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영웅들/대한민국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Top 15

토르난테 2022. 4. 4.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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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대한민국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KFA 대한축구협회입니다.
*기록일은 2022년 4월 4일 기준입니다.
*1차 수정일은 2022년 12월 6일 기준입니다.

 


15위 오연교

 

생년월일: 1960년 5월 25일
A매치 기록: 10경기 10실점
신체조건: 키 185cm
주 소속팀: 유공 코끼리 (現 제주 유나이티드)

 

1980년대 하반기 대한민국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각광받던 선수로 뛰어난 선방 능력을 바탕으로 유공과 울산에서 각각 한 번씩, 총 두 번의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강력한 경쟁자인 조병득과 김풍주를 제치고 김정남 감독에 의해 주전 수문장으로 발탁되었으나  월드컵 본선 조별예선 2차전 불가리아와의 경기에서 펀칭 미스를 범하며 선취점을 허용하는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14위 김용대

 

생년월일: 1979년 10월 11일
A매치 기록: 21경기 11실점
신체조건: 키 189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FC 서울

 

체격이 좋고 냉정하며 침착한 성격의 골키퍼로 K리그에서 뛰어난 선방 능력을 인정받아 용대사르라는 별명이 붙었다.

대표팀과는 크게 인연이 없었지만 K리그에서 오럤동안 정상급 골키퍼로 인정받았는데 군 복무 시절인 광주 상무 불사조를 제외한 부산 아이파크, 성남 일화, FC 서울, 그리고 울산 현대에서 모두 우승컵을 들어본 경험이 있으며 2004년 FA컵과 2017년 FA컵에서는 대회 MVP를 수상했다.

특히 전성기를 보낸 FC 서울에서는 두 번의 리그 우승과 한 번의 FA컵 우승을 경험했으며 리그 우승을 했던 2010년과 2012년에는 본인도 K리그 올스타 팀에 들었으며 2013년에는 팀을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올린 공로를 인정받아 대회 올스타 팀에 들었다.

 

13위 조현우

 

생년월일: 1991년 9월 25일
A매치 기록: 22경기 23실점
신체조건: 키 189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대구 FC

 

2010년대 하반기 K리그 최고의 골키퍼로 비록 발밑 능력이 영 좋지 못하지만 재빠른 반사신경과 강력한 정신력, 그리고 수비수들과 소통이 원활해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보여준다.

연령별 대표팀에서는 크게 두각을 내지 못했고 성인 대표팀에서도 오랜 기간 활약한 김승규와는 달리 소집도 잘 안 되는 평범한 선수였지만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그와의 경쟁을 이기고 주전 자리를 차지해 스웨덴, 멕시코, 그리고 독일을 상대로 맹활약하며 세계인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특히 독일을 2-0으로 이기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소속팀에서 활약도 대단했는데 K리그 2 베스트 일레븐에 두 번 연속 선정되었으며 이후 2017년부터 2021년까지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다섯 번 연속 선정되었으며 특히 2018년에는 대구 FC의 FA컵 우승을 이끌면서 구단 역사상 최초의 트로피를 선물하기도 했다.

 

12위 김풍주

 

생년월일: 1964년 10월 1일
A매치 기록: 22경기 6실점
신체조건: 키 190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부산 대우 로얄즈 (現 부산 아이파크)

 

190cm의 거구를 자랑하는 골키퍼로 안정감 있는 수비 라인 지휘와 과감한 캐칭 능력을 겸비한 골키퍼였다.

대표팀에서는 1983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대한민국의 4강 신화를 이끌어냈으며 이때의 활약으로 만 19세의 어린 나이에도 대표팀에 부름을 받아 주전 경쟁을 했으나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오연교에게 밀렸으며 이후 두 번의 월드컵에서도 부상으로 인해 최인영과의 주전 경쟁에서 밀린 비운의 골키퍼였다.

부산 대우 로얄즈의 원 클럽 맨으로 13년간 활약하며 세 번의 K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이 중 1987년과 1991년에는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며 리그 최고의 골키퍼로 이름을 날렸다.

 

11위 김영광

 

생년월일: 1983년 6월 28일
A매치 기록: 17경기 15실점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87kg
주 소속팀: 울산 현대 호랑이

 

김병지와 이운재 세대의 후계자 중 한 명으로 각광받던 선수로 환상적인 반사신경과 적적한 위치 선정을 활용해 상대적으로 작은 키에도 뛰어난 선방 능력을 보여주며 패스 능력도 준수하다.

