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팀

국대 올스타 짜보기/서유럽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팀

토르난테 2025. 12. 15.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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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2025년 12월 3일 기준입니다.

 

기존에는 대표팀 활약에 가산점을 더 부여했지만 이 부분을 제외하고 다시 선정했습니다.

 

최소한의 밸런스는 챙길 예정이며 더블 리베로를 내는 현상이나 중앙 공격수로만 세 명이 나서는 현상은 최대한 피할 예정입니다.

 

선수 사진은 에펨네이션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을 주로 활용했습니다.

 

우선 베스트 일레븐만 공개하고 서브는 다음주에 보강하겠습니다.

 


1.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

 

별칭: 붉은 악마

월드컵: 출전 15회, 3위 1회

UEFA 유로: 출전 5회, 준우승 1회

올림픽: 출전 5회, 금메달 1회

최다 출전 선수: 얀 베르통언, 157경기

최다 득점 선수: 로멜루 루카쿠, 89골


2. 베스트 일레븐

 

골키퍼

 


이름: 티보 쿠르투아
생년월일: 1992년 5월 11일 
포지션: 골키퍼
A매치 기록: 107경기 84실점 / 54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200cm / 몸무게 96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벨기에의 제2의 황금 세대의 수문장으로 2m에 달하는 큰 키로 상대 공격수를 압도하며 평균 이상의 발밑은 물론 노이어와 부폰에 버금가는 슈퍼세이브로 명성을 날린 골키퍼였다.

첼시 소속이지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임대이적을 떠난 시기에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였던 쿠르투아는 2011-12 시즌 UEFA 유로파 리그 우승 및 2012-13 시즌 2012-13 우승, 그리고 2013-14 시즌 라리가 우승을 이뤄내며 단숨에 라리가 최고의 골키퍼로 뛰어올랐다. 그러나 첼시에서는 두 번의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이뤄냈음에도 다소 경기력에 기복이 있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본격적으로 전성기를 누렸는데 라리가 3회 우승 및 UEFA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을 이뤄냈고 쿠르투아 개인도 UEFA 챔피언스리그 올해의 팀에 4회 선정 및 사모라 트로피를 3회 수상했으며 ESM 올해의 팀에도 2회, 그리고 IFFHS 선정 세계 차고의 골키퍼에 2회 선정되었다.

벨기에 대표팀에서도 출중한 활약을 보여준 쿠르투아는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데뷔해 UEFA 유로 2016에서 8강 진출을 이뤄냈고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조국의 준결승 진출에 큰 공을 세우며 야신상을 수상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에서도 캐나다의 알폰소 데이비스의 페널티킥을 선방하는 위업을 보여줬으나 조국의 조별리그 탈락은 막지 못했다.

 

센터백

 


이름: 뱅상 콤파니
생년월일: 1986년 4월 10일
포지션: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A매치 기록: 89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93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

벨기에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로 콘크리트라 불리던 강력한 수비력과 영리한 수비 지능, 그리고 수비형 미드필더 출신이었던 만큼 뛰어난 빌드업 능력도 겸비한 완성형 수비수였다. 그리고 강력한 리더십으로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다년간 주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만수르 인수 이후 맨체스터 시티 최고의 수비수였던 콤파니는 10년간 주전으로 활약하며 프리미어리그 4회 우승과 FA컵 2회 우승을 이뤄냈고 개인적으로도 PFA 올해의 팀 3회 선정 및  2010-11 시즌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 수상 및 2011-12 시즌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린 콤파니는 구단 역사의 큰 획을 그은 공로를 인정받아 다비드 실바와 함께 에티하드 스타디움에 동상이 설치되었다.

벨기에 대표팀에서도 소위 '황금세대'의 리더역할을 했던 콤파니는 센터백으로 포지션을 바꾼 이후로는 수비라인의 리더이자 주장으로 활약했는데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8강 진출을 이뤄냈으며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주장 완장을 아자르에게 내줬고 조별리그에선 벤치를 지켰지만 토너먼트에서 주전으로 다시 활약하며 조국이 3위에 오르는데 크게 기여했다. 실제로 콤파니가 은퇴한 뒤 벨기에 대표팀은 리더십 부재로 무너졌다.

 

센터백

 


이름: 조르주 그륀
생년월일: 1962년 1월 25일
포지션: 센터백, 리베로, 수비형 미드필더, 라이트백
A매치 기록: 77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안더레흐트

1980년대와 90년대 벨기에 축구를 대표하는 스토퍼형 수비수로 우수한 맨마킹 실력을 자랑했으며 특히 파울 없이 깔끔하게 공만 건드려서 상대에게 공을 빼앗는 능력과 상대에게서 공을 탈취한 후 패스로 빌드업의 시작점 역할을 하는 부분에도 능했으며 라이트백과 리베로의 역할도 맡을 수 있었다.

안더레흐트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누린 그륀은 주필러리가 4회 우승과 벨기에컵 2회 우승은 물론 UEFA컵 결승에 두 번 진출해 1982-83 시즌에는 우승을 차지했으며 1989-90 시즌에는 컵 위너스컵 결승에 진출했으나 아쉽게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크고 작은 트로피를 13개나 들었으며 유럽 대항전 결승전에도 세 번이나 진출했다. 파르마에서도 전성기를 이어나가며 1991-92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끌었으며 1993년에는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냈다.

