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슬라비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Top 10

국가의 영웅들/구 유고슬라비아 지역

유고슬라비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Top 10

토르난테 2025. 11. 28. 16:13
728x90
728x90

*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북마케도니아,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 슬로베니아, 코소보 중 1개 이상의 국가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RSSSF와 트렌스퍼마크트이며 둘의 기록이 상충할 경우에는 전자를 우선적으로 따릅니다.
*기록일은 2025년 11월 27일 기준입니다.

 


10위 프란 마토시치

 


생년월일: 1918년 11월 25일
국적: 크로아티아
A매치 기록: 16경기 6골
신체조건: 미상
주 소속팀: 하이두크 스플리트

1930년대 후반~1950년대 초반까지 유고슬라비아 무대 정상급 공격수로 장기간 군림한 공격수로 강력하면서도 정확한 중거리 슈팅으로 많은 득점을 올렸는데 심지어 양발을 모두 잘 써서 다양한 각도에서 중거리 슈팅을 성공시켰으며 플레이메이킹 능력과 헤더 역시 우수한 완성형 공격수였고 동시에 라커룸을 아우르는 강력한 리더였다.

하이두크 스플리트에서 데뷔해 739경기에서 729골을 기록한 구단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인 마토시치는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한 시즌 머물렀다가 나치의 끄나풀 신세였던 크로아티아 독립국이 아닌 연합국이 통제하는 자유 지역인 비스 섬에서 활동을 재개한 하이두크로 돌아왔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다시 하이두크 스플리트에 합류했고 지역리그 2회 우승 및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3회 우승 및 1948-49 시즌 득점왕에 올랐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만 활약했으며 1940년대 크로아티아 독립국 합류를 거부한 반나치 활동가인 마토시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1948 런던 올림픽에서 백업으로 참가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9위 즐라트코 부요비치

 


생년월일: 1958년 8월 26일
국적: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크로아티아
A매치 기록: 70경기 25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하이두크 스플리트

1970~80년대 유고슬라비아와 프랑스 무대 톱클래스 공격수로 당대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공격수였는데 이 압도적인 스피드를 가지고 파이널 서드까지 돌파한 뒤에 양발을 사용해서 마무리하는데 능했던 공격수였고 이런 능력을 바탕으로 스트라이커 외에도 윙포워드로도 활약했다.

하이두크 스플리트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누린 부요비치는 1978-79 시즌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우승 및 유고슬라비아 컵 2회 우승을 이뤄냈고 1981년에는 유고슬라비아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발롱도르 랭킹 19위에 올랐고 1984-85 시즌에는 25골로 득점왕에 랭크되었다. 프랑스로 건너가서도 1986-87 시즌 지롱댕 보르도의 더블 크라운을 이뤄냈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 소속으로도 장기간 맹활약한 부요비치는 1980 모스크바 올림픽 4위에 올랐고 1982 스페인 월드컵과 UEFA 유로 1984에도 참가했다. 그리고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주전 공격수 겸 주장으로 조국의 8강행을 이뤄냈다.

 

8위 두산 바예비치

 


생년월일: 1948년 12월 10일
국적: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A매치 기록: 37경기 29골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벨레주 모스타르

1970년대 유고슬라비아 무대를 주름잡았던 컴플리트 포워드로 양발을 모두 잘 쓰고 슈팅 스킬이 뛰어나 어느 각도에서도 골문을 위협했으며 우수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헤더로 골문을 폭격하는 부분과 포스트플레이로 파트너 공격수를 지원하는 부분에서 모두 뛰어났음은 물론 볼 컨트롤이 우수하며 드리블과 패스에도 능했다.

수려한 외모로 '네레트바의 왕자'라고 불렸던 바예비치는 벨레주 모스타르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누렸는데 1969-70 시즌 20골로 득점왕에 올랐고 1972년에는 유고슬라비아 올해의 축구선수상을 수상했다. 만 28세가 지나 해외이적이 허용되자 그리스의 AEK 아테네로 이적해서 1977-78 시즌 수페르리가 엘라다와 그리스 컵 더블 우승에 이어 1978-79 시즌에는 재차 우승했고 1979-80 시즌에는 25골을 터트리며 수페르리가 엘라다 득점왕에 올랐다. 그리고 다시 벨레주 모스타르로 돌아가서 1980-81 시즌 발칸컵 우승을 이뤄냈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 소속으로도 압도적인 득점력을 선보인 두산 바에비치는 1972년 브라질 독립 150주년 기념 친선대회인 브라질 독립컵에서 남미의 네 국가를 상대로 조별리그를 1위로 통과했고 2차 조별리그에서는 브라질에게 패했지만 스코틀랜드와 체코슬로바키아를 따돌리고 3위 결정전으로 이동해 아르헨티나를 꺾고 3위에 올랐는데 그 과정에서 베네수엘라전 한 경기 5골을 터트리며 총 13골로 득점왕에 올랐고 1974 서독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참가해 자이르전에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2차 조별리그 진출을 이뤄냈다.

