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국대 올스타 짜보기/동유럽

세르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토르난테 2025. 12. 1.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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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2025년 11월 30일 기준입니다.

 

기존에는 대표팀 활약에 가산점을 더 부여했지만 이 부분을 제외하고 다시 선정했습니다

 

그러나 감독은 세르비아 대표팀 감독으로서의 활약을 기준으로 뒀습니다. 고로 알렉산다르 티르나니치가 선정되었습니다.

 

최소한의 밸런스는 챙길 예정이며 더블 리베로를 내는 현상이나 스트라이커로만 세 명이 나서는 현상은 최대한 피할 예정입니다.

 

선수 사진은 에펨네이션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을 주로 활용했습니다.

 

※ 이반 쿠르코비치는 현재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영토인 모스타르 태생이면서 태어날 당시에는 크로아티아 독립국 국적이었지만 세르비아에 체류중임은 물론 은퇴 이후 세르비아의 올림픽 위원장 및 세르비아 축구 협회 부회장을 역임하면서 세르비아 국적의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기에 세르비아 국적으로 분류했습니다.

 


세르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별칭: 하얀 독수리

월드컵: 출전 13회, 4위 2회

유로: 출전 5회, 준우승 2회

올림픽: 출전 6회, 금메달 1회

최다 출전 선수: 두산 타디치, 111경기

최다 득점 선수: 알렉산다르 미트로비치, 63골

 

(유고슬라비아 기록 승계)

 


2. 베스트 일레븐

 

 

골키퍼

 

 

이름: 밀루틴 쇼슈키치
생년월일: 1937년 12월 31일
포지션: 골키퍼
A매치 기록: 50경기 71실점 / 16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파르티잔 FK

1960년대 상반기 야신 다음가는 골키퍼로 평가받았던 선수 중 하나로 성실한 훈련 자세로 큰 부상을 입은 뒤에도 빠른 속도로 재활에 성공해 활약했을 정도로 몸 관리를 잘했으며 강력한 완력을 통해 공을 멀리 던지며 빌드업을 이끌기도 했다.

파르티잔에서 데뷔해 구단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의 반열에 오른 쇼슈키치는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4회 우승 및 1956-57 시즌 유고슬라브 컵 우승, 그리고 1965-66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리고 대표팀 은퇴 이후에는 분데스리가의 쾰른으로 이적해 활약하며 독일 분데스리가의 발전에도 도움을 줬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블라디미르 베아라의 후계자로 각광받은 쇼슈키치는 비록 UEFA 유로 1960 준우승과 1960 로마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굵직한 성과는 비디니치에 밀려났지만 절치부심해서 1962 칠레 월드컵에서는 다시 주전을 차지했음은 물론 4위에 오르는 대단한 성과를 이뤄냈다. 그리고 쇼슈키치는 1963년에 잉글랜드 축구협회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잉글랜드와 세계 올스타의 경기에 초청받아 소련의 레프 야신과 함께 세계 올스타팀의 골문을 번갈아가며 지키기도 했다.

 

 

리베로

 

 

이름: 벨리보르 바소비치
생년월일: 1939년 10월 3일
포지션: 리베로,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A매치 기록: 32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AFC 아약스

1960년대 후반 세계 최고의 리베로로 '죽기 아니면 살기'라고 불리는 강인한 정신력과 정교한 패싱력을 활용해 빌드업 과정에 크게 기여했고 뛰어난 전술 이해도를 자랑했으며 특히 훌륭한 리더십으로 외국인 용병임에도 아약스의 주장으로 활약했다.

파르티잔의 1965-66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아약스에서는 1970-71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낸 바소비치는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했지만 그가 주축으로 활약하던 기간에 유고슬라비아가 본선에 나서지 못했으며 1968년에는 그가 아약스로 이적하며 대표팀에서 은퇴하자 조국이 유로 결승에 진출하는 등 대표팀 운은 없었다.

아약스에서는 구단의 황금기 초석을 닦은 인물로 평가받는 바소비치는 '신의 아들들'의 일원으로 에레디비시와 KNVB컵을 각각 3회 우승했으며 1970-71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결승에서 파나티나이코스를 꺾고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냈다. 그러나 커리어의 최정점에서 천식으로 은퇴했다.

그가 활약하던 시기의 아약스는 능수능란한 오프사이드 트랩 활용으로 유명했는데 이에 대해 그는 "난 미헬스와 함께 공격적인 수비를 창조해 낸 설계자다. 내가 맡은 부분은 오프사이드 반칙을 유도하거나 골을 넣기 위해 벽 가운데 서있는 역할을 했을 뿐이지만 경기장 위에서 훌륭한 선수의 모습을 지켜보는 게 훈련보다 100배는 도움이 된다. 그런 측면에서 난 아약스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라며 자신의 영향력에 대해 자랑하기도 했다.

 

센터백

 

 

이름: 네마냐 비디치
생년월일: 1981년 10월 21일
포지션: 센터백
A매치 기록: 56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90cm / 몸무게 88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00년대 후반 세계 최고의 센터백으로 평가받았던 선수로 거대하면서도 단단한 체격에서 나오는 파워풀한 수비와 뛰어난 제공권을 장악 능력으로 이름을 날리며 국내 팬들에게 벽디치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그를 지휘했던 알렉스 퍼거슨은 그를 두고 "그는 빠르고 적극적인, 그리고 공격적인 수비수이다."라고 밝혔다.

초년에는 동유럽 무대에서 활약하다 퍼거슨에 의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비디치는 퍼디난드와 함께 퍼디치라 불리는 수비조합의 주축으로 활약하며 2007-08 시즌 리그와 챔피언스리그 더블 우승을 이뤄냈고 이 우승을 포함해 프리미어리그 5회 우승과 리그컵 3회 우승, 그리고 챔피언스리그 1회 우승과 2회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이뤄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성공한 세르비아인으로 평가받는 비디치 개인도 PFA 올해의 팀에 4회 선정되었고 ESM 올해의 팀에 3회 선정되었으며 2008-09 시즌과 2010-11 시즌에는 프리미어 리그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고 2012년에는 프리미어 리그 20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세르비아 대표팀에서도 주축 수비수 역할을 맡았던 비디치는 2006 독일 월드컵 유럽 지역예선 7조에서 10경기에서 단 한 골만을 실점한 짠물 수비를 앞세워 스페인을 제치고 조 1위로 본선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지만 비디치가 부상당하자 철의 포백이 와해되어 본선에서는 3전 전패로 탈락했으며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비록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지만 독일 대표팀의 공세를 막아내며 독일을 잡는 이변을 연출하기도 했다.

 

 

라이트백

 

 

이름: 브라니슬라프 이바노비치

생년월일: 1984년 2월 22일
포지션: 라이트백, 센터백
A매치 기록: 105경기 13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첼시 FC

2010년대를 풍미한 세르비아 출신의 라이트백으로 압도적인 신체 능력과 득점력을 겸비한 공격형 수비수였으며 라이트백은 물론 센터백에서도 훌륭한 모습을 보여줬다.

