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국대 올스타 짜보기/북유럽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토르난테 2025. 11. 4.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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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2025년 11월 2일 기준입니다.

 

기존에는 대표팀 활약에 가산점을 더 부여했지만 이 부분을 제외하고 다시 선정했습니다

 

그러나 감독은 스웨덴 대표팀 감독으로서의 활약을 기준으로 뒀습니다. 고로 외국인 감독이지만 스웨덴 대표팀의 강호화에 큰 공을 세운 잉글랜드 출신의 조지 레이너가 선정되었습니다.

 

최소한의 밸런스는 챙길 예정이며 더블 리베로를 내는 현상이나 스트라이커로만 세 명이 나서는 현상은 최대한 피할 예정입니다.

 

선수 사진은 에펨네이션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을 주로 활용했습니다.

 


1.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

 

별칭: 바이킹 군단, 블라굴트

월드컵: 출전 12회, 준우승 1회

유로: 출전 6회, 4강 1회

올림픽: 출전 10회, 금메달 1회

최다 출전 선수: 안데르스 스벤손, 148경기

최다 득점 선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62골

 


2. 베스트 일레븐

 

 

골키퍼

 

 

이름: 로니 헬스트룀
생년월일: 1949년 2월 21일
포지션: 골키퍼
A매치 기록: 77경기 81실점 / 28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92cm / 몸무게 84kg
주 소속팀: FC 카이저슬라우테른

1970년대 정상급 골키퍼이자 스웨덴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로 평가받았으며 안정적인 수비 조율 능력과 뛰어난 선방 능력을 바탕으로 당대 유럽 정상급 골키퍼로 명성을 날렸다.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 전성기를 누린 헬스트룀은 1975-76 시즌과 1980-81 시즌에는 붉은 악마 군단의 DFB포칼 준우승을 이뤄냈다. 분데스리가에서도 1978-79 시즌부터 1981-82 시즌까지 네 시즌 연속으로 팀을 리그 4위 안에 들며 팀 성적을 상위권으로 안착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다.

헬스트룀 개인도 1977-78 시즌에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팀원들 다수가 부진했음에도 군계일학의 활약을 보여주며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월드클래스 등급을 받았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오직 리그에서의 활약으로만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6위에 올랐다.

스웨덴 대표팀 소속으로도 세 번의 월드컵에 참가해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313분 무실점 행진을 달성하며 팀의 8강 2차 조별 리그 진출에 공을 세웠으며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격인 스웨덴 굴드볼렌을 2회 수상했음은 물론 은퇴한 뒤에는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센터백

 

 

이름: 글렌 히센
생년월일: 1959년 10월 30일
포지션: 센터백, 리베로
A매치 기록: 68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IFK 예테보리

1980년대 하반기에 전성기를 누린 당대 유럽 최고의 센터백 중 한 명으로 강력한 대인 수비 능력괴 세련된 수비 스킬을 앞세워 활약해 '인간 족쇄', '스웨덴 철벽' 등의 별명으로 불렸으며 고전적인 수비수 역할뿐만 아니라 리베로 역할도 곧잘 수행했다.

자국의 명문 예테보리에서 황금기를 누린 히센은 알스베스칸 3회 우승 및 UEFA컵 2회 우승을 이뤄내 전 유럽의 주목을 받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 퍼거슨이 저녁 식사에 초대하면서까지 영입을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리버풀로 이적했는데 리버풀에서도 20세기 마지막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피오렌티나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웨덴 대표팀의 암흑기에 활약했기에 1990 이탈리아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것 외에는 국제무대에 등장하지 못했던 히센은 메이저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음에도 스웨덴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로 평가받는데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인 스웨덴 굴드불렌을 2회 수상했고 1987년에는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은퇴한 뒤에는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센터백

 

 

이름: 뱅트 구스타프손
생년월일: 1928년 1월 13일
포지션: 센터백, 라이트백, 레프트백, 수비형 미드필더
A매치 기록: 57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아탈란타 BC

1940년대 후반부터 60년대 초반에 활약했던 수비수로 탁월한 수비라인 지휘 능력과 견고한 대인 수비 능력은 물론 2-3-5 시스템의 센터하프 출신답게 정교한 롱패스를 통한 빌드업에도 능했다.

IFK 노르셰핑에서 데뷔한 구스타프손은 8년간 활약하며 알스베스칸 3회 우승을 이뤄냈고 1953년에는 스웨덴 굴드불렌을 수상했고 아탈란타로 이적한 뒤에는 소속팀 전력의 한계로 우승 트로피를 수집하진 못했지만 당대 세리에 A 최고의 수비수로 이름을 날렸다.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핵심 수비수로 활약한 구스타프손은 1952 헬싱키 올림픽 동메달과 1958 스웨덴 월드컵 준우승을 이루는데 큰 공을 세웠고 상술한 활약을 인정받아 2021년에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라이트백

 

 

이름: 오르바르 베리마크
생년월일: 1930년 11월 16일
포지션: 라이트백, 센터백
A매치 기록: 94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외레브로 SK

북유럽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백으로 평가받는 선수로 견고한 대인 수비 능력과 한 박자 빠르게 들어오는 슬라이드 태클을 앞세워 팀의 오른쪽을 철통같이 지켜냈다.
 
외레브로 SK에서 전성기를 누린 베리마크는 비록 클럽에서 우승 트로피는 없지만 당대 리그에서 압도적인 존재라 대표팀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는데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 견고한 수비로 스웨덴 대표팀의 현재로선 유일한 월드컵 결승 진출을 이끌어내며 복수의 매체로부터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1958년에는 상술한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인 스웨덴 굴드불렌에 선정되었으며 2003년에는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레프트백

 

 

이름: 에릭 닐손
생년월일: 1916년 8월 6일
포지션: 레프트백, 센터백
A매치 기록: 57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84kg
주 소속팀: 말뫼 FF

1950년대 이전 북유럽 최고의 풀백으로 강력한 피지컬로 상대 공격수를 위협해 상대방은 에릭 닐손이 있으면 친선 경기를 하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을 정도로 신체 능력이 우수했으며 우수한 수비 포지셔닝과 훌륭한 전술안을 갖췄다.

선수생활을 모두 말뫼에서 보낸 원 클럽맨인 에릭 닐손은  2부 리그에 머물던 말뫼를 승격시켰고 이에 그치지 않고 알스베스칸 5회 우승을 이끌어낸 압도적인 활약상을 보여준 에릭 닐손은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14년간 활약했는데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팀의 막내로 출전했고 세계 대전 이후에 열린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팀의 주장으로 출전해 후자의 대회에서는 주장으로 팀의 3위를 이끌어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으며 1948 런던 올림픽에서는 그레놀리 삼총사의 뒤를 받혀주며 금메달을 획득했다.