벨기에 대표팀에서도 11년간 주축으로 활약한 그륀은 UEFA 유로 1984에 라이트백으로 데뷔했고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조국의 첫 월드컵 준결승 진출을 이뤄냈으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스토퍼로,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리베로로 나서며 조국의 토너먼트 진출에 기여했다. 그륀 개인도 2021년에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 IFFHS가 선정한 벨기에 올타임 드림팀에 선정되었다.

 

라이트백

 


이름: 에릭 게레츠
생년월일: 1954년 5월 18일
포지션: 라이트백
A매치 기록: 86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PSV 에인트호번

2020년에 벨기에 축구 협회 창립 125주년 기념으로 선정한 역대 베스트 일레븐과 2021년에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인 IFFHS가 선정한 벨기에 올타임 드림팀에 동시에 선정된 벨기에 축구사 최고의 수비수로 강력한 승부욕과 카리스마로 팀을 장악했으며 상대 수비를 끈질기게 수비해 사람들로부터 '플렌더스의 사자'라고 불렸다.

스탕다르 리에주와 PSV에서 전성기를 누린 게레츠는 전자의 구단에서는 1980-81 시즌 벨기에 컵 우승 및 주필러리가 2연패를 이뤄냈고 AC 밀란에서는 다소 좋지 못한 시즌을 보냈지만 후자의 구단으로 이적한 뒤에는 에레데비시 4연패를 포함해 리그 6회 우승과 1987-88 시즌 트레블을 이뤄낸 주역으로 활약했음은 물론 게레츠 개인도 옹즈 몽디알이 뽑은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으며 1982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12위에 오른 게레츠는 1995년에 투표한 20세기 벨기에 최고의 선수 투표에서 8위에 올랐다.

벨기에 대표팀에서도 붉은 악마라 불리는 대표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게레츠는 UEFA 유로 1980 준우승을 이뤄냈고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를 물리쳤을 때 마라도나를 잘 막아내며 돈 발롱으로부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견고한 수비력으로 조국의 준결승행을 이끌며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로부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주장을 역임하며 조국의 토너먼트 진출을 도왔다.

 

레프트백

 


이름: 얀 베르통언
생년월일: 1987년 4월 24일
포지션: 센터백, 레프트백, 수비형 미드필더
A매치 기록: 157경기 10골
신체조건: 키 189cm / 몸무게 86kg
주 소속팀: 토트넘 핫스퍼

2010년대 벨기에를 대표하는 수비수 중 한 명으로 수비라인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는 전진 드리블과 강력한 왼발 킥에서 나오는 롱패스로 빌드업의 시작점 역할을 하는 부분이 특히 빛났으며 상대의 빌드업 차단 능력과 공중볼 경합 능력에도 능했으며 레프트백도 볼 수 있던 다재다능한 자원이었다.
 
아약스에서 데뷔한 베르통언은 알더베이렐트와 함께 강력한 수비라인을 구성하며 에레디비시 2연패를 이뤄내면서 2011-12 시즌 네덜란드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토트넘 핫스퍼에서는 비록 우승컵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전성기를 누리며 2018-19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뤄냈고 베르통언 개인도 해당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음은 물론 PFA 올해의 팀에도 2회 선정되었다. 그리고 2022-23 시즌에는 벤피카에서 프리메이라 리가 우승을 이뤄냈다.

벨기에 대표팀 A매치 통산 최다 출전자로 이름을 남긴 베르통언은 2014 독일 월드컵과 UEFA 유로 2016에서 8강에 올랐고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일본을 상대로 일명 독수리 헤딩슛이라고 불리는 장거리 헤딩슛으로 득점하며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는 등 조국이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성적인 3위를 기록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UEFA 유로 2020에서도 8강에 올랐고 2022 카타르 월드컵과 UEFA 유로 2024에도 출전했다. 여담으로 현역으로 활약하던 2021년에 IFFHS 선정 올타임 벨기에 드림팀에 선정되었다.

 

수비형 미드필더

 


이름: 빌프리트 반 모어
생년월일: 1945년 3월 1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A매치 기록: 57경기 9골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스탕다르 리에주

1970년대 벨기에 축구의 아이콘으로 단신이라는 단점을 넓은 활동범위와 강철 같은 체력, 그리고 우수한 볼 간수 능력과 우수한 전술안을 활용한 경기 조율 능력을 앞세웠으며 수비적인 능력으로는 대인 마킹에 능했으며 공격적인 능력으로는 뛰어난 중거리 슈팅을 가지고 있었다.

벨기에 리그의 베버른과 로열 앤트워프, 그리고 스탕다르 리에주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반 모어는 특히 스탕다르 리에주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벨기에 주필러 리가 3연패를 이뤄냈고 반 모어 개인도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세 번 선정되는 등 전성기를 누렸고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도 4회 선정되어 1980년에 개인 통산 4위에 올랐다.

