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Top 21~30

국가의 영웅들/영연방

영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Top 21~30

토르난테 2025. 10. 20. 15:41
728x90
728x90

*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중 1개 이상의 국가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RSSSF와 트렌스퍼마크트이며 둘의 기록이 상충할 경우에는 전자를 우선적으로 따릅니다.
*기록일은 2025년 10월 19일 기준입니다.

 


30위 제이미 바디

 


생년월일: 1987년 1월 11일
국적: 잉글랜드
A매치 기록: 26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레스터 시티

29세의 나이에 빛을 본 대기만성형 공격수로 다소 부족한 자기관리 능력에도 최고 속력 35.44km/h에 달하는 무시무시한 주력과 영리한 오프 더 볼을 앞세운 라인 브레이킹으로 주목받았으며 상대 수비수와의 눈치 싸움에 능하고 공이 없을 때의 움직임이 영리했는데 동료들에게 패스로 지원하는 능력도 부족하지 않았다.

레스터 시티에서 전성기를 본 구단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 중 하나인 바디는 2015-16 시즌에 아무도 예상치 못한 레스터 시티의 우승을 이끌었는데 그 과정에서 리그 36경기에 출전해 24골을 터트렸고 FWA 올해의 선수와 프리미어 리그 올해의 선수 선정 및 PFA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2019-20 시즌에는 23골을 득점하며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 및 PFA 올해의 팀에 재차 선정되며 프리미어 리그 역대 최고령 득점왕이 되었다.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는 케인에 밀려 주전으로 활약하지 못한 바디는 UEFA 유로 2016과 2018 러시아 월드컵에 참가해 후자의 대회에서는 준결승 진출을 경험했다.

 

29위 이안 라이트

 


생년월일: 1963년 11월 3일
국적: 잉글랜드
A매치 기록: 33경기 9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아스날 FC

1990년대 잉글랜드 무대 톱클래스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엄청난 스피드와 유려한 드리블을 활용해 수비라인을 돌파해 배후로 침투하는데 능했으며 우수한 슈팅 스킬을 겸비해 상대 배후에서 많은 골을 득점했다.

크리스탈 팰리스에서 데뷔해 두각을 나타낸 이안 라이트는 아스날로 이적해 전성기를 누렸는데 1993-94 시즌 컵 위너스컵에서 아스날 최초의 UEFA 주관 대회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고 1997-98 시즌 프리미어리그와 FA컵 더블 우승을 이뤄냈으며 래이트 개인으로도 PFA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되었고 1991-92 시즌에는 마지막 풋볼 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는 시어러의 아성에 밀려 중용받지 못한 라이트는  1991-92 시즌에서 29골을 기록하며 골든 부츠를 수상했음에도 UEFA 유로 1992 로스터에 포함되지 못했고 UEFA 유로 1996에서는 서브로 대기했고 1998 프랑스 월드컵은 부상을 당해 불참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UEFA 유로 2000에 백업으로 참가했다가 은퇴했다.

 

28위 앤디 콜

 


생년월일: 1971년 10월 15일
국적: 잉글랜드
A매치 기록: 15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90년대 프리미어리그에서 이름을 날렸던 스트라이커로 매우 빠른 스피드를 바탕으로 상대 수비진 배후에 적절한 위치로 침투해 정밀도 높은 슈팅으로 득점했으며 득점뿐만이 아니라 연계플레이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아스날에서 데뷔했으나 하부리그의 브리스톨 시티로 떠나서 두각을 나타내 프리미어 리그의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케빈 키건 감독이 그를 영입했는데 백전노장 비어슬리와 함께 투톱 조합을 이뤄내며 1993-94 시즌 공식전 45경기 41골을 기록했으며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34골을 기록해 득점왕을 차지했음은 물론 PFA 올해의 영 플레이어 및 뉴캐슬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다.

아스날과 뉴캐슬을 거쳐 퍼거슨 체제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해 전성기를 누린 앤디 콜은 드와이트 요크와 함께 검은 쌍두마차라 불리는 공격 조합으로 명성을 날리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5회 우승을 이뤄냈고 특히 1998-99 시즌에는 FA컵과 UEFA 챔피언스리그도 석권하며 트레블을 이뤄내며 총 아홉 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지만 대표팀 주전과는 인연이 멀었다.

 

27위 믹 새넌

 


생년월일: 1948년 11월 28일
국적: 잉글랜드
A매치 기록: 46경기 21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사우스햄튼

1970년대 잉글랜드 무대에서 명성을 날린 스타플레이어로 경이로운 슈팅스킬과 우수한 순발력, 그리고 뛰어난 기동력과 공격지역 전 포지션을 소화하는 멀티성까지 갖춰 상대의 골문을 폭격했는데 득점한 뒤에 팔을 360도로 여러 번 휘젓는 풍차 세레머니로도 유명했다.

