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Top 10

국가의 영웅들/영연방

영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Top 10

토르난테 2025. 10. 1.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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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중 1개 이상의 국가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RSSSF와 트렌스퍼마크트이며 둘의 기록이 상충할 경우에는 전자를 우선적으로 따릅니다.
*기록일은 2025년 9월 28일 기준입니다.

 


10위 빌리 맥닐

 


생년월일: 1940년 3월 2일
국적: 스코틀랜드
A매치 기록: 29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셀틱 FC

스코틀랜드 프로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중 한 명으로 우수한 체격에서 나오는 완력과 영리한 판단력을 바탕으로 탄탄한 수비력을 보였으며 스코틀랜드를 넘어 영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주장이라 평가받았을 정도로 강력한 리더십으로 수비라인을 넘어 피치와 라커룸을 아울렀다.

셀틱의 원 클럽 맨이자 구단 통산 최다 출전자인 빌리 맥닐은 1966-67 시즌 유러피언 컵을 포함한 5관왕을 이뤄냈으며 정규리그 9연패 및 스코티시 컵 7회 우승을 포함해 크고 작은 공식 대회에서 29개의 우승 트로피를 수집하는 활약을 펼쳤다.

외모가 미국 할리우드 배우 시저 로메로를 닮았다는 이유로 시저라 불렸던 맥닐은 1964-65 시즌 최초의 SFWA 올해의 선수 수상자로 이름을 남겼으며 2004년에는 스코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셀틱의 홈구장인 셀틱 파크 외곽에는 빅이어를 힘차게 들어올리는 위대한 주장 맥닐의 동상이 건립되었다.

 

9위 토니 아담스

 


생년월일: 1966년 10월 10일
국적: 잉글랜드
A매치 기록: 66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91cm / 몸무게 90kg
주 소속팀: 아스날 FC

조지 그레이엄에 의해 콜로수스라 불렸을 정도로 압도적인 피지컬과 아르센 뱅거에 의해 수비의 교수라 불렸을 정도로 높은 수비 지능을 겸비한 수비수로 바위 같은 대인 수비 능력과 슬라이딩 태클은 물론 큰 키를 활용한 제공권 장악 능력과 우수한 위치 선정을 겸비한 완벽한 센터백이었다.

아예 별명이 미스터 아스날일정도로 아스날을 대표하는 선수였던 토니 아담스는 정규리그 4회 우승과 FA컵 3회 우승, 그리고 리그컵 2회 우승을 이뤄냈고 팀의 유일한 UEFA 주관 유럽 대항전인 1993-94 시즌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1999-2000 시즌에는 UEFA컵 결승에 진출하는 활약을 보여줬는데 이 과정에서 보울드, 리 딕슨, 그리고 나이젤 윈터번과 함께 철의 포백이라 불렸으며 개인적으로도 PFA 올해의 팀에 4회 선정되었다.

삼사자 군단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한 아담스는 UEFA 유로 1988에서는 팀은 전패로 탈락했지만 아담스 개인은 득점을 기록했으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명단에 들지 못했으나 UEFA 유로 1996에서는 삼사자 군단의 주장을 맡아 조국의 준결승 진출에 공헌했으며 1998 프랑스 월드컵과 유로 2000에도 참가했으며 2004년에는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8위 엠린 휴즈

 


생년월일: 1947년 8월 28일
국적: 잉글랜드
A매치 기록: 62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8cm
주 소속팀: 리버풀 FC

1970년대 하반기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수비수로 강인한 정신력과 우수한 축구 지능과 전술안, 그리고 뛰어난 체력과 강력한 대인 수비 능력을 겸비해 넓은 지역에서 상대선수를 공략하며 팬들로부터 미친 말이라 불렸으며 센터백은 물론 레프트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도 막힘없이 잘 소화했다.

리버풀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붉은 제국 시대의 초창기를 빛낸 휴즈는 잉글랜드 풋볼 리그 4회 우승과 FA컵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유럽 무대에서도 UEFA컵 2회 우승과 1976-77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더블을 이룬 공로를 인정받아 1976-77 시즌에 휴즈는 FW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10위에 올랐다.

삼사자 군단에서는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 무어와 라본의 백업을 맡았으며 UEFA 유로 1980에서는 왓슨과 톰슨의 백업을 맡았는데 이는 그가 주전으로 활약하던 시절, 삼사자 군단이 암흑기에 빠진 탓이 컸다.