OFK 베오그라드에서 데뷔해 로코모티브 모스크바에서 두각을 나타낸 이바노비치는 첼시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프리미어리그 3회 우승 및 2009-10 시즌 FA컵 우승, 2011-12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 및 2012-13 시즌 UEFA 유로파 리그 우승을 이뤄냈고 이바노비치 개인도 PFA 올해의 팀에 두 번 선정되었고 2014-15 시즌에는 ESM 올해의 팀과 UEFA 챔피언스리그 올해의 스쿼드에도 선정되었다. 첼시를 떠난 뒤에는 제니트에서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2연패 및 2018-19 시즌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세르비아 대표팀 통산 A매치 최다 출전을 기록하며 세르비아 올해의 선수에 2회 선정된 이바노비치는 세르비아 대표팀에서도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2010 남아공 월드컵과 2018 러시아 월드컵에 참가했는데 전자의 대회에서는 비록 조별리그 최하위로 탈락했지만 우승후보 독일을 상대로 1-0으로 승리한 경기에서 비디치와 함께 독일의 파상공세를 막아내며 승리에 공헌했다.

 

 

레프트백

 

 

이름: 파흐루딘 유수피
생년월일: 1939년 12월 8일
포지션: 레프트백, 라이트백, 센터백
A매치 기록: 56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FK 파르티잔

1960년대 세계 정상급 측면 수비수로 '죽기 아니면 살기'를 플레이 신조로 삼았던 수비수로 격렬하고 거친 수비로 상대 공격수를 잠재우는 파이터형 측면 수비수였다.

FK 파르티잔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누린 유수피는 유고슬라비아 탑 리그 4회 우승 및 1965-66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이뤄냈는데 이 과정에서 4강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천재로 유명했던 조지 베스트를 완벽하게 막아내기도 했다. 해외 이적이 가능한 나이가 되자 이적한 프랑크푸르트에서도 1966-67 시즌 UEFA 인터토토컵 우승을 이뤄냈고 1967-68 시즌에는 당대 리그 최고급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월드 사커 선정 월드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중핵으로 활약한 유수피는 1960 로마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며 1960 UEFA 유로에서는 준우승을 이뤄냈고 1962 칠레 월드컵 4위에 올렸다. 유수피 개인도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으며 1984년 프랑스 풋볼 역대 포지션별 선수 랭킹 좌우 풀백 부분 공동 6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수비형 미드필더

 

 

이름: 시니사 미하일로비치
생년월일: 1969년 2월 20일
포지션: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레프트백, 중앙 미드필더
A매치 기록: 63경기 9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SS 라치오

축구 역사상 프리킥을 가장 잘 차는 선수 중 한 명이자 축구 역사상 가장 난폭한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혔으며 원래 수비형 미드필더로 선수 생활을 시작해 중앙 수비수로 정착했던 선수로 강력한 피지컬을 기반으로 한 몸싸움 능력과 우수한 킥력으로 빌드업 과정에서 큰 영향력을 끼쳤으며 데드볼 상황에서의 프리킥을 활용한 득점에도 능했는데 1998-99 시즌에는 라치오 소속으로 친정팀 삼프도리아를 상대로 프리킥 해트트릭을 달성했음은 물론 프리킥으로만 28골을 득점하며 피를로와 함께 세리에 역대 최다 프리킥 득점자 타이틀을 기록하고 있다.

중견팀 FK 보이보디나에서 1988-89 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이뤄내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미하일로비치는 1990-91 시즌 후반기에 츠르베나 즈베즈다로 합류하며 유고슬라비아 리그 2연패 및 1990-91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 및 인터콘티넨탈컵 우승을 이끌었다. 그러나 유고솔라비아 내전으로 인해 이탈리아로 떠났고 AS 로마에서는 다소 부진했지만 삼프도리아에서는 감독이었던 에릭손의 조언으로 수비형 미드필더에서 센터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해 활약하며 로마 시절의 슬럼프를 완벽하게 떨쳐냈다.

뒤늦게 전성기를 맞은 라치오에서는 1998-99 시즌에는 컵 위너스 컵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 역사상 최초로 유럽 대항전에서 우승했고 여름에는 UEFA 슈퍼컵에서 퍼거슨이 이끌던 지난 시즌 트레블 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승리했다. 그리고 1999-2000 시즌에는 세리에 A와 코파 이탈리아를 모두 제패하는 과정에서 큰 공헌을 했고 라치오에서 마지막 시즌에는 코파 이탈리아에서 우승하며 팀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팬들에게 우승컵을 선물하고 떠났다. 미하일로비치 개인도 1998-99 시즌과 1999-2000 시즌에는 ESM 올해의 팀에 들었고 말년에는 인테르에서 2년간 백업 역할을 수행하다가 은퇴했다.

분리 독립 이후의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한 미하일로비치는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16강에 올랐고 UEFA 유로 2000에서는 8강에 올랐다.

 

 

라이트 메짤라

 

 

이름: 드라고슬라프 세쿨라라치
생년월일: 1937년 11월 8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포워드
A매치 기록: 41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4kg
주 소속팀: 츠르베나 즈베즈다

1950년대 하반기와 1960년대 상반기 유고슬라비아를 대표하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우수한 턴 동작과 유려한 드리블로 상대의 압박을 쉽게 따돌렸으며 우수한 전술안과 창의적인 패스를 앞세운 플레이메이킹에도 능했다.

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 전성기를 누린 세큘라라치는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5회 우승과 유고슬라비아 컵 3회 우승을 이뤄냈고 세큘라라치 개인도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고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츠르베나 즈베즈다 구단측은 그를 구단의 여섯 별 중 두 번째 별로 선정하기도 했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중핵으로 활약한 세쿨라라치는 1956 멜버른 올림픽 은메달을 시작으로 UEFA 유로 1960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1962 칠레 월드컵에서도 4강에 올랐다. 그리고 두 대회에서 모두 올스타 팀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특히 1962 칠레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발롱도르 투표에서 4위에 오른 부분은 백미다.

