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국대 올스타 짜보기/동유럽

체코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토르난테 2025. 11. 12. 13:24
728x90
728x90

주의사항

 

2025년 11월 7일 기준입니다.

 

기존에는 대표팀 활약에 가산점을 더 부여했지만 이 부분을 제외하고 다시 선정했습니다

 

그러나 감독은 덴마크 대표팀 감독으로서의 활약을 기준으로 뒀습니다. 고로 리하트 뮐러 니엘센이 선정되었습니다.

 

최소한의 밸런스는 챙길 예정이며 더블 리베로를 내는 현상이나 스트라이커로만 세 명이 나서는 현상은 최대한 피할 예정입니다.

 

선수 사진은 에펨네이션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을 주로 활용했습니다.

 

 


1. 체코 축구 국가대표팀

 

별칭: 나로드니 팀

월드컵: 출전 9회, 준우승 2회

유로: 출전 9회, 우승 1회

올림픽: 출전 6회, 금메달 1회

중유럽컵: 출전 6회, 우승 1회

최다 출전 선수: 페트르 체흐, 124경기

최다 득점 선수: 얀 콜러, 55골

(체코슬로바키아 기록 승계)

 


2. 베스트 일레븐

 

 

골키퍼

 

 

 

이름: 프란티셰크 플라니츠카
생년월일: 1904년 6월 2일

포지션: 골키퍼

A매치 기록: 73경기 121실점 / 12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슬라비아 프라하

 

체코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이자 1930년대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172cm의 단신이었지만 뛰어난 반사신경과 경탄스러운 유연성으로 이를 커버했다.

선수 생활 전체를 슬라비아 프라하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 플라니츠카는 체코슬로바키아 1부 리그 8회 우승 및 보헤미안 컵 6회 우승을 이뤄냈고 1938년에는 미트로파 컵에서 우승하며 슬라비아 프라하를 중유럽 최고의 구단으로 만들었다.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에서도 에아스로 활약한 플라니츠카는 1934 이탈리아 월드컵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냈고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팀은 8강에 머물렀음에도 플라니츠카 개인은 대회 최우수 골키퍼와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사후, 2016년에는 베를린브리츠가 선정한 1930년대 최우수 골키퍼로 선정되었다.

 

 

리베로

 

 

이름: 미로슬라프 카들레츠
생년월일: 1964년 6월 22일

포지션: 리베로, 센터백

A매치 기록: 64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카이저슬라우테른

 

체코 축구 역사상 최고의 리베로로 평가받는 선수로 힘보다는 기술을 앞세운 수비력과 기습적으로 공격에 가담해 상대 수비진을 교란하는 능력 또한 발군이었다.

 

체코의 비트코비체에서 데뷔해 활약하던 카들레치는 1990년에 체코슬로바키아에도 공산주의가 해체되고 자유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선수들도 자유롭게 해외 무대에 나설 수 있게 되었고 카들레치도 1990-91 시즌에 독일의 카이저슬라우테른으로 이적해 팀의 수비를 이끌며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끌었음은 물론 DFB포칼을 우승했음에도 불구하고 2부 리그로 강등을 경험했음에 팀과의 의리를 지키며 2.분데스리가에서도팀과 함께했고 2.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내며 한 시즌만에 다시 분데스리가로 돌아왔다. 그리고 승격한 시즌인 1997-98 시즌에는 팀의 수비라인의 리더이자 베테랑으로 활약하며 두 번째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냈고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전후반기 모두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선정되며 해당 등급에 총 다섯 번 선정되었다.

 

체코슬로바키아 시절부터 대표팀 수비라인의 중핵으로 활약한 카들레치는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팀을 28년 만에 8강에 올렸으며 분리 독립 이후 체코 대표팀을 이끌고 UEFA 유로 1996에 참가해 팀을 결승 진출에 큰 공을 세웠다.

 

 

센터백

 

 

이름: 요제프 치티르조키
생년월일: 1906년 9월 30일
포지션: 센터백, 레프트백

A매치 기록: 42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스파르타 프라하

 

1930년대 중유럽 최고의 레프트 풀백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던 선수로 우아하면서 깔끔한 수비로 상대의 공을 빼앗아 역으로 전개하는데 능숙했다고 전해진다.

슬라비아 프라하에서 데뷔한 치타르조키는 데뷔 시즌에 체코슬로바키아 리그 우승을 이뤄냈지만 그 뒤로는 쭉 무관이었기에 호예르가 물러나자 스파르타 프라하로 이적해 부르고르와 파트너십을 구성하며 정규리그 4회 우승 및 1935년 미트로파컵 우승을 이뤄내며 스파르타 프라하 왕조를 세웠다.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에서도 부르고르와 함께 주전으로 활약한 치타르조키는 1934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조국의 결승행을 도왔고 세 번의 중유럽컵에 참가했다.

 

 

라이트백

 

 

이름: 야로슬라프 부르그르
생년월일: 1906년 3월 7일

포지션: 센터백, 라이트백

A매치 기록: 57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스파르타 프라하

 

1930년대 중유럽 최고의 라이트 풀백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던 선수로 우수한 수비 조율 능력과 헤딩 능력은 물론 잘 지치지 않고 꾸준하면서도 강력한 수비력을 보여주는 수비수였으며 동시에 신사적인 매너를 지닌 선수였으며 세련된 볼 컨트롤도 겸비해 팀 빌드업의 시발점이 되는 패싱력도 뛰어난 편이었다.

스파르타 프라하 소속의 선수로 20년을 넘는 세월을 보낸 부르그르는 안토닌 호예르, 요제프 치티르조키와 수비라인을 구성하며 체코슬로바키아 리그 7회 우승과 미트로파 컵 2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부르그르 개인은 미트로파 컵 통산 최다 출전자로 이름을 남겼다.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에서도 두 번의 월드컵과 네 번의 중유럽컵에 참가한 수비라인의 에이스 부르그르는 1934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이뤄냈고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8강 진출을 이끌었다.

 

 

레프트백

 

 

이름: 라디슬라프 노박
생년월일: 1931년 12월 5일

포지션: 레프트백, 센터백

A매치 기록: 75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두클라 프라하

 

1960년대 상반기, 유럽 축구계를 빛낸 레프트백 중 한 명으로 왕성한 활동량과 견고한 대인 수비를 앞세워 상대 측면 공격수들을 제압했으며 소속 클럽과 대표팀에서 주장 완장을 오랜 기간 찼을 정도로 강력한 리더십을 겸비했다.