 

7위 닐 프랭클린

 


생년월일: 1922년 1월 24일
국적: 잉글랜드
A매치 기록: 26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스토크 시티

1940년대 하반기 세계 최고의 센터하프로 세련된 슬라이딩 태클과 강력한 카리스마에서 나오는 우수한 수비 조율 능력은 물론 우수한 발밑 기술과 정확한 롱패스로 빌드업의 시작점 역할도 훌륭하게 수행했다.

스토크 시티에서 전성기를 누린 프랭클린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에 삼사자 군단에서도 핵심 센터 하프로 활약하며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잉글랜드의 수비를 이끌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엄청난 투자로 축구 붐을 일으켰던 엘도라도 시절의 콜롬비아 리그의 인데펜디엔테 산타페로 이적하며 스스로 대표팀 소집을 거부했다.

수비라인의 리더 프랭클린이 빠진 여파로 잉글랜드는 스페인과 미국에 패하며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고 프랭클린의 소집 거부는 탈락의 원흉으로 뽑히며 프랭클린은 잉글랜드 축구계에서 버림받았다.

 

6위 잭 찰튼

 


생년월일: 1935년 8월 30일
국적: 잉글랜드
A매치 기록: 35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91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리즈 유나이티드

1960년대를 대표하는 중앙 수비수 중 하나로 191cm의 장신을 앞세운 공중볼 장악 능력과 위협적인 슬라이딩 태클 능력은 물론이고 볼 다루는 기술이 우수해 간간히 전방으로 오버래핑하여 패스를 뿌리거나 슈팅을 노리기도 했던 리베로형 수비수였다.

프리미어리그의 리즈 유나이티드에서만 프로 생활 21년 전부를 보낸 원 클럽맨이자 구단 통산 최다 출전자로 랭크된 잭 찰튼은 팀이 2부 리그였던 시절부터 커리어를 시작해 여러 차례 승격과 강등을 맛보다가 돈 레비 체제에서 1963–64 시즌 풋볼 리그 2부 우승을 시작으로 1967-68 시즌 리그컵 우승, 1968-69 시즌 풋볼 리그 1부 우승과 1971-72 시즌 FA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유럽 무대에서도 인터시티 페어스컵 2회 우승을 이뤄냈다. 잭 찰튼 개인도 1967년 FWA 올해의 축구선수로 선정되었고 동독의 FUWO가 뽑은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다.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도 바비 무어와 파트너를 이루며 1966 잉글랜드 월드컵 우승과 UEFA 1968 유로 3위를 이뤄내며 대표팀의 황금기를 이끌었고 은퇴한 이후에는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5위 리오 퍼디난드

 


생년월일: 1978년 11월 7일
국적: 잉글랜드
A매치 기록: 81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91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최고의 센터백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수비수로 큰 키를 활용한 제공권 경합 능력, 빠른 스피드와 높은 집중력으로 상대방을 무력화시켰음은 물론 수비라인 조율 능력과 발밑 역시 우수해 수비라인의 리더 역할도 능숙하게 소화할 수 있었기에 알렉스 퍼거슨은 그를 두고 "리오 같은 선수는 어떤 공격의 압박에도 어떻게 대처할지 아는 수비수들입니다. 그는 환상적인 수비수입니다."라고 말했다.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리그 정상급 수비수 자리에 오른 퍼디난드는 리즈가 재정난에 허덕이자 당대 수비수 최고 이적료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이적했는데 이적료값에 걸맞게 오랜 시간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비디치와의 조합은 퍼디치 라인이라 불리며 2007-08 시즌 리그와 챔피언스리그 더블 우승을 포함해 프리미어리그 6회 우승, 리그컵 3회 우승,  그리고 챔피언스리그 우승 1회와 준우승 2회라는 성과를 이뤄냈다.

15년간 세계 수비수 최고액 이적료의 자리를 지킨 퍼디난드 개인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머무는 동안 PFA 올해의 팀에 5회 선정되었고 2007-08 시즌에는 ESM 올해의 팀 선정 및 피파프로 월드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은퇴한 뒤인 2012년에는 프리미어리그 20주년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2023년에는 프리미어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그러나 삼사자 군단에서의 퍼디난드는 다소 아쉬운 퍼포먼스를 남겼는데 클럽에 비해선 아쉬운 활약을 펼쳤지만 그래도 1998 프랑스 월드컵부터 2006 독일 월드컵까지 모든 대회에 참가했고 그중에서 2002 한일 월드컵과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주전으로 나서며 8강에 진출했고 그 공로로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4위 엘런 한센

 


생년월일: 1955년 6월 13일
국적: 스코틀랜드

A매치 기록: 26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리버풀 FC

스코틀랜드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로 영국의 축구기자 롭 드레이퍼는 자신이 본 잉글랜드 리그 최고의 수비수이자 '우아함을 가지면서 강한 수비력을 보여주는 선수'에 가장 근접했다고 평가했고 실제로도 우수한 수비력은 물론 빠른 스피드를 바탕으로 경기 중 갑자기 오버래핑하여 어시스트를 기록하거나 득점하기도 했으며 제공권 경합 능력도 우수했다.