 

7위 토도르 베셀리노비치

 


생년월일: 1930년 10월 22일
국적: 세르비아
A매치 기록: 37경기 28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보이보다나

1950년대 유고슬라비아를 대표했던 골잡이로 빠른 스피드와 우수한 테크닉을 겸비했는데 특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환상적인 슈팅 기술의 소유자였는데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각도에서도 득점을 이뤄낸 명 스트라이커였다.

초년에는 여러 클럽을 떠돌다가 1952-53 시즌, 파르티잔에서 22경기에 출전해 15골을 득점했으며 유고슬라비아 컵 우승까지 이뤄내며 만개했고 이후 보이보다나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득점왕 3회 연속 수상을 포함해 개인 통산 4회 수상을 이뤄냈고 말년에는 이탈리아의 삼프도리아, 오스트리아의 퍼스트 비엔나, 벨기에의 위니옹 생질루아즈 등을 떠돌았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주포로 활약한 베셀리노비치는 1954 스위스 월드컵 8강, 1956 멜버른 올림픽 은메달, 그리고 1958 스웨덴 월드컵 8강이라는 성적을 냈는데 특히 멜버른 올림픽에서는 4골을 터트리며 득점왕에 올랐다.

 

6위 블라고예 마르야노비치

 


생년월일: 1907년 9월 9일
국적: 세르비아
A매치 기록: 58경기 37골
신체조건: 키 171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BSK 베오그라드

유고슬라비아 축구 태동기에 활약했던 다재다능한 공격수로 커리어 초창기에는 킬패스로 골 찬스를 만드는 부분에 맛을 들려서 많은 득점을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BSK 베오그라드 이적 이후로는 철저하게 득점을 노리는 스타일로 바꿨는데 슈팅 파워는 평범했지만 정확한 슈팅으로 수많은 득점을 기록했으며 양발과 머리는 물론 발뒤꿈치와 가슴, 심지어는 배로 득점하기도 했으며 프리킥에도 능했으며 축구 지능이 높아 동료들과의 연계에도 능했다.

SK 유고슬라비아에서 데뷔해 1924년 리그우승을 이뤄냈고 SK 올림피아를 거쳐 BSK 베오그라드에서 전성기를 누린 마르야노비치는 BSK 베오그라드에서 아웃사이드 라이트 티르나니치와 듀오를 이뤄 활약하며 통산 566경기에 나서 575골을 득점했고 유고슬라비아 리그 5회 우승을 이뤄냈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주전 스트라이커로 활약하며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과 1930 우루과이 월드컵에 참가해 초대 월드컵 4강행을 이끌었다.

1934년에는 브라질과의 친선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8-4 대승을 기록했는데 이 경기를 지켜본 많은 사람들이 마르야노비치를 칭찬했다. 특히 칭찬한 사람 중에서는 오스트리아 분더팀을 이끈 전설적인 명장 후고 마이슬도 있는데 그는 마르야노비치가 분더팀에 있었으면 완벽한 팀이 되었을 것이라고 극찬했다고 전해졌다.

 

5위 마리오 만주키치

 


생년월일: 1986년 5월 21일
국적: 크로아티아
A매치 기록: 89경기 33골
신체조건: 키 190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2010년대에 활약했던 스트라이커로 우수한 피지컬과 왕성한 지구력을 겸비해 상대 수비진을 압박하며 직접 득점을 노리거나 측면에서 받은 크로스를 통해 우수한 포스트 플레이 능력과 헤더로 득점하는 부분에도 능했으며 2선과의 연계 플레이도 수준급이었으며 득점력에 기복이 있었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한 건 하는 클러치 능력도 갖췄다.

