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슬라비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사이드백 Top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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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슬라비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사이드백 Top 10

토르난테 2025. 11. 14.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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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북마케도니아,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 슬로베니아, 코소보 중 1개 이상의 국가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RSSSF와 트렌스퍼마크트이며 둘의 기록이 상충할 경우에는 전자를 우선적으로 따릅니다.
*기록일은 2025년 11월 12일 기준입니다.

 


10위 미르사드 파즐라기치

 


생년월일: 1943년 4월 4일
국적: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
A매치 기록: 19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FK 사라예보

1960년대 후반 유럽 최고의 라이트백 중 하나로 평가받았던 인물로 '우측면의 지아친토 파케티', '유럽의 카를루스 아우베르투'라고 불렸을 정도로 공격적인 풀백이었는데 상대팀의 공격 상황에는 수비에 전념하다가 아군이 볼 소유권을 되찾아오면 그 즉시 오버래핑하면서 크로스로 득점 찬스를 만들어내며 팀의 빠른 역습을 주도했다.

HNK 치플리냐에서 데뷔해 젤레즈니차르 사라예보에서는 적응하지 못해 FK 사라예보로 이적한 파즐라기치는 리그 최고의 라이트백으로 성장했고 1965-66 시즌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준우승 및 1966-67 시즌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데 큰 공을 세웠고 1967-68 시즌 유러피언 컵에서는 해당 대회의 챔피언이 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도 좋은 모습을 선보였다. 그리고 유벤투스로 입단이 거의 확정된 상황에서 그의 전성기를 끝내는 부상을 당하며 무산되기도 했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중용받았던 파즐라기치는 만 25세의 젊은 나이에 주장 완장을 차며 유고슬라비아 최연소 주장으로 이름을 남겼고 UEFA 유로 1968에서는 조국의 준우승을 이끌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동시에 동독의 언론 '디 노이에 푸스발보체'가 선정한 유럽 베스트 일레븐 투표에서도 라이트백 부문 1위를 차지했다.

 

9위 이반 불얀

 


생년월일: 1949년 12월 11일
국적: 크로아티아
A매치 기록: 36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함부르크 SV

1970년대 중후반에 이름을 날렸던 수비수로 센터백과 라이트백 양쪽에서 두각을 나타냈는데 센터백으로 활약할 때는 우수한 수비라인 조율이 빛났고 라이트백으로 활약할 때에는 장신 수비수는 둔하다는 편견을 깨고 상대 윙어를 민첩하게 막아냈음은 물론 사이드백으로서 공격력도 준수했다.

하이두크 스플리트에서 데뷔해 첫 전성기를 누린 불얀은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3회 우승 및 유고슬라비아컵 5회 우승을 이뤄냈고 불얀 개인도 1975년 유고슬라비아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당대 유럽 무대 최강의 팀 중 하나인 함부르크 SV로 이적해서도 1978-79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과 1979-80 시즌 분데스리가  및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고 이를 인정받아 키커 랑리스테 평가 외국인 영역에서 1978-79 시즌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 2위, 1979-80 시즌에는 월드클래스 등급을 받은 차범근과 케빈 키건에 이어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 3위에 올랐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중용받은 불얀은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8강 2차 조별리그에 진출했고 UEFA 유로 1976에서는 4위에 올랐다.

 

8위 로베르토 야르니

 


생년월일: 1968년 10월 26일
국적: 크로아티아
A매치 기록: 87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레알 베티스

1990년대 동유럽과 스페인, 이탈리아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공격적인 레프트백으로 파워풀한 오버래핑으로 상대의 오른쪽 진영을 가로질러 강력한 왼발 크로스로 득점을 지원했으며 여차하면 직접 슈팅을 때리기도 했다.

하이두크 스플리트에서 데뷔해 꾸준하게 활약햇으나 유고슬라비아 내전으로 인해 이탈리아의 여러 팀에서 뛰다가 1994-95 시즌에는 유벤투스의 백업 멤버로 세리에 A 우승에 일조했고 이후 라리가의 레알 베티스에서 전성기를 누렸다. 그리고 후술할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1998-99 시즌에는 레알 마드리드에도 입단했으나 호베르투 카를루스라는 큰 벽에 막혀 한 시즌만에 팀을 떠났다.

유고슬라비아 시절에 청소년 대표 시절에도 1987년 FIFA U-20 월드컵 우승과 1990 UEFA 유로 U-21 대회 준우승에 크게 기여하며 유고슬라비아 축구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로 평가받았는데 이를 증명하듯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도 유고슬라비아 대표팀 멤버로 참가했던 야르니는 크로아티아의 분리 독립 이후에도 1996 UEFA 유로 8강과 1998 프랑스 월드컵 3위라는 성적을 이뤄내는데 공헌했는데 특히 후자의 대회에서는 8강 독일전에 전반전 추가 시간에 선제골을 득점하며 3-0 대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했다.