두클라 프라하에서 요제프 마소푸스트, 스바토플루크 플루스칼과 삼총사를 이뤄서 활약한 노박은 체코슬로바키아 리그 우승 8회와 컵대회 3회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끈 구단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로 명성을 날렸다.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에서도 두클라 삼총사와 함께 조국의 약진을 이끈 노박은 1955-1960 중유럽컵 우승, UEFA 유로 1960 3위를 이뤄냈고 1962 칠레 월드컵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유로와 월드컵에서는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중앙 미드필더

 

 

이름: 카렐 페섹
생년월일: 1895년 9월 20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A매치 기록: 44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스파르타 프라하

체코슬로바키아 역대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평가받는 선수로 강력한 운동 능력은 물론 볼을 다루는 테크닉과 정확한 패스, 그리고 강력한 수비력과 탄탄한 기본기를 모두 겸비해 당대 최고의 센터하프로 평가받았다.

남미와 유럽, 그리고 영국의 여러 강호들을 연파하며 아이언 스파르타라 불렸던 스파르타 프라하의 황금기를 이끈 알파이자 오메가로 구단의 중부 보하미안 카운티 5회 우승 및 체코슬로바키아 퍼스트 리그 3회 우승, 그리고 중앙 보에미안컵 6회 우승을 이뤄냈고 1927년에는 미트로파컵 루승을 이뤄냈다. 특히 1920년부터 1923년까지 4년 동안 총 50경기를 치르며 전승을 거뒀고 230득점 43실점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는데 큰 역할을 했다.

스파르타 프라하가 중유럽 최강의 반열에 오르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페섹은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에서도 중추로 활약하며 두 번의 올림픽과 두 번의 중유럽 컵에 나서 팀의 중원의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부업으로 아이스하키 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중앙 미드필더

 

 

이름: 요제프 마소푸스트
생년월일: 1931년 2월 9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A매치 기록: 63경기 10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두클라 프라하

'마소푸스트 활강'

1960년대 초반, 유럽 축구계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2선과 3선을 오가며 플레이메이킹을 하며 양질의 패스를 앞세워 볼 배급을 했으며 '마소푸스트 활강'이라 불리는 기습적인 전진 드리블로 상대 수비진을 붕괴시켜 득점 찬스를 만들기도 했다.

두클라 프라하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 마소푸스트는 스바토플루크 플로스칼, 라디슬라프 노바크와 함께 16년간 활약하며 정규리그 8회 우승 및 체코슬로바키아 컵 3회 우승을 이뤄냈고 미국이 주최하던 국제 친선 대회였던 인터내셔널 사커 리그에서 4회 연속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1966-67 시즌 유러피언 컵에서는 준결승에 진출하며 우승을 노렸지만 그 해 챔피언이 되는 셀틱에게 패해 무산되었다.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에서도 스바토플루크 플로스칼, 라디슬라프 노바크와 함께 '두클라 삼총사'를 이뤄 활약했는데 특히 마소푸스트는 팀의 볼 순환의 핵심인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맡아 마지막 중유럽컵인 1955-60 중유럽컵에서 우승했고 초대 유로인 UEFA 유로 1960에서는 3위라는 성적을 달성했으며 1962 칠레 월드컵에서는 준우승이라는 값진 성적을 이뤄냈다. 마소푸스트 개인도 UEFA 유로 1960과 1962 칠레 월드컵에서 모두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음은 물론 1962 칠레 월드컵에서는 가린샤 다음가는 활약을 펼쳤다고 전해진다.

 

 

라이트윙

 

 

이름: 카렐 포보르스키
생년월일: 1972년 3월 30일

포지션: 라이트윙, 공격형 미드필더

A매치 기록: 118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스파르타 프라하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라이트윙으로 화려한 드리블과 정교한 오른발 킥을 활용해 우측면에서 크로스를 날리며 공격을 이끌었다.

디나모 체스케부데요비체에서 데뷔해 빅토리아 지즈코프에서 만개한 포보르스키는 UEFA 유로 1996에서 포르투갈 전 중거리 득점과 같은 활약을 펼치며 조국을 결승에 올렸고 준우승에 그쳤음에도 포보르스키 개인은 대회 도움왕 및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고 이때의 활약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이적한다.

아쉽게도 맨유에서는 좋지 못했지만 이후 벤피카에서 부활에 성공했고 세리에 A의 라치오에서도 1년 6개월간 활약했으나 데얀 스탄코비치한테 밀려나는 빈도가 늘면서 출전시간 확보를 위해 체코의 스파르타 프라하에 이적했다. 프라하 시절에서도 유럽 정상급 선수로 활약하며 네드베드와 함께 체코의 UEFA 유로 2004 4강행을 이끌었고 그 과정에서 도움왕을 수상했다.

 

 

레프트윙

 

 

이름: 파벨 네드베드
생년월일: 1972년 8월 30일

포지션: 레프트윙,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A매치 기록: 91경기 18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2000년대 상반기 최고의 축구 선수 중 한 명으로 강력한 체력으로 공수 양면에 걸쳐 왕성한 활동량을 보여주며 경기장 전역에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창의적이진 않았지만 정확한 패스를 통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물론 우수한 킥력도 겸비했으며 "나는 하루 12시간을 연습했다, 두 다리 모두 우월하다고 느낄 때 희열을 느꼈다."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양발을 잘 썼던 만능 미드필더 자원이었다.

두클라 프라하에서 데뷔해 스파르타 프라하를 거쳐 세리에 A의 라치오와 유벤투스에서 전성기를 보낸 네드베드는 라치오에서는 구단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누리며 1997-98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과 UEFA컵 준우승, 1998-99 시즌 컵 위너스컵 우승과 1999-2000 시즌 세리에 A와 코파 이탈리아 도메스틱 더블을 이뤄냈다. 2001-02 시즌에 유벤투스로 이적한 뒤에도 세리에 A 2연패를 이뤄냈고 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을 이뤄내며 2003년 발롱도르를 수상하기도 했다.

네드베드는 개인도 발롱도르 수상 이외에도 체코 골든볼 6회 선정, UEFA 올해의 팀 3회 선정 및 ESM 올해의 팀 2회 선정이라는 성과를 냈으며 2002-03 시즌에는 UEFA 클럽 베스트 미드필더와 2003 세리에 A 올해의 선수 및 올해의 외국인 선수를 수상했으며 평점왕 구에린 도르도 수상했다.