 

 

레프트 메짤라

 

 

이름: 드라간 스토이코비치
생년월일: 1965년 3월 3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윙어, 포워드
A매치 기록: 84경기 15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츠르베나 즈베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걸쳐 유고슬라비아 축구계의 간판스타로 유려한 볼 컨트롤 능력과 상대의 수비라인을 궤멸시키는 날카로운 쓰루패스로 득점 찬스를 창출하는데 능했던 클래식한 공격형 미드필더였으며 이러한 플레이 스타일 때문에 요정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 데뷔해 첫 전성기를 누리며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2연패 및 1989-90 시즌 도메스틱 더블을 이뤄냈고 MVP를 2회 수상했다.  팀을 떠난 뒤에는 마르세유에서 적응하지 못해 일본 무대로 떠나기도 했고 마르세유에 머물 때에는 유러피언 컵 결승전에서 친정팀 츠르베나 즈베즈다를 만났으나 본인은 벤치를 달궜으며 팀도 패하는 얄궂은 운명을 맞이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즈베즈다에 머문 시간에는 활약이 대단해 1989년 리그에서의 뛰어난 퍼포먼스로 발롱도르 투표에서 6위에 오르기도 했음은 물론 J리그의 나고야 그램퍼스에서도 부활하며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유고슬라비아의 대격변기에 활약한 스토이코비치는 분리 이전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 UEFA 유로 1984에 나섰고 1984 LA 올림픽에서는 동메달을 목에 걸었으며 1988 서울 올림픽과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 참가해 후자의 대회에서는 8강에 진출했음은 물론 스토이코비치 본인도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분리 이후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는 주장 완장을 차고 1998 프랑스 월드컵 16강과 UEFA 유로 2000 8강 진출을 이뤄냈다.

 

 

라이트윙

 

 

이름: 밀로시 밀루티노비치
생년월일: 1933년 2월 5일
포지션: 라이트윙, 포워드
A매치 기록: 33경기 16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FK 파르티잔

1950년대를 수놓은 라이트윙으로 전성기가 짧고 폐 질환으로 꾸준하게 출전할 수 없었지만 전성기 기간에는 민첩한 몸놀림과 창의적인 드리블 돌파와 득점력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레알 마드리드와 인테르가 그를 탐내기도 했다.

파르티잔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누린 밀루티노비치는 데뷔 시즌부터 팀의 주축으로 자리잡아 유고슬라비아 컵 2회 우승에 기여했고 밀루티노비치 개인도 1955-56 시즌, 초대 유러피언 컵 득점왕에 올랐다. 그리고 해외에 진출할 수 있는 나이가 된 이후에는 바이에른 뮌헨과 라싱 파리 등 해외 구단에서도 활약했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친 밀루티노비치는 1954 스위스 월드컵과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 주전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출전해 조국의 8강 진출을 이뤄냈다.

 

 

레프트윙

 

 

이름: 드라간 자이치
생년월일: 1946년 5월 30일
포지션: 레프트윙
A매치 기록: 85경기 23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츠르베나 즈베즈다

유고슬라비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환상적인 드리블 돌파로 상대 수비진을 장판파의 조자룡처럼 휘저었으며 강력하면서도 정교한 슈팅은 물론 크로스도 우수해 20세기 최고의 왼발 크로서로 평가받앆고 여기에 수비 가담까지 완벽하게 하며 시대마저 앞서 나간 불세출의 윙어였기에 매직 드라간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츠르베나 즈베즈다 구단 통산 최다 출전자이자 최다 득점자인 자이치는 리그 5회 우승과 유고슬라비아 컵 4회 우승, 그리고 1968년 미트로파 컵 우승을 이뤄냈고 자이치 개인도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도 7회 선정되었으며 1968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3위에 올랐고 1969년에는 유고슬라비아 올해의 스포츠 선수상을 수상했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의 활약도 대단했는데 특히 UEFA 유로 1968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보여주며 토너먼트에 진출한 네 팀중 가장 약하다고 평가받았던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을 이끌어 준우승을 차지했고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조국의 8강2차 조별리그 진출에 큰 공을 세웠는데 그 과정에서 자이르를 9-0으로 대파하기도 했다. UEFA 유로 1976에서도 준결승에 오르며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특히 1968년에 자이치가 보여준 활약은 거장들로부터 크게 호평받았는데 역대 최고의 공격수 펠레는 그에 대해 "자이치는 발칸 반도가 낳은 기적입니다. 진정한 마법사죠. 그가 브라질리안이 아니라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그는 제가 이제껏 보아온 선수 중 가장 자연스럽게 축구하는 사나이예요."라고 평가했으며 역대 최고의 수비수 베켄바우어는 "1968년 발롱도르는 누가 뭐래도 드라간 자이치의 것이었습니다. 조지에게는 미안하지만, 1968년은 자이치의 해였어요. 그는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신기에 가까운 솜씨를 보여줬죠."라고 말했을 정도로 대단했다.

 

 

스트라이커

 

 

이름: 밀란 갈리치
생년월일: 1938년 3월 8일
포지션: 포워드,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A매치 기록: 51경기 37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FK 파르티잔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상반기에 이름을 날린 인사이드 포워드로 기술적인 드리블과 섬세한 볼 컨트롤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으며 우수한 신체 밸런스를 활용한 몸싸움과 양발과 머리를 가리지 않는 득점력도 대단해 수비수의 입장에서는 막기 어려운 선수였다.

유고슬라비아 국방부 산하팀인 파르티잔에서 전성기를 누린 갈리치는 유고슬라비아 리그 4회 우승 및 1965-66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냈으며 대표팀 은퇴 이후에는 벨기에의 스탕다르 리우제와 프랑스의 스타드 드 랭스에서도 활약했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핵심으로 활약한 갈리치는 UEFA 유로 1960 준우승을 이뤄내며 대회 득점왕과 팀 오브 토너먼트를 석권했고 1960 로마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거는 과정에서 득점왕까지 석권했다. 1962 칠레 월드컵에서도 팀 공격의 핵심으로 활약하며 준결승 진출을 이끌며 발롱도르 투표에서 8위에 올랐고 그 해에 유고슬라비아 최고의 체육인에게 주는 골든 벳지를 받았다.

 

 

감독

 


이름: 알렉산다르 티르나니치
생년월일: 1910년 7월 15일
부임기간: 1946~1948, 1952~1961

대표팀 선배 밀로라드 아르세나예비치와 함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재통일된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의 재건을 이끌었던 인물로 우수한 스타플레이어들을 별 잡음 없이 통솔했으며 감독위원회의 여러 감독들과도 조화로운 모습을 선보였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만 감독직을 맡은 티르나니치는 상술한 역량을 바탕으로 1948 런던 올림픽 은메달과 1952 헬싱키 올림픽 은메달 및 1956 멜버른 올림픽 은메달에 간접적으로 기여했고 1954 스위스 월드컵과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 8강 진출을 이뤄냈다. 그리고 UEFA 유로 1960에서는 로브리치, 니콜리치와 함께 삼두체제로 나서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연달아 열린 1960 로마 올림픽에서는 오랜 준우승의 숙원을 딛고 드디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베스트 일레븐

 

 


3. 서브 14인 포함 1군 스쿼드

 

 

 

이름: 이반 쿠르코비치
생년월일: 1944년 3월 15일
포지션: 골키퍼
A매치 기록: 19경기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AS 생테티엔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 지역 태생 역대 최고의 골키퍼이자 프랑스 리그 역대 최고의 외국인 골키퍼로 수비라인을 지휘하는 강력한 카리스마와 적절한 타이밍에 치고 나오는 전진수비로 이름을 날리며 폭군 이반이라 별명으로 불렸다.

