 시즌 유러피언 컵 결승에서 연장전에 결승골을 득점해 우승을 이뤄낸 킨드발은 1970 멕시코 월드컵과 1974 서독 월드컵에 주전 공격수로 참가해 후자의 대회에서 팀의 8강 2차 조별리그 진출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1966년에는 알스베스칸 득점왕을 이뤄내며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인 굴드볼렌을 수상했으며 에레데비시 득점왕을 세 번이나 타냈으며 1969년에는 발롱도르 투표에서 4위에 랭크되었다.

 

 

이름: 아그네 시몬손
생년월일: 1935년 10월 19일
신체조건: 키 182cm
포지션: 스트라이커

대표팀 활약 기간: 1957~1967
A매치 기록: 51경기 27골

 

1950년대 후반에 이름을 날렸던 스트라이커로 우수한 득점력은 물론 후방으로 내려와 동료 공격진과 연계하는 부분에도 능했던 컴플리트 포워드였다.

외리튀데에서 활약했으며 레알 마드리드도 거쳤던 시몬손은 바이킹 군단에서 특히 대단한 활약을 펼쳤는데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 4골을 득점하며 조국의 결승 진출을 이끌어냈으며 1959년에는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잉글랜드를 상대로 멀티골을 득점해 스웨덴의 3-2 승리를 이끌었다.

웸블리에서의 경기를 바탕으로 시몬손은 1959년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인 굴드볼렌을 수상했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4위에 랭크되었으며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었다.

마르틴 달린과 케네트 안데르손도 바이킹 군단의 스트라이커로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지만 선수 자체의 명성에서는 킨드발에게 크게 밀리고 대표팀에서의 활약은 시몬센하게 크게 밀렸기에 그들 대신 킨드발과 시몬센을 선택했다.

 


*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시리즈의 선정 기준은 국가대표팀에서의 활약 50%와 선수 자체의 위상 50%를 합산해서 올스타 팀을 짭니다.

* 국가대표팀으로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한 선수는 당연하게도 선정에서 제외합니다.

* 과거 다수의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한 선수들은 더 많은 활약을 한 국가대표팀으로 선정합니다.

* 현역 선수들의 스탯은 2022년 8월 24일 기준입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에펨네이션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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