체코 대표팀에서도 UEFA 유로 1996에서 조국의 결승 진출에 큰 역할을 하며 전 유럽의 주목을 받았고 UEFA 유로 2004에서도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4강에 올리며 대회 올스타 팀에 들었으나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다.

 

 

포워드

 

 

이름: 올드리히 네예들리
생년월일: 1909년 12월 26일

포지션: 포워드, 스트라이커, 레프트윙

A매치 기록: 44경기 29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스파르타 프라하

1930년대 유럽 정상급 인사이드 레프트로 평가받는 네예들리는 특유의 화려한 플레이 스타일과 잘생긴 외모로 인해 체코의 수정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엄청난 득점력과 유려한 연계 플레이를 겸비했음은 물론 중요한 순간에 클러치 능력도 대단했다.

스파르타 프라하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보낸 네예들리는 체코슬로바키아 1부 리그 4회 우승 및 5회 준우승을 기록했고 중유럽의 챔피언스리그와 같았던 미트로파 컵에서도 1935년에는 레이몽 브라인과 호흡을 맞춰 우승을 이뤄냈고 이듬해에도 결승에 올랐다. 네예들리 개인도 스파르타 프라하 구단 통산 최다 득점자에 올랐다.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에서도 팀의 중핵으로 활약한 네예들리는 두 번의 월드컵과 세 번의 중유럽컵에 참가했는데 1934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1라운드 루마니아전 결승골, 8강 스위스전 결승골, 그리고 준결승 독일전 해트트릭을 득점하며 5골을 득점해 팀을 결승에 올리고 개인적으로는 득점왕에 올랐다.

 

 

스트라이커

 

 

이름: 요제프 비칸
생년월일: 1913년 9월 25일

포지션: 포워드, 스트라이커

A매치 기록: 14경기 12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슬라비아 프라하

펠레, 게르트 뮐러, 호날두, 메시와 함께 축구 역사에서 가장 득점력이 좋은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던 선수로 100m를 10초 대에 주파하는 빠른 스피드로 상대 수비 뒷공간으로 침투해 뛰어난 결정력으로 마무리하던 공격수였는데 단순한 포처가 아니라 훈련 시간에 묘기를 부렸다는 점을 보면 탁월한 드리블러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오스트리아의 라피트 빈에서 데뷔해 정규리그 2회 준우승과 1933-34 시즌 리그 득점왕에 올라 처음 주목을 받았고 아드미라 빈으로 이적해서는 정규리그 2연패를 이뤄냈는데 이때의 활약으로 '분더 팀'이라고 불린 오스트리아 대표팀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 4위라는 성적을 냈다. 그러나 비찬의 아버지는 남부 체코 출신 이민자였고 어머니도 체코 쪽 혈통이었던 관계로 체코슬로바키아로 떠나고 싶어 했기에 비찬은 일방적으로 계약의 파기를 꺼내기에 이르렀고 아드미라는 비찬에게 4년의 출장 정지라는 초강수로 응수했기에 비찬을 영입하고 싶어 하던 슬라비아 프라하는 변호사를 선임하고 거액의 이적료를 제시해서 출장 정지 징계를 깎으려 시도했다.

우여곡절 끝에 비찬은 1937년 8월부터 슬라비아 프라하에서 활약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 비찬은 전성기 궤도에 오르며 엄청난 골 폭풍을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슬라비아 프라하의 1938 미트로파컵 우승을 시작으로 정규리그 4연패를 포함한 5회 우승을 이뤄냈고 비찬 개인은 1938년 우승과 더불어서 미트로파컵 득점왕에 올랐으며 정규리그 득점왕을 무려 11회나 차지했다. 특히 1943–44 시즌에는 32경기에 출전해 76골을 기록하는 괴력을 선보였다.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에서도 14경기에 출전해 12골을 득점했으나 세계대전 기간인지라 국제대회는 나서지 못했다.

 

 

감독

 

 

이름: 루돌프 비틀라칠
생년월일: 1912년 2월 9일
부임기간: 1958~1964

 

1950년대 후반과 60년대 초반 체코슬로바키아의 전성기를 이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태생의 체코인 감독으로 다뉴브 학파의 공격진의 스위칭 철학을 계승했으며 팀의 코어로 두클라 삼총사를 중심으로 전술을 짰다.

두클라 트리오를 바탕으로 팀을 재편해 1955-60 마지막 중유럽컵 우승과 초대 유로에서 3위를 이뤄냈으며 1962 칠레 월드컵에서는 비록 가린샤가 이끄는 브라질에게 결승에서 패했지만 준우승이라는 대단한 성적을 거뒀다. 그리고 1964 도쿄 올림픽에서도 은메달을 획득했다.

 


베스트 일레븐

 


3. 서브 14인 포함 1군 스쿼드

 

 

이름: 이보 빅토르
생년월일: 1942년 5월 21일

포지션: 골키퍼
A매치 기록:  63경기 54실점 / 28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두클라 프라하

체코슬로바키아의 대표적인 골키퍼 중 하나로 엄청난 반사신경과 우수한 수비조율을 겸비했으며 특히 일대일 방어에 강점을 보였다.

두클라 프라하 구단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였던 빅토르는 팀의 체코슬로바키아 리그 3회 우승에 큰 공을 세웠음은 물론 빅토르 개인도 체코슬로바키아 올해의 선수에 5회 선정되었을 정도로 당대 체코슬로바키아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다.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쳤는데 1970 멕시코 월드컵과 유로 1976에 참가했다. 특히 유로 1976에서는 발군의 퍼포먼스를 보여줬는데 결승에서 서독의 제프 마이어를 상대로 승부차기에서 승리하며 우승에 기여하며 대회 올스타팀에 선정되었고 그해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3위에 올랐다.

 

 

 

이름: 페트르 체흐
생년월일: 1982년 5월 20일

포지션: 골키퍼
A매치 기록: 125경기 118실점 / 56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96cm / 몸무게 90kg
주 소속팀: 첼시 FC


2000년대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로 큰 키에서 나오는 긴 팔다리와 빼어난 운동신경과 대담한 정신력까지 겸비한 완벽한 골키퍼로 뛰어난 반사신경을 앞세우는 선방은 물론 큰 키를 활용한 공중볼 처리에도 능숙했다.

