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베스트 일레븐

국대 올스타 짜보기/북유럽

노르웨이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베스트 일레븐

토르난테 2025. 12. 22.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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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2025년 12월 13일 기준입니다.

 

기존에는 대표팀 활약에 가산점을 더 부여했지만 이 부분을 제외하고 다시 선정했습니다

 

최소한의 밸런스는 챙길 예정이며 더블 리베로를 내는 현상이나 스트라이커로만 세 명이 나서는 현상은 최대한 피할 예정입니다.

 

선수 사진은 에펨네이션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을 주로 활용했습니다.

 


1. 노르웨이 축구 국가대표팀

 

별칭: 뢰베네 (사자들)

월드컵: 출전 4회

유로: 출전 1회

올림픽: 출전 5회, 동메달 1회

최다 출전 선수: 욘 아르네 리세, 11경기

최다 득점 선수: 엘링 홀란드 - 55골

 


2. 베스트 일레븐

 

 

골키퍼

 

 

이름: 에릭 토르스트베트
생년월일: 1962년 10월 28일
포지션: 골키퍼
A매치 기록: 97경기 81실점 / 42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94cm / 몸무게 88kg
주 소속팀: 토트넘 핫스퍼

자타공인 노르웨이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로 큰 키와 긴 팔다리를 활용해 넓은 범위를 철옹성과도 같이 지켜내기로 유명했다.

노르웨이의 바이킹에서 데뷔해 아이크 톤스버그로 떠나서 성장한 뒤에 다시 바이킹으로 돌아와 주전으로 활약하며 초년을 보낸 토르스트베트는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는 터줏대감 우베 캄프에게 주전경쟁에서 밀려났지만 토트넘 핫스퍼에서는 부활에 성공해 1989년 토트넘 핫스퍼 올해의 선수 수상 및 1990-91 시즌 FA컵 우승을 이뤄내는 등 뛰어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해당 구단에서 은퇴할 때까지 활약했다.

노르웨이 대표팀에서도 전성기를 누린 토르스트베트는 1984 LA 올림픽에서 대표팀으로 참가한 이후에 1994 미국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출전했는데 본인은 조별리그 3경기에서 단 1골만 내주는 우수한 퍼포먼스로 팀이 1승 1무 1패를 기록하고도 모든 국가가 1승1무1패를 기록하며 다득점으로 승부를 가리며 탈락하는 비극을 겪었다.

 

 

리베로

 

 

이름: 루네 브라체트
생년월일: 1961년 3월 19일
포지션: 리베로,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A매치 기록: 60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93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베르더 브레멘

노르웨이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하나로 순록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을 정도로 엄청난 스테미너에서 나오는 왕성한 활동량을 앞세워 공수 양면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공격 상황에서는 절륜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바탕으로 찬스를 공급했으며 수비적인 상황에서는 큰 키와 북유럽인 특유의 강력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하는 몸싸움과 제공권 경합으로 상대 공격수를 괴롭히는 부분에도 능했다.

구단 역사상 최전성기로 평가받는 레하겔 체제 베르더 브레멘의 수비라인의 리더로 활약한 브라체트는 분데스리가와 DFB포칼을 각각 2회 우승했고 유럽 무대에서도 1991-92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결승전에서 뱅거가 이끄는 AS 모나코를 꺾으며 디 그륀바이센 역사상 최초의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다. 브라체트 개인도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을 세 번 받았으며 키커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에 3회 선정되었다.


노르웨이 대표팀에서도 팀의 에이스이자 리더로 군림한 브라체트는 조국의 1994 미국 월드컵 본선행에 공헌했으며 본선에서도 이탈리아, 멕시코, 아일랜드를 상대로 1승1무1패로 그들과 동률의 승점은 물론 같은 골득실을 기록했지만 복잡한 계산을 거쳐 조 4위로 탈락하는 아쉬움을 겪었다. 브라체트는 2003년 노르웨이 축구 협회가 선정한 지난 50년간 노르웨이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이름을 남겼다.

 

 

센터백

 

 

이름:토르비요르 스벤센
생년월일: 1924년 4월 22일
포지션: 센터백, 
A매치 기록: 104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90cm / 몸무게 86kg
주 소속팀: 사네피오르

제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노르웨이 축구계에 군림했던 센터백으로 북유럽 특유의 커다란 체구와 강력한 스트랭스를 활용한 몸싸움으로 견고한 대인 수비력을 선보였기에 팬들로부터 Klippen, 즉 바위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여기에 더해 경기 도중 어떤 변수가 발생해도 항상 침착함을 잃지 않았던 냉철함도 겸비했다.

선수 생활의 전부를 자신의 고향팀인 사네피오르 BK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 스벤센은 팀 전력이 중위권 수준이었기에 21년간 무관으로 보냈지만 그래도 리그 준우승 1회 및 노르웨이컵 2회 준우승을 이뤄냈다. 그럼에도 노르웨이 대표팀에서는 붙박이 주전이라 A매치 104경기에 출전하며 빌리 라이트, 보직 요제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센추리 클럽에 가입하기도 했다.