자국리그의 파르티잔에서는 1964-65 시즌 리그우승 및 1965-66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생테티엔으로 건너간 뒤에는 리그앙 4회 우승 및 쿠프 드 프랑스 3회 우승, 그리고 유러피언 컵 4강 1회, 준우승 1회라는 성적을 기록하며 1976년에는 발롱도르 7위에 오르기도 했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는 1964 도쿄 올림픽에 참가했지만 프랑스 무대에서 전성기를 맞았기에 활약하지 못했다. 은퇴한 뒤에는 세르비아의 올림픽 위원장을 역임했고 세르비아 축구 협회 부회장으로 임명되었다.

 

 

 

이름: 페타르 라덴코비치
생년월일: 1934년 10월 1일
포지션: 골키퍼
A매치 기록: 3경기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84kg
주 소속팀: 1860 뮌헨

초창기 분데스리가를 빛낸 골키퍼이자 축구 골키퍼 발전사에 있어서 절대로 이름이 빠져서는 안 되는 선수로 역사상 최초의 스위퍼키퍼 가운데 한 명으로 알려졌으며 페널티라인 외곽까지 나와 루즈볼을 처리했다. 그리고 먼 훗날 대한민국의 김병지와 유사하게 전방으로 드리블을 감행해 많은 팬들을 놀라게 했다.

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 데뷔했으나 OFK 즈베즈다에서 성장한 라덴코비치는 1860 뮌헨에서 전성기를 맞았는데 1963-64 시즌 DFB포칼 우승과 1964-65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준우승, 그리고 1965-66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냈고 키커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다.

상술한 다소 특이한 플레이 스타일 때문에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의 활약은 짧았지만 1956 멜버른 올림픽에서는 주전 골키퍼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름: 밀루틴 이브코비치
생년월일: 1906년 3월 3일
포지션: 센터백, 라이트백, 레프트백
A매치 기록: 39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4kg
주 소속팀: SK 유고슬라비아

1930년대 유고슬라비아 무대에서 활약했던 수비수로 강력한 완력과 투지는 물론이고 기술적인 수준까지 겸비한 타이트한 대인 수비로 이름을 날렸는데 특히 흑인 출신의 레슬링 챔피언을 상대해 꺾었을 정도로 힘이 우수했고 선수생활이 끝난 직후 피부과 의사를 했을 정도로 학식도 뛰어났던 만능맨이었다.

SK 유고슬라비아에서 데뷔한 이브코비치는 정규리그 2회 우승을 이뤄냈고 1929년 이후에는 SK 바스크에서도 활약했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한 이브코비치는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과 1930 우루과이 월드컵에서도 활약했는데 특히 후자의 대회에서는 조국의 준결승 진출을 도왔고 이브코비치 개인도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선수 은퇴 이후 본격적으로 피부과 의사로 활동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유고슬라비아 육군의 예비군 장교로 복무한 이브코비치는 제2차 세계대전 도중  1943년 5월 24일 밤 11시 45분. 이브코비치는 베오그라드 인근의 야인치에서 나치군에 체포되었고 6시간 후 바로 총살형에 처해졌다.

 

 

 

이름: 블라디미르 두르코비치
생년월일: 1937년 11월 6일
포지션: 라이트백, 레프트백, 센터백
A매치 기록: 50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츠르베나 즈베즈다

1960년대 유럽 정상급 라이트백 중 한 명으로 스피드가 빠르고 전투적인 몸싸움을 활용한 대인 수비를 보여주며 상대 수비수를 제압해 그를 상대하는 공격수는 그 누구라도 쉽게 플레이하지 못했으며 우수한 패싱력으로 공격 작업을 돕는 부분에도 능했다.

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 전성기를 누린 두르코비치는 리그 5회 우승과 유고슬라비아컵 3회 우승을 이뤄내며 즈베즈다가 유고슬라비아 최고의 팀으로 등극하는데 큰 공을 세웠고 해외에 나갈 수 있는 나이가 되자 생테티엔으로 이적해서도 프랑스 리그 최고의 수비수로 군림하며 리그앙 3연패를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브란코 스탄코비치의 후계자로 활약하며 유수피와 수비라인을 구성한 두르코비치는 UEFA 유로 1960에서 준우승을 이뤄내며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고 1960 로마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며 1962 칠레 월드컵에서는 조국의 준결승 진출을 도왔다. 그러나 대표팀을 은퇴하고 시옹에서 활약하던 시절 한 경찰관이 쏜 오발탄에 맞아 허무한 최후를 맞았다.

 

 

 

이름: 알렉산다르 콜라로프
생년월일: 1985년 11월 10일
포지션: 레프트백, 레프트윙, 센터백
A매치 기록: 94경기 11골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

발칸의 호베르투 카를루스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2010년대 세르비아 최고의 레프트백으로 스피드가 빠른 편이 아니고 수비 복귀 속도는 늦어 수비적인 부분에서의 리스크가 있었으나 적극적인 오버래핑에 이은 강력한 왼발 킥력을 활용한 크로스로 공격 기회를 만들었으며 강력한 왼발 슈팅으로 데드볼 스페셜리스트로 활약하기도 했으며 선수 생활 후기에는 우수한 신체 조건을 활용해 센터백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유스팀 출신이지만 세르비아의 여러 팀을 떠돌다가 라치오에 입단해 2008-09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에 공헌했음은 물론 2009년에는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에서 세리에 A를 독주하던 인테르를 격파하는 과정에서 마이콩과 맞상대하며 유명세를 떨쳤고 맨체스터 시티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프리미어리그 2회 우승을 포함해 총 여섯 개의 트로피를 올렸으며 전성기가 지난 뒤에는 AS 로마에서 센터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해 활약하며 2018-19 시즌 세리에 A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말년에는 인테르에서 백업으로 2020-21 시즌 세리에 A 우승 및 2021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 그리고 2021-22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다.

2011년 세르비아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콜라로프는 세르비아 대표팀에서도 2008 베이징 올림픽과 2010 남아공 월드컵, 그리고 2018 러시아 월드컵에 주전으로 활약했는데 특히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주장으로 활약했다. 그리고 그가 활약하던 기간 동안에는 5대 리그에서 리오넬 메시 다음으로 많은 프리킥 득점을 기록했다.