사우스햄튼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 섀넌은 15년동안 공식전 607경기에 출전해 228골을 득점했음은 물론 1973-74 시즌 PFA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고 1975-76 시즌에는 팀의 FA컵 우승을 이뤄냈다. 맨체스터 시티와 노리치 시티에서도 우수한 활약을 하며 1984-85 시즌 리그컵 우승을 이뤄냈기에 노리치 시티 명예의 전당에 선정되기도 했다.

삼사자 군단에서도 5년 동안 주전으로 활약한 섀넌은 46경기에 출전해 21골을 기록하며 주축선수로 평가받았으나 그가 주전으로 활약하던 시절 잉글랜드는 여러 번 지역예선을 탈락했기에 메이저 대회에서는 볼 수 없었다.

 

26위 앨런 클라크

 


생년월일: 1946년 7월 31일
국적: 잉글랜드
A매치 기록: 19경기 10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리즈 유나이티드

1970년대에 잉글랜드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공격수로 골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맡는다고 평가받아 냄새 맡는 사람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골 감각뿐만이 아니라 발밑 기술이 좋고 드리블 돌파에도 능했다.

리즈 유나이티드가 전성기를 맞이했던 리즈시절을 이끈 클라크는 1971-72 시즌 FA컵 우승과 1973-74 시즌에 리즈의 리그 우승을 이뤄내며 PFA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고 1974-75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결승에 진출했으나 바이에른 뮌헨에 막히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는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 제프 허스트와 프랜시스 리의 서브 역할을 맡았다.

 

25위 앨런 길친

 

 

생년월일: 1938년 10월 22일
국적: 스코틀랜드
A매치 기록: 22경기 12골
신체조건: 키 182cm
주 소속팀: 토트넘 핫스퍼
 
1960년대 잉글랜드 풋볼 리그 톱클래스 공격수로 우수한 포지선정과 뛰어난 점프력, 그리고 파워풀한 헤더로 공중볼에서 폭격하는 플레이와 포스트플레이에 능했던 정통파 타깃 스트라이커였다.

던디 유나이티드에서 데뷔한 길친은 1961-62 시즌 스코틀랜드 풋볼 리그 우승이라는 기적을 이뤄내 두각을 나타냈고 이듬해에는 팀을 유러피언 컵 4강에 보내며 8골을 득점해 득점 2위에 올랐다. 토트넘 핫스퍼로 이적해서도 그리브스와 'G-Men' 이라고 불렸던 공격 파트너십을 구축해서 1966-67 시즌 FA컵 우승 및 리그컵 우승, 그리고 1971-72 시즌 초대 UEFA컵 우승을 이뤄냈다.

스코틀랜드 대표팀에서도 중용받은 길친은 2009년에는 스코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과 던디 FC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2013년에는 토트넘 핫스퍼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4위 테디 셰링엄

 


생년월일: 1966년 4월 2일
국적: 잉글랜드
A매치 기록: 51경기 11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토트넘 핫스퍼

EPL 출범 직후 잉글랜드 무대에서 활약했던 전천후 공격수로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의 우수한 골 감각은 물론 우수한 볼 컨트롤과 상대 수비를 교란하는 드리블, 그리고 우수한 패싱력으로 찬스 메이킹에도 능해 공격형 미드필더나 처진 공격수로도 기용되었다.

밀월에서 데뷔한 셰링엄은 만년 하부리그에 머물던 밀월의 공격을 이끌어 1987-88 시즌 2부 리그 우승을 이뤄내며 1부 리그 승격을 이뤄냈고 노팅엄 포레스틀 거쳐 1992년에는 토트넘으로 이적했는데 프리미어리그 개막 시즌을 함께하며 개막 시즌 득점왕에 올랐으며 1994-95 시즌에는 토트넘 핫스퍼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뒤에는 슈퍼 서브로 활약한 셰링엄은 1998-99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동점골을 넣으며 캄프 누의 기적이라 불리는 역전극을 이뤄내며 트레블에 크게 기여했고 프리미어리그에서도 1998-99 시즌을 포함해 3년 연속으로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2000-01 시즌에는 PFA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으며 FWA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맨유를 떠난 뒤에도 노장임에도 토트넘과 웨스트햄에서 활약하기도 했던  셰링엄은 삼사자 군단에서는 시어러를 보좌하는 처진 공격수 역할을 주로 맡았는데 UEFA 유로 1996에서 준결승 진출을 이뤄냈고 1998 프랑스 월드컵과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원더보이 마이클 오언의 백업으로 참가했다.