 

 

라이트백

 


이름: 헨닝 베르그
생년월일: 1969년 9월 1일
포지션: 라이트백, 센터백

A매치 기록: 100경기 9골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블랙번 로버스

프리미어리그 초창기에 이름을 날렸던 노르웨이 출신의 라이트백으로 우수한 신체조건과 듬직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라이트백은 물론 센터백을 막힘없이 소화할 수 있었고 공격력도 준수해 사이드를 가로지르는 정력적인 오버래핑과 면도날같은 오르발 크로스로 많은 득점 찬스를 만들기도 했다.

초년에는 자국의 여러 클럽을 떠돌아다니다가 1993-94 시즌에 입단한 블랙번 로버스에서 전성기를 보낸 베르그는 1994-95 시즌 블랙번의 리그 우승에 큰 공을 세웠고 1997-98 시즌에 합류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는 네빌 및 수비진들의 백업 역할을 맡아 1998-99 시즌 트레블 및 프리미어리그 2연패를 이뤄냈다.

노르웨이 대표팀에서도 주전 라이트백으로 활약한 베르그는 1994 미곡 월드컵에서는 1승1무1패를 기록했지만 아쉽게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고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브라질의 호베르투 카를루스와 레오나르두를 상대로 선전하는 모습을 보이며 팀의 승리에 공헌해 16강에 진출했으며 UEFA 유로 2000에서도 참가했다.

 

 

레프트백

 

 

이름: 욘 아르네 리세
생년월일: 1980년 9월 24일
포지션: 레프트백, 레프트윙
A매치 기록: 110경기 16골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89kg
주 소속팀: 리버풀 FC

2000년대 잉글랜드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공격형 레프트백으로 수비적인 부분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적극적인 공격가담 및 대포알과도 같은 강력한 왼발 중거리 슈팅으로 상대 골문을 노렸음은 물론 때때로 상대의 허를 찌르는 왼발 크로스로 득점 찬스를 만들기도 했다.

올레순 FK에서 데뷔해 프랑스의 AS 모나코에서 처음 두각을 나타낸 리세는 모나코에서는 1999-2000 시즌 리그앙 우승을 이뤄냈고 이후 리버풀로 이적해서는 본격적인 전성기를 누리며 2001 UEFA 슈퍼컵 우승을 시작으로 일명 이스탄불의 기적이라 불리는 2004-05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낸 것을 포함해 총 6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고 말년에는 AS 로마와 풀럼, 아포엘에서 활약했다.

노르웨이 대표팀에서도 A매치 통산 최다 출전자에 이름을 올리며 롱런한 리세는 UEFA 유로 2000에서는 스티그 잉게 뵈른비에 밀려나며 벤치에서 대기했고 이후에는 노르웨이 축구계의 암흑기에 활약했기에 메이저 대회에 나설 기회가 없었다.

 

 

수비형 미드필더

 

 

이름: 외르겐 유베
생년월일: 1906년 11월 22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라이트백
A매치 기록: 45경기 33골
신체조건: 키 181cm
주 소속팀: 린 오슬로

1930년대 노르웨이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주 포지션은 센터포워드지만 특유의 다재다능함을 바탕으로 라이트 풀백과 센터 하프를 소화할 수 있었는데 빠른 스피드와 정확한 패싱력과 타점 높은 헤더와 골 결정력으로 유명했지만 특히 경기 흐름을 읽는 전술안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린 오슬로에서 장기간 활약하며 전성기를 누리며 오슬로 챔피언십 4회 우승을 이뤄낸 유베는 특히 노르웨이 대표팀에서의 활약이 전설적이었는데 1929-32 노르딕 챔피언십에서 6골을 득점하며 조국의 우승을 견인했고 1936 베를린 올림픽에서는 팀의 주장으로 활약하며 동메달을 획득했고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다.

축구선수 이외에도 법학 학사 및 작가로도 활동했던 유베는 2006년, 유베의 탄생 100주년엔 유베가 노르웨이 역사상 가장 뛰어난 급의 선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수비형 미드필더

 

 

이름: 아스비외른 할보르센

생년월일: 1898년 12월 3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센터백
A매치 기록: 19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함부르크 SV

1920년대 독일 무대 정상급 선수로 군림하던 노르웨이 출신의 선수로 키는 작았지만 다부진 체격을 바탕으로 상대 센터 포워드와의 경합에서 밀리지 않았으며 적절한 포지셔닝과 강력한 맨 마킹 실력, 그리고 높은 수준의 수비라인 컨트롤을 바탕으로 수비수들의 빈틈을 커버하는데 능했으며 한혈마와 같은 지구력과 정밀도 높은 패싱력을 겸비해 경기장 곳곳을 뛰어다니며 경기장 전역에 영향력을 끼쳤으며 여기에 강력한 리더십까지 갖췄다.