 

 

 

이름: 네마냐 마티치
생년월일: 1988년 8월 1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A매치 기록: 48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94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첼시 FC

2010년대 중반 잉글랜드 무대를 풍미했던 수비형 미드필더로 순발력은 다소 떨어졌지만 강력한 스테미너와 압도적인 몸싸움 능력을 바탕으로 상대 공격진을 막아냈으며 슛 테크닉이 우수해 상대방이 예측하지 못하는 타이밍에 멋진 중거리 슈팅으로 골망을 가르는 명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자국 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내 첼시로 이적했다가 화려한 선수단에 밀려난 마티치는 벤피카에서 2012-13 시즌 프리메이라 리가 MVP 및 2013-14 시즌 프리메이라 리가 우승을 이뤄내며 첼시로 이적했고 첼시에서도 2014-15 시즌, 팀 중원의 핵심으로 프리미어 리그 우승 및 PFA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고 2016-17 시즌에도 은골로 캉테를 보좌하며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이뤄냈고 FIFPro 월드 XI 5군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뒤에는 더 이상 전성기를 누리지 못했다.

2014년과 2015년에 세르비아 올해의 축구 선수로 선정된 마티치는 세르비아 대표팀에는 2008년에 데뷔했고 메이저 대회는 2018 러시아 월드컵에 참가했다.

 

 

 

이름: 요반 아치모비치
생년월일: 1948년 6월 21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A매치 기록: 55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츠르베나 즈베즈다

1960년대 후반~1970년대 중반 유고슬라비아 무대 정상급 플레이메이커 중 한 명으로 중앙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에서 주로 뛰었는데 스피드는 느렸지만 영리한 탈압박 기술과 효과적인 킬패스로 득점 찬스를 만드는데 능했다.

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 전성기를 누린 아치모비치는 유고슬라비아 리그 4회 우승과 컵대회 3회 우승을 이뤄냈고 1968년에는 미트로파 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4년에는 영국 언론인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에 선정되며 커리어 하이를 누리기도 했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약관의 나이에 UEFA 유로 1968에 주전으로 나서며 조국의 결승 진출에 공헌한 아치모비치는 1970년대에는 또 다른 위대한 미드필더 브란코 오블락과 조합해서 1974 서독 월드컵 8강 2차 조별리그 진출 및 UEFA 유로 1976 4위에 올랐다.

 

 

 

이름: 블라디미르 유고비치
생년월일: 1969년 8월 30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
A매치 기록: 41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츠르베나 즈베즈다

1990년대 발칸 반도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미드필더 전 지역에서 모두 뛰어난 기량을 보여줬을 정도로 다재다능했으며 특히 왕성한 활동량과 우아한 볼 컨트롤, 그리고 날카로운 킬패스와 한 방이 있었던 중거리 슈팅으로 이름을 날리며 팬들로부터 유고슬라비아의 지단이라 불렸다.

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 첫 전성기를 누린 유고비치는 1989-90 시즌 도메스틱 더블을 포함해 리그 3회 우승을 이뤄냈고 1990-91 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최초로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이듬해에 열린 인터콘티넨탈컵에서는 남미 챔피언 칠레를 상대로 멀티골을 득점해 3-0 완승에 공헌해 1991 인터콘티넨탈컵 MVP를 수상했다. 이탈리아에서도 삼프도리아에서는 코파 이탈리아 우승, 유벤투스에서는 1995-96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및 1996년 UEFA 슈퍼컵과 인터콘티넨탈컵, 그리고 1996-97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고 라치오에서는 코파 이탈리아 우승 및 UEFA컵 준우승을 이뤄냈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중원의 핵으로 이름을 날린 유고비치는 UEFA 유로 1992에서는 예선에서 통과했지만 내전으로 인해 출전 자격이 박탈되는 아픔을 겪었다. 내전이 종식한 뒤에 1998 프랑스 월드컵과 UEFA 유로 2000에도 참가해 전자의 대회에서는 16강 진출을, 후자의 대회에서는 8강 진출을 이뤄냈다.

 

 

 

이름: 데얀 스탄코비치
생년월일: 1978년 9월 11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
A매치 기록: 103경기 15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2000년대 세르비아 축구계가 낳은 최고의 스타플레이어 중 한 명으로 중앙 미드필더와 측면 미드필더, 그리고 트레콰르티스타를 모두 소화하는 우수한 멀티플레이어이자 왕성한 활동량을 보여줬으며 대포 같은 중거리 슈팅 능력을 보유해 팬들에게 드래곤이라 불렸다.

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 데뷔해 두각을 나타낸 스탄코비치는 세리에 A의 강호 라치오로 이적해 구단의 황금기를 견인했는데 1998-99 시즌에는 컵 위너스 컵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 역사상 최초로 유럽 대항전에서 우승했고 여름에는 UEFA 슈퍼컵에서 퍼거슨이 이끌던 지난 시즌 트레블 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승리했다, 그리고 1999-2000 시즌에는 세리에 A와 코파 이탈리아를 모두 제패하는 기염을 토했다.

인테르에서는 제2의 전성기를 누린 스탄코비치는 세리에 A 5연패와 코파 이탈리아 4회 우승을 이뤄냈고 2009-10 시즌에는 세리에 A와 코파 이탈리아에 이어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도 이뤄내며 트레블에 일정 부분 공헌했다. 스탄코비치 개인도 2006-07 시즌 ESM 올해의 팀에 올랐으며 2019년에는 팬 투표를 통해 인테르 밀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세르비아 대표팀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센추리 클럽에 가입한 스탄코비치는 유고슬라비아 시절에는 1998 프랑스 월드컵 16강 및 UEFA 유로 2000 8강에 올랐고 세르비아-몬테네그로 소속으로는 2006 독일 월드컵에 참가했으며 세르비아 소속으로는 2010 남아공 월드컵에 주장으로 참가했다.

 

 

 

이름: 일리야 페트코비치
생년월일: 1945년 9월 22일
포지션: 라이트윙, 레프트윙
A매치 기록: 43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OFK 베오그라드

드라간 자이치에 가려진 또 다른 유고슬라비아 정상급 윙어로 클럽에서는 레프트윙으로 활약했지만 대표팀에서는 자이치의 존재로 인해 라이트윙에서 활약했는데 빠른 스피드와 교묘한 드리블 돌파로 상대 수비진을 괴롭혀 세간으로부터 카라부르메의 태풍이라 불렸다.

비교적 약체에 속했던 OFK 베오그라드에서 전성기를 누린 페트코비치는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활약하며 1965-66 시즌 유고슬라비아컵 우승을 차지하는데 큰 공을 세웠고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자이치 대신 라이트윙으로 출전해 UEFA 유로 1968 우승 및 1974 서독 월드컵 8강 2차 리그 진출에 큰 공을 세웠다.

여담으로 지도자 생활 말년을 대한민국 K리그에서 보낸 것으로 유명한 페트코비치는 2009년, 인천 유나이티드의 지휘봉을 잡아 유병수를 발굴하며 팀의 전력을 강화해 6강 플레이오프로 올렸으나 2010년 6월, "부인의 지병 악화로 더 이상 인천팀을 이끌 수 없다"라며 감독을 자진 사퇴했다. 그리고 2013년 5월 경남 FC의 지휘봉을 잡기도 했다.