상술한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인해 1950년에는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인 스웨덴 굴드불렌을 수상한 에릭 닐손은 상술한 활약을 인정받아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었다.

 

 

중앙 미드필더

 

 

이름: 보 라르손
생년월일: 1944년 5월 5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스트라이커
A매치 기록: 70경기 17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말뫼 FF

1960년대 하반기와 70년대 상반기에 이름을 날렸던 미드필더로 높은 전술안과 우수한 체력에서 나오는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경기장을 지배했으며 골 결정력도 출중해 가끔씩 스트라이커로 기용되기도 했다.

말뫼에서 공격수로 1965년 알스베스칸 우승을 이뤄냈고 1963년과 1965년 득점왕에 오르는 등 두각을 나타낸 라르손은 슈투트가르트로 이적해서는 중앙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바꿔 활약하며 1968-69 시즌 분데스리가 MVP에 올랐고  다시 말뫼로 돌아온 뒤에는 1970년대의 황금기를 이뤄내며 이전에 기록했던 우승컵을 포함해 알스베스칸 6회 우승 및 스웨덴컵 4회 우승을 이뤄냈다.

1965년과 1973년에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인 굴드불렌을 수상한 보 라르손은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1970 멕시코 월드컵부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까지 주전으로 활약했는데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주장 완장을 차고 바이킹 군단의 8강 2차 조별 리그 진출을 이뤄냈다. 보 라르손은 은퇴한 뒤에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중앙 미드필더

 

 

이름: 닐스 리드홀름
생년월일: 1922년 10월 8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포워드, 수비형 미드필더
A매치 기록: 24경기 12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AC 밀란

1950년대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창의적이면서도 우수한 축구 지능과 뛰어난 리더십, 그리고 유려한 볼 컨트롤 능력을 겸비했으며 정교한 패싱력과 넓은 시야를 지녔으며 2년간 패스미스를 하지 않다가 2년 만에 패스미스를 하자 관중들이 박수를 쳤다는 일화도 있다.

자국 리그의 IFK 노르셰핑에서 알스베스칸 2연패를 이뤄낸 리드홀름은 바이킹 군단의 일원으로 1948 런던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으나 이후 프로리그인 세리에 A의 AC 밀란으로 이적하면서 아마추어 선수만 대표팀에 뽑는다는 스웨덴 축구 협회의 방침으로 오랫동안 대표팀에 뽑히지 못하다가 1958 스웨덴 월드컵을 앞두고 이 룰이 해제되자 다시 복귀해 조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조국의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AC 밀란에서 활약하던 시절에는 세리에 A 4회 우승과 라틴 컵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57-58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결승 진출을 이뤄냈던 리드홀름은 1958년에 발롱도르 투표에서 8위를 차지했고 본 포지션이 아닌 라이트 하프 자리에서도 1958-59 시즌 코리에레 델로 스포르트의 세리에 A 랭킹에서 라이트 하프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은퇴한 뒤에는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과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에 모두 헌액되었다.

 

 

라이트윙

 

 

이름: 쿠르트 함린
생년월일: 1934년 11월 19일
포지션: 라이트윙, 레프트윙, 포워드
A매치 기록: 32경기 17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피오렌티나

줄리뉴, 가린샤와 함께 당대 최고의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평가받았던 선수로 새라고 불렸을 정도로 민첩한 몸놀림과 양발을 가리지 않는 강력한 대포알 슈팅으로 득점에도 능했던 윙어였다.

자국 리그 AIK 포트볼에서 데뷔해 유벤투스와 파도바를 거쳐 피오렌티나에서 전성기를 누린 함린은 비록 스쿠테토를 차지하진 못햇지만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 및 1960-61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 그리고 1966년의 미트로파 컵 우승에 공헌했으며 컵 위너스 컵 우승 당시에는 대회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음은 물론 구단 통산 최다 득점자로 이름을 날렸다. 그리고 말년에 이적한 AC 밀란에서는 로테이션 멤버로 활약하며 1967-68 시즌 세리에 A와 컵 위너스컵 더블 및 1968-69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냈다.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선보인 함린은 1958 스웨덴 월드컵에 참가해 4골을 기록하며 바이킹 군단의 결승 진출에 크게 공헌했으나 브라질 대표팀의 압도적인 퍼포먼스에 가려지기도 했다. 물론 그 대회에서의 활약 덕분에 발롱도르 투표에서 4위에 랭크되었다.

 

 

레프트윙

 

 

이름: 군나르 그렌
생년월일: 1920년 10월 31일
포지션: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스트라이커, 윙어
A매치 기록: 57경기 32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AC 밀란

193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 후반까지 세계 정상급 수준을 유지하며 롱런한 인사이드 포워드로 영리한 공간 활용 능력과 동료 활용 능력은 물론 우수한 판단력으로 최적의 위치로 패스를 찔러줬으며 득점력도 훌륭했으며 특히 높은 축구 지능으로 유명해 교수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1936-37 시즌 가르다 BK에서 데뷔해 예테보리로 이적하며 1941-42 시즌 스웨덴 알스베스칸 우승을 이뤄낸 군나르 그렌은 1946-47 시즌에는 군나르 노르달을 제치고 정규리그 득점왕에 오른 그렌은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군나르 노르달, 닐스 리드홀름과 함께 그레노리 트리오를 구축해 대한민국을 12-0으로 대파했고 덴마크와 유고슬라비아마저 연파해 1948 런던 올림픽 축구종목에서 우승을 차지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런던 올림픽이 끝나고 세리에 A의 AC 밀란으로 노르달, 리드홀름과 함께 이적해 활약했는데 1950-51 시즌 세리에 A 우승 및 라틴컵 우승을 이뤄냈고 피오렌티나와 제노아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프로선수였기에 이탈리아에 있는 동안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의 규정에 의해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으나 1958 스웨덴 월드컵을 앞두고 리드홀름, 스코그룬트 등 해외파들과 함께 대표팀에 복귀해 스웨덴의 결승 진출에 큰 공을 세웠다.
 

 

세컨드 포워드

 

 

이름: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생년월일: 1981년 10월 3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포워드
A매치 기록: 122경기 62골
신체조건: 키 195cm / 몸무게 95kg
주 소속팀: 파리 생제르맹

2000년대와 2010년대 세리에와 리그앙을 정복한 스트라이커로 강력한 몸싸움 능력과 부드러운 드리블과 유려한 볼 컨트롤을 모두 겸비했으며 직접 득점하는 능력은 물론 창의적인 패스로 찬스를 만드는 부분에서도 능했으며 2010-11 시즌 AC 밀란 이적 이후에는 약점으로 지적받던 제공권도 극복했다.