리버풀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로 평가받는 동시에 구단 통산 출전 10위에 랭크된 한센은 리버풀에서 1부 리그 8회 우승과 FA컵 2회 우승, 그리고 리그컵 4회 우승은 물론 유러피언 컵 3회 우승을 이뤄내며 붉은 제국이라 불리는 리버풀의 전성기를 이끌었는데 필 톰슨, 마크 로렌슨, 그 누구와 나와도 한센은 훌륭한 모습을 선보였으며 리버풀에서의 14년 동안 단 세 시즌만 빼고 모든 시즌에 한 개 이상의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전성기 리버풀 수비라인의 리더로 군림하며 1998년에 선정한 풋볼 리그 레전드 100인에 선정된 한센은 개인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PFA 올해의 팀에 6회 선정되는 영예를 누리며 당대 잉글랜드 풋볼 리그 최고의 수비수로 군림했음은 물론 은퇴한 뒤에도 PFA 세기의 팀 선정 및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과 스코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스코틀랜드 대표팀에서도 초년에는 엘리트 코스를 밟던 한센은 1970년대 후반 청소년 대표팀 소속으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주전 수비수로 중용되었으나 1986 멕시코 월드컵을 앞두고는 급사한 스타인 대신 감독 대행을 했던 퍼거슨이 자신이 에버딘에서 기용했던 수비조합을 선호해 그를 백업으로 내리자 자신의 폼이 최고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결정에 불만을 품었고 결국 대표팀에서 은퇴한다.

 

3위 존 테리

 


생년월일: 1978년 11월 7일
국적: 잉글랜드
A매치 기록: 78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90kg
주 소속팀: 첼시 FC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로 뛰어난 통솔력으로 수비라인을 조율했으며 경기흐름을 읽는 능력이 우수했고 제공권 장악 능력과 헤딩 득점, 그리고 몸싸움에도 능한 만능 수비수였는데 마르셀 드사이의 말을 빌리면 "그는 전술적으로 굉장히 똑똑하고, 상대방의 길목을 차단할 줄 알며, 공간을 내주지 않고, 신체적인 경합에서 절대 밀리지 않는다. 신체적으로 그는 육중한 편이지만 잠을 자는 습관이나 식습관을 바꿔가면서 자신에게 엄격함을 유지한다. 리더십 측면에서는 그가 훌륭한 선수가 될 거라는 걸 모두가 알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전성기를 유지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팀의 정말 위대한 리더이다."라고 호평했다.

첼시 유스 출신의 수비수이자 로만 체제의 첼시에서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존 테리는 프리미어리그 5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2011-12 시즌 챔피언스리그와 2012-13 시즌 유로파 리그 우승에 공헌했다. 클럽 단위의 우승 커리어뿐만이 아니라 존 테리 개인의 커리어도 대단해 UEFA 올해의 팀과 PFA 올해의 팀에 각각 4회 선정 및 ESM 올해의 팀과 UEFA 올해의 수비수에 3회 선정되었고 2004-05 시즌에는 P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이런 압도적인 퍼포먼스에 리버풀의 레전드이자 축구 평론가인 제이미 캐러거는 그를 두고 "프리미어리그에는 수많은 정상급 수비수들이 있었지만 그 중 최고는 존 테리라고 생각한다. 위치 선정과 특히 경기를 읽는 능력에 관해서 그보다 뛰어난 수비수를 본 적이 없다."라고 호평했다.

비록 삼사자 군단에서의 활약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래도 오랜 기간 주전으로 활약하며 두 번의 유럽 선수권 대회와 월드컵에 출전했고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팀의 8강 진출을 이끄는데 공을 세우며 대회 올스타 스쿼드에 들었으며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3회 선정되어 2005년에 개인 통산 최고 성적인 10위를 기록했다.