 

 

 

이름: 보라 코스티치
생년월일: 1930년 6월 14일
포지션: 레프트윙, 포워드, 스트라이커
A매치 기록: 33경기 26골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츠르베나 즈베즈다

1960년대 초반 동유럽 축구계를 흔들었던 아웃사이드 레프트이자 스트라이커로 우수한 공간 이해와 신속정확한 상황 판단력을 토대로 한 지능적인 컷인 플레이와 높은 수준의 전술 이해도와 강력하면서도 정확한 슈팅력을 겸비했다.

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보낸 코스티치는 리그 7회 우승과 유고슬라비아 컵 3회 우승을 이뤄냈고 코스티치 개인도 리그 득점왕 2회 수상 및 1958~1960 인터시티 페어스 컵 득점왕을 차지해 1960년에는 발롱도르 투표에서 12위에 올랐으며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에 한정해서는 드라간 자이치보다도 골을 많이 넣었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주 득점원으로 이름을 날린 코스티치는 1955-1960 중유럽컵에서 데뷔했고 UEFA 유로 1960에서 준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워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으며 1960 로마 올림픽에서도 6골을 득점하며 금메달을 차지하는데 공헌하는 등 두 대회에서 우수한 활약을 펼치며 1960년 발롱도르 12위에 올랐다.

 

 

 

이름: 라이코 미티치

생년월일: 1922년 11월 19일
포지션: 포워드,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A매치 기록: 59경기 32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츠르베나 즈베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고슬라비아 최고의 공격수로 평가받았던 선수로 주로 오늘날의 공격형 미드필더와 처진 공격수에 해당하는 인사이드 포워드 역할을 마았는데 기술적인 패스와 유려한 볼 컨트롤로 유명했으며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주장을 역임하며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마케도니아 등 다양한 민족이 어우러진 대표팀을 분란 없이 잘 이끈 훌륭한 리더십의 소유자였다.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창립 멤버이자 초대 주장으로 활약하며 572경기에 나서 262골을 득점한 미티치는 구단에 머무는 동안 리그 6회 우승과 유고슬라비아 컵 5회 우승을 이뤄냈고 1958년에는 미트로파 컵 우승을 이뤄내기도 했다. 구단을 대표하는 주장이었던 미티치의 헌신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츠르베나 즈베즈다 구단측은 그를 구단의 여섯 별 중 첫번째 별로 선정했으며 홈구장 이름을 스타디온 라이코 미티치로 변경했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주장이자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한 미티치는 1948 런던 올림픽과 1952 헬싱키 올림픽에서 조국의 결승 진출을 이끌었지만 전자의 대회에서는 그레노리 삼총사에게, 후자의 대회에서는 매직 마자르에게 아쉽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리고 1950 브라질 월드컵과 1954 스위스 월드컵에도 참가해 후자의 대회에서는 조국 유고슬라아의 조별 리그 통과에 공헌했다.

 

 

 

이름: 블라고예 마르야노비치
생년월일: 1907년 9월 9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포워드
A매치 기록: 58경기 37골
신체조건: 키 171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BSK 베오그라드

유고슬라비아 축구 태동기에 활약했던 다재다능한 공격수로 커리어 초창기에는 킬패스로 골 찬스를 만드는 부분에 맛을 들려서 많은 득점을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BSK 베오그라드 이적 이후로는 철저하게 득점을 노리는 스타일로 바꿨는데 슈팅 파워는 평범했지만 정확한 슈팅으로 수많은 득점을 기록했으며 양발과 머리는 물론 발뒤꿈치와 가슴, 심지어는 배로 득점하기도 했으며 프리킥에도 능했으며 축구 지능이 높아 동료들과의 연계에도 능했다.

SK 유고슬라비아에서 데뷔해 1924년 리그우승을 이뤄냈고 SK 올림피아를 거쳐 BSK 베오그라드에서 전성기를 누린 마르야노비치는 BSK 베오그라드에서 아웃사이드 라이트 티르나니치와 듀오를 이뤄 활약하며 통산 566경기에 나서 575골을 득점했고 유고슬라비아 리그 5회 우승을 이뤄냈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주전 스트라이커로 활약하며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과 1930 우루과이 월드컵에 참가해 초대 월드컵 4강행을 이끌었다.

1934년에는 브라질과의 친선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8-4 대승을 기록했는데 이 경기를 지켜본 많은 사람들이 마르야노비치를 칭찬했다. 특히 칭찬한 사람 중에서는 오스트리아 분더팀을 이끈 전설적인 명장 후고 마이슬도 있는데 그는 마르야노비치가 분더팀에 있었으면 완벽한 팀이 되었을 것이라고 극찬했다고 전해졌다.

 

 

 

이름: 토도르 베셀리노비치
생년월일: 1930년 10월 22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라이트윙, 포워드
A매치 기록: 37경기 28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보이보다나

1950년대 유고슬라비아를 대표했던 골잡이로 빠른 스피드와 우수한 테크닉을 겸비했는데 특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환상적인 슈팅 기술의 소유자였는데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각도에서도 득점을 이뤄낸 명 스트라이커였다.

초년에는 여러 클럽을 떠돌다가 1952-53 시즌, 파르티잔에서 22경기에 출전해 15골을 득점했음은 물론 유고슬라비아 컵 우승까지 이뤄내며 만개했고 이후 보이보다나에서 전성기를 누린 베셀리노비치는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득점왕 3회 연속 수상을 포함해 개인 통산 4회 수상을 이뤄냈고 말년에는 이탈리아의 삼프도리아, 오스트리아의 퍼스트 비엔나, 벨기에의 위니옹 생질루아즈 등을 떠돌았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주포로 활약한 베셀리노비치는 1954 스위스 월드컵 8강, 1956 멜버른 올림픽 은메달, 그리고 1958 스웨덴 월드컵 8강이라는 성적을 냈는데 특히 멜버른 올림픽에서는 4골을 터트리며 득점왕에 올랐다.