 

7위 알렉산다르 콜라로프

 


생년월일: 1985년 11월 10일
국적: 세르비아
A매치 기록: 94경기 11골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

발칸의 호베르투 카를루스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2010년대 세르비아 최고의 레프트백으로 스피드가 빠른 편이 아니고 수비 복귀 속도는 늦어 수비적인 부분에서의 리스크가 있었으나 적극적인 오버래핑에 이은 강력한 왼발 킥력을 활용한 크로스로 공격 기회를 만들었으며 강력한 왼발 슈팅으로 데드볼 스페셜리스트로 활약하기도 했으며 선수 생활 후기에는 우수한 신체 조건을 활용해 센터백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유스팀 출신이지만 세르비아의 여러 팀을 떠돌다가 라치오에 입단해 2008-09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에 공헌했음은 물론 2009년에는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에서 세리에 A를 독주하던 인테르를 격파하는 과정에서 마이콩과 맞상대하며 유명세를 떨쳤고 맨체스터 시티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프리미어리그 2회 우승을 포함해 총 여섯 개의 트로피를 올렸으며 전성기가 지난 뒤에는 AS 로마에서 센터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해 활약하며 2018-19 시즌 세리에 A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말년에는 인테르에서 백업으로 2020-21 시즌 세리에 A 우승 및 2021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 그리고 2021-22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다.

2011년 세르비아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콜라로프는 세르비아 대표팀에서도 2008 베이징 올림픽과 2010 남아공 월드컵, 그리고 2018 러시아 월드컵에 주전으로 활약했는데 특히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주장으로 활약했다. 그리고 그가 활약하던 기간 동안에는 5대 리그에서 리오넬 메시 다음으로 많은 프리킥 득점을 기록했다.

 

6위 다리요 스르나

 


생년월일: 1982년 5월 1일
국적: 크로아티아
A매치 기록: 134경기 22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샤흐타르 도네츠크

21세기 크로아티아 최고의 축구선수 중 한 명으로 인기를 누리는 스타로 뛰어난 공격력과 날카로운 오른발 킥력으로 우측면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며 특히 강력한 오른발 킥력이 장점으로 그의 오른발은 세트피스 상황에서 큰 무기가 되었다.

하이두크 스플리트에서 데뷔해 샤흐타르 도네츠크에서 선수 생활 대부분을 보낸 스르나는 디나모 키이우가 쥐고 있던 우크라이나의 패권을 샤흐타르 도네츠크가 가져오는데 큰 공을 세우며 정규리그 10회 우승, 우크라이나 컵과 우크라이나 슈퍼컵 각각 8회 우승을 이뤄냈고 유럽 무대에서도 2008-09 시즌 UEFA컵 우승 및 2010-11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을 이끌었음은 물론 스르나 개인도 우크라이나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 2회 수상 및 2010-11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샤흐타르 도네츠크에서 15년간 활약하며 빅리그의 여러 클럽의 구애에도 거부하고 샤흐타르에 남았던 샤흐타르의 하비에르 사네티와 같았던 다리요 스르나는 크로아티아 대표팀에서도 2004년부터 붙박이 주전으로 나서며 네 번의 유럽 선수권 대회와 두 번의 월드컵에 참가했는데 UEFA 유로 2008에서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폴란드를 제치고 조 1위로 8강에 진출하기도 했다. 2009년부터 2016년까지 주장을 역임한 것은 덤이다.

 

5위 토미슬라브 츠른코비치

 


생년월일: 1929년 6월 17일
국적: 크로아티아
A매치 기록: 51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디나모 자그레브

1950년대 유럽 정상급의 레프트 풀백으로 쉽게 뚫리지 않는 대인 수비 능력과 우수한 슬라이딩 태클 능력을 바탕으로 팀의 수비하인을 철저하게 지켰는데 특히 공을 빼앗겨도 바로 달라붙어 재탈환하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디나모 자그레브에서 전성기를 보낸 츠른코비치는 유고슬라비아 탑 리그와 유고슬라비아 컵을 각각 2회 우승했고 뛰어난 실력과 스타성을 겸비해 범국민적인 인기를 누렸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붙박이 레프트백으로 활약한 츠른코비치는 1952 헬싱키 올림픽 은메달과 UEFA 유로 1960 준우승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큰 공을 세웠고 1954 스위스 월드컵과 1958 스웨덴 월드컵에 참가해 두 대회에서 모두 조별리그를 통과해 8강에 진출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4위 블라디미르 두르코비치

 


생년월일: 1937년 11월 6일
국적: 세르비아
A매치 기록: 50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츠르베나 즈베즈다

1960년대 유럽 정상급 라이트백 중 한 명으로 스피드가 빠르고 전투적인 몸싸움을 활용한 대인 수비를 보여주며 상대 수비수를 제압해 그를 상대하는 공격수는 그 누구라도 쉽게 플레이하지 못했으며 우수한 패싱력으로 공격 작업을 돕는 부분에도 능했다.