자국의 사르프스보르그에서 데뷔해 활약한 할보르센은 1917년의 노르웨이 컵 결승전에서 당시 18세의 어린 나이로 주장완장을 차고 우승에 공헌했음은 물론 노르웨이 대표팀에서도 1920 앤트워프 올림픽에도 참가했다. 의외로 1921년부터 축구선수를 접고 함부르크로 이사해서 사업가가 되려고 했으며 해운 회사, 선박 중개 및 보험 회사를 운영했는데 자신의 축구 선수 경력을 숨기고 사업에만 집중하려 했지만 함부르크 SV가 그의 동료를 통해 할보르센의 존재를 알게 되자 적극적으로 영입을 위해 힘썼다. 결국 함부르크에서도 선수 생활을 했고 선박 중개인 일도 병행했다.

1921년에 함부르크에 합류한 할보르센은 디 로토센의 북독일 챔피언십 9회 우승과 뉘른베르크와 함께 공동 우승을 차지한 1921-22 시즌을 포함한 독일 챔피언십 3회 우승을 포함해 크고 작은 대회에서 통산 25개의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며 당대 독일무대 최고의 센터하프로 활약했으나 1934년에 나치당이 독일의 정권을 장악하며 독재의 바람이 불자 독일을 떠나 노르웨이로 돌아갔다.

 

 

라이트윙

 

 

이름: 할바르 토레센
생년월일: 1957년 4월 12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포워드, 윙어, 중앙 미드필더
A매치 기록: 50경기 9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PSV 에인트호번

1980년대 노르웨이 축구계를 대표하던 판타지스타로 높은 수준의 볼 컨트롤을 바탕으로 온 더 볼 상황에서 강점을 보였는데 양발을 사용한 적절한 중장거리 패스로 득점 찬스를 만들었으며 상대 수비수 두세 명쯤은 가볍게 제치는 우수한 드리블이 돋보였고 특히 정확한 골 결정력에서 나오는 득점력이 유명했다.

쇠렌 레르비, 예스퍼 올센 등과 함께 1980년대 네덜란드 무대를 이끈 북구의 선수였던 토레센은 자국 리그가 아닌 네덜란드의 트벤테에서 데뷔해 활약했고 PSV 에인트호번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하며 에레데비시 3회 우승을 이뤄냈고 이 과정에서 에레데비시 역대 외국인 통산 최다 득점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구단 역사상 최고의 시즌인 1987-88 시즌에는 부상으로 거의 나오지 못하면서 유러피언 컵 우승 메달을 받지 못하고 팀을 떠난 비운의 사나이기도 했다.

노르웨이 대표팀에서는 본격적인 황금기가 오던 1990년대가 아닌 1980년대에 활약하던 선수였기에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레프트윙

 

 

이름: 아르네 브루스타
생년월일: 1912년 4월 14일
포지션: 레프트윙
A매치 기록: 33경기 17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륀 1896 FK

1930년대 하반기 최고의 아웃사이드 레프트이자 20세기 노르웨이 최고의 축구선수로 평가받는 인물로 빠른 스피드와 높은 수준의 테크닉을 겸비한 드리블 돌파와 우수한 골 결정력을 바탕으로 명성을 떨쳤는데 화려한 플레이로 관중들을 매료시켰기에 세간으로부터 남유럽 선수들과 비슷하게 플레이한다고 하여 "북부 이탈리아인"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클럽 커리어의 전부를 륀 1896에서 보낸 원클럽맨인 브루스타는 오슬로 지역 리그 4회 우승 및 노르웨이 컵 2회 우승을 이뤄냈다. 비록 전국리그는 1937-38 시즌에 거둔 준우승이 최고였지만 전국리그 우승 없이도 노르웨이 대표팀에서 에이스로 군림했는데 1936 베를린 올림픽에서는 폴란드전 해트트릭과 터키전, 이탈리아전 득점을 바탕으로 5골을 터트리며 조국에 동메달을 선사했고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1차전에서 디펜딩 챔피언 이탈리아를 상대로 후반 막판에 동점골을 득점하며 승부를 연장전까지 끌고 가며 이탈리아의 우승 과정에서 그들을 가장 힘들게 했다.

당대 유럽 최고의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평가받았던 브루스타는 1938년 하이버리에서 열린 잉글랜드 축구협회 창립 75주년 기념 경기에서 잉글랜드와 유럽 올스타의 친선경기에도 출전했다. 이 당시 브루스타가 입었던 유럽 올스타 유니폼과 그의 메달 및 트로피는 현재 노르웨이 축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공격형 미드필더

 

 

이름: 톰 룬드
생년월일: 1973년 2월 26일
포지션: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A매치 기록: 47경기 12골
신체조건: 키 180cm
주 소속팀: 릴레스트룀 SK

노르웨이 현지 기자들이 선정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노르웨이 최고의 선수로 상대 수비수 두세 명은 간단하게 돌파하는 순간적인 드리블 돌파와 화려한 발밑 기술로 팬심을 사로잡았고 우수한 양발 사용 능력을 바탕으로 하는 정확한 패스와 슈팅력도 뛰어났다.