 


세르비아 역대 올스타 1군 25인 팀

 

 


4. 리저브

 

 

이름: 일리야 판텔리치
생년월일: 1942년 8월 2일
포지션: 골키퍼
A매치 기록: 18경기 19실점 / 5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FK 보이보디나

1960년대 후반 유고슬라비아 최고의 골키퍼로 후배 드라간 판텔리치와 함께 골 넣는 골키퍼로 유명했는데 페널티킥을 잘 찼으며 1963년에는 FK 트레슈네프카와의 경기에서 골키퍼로서는 세계 최초로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중견팀 보이보디나에서 전성기를 누린 일리야 판텔리치는 1965-66 시즌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우승이라는 기적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큰 공을 세웠고 대표팀 은퇴 이후에는 리그앙에서 활약하며 1970-71 시즌 마르세유에서 백업 멤버로 리그앙 우승을 경험했으며 마르세유를 떠난 이후에는 바스티아와 파리 생제르맹에서도 활약했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독일 무대로 떠난 쇼슈키치의 후계자로 활약한 판텔리치는 UEFA 유로 1968에서 조국의 준우승을 이끌었는데 결승전에서 디노 조프와 선방 대결을 펼치며 무승부를 거두었으나 재경기에서는 루이지 리바와 아나스타시를 막지 못하고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름: 미로슬라프 주키치
생년월일: 1966년 2월 19일
포지셤: 리베로,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A매치 기록: 48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리베로형 센터백으로 적절한 타이밍을 노려 공격 진영까지 적극적으로 오버래핑해서 득점 찬스를 만들며 수비 상황에서는 우수한 수비라인 지휘 능력과 깔끔한 슬라이딩 태클로 상대의 공격을 차단했으며 특히 페널티킥에 능했다.

자국의 마크바 샤바츠에서 데뷔했다가 유고슬라비아 국내 정세가 불안해지자 일치감지 스페인 무대의 데포르티보로 이적한 주키치는 팀의 라리가 승격 및 상위권행을 이끌며 1992-93 시즌 라리가 올해의 외국인 선수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고 1994-95 시즌에는 결승전에서 발렌시아를 꺾고 구단 역사상 첫 코파 델레이 우승을 들었고 수페르코파에서도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2경기 도합 5-1로 승리하며 구단 역사상 첫 수페르코파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발렌시이로 이적해서도 수비라인의 리더 역할을 맡아 1998-99 시즌 코파 델 레이 우승 및 2001-02 시즌 라리가 우승을 이뤄냈고 UEFA 챔피언스리그 2회 준우승을 기록했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핵심으로 활약한 주키치는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백업에 머물렀지만 UEFA 유로 2000에서는 주전을 맡아 조국의 8강행을 도왔다.

 

 

 

이름: 네나드 스토이코비치
생년월일: 1956년 5월 26일
포지션: 센터백, 라이트백, 레프트백, 리베로
A매치 기록: 32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파르티잔 FK

1970년데 후반~80년대 초반 유고슬라비아 무대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키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적절한 위치선정 및 빠른 스피드를 앞세워 수비라인 빈자리를 커버하는데 장기를 드러냈고 축구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수비라인의 전 포지션에서 활약할 수 있었다.

파르티잔에서 데뷔해 10년간 활약한 스토이코비치는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3회 우승을 이뤄냈고 1977-78 시즌 미트로파컵 우승에 큰 공을 세웠으며 스토이코비치 개인도 1978년 유고슬라비아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다. 해외 이적이 가능한 연령이 되자 프랑스 리그 도전을 시작해 AS 모나코와 몽펠리에 등 다섯팀을 떠롤았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자예츠와 함께 수비라인을 구성한 스토이코비치는 1982 스페인 월드컵과 UEFA 유로 1984에 주전으로 나섰다. 그리고 1982년에 미국 뉴저지에서 열린 유럽 올스타 vs 세계 올스타 간 친선전에도 선발되었다.

 

 

 

이름: 페타르 크리보쿠차
생년월일: 1947년 6월 12일
포지션: 라이트백
A매치 기록: 13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4cm
주 소속팀: 츠르베나 즈베즈다

1973년 한 해 동안에는 세계 최고의 라이트백 중 한 명으로 군림했던 선수로 전성기 기간에는 공수 양면에서 부족함이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유스 시절에는 여러 팀을 떠돌다가 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 데뷔한 크리보쿠차는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3회 우승 및 유고슬라비아 컵 2연패를 이뤄낸 크리보쿠차는 1973년에는 유고슬라비아 언론 스포르트가 뽑은 유럽 베스트 일레븐과 월드 사커 선정 월드 일레븐에 선정되었을 정도로 맹활약했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미르사드 파즐라기치를 밀어내는 퍼포먼스를 보였고 1973년에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유럽 올스타와 남미 올스타의 경기에서도 유럽 올스타팀 소속으로 선발 출전하는 등 승승장구했지만 1974 서독 월드컵을 앞두고 부상당해 월드컵에 나서지 못했으며 그 뒤에는 기량이 급락했기에 다시는 전성기의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다.

 

 

 

이름: 밀란 다미야노비치
생년월일: 1943년 10월 15일
포지션: 레프트백
A매치 기록: 7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파르티잔 FK

1960년대 후반 유고슬라비아 축구를 이끌었던 레프트백으로 몸싸움에 약하고 스피드도 빠르지 않았지만 적절한 타이밍에 나오는 슬라이딩 태클과 수비하기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는 능력을 바탕으로 자신보다 더 신체적으로 우수하거나 빠른 공격수들을 상대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파르티잔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누린 다미야노비치는 정규리그 2회 우승 및 1965-66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이뤄냈고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UEFA 유로 1968 준우승을 이뤄냈다. 해외 이적이 가능한 나이가 되자 프랑스의 앙제에서도 활약했다.

 

 

 

이름: 부야딘 보슈코프
생년월일: 1931년 5월 16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사이드백, 윙어
A매치 기록: 57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65kg
주 소속팀: 보이보디나

1950년대 유고슬라비아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하프백으로 왕성한 활동량으로 공수 양면에서 많은 기여를 했는데 우수한 원터치 플레이로 동료들에게 찬스를 만들어냈으며 적절한 커버 플레이로 수비라인 지원도 능숙하게 수행했다.

FK 보이보디나에서 데뷔해 12년간 활약하며 전성기를 누린 보슈코프는 훗날 감독으로 큰 성공을 거두는 삼프도리아로 이적하기도 했는데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1952 헬싱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했으며 1954 스위스 월드컵과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도 모두 주전 라이트 하프로 참가해 조국의 8강 진출을 이뤄냈다.

훗날 감독으로는 유고슬라비아 역대 최고 레벨에 올라서는 보슈코프는 레알 마드리드의 라리가 우승과 삼프도리아의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으며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UEFA 유로 2000 8강 진출을 이뤄냈다.

 

 

 

이름: 세르게이 밀린코비치사비치
생년월일: 1995년 2월 27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A매치 기록: 54경기 9골
신체조건: 키 192cm / 몸무게 83kg
주 소속팀: SS 라치오

2010년대 후반~2020년대 초반에 걸쳐 세리에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하나로 군림한 선수로 박스 투 박스 유형의 육각형 미드필더로 거대한 신체조건을 앞세운 우수한 경합 능력과 헤더로 공수 양면에 크게 기여했으며 수비적으로도 우수했으며 탱크와 같은 드리블과 몸싸움을 적극 활용한 탈압박에도 능했다.