프랑스의 스타드 렌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인수한 첼시에서 전성기를 누린 체흐는 프리미어 리그 4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2004-05 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 최소 실점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2011-12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는 바이에른 뮌헨의 파상 공세를 막고 첼시의 기적적인 우승에 공헌했고 베스트 유러피언 골키퍼와 프리미어리그 골든 글러브 4회 수상을 이뤄냈고 아스날에서의 기록까지 더해 프리미어리그 역대 최다 클린시트를 기록했다.

체코 대표팀에서도 A매치 통산 최다 출전자로 이름을 남긴 체흐는 2006 독일 월드컵과 네 번의 유럽선수권 대회에 참가했는데 UEFA 유로 2004에서는 준우승을 기록하며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고 UEFA 유로 2008에서는 8강에 올랐다. 그리고 체코 올해의 선수상을 10회 수상했다.

 

 

 

이름: 토마시 위팔루시
생년월일: 1978년 3월 24일

포지션: 센터백, 라이트백, 레프트백, 수비형 미드필더

A매치 기록: 78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피오렌티나

 

2000년대 유럽 무대에서 활약하던 수비수로 우수한 제공권 경합 능력과 파워풀하고 거친 대인마크로 정평이 났으며 터프한 스타일임에도 경기를 읽는 전술안이 뛰어나 사이드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활약할 수 있었다.

SK 시그마 올로모우츠에서 데뷔해 함부르크에서 두각을 나타낸 위팔루시는 2003 DFL 리가포칼 우승을 이뤄냈고 피오렌티나로 이적해서는 본격적인 전성기를 누리며 2007-08 시즌에 팀을 리그 4위에 올렸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해서도 2009-10 시즌 UEFA 유로파 리그 우승 및 UEFA 슈퍼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갈라타사라이에서도 튀르키예 수페르리그 2연패를 이뤄냈다.

 

체코 대표팀에서도 수비라인의 핵으로 활약한 위팔루시는 UEFA 유로 2004에서 탄탄한 수비를 보여주며 팀을 준결승에 올려놓았고 이후 2006 독일 월드컵과 UEFA 유로 2008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다.

 

 

 

이름: 라도슬라프 라탈
생년월일: 1970년 1월 6일
포지션: 라이트백, 라이트윙,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A매치 기록: 58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FC 샬케 04

1990년대 체코와 독일 무대에서 명성을 날린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축구지능이 우수해 라이트백과 라이트윙, 그리고 3선 미드필더를 모두 우수하게 소화할 수 있었고 공수를 아우르는 왕성한 활동량과 측면에서의 날카로운 크로스를 바탕으로 득점 찬스를 만들어내는 등 공수 양면에서 모두 뛰어난 모습을 보였다.

시그마 올로모우츠에서 데뷔해 두클라 프라하에서 1989-90 시즌 체코슬로바키아 컵 우승을 이뤄내며 주목받았고 다시 시그마 올로모우츠로 돌아갔다가 FC 샬케 04로 이적해 전성기를 누리며 1996-97 시즌 UEFA컵 우승에 큰 공을 세웠다. 그리고 2003-04 시즌에는 비니크 오스트라바의 기적적인 감브루니스 리가 우승을 이뤄냈다.

분리 독립 이후 체코 대표팀의 주축으로 활약한 라탈은 UEFA 유로 1996에서 조국의 결승행에 큰 공을 세워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고 2003년에는 체코 축구팬들이 선정한 지난 10년간 체코 최고의 선수 10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이름: 마렉 얀쿨로프스키
생년월일: 1977년 5월 9일

포지션: 레프트백, 레프트윙

A매치 기록: 78경기 12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AC 밀란

2000년대에 이탈리아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왼쪽 자원으로 우수한 볼 컨트롤과 정확한 왼발 킥력에서 나오운 크로스나 중거리 슈팅으로 이름을 날렸던 공격형 레프트백이자 레프트윙으로 이름을 날렸다.

자국 무대의 바디크 오스타라바를 거쳐 나폴리에서 세리에 A 데뷔를 이뤄냈고 우디네세에서 처음 두각을 나타낸 얀쿨로프스키는 AC 밀란으로 이적한 뒤에는 센터백으로 옮긴 말디니와 친동생의 죽음으로 폼이 떨어진 칼라제를 대신해 레프트백으로 활약하며 2006-07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및 2007 UEFA 슈퍼컵과 FIFA 월드컵 우승을 이뤄냈다.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에서도 왼쪽 수비를 맡아 UEFA 유로 2000에서부터 활약한 얀쿨로프스키는 UEFA 유로 2004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해 팀의 준결승 진출에 공을 세웠다. 이후 2006 독일 월드컵과 UEFA 유로 2008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다.

 

 

 

이름: 스바토플루크 플루스칼
생년월일: 1930년 10월 28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센터백, 중앙 미드필더

A매치 기록: 65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두클라 프라하

1950년대 후반~60년대 초반에 이름을 날렸던 수비형 미드필더로 칼날 같은 슬라이딩 태클과 강인한 정신력으로 볼을 끝까지 따라가 결국 볼 소유에서 이기는 미드필더였다.

요제프 마소푸스트, 라디슬라프 노박과 함께 두클라 프라하의 체코슬로바키아 리그 8회 우승을 이뤄냈고 특히 1963년에는 발롱도르 투표에서 1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에서도 두클라 프라하 삼총사의 일원으로 활약한 플루스칼은 1954 스위스 월드컵과 1958 스웨덴 월드컵에 출전했으며 1955-1960 중유럽컵 우승, 1960 UEFA 유로 3위와 1962 칠레 월드컵 준우승을 이뤄냈다.

 

 

 

이름: 요제프 코슈탈레크
생년월일: 1909년 8월 31일

포지션: 라이트백,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A매치 기록: 43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스파르타 프라하

 

1930년대 중부 유럽 정상급 라이트 하프백으로 초년에는 센터포워드로 데뷔했지만 잘 적응하지 못했고 결국 라이트 풀백으로 포지션을 옮기면서 만개했는데 중원에서 뛰어난 수비력을 바탕으로 팀의 1차 저지선 역할을 능숙하게 소화했다.