선수 생활을 전부 릴레스트룀에서 보낸 룬드는 정규리그 2회 우승 및 노르웨이 컵 3회 우승을 이뤄냈고 1978년에는 득점왕에 올랐고 노르웨이 대표팀에서도 중용되었음은 물론 현역 은퇴 이후 클럽의 홈구장인 오로센 스타디온 외곽에 그의 동상이 세워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가진 실력에 비해 세계적으로 덜 알려지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극심한 비행기 공포증으로 인해 바이에른 뮌헨, 레알 마드리드, 아약스의 이적제안을 모두 뿌리치고 자국에서만 활약했기 때문이다.

 

 

스트라이커

 

 

이름: 엘링 홀란드
생년월일: 2000년 7월 21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A매치 기록: 48경기 55골
신체조건: 키 195cm / 몸무게 88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

차세대 최고의 스트라이커의 자리가 유력한 스트라이커로 195cm의 거구임에도 몸싸움만 강한 것이 아니라 스피드가 매우 빠른데 최고 속력 36km/h에 달하는 스피드로 순식간에 상대 배후로 침투하는 능력과 지공 시 오프 더 볼 상황에서는 상대 수비에 균열을 내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다가 동료의 파이널 패스 타이밍에 맞춰 침투하는 능력에 모두 뛰어났음은 물론 높은 골결정력을 바탕으로 한 득점력도 우수했고 패싱력도 준수했다.

자국 리그의 브뤼네와 몰데를 거쳐 레드불 잘츠부르크에서 2018-19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와 OFB컵 우승을 이뤄내며 만개한 홀란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해 정상급 선수로 도약하며 2020-21 분데스리가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고 VDV 선정 분데스리가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쳤음은 물론 2020-21 DFB포칼 결승에서는 난적 RB 라이프치히를 상대로 멀티골을 득점해 4-1 대승을 이끌었음은 물론 해당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레반도프스키, 벤제마, 살라와 같은 쟁쟁한 선수들을 제치고 득점왕 및 UEFA 올해의 공격수를 수상했다.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한 뒤에는 화룡점정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는데 공식전 54경기에 출전해 52골을 기록하며 트레블의 주역으로 활약했고 프리미어리그에서는 35경기에 출전해 36골을 득점하며 득점왕에 올랐음은 물론 FWA 올해의 선수와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영 플레이어와 올해의 선수에 동시에 선정되며 개인상을 휩쓸었고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우승에 공헌해 득점왕에 올랐다. 트레블이라는 성공적인 첫 시즌을 보낸 홀란은 2022-23 시즌 UEFA 올해의 선수, 트로페 게르트 뮐러와 옹즈도르 및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상 투표에서 2위를 차지했다.

 

 

감독

 

 

이름: 에길 올센

생년월일: 1942년 4월 22일
부임기간: 1990~1998, 2009~2013

 

자타공인 노르웨이 축구 역사상 최고의 감독으로 발레리 로바노프스키와 비슷하게 경기 분석에 과학적인 접근 방식을 취했기에 경기 영상 분석을 일찍부터 활용했는데  어떤 플레이 스타일이 가장 효율적인지 알아내기 위해 통계 데이터를 수집하는데 집중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빠른 역습으로 상대의 수비조직력을 흔드는 플레이를 선호했고 롱패스와 크로스를 활용해 우수한 체격의 노르웨이 선수들의 피지컬을 활용해 공중전으로 상대를 압도했는데 장신 공격수 플로를 측면 공격수로 기용한 뒤 반대편에서 긴 크로스로 그의 머리에 패스해 득점하며 상대 수비수의 허를 찔렀다. 그리고 공격수들이 파이널 서드에만 머무르는 것을 반대했으며, 공을 소유하지 않은 선수라도 공격적인 움직임을 최대한 자주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오프 더 볼의 중요성을 잘 인지한 선수였고 수비적으로는 존 디펜스를 지지했음은 물론 유럽 무대에서 4-2-3-1 및 4-5-1 포지션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선구자로도 평가받는다.

노르웨이의 여러 클럽 및 청소년 대표팀의 감독으로 커리어를 시작한 올센은 1990년, 축구 변방국인 노르웨이 대표팀을 맡아 상술한 과학적인 선수비 후 역습 축구를 바탕으로 노르웨이를 빠르게 유럽의 강호로 급부상시켰음은 물론 1994 미국 월드컵과 1998 프랑스 월드컵 본선에 진출시켰다. 그리고 이 시기 노르웨이를 무려 피파랭킹 2위에 올렸고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에서 우승후보 브라질을 잡고 16강에 진출하며 브라질 킬러로 이름을 날리게 했다. 그리고 1998 프랑스 월드컵 이후 사임한 올센은 2002년부터 2003년까지 노르웨이 U-19 대표팀을 맡았고 2009년부터 2013년까지 대표팀을 맡고 은퇴했다.