벨기에 대표팀에서의 활약은 더 대단했던 반 모어는 무려 16년간 소집되며 롱런했는데 붉은 악마 군단의 중원 사령관으로 활약하며 1970 브라질 월드컵 지역예선 통과부터 UEFA 유로 1972 3위, UEFA 유로 1980 준우승 및 1982 스페인 월드컵까지 주전으로 활약했다. 특히 UEFA 유로 1980에서 보여준 퍼포먼스는 대단해 대회 최우수 선수 투표에서 7위를 기록했다. 은퇴한 뒤에서 1995년에 투표한 20세기 벨기에 최고의 선수 투표에서 3위에 올랐으며 2021년에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인 IFFHS가 선정한 벨기에 올타임 드림팀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라이트 메짤라

 


이름: 케빈 더 브라위너
생년월일: 1991년 6월 28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라이트윙
A매치 기록: 115경기 36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

2010년대 하반기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넓은 시야와 창의적인 두뇌에서 나오는 뛰어난 패싱력과 왕성한 활동량, 탄탄한 기본기와 양발 사용 능력을 겸비했으며 2021-22 시즌에는 통산 19골을 기록했을 정도로 우수한 득점력마저 장착했다.

현세대 맨체스터 시티를 대표하는 아이콘인 더 브라위너는 블루문 군단의 전성기를 이끌며 프리미어리그와 리그컵 각각 5회 우승 및 FA컵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2018-19 시즌에는 도메스틱 트레블을 이뤄냈고 2022-23 시즌은 리그와 FA컵 우승에 이어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더 브라위너 개인도 2022-23 시즌 프리미어리그, FA컵, 그리고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모두 도움왕을 수상했고 ESM 올해의 팀 5회 선정, UEFA 챔피언스리그 올해의 스쿼드 6회 선정 및 PFA 올해의 선수와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에 각각 2회 선정되었으며 2021-22 시즌에는 발롱도르 3위 및 UEFA 올해의 선수 2위에 올랐다.

벨기에 대표팀에서는 기대 이하라고 저평가받기도 하지만 그래도 팀의 중핵으로 평가받는 더 브라위너는 2014 브라질 월드컵과 UEFA 로 2016에서 8강이라는 성적표를 이뤄냈으며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소속팀에서는 뛰어본 적 없는 후방 플레이메이커로 뛰며 기대만큼은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우수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앞세워 팀의 준결승행에 기여했다. 이후에도 주축으로 활약했다.

 

레프트 메짤라

 


이름: 얀 쾰레만스
생년월일: 1957년 2월 28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스트라이커, 포워드, 중앙 미드필더
A매치 기록: 96경기 23골
신체조건: 키 191cm / 몸무게 84kg
주 소속팀: 클뤼프 브뤼허

1980년대 벨기에 축구의 최전성기를 이끈 공격형 미드필더이자 벨기에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191cm에 거대한 체격을 앞세운 몸싸움으로 압박을 뚫어냈으며 패싱력이 창의적이진 못했지만 가공할만한 드리블로 수비라인을 돌파해 이를 상쇄시켰으며 우수한 1선 침투 능력과 헤딩 능력을 겸비해 스트라이커로도 뛸 수 있었다.

벨기에 리그가 유럽대항전에서 맹위를 떨치던 시절에 클럽 브뤼헤에서 활약한 쾰레만스는 주필러 리가 3회 우승과 벨기에 컵 2회 우승, 그리고 벨기에 슈퍼 컵 5회 우승을 이뤄냈고 쾰레만스 개인도 벨기에 리그 MVP에게 수여하는 벨기에 골든슈를 3회 수상했으며 옹즈 몽디알이 뽑은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다.

벨기에 대표팀에서도 우수한 리더쉽과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황금기의 주인공 쾰레만스는 UEFA 유로 1980에서는 팀을 결승에 올려놓으며 MVP 투표에서 2위를 차지했음은 물론 발롱도르 투표에서 5위에 올랐고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를 침몰시켰고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주장 완장을 차고 팀을 준결승까지 올리는데 큰 공을 세워 대회 올스타 팀에 들어 팬들로부터 용감한 주장이라 불렸다.

 

라이트윙

 


이름: 폴 반 힘스트
생년월일: 1943년 10월 2일
포지션: 포워드,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
A매치 기록: 81경기 30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83kg
주 소속팀: RSC 안더레흐트

안더레흐트 구단과 벨기에 역대 최고의 선수이자 1960년대 유럽 정상급 포워드로 창의적인 패싱력과 동료들을 활용한 우수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보여줬으며 유려한 드리블과 우수한 슈팅 센스까지 겸비한 완성형 공격수로 하얀 펠레라 불렸다.

안더레흐트에서 선수 생활 대부분을 보낸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 폴 방 힘스트는 최고의 파트너 제프 유리온과 함께 파트비스 군단의 주필러리가 8회 우승, 벨기에 컵 4회 우승을 포함해 크고 작은 대회에서 16개의 우승 트로피를 이뤄냈음은 물론 1969-70 시즌 인터시티 페어스 컵에서는 결승 진출을 이뤄냈고 반 힘스트 개인도 벨기에 골든슈 4회, 벨기에 주필러리가 득점왕 3회 수상했으며 1966-67 시즌 유러피언 컵 득점왕과 1969-70 시즌 이너시티 페어스 컵 득점왕을 수상했다.