NK 마르소니아에서 데뷔해 디나모 자그레브를 거쳐 볼프스부르크에서 두각을 나타낸 만주키치는 바이에른 뮌헨의 백업 공격수로 영입되었던 만주키치는 주전 고메스의 부상을 틈타 주전자리를 차지해 로번, 리베리, 뮐러 등과 함께 팀의 공격을 이끌며 2012-13 시즌 트레블을 이뤄냈고 2013-14 시즌에도 분데스리가와 DFB포칼 우승을 이뤄냈다. 하지만 신임 감독 과르디올라와 갈등으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했다가 그곳에서도 시메오네 감독과의 갈등으로 유벤투스로 이적해 스트라이커 및 윙포워드로 활약하며 세리에 A 4연패 및 코파 이탈리아 3연패, 그리고 2016-17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는데 특히 결승전에서는 팀원들이 내분으로 최악의 경기력을 보였을 때 홀로 분투하며 동점골을 득점하기도 했다.

크로아티아 대표팀에서도 중옹받은 만주키치는 UEFA 유로 2012에서는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음에도 3골을 넣으며 공동 최다 득점자에 올랐고 이후에도 대표팀 주전으로 활약하다가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다리 경련이 와서 주저앉고 쓰러지면서도 상대를 끝까지 압박했으며 비록 조별 리그에선 득점하지 못했지만 16강 덴마크전 동점골과 4강 잉글랜드전 결승골을 득점하며 클러치 능력을 보여주며 팀을 결승에 올려놓았고 프랑스전에서도 자신의 자책골을 상대 골키퍼 요리스를 압박에 성공하면서 골을 기록해 비록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엄청난 투혼을 보여주며 축구팬들의 박수를 받고 은퇴했다.

 

4위 드라잔 예르코비치

 


생년월일: 1936년 8월 6일
국적: 크로아티아
A매치 기록: 21경기 11골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6kg
주 소속팀: 디나모 자그레브

1960년대 초반 유고슬라비아에서 전성기를 맞이한 센터포워드로 우수한 운동 능력과 기습적인 움직임으로 수비를 피해 박스로 침투해 상대 페널티 박스에서 뛰어난 슈팅 스킬과 침착한 마무리를 바탕으로 엄청난 득점력을 뽐냈던 전형적인 포처였는데 특히 가위차기 슛으로 득점하는 플레이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디나모 자그레브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누린 예르코비치는 무려 315경기에 출전하여 300골을 기록했으며 1957-58 시즌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우승 및 유고슬라비아 컵 3회 우승, 그리고 1962-63 시즌 인터시티 페어스컵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예르코비치 개인도 1961-62 시즌에 16골을 터트리며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1960년대 상반기 유고슬라비아 대표팀 주전이었던 예르코비치는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는 베셀리노비치에 밀려 벤치를 지켰지만 UEFA 유로 1960에서는 준우승 및 공동 득점왕에 올랐고 1962 칠레 월드컵에서도 우루과이, 콜롬비아, 체코슬로바키아를 상대로 득점에 성공하며 조국의 4강행을 이뤄냈다.

 

3위 에딘 제코

 


생년월일: 1986년 3월 17일
국적: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A매치 기록: 146경기 72골
신체조건: 키 193cm / 몸무게 84kg
주 소속팀: VfL 볼프스부르크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분리 독립한 이후의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 역대 최고의 선수로 다소 기복은 있었지만 위기의 순간에 빼어난 활약을 보여줬던 만수르 체제 초반기의 타겟 스트라이커로 압도적인 피지컬과 뛰어난 헤딩 솜씨와 골 결정력을 보여줬던 고전적인 스트라이커였다.

볼프스부르크에서에서 미시모비치, 그라피테와 삼각편대를 이뤄내며 볼프스부르크의 기적같은 우승을 이뤄낸 제코는 2009-10 시즌에는 팀은 부진했지만 제코 개인은 리가 득점왕에 올랐고 두 시즌 연속으로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이후 2010-11 시즌 겨울 이적시장에서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해 활약하며 2010-11 시즌 FA컵 우승과 프리미어리그 우승 2회를 이뤄냈으며 특히 2011-12 시즌 우승에는 최종전에 득점하며 역전 우승에 공헌했으며 팀이 전체적으로 부진해 위기를 맞은 2013-14 시즌에는 야야 투레와 함께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며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그리고 보스니아 대표팀에서을 2014 브라질 월드컵 본선에 진출시켰다.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며 AS 로마로 이적한 제코는 비록 리그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2016-17 시즌 세리에 A 준우승 및 2017-18 시즌 바르셀로나를 꺾고 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 34년 만에 진출하는 성과를 냈으며 제코 개인도 2016-17 시즌 세리에 A 득점왕 및 2017-18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올해의 스쿼드에 선정되었음은 물론, AS 로마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다. 인테르로 이적해서는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 및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을 이뤄냈으며 페네르바체에서도 튀르키예 리그 최고의 선수로 부활하며 피오렌티나에 합류하는 기염을 토했다.