 


베스트 일레븐

 

 

 


3. 서브 14인 포함 1군 스쿼드

 


이름: 루네 야르스테인
생년월일: 1984년 9월 29일
포지션: 골키퍼
A매치 기록: 72경기 83실점 / 23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92cm / 몸무게 90kg
주 소속팀: 헤르타 BSC

2010년대 노르웨이와 헤르타 베를린을 대표하던 골키퍼로 큰 키를 이용한 공중볼 처리와 크로스 처리 능력에 강점을 보였으며 후방 빌드업 상황에서도 팀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수비를 적절하게 조율했다.

오드 BK에서 데뷔해 로젠베리로 이적해 전성기를 누리며 2009년 노르웨이 티펠리겐 우승을 이뤄냈고 바이킹을 거쳐 헤르타 BSC로 이적했는데 이적 초반부에는 토마스 크라프트의 백업 역할을 맡았다가 2015-16 시즌에 크라프트의 부상을 틈타 주전을 차지한 이래 계속 주전으로 활약하면서 하위권이었던 헤르타 BSC를 2015-16 시즌 7위 및 2016-17 시즌 6위에 올렸다.

2017-18 시즌의 우수한 활약으로 노르웨이 올해의 선수상에 해당하는 노르웨이 굴드불렌을 수상했던 야르스테인은 노르웨이 대표팀의 주전으로 활약했지만 대표팀 전력의 한계로 메이저 대회 본선 무대는 밟아보지 못했다.

 

 

이름: 프로데 그로도스
생년월일: 1964년 10월 24일
포지션: 골키퍼
A매치 기록: 50경기 38실점 / 25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6kg
주 소속팀: 릴레스트룀 SK

에릭 토르스트베트의 후계자로 준수한 반사신경을 바탕으로 공격수와 1vs1 상황에서 각을 좁히고 나가면서 수비하는데 능했고 체격도 준수해 공중볼 경합에서도 장점을 보였다.

자국리그의 릴레스트룀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누린 그로도스는 1989년 티펠리겐 우승을 이뤄냈고 1993년 노르웨이 올해의 운동선수에 선정되었으며 1996-97 시즌에는 첼시의 FA컵 우승을 이뤄냈으나 에디 에드 더 후이와의 주전경쟁에서 밀렸다. 토트넘과 샬케에서도 세컨드 골키퍼로 대기했다.

노르웨이 대표팀의 FIFA 랭킹 2위 시절의 전성기의 골키퍼인 그로도스는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브라질의 호나우두와 히바우두를 상대로 연신 선방을 거두며 승리에 공헌해 16강 진출을 이뤄냈다.

 

 

이름: 로니 욘센
생년월일: 1969년 6월 10일 
포지션: 센터백, 리베로, 수비형 미드필더
A매치 기록: 62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91cm / 몸무게 83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브라체트에 이어 1990년대 노르웨이 축구 대표팀의 돌풍을 일으킨 센터백 겸 수비형 미드필더로 북유럽인 특유의 파워풀한 몸싸움과 상대 공격수를 가지고 노는 높은 수준의 태클을 선보였으며 수비형 미드필더도 소화했을 만큼 우수한 발밑과 패싱력도 겸비했다.

륀 포트발에서 데뷔해 릴레스트룀과 베식타스를 거쳐 스티븐 브루스의 후계자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욘센은 네덜란드의 강철 스토퍼 야프 스탐과 함께 수비라인을 구성해 활약하며 1998-99 시즌 트레블을 포함해 프리미어리그 3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이 과정에서 우수한 수비라인 지휘 능력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노르웨이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한 욘센은 1998 프랑스 월드컵에 주전으로 참가했는데 뛰어난 수비라인 지휘능력을 바탕으로 당대 적수가 없었던 브라질의 호나우두와 그에 비견되는 베베투 및 히바우두의 삼각편대를 앞세운 브라질의 맹공을 완벽하게 막아내며 승리해 16강 진출에 공헌했다.

 

 

 

이름: 브레데 항엘란
생년월일: 1981년 6월 20일
포지션: 센터백
A매치 기록: 91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99cm / 몸무게 91kg
주 소속팀: 풀럼 FC

21세기 노르웨이 축구계 최고의 수비수로 2m에 육박하는 큰 키와 바이킹의 후예다운 강건한 완력을 바탕으로 압도적인 몸싸움 및 제공권 경합 능력과 거친 슬라이딩 태클로 상대를 막아냈는데 특히 헤딩 클리어링으로 유명해 팬들로부터 에어포스, 즉 공군이라고 불렸다.

바이킹에서 데뷔해 데뷔 시즌부터 주전으로 노르웨이 풋볼 컵 우승을 이뤄내며 두각을 나타낸 항엘란은 덴마크의 쾨벤하운에서는 덴마크 수페르리가 2연패 및 2005-06 시즌에는 스칸디나비아 3개국의 클럽들이 참가하는 토너먼트 대회인 로얄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쾨벤하운을 북유럽의 강자로 올렸다. 그리고 잉글랜드의 풀럼에서는 전성기를 누리며 팀을 프리미어 리그 붙박이로 올렸음은 물론 2009-10 시즌에는 UEFA 유로파리그 준우승을 이뤄냈다.