스파르타 프라하에서 전성기를 누린 코슈탈레크는 16년간 활약하며 정규리그 5회 우승과 미트로파컵 우승을 이뤄내며 황금기를 이끌었고 코슈텔라크 개인도 팀에 대한 무한한 충성심과 열정적인 플레이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에서도 세 번의 중부 유럽컵에 주전으로 활약한 코슈탈레크는 1934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팀의 준우승을 이끌었고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1라운드 네덜란드전에서 연장 전반 3분에 골을 넣어 체코슬로바키아의 8강 진출에 공헌했지만 브라질의 레오디나스를 막지 못해 8강에서 아쉽게 탈락했다.

 

 

 

이름: 이르지 네메츠
생년월일: 1966년 5월 15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레프트윙, 레프트백

A매치 기록: 84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FC 샬케 04

1990년대 중반 유럽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중앙 미드필더로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기에 대중들에게는 침묵하는 자라고 불렸으나 경기장에서는 경기 흐름을 읽는 능력이 우수하고 동료들을 잘 지휘해서 동료들로부터는 전략가라 불렸으며 우수한 전술안뿐만이 아니라 왕성한 활동량과 헌신적인 수비 가담으로 볼 경합에서 상대를 자주 제압하며 정확한 판단력에서 나오는 안정적인 패싱력을 겸비한 중원 사령관이었다.

 

체스케부데요비체와 두클라 프라하를 거쳐 스파르타 프라하에서 두각을 나타낸 네메츠는 체코슬로바키아 1부 리그 2회 우승을 이뤄냈고 분리독립 이후에는 FC 샬케 04로 이적했는데 그가 팀에 합류하자 샬케는 분데스리가의 강호로 다시 올라서면서 1996-97 시즌 UEFA컵 우승을 이뤄냈고 이때의 활약으로 네드베드나 베르게르를 제치고 체코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DFB포칼 2연패의 핵심으로 활약하면서 샬케의 명예의 오두막 (Ehrenkabine)에 헌액되었다.

 

체코슬로바키아 시절부터 대표팀에 뽑힌 네메츠는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8강 진출을 경험했고 분리 독립 이후에는 체코 대표팀에서 활약하며 UEFA 유로 1996에서 조국의 결승행을 견인했다. 그리고 1997년 컨페드컵 3위 및 UEFA 유로 2000에도 참가했다.

 

 

 

이름: 안토닌 파넨카
생년월일: 1948년 12월 2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A매치 기록: 59경기 17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6kg
포지션: 보헤미안스 프라하

 

페널티킥 상황에서 힘을 빼고 골키퍼 정면을 향해 느리게 차는 슛인 일명 '파넨카'의 창시자였던 안토닌 파넨카는 드넓은 시야와 상대의 허를 찌르는 패싱력을 겸비했으며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숏패스와 롱패스로 정확한 볼 배급을 이뤄낸 플레이메이커였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중견팀 보헤미안스 프라하에서 데뷔한 파넨카는 개인의 기량은 우수했지만 팀이 약했기에 우승과는 인연이 멀었다가 오스트리아의 라피트 빈에 합류해서는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 한스 크란클과 환상적인 파트너십을 구성하며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2연패 및 OFB컵 3연패의 금자탑을 쌓았다.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에서도 중핵으로 활약한 파넨카는 UEFA 유로 1976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상술했던 파넨카로 세계 최고의 골키퍼 제프 마이어를 무너트리며 조국이 앙리 들로네를 드는데 공헌해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이후 UEFA 유로 1980 3위와 1982 스페인 월드컵 예선 통과를 이뤄냈다. 여담으로 그가 파넨카라는 스킬을 개발하게 된 계기는 소속팀 동료 골키퍼와 맥주를 걸고 페널티킥 내기를 했으나 자주 져서 중앙을 잘 막지 않는 골키퍼의 허를 찌르기 위해서 개발한 전술이라고 한다.

 

 

 

이름: 라디슬라프 비체크
생년월일: 1955년 1월 22일

포지션: 라이트윙, 스트라이커, 포워드

A매치 기록: 55경기 13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두클라 프라하

 

19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에 이름을 날렸던 다재다능한 공격 자원으로 주 포지션은 라이트윙이었으며 체코슬로바키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드리블러라 평가받았을 정도로 드리블에 능했음은 물론 크로스로 찬스를 만드는 부분에도 능했음은 물론 일반적인 드리블러들과는 다르게 자주 수비에 가담해 상대 공격수를 1차적으로 압박했고 다재다능해 처진 공격수와 스트라이커도 막힘없이 소화했으며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을 정도로 득점력도 우수했다.

 

두클라 프라하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누린 비체크는 정규리그에서만 321경기에 출전해 115골을 득점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체코슬로바키아 퍼스트 리그 3회 우승 및 체코슬로바키아 컵 3회 우승을 기록했으며 비체크 개인도 1981-82 시즌에 리그 득점왕에 올랐고 1983년과 1985년에는 체코슬로바키아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다.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에서도 중용받은 비체크는 UEFA 유로 1980에서 조국을 3위에 올렸고 1980 모스크바 올림픽에서도 4골을 득점하며 유고슬라비아와 동독을 제압하고 금메달을 따냈으며 1982 스페인 월드컵에도 출전했다.

 

 

 

이름: 안토닌 푸치
생년월일: 1907년 5월 16일

포지션: 레프트윙, 스트라이커

A매치 기록: 61경기 35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슬라비아 프라하

체코슬로바키아 역대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으로 손꼽히며 쾌속의 드리블과 정교함과 강력함을 겸비한 뛰어난 슈팅 감각으로 팀의 주포로 활약했다.

SK 스미호프에서 데뷔해 슬라비아 프라하에서 전성기를 보낸 안토닌 푸치는 슬라비아 프라하의 전성기를 이끌며 체코슬로바키아 1부 리그 7회 우승 및 중앙 보헤미안 컵 6회 우승을 이뤄냈고 푸치 개인도 1927년과 1928-29 시즌에는 리그 득점왕을 수상했다.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에서도 네예들리와 함께 팀 공격의 에이스로 활약한 푸치는 중유랍컵에 4회 참가해 1936~1938년 대회에서 준우승을 이뤄냈고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우수한 활약을 펼치며 불리한 판정에도 불구하고 조국의 준우승을 이끌었고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조국을 8강에 올렸으나 브라질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름: 프란티셰크 스보보다
생년월일: 1906년 8월 5일

포지션: 포워드, 스트라이커

A매치 기록: 43경기 22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슬라비아 프라하

 

1920년대와 30년대에 걸쳐 활약했던 체코슬로바키아의 정상급 인사이드 라이트로 빼어난 테크닉을 바탕으로 환상적인 드리블을 선사했으며 로켓 슈팅이라 불리는 강력한 중거리 슈팅도 겸비했기에 종종 센터 포워드로도 기용되었다.