연령별 대표팀에서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지만 대표팀에서는 2006년 9월 이란전에 김상식과의 사인 미스 이후로 언론에게 과도한 비난을 받았으며 그대로 대표팀 주전 수문장 자리와는 멀어진다.

K리그에서는 전남과 울산에서 전성기를 보냈으며 리그 우승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울산 현대에서 두 번의 K리그 리그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2011년에는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고 2012년 AFC 챔피언스리그 무패 우승에 일조했다.

무려 556경기에 출전하며 K리그 역대 최다 출전 2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아직도 성남 FC에서 현역으로 활약하고 있다.

 

10위 최은성

 

생년월일: 1971년 4월 5일
A매치 기록: 1경기 1실점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대전 시티즌 (現 대전 하나 시티즌)

 

대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자기 관리의 화신이며 뛰어난 수비 조율과 안정적인 볼 캐칭을 겸비한 2000년대 대한민국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이었다.

대표팀에서는 이운재, 김병지와 세대가 겹치는 비운으로 고작 한 경기밖에 뛰지 못했지만 2002 한일 월드컵 서드 키퍼로 4강 신화를 경험했으며 소속팀에서는 전력이 약한 대전에서 무려 16 시즌을 활약했고 사장의 폭언으로 인해 대전을 떠난 이후에는 전북에서 맹활약했다.

수상 복은 정말 없지만 K리그 팬들은 대전의 최은성을 존중하며 대전 팬들에게는 신앙 그 자체의 존재로 "최은성이 대전이고 대전이 최은성이다."라는 걸개를 걸기도 했다.

 

9위 정성룡

 

생년월일: 1985년 1월 4일
A매치 기록: 67경기 67실점, 1골
신체조건: 키 191cm / 몸무게 91kg
주 소속팀: 가와사키 프론탈레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가장 강력한 킥력을 가진 골키퍼로 비록 부족한 운동 능력을 겸비했지만 정확한 판단력으로 이를 극복했다.

김영광, 김용대 등 재능 있는 골키퍼와의 경쟁에서 이겨 대표팀 주전으로 두 번의 월드컵에 참가했으나 본선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으며 특히 2010 남아공 월드컵 16강전 선제 살점 상황에서 판단 미스와 2014 브라질 월드컵의 부진으로 인해 평가절하되기도 했다.

하지만 프로팀에서는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며 2007년 포항에서는 플레이오프에서 팀을 K리그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성남에서는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어냈으며 수원에서는 두 차례의 리그 준우승을 이뤄냈다. 이후 J리그에서 뒤늦은 전성기를 맞아 가와사키 프론탈레에서 세 번의 J리그 우승과 한 번의 리그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두 번이나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며 J리그 최고의 골키퍼로 활약하고 있다.

 

8위 함흥철

 

생년월일: 1930년 11월 17일
A매치 기록: 51경기 66실점
신체조건: 키 175cm
주 소속팀: 육군 헌병감실 축구단

 

독립 이후 최초로 주전 자리를 차지한 홍덕영의 뒤를 이어 대한민국 주전 수문장 계보를 이어간 골키퍼로 단단한 체구와 날렵한 반사신경을 바탕으로 뛰어난 볼 처리 능력을 보여줬으며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로마 올림픽 아시아 예선에서 심판을 폭행한 좋지 못한 이력도 있었던 골키퍼다.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는 대표팀 서브 골키퍼로 참가했으며 1956년 초대 아시안컵에서는 결선 리그에서 베트남, 홍콩, 이스라엘을 상대로 2승 1무를 거둬 우승했으며 1960년 아시안컵에서는 베트남, 대만, 이스라엘을 모두 이기고 우승했는데 이 대회에서 함흥철은 세 경기에서 고작 1실점만을 거두며 우승했다.

함흥철이 이뤄낸 두 번의 아시안컵 우승은 현재까지 대한민국이 아시안컵에서 우승한 유이한 대회로 남아있다.

 

7위 김승규

 

생년월일: 1990년 9월 30일
A매치 기록: 71경기 55실점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84kg
주 소속팀: 울산 현대 호랑이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가장 페널티 킥을 잘 막는 골키퍼 중 하나로 프로 데뷔 이후 공식경기 승부차기에서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으며 뛰어난 볼 컨트롤 능력과 킥력을 앞세운 빌드업 능력은 경쟁자 조현우보다 월등하게 우위에 있다.

U-17 팀부터 연령별 대표팀을 항상 거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았으며 대표팀에서도 수년간 주전으로 활약했고 2015년에는 아시안컵에서 준우승을 거뒀으며 조현우에게 잠시 대표팀 주전자리를 내줬지만 벤투 감독의 체제에서는 대표팀 주전 자리를 회복했으며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대한민국의 조별리그 통과를 도왔다.