벨기에 대표팀 소속으로도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엿던 폴 반 힘스트는 크루이프가 이끄는 네덜란드를 유럽 지역예선에서 꺾고 1970 멕시코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고 1972 UEFA 유로 3위를 이뤄냈다. 반 힘스트는 당시 유럽에서 변방으로 취급받은 벨기에 무대에서 활약했음에도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6회에 선정되어 1965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4위에 올랐다.

 

레프트윙

 


이름: 에당 아자르
생년월일: 1991년 1월 7일
포지션: 레프트윙, 라이트윙,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A매치 기록: 126경기 33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첼시 FC

2010년대를 풍미한 측면 플레이메이커 스타일의 윙어로 섬세한 볼 컨트롤과 우수한 스피드, 그리고 넓은 시야와 훌륭한 패스 실력에서 나오는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겸비했는데 패스트푸드를 굉장히 좋아하고 남들에 비해 훈련에 투자하는 시간이 적었음에도 세계구급 선수로 군림했을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다.

유망주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다가 2010-11 시즌, LOSC 릴의 리그앙과 쿠프 드 프랑스 더블 우승이라는 대업적을 이뤄내며 리그앙 올해의 선수상을 2회 연속 수상한 아자르는 첼시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프리미어리그 2회 우승과 UEFA 유로파 리그 2회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아자르 개인도 2014-15 시즌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 FWA 올해의 선수, PFA 올해의 선수를 석권한 것을 포함해 PFA 올해의 팀에 4회 선정되었고 ESM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되었다.

벨기에 올해의 선수상을 3회 연속으로 수상한 아자르는 다년간 붉은 악마 군단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세 번의 월드컵과 두 번의 UEFA 유로에 출전했는데 특히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대표팀 역사상 최고의 월드컵 성적인 3위에 올린 일등 공신이었음은 물론 본인도 실버볼을 수상하며 대회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이름을 날렸는데 혹자는 모드리치보다도 우수한 활약상을 보였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스트라이커

 


이름: 레이몽 브레인
생년월일: 1907년 4월 28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포워드
A매치 기록: 54경기 26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스파르타 프라하

1930년대 유럽 최고의 중앙공격수 중 한 명으로 뛰어난 테크닉과 치명적인 오른발 슈팅을 활용한 우수한 득점력은 물론 뛰어난 공간지각력을 바탕으로 공간활용에 능했던 공격진의 리더였음과 동시에 훈련에서의 성실함으로 다른 선수들의 귀감이 되었다.

베이르스훗에서 데뷔해 벨기에 1부 리그 4회 우승 및 득점왕 2회 수상을 이뤄내며 전 유럽의 주목을 받았던 브레인은 잉글랜드 무대 진출을 노렸으나 허가가 나지 않아 1920년대 유럽 대륙 최고의 클럽이었던 체코슬로바키아의 스파르타 프라하에 입단해 전성기를 누리며 정규리그 2회 우승 및 득점왕 2회 수상을 이뤄냈고 중유럽의 챔피언스리그격 대회인 1935 미트로파컵 우승을 이뤄냈는데 결승전 1차전에는 샤로시의 페렌츠바로시를 상대로 만회골을 득점해 졌지만 잘 싸웠고 2차전에서는 멀티골을 터트리며 페렌치바로시를 3-0으로 대파했다.

말년에는 고향팀 베이르스훗으로 돌아와 1부 리그 2회 우승을 더 추가한 브레인은 벨기에 대표팀에서도 1925년에 데뷔해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3경기에 출전해 3골을 득점했다. 그러나 스파르타 프라하로 이적하며 벨기에 축구 협회에서 프로 선수의 대표팀 참가를 막아 브렌은 1930년 월드컵과 1934년 월드컵에는 소집조차 되지 못했다. 그러나 법이 바뀌어 1935년부터 재소집되었고 1938 프랑스 월드컵에 참가했다. 브라인은 사후 1995년에 20세기 벨기에 최고의 선수 투표에서 7위에 올랐으며 2021년에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인 IFFHS가 선정한 벨기에 올타임 드림팀에 선정되었다.

 

감독

 


이름: 기 티
생년월일: 1922년 12월 6일
부임기간: 1976~1991

우수한 통솔력과 실리를 앞세운 적재적소의 전술을 바탕으로 벨기에를 1980년대를 풍미한 강자의 반열로 올렸던 벨기에 역사상 최고의 감독이다.

벨기에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유로 1980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상대를 정확히 파악해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를 잡는 파란을 일으켰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조국 벨기에 역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준결승 진출을 이뤄내며 월드 사커지 선정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으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도 조국의 16강 진출을 이뤄냈다.

기 티는 2020년에 벨기에 축구 협회 창립 125주년 기념으로 선정한 역대 아이콘 팀의 감독으로 선정되었다.

 


베스트 일레븐

 

 

 


3. 서브 14인 포함 1군 스쿼드

 

 

이름: 장 마리 파프
생년월일: 1953년 12월 4일
포지션: 골키퍼
A매치 기록: 64경기 75실점 / 21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1970년대와 1980년대 벨기에 축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수문장으로 골키퍼로서 모든 부분에서 우수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특히 페널티 킥 방어 능력에서 64%를 기록하며 매우 우수한 모습을 보여줬다.