노르웨이 대표팀에서는 대표팀 전력의 한계로 메이저 대회에 나서지 못했지만 주장 완장을 차고 활약했다. 그러나 말년에는 전성기를 보낸 풀럼에서 이메일로 방출당하는 수모를 겪고 크리스탈 펠리스에서 활약하다가 은퇴하기도 했다.

 


이름: 스티그 잉기 비요르네비
생년월일: 1969년 12월 11일
포지션: 레프트백, 센터백, 레프트윙
A매치 기록: 리버풀 FC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76경기 1골

1990년대 노르웨이 축구계의 황금기를 이끈 레프트백으로 언론으로부터 '견고하고 허튼짓을 하지 않는 레프트백'이라 묘사되었을 정도로 실수가 적고 다재다능했는데 탄탄한 수비력과 오버래핑 후 사이드라인에서 날리는 정밀도 높은 왼발크로스로도 세간의 위명을 떨쳤다.

자국리그의 로젠보리에서 리그 2회 우승을 이뤄낸 비요르네비는 리버풀로 이적해서 전성기를 누리며 1994-95 시즌 풋볼 리그컵 우승을 이뤄냈고 비요르네비 개인도 1996-97 시즌에는 PFA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리버풀에서 밀려난 뒤에는 블랙번 로버스로 이적해서도 2001-02 시즌 리그컵 우승을 이뤄내는 등 말년을 성공적으로 보내기도 했다.

노르웨이 대표팀에서도 중용받으며 황금기를 이끌었던 비요르네비는 1994 미곡 월드컵에서는 1승1무1패를 기록했지만 아쉽게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고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브라질의 카푸와 치열한 맞대결에서 좋은 결과를 내며 팀의 승리에 공헌해 16강에 진출했으며 UEFA 유로 2000에서도 참가했다.

 

 

이름: 호바르 노르트베이트
생년월일: 1990년 6월 21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센터백, 라이트백, 중앙 미드필더
A매치 기록: 52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3kg
주 소속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2010년대 노르웨이 축구계를 이끈 수비형 미드필더 겸 센터백으로 탄탄한 기본기와 우수한 체격을 바탕으로 뛰어난 수비력을 선보였으며 빌드업 상황에서는 우수한 킥력을 바탕으로 한 정확한 롱패스로 빌드업을 주도했고 데드볼 상황에서도 상대의 골문을 위협했다.

헤우게순에서 데뷔해 아스날로 이적했으나 아스날에서는 자리를 잡지 못했고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전성기를 누린 노르트베이트는 2011-12 시즌 팀의 분데스리가 4위를 기록하며 하위권에서 탈출했고 2014-15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3위를 기록하며 21세기 최고의 성적을 기록하게 했다. 그러나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로 떠난 뒤에는 기량이 하락했고 호펜하임으로 이적해 분데스리가로 돌아와서도 주전경쟁에 실패했다.

노르웨이 대표팀에서도 중용받은 노르트베이트는 U-21 대표팀에서는 2013년 UEFA 유로 U-21 챔피언십에서 3위를 기록했으나 성인 대표팀에서는 큰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이름: 케틸 레크달
생년월일: 1968년 11월 6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리베로
A매치 기록: 83경기 17골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헤르타 BSC

1990년대 노르웨이 축구계의 약진을 이끌었던 다재다능한 미드필더로 압도적인 활동량으로 공격과 수비에 모두 적극적으로 가담하며 넓은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했고 날카로운 스루패스로 공격의 활로를 뚫거나 난전 상황에서 평정심을 잃지 않고 냉정하게 최선의 선택지를 고름은 물론 주 포지션인 중앙 미드필더 이외에도 수비형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 그리고 리베로까지 뛸 수 있었던 노르웨이의 마테우스였다.

몰데에서 데뷔해 주목받았던 레크달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는 실패했지만 리에르세에서 부활에 성공해 벨기에 무대 정상급 미드필더로 평가받았고 프랑스의 렌에서도 한 시즌 준수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헤르타 BSC에서도 짧지만 굵은 활약을 보였는데 1997-98 시즌에 승격한 팀 중원의 사령관 역할을 맡아 1998-99 시즌 분데스리가 3위에 올렸고 1999-2000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2차 조별 리그 진출을 이뤄내며 헤르타 BSC 팬들이 뽑은 2003년에 뽑은 창단 111주년 기념 헤르타 BSC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노르웨이 대표팀이 FIFA 랭킹 2위를 기록하던 시절의 대표팀의 전성기를 이끈 레크달은 1994 미국 월드컵과 1998 프랑스 월드컵에 참가해 후자의 대회에서는 브라질을 잡고 1승 2무로 16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뤄냈는데 그 경기에서 경기 막판에 얻은 천금같은 페널티킥 골을 성공시켰다. 그리고 UEFA 유로 2000에도 주전으로 참가했다.