 2013년에는 김영광과의 주전 경쟁을 이겨내며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골키퍼 부문에 당당히 입상했다.

 

6위 조병득

 

생년월일: 1958년 5월 26일
A매치 기록: 43경기 29실점
신체조건: 키 185cm
주 소속팀: 할렐루야 독수리

 

대한민국 축구 최초의 미래형 골키퍼로 우수한 발밑 능력과 킥 능력과 뛰어난 판단력을 바탕으로 적절한 타이밍에 각을 좁히고 나와 전진수비를 하며 상대 공격수를 제압하거나 수비라인의 빈 공간을 커버하던 미래형 골키퍼였다.

대표팀에서는 쭉 주전 자리를 맡아 두 번의 아시안컵 준우승과 1987년의 아프로아시안 네이션스 컵 준우승을 기록했고 아시안게임 축구 종목 금메달을 두 번이나 타내기도 했으나 정작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오연교에게 주전 자리를 내줬다. 그러나 오연교가 부진한 활약을 펼치자 팬들은 조병득이 출전했으면 더 나은 결과를 받았을 거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1983년에 할렐루야 독수리 소속으로 초대 K리그 우승을 이끌고 초대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1988년에는 포항제철에서 K리그를 재차 우승하기도 했다.

 

5위 최인영

 

생년월일: 1962년 3월 5일
A매치 기록: 51경기 40실점
신체조건: 키 182cm
주 소속팀: 울산 현대 호랑이

 

대한민국 대표팀 최초로 월드컵 두 대회 연속으로 주전으로 활약한 골키퍼로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아시아 최고의 골키퍼라 불렸다.

동물적인 반사 신경으로 뛰어난 선방 능력을 보여줬다. 1990 이탈리아 월드컵 때는 팀은 3패를 기록했지만 수많은 슈팅을 선방해내기도 했고 1994 미국 월드컵 볼리비아전에서는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첫 무실점 경기를 했지만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인 독일전에서의 부진으로 중도 교체당하는 불운으로 인해 그에 대한 저평가가 심하게 이뤄지는 안타까운 일을 겪었다.

소속팀 울산 현대에서는 12년간 활약하며 외국인 골키퍼들과 경쟁이 가능했던 몇 안 되는 한국인 골키퍼로 이름을 날렸으나 정작 우승하진 못하다가 그의 커리어 마지막인 1996년에 플레잉 코치로 리그 우승을 달성하며 은퇴했다.

세계적으로 훌륭한 공신력을 자랑하는 축구 기록 기관인 IFFHS에서는 최인영을 20세기 아시아 최고의 골키퍼 3위로 선정했으며 동시에 20세기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골키퍼로 선정했다.

 

4위 이세연

 

생년월일: 1945년 7월 11일
A매치 기록: 81경기 55실점
신체조건: 키 175cm
주 소속팀: 서울신탁은행 축구단

 

K리그의 전신인 실업리그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로 대한민국의 레프 야신이라 불렸으며 심리전에서 강점을 보여 상대 공격수와 의도적인 신체접촉과 트래쉬토크를 즐겨해 아시아의 폭군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대표팀에서는 이회택, 김정남 등과 함께 스타로 군림하며 1970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1972 AFC 아시안컵 준우승을 거두는 성과를 보였으나 이스라엘, 호주에 각각 밀리며 월드컵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럼에도 1970년대 대한민국 축구 최고의 인기 스타 중 하나로 군림했으며 2002년에는 여론 조사 전문 업체인 한국갤럽에서 투표한 대한민국 축구 역대 베스트 11 골키퍼 부분에 선정되기도 했다.

 

3위 홍덕영

 

생년월일: 1926년 5월 5일
A매치 기록: 17경기 56실점
신체조건: 키 170cm
주 소속팀: 조선방직 축구단

 

광복 이후 대한민국 최초의 주전 골키퍼로 1948년 대한민국의 첫 국제 대회인 런던 하계 올림픽 축구에서 나름 월드컵에도 자주 모습을 드러낸 멕시코를 상대로 5-3으로 이기는 데 일조하며 팀을 8강으로 이끌었고 8강에서는 당대 최고의 팀 중 하나이자 이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스웨덴을 만나 48개의 슈팅을 기록하는 일방적인 경기 속에서 12-0으로 패했지만 홍덕영은 수많은 선방으로 대표팀 선수중에서는 유일하게 자존심을 지켰다.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는 열악한 환경으로 비행기를 제때 탑승하지 못해 미군 군용기를 타고 가서 경기 시작 20 시간 전에 도착했음에도 세계 최강 헝가리를 상대로 수많은 슈팅을 선방해 9-0으로 패했음에도 유럽의 축구 팬들에게 박수를 받았다.