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 전성기를 누린 두르코비치는 리그 5회 우승과 유고슬라비아컵 3회 우승을 이뤄내며 즈베즈다가 유고슬라비아 최고의 팀으로 등극하는데 큰 공을 세웠고 해외에 나갈 수 있는 나이가 되자 생테티엔으로 이적해서도 프랑스 리그 최고의 수비수로 군림하며 리그앙 3연패를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브란코 스탄코비치의 후계자로 활약하며 유수피와 수비라인을 구성한 두르코비치는 UEFA 유로 1960에서 준우승을 이뤄내며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고 1960 로마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며 1962 칠레 월드컵에서는 조국의 준결승 진출을 도왔다. 그러나 대표팀을 은퇴하고 시옹에서 활약하던 시절 한 경찰관이 쏜 오발탄에 맞아 허무한 최후를 맞았다.

 

3위 브라니슬라프 이바노비치

 

 

생년월일: 1984년 2월 22일
국적: 세르비아
A매치 기록: 105경기 13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첼시 FC

2010년대를 풍미한 세르비아 출신의 라이트백으로 압도적인 신체 능력과 득점력을 겸비한 공격형 수비수였으며 라이트백은 물론 센터백에서도 훌륭한 모습을 보여줬다.

OFK 베오그라드에서 데뷔해 로코모티브 모스크바에서 두각을 나타낸 이바노비치는 첼시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프리미어리그 3회 우승 및 2009-10 시즌 FA컵 우승, 2011-12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 및 2012-13 시즌 UEFA 유로파 리그 우승을 이뤄냈고 이바노비치 개인도 PFA 올해의 팀에 두 번 선정되었고 2014-15 시즌에는 ESM 올해의 팀과 UEFA 챔피언스리그 올해의 스쿼드에도 선정되었다. 첼시를 떠난 뒤에는 제니트에서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2연패 및 2018-19 시즌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세르비아 대표팀 통산 A매치 최다 출전을 기록하며 세르비아 올해의 선수에 2회 선정된 이바노비치는 세르비아 대표팀에서도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2010 남아공 월드컵과 2018 러시아 월드컵에 참가했는데 전자의 대회에서는 비록 조별리그 최하위로 탈락했지만 우승후보 독일을 상대로 1-0으로 승리한 경기에서 비디치와 함께 독일의 파상공세를 막아내며 승리에 공헌했다.

 

2위 브란코 스탄코비치

 


생년월일: 1921년 10월 31일
국적: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
A매치 기록: 55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츠르베나 즈베즈다

구 유고슬라비아 지역 축구 역사상 역대 최고의 측면 수비수로 평가받는 인물로 측면의 넓은 공간을 종횡무진 뛰어다녔으며 반칙을 하지 않고도 상대의 공을 빼앗는 완벽한 수비를 보여줬으며 공 탈취 이후 빌드업에도 크게 관여해 사령관이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프리킥에도 능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데뷔한 스탄코비치는 FK 슬라비야 사라예보에서 데뷔해 1941년에는 BSK 베오그라드에서 활약하면서 세르비아 축구 리그 2회 우승 및 유고슬라비아 컵 1회 우승을 이뤄냈고 종전 이후 팀이 해체당하자 내무부 소속으로 새로 창단된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창단 멤버로 활약하며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4회 유고슬라비아 컵 3회 우승을 이끌었고 1956-57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이뤄냈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수비라인의 핵으로 군림한 스탄코비치는 1948년 런던 올림픽과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결승에 진출하며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1950 브라질 월드컵과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 5위라는 성적을 달성했다.

 

1위 파흐루딘 유수피

 


생년월일: 1939년 12월 8일
국적: 세르비아 / 코소보
A매치 기록: 56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FK 파르티잔

1960년대 세계 정상급 레프트백이자 라이트백으로 '죽기 아니면 살기'를 플레이 신조로 삼았던 수비수로 격렬하고 거친 수비로 상대 공격수를 잠재우는 파이터형 측면 수비수였다.

FK 파르티잔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누린 유수피는 유고슬라비아 탑 리그 4회 우승 및 1965-66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이뤄냈는데 이 과정에서 4강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천재로 유명했던 조지 베스트를 완벽하게 막아내기도 했다. 해외 이적이 가능한 나이가 되자 이적한 프랑크푸르트에서도 1966-67 시즌 UEFA 인터토토컵 우승을 이뤄냈고 1967-68 시즌에는 당대 리그 최고급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월드 사커 선정 월드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중핵으로 활약한 유수피는 1960 로마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며 1960 UEFA 유로에서는 준우승을 이뤄냈고 1962 칠레 월드컵 4위에 올렸다. 유수피 개인도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으며 1984년 프랑스 풋볼 역대 포지션별 선수 랭킹 좌우 풀백 부분 공동 6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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