 

 

이름: 에리크 뮈클란
생년월일: 1971년 7월 21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A매치 기록: 78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3kg
주 소속팀: IK 스타르트

레크달과 함께 1990년대 노르웨이 축구계의 약진을 이끌었던 미드필더로 선 굵은 축구를 지향하던 동시의 노르웨이 축구계에서 보기 드문 테크니션으로 우수한 볼 컨트롤과 발재간을 바탕으로 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라인을 돌파했고 날카로운 쓰루패스로 득점 찬스를 만드는데 능했고 수비적으로도 기술적인 태클과 준수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상대와의 볼 경합에서 우위를 점했다.

브린에서 데뷔해 IK 스타르트에서 전성기를 맞은 뮈클란은 노르웨이 올해의 미드필더에 해당하는 크닉센상을 2회 수상했고 1996년에는 해외 진출을 시도해 오스트리아의 린츠, 그리스의 파니타나이코스, 그리고 독일의 1860 뮌헨에서 활약했고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덴마크 수퍼리가 2연패를 이뤄내고 은퇴했다가 2009년에 잠시 IK 스타르트로 복귀해 뛰기도 했다.

노르웨이 대표팀이 FIFA 랭킹 2위를 기록하던 시절의 대표팀의 전성기를 이끈 뮈클란은 1994 미국 월드컵 본선 진출, 1998 프랑스 월드컵 16강 진출 및 UEFA 유로 2000 본선진출을 이뤄냈는데 국제대회에서 모기를 연상케 하는 골 세레머니로 인해 모기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름: 마르틴 외데고르
생년월일: 1998년 12월 17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라이트윙
A매치 기록: 67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아스날 FC

유망주 시절에는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가 될 재능으로도 평가받았으며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음에도 프리미어리그 정상급 공격형 미드필더에 오른 선수로 기본적으로 날카로운 패싱력을 바탕으로 한 플레이메이킹과 드리블 및 슈팅력을 겸비한 공격형 미드필더지만 아스날에서 왕성한 활동량 및 간결한 볼 처리로 플레이스타일을 바꾸며 한층 더 현대적인 공격형 미드필더에 가까운 유형으로 성장했다.

노르웨이의 스트룀스고세 IF에서 만 15세에 데뷔해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던 외데고르는 라리가 최연소 출장기록을 세웠음에도 토니 크로스와 루카 모드리치가 자리한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자리를 잡지 못해 임대 신세를 전전했지만 비테세와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우수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2018-19 시즌 에레데비시 올해의 팀 및 2019-20 UEFA 라리가 올해의 레볼루션 팀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아스날로 이적해서는 전성기를 누리며 팀을 프리미어리그 상위권으로 복귀시켰고 외데고르 개인도 PFA 올해의 팀과 아스날 올해의 선수에 2회 선정되었고 특히 2022-23 시즌에는 ESM 올해의 팀에도 선정되었다.

노르웨이 대표팀에서도 만 15세 253일에 데뷔전을 치르며 최연소 데뷔를 기록한 외데고르는 2021년 3월 12일, 만 22살의 나이에 노르웨이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비록 노르웨이 대표팀 전력상 한계로 메이저 대회를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예선전에는 핵심 선수로 꾸준히 출전하고 있으며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할 예정이다.

 

 

이름: 페르 브레데센
생년월일: 1930년 12월 22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라이트윙, 포워드
A매치 기록: 18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SS 라치오

특유의 눈부신 금발에 착안해 햇살이라 불렸던 1950년대 이탈리아 무대에서 명성을 날린 인사이드 라이트로 탄탄한 기본기와 교활한 심리전을 바탕으로 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수를 쉽게 제쳤으며 신속한 원터치플레이로 패스와 슈팅을 적절한 타이밍에 구사했다.

FK 외른 호르텐에서 데뷔해 노르웨이 대표팀에도 소집되는 등 뛰어난 모습을 보였으나 이탈리아의 라치오로 이적해 활약하며 군나르 그렌, 닐스 리드홀름, 칼 아게 한센과 함께 세리에 A에 북유럽 전성시대를 재창했고 AC 밀란에서는 백업으로 활약하며 1956-57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고 말년에는 FK 외른 호르텐으로 돌아와 선수생활을 마무리했다.

가진 실력에 비해 노르웨이 대표팀 경력이 짧은데 이는 1952년 라치오로 이적한 탓에 다른 북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제도상 국가대표팀 스쿼드를 아마추어 팀으로만 구성할 수 있었던 탓에 소집될 수 없었던 탓이 컸다.

 

 

이름: 로알드 옌센
생년월일: 1943년 1월 11일
포지션: 라이트윙, 포워드
A매치 기록: 31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71cm / 몸무게 63kg
주 소속팀: 하트 오브 미들로니언

노르웨이 축구계에서 가장 기술적인 선수 중 한 명으로 볼 다루는 기술이 워낙 뛰어나 팬들로부터 크닉센, 즉 저글링을 하는 광대라고 불렸으며 빠른 스피드와 우수한 테크닉을 바탕으로 한 드리블 돌파로 명성을 떨쳤다.