 

2위 빌리 라이트

 


생년월일: 1924년 2월 6일
국적: 잉글랜드
A매치 기록: 105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울버햄튼 원더러스

1950년대 최고의 수비수로 단신이었지만 강력한 승부욕과 태클로 자신보다 큰 선수들을 제압했으며 뛰어난 전술안을 바탕으로 상대 공격수의 움직임을 잘 읽었음은 물론 70경기 연속으로 A매치에 출전했을 만큼 부상도 잘 당하지 않았던 철강왕이었다.

클럽 커리어 젠부를 울버햄튼 원더러스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인 빌리 라이트는 울브스의 황금세대의 아이콘으로 활약하며 잉글랜드 풋볼 리그 1부 우승을 3회 이뤄냈고 1954년 겨울에는 친선전에서 공산권 최강의 클럽 부다페스트 혼베드를 꺾는 과정에서 푸스카스, 코치슈, 치보르의 연계 플레이를 철통같이 막아내 팀이 세계 정상급 클럽 중 하나로 이름을 날리는데 큰 공을 새웠음은 물론 빌리 라이트 개인도 1952년에는 FWA 올해의 축구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3회 선정되어 1957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2위에 올랐다.

삼사자 군단에서도 핵심 수비수로 활약하며 밥 크롬튼을 제치고 잉글랜드 대표침 A매치 통산 출전 기록을 갈아치운 빌리 라이트는 1940년대 잉글랜드 대표팀이 A매치에서 강세를 보일 때 주장으로 팀을 지휘했고 1950 브라질 월드컵과 1954 스위스 월드컵, 그리고 1958 스웨덴 월드컵에 참가하며 엄청난 수비력을 보여줬으며 축구 역사상 최초로 센츄리 클럽에 가입했다. 그리고 사후에는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영예를 누렸다.

 

1위 바비 무어

 


생년월일: 1941년 4월 12일
국적: 잉글랜드
A매치 기록: 108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이자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 빼어나면서 안정적인 수비력은 기본이고 강력한 카리스마에서 나오는 리더십과 뛰어난 롱 패스를 활용한 플레이메이킹 능력, 타고난 전술안 등 수비수로서 필요한 덕목은 모두 가지고 있었는데 특히 리더십에 관해 클럽과 대표팀의 동료였던 제프 허스트의 말에 의하면 "그는 마구 소리를 지르고 고함치는 주장이 아니었다. 내가 기억하기로, 그는 누군가에게 한 쪽 눈썹을 들어올려 보이는 것만으로도 그의 플레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었다."라고 헌사했다.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공식전 647경기에 나선 바비 무어는 1963-64 시즌 FA컵 우승과 1964-65 시즌 유러피언 컵 위너스 컵 우승을 이끌며 웨스트햄 역사상 가장 찬란했던 시기를 보내는 부분에서 큰 공을 세웠는데 구단측에서는 그의 등번호 6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실제로 바비 무어 사후 이탈리아의 수비수 안젤로 오그본나가 웨스트햄에 입단했을 때 "내가 이 클럽에 입단했을 때, 나는 그가 클럽과 국가대표팀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장면들은 그의 태클 실력 말고도 많은 것을 말해준다. 그는 공 앞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팀에 걸맞은 리더이며, 아주 훌륭한 선수였다."라고 헌사했을 정도로 구단을 대표하는 전설이었다.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도 1966 잉글랜드 월드컵의 우승과 UEFA 유로 1968 3위를 기록하는 등, 무어가 주장으로 이끌던 시절의 잉글랜드는 다른 시대와는 달리 매우 잘 나갔는데 그가 대표팀에서 물러나자 잉글랜드 대표팀은 일시적으로 몰락했을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컸는데 오죽하면 대표팀 감독이었던 알프 램지는 "나의 주장, 나의 리더, 나의 오른팔. 그는 우리 팀의 기운이자 우리 팀의 심장이었다. 내 인생을 걸어도 괜찮을, 멋지고 계산적인 축구 선수이다. 그는 내가 일해 본 사람들 중에서도 완벽한 프로였다. 그가 없었다면 잉글랜드는 우승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단순한 팀 주장이 아니다. 그는 모두의 주장이다."라고 헌사했을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뛰어났다.

퍼거슨에 의해 최고의 수비수로 칭해졌고 한때 유럽 축구사 최고의 센터백으로 평가받았던 바비 무어는 1970년에는 월드컵에서 펠레, 게르트 뮐러와 같은 선수들을 잘 막아낸 활약을 인정받아 발롱도르 투표에서 2위에 올랐으며 사후인 1994년에 선정한 피파 월드컵 올타임 팀에 선정되었고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도 최초로 헌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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