슬라비아 프라하에서 전성기를 누린 스보보다는 체코슬로바키아 리그 8회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1938년에는 미트로파 컵에서 당대 중유럽 최강팀인 페렌츠바로시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는데 공헌했다. 스보보다 개인도 1934-35 시즌 득점왕을 차지했다.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에서도 네예들리, 푸치와 함께 핵심 공격수로 평가받은 스보보다는 네 번의 중유럽컵과 1934 이탈리아 월드컵에 참가했는데 특히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8강 스위스전에서 동점골을 득점하는 등 팀의 결승 진출에 크게 공헌했다.

 

 

 

이름: 즈데넥 네호다
생년월일: 1952년 5월 9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포워드, 윙어, 공격형 미드필더

A매치 기록: 91경기 31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두클라 프라하

 

1970년대 중반~80년대 초반, 체코슬로바키아 무대를 평정한 다재다능한 공격 자원으로 높은 축구지능과 우수한 양발 슈팅으로 득점을 노리는 부분은 물론 뛰어난 드리블 실력과 상대의 허를 찌르는 킬패스로 동료들에게 찬스를 만드는 부분에도 능해 처진 공격수와 레프트윙, 그리고 공격형 미드필더까지도 소화할 수 있었다.

TJ 고트발도프에서 데뷔해 두클라 프라하로 이적해서 전성기를 누린 네호다는 체코슬로바키아 퍼스트 리그 3회 우승 및 체코슬로바키아 컵 2회 우승을 이뤄냈고 1970-71 시즌과 1978-79 시즌에는 리그 득점왕에 올랐고 1978년과 1979년에는 체코슬로바키아 올해의 선수상을 2년 연속으로 수상했다.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에서도 주축 공격수로 활약한 네호다는 UEFA 유로 1976에 주전으로 활약하며 조국의 우승에 큰 공을 세웠고 UEFA 유로 1980에서도 3위라는 성적을 기록했다. 그리고 1982 스페인 월드컵에도 참가했다.

 

 

 

이름: 얀 콜레르
생년월일: 1973년 3월 30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골키퍼

A매치 기록: 91경기 55골

신체조건: 키 202cm / 몸무게 100kg
주 소속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체코 분리 독립 이후 체코 축구사 최고의 공격수이자 키가 2m가 넘는 역대급 거구의 공격수로 압도적인 높이를 활용한 헤더로 골문을 폭격했고  타겟맨으로서 연계력도 준수해서 포스트플레이 상황에서 파트너 공격수들에게 좋은 찬스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게다가 도르트문트에서 뛰던 시절에는 주전 골키퍼 레만이 퇴장당하자 과거에 잠시 뛰었던 골키퍼로 활약하면서 바이에른 뮌헨의 공격수들을 상대로 연신 선방을 기록하는 진풍경을 보여주기도 했다.

스파르타 프라하에서 데뷔해 1994-95 시즌 감브리누스 리가 우승 및 1995-96 시즌 체코 컵 우승을 이뤄내며 세간의 주목을 받은 콜레르는 안더레흐트로 이적해서 주필러리가 2연패를 이뤄냈음은 물론 1998-99 시즌 리그 득점왕과 2000년 리그 MVP인 벨기에 골든슈를 수상하면서 빅리그인 분데스리가의 도르트문트로 이적했고 도르트문트에서도 2001-02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 및 UEFA컵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얀 콜러 개인도 키커 랑리스테 인터내셔널 클래스 4회 선정 및 2003년 발롱도르 22위에 올랐다.

벨기에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1999년 체코 올해의 선수에 선정된 콜레르는 대표팀에서도 A매치 통산 최다 득점자로 이름을 남겼는데 UEFA 유로 2000에서 메이저 무대에 데뷔해서 UEFA 유로 2004에서는 조국의 4강행을 이끌었으며 2006 독일 월드컵과 UEFA 유로 2008에도 참가했다.

 


체코 역대 올스타 1군 25인 팀

 

 


4. 리저브

 

 

이름: 얀 스테이스칼
생년월일: 1962년 1월 15일
포지션: 골키퍼
A매치 기록: 31경기 30실점 / 10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94cm
주 소속팀: 스파르타 프라하

 

1980~90년대 체코슬로바키아 최고의 골키퍼로 특유의 침착한 플레이로 인해 잉글랜드 시절 퀸즈 파크 레인저스의 팬들은 그를 두고 침착한 스테이스칼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냉정한 판단력과 안정적인 세이브로 유명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강호 스파르타 프라하에서 데뷔해 첫 전성기를 누린 스테이스칼은 체코슬로바키아 퍼스트 리그 5회 우승 및 체코슬로바키아컵 3회 우승을 이뤄냈고 1986-87 시즌에는 무려 19경기 클린시트를 기록하며 체코슬로바키아 리그 역대 단일 시즌 최다 클린시트 기록을 수립하기도 했다. 잉글랜드의 퀸즈 파크 레인저스에서도 뛰어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팬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슬라비아 프라하로 돌아와서도 1995 시즌 감브리누스 리가 MVP 및 1995-96 시즌 감브리누스 리가 우승을 이뤄냈고 1996-97 시즌에는 체코 컵 우승을 이뤄냈다.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에서도 선배 루데크 미클로슈코와 치열한 주전경쟁을 펼친 스테이스칼은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조국의 8강행을 이끌었으나 체코 독립 이후에는 후배 파벨 스르니체크에게 밀렸다.

 

 

 

이름: 요제프 호바네츠
생년월일: 1960년 3월 7일
포지션: 리베로,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센터백
A매치 기록: 52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89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스파르타 프라하

 

1980년대 유럽 정상급 왼발잡이 리베로로 적극적인 공격가담과 정밀도 높은 롱패스를 바탕으로 팀 공격의 활로를 개척하는 부분에 능했고 큰 키에도 제공권 경합 능력이 좋지 못했던 대신 왼발의 커브가 날카로워 코너킥 전담 키커로 활약했다.