2부 리그의 SK 브란에서 데뷔한 옌센은 곧바로 팀을 티펠리겐으로 승격시켰으며 곧바로 티펠리겐 2연패를 이뤄냈다. 그리고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스코틀랜드의 하트 오브 미들로니언에 입성했는데 부상으로 고전하긴 했지만 1967-68 시즌 스코티시컵 4강에서는 연장 결승골로 팀의 결승행을 기록했다.

노르웨이 대표팀의 암흑기 시절이라 국제무대에서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엔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우수한 볼 컨트롤을 기념하기 위해 노르웨이 축구계는 그 해 노르웨이 국적 최고의 미드필더에게 옌센의 별명을 딴 크닉센상을 수상한다.

 

 

이름: 모르텐 감스트 페데르센
생년월일: 1981년 9월 8일
포지션: 레프트윙, 중앙 미드필더
A매치 기록: 83경기 17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블랙번 로버스

노르웨이의 베컴이라고 불리며 2000년대 전성기를 누린 좌측면 미드필더로 왕성한 활동량으로 쉴 새 없이 공격기회를 만들었으며 자로 잰 듯한 정밀도 높은 왼발 크로스로 득점찬스를 만드는데 능했으며 오른발 역시 우수하게 잘 썼기에 데드볼 상황에서도 상대를 긴장시켰다.

트롬쇠에서 데뷔해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낸 페테르센은 잉글랜드의 블랙번 로버스로 이적해 아홉 시즌을 보내면서 공식전 349경기에 출전해 47골을 터트리며 2005년 맨유와의 경기에서 멀티골을 터트리며 2-1 승리를 이끌었고 2007-08 시즌에는 팀을 7위에 올리며 2008-09 시즌 UEFA컵 본선에 올렸다. 그리고 말년에는 로젠보리로 이적해 2015년 티펠리겐과 노르웨이컵 더블 우승을 이뤄냈다.

노르웨이 대표팀에서도 욘 아르네 리세와 함께 화려한 왼쪽 라인을 구성한 페테르센은 아쉽게도 메이저 대회에 나서지 못했다.

 

 

이름: 올레 군나르 솔샤르
생년월일: 1973년 2월 26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포워드, 라이트윙, 레프트윙
A매치 기록: 67경기 23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슈퍼 서브의 대명사급인 선수로 우수한 위치 선정과 자연스러운 공간 침투 능력은 물론 예리한 슈팅 능력까지 겸비해 교체로 출전해서도 경기를 뒤집는 능력에 능했으며 유려한 볼 컨트롤 능력은 물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 가운데 가장 완력이 강한 선수 중 하나로 회자되었을 정도로 파워도 강력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오랜 기간 슈퍼 서브 역할을 수행한 솔샤르는 프리미어리그 6회 우승 및 FA컵 2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1998-99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후반 추가시간에 토르스텐 핑크를 따돌리고 천금 같은 득점골을 넣어 트레블을 이루는데 큰 공을 세웠다.

노르웨이 대표팀에서는 주축으로 활약했던 솔샤르는 비록 메이저 대회 본선에서는 득점을 하지 못했지만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조커로, UEFA 유로 2000에서는 주전 윙포워드로 활약했다.

 

 

이름: 토레 안드레 폴로
생년월일: 1973년 6월 15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A매치 기록: 76경기 23골
신체조건: 키 193cm / 몸무게 86kg
주 소속팀: 첼시 FC

북유럽의 호나우두라고 불렸던 1990년대 노르웨이 축구계를 이끈 다재다능한 스트라이커로 큰 키를 활용해 상대 수비수들과의 공중볼 싸움에서 우위를 점했으며 몸이 상당히 유연한 편이라 좋지 않은 자세에서도 곧잘 슈팅으로 득점을 터트리곤 했다. 그리고 높은 수준의 발기술과 볼 컨트롤도 겸비해 드리블로 풀어나가는 부분과 연계 플레이 역시 준수했다.

노르웨이의 여러 클럽을 떠돌다가 첼시로 이적해 전성기를 누린 플로는 1997-98 시즌 리그컵과 UEFA 컵 위너스컵 더블 우승을 이뤄냈고 1998년 UEFA 슈퍼컵에서는 레알 마드리드를 격침시키고 우승을 차지했고 1999-2000 시즌은 FA컵 우승을 이뤄내기도 했다. 1200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스코틀랜드의 레인저스로 이적한 뒤에도 2001-02 시즌 스코티시 컵과 리그컵 더블을 이뤄냈으나 선덜랜드로 이적한 뒤에는 폼이 급락하며 몰락했다.

노르웨이 대표팀에서도 중용된 플로는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브라질전에서 동점골을 넣었고 역전골이 되는 페널티킥을 유도하여 16강 진출에 기여했고 UEFA 유로 2000에서도 주전으로 나섰다.

 

 


노르웨이 역대 올스타 1군 25인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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