15년 넘게 월드클래스 레벨의 선수로 평가받았던 즐라탄은 인테르와 AC 밀란, 유벤투스, 파리 생제르맹을 포함해 여러 클럽을 돌며 모두 대단한 성과를 냈는데 아약스에서 에레데비시 우승 2회, 인테르와 밀란에서 세리에 A 도합 5회 우승을 이뤄냈고 파리 생제르맹에서는 리그앙 4연패를 이뤄내며 파리 생제르맹이 리그앙의 패자로 군림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클럽에서의 개인상 이력도 훌륭한 즐라탄은 이탈리아 무대에서는 세리에 A 올해의 외국인 선수 5회 수상 및 세리에 A 올해의 선수 3회 수상을 수상했으며 세리에 A 득점왕과 올해의 팀에도 2회 선정되었고 리그앙에서도 리그앙 올해의 팀 4회 선정, 리그앙 올해의 선수와 득점왕 각각 3회 수상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유럽 무대에서도 UEFA 올해의 팀과 ESM 올해의 팀에 각각 4회 선정:되었으며 2012-13 UEFA 챔피언스리그 도움왕과 2013-14 UEFA 챔피언스리그 올해의 스쿼드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음은 물론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서도 10회 선정되어 2013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 4위에 올랐다.

스웨덴 올해의 선수 12회 수상, 발롱도르 10위 안에 여섯 번이나 선정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빅리그에서 12회나 우승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르게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와 국가대항전에서는 다소 부진한 탓에 가진 어빌리티에 비해 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부분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스트라이커

 

 

이름: 군나르 노르달
생년월일: 1921년 10월 19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A매치 기록: 33경기 43골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90kg
주 소속팀: AC 밀란

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 초반 최고의 중앙 공격수로 평가받았던 188cm에 90kg에 달하는 엄청난 피지컬에서 나오는 강력한 몸싸움 능력과 벼락같은 슈팅력으로 상대 골키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스웨덴 시절 IFK 노르셰핑에서 알스베스칸 4연패를 이뤄냈고 알스베스칸 득점왕을 4회 수상한 노르달은 스웨덴 대표팀 소속으로 1948 런던 올림픽에 참가해 그레노리 트리오의 중심으로 활약하며 금메달을 획득하는데 큰 공을 새웠다.

1948 런던 올림픽 직후 함께 금메달을 목에 건 동료들인 리드홀름, 그렌과 함께 AC 밀란으로 이적한 노르달은 이탈리아 무대를 폭격하며 세리에 A 2회 우승과 라틴컵 2회 우승을 이뤄냈고 노르달 개인은 세리에 A 득점왕 5회 수상을 기록했다. 그러나 밀란으로 이적해 프로선수가 된 노르달은 아마추어들만 대표팀으로 뽑는 정책으로 인해 1950년대에는 스웨덴 대표팀으로 활약하지 못하는 비극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40년대의 업적으로만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노르달은 여러 대기록을 남겼는데 AC 밀란 구단 통산 최다 득점자, 세리에 A 외국인 통산 최다 득점자 및 세리에 A 최다 해트트릭을 기록했고 AC 밀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감독

 

 

이름: 조지 레이너
생년월일: 1948년 11월 9일
국적: 잉글랜드
부임기간: 1946~1958, 1961

 

'스웨덴 축구의 아버지'

 

스웨덴 축구의 전성시대를 이끈 잉글랜드인 명장으로서 스웨덴의 여러 클럽의 감독으로 재직하는 동안 대표팀 감독을 겸직하며 스웨덴에게 선진 축구인 잉글랜드 축구의 전략전술을 가르친 스웨덴 축구 근대화의 주역이었다.

냉철한 두뇌와 열정적인 태도를 겸비한 레이너는 바이킹 군단을 이끌며 1948 런던 올림픽 금메달과 1950 브라질 월드컵 3위라는 성적을 이뤄냈으나 이후 핵심 선수들이 프로 선수로 분류되어 대표팀에 뽑히지 못하자 1954 스위스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탈락했으며 이후 1956년에 대표팀에 복귀하는 조건으로 프로 선수들도 대표팀에 기용할 수 있게 규정을 개정할 수 있게 요구해 이를 관철시켰으며 이후 화려한 선수단을 구성해 조국에서 열리는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 결승 진출까지 이끌었다.

 


베스트 일레븐

 

 


3. 서브 14인 포함 1군 스쿼드

 

 

이름: 토마스 라벨리
생년월일: 1959년 8월 13일
포지션: 골키퍼
A매치 기록: 143경기 133실점 / 58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IFK 예테보리

1980년대와 90년대에 활약했던 당대 유럽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화려하진 않았지만 우수한 위치선정과 신속정확한 판단력으로 안정적으로 골문을 지켰으며 특히 예측력이 뛰어나 페널티킥 선방에 능했다.

외스테르스와 예테보리에서 전성기를 누린 라벨리는 전자의 구단에서는 알스베스칸 3회 우승, 후자의 구단에서는 6회 우승을 이뤄내며 개인 통산 알스베스칸 9회 우승을 기록했고 1981년에는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격인 스웨덴 굴드불렌을 받았으며 스웨덴 올해의 골키퍼에도 2회 선정되었다.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라벨리는 조국에서 열린 UEFA 유로 1992에서 조국을 준결승에 올렸고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루마니아와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 단 페트레스쿠와 미오드라그 벨로데디치의 킥을 막아내며 조국을 준결승에 올린 활약은 백미였다. 이 대회의 활약을 바탕으로 1994년에는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 선정 세계 최고의 골키퍼에서 2위에 올랐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7위에 올랐다.

 

 

 

이름: 칼레 스벤손
생년월일: 1925년 11월 11일
포지션: 골키퍼
A매치 기록: 73경기 116실점 / 16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헬싱보리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바이킹 군단의 영광을 이끌었던 골키퍼로 강렬한 카리스마로 수비라인을 지휘했으며 적절한 위치를 선점했으며 재빠른 반사신경에서 나오는 슈퍼세이브를 보여줬다.

헬싱보리에서 데뷔해 선수생활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낸 스벤손은 메이저 트로피를 들어올리지 못했고 리그 준우승 2회에 머물렀음에도 리그에서 가장 우수한 골키퍼로 평가받았고 축구경기가 없는 날에는 소방관으로 일하면서도 훌륭한 기량을 유지하며 팬들의 추앙을 받아 1999년에 헬싱보리의 홈구장에 동상이 세워지기도 했다.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핵심으로 활약한 스벤손은 1948 런던 올림픽에서는 백업으로 우승을 경험했고 그레놀리 삼총사가 이탈리아로 떠나 프로 무대에 데뷔하며 국가대표팀 자격을 상실했을때 린드베리를 밀어내고 주전으로 도약해 1950 브라질 월드컵 3위, 1952 헬싱키 올림픽 동메달 및 1958 스웨덴 월드컵 준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우수한 퍼포먼스를 보인 덕에 브라질의 도시 히우지자네이루와 그의 이름 칼레를 합성한 히우칼레로 불리기도 했다.