보이보다나에서 데뷔해 벨기에의 헹크를 거쳐 프로 데뷔 3년차에 라치오에 입단해 전성기를 누린 밀린코비치사비치는 팀을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경쟁하는 리그 상위권으로 올렸고 2018-19 시즌에는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냄과 동시에 밀린코비치사비치 개인도 2018-19 시즌 세리에 A 최우수 미드필더를 수상했고 세리에 A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되었다. 알 힐랄에서도 2023-24 시즌 도메스틱 트레블을 이뤄냈고 2025 FIFA 클럽 월드컵에서는 맨체스터 시티를 격파하고 8강 진출이라는 업적을 세웠다.

세르비아 대표팀에서도 중원의 핵으로 활약한 밀린코비치사비치는 2018 러시아 월드컵과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조국의 본선 진출을 이끌었으며 후자의 대회에서는 카메룬을 상대로 득점포를 뿜어내기도 했다.

 

 

 

이름: 즈베즈단 체비나츠
생년월일: 1939년 12월 8일
포지션: 라이트윙, 
A매치 기록: 20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FK 파르티잔

1960년대 유고슬라비아와 독일 무대 톱클래스 라이트윙으로 군림한 선수로 우측면에서의 저돌적인 드리블 돌파로 상대 풀백을 뚫어낸 뒤에 정밀도 높은 오른발 크로스로 득점을 지원하는데 능했던 완벽한 클래식 윙어였다.

파르티잔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누린 체비나츠는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3회 우승을 이뤄냈고 츠르베나 즈베즈다로 잠시 이적했으나 파르티잔 시절의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돌파구로 해외 이적을 모색한 체비나츠는 네덜란드의 PSV 에인트호번을 거쳐 뉘른베르크로 이적해서 부활에 성공하며 1967-68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냈고 체비나츠 개인도 키커 선정 분데스리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뉘른베르크 보드진의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주축 대부분이 방출될 때 그도 밀려나면서 하노버 96으로 이적했다.

 

 

 

이름: 두샨 타디치
생년월일: 1988년 11월 20일
포지션: 레프트윙, 라이트윙,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A매치 기록: 111경기 23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AFC 아약스

2010년대 네덜란드와 잉글랜드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만능 2선 자원으로 윙어 치고는 스피드가 느렸지만 우수한 테크닉과 날카로운 패싱력, 그리고 강력하면서도 예리한 왼발 킥력을 장점으로 삼았으며 특히 온 더 볼 상황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공격 자원이다.

보이보디나에서 데뷔해 흐로닝언을 거쳐 트벤테에서 두각을 나타낸 타디치는 사우스햄튼에서는 2014-15 시즌 팀을 중상위권에 올렸고 아약스로 이적해서는 2010년대 하반기 텐 하흐 체제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에레데비시 3회 우승과 KNVB컵 2회 우승을 이뤄냈고 2018-19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유벤투스를 제치고 준결승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타디치 개인도 에레데비시 도움왕 4회 연속 수상, 에레데비시 올해의 팀 2회 선정은 물론 2018-19 시즌에는 에레데비시 득점왕을 수상했으며 UEFA 챔피언스리그 올해의 스쿼드에 선정되었고 2020-21 시즌에는 UEFA 유로파리그 올해의 스쿼드에 선정되었고 네덜란드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세르비아 대표팀 소속으로도 센추리 클럽에 가입한 타디치는 2008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했는데 메이저 대회에서는 세르비아가 예선에서 고배를 마시자 쭉 데뷔하지 못하다가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데뷔했고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2골 6도움을 기록하는 맹활약을 보여주면서 조국의 월드컵 본선 진출을 견인했다. 그리고 UEFA 유로 2024에도 참가했다.

 

 

 

이름: 조르제 부야디노비치
생년월일: 1909년 11월 29일
포지션: 포워드,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A매치 기록: 44경기 18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1kg
주 소속팀: BSK 베오그라드

1930년대 유고슬라비아 무대 톱클래스 인사이드 포워드로 우수한 드리블과 정확하면서도 기술적인 슈팅, 그리고 상대의 허를 찌르는 패스로 득점 찬스를 만드는 부분에도 능했던 완성형 인사이드 포워드였는데 그 당시로서는 드문 컷백 패스로 찬스를 만들기도 했다.

선수 생활 전부를 BSK 베오그라드에서 보낸 부야디노비치는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5회 우승을 이뤄냈고 득점왕도 2회 올랐다. 이때 부야디노비치는 "날아다니는 축구 선수"라는 별명으로 불렸는데 그 이유는 그가 BSK에서 뛰던 마지막 몇 년 동안 유고슬라비아 국립은행 직원으로 일했는데 업무상 자주 자리를 비울 수 없었기에 원정 경기가 있을 때는 다른 선수들과 함께 일찍 이동하지 않고, 경기 시간에 맞춰 도착하기 위해 마지막 순간에 비행기를 타고 베오그라드를 떠났기에 그런 별명으로 불렸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부야디노비치는 1930 우루과이 월드컵에 참가해 조국을 준결승에 진출시켰다.

 

 

 

이름: 사보 밀로셰비치
생년월일: 1973년 9월 2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포워드, 라이트윙, 레프트윙
A매치 기록: 102경기 37골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레알 사라고사

1990년대 분리 독립한 직후의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을 이끌었던 스트라이커로 쉬운 찬스를 많이 놓쳐 Miss-a-lot-evic, 즉 많이 놓치는 에비치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으로도 불렸지만 견고한 피지컬과 강력한 왼발로 상대 수비수를 곤란하게 만드는 공격수였고 스피드도 준수해 라이트윙으로도 뛸 수 있었다.

파르티잔에서 데뷔해 데뷔 시즌부터 17골을 터트렸고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2연패 및 1993-94 시즌 도메스틱 더블을 이뤄냈고 1994-95 시즌에는 공식전 34골을 득점한 밀로셰비치는 아스톤 빌라로 이적했고 빌라에서도 두 시즌 간 프리미어 리그 두 자릿수 골을 득점했으나 마지막 시즌이 다소 아쉬워 레알 사라고사로 이적해서 전성기를 누렸는데 특히 1999-2000 시즌에는 라리가에서만 21골을 터트렸다. 그러나 그의 첫 빅클럽 도전이었던 세리에 A의 파르마에서는 실패했는데 귀신같이 라리가 임대에서는 두 자릿수 골을 터트렸고 오사수나로 이적해 2005-06 시즌에 정규리그 11골을 득점하며 마지막 전성기를 불태웠고 현역 마지막 시즌을 보낸 루빈 카잔에서는 2008년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경험하고 물러났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한 밀로셰비치는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조국의 16강행을 이뤄냈다. UEFA 유로 2000에서는 조국의 8강 진출을 이끌었고 개인은 대회 득점왕에 오르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리고 세르비아-몬테네그로 소속으로 2006 독일 월드컵에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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