 

2위 다르코 판체프

 


생년월일: 1965년 9월 7일
국적: 북마케도니아
A매치 기록: 33경기 18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츠르베나 즈베즈다

2003년 UEFA와 북마케도니아 축구협회가 선정한 근 50년간 최고의 북마케도니아 축구선수로 기술적으로는 평범했지만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의 적절한 위치 선정과 예리한 슈팅과 깔끔한 마무리를 선보였던 게르트 뮐러 스타일의 공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바르다르 스코페에서 뛰어난 활약으로 주목받아 츠르베나 즈베즈다에 입단한 판체프는 1989-90 시즌 도메스틱 더블을 포함해 리그 3회 우승을 이뤄내며 유고슬라비아 무대를 평정하는 과정에서 세 번이나 득점왕에 올랐고 1990-91 시즌 유러피언 컵에서는 5골을 득점하며 팀의 첫 유럽대항전 우승에 큰 공을 세우는 과정에서 레인저스 원정 동점골, 바이에른 뮌헨 원정 동점골 등 중요한 순간에 클러치를 유감없이 발휘했고 연말에 열린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콜로콜로를 상대로 팀의 세 번째 골을 득점하며 3-0 대승의 마침표를 찍었다.

1991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2위에 올랐던 판체프는 츠르베나 즈베즈다를 떠나 인테르에서 베르캄프와 엄청난 투톱을 기대했지만 둘 다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였는데 특히 판체프는 최악의 부진을 보이며 루벤 소사와의 주전경쟁도 패했다. 그리고 그의 전성기 동안은 유고슬라비아 내전으로 인해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이 국제무대에 나설 수 없었다.

 

1위 다보르 슈케르

 


생년월일: 1968년 1월 1일
국적: 크로아티아
A매치 기록: 70경기 46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1990년대 후반 세계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으로 오시예크의 마법사라 불렸을 정도로 볼 컨트롤 능력이 뛰어났고 오프 더 볼 능력도 우수해 수비라인의 배후로 침투해 득전하기 가잫 종은 위치를 선점한 뒤에 왼발 아웃프런트 슈팅으로 니어포스트와 파포스트를 가리지 않고 골을 박아댔다.


유고슬라비아 무대의 NK 오시예크와 디나모 자그레브에서 두각을 나타낸 슈케르는 1988-89 시즌에는 리그 득점왕에도 올랐으나 내전으로 인해 스페인 무대로 떠났다. 스페인 라리가의 세비야에서 전성기를 누렸고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해서는 1996-97 시즌에 소속팀의 라리가 우승을 이뤄내며 ESM 올해의 팀에 들었고 1997-98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내는데 기여했다.

이미 유고슬라비아에서 활약하던 시절부터 청소년 대표팀의 핵심으로 이름을 날린 슈케르는 1987 U-20 월드컵 우승과 1990 UEFA 유로 U-21 준우승을 차지하는데 큰 공을 세웠는데 전자의 대회에서는 실버슈를 수상했으며 후자의 대회에서는 득점왕과 MVP를 석권하며 주가를 높였고 성인 대표팀에도 월반해 1988 서울 올림픽과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도 참가했다.

크로아티아가 분리 독립한 이후에는 크로아티아 올해의 선수를 6번이나 수상한 슈케르는 UEFA 유로 1996에서 8강 진출에 공헌하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팀의 주포이자 에이스로 득점왕에 오르는 등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며 팀의 준결승 진출에 큰 공을 세웠고 슈케르 개인도 1998 프랑스 월드컵 실버볼과 골든슈는 물론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고 이때의 활약으로 발롱도르 투표에서 호나우두를 제치고 2위에 올랐으며 크로아티아 올해의 선수에 6회 선정되었으며 2003년에는 크로아티아 축구협회 선정 근 50년간 최고의 크로아티아 선수로 선정되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