1952년에 스웨덴 올림픽 대표팀의 동메달을 이끈 활약을 인정받아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인 스웨덴 굴드불렌을 받았던 칼레 스벤손은 상술한 활약들을 인정받아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름: 파트리크 안데르손
생년월일: 1971년 8월 18일
포지션: 센터백
A매치 기록: 96겨기 3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1990년대 하반기 분데스리가를 대표하던 스토퍼로 압도적인 제공권 장악 능력과 강력함과 세련됨을 겸비한 날카로운 태클 솜씨로 공격수를 잡아삼켰음은 물론 수비라인을 지휘하는 리더십과 경합을 최소화하면서도 상대가 슈팅 각도 자체를 만들지 못하게 하는 방식의 수비에도 능통했다.

분데스리가의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전성기를 누린 안데르손은 1994-95 시즌 DFB포칼 우승을 이끌어냈고 개인으로도 키커 올해의 팀 2회 선정 및 굴드블렌 수상을 이뤄냈으며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해서는 분데스리가 2연패 및 1999-2000 시즌에는 분데스리가와 DFB포칼 더블 우승을, 2000-01 시즌에는 분데스리가와 UEFA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을 이뤄내며 UEFA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고 굴드블렌을 재차 수상했다.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핵심으로 활약한 안데르손은 UEFA 유로 1992 준결승 진출을 시작으로 1994 미국월드컵에서도 조국이 3위에 오르는데 공헌했으며 UEFA 유로 2000과 2002 한일 월드컵에도 참가했으며 은퇴한 뒤에는 분데스리가와 바이킹 군단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름: 비에른 노르크드비스트
생년월일: 1942년 10월 6일
국적: 스웨덴
A매치 기록: 115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IFK 노르셰핑

1970년대 유럽 최고의 스토퍼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날렸던 선수로 키가 작은 편이었지만 강력한 완력과 우수한 심리전을 기반으로 한 대인 방어 능력과 선수단을 아우르는 리더십을 겸비했으며 강력한 킥력을 앞세워 전방으로 롱패스를 찔러주며 빌드업에도 관여했음은 물론 운동신경 자체가 뛰어난 편이라 축구 이외에도 아이스하키와 러시아식 하키인 밴디 종목에서도 종종 국가적 수준의 선수로 활약했다.

IFK 노르셰핑에서 데뷔해 초년에는 요한손과 호흡을 맞춘 노르크드비스트는 알스베스칸 2회 우승을 이뤄냈고 요한손이 은퇴하자 수비라인의 리더로 올라서며 1968 굴드불렌 수상 및 1968-69 시즌 스벤스카 쿠펜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네덜란드의 에인트호번에서도 상승세를 이어가며 1973-74 시즌 KNVB 베이커 우승 및 1974-75 시즌 에레데비시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말년에는 예테보리로 이적해 활약하며 팀을 상위권으로 올려 1980년대에 누린 전성기의 기반을 다지기도 했다.

스웨덴 대표탐에서도 최초로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을 정도로 중용받은 노르크드비스트는 1970 멕시코 월드컵부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까지 주장으로 활약했으며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주장 자리는 보 라르손에게 양보했지만 뛰어난 퍼포먼스를 펼치며 조국의 8강 2차 조별리그 진출에 공헌했고 은퇴한 뒤에는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름: 롤란드 닐손
생년월일: 1963년 11월 27일
포지션: 라이트백, 라이트윙
A매치 기록: 116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IFK 예테보리

1990년대 스웨덴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라이트백으로 지칠 줄 모르는 체력에서 나오는 적극적인 공수 가담 능력과 수비상황에서의 안정적인 수비력 및 매끄러운 볼 컨트롤과 공격 라인으로 단번에 연결하는 롱패스로 유명세를 탔고 철저한 자기관리를 자랑해 트래버 프랜시스로부터 '내가 본 최고의 프로페셔널'이라는 찬사를 듣기도 했다.

헬싱보리에서 데뷔해 예테보리에서 첫 전성기를 누린 닐손은 예테보리에서 알스베스칸 3회 우승 및 1986-87 시즌 UEFA컵 우승에 큰 공을 세웠고 잉글랜드의 셰필드 웬즈데이로 이적해서도 첫 시즌에 당한 강등의 아픔을 극복하고 한 시즌만에 다시 승격하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1990-91 시즌에는 퍼거슨 체제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꺾고 구단 역사상 최초로 풋볼 리그 컵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말년에는 헬싱보리와 코번트리 시티를 오가며 활약했는데 헬싱보리 시절인 1996년에는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인 굴드불렌을 수상하기도 했다.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14년간 활약하며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을정도로 롱런한 닐손은 1988 서울 올림픽과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 참가했고 UEFA 유로 1992와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조국의 준결승에 큰 공을 세웠으며 UEFA 유로 2000까지 주전으로 활약하며 롱런했다.

 

 

 

이름: 수네 안드레손
생년월일: 1921년 2월 22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A매치 기록: 28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AIK 포트볼

경기장에서 특유의 무표정으로 모나리자라 불렸던 1940년대 하반기~50년대 상반기 유럽 무대 최고 레벨의 하프백으로 광활한 시야를 바탕으로 장거리에서 상대 수비진을 무너트리고 득점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경이로운 패스와 상대 수비로부터 볼을 완벽하게 지켜내는 뛰어난 볼 컨트롤을 보였으며 느린 스피드에도 정확한 볼 터치를 바탕으로 훌륭한 드리블을 선보일 수 있었으며 종종 날리는 중거리 슈팅으로 경기 흐름을 바꾸기도 했다.

하가룬스 IS에서 데뷔해 AIK 포트볼에 입단해 첫 전성기를 누린 안데르손은 AIK 포트볼에서 스벤스카 쿠펜 2연패를 이뤄냈고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1948 런던 올림픽 금메달 및 1950 브라질 월드컵 결승리그 진출 및 3위에 공헌했는데 특히 올림픽과 월드컵에서는 전 경기에 출전했다. 그러나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AS 로마로 이적하자 스웨덴 축구 협회의 아마추어리즘 고수로 인해 더 이상 대표팀과 인연을 맺지 못했고 심지어는 로마에서도 첫 시즌 강등이라는 시련을 경험했다. 이후 스웨덴으로 돌아와서는 IFK 에스킬스투나의 1부 리그 승격을 이뤄내기도 했다.

 

 

 

이름: 글렌 스트룀베리
생년월일: 1960년 1월 5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A매치 기록: 52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91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아탈란타 BC

일명 금발의 바이킹이라 불렸던 1980년대 스웨덴과 이탈리아 무대에서 활약했던 당대 정상급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90분 내내 지치지 않고 왕성한 활동량으로 아군과 상대 진영을 가리지 않고 뛰어다녀 마라톤 선수라 불렸으며 거대한 피지컬로 경합 상황에서 상대를 압도하기도 했다.