 

23위 마크 헤이틀리

 


생년월일: 1961년 11월 7일
국적: 잉글랜드
A매치 기록: 32경기 9골
신체조건: 키 191cm / 몸무게 83kg
주 소속팀: 레인저스 FC

1980년대~90년대 초반 잉글랜드를 대표하던 장신 공격수로 큰 키와 강력한 몸싸움 능력을 바탕으로 포스트플레이를 잘 활용했으며 헤더로 무수히 많은 골을 득점했던 전통적인 유형의 타겟 스트라이커였다.

자국 리그의 코번트리 시티에서 데뷔해 이름을 날렸던 헤이틀리는 이탈리아의 AC 밀란으로 이적해서는 반 바스텐 영입 이전에 활약하며 암흑기를 지탱하며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3회 선정되어 1987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14위에 올랐고 삼사자 군단에서는 1986 멕시코 월드컵과 UEFA 유로 1988에서 리네커와 호흡을 맞췄는데 전자의 대회에서는 조국의 8강행을 이끌었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 프랑스 리그의 모나코로 떠난 헤이틀리는 자국의 플레이메이커 호들과 함께 1987-88 시즌 리그앙 우승을 이뤄냈고 스코틀랜드의 레인저스에서는 제2의 전성기를 맞아 스코티시 프리미어리그 6회 우승을 포함해 크고 작은 대회에서 11회의 우승을 이뤄냈으며 1992-93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4강 진출을 이뤄냈으며 1993-94 시즌에서는 SPFA 올해의 선수와 SFW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22위 프랜시스 리

 


생년월일: 1944년 4월 29일
국적: 잉글랜드
A매치 기록: 27경기 10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

1970년대 잉글랜드 무대를 풍미한 공격수로 중앙 공격수와 측면 공격수를 모두 소화할 수 있었는데 빠른 스피드와 우수한 컷인 플레이를 활용한 공간 침투 능력과 페널티 박스 안에서 정교한 피니시를 보여줬던 선수였으며 특히 페널티 킥을 얻어내는 능력과 페널티 킥을 차는 능력이 모두 뛰어나서 '페널티킥 얻는 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맨체스터 시티에서  전성기를 누린 프랜시스 리는 풋볼 리그 우승과 FA컵, 리그 컵을 모두 석권하고 1969-70 시즌 컵 위너스 컵에서도 우승을 사실상 확정 짓는 페널티 킥을 성공시키며 우승했다. 리 개인도 1971-72 시즌 풋볼 리그 1부 득점왕을 수상했으며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도 3회 선정되어 1969년 투표에서는 통산 최고 순위인 13위에 랭크되었다. 맨체스터 시티 이외에도 볼턴 원더러스와 더비 카운티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는데 클러프 체제의 더비 카운티가 풋볼 리그 1부 우승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큰 공을 세웠다.

삼사자 군단에서는 1970 멕시코 월드컵에 참가해 주전으로 활약한 프란시스 리는 조국의 8강행에 공헌했으나 조별리그에서는 그 유명한 최전성기 브라질에 밀리며 2위로 밀려났고 8강에서는 베켄바우어와 게르트 뮐러를 앞세운 서독에게 밀려났다.

 

21위 바비 스미스

 


생년월일: 1933년 2월 22일
국적: 잉글랜드
A매치 기록: 15경기 13골
신체조건: 키 175cm
주 소속팀: 토트넘 핫스퍼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반 잉글랜드 축구계를 뒤흔들었던 스트라이커로 키가 크진 않았지만 낮은 무게중심과 단단한 어깨를 활용한 몸싸움과 페널티 라인에서 무서울 정도로 적절한 위치 선정을 앞세워 토트넘에서만 200골을 넘게 터트렸다.

첼시의 풋볼 리그 우승을 이끈 뒤 토트넘 핫스퍼로 이적해 활약한 바비 스미스는 1960-61 시즌 풋볼 리그와 FA컵 도메스틱 더블 우승을 포함해 FA컵 2회 우승과 리그 1회 우승, 그리고 커뮤니티 실드 2연패와 1962-63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내며 토트넘의 황금기를 이끌었으며 1957-58 시즌에는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바비 스미스의 삼사자 군단에서의 활약은 다소 아쉬웠는데 1958 스웨덴 월드컵에 참가했으나 감독의 선호도 문제로 데릭 케반과의 주전 경쟁에서 밀리며 백업 멤버에 그쳤다. 다른 A 매치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였기에 감독의 결정이 더 아쉬웠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