자국 리그의 베베른에서 데뷔해 우승 후보와는 거리가 먼 베버른에게 주필러리가 우승을 이뤄내 벨기에 골든슈를 수상한 파프는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분데스리가 3연패와 유러피언 컵 결승 진출을 이뤄내며 키커 랑리스테에서도 월드클래스 등급을 3회 받았음은 물론 1986-87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뤄내며 1987 IFFHS 월드 베스트 골키퍼에 선정되었다.

벨기에 대표팀에서도 조국의 황금기에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준 파프는 UEFA 유로 1980 준우승을 이뤄냈고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를 꺾고 2차 조별리그 진출을 이뤄냈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팀의 준결승행을 견인했는데 이런 활약을 인정한 프랑스 풋볼은 파프를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했다. 그리고 은퇴한 뒤인 2021년에는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인 IFFHS가 선정한 벨기에 올타임 드림팀에 선정되었다.

 

 

이름: 미셸 프뢰돔
생년월일: 1959년 1월 24일
포지션: 골키퍼
A매치 기록: 58경기 56실점 / 26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KV 메헬른

1990년대 붉은 악마라 불렸던 벨기에의 골문을 지켰던 골키퍼로 빠른 민첩성과 반사신경은 물론 일대 일 상황에서의 빠른 상황 판단을 바탕으로 한 선방 능력으로 유명했다.

스탕다르 리에주에서 데뷔해 첫 전성기를 누린 프뢰돔은 1980-81 시즌 벨기에 컵 우승 및 주필러리가 2연패를 이뤄냈고 메헬른에서는 전성기를 누리며 1986-87 시즌 벨기에 컵 우승과 1987-88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냈고 1988 UEFA 슈퍼컵과 1988-89 시즌 주필러리가 우승을 이뤄냈다. 프뢰돔 개인도 이 두 팀에서 벨기에 골든슈 2회, 벨기에 올해의 골키퍼에 4회 선정되었고 1989년에는 컵 위너스컵 우승의 주역으로 발롱도르 투표에서 10위에 올랐다.

대표팀에서는 자국 리그에서는 장마리 파프의 아성에 밀려 오랜 기간 벤치에 앉았다가 1980년대 후반에 주전 자리를 차지한 프뢰돔은 1990 이탈리아 월드컵과 1994 미국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했는데 후자의 대회에서는 야신상과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으며 이 대회에서의 활약으로 1994년 IFFHS 선정 월드 베스트 골키퍼로 선정되었다.

 

 

이름: 로랑 베르비스트
생년월일: 1939년 4월 16일
포지션: 리베로, 센터백
A매치 기록: 23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RSC 안더레흐트

벨기에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이자 당대 최고의 리베로 중 한 명으로 평가받던 선수로 상대 공격수를 따돌리기 위해 수비 지역에서 모험적인 드리블을 강행했는데 기본적인 수비력과 수비 조율 능력에도 탁월했으며 패싱력도 우수한 볼 플레잉 디펜더였기에 이탈리안 르네상스의 후계자 로렌초 데 메디치의 별명에서 따온 '장대한 로렌초'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오스텐데에서 데뷔해 두각을 나타낸 베르비스트는 안더레흐트에서 활약하며 벨기에 주필러리가 4회 우승을 이뤄내며 전성기를 구가했는데 체사레 말디니, 얀 포플루하르에 비견되는 유럽 최고 레벨의 리베로였고 벨기에 대표팀에서도 수비라인의 핵심으로 활약했으나 1966년 2월에 2일에 한창 전성기를 누릴 나이에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하며 업적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개인의 재능은 벨기에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었을 정도로 우수했지만 교통사고로 전성기를 일찍 마감하는 불운으로 자신의 재능을 성과로 만들어내지는 못한 비운의 천재였던 베르비스트는 사후인 1984년에 프랑스 풋볼이 선정한 역대 최고의 센터백 7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이름: 아르망 스바르텐브뢰크스
생년월일: 1892년 6월 30일
포지션: 센터백, 레프트백
A매치 기록: 50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DC 몰렌베크

1910년대와 20년대, 벨기에 축구 태동기에 활약했던 수비수로 포지션은 2-3-5 시스템의 레프트 풀백으로 오늘날의 왼쪽 센터백과 유사했는데 강인한 정신력과 뛰어난 대인 수비 기술을 겸비했다고 전해진다.

클럽 커리어의 전부를 DC 몰렌베크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인 스바르텐브뢰크스는 주필러리가 3회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벨기에 대표팀에서도 핵심으로 활약하며 1920 앤트워프 올림픽에서 기적적인 금메달의 주역이 되었으며 벨기에 축구 역사상 최초로 A매치 50경기에 출전했다.

 

 

이름: 조르주 헤일런스
생년월일: 1941년 8월 8일
포지션: 라이트백
A매치 기록: 67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7kg
주 소속팀: RSC 안더레흐트

1960년대 최고의 측면 수비수 중 하나로 168cm의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테크닉과 유려한 드리블과 전진성을 앞세운 공격형 풀백이었으며 수비적인 부분에서도 공중볼 경합에 능했으며 볼의 소유권을 잘 지켜냈다.