예테보리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스트룀베리는 스웨덴 컵 3회 우승 및 1982년 알스베스칸과 UEFA컵 더블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결승전 2차전 함부르크 원정에서는 함부르크의 중원을 완벽하게 짓밟아 3-0 대승을 이뤄내며 우승에 큰 공을 세웠고 이후 벤피카에서는 프리메이라 리가 2연패를 이뤄냈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전성기는 아탈란타에서 활약하던 시절인데 1985년에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인 굴드불렌을 수상했고 1986-87 시즌 코파 이탈리아 준우승을 이뤄내며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평가받았을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스웨덴 대표팀에서는 1980년대 내내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했으나 암흑기라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다가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천신만고 끝에 본선에 진출해 활약했다. 당연하게도 은퇴한 뒤에는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름: 요나스 테른
생년월일: 1967년 3월 20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리베로
A매치 기록: 75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SL 벤피카

1980년대 하반기와 1990년대 상반기에 활약했던 중원 자원이자 리베로로 스피드가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우수한 볼 컨트롤 능력과 넓은 시야에서 나오는 양질의 패스로 팀의 빌드업을 주도했으며 기습적인 슈팅으로 득점하거나 분위기를 가져오는 부분에도 능했다.

말뫼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테른은 구단의 정규리그인 알스베스칸 5회 우승 및 스웨덴 챔피언 결정전 2회 우승을 이뤄냈고 벤피카에서는 전성기를 누리며 1989-90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 및 1990-91 시즌 프리메이라 리가 우승을 이뤄냈고 당대 최고의 리그였던 세리에 A의 나폴리와 AS 로마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1989년에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인 굴드불렌을 수상한 테른은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1990 이탈리아 월드컵을 시작으로 유로 1992와 1994 미국 월드컵에서 바이킹 군단의 주장으로서 준결승 진출에 큰 공을 세웠기에 은퇴한 이후에는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름: 슈테판 슈베르츠
생년월일: 1969년 4월 18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레프트백
A매치 기록: 69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SL 벤피카

1990년대 유럽 무대에서 다재다능한 선수로 이름을 날린 3선 미드필더 겸 사이드백으로 우수한 스테미너를 바탕으로 폭넓은 지역에서 공수 양면으로 뛰어난 영향력을 보여줬으며 강력한 중거리 슈팅은 물론 우수한 축구 지능을 앞세워 중앙 미드필더와 수비형 미드필더는 물론 레프트백과 레프트윙에서도 훌륭한 기량을 선보였다.

말뫼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알스베스칸 정규리그 2회 우승 및 1988년 챔피언 결정전 우승, 그리고 1989년 스벤스카 쿠펜 우승을 이뤄내며 주목받은 슈바르츠는 이후 벤피카에서는 프리메이라 리가 2회 우승, 아스날에서는 1994-95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준우승, 피오렌티나에서는 1995-96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 및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을 이뤄냈으며 발렌시아에서도 1998년 UEFA 인터토토컵 우승 및 1998-99 시즌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이뤄냈고 말년에는 잉글랜드의 선덜랜드에서 활약했다.

1998년 굴드불렌 수상자인 슈바르츠는 만 21세부터 대표팀에 소집되었는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을 시작으로 UEFA 유로 1992와 1994 미곡 월드컵에서 조국의 준결승 진출에 큰 공을 세웠다. 은퇴한 뒤인 2020년에는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었다.

 

 

 

이름: 토마스 브롤린
생년월일: 1969년 11월 29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라이트윙, 레프트윙, 포워드
A매치 기록: 47경기 27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파르마

전성기는 다소 짧았지만 전성기 시절에는 스웨덴의 마라도나라 불렸던 선수로 별명에 맞는 뛰어난 센스와 우수한 볼 컨트롤에서 나오는 현란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진을 쥐락펴락했다.

1984년 스웨덴의 네스비켄 IK에서 데뷔했고 이후 GIF 순스발, IFK 노르셰핑 등을 거치면서 명성을 쌓은 브롤린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세리에 A의 신흥강호 파르마 AC로 이적했는데 승격팀인 파르마를 단숨에 리그 6위에 올리며 UEFA컵에 진출시켰으며 1991-92 시즌에는 코파 이탈리아 결승전에서 유벤투스를 꺾고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1992-93 시즌 UEFA 컵 위너스컵에서는 로열 앤트워프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고 UEFA 슈퍼컵에서도 밀란 제너레이션이라 불리는 AC 밀란을 상대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94-05 시즌 이후로는 부진에 빠졌고 이후에는 다시 부활하지 못했다.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어린 시절부터 활약한 브롤린은 1990 이탈리아 월드컵을 시작으로 UEFA 유로 1992와 1994 미국 월드컵에서 팀을 준결승에 올려놓는데 공헌했는데 브롤린 개인은 유로에서는 공동 득점왕에 올랐고 미국 월드컵에서는 대회 올스타팀에 들었음은 물론 1994 미국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발롱도르 4위에 올랐다. 그리고 1990년과 1994년에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인 굴드볼렌을 수상한 브롤린은 비록 전성기는 짧지만 굵은 활약을 바탕으로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름: 프레디 융베리
생년월일: 1977년 4월 16일
국적: 스웨덴
A매치 기록: 75경기 14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아스날 FC

2000년대 상반기 스웨덴 축구를 대표했던 윙어로 적토마라 불렸을 정도로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진에 균열을 냈으며 우수한 지구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양 측면 모두에서 뛸 수 있었다.

할름스타드 BK에서 데뷔해 아스날에서 전성기를 보낸 융베리는 2003-04 시즌 무패 우승을 포함해 프리미어리그 2회 우승, FA컵 3회 우승, 그리고 2005-06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큰 공을 세웠고 융베리 개인도 2001-02 시즌에는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으며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2002년과 2006년에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인 굴드볼렌을 수상했다.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우수한 활약상을 이어나간 융베리는 두 번의 월드컵과 세 번의 유럽선수권대회에 출전해 두 번의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을 이뤄냈으며 UEFA 유로 2004에서는 8강의 성적을 냈으며 특히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잉글랜드와 한 조가 되었음에도 죽음의 조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름: 레나르트 스코그룬트

생년월일: 1929년 12월 24일
국적: 스웨덴
A매치 기록: 11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1950년대 인테르의 슈퍼스타로 스피드와 기본기를 겸비한 당대 최고의 왼발 드리블 돌파의 스페셜리스트로 금발을 한 선수가 엄청난 스피드로 경기장을 뛰어다는다고 흔들리는 옥수숫대라 불렸다.