스파르타 프라하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누린 호바네츠는 체코슬로바키아 퍼스트 리그 6회 우승 및 분리 독립 이후까지 포함하면 정규리그 10회 우승을 이뤄냈고 체코슬로바키아컵 2회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1989년에는 잠시 PSV 에인트호번으로 이적해 로날드 쿠만을 대체하기도 했다.

1986년 체코슬로바키아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호바네츠는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 소속으로도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 참가해 조국의 8강행을 이뤄냈다.

 

 

 

이름: 안토닌 호예르
생년월일: 1894년 3월 31일
포지션: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A매치 기록: 35경기 3골
신체조건: 미상
주 소속팀: 스파르타 프라하

 

체코슬로바키아 축구 초창기에 활약했던 매우 강인했던 수비수로 막강한 완력에서 나오는 몸싸움과 강력한 태클로 상대 공격수를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제압했는데 심지어는 상대방을 실제로 걷어차버리기도 했던 터프한 선수였는데 이런 이미지와는 다르게 패싱력도 뛰어나 팀의 빌드업의 시작점 역할도 우수하게 수행했다.

페섹과 함께 스파르타 프라하의 초창기 전성기를 이끌며 자국 리그 7회 우승과 1927년 미트로파컵 우승을 이끈 호예르는 1920 앤트워프 올림픽과 1924 파리 올림픽에 주전으로 출전했으며 1927-28 시즌 중유럽컵에서도 체코슬로바키아를 대표해 출전했다.

 

 

 

이름: 얀 피알라
생년월일: 1956년 5월 19일
포지션: 센터백, 레프트백, 리베로
A매치 기록: 58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두클라 프라하

 

체코슬로바키아 축구사 최고의 왼발잡이 센터백 중 한 명으로 수비수 치고 힘이 약했지만 적절한 위치선정과 빠른 스피드, 그리고 명민한 두뇌로 이를 극복했는데 발이 빠르고 수비라인 지휘능력도 뛰어나 레프트백과 리베로도 소화할 수 있었고 레프트백으로 나설 때에는 자신의 공격 본능을 유감없이 뽐냈다.

두클라 프라하에서 데뷔해 10년간 머무르며 전성기를 누린 피알라는 체코슬로바키아 퍼스트 리그 3회 우승과 체코슬로바키아 컵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피알라 개인도 1981-82 시즌에 우수한 퍼포먼스로 체코슬로바키아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말년에는 프랑스의 르 아브르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한 피알라는 UEFA 유로 1980 3위를 기록하는데 큰 공을 세웠고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도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의 주축 수비수로 활약했다.

 

 

 

이름: 즈데넥 그리게라
생년월일: 1980년 5월 14일

포지션: 라이트백, 센터백

A매치 기록: 65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AFC 아약스

2000년대 유럽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공격적인 라이트백으로 날카로운 오버래핑으로 상대 수비를 견제하고 크로스를 공급하는 능력이 특히 뛰어났으며 보통 수비적으로 약점을 보이는 다른 공격형 라이트백들과는 다르게 센터백을 볼 수 있었을 정도로 수비력도 양호했다.

 

스파르타 프라하에서 데뷔해 감브리누스 리가 2연패를 이뤄낸 그리게라는 아약스로 이적해 2003-04 시즌 에레데비시 우승 및 KNVB컵 2연패를 이뤄냈다. 그리고 칼치오폴리로 강등되었다가 다시 세리에 A로 돌아온 유벤투스에 입단해 두 시즌간 주전으로 활약했고 말년에는 풀럼으로 이적했으나 가레스 베일의 태클로 인해 심각한 부상을 입어 은퇴했다.

 

체코 대표팀에서도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준 그리게라는 UEFA 유로 2004에 주전으로 출전해 팀의 준결승 진출에 공을 세웠고 2006 독일 월드컵과 UEFA 유로 2008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다. 이 시기의 체코의 주요 공격루트 중 하나는 그리게라의 크로스와 얀 콜러의 헤더를 노리는 플레이였다.

 

 

 

이름: 라데크 베이블
생년월일: 1972년 8월 29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A매치 기록: 58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체코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하나로 왕성한 활동량과 볼에 대한 강력한 집념으로 경기장 전역을 뛰어다니며 상대와 볼 경합을 하거나 아군 수비의 커버를 맡았는데 볼 다루는 기술 역시 뛰어나 팀의 후방에서 빌드업을 돕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슬라비아 프라하에서 데뷔해 1995-96 시즌 감브루니스 리가 우승을 이뤄내 주목받은 베이블은 라리가 디펜딩 챔피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합류했는데 두 번의 코파 델 레이 결승에 진출하는데 공을 세웠다. 그러나 팀이 강등되자 RC 랑스로 떠났고 오스트리아의 라피트 빈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분리 독립 이후 체코 대표팀에서도 오랫동안 주전으로 활약한 베이블은 UEFA 유로 1996에서도 조국의 준우승에 큰 공을 세웠고 1997 컨페드컵 3위 및 UEFA 유로 2000에도 참가했다. 2000년대 중반 체코 대표팀의 약진을 이끈 토마스 갈라세크가 그의 위상에 밀려 오랫동안 대표팀에서 백업 신세를 면치 못했을 정도로 체코에서 위상이 높았던 선수였다.

 

 

 

이름: 토마시 로시츠키
생년월일: 1980년 10월 4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라이트윙, 레프트윙, 중앙 미드필더

A매치 기록: 105경기 23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아스날 FC

 

한때는 체코 최고의 재능으로 평가받았고 그라운드의 모차르트라 불렸던 2000년대 정상급 플레이메이커로 뛰어난 전술안과 창의적인 패스를 활용한 우수한 플레이메이킹과 유려한 탈압박을 겸비했으며 전성기에는 강력한 왼발 슈팅으로도 유명했고 의외로 그 당시 공격형 미드필더들과는 다르게 거친 슬라이딩 태클을 자주 구사했지만 용맹한 성격을 몸이 따라주지 못해 부상을 자주 당하기도 했다.

 

스파르타 프라하에서 데뷔해 감브루니스 리가 2연패를 견인하며 전 유럽의 주목을 받았던 로시츠키는 바이에른 뮌헨 등 빅클럽의 제의를 거절하고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 입단해서 2000-01 시즌에 바이에른 뮌헨의 4연패를 저지하고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냈고 피레스의 대체자로 아스날로 이적해서도 세스크 파브레가스, 플라미니, 흘렙 등과 함께 세스갱이라는 조합으로 잉글랜드 무대를 폭격하는 등 경기장에 나올때는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본인이 부상을 자주 당했고 본인의 전성기에는 아스날도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해 백업으로 밀려났던 말년에서야 FA컵 우승을 경험했다.