선수 생활을 전부 안더레흐트에서 보낸 원 클럽맨 헤일런스는 1960년대 구단의 대약진을 이끌며 이끌며 주필러리가 7회 우승과 벨기에 컵 3회 우승을 이뤄냈고 1969-70 시즌에는 인터시티 페어스컵 결승에 진출했으나 아스널에게 1차전에 3-1로 승리했음에도 2차전에서 3-0으로 대역전패의 희생양이 되어 탈락했다.

1963-64 시즌에는 유럽 축구 오스카 선정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된 이력이 있는 헤일런스는 벨기에 대표팀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며 1970 멕시코 월드컵과 UEFA 유로 1972 주전으로 나섰으며 후자의 대회에서는 3위에 오르는데 공헌했다.

 

 

이름: 미셸 랑캥
생년월일: 1955년 11월 3일
포지션: 레프트백, 센터백, 리베로
A매치 기록: 55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스탕다르 리에주

벨기에 축구계 역대 최고의 레프트백 중 하나이자 전성기에는 유럽 무대에서도 정상급 레프트백이었으며 공격력은 평범했지만 안정적인 수비력으로 이름을 떨쳤다.

스탕다르 리에주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보낸 랑캥은 1974-75 시즌 벨기에 리그컵 및 1980-81 시즌 벨기에 컵 우승을 이뤄냈고 스위스의 세르베트에도 1983-84 시즌 컵대회 우승 및 1984-85 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붉은 악마라 불렸던 벨기에 대표팀에서도 UEFA 유로 1980 준우승을 이뤄낸 것을 시작으로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뛰어난 수비력으로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승리하는데 공을 세웠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조국의 준결승 진출에 기여했다.

 

 

이름: 프랑키 반 더 엘스트
생년월일: 1961년 4월 30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리베로
A매치 기록: 86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클뤼프 브뤼허

19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 활약하며 강인한 정신력을 지닌 유럽 정상급 수비형 미드필더로 이름을 날렸으며 저돌적이고 거친 수비를 앞세워 상대 공격수와의 경합에서 이겨냈으며 날카로운 슬라이딩 태클로 상대에게 볼을 탈취한 뒤에 안정적인 패싱력으로 볼을 배급하는 부분에서도 출중했으며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아군의 빈 수비라인을 커버했다.

클뤼프 브뤼허에서 전성기를 누린 반 데르 엘스트는 얀 쾰레만스, 대니 벌린덴과 함께 벨기에 주필러리가 5회 우승, 벨기에컵 4회 우승 및 벨기에 슈퍼컵 8회; 우승을 이뤄내며 클뤼프 브뤼허를 안더레흐트에 견줄 수 있는 명문클럽으로 만들었고 반 데르 엘스트 개인도 벨기에 리그 MVP격인 벨기에 골든슈에 2회 선정되었다.

벨기에 대표팀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반 데르 엘스트는 무려 네 번의 월드컵에 참가했는데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백업 멤버로 조국의 준결승행을 경험했으며 이후 1990년대에는 세 번의 월드컵에 모두 주전으로 참가해 1990 이탈리아 월드컵과 1994 미국 월드컵에서 조국의 토너먼트 진출을 이뤄냈다. 그는 은퇴한 뒤에 2004년에 펠레가 선정한 FIFA 100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이름: 악셀 비첼
생년월일: 1989년 1월 12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센터백
A매치 기록: 134경기 12골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010년대 벨기에 대표팀을 이끌었던 수비형 미드필더로 발은 느리지만 우수한 볼 컨트롤에서 나오는 볼 키핑과 패싱력은 물론 견고한 수비력까지 겸비해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와 전형적인 수비형 미드필더의 역할을 모두 우수하게 소화했으며 지구력이 강하고 부상을 잘 당하지 않았는데 특히 2018-19 시즌에는 소속팀이 소화한 공식전 전 경기에 출전하면서도 체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스탕다르 리에주에서 데뷔해 데뷔 2년 차인 2007-08 시즌에 만 18세의 나이로 주전자리를 차지한 비첼은 주필러리가 2연패 및 2010-11 시즌 벨기에컵 우승을 이뤄냈고 비첼 개인도 2007-08 시즌 벨기에 올해의 영플레이어상과 주필러리가 MVP에게 주는 벨기에 골든슈를 동시에 석권했다. 그리고 벤피카로 이적해서도 리그우승에는 실패했지만 2011-12 시즌 포르투갈 프리메이라 리가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으며 러시아의 제니트에서는 2014-15 시즌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우승과 2015-16 시즌 러시아컵 우승을 이뤄냈다. 중국의 톈진 취안젠에 다녀왔다가 도르트문트로 이적해 유럽에 복귀한 비첼은 2018-19 시즌에 화려하게 부활하며 VDV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2019년 DFL슈퍼컵 우승 및 2020-21 시즌 DFB포칼 우승을 이뤄냈다.