당시 언론은 당대 세계 최고의 축구 강국 헝가리와 전쟁이 끝난 지 채 1년이 안된 조악한 상황에서의 대한민국이라 헝가리의 20-0의 승리를 예상했지만 9 실점으로 막아낸 홍덕영의 대단한 활약에 감복해 스위스에 방문한 팬들은 그에게 사인을 받아 가거나 대한민국 대표팀 숙소에 선물을 두고 가는 등 그를 훌륭한 스포츠 스타로 대접했다.

 

2위 김병지

 

생년월일: 1970년 5월 12일
A매치 기록: 61경기 72실점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울산 현대 호랑이

 

라이벌 이운재와 함께 대한민국 최고의 골키퍼로 손꼽히며 뛰어난 선방 능력은 물론이고 당시로서는 드물게 직접 공을 몰고 나와 빌드업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러한 스타일은 때때로 실점의 빌미가 되기도 해 호불호가 갈렸지만 김병지는 훌륭한 자기 관리 능력으로 대부분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다.

대한민국이 오랫동안 최인영과 김풍주의 대체자를 찾지 못했으나 혜성처럼 등장하며 아시아 예선전이자 한일전이었던 도쿄 대첩에서 활약했고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주전 자리를 차지했는데 대다수의 대표팀 선수들이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보였으나 김병지만큼은 훌륭한 활약을 보여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 거스 히딩크로부터 "우리는 더 많은 득점을 할 수 있었지만 대한민국의 골키퍼가 너무 뛰어나서 더 많은 골을 넣지 못했다."라는 찬사를 듣기도 했다.

그러나 그 히딩크 감독에 의해 이운재에게 대표팀 경쟁에서 밀리며 한일 월드컵을 벤치에서 지켜봤고 이후에는 대표팀에서는 백업으로 밀려났다.

K리그에서의 그의 족적은 대단한데 비록 리그 우승은 1996년에 울산에서 한 번 밖에 하지 못했지만 706경기에 출전해 K리그 통산 최다 출전을 기록했으며 229번의 클린 시트를 기록하며 K리그 통산 최다 클린 시트를 기록했고 153경기 연속 무교체 출전하며 이 부분에서도 K리그 최다 기록을 자랑하며 K리그 최고령 출전과 K리그 골키퍼 최다 득점이라는 기록도 가지고 있다.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도 네 번이나 들었다.

 

1위 이운재

 

생년월일: 1973년 4월 26일 
A매치 기록: 133경기 115실점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수원 삼성 블루윙즈

 

라이벌 김병지와 함께 대한민국 최고의 골키퍼로 손꼽히며 번뜩이는 부분에서는 김병지에 밀렸다는 평가를 받지만 우수한 판단력과 흔들리지 않는 강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하는 차원이 다른 안정감을 자랑했으며 수비 조율 부분에서는 아시아에서도 적수가 없었으며 승부차기 방어에도 매우 능했다. 실제로 2004년 K리그 챔피언 결승전에서 승부차기에서 포항 측 마지막 키커 김병지의 페널티 킥을 막고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런 안정적인 부분 덕분에 이운재는 이미 고려대학교 시절부터 대표팀에 소집되었으며 히딩크부터 핌 베어벡까지 모두 이운재를 중용했으며 이운재는 감독들의 신임에 보답해 2002 한일 월드컵 4위를 기록했으며 북중미 골드컵에서도 4위를 기록했다. 특히 한일 월드컵에서는 부폰, 카시야스와 같은 거물급 골키퍼와 선방 대결을 벌여 승리하기도 했다. 2007년 아시안컵에서도 3위를 기록했지만 이운재 개인의 활약은 인정받아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수원 삼성에서도 창단 멤버로 합류하며 K리그 4회 우승을 이끌었고 리그컵 4회 우승과 FA컵 3회 우승을 이끌었으며 AFC 챔피언스리그의 전신 대회인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에서도 우승했다. 네 번의 K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특히 2008년에는 수원 삼성의 우승에 크게 공헌하며 리그 MVP를 수상했으며 2009년에는 FA컵 MVP를 수상하는 등 개인 단위나 팀 단위나 최고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런 활약으로 2010년에는 여론 조사 업체인 한국갤럽이 선정한 대한민국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축구 잡지사 베스트일레븐이 선정한 대한민국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도 선정되며 자타공인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로 군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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