자국의 함마르뷔 IF에서 데뷔해 AIK 포트볼의 알스베스칸 우승을 이뤄내 주목받았던 스코그룬트는 인테르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그레노리 삼총사를 앞세운 밀란과 데니쉬 삼총사를 앞세운 유벤투스를 밀어내고 네라주리 군단의 세리에 A 2연패를 이뤄냈다.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 조국을 결승 리그에 올리는 과정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준 스코그룬트는 인테르로 이적해 프로선수가 된 대가로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지만 규정이 바뀌어 1958 스웨덴 월드컵에는 대표선수로 함린, 시몬센, 리드홀름, 그렌과 같은 왕년의 세리에 A 스타들과 함께 공격 편대를 이루며 조국을 월드컵 결승까지 올려놓았으나 펠레의 맹활약으로 인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름: 스벤 리델
생년월일: 1905년 1월 14일
포지션: 포워드, 스트라이커
A매치 기록: 43경기 49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외리뤼테 IS

1920년대 스웨덴 축구를 이끌었던 스웨덴 축구 최초의 스타 중 한 명으로 주로 인사이드 포워드 포지션에서 활약했는데 화려한 볼 컨트롤을 활용한 교묘한 드리블과 강력한 슈팅력을 이용한 득점력으로 이름을 날리며 팬들로부터 트롤구벤, 즉 괴물이라 불렸다.

홀멘스에서 데뷔해 외리튀레에서 전성기를 누린 리델은 외데고르에서 알스베스칸 2회 우승을 이뤄냈고 스웨덴 대표팀에서는 1924 파리 올림픽에서 5골을 득점했으며 동메달 결정전 재경기에서 선제골을 득점하며 네덜란드를 꺾고 동메달을 획득하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1924-1928 노르딕 풋볼 챔피언십에서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스웨덴 대표팀 A매치 통산 득점 2위에 랭크된 리델은 A매치에서만 9회의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스웨덴 대표팀 최다 해트트릭 기록을 보유했고 사후에는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름: 오베 킨드발
생년월일: 1943년 5월 16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A매치 기록: 43경기 16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스웨덴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체격은 작았지만 민첩한 몸놀림과 따라잡기 어려운 순간스피드를 바탕으로 신속하게 빈 공간으로 침투해 예측을 불허하는 오른발 슈팅으로 유명했고 유려한 볼 컨트롤과 패스센스를 바탕으로 공격형 미드필더나 처진 공격수에서도 훌륭한 역량을 발휘했다.

IFK 노르셰핑에서 데뷔해 알스베스칸 2연패를 이뤄내며 주목받은 킨드발은 페예노르트로 이적해서는 전성기를 누리며 에레데비시 2회 우승 및 1968-69 시즌에는 KNVB컵까지 우승해 더블을 이뤄냈고 유럽 무대에서도 인터토토컵 2회 우승을 시작으로 1969-70 시즌에는 하펠 체제에서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룩한 일등 공신이자 구단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추앙받았다.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한 킨드발 개인도 1966년 알스베스칸 득점왕 미 굴드불렌을 수상했고 에레데비시 득점왕 3회 수상 및 1969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요한 크루이프와 함께 공동 4위에 올랐다. 그러나 월드컵에서의 활약은 다소 아쉬웠다.

 

 


스웨덴 역대 올스타 1군 25인 팀

 

 


4. 리저브

 

 

이름: 안드레아스 이삭손
생년월일: 1981년 10월 3일
포지션: 골키퍼
A매치 기록: 133경기 131실점 / 52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200cm / 몸무게 88kg
주 소속팀: PSV 에인트호번

21세기 스웨덴 최고의 골키퍼로 추앙받는 이삭손은 2m의 큰 키에서 나오는 공중볼 경합 능력이 우수했으며 안정적으로 골문을 지키는데 능했다.

트렐레보리에서 데뷔해 가능성을 인정받아 세리에 A의 강호 유벤투스에서 반데사르의 백업 역할을 수행했으나 한 경기도 나서지 못하자 자국리그의 유르고르덴으로 돌아와 알스베스칸 2연패를 이뤄내며 두각을 나타낸 이삭손은 스타드 렌과 PSV 에인트호번에서도 전성기를 누리며 스웨덴 올해의 골키퍼에 10회 선정되었다.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장기간 중용되며 A매치 통산 최다 출전 3위에 오른 이삭손은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망누스 헤드만의 백업으로 데뷔했고 UEFA 유로 2004에서부터 주전으로 도약하며 UEFA 유로 2004부터 네 대회 연속으로 주전으로 나섰고 2006 독일 월드컵에서도 조국의 16강행을 이뤄냈다.

 

 

 

이름: 오케 요한손
생년월일: 1928년 3월 19일
포지션: 센터백, 리베로
A매치 기록: 53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8cm
주 소속팀: IFK 노르셰핑

1950년대 스웨덴 무대 최고의 수비수이자 북유럽에서는 최초로 리베로 룰을 도전했던 선수 중 한 명으로 우수한 수비 조율 능력과 뛰어난 예측력으로 영리한 플레이를 하던 수비수였으며 예술적인 태클로 지상에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은 물론 공중볼 경합 승률도 좋았던 완벽한 수비수였기에 브라질의 전설적인 윙어 가린샤에 의해 "상대하기 가장 힘들었던 선수 중 한 명이었다."라고 평가받았다.

선수 생활의 전부를 노르셰핑에서 보낸 요한손은  알스베스칸 6회 우승을 이뤄냈고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했으나 정작 1958 스웨덴 월드컵을 앞두고 큰 부상을 당했는데 회복했음에도 컨디션 문제로 경기에 나서지 못했으며 그가 결승전에 나섰더라면 스웨덴이 브라질을 누르고 월드컵을 우승했을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었을 정도로 기량이 뛰어났던 선수다.

1957년에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인 스웨덴 굴드불렌을 수상한 요한손은 상술한 재능과 업적을 인정받아 2014년에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름: 올로프 멜베리
생년월일: 1977년 9월 3일
포지션: 센터백, 라이트백
A매치 기록: 117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84kg
주 소속팀: 아스톤 빌라

21세기 스웨덴 축구계 최고의 센터백으로 견고한 피지컬과 빠른 스피드를 겸비한 파이터형 수비수로 마치 바이킹 전사를 연상시키는 적극적인 볼 경합 능력은 물론 빠른 스피드와 성실한 공수가담 능력을 앞세워 라이트백으로 뛰기도 했다.