벨기에 대표팀에서도 센추리 클럽에 가입하며 황금세대 3선의 핵심적인 역할을 맡은 비첼은 2014 브라질 월드컵을 시작으로 UEFA 유로와 월드컵에 각각 3회 출전했는데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조국이 3위에 오르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그리고 2020년에는 벨기에 왕립 축구 협회가 선정한 125년 아이콘팀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름: 루도 코엑
생년월일: 1955년 9월 25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레프트윙
A매치 기록: 46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RSC 안더레흐트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 벨기에 축구계를 풍미했던 미드필더로 높은 수준의 전술안과 패싱력을 통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물론이고 공수 양면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는데 왕성한 활동량으로 수비에 적극 가담해 상대의 공격 흐름을 끊는 인터셉트는 물론 우수한 왼발 중거리 슈팅과 헤더를 통해 득점포를 가동하며 공격적인 부분에서도 장점을 드러냈으며 이런 다재다능함을 앞세워 미드필더 전 지역에서 활약할 수 있었으며 레프트윙으로도 기용되었다.

안더레흐트에서 전성기를 보낸 루도 코엑은 벨기에 주필러리가 2회 우승과 벨기에컵 3회 우승과 리그컵 2회 우승은 물론 유럽 무대에서도 UEFA 컵 위너스컵에서 3회 연속 결승에 진출해 그중 두 번 우승했으며 UEFA 슈퍼컵에서도 당대 최강이라 불리는 바이에른 뮌헨과 리버풀을 모두 꺾었으며 1982-83 시즌에는 UEFA컵 우승을 이뤄내는 등 파트비스 군단에게 크고 작은 우승컵 17개를 선물하며 구단의 레전드로 활약했다.

벨기에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한 코엑은 982 스페인 월드컵에 주전으로 활약하며 마라도나와 켐페스가 이끄는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를 격파하는데 큰 공을 세웠으나 인테르에서 적응에 실패하며 주전으로 밀려나 UEFA 유로 1984에는 백업으로 참가했다. 그러나 그의 커리어는 굉장히 허망하게 끊겼는데 1985년에 브뤼셀 TV의 스포츠 프로그램에 출연해 촬영분을 찍은 뒤 앤트워프로 돌아가는 길에 일어난 차량 사고로 30세의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비운의 스타였다.

 

 

이름: 엔조 시포
생년월일: 1966년 2월 19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 포워드, 중앙 미드필더
A매치 기록: 84경기 18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RSC 안더레흐트

1980년대 중반~90년대 초반, 벨기에 축구의 아이콘으로 마라도나에 비견되는 볼 컨트롤 능력과 넓은 시야와 창조적인 패스에서 나오는 플레이메이킹 능력과 찰진 슈팅 능력을 바탕으로 활약했다.

안더레흐트에서 데뷔한 엔조 시포는 10대의 어린 나이부터 주필러리가 톱클래스급 활약을 펼치며 안더레흐트의 주필러리가 3연패를 이뤄냈고 시포 개인도 1983-84 시즌 주필러리가 MVP 격에 해당되는 벨기에 골든슈를 수상했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인테르 밀란과 프랑스의 지롱댕 보르도에서는 실패한 시즌을 보냈다. 그러나 옥세르로 이적해서 부활에 성공하며 1990년 리그앙 올해의 외국인 선수에 선정되었고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6위에 올랐고 이탈리아의 토리노에서도 1991-92 시즌 세리에 A 3위 및 UEFA컵 준우승을 이뤄내며 팀의 화려한 부활을 이끌었고 1996-97 시즌에는 AS 모나코의 리그앙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말년에 안더레흐트로 돌아와 1999-2000 시즌 주필러 리가 우승을 이뤄냈다.

벨기에 대표팀에서는 10대의 나이부터 A 대표팀에 소집된 시포는 UEFA 유로 1984에 데뷔해 1998 프랑스 월드컵까지 오랜 기간 핵심선수로 활약했는데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조국의 4강 진출을 이끌며 신인상을 수상했고 복수의 매체로부터 월드컵 올스타팀에 선정되었다. 은퇴한 이후에는 2020년에 벨기에 축구 협회 창립 125주년 기념으로 선정한 역대 베스트 일레븐과 2021년에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인 IFFHS가 선정한 벨기에 올타임 드림팀에 동시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이름: 제프 유리온
생년월일: 1937년 2월 24일
포지션: 라이트윙, 공격형 미드필더, 포워드
A매치 기록: 64경기 9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RSC 안더레흐트

1950년대 중반~60년대 후반, 미스터 유럽이라 불렸던 당대 유럽 정상급의 인사이드 포워드이자 라이트윙으로 우수한 드리블 실력과 패스를 자주 하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최적의 상황에서의 킬러 패스로 유명했으며 쥬리온 자신도 "팬들은 제가 볼을 너무 오래 소유한다는 이유로 저를 비판하지만 저는 나쁜 패스를 주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패스를 줄 최적의 기회를 기다리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라고 인터뷰했다.

안더레흐트에서 데뷔해 구단의 벨기에 무대 독주를 이뤄낸 유리온은 파트비스 군단의 핵심 선수 중 한 명으로 맹활약하며 주필러리가 8회 우승과 1964-65 시즌 벨기에 컵을 우승하며 안더레흐트가 벨기에의 왕으로 군림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유리온 개인도 1957년과 1962년에 벨기에 골든슈를 수상하며 벨기에 최고의 선수로 이름을 날렸으며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1962년부터 1964년까지 3년 연속으로 선정되었으며 1962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5위에 랭크되었다.