 

체코 대표팀에서도 중용받았던 로시츠키는 약관의 나이에 스미체르를 밀어내고 UEFA 유로 2000에 주전으로 활약했고 유로 2004에서는 네드베드, 포보르스키, 갈라세크와 함께 중원을 조합해 팀의 준결승행을 이끌었다. 그리고 2006 독일 월드컵과 UEFA 유로 2012, 그리고 UEFA 유로 2016에 참가하며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다. 그를 지도했던 뱅거는 그의 재능에 대해  "그럼에도 로시츠키는 환상적이다. 그는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선수이다. 당신이 축구를 사랑한다면 로시츠키를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칭송했다.

 

 

 

이름: 이반 하셰크
생년월일: 1963년 9월 6일

포지션: 라이트윙,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라이트백

A매치 기록: 55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71cm / 몸무게 65kg

주 소속팀: 스파르타 프라하

 

강력한 리더십을 지닌 체코슬로바키아의 마지막 황제이자 오른쪽 측면의 모든 포지션에서 뛸 수 있는 유틸리티 자원으로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공수 양면에서 큰 영향력을 끼쳤으며 우수한 득점력과 뛰어난 수비력을 겸비했다.

 

스파르타 프라하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누린 하셰크는체코슬로바키아 퍼스트 리그 5회 우승을 이뤄냈고 체코슬로바키아 컵 3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1986-87 시즌부터 1988-89 시즌까지 리그 3연패를 기록하는 괴력을 선보이며 1987년과 1988년에 체코슬로바키아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와 일본의 산프레체 히로시마, 제프 유나이티드를 거쳐 스파르타 프라하로 다시 돌아와 1996-97 시즌 정규리그 우승컵을 추가하며 개인 통산 정규리그 6회 우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한 하셰트는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최전방의 토마스 스쿠라비와 함께 환상의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1962 칠레 월드컵 이후 28년 만에 월드컵 8강에 오르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름: 파트리크 베르게르
생년월일: 1973년 11월 10일
포지션: 레프트윙, 공격형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A매치 기록: 44경기 18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리버풀 FC

 

1990년대 유럽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정상급 레프트윙으로 빠른 스피드로 수비수를 벗겨내며 날카로운 왼발 크로스로 공격을 지원하는 능력은 물론 우수한 몸싸움 능력과 뛰어난 슈팅능력까지 겸비했다.

스파르타 프라하의 유스 출신이지만 라이벌인 슬라비아 프라하에서 데뷔한 이력이 있던 베르게르는 1995-96 시즌,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해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냈으나 포지션에 대한 불만으로 리버풀로 이적했고 리버풀에서도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였고 2000-01 시즌 FA컵과 풋볼 리그컵, 그리고 UEFA컵의 컵 트레블을 이뤄내기도 했다. 그리고 포츠머스와 아스톤 빌라, 스토크 시티에서 말년을 보내기도 했다.

체코슬로바키아 시절에 연령별 대표팀의 전설로 통하며 1990 UEFA U-16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유고슬라비아를 상대로 득점을 터트리며 우승을 이끌었던 베르게르는 체코슬로바키아 시절에 대표팀에 데뷔했고 분리 독립 이후에는 UEFA 유로 1996에서 네드베드, 포보르스키와 함께 2선에서 활약하며 조국의 결승 진출을 이뤄냈고 결승전에서도 페널티킥으로 선제골을 득점하는 등 우수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대회 이후 대표팀 감독과의 갈등으로 제외되었다가  UEFA 유로 2000에 다시 복귀했다가 2002년에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이름: 바츨라프 필라트
생년월일: 1888년 5월 6일
포지션: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스트라이커
A매치 기록: 4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6cm

주 소속팀: 스파르타 프라하

체코 축구 초창기를 빛낸 스타플레이어로 인사이드 포워드에서 주로 뛰며 창의적이면서도 정밀도 높은 패싱력을 바탕으로 한 플레이메이킹, 강력한 킥력을 바탕으로 한 중거리 슈팅에 모두 능해 팀의 공격라인 지휘 및 해결사 역할을 동시에 했다.

1910년부터 1923년까지 스파르타 프라하에 머문 필라트는 체코 축구 연맹 챔피언십 3회 우승 및 중부 보헤미안 리그에서도 1920년부터 1923년까지 4년 동안 전승 우승을 하는데 공헌하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 소속으로도 1920 앤트워프 올림픽에 참가한 필라트는 결승전 벨기에와의 경기에서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단체로 경기장을 떠나버렸기에 몰수패로 처리되어 메달을 목에 걸지는 못했다.

 

 

 

이름: 토마시 스쿠라비
생년월일: 1965년 9월 7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A매치 기록: 49경기 17골
신체조건: 키 193cm / 몸무게 90kg

주 소속팀: 제노아

 

전성기는 다소 짧았지만 1990년대 이탈리아 무대에서 세계 최고의 헤더 스페셜리스트로 이름을 날렸던 공격수로 압도적인 피지컬로 수많은 헤더를 성공시켰으며 머리뿐만 아니라 발리 슈팅과 바이시클 킥에도 능했다.

 

자국의 스파르타 프라하에서 첫 전성기를 누린 스쿠라비는 이반 하세크와 함께 팀의 체코슬로바키아 리그 5회 우승 및 체코슬로바키아 컵 3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1986-87 시즌부터 1988-89 시즌까지 리그 스리핏을 달성하는데 큰 공을 세웠고 세리에 A의 제노아에서도 우루과이의 카를로스 아길레라와 함께 공격 듀오를 결성해 1990-91 시즌 제노아를 세리에 A 4위로 올렸고 스쿠라비 개인도 다섯 시즌간 머물면서 총 네 시즌을 세리에 A 두 자릿수 득점을 터트렸다.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 소속으로도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준 스쿠라비는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 주전 공격수로 참가했는데 16강 코스타리카전에서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헤더로 해트트릭을 이뤄냈고 1990년 대회에서만 다섯 골을 득점해 팀의 28년 만에 8강에 진출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