데게르포르스 IF에서 데뷔해 AIK에서 첫 리그 우승을 경험한 멜베리는 스페인 라리가의 라싱 데 산탄데르에서 한층 더 높은 수준의 선수로 성장했으며 아스톤 빌라로 이적해서는 전성기를 누리며 팀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중상위권으로 올렸으며 2001년에는 UEFA 인터토토컵 우승을 이뤄냈고 2003년에는 빌란스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스웨덴 올해의 선수에게 주는 골든볼렌을 수상하기도 했다. 말년에는 유벤투스를 거쳐 올림피아 코스에서 정규리그 2연패에 기여했다.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을 정도로 중용받은 멜베리는 UEFA 유로 2000을 시작으로 총 네 번의 유럽 선수권에 대표팀 주전 멤버로 출전했으며 특히 UEFA 유로 2004에서는 대회 올스타 스쿼드에 선정되었을 정도로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줬고 2002 한일 월드컵과 2006 독일 월드컵에서도 모두 조별리그를 돌파해 16강에 진출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름: 베르틸 노르달
생년월일: 1917년 7월 26일
포지션: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라이트백, 레프트백
A매치 기록: 15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83kg
주 소속팀: 아탈란타 BC

1940년대를 풍미한 센터 하프 겸 윙하프로 우수한 전술안과 수비지역과 중원에서의 적절한 위치 선정으로 어느 역할을 맡아도 완벽에 가깝게 소화했으며 강건한 스트랭스에서 나오는 파워풀한 태클과 몸싸움으로 상대의 센터포워드를 무력화시켰다.

데게르포르스 IF에서 데뷔한 노르달은 비록 우승컵을 들어올리진 못했지만 본인의 훌륭한 활약으로 인해 동생인 군나르 노르달 및 크누트 노르달과 함께 스웨덴 대표팀에 뽑혀서 활약했는데 스웨덴 대표팀의 전성기를 이끌며 1948 런던 올림픽 결승전에서 스체판 보벡을 완벽하게 막아내며 우승에 기여했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러나 런던 올림픽이 끝난 직후에는 이탈리아의 아탈란타로 이적해 대표팀 커리어가 끊겼는데 아탈란타에서 프로 선수로 활약하던 시절에도 팀 수비라인의 주축으로 활약했다가 말년에는 다시 고향팀 데레그포르스로 돌아왔다.

 

 

 

이름: 크누트 노르달
생년월일: 1920년 1월 13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센터백, 사이드백
A매치 기록: 26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IFK 노르셰핑

1940년대~50년대 초반에 명성을 날린 스웨덴의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주 포지션은 하프백이지만 센터하프와 양 풀백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는데 예술적인 슬라이딩 태클과 강력한 스트랭스를 앞세운 수비력과 넓은 커버범위, 그리고 숏패스와 롱패스를 가리지 않고 정확하게 앞선으로 배급했음은 물론 공격에 적극적으로 가담해 하프백치고는 훌륭한 득점력을 보였다.

유스 시절에는 회르네포르스에서 센터 포워드로 선수 커리어를 시작했으나 IFK 노르셰핑에서 데뷔해 하프백과 풀백에서 활약하며 알스베스칸 5회 우승과 스베스카 쿠펜 2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동생 군나르 노르달이 합류한 뒤에는 1944-45 시즌부터 1947-48 시즌까지 리그 4연패를 이뤄냈다. 그리고 1949년에는 굴드불렌을 수상하며 그레놀리 삼총사가 떠난 스웨덴 리그 최고의 선수로 군림하기도 했고 AS 로마에서도 수네 안드레손, 스티크 순드크비스트와 함께 또 다른 스벤스카 트로이카로 활약했지만 그들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로마는 세리에 B로 강등당했는데 팀에 남아 승격을 이뤄내고 다시 스웨덴으로 복귀했다.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형 베르티 노르달 및 동생 군나르 노르달과 함께 노르달 삼형제로서 활약하며 대표팀의 전성기를 이끌었는데 1948 런던 올림픽에서는 대한민국, 덴마크, 유고슬라비아를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결승리그를 통과해 3위에 올랐다. 여담으로 노르달 삼형제는 모두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인 굴드불렌을 수상한 이력이 있다.

 

 

 

이름: 킴 셸스트룀
생년월일: 1982년 8월 24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
A매치 기록: 131경기 16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올랭피크 리옹

21세기 스웨덴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우수한 스테미너와 정확한 왼발 슈팅 및 높은 축구지능을 바탕으로 딥 라잉 플레이메이커, 사이드 미드필더 및 트레콰르티스타 등 다양한 역할을 맡을 수 있었는데 특히 대표팀 훈련에서 골키퍼 안드레아스 이삭손을 부상당하게 했던 강력한 왼발 슈팅으로 명성을 떨쳤다.

BK 헤켄에서 데뷔해 팀의 알스베스칸 승격을 이뤄내며 주목받았던 셸스트룀은 유르고르덴에서 알스베스칸 2회 우승을 이뤄냈고 스타드 렌에서 프랑스 리그 적응을 마친 뒤에 올림피크 리옹에 합류하며 리그앙 2회 우승을 이뤄낸 셸스트룀은 특히 2007-08 시즌에는 PSG와의 쿠프 드 프랑스 결승전에서는 선발출전하며 팀의 승리에 일조하며 구단 역사상 첫 리그와 컵 더블을 이뤄내는데 공헌했음은 물론 2009-10 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첫 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진출을 이뤄냈고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시절에는 임대로 아스날에 합류해 2013-14 시즌 FA컵 우승을 경험하기도 했다.

2000년 스웨덴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했고 청소년 대표팀을 걸쳐 스웨덴 대표팀에 안착하며 A매치 통산 출전 3위에 랭크된 셸스트룀은 UEFA 유로 2004를 시작으로 네 번의 유럽선수권 대회에 출전했고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조국의 16강행에 공헌했다.

 

 

 

이름: 안데르스 스벤손
생년월일: 1976년 7월 17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A매치 기록: 148경기 21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IF 엘프스보리

2000년대 바이킹 군단을 이끌었던 중원 사령관으로 신체 능력은 평범했지만 드넓은 시야와 압도적인 왼발 킥력을 바탕으로 양질의 전진패스와 롱패스를 적재적소에 공급하며 팀의 중원에서 플레이메이킹을 담당했으며 대표팀에서든 클럽팀에서든 세트피스 전담 키커를 도맡았다.