녹내장으로 인해 축구 역사상 최초로 고글을 쓰고 축구를 했던 쥬리온은 벨기에 대표팀에서도 오랜 시간 주축으로 활약했지만 조국의 암흑기에 맞물리며 개인의 활약은 훌륭했어도 메이저 대회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이름: 프랭키 베르카우테렌
생년월일: 1956년 10월 28일
포지션: 레프트윙, 공격형 미드필더
A매치 기록: 63경기 9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RSC 안더레흐트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반 벨기에 축구를 대표하던 윙어로 엄청난 가속도에서 나오는 드리블을 활용해 상대 측면을 무너트렸고 원 터치 패스에도 능숙해 많은 찬스를 만들어냈으며 이런 화려한 플레이를 보고 팬들은 베르카우테렌한테 어린 왕자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안더레흐트에서 전성기를 누린 베르카우테렌은 에이스 렌센블링크와 주전자리를 두고 경쟁하기도 하고 공존하기도 하며 파스비트 군단의 주필러리가 4회 우승과 1975-76 시즌 벨기에 컵 우승은 물론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에서도 3회 연속 결승 진출을 이뤄냈고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UEFA 슈퍼컵 2회 우승과 UEFA컵 2회 결승 진출에서 1982-83 시즌에는 우승을 차지했으나 1983-84 시즌에는 토트넘에게 승부차기에서 패하며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다.

1983년 벨기에 골든슈를 수상한 베르카우테렌은 벨기에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했는데 1982 스페인 월드컵과 UEFA 유로 1984, 그리고 1986 멕시코 월드컵에 참가했는데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주전 멤버로 활약하며 준결승 진출을 이뤄냈다.

 

 

이름: 루이 반 헤게
생년월일: 1889년 5월 8일
포지션: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스트라이커
A매치 기록: 12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5kg
주 소속팀: 위니옹 생질루아즈

벨기에 축구가 배출한 최초의 스타 공격수로 주로 인사이드 포워드에서 활약했는데 현란한 발재간과 뛰어난 패싱력을 겸비해 팀의 플레이메이킹을 주도했다.

자국 리그의 로열 우니온 생질루아즈에서 첫 전성기를 누린 반 헤게는 벨기에 리그 3회 우승을 이뤄냈고 AC 밀란에서도 1910년대의 에이스로 군림했는데 최초의 비 이탈리아-잉글랜드인 선수이자 최초의 외국인 주장으로 제노아와의 데뷔전에서 2골을 넣으며 완벽한 임팩트를 남겼고 다섯 시즌 동안 경기당 1골 이상을 득점하며 맹활약했으며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징집으로 벨기에로 아쉽게 떠났다.

벨기에 대표팀에서도 1920 앤드워프 올림픽에서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워 금메달을 목에 거는 영광을 누렸다.

 

 

이름: 로멜로 루카쿠
생년월일: 1993년 5월 13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A매치 기록: 124경기 89골
신체조건: 키 191cm / 몸무게 93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어린 시절부터 괴물 유망주로 이름을 날렸으며 2010년대 후반과 2020년대 초반에 유럽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공격수로 거대한 피지컬과는 다르게 빠른 스피드를 지녔으며 날카로운 왼발 슈팅과 뛰어난 연계플레이로 이름을 날렸던 공격수로 그동안은 우수한 신체에도 불구하고 포스트플레이와 헤더에서 약점을 드러냈지만 인테르 밀란에서 안토니오 콘테와 만난 이후 이 부분이 개선되며 공중볼에서도 강점을 보였다.

벨기에의 안더레흐트에서 데뷔해 일찌감치 괴물 유망주로 명성을 떨치며 2009-10 시즌 주필러리가 우승을 이뤄내며 리그 득점왕에 오른 루카쿠는 첼시에서는 주전자리를 차지하지 못했지만 웨스트 브롬위치와 에버튼에서는 프리미어 리그 톱클래스 스트라이커로 등극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는 다소 하락세였지만 콘테 체제의 인테르에 합류한 루카쿠는 인테르에서 물 만난 물고기와 같은 활약을 펼쳤는데 2019-20 시즌에는 UEFA 유로파 리그 준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우며 UEFA 유로파 리그 시즌의 스쿼드 및 UEFA 유로파 리그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2020-21 시즌에는 세리에 A 우승 및 올해의 선수, MVP, 그리고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첼시에서는 다시 몰락해서 인테르와 AS 로마, 그리고 나폴리에 임대되었는데 나폴리에서는 콘테와 재회하며 2024-25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다.

벨기에 대표팀 A매치 통산 최다 출전자의 자리에 랭크된 루카쿠는 만 17세였던 2010년부터 성인 대표팀에 소집되었는데 2014 브라질 월드컵과 UEFA 유로 2016에서 8강에 진출했으며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4골을 득점하며 조국의 준결승 진출에 크게 공헌하며 마르카로부터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2020년에는 벨기에 축구 협회 창립 125주년 기념으로 선정한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벨기에 역대 올스타 1군 25인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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