엘프스보리에서 데뷔해 선수생활의 대부분을 보냈던 스벤손은 초년에는 리그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고 결국 잉글랜드의 사우스햄튼으로 이적해 전성기를 누리며 2002-03 시즌 FA컵 준우승을 이뤄냈다. 2005년 그가 팀을 떠나기 전에 회장까지 직접 나서서 재계약을 제시했지만, 스벤손은 친정팀 엘프스보리로 돌아가기 위해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고 결국 엘프스보리로 돌아가 알스베스칸 2회 우승 및 스벤스카 쿠펜 2회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2011년에는 겨울에 리그진행을 하지 않는 팀들끼리 우승을 겨루는 대회인 애슐레틱 컵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스웨덴 대표팀 A매치 통산 최다 출전자인 스벤손은 2002 한일 월드컵에서 국제무대에 데뷔해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환상적인 프리킥 골을 득점해 바이킹 군단이 조별리그를 1위로 통과하는데 기여했고 UEFA 유로 2004에서도 조국의 8강행에 큰 공을 세웠음은 물론 2006 독일 월드컵에서도 16강 진출을 이뤄냈다. 그리고 UEFA 유로 2008과 유로 2012에서도 주축으로 참가하며 백전노장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름: 로저 마그누손
생년월일: 1945년 3월 20일
포지션: 라이트윙
A매치 기록: 14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올림피크 마르세유

1960년대 후반~70년대 초반에 프랑스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윙포워드로 화려한 개인기를 활용한 드리블로 사이드를 돌파하는 부분에 장기를 드러내며 세간으로부터 스웨덴의 가린샤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오트비다베리 FF에서 데뷔해 쾰른과 유벤투스를 거쳐 마르세유에서 대성한 마그누손은 유고슬라비아의 공격수 요시프 스코블라르와 함께 콤비 플레이를 선보이며 1968-69 시즌 쿠프 드 프랑스 우승을 시작으로 리그앙 2연패 및 1971-72 시즌 도메스틱 더블을 이뤄냈는데 특히 1971-72 시즌 쿠프 드 프랑스 결승에서는 두 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상술한 활약을 바탕으로 마그누손은 1969년 프랑스 올해의 외국인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은퇴한 이후인 2012년에는 프랑스 풋볼이 선정한 리그앙 역대 최고의 용병 12위에 선정되었고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었다.

 

 

 

이름: 롤란트 산베리
생년월일: 1946년 12월 16일
포지션: 레프트윙, 라이트윙, 포워드, 스트라이커
A매치 기록: 37경기 15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카이저슬라우테른

1970년대 서독 분데스리가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엄청난 스피드를 활용하는 전력질주에 이은 크로스로 팀 공격의 포문을 열었으며 직접 득점하는 부분에도 능하고 양발을 모두 능숙하게 활용했기에 왼쪽과 오른쪽을 모두 소화했음은 물론 스트라이커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자국 클럽 오트비다베리 소속으로 코르스텐손과 호흡을 맞춰 알스베스칸 2회 우승 및 득점왕 2회 수상이라는 업적을 이뤄낸 산베리는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붉은 악마 군단의 1975-76 시즌 DFB포칼 준우승을 이뤄냈고 산베리 개인도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을 5회 받았으며 그중 세 번은 외국인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스웨덴 대표팀 소속으로도 1974 서독 월드컵에 참가해 코르스텐손과 함께 상대 측면에서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스웨덴의 8강 2차 조별리그 진출을 이끌었다.

 

 

 

이름: 헨리 카를손
생년월일: 1917년 10월 29일

포지션: 포워드,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A매치 기록: 26경기 17골
신체조건: 키 163cm / 몸무게 65kg
주 소속팀: AIK 포트볼

1940년대 유럽무대 정상급 인사이드 포워드 중 한 명으로 민첩한 몸놀림과 엄청난 가속력을 앞세운 빠른 스피드, 그리고 부드러우면서도 섬세한 볼 터치를 주 무기로 삼았으며 키는 작았지만 무게중심이 낮고 레슬링을 훈련했기에 경합 능력에 매우 뛰어나 헤더에서도 강점을 보였음은 물론 드넓은 시야와 정확한 패싱력 및 우수한 판단력으로 정확하게 찔러주는 패스로 득점 찬스를 만드는 부분에서도 뛰어났다.

AIK 포트볼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보낸 카를손은 비록 리그 우승을 하지는 못했지만 군나르 노르달, 닐스 리드홀름, 군나르 그렌 다음가는 공격수로 명성을 떨쳤고 이 덕분에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이들과 호흡을 맞춰 1948 런던 올림픽에서 강호 오스트리아를 3-0으로 제압한 것을 시작으로 대한민국을 12-0으로 격파한 경기에서는 해트트릭을 기록했으며 라이벌 덴마크를 상대로도 그레놀리 삼총사의 침묵에도 멀티골을 기록했다. 그리고 결승전에서도 유고슬라비아를 3-1로 꺾고 우승을 차지하는데 기여했다.

그러나 칼손도 스타드 프랑세로 떠나면서 프로 선수가 되며 대표팀에 더이상 소집되지 못했는데 말년에는 엘레니오 에레라 체제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보내면서 라르비 벤바레크와 함께 팀의 공격을 지휘하며 라리가 2연패 및 1950-51 시즌에는 라리가에 이어 코파 델 레이까지 우승하며 더블을 이뤄냈다. 제2차 세계대전만 아니었어도 더 나은 커리어를 기록할 수 있는 인물이었고 실제로 세계대전이 끝난 말년에도 대단한 커리어를 이뤄냈기에 사후에는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름: 헨리크 라르손
생년월일: 1971년 9월 20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A매치 기록: 106경기 37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셀틱 FC

1990년대 하반기와 2000년대 상반기에 스웨덴 축구를 이끌었던 공격수로 키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예술적인 볼 컨트롤과 탄탄한 바디 밸런스, 그리고 영리하게 빈 공간으로 파고들어 냉정하게 득점했으며 정신력도 우수해 상대적으로 기복도 적었다.

페예노르트와 셀틱에서 전성기를 누린 라르손은 특히 셀틱에서는 스코틀랜드 프리미어 리그 4회 우승과 4번의 컵 대회 우승 및 2002-03 시즌 UEFA컵 준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라르손 개인도 리그 득점왕을 5회 차지했고 그중 2000-01 시즌에는 유러피언 골든슈에 올랐으며 1999년과 2001년에는 SFWA 올해의 선수와 SPFA 올해의 선수를 모두 석권하며 리그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기에 FIFA로부터 작은 연못에 사는 큰 물고기라 불렀을 정도로 압도적인 활약을 펼쳤다.

노장의 반열에 든 뒤에 간 빅클럽에서의 활약상도 나쁘진 않았는데 FC 바르셀로나에서는 에투의 백업 스트라이커 역할을 맡으며 라리가 2연패 및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내는데 일조했으며 고국으로 복귀했다가 잠시 이적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도 2006-07 시즌에 세 달 동안 활약하며 중요한 순간 골을 넣어주고 경기의 흐름을 바꿔주는 움직임으로 맨유의 프리미어 리그 우승에 적잖이 기여하며 임대의 신화를 썼다.

1998년과 2004년에 두 번의 굴드불렌을 수상한 라르손은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오랜 기간 주포로 활약했는데 1994 미국 월드컵 3,4위 결정전에서 데뷔해 불가리아를 상대로 득점하며 스웨덴의 3위를 이끌었고 이후에도 두 번의 월드컵과 세 번의 유럽 선수권 대회에 출전해 주전으로 활약해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나이지리아 전에서 멀티골을 득점하며 죽음의 F조에서 1위로 올라서는데 공을 세웠고 UEFA 유로 2004에서는 바이킹 군단을 8강에 올려놓았다. 은퇴한 이후에는 스코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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