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Top 11~20

국가의 영웅들/영연방

영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Top 11~20

토르난테 2025. 9. 30.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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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중 1개 이상의 국가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RSSSF와 트렌스퍼마크트이며 둘의 기록이 상충할 경우에는 전자를 우선적으로 따릅니다.
*기록일은 2025년 9월 28일 기준입니다.

 


20위 테리 버처

 


생년월일: 1958년 12월 28일
국적: 잉글랜드
A매치 기록: 77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93cm / 몸무게 84kg
주 소속팀: 입스위치 타운

1980년대 잉글랜드 축구를 빛낸 강력한 수비수로 거대하면서도 근육질의 피지컬을 바탕으로 상대 수비수를 삼키는 스토퍼로 이름을 날렸으며 테크닉도 나쁘지 않았으며 경기 도중에 심한 부상을 입어도 엄청난 인내력으로 참아내고 제 역할을 다했다.

잉글랜드의 신흥 강호 입스위치 타운에서 첫 전성기를 누린 버처는 1980-81 시즌 UEFA컵을 우승했으며 1980-81 시즌과 1981-82 시즌에 2년 연속으로 리그 준우승을 이뤄냈고 레인저스에서도 스코티시 프리미어 리그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삼사자 군단에서도 세 번의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나서 1986 멕시코 월드컵 8강과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준결승 진출을 이뤄냈다.

상술했던 그의 부상 인내력에 대한 일화로 1989년 스웨덴전에서는 볼 경합 과정에서 이마가 찢어져 피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붕대로 동여매고 계속해서 경기에 임했는데 다친 부위로 헤딩 클리어링을 여러 번 시도해 흰 붕대와 유니폼은 피범벅이 되었지만 버처는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19위 데이비드 왓슨

 


생년월일: 1946년 10월 5일
국적: 잉글랜드
A매치 기록: 65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

잉글랜드 저널리스트 모임 선정 1970년대 잉글랜드 풋볼 리그 최고의 센터하프로 평가받는 인물로 믿음직한 제공 능력 및 공에 대한 예리한 집중력을 바탕으로 탄탄한 맨 마킹과 칼날같은 슬라이딩 태클로 상대를 제압했음은 물론 수비라인 조율 능력 역시 일품이었기에 팬들로부터 '빅 데이브'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사랑받았다.

노츠 카운티에서 데뷔해 선덜랜드에서 첫 전성기를 누리며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으로 평가받았던 왓슨은 1972-73 시즌, 팀이 2부 리그에 있었음에도 FA컵 우승을 이뤄내는 파란을 선보였고 삼사자 군단에 주전으로 선발되며 잉글랜드 대표팀 주전인 2부 리그 선수라는 재밌는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리고 1부리그의 맨체스터 시티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선보이며 1975-76 시즌 리그컵 우승을 이뤄냈고 1978년 월드사커 선정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1979년, 잉글랜드 출신으로는 특이하게도 당대 최고의 리그였던 분데스리가 도전을 위해 베르더 브레멘에 입단했으나 적응 실패로 다시 사우스햄튼으로 돌아온 왓슨은 1980년에는 프랑스의 옹즈 몽디알 선정 유럽 최우수 스토퍼 2위에 선정되었으며 PFA 올해의 팀 1부에 2회 선정되었음은 물론 삼사자 군단에서도 5회의 브리티시 챔피언십 우승을 이뤄냈다.

 

18위 마틴 부찬

 


생년월일: 1949년 3월 6일
국적: 스코틀랜드
A매치 기록: 34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70년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암흑기의 에이스로 그 당시 대다수의 잉글랜드 리그 수비수들과는 다르게 신사적인 플레이를 추구했으며 빠른 스피드와 탁월한 위치 선정과 깔끔한 태클로 공을 깔끔하게 빼앗는 능력이 뛰어났으며 리더십도 뛰어났다.

에버딘에서 데뷔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두각을 나타낸 부찬은 암흑기 시절에 활약한 레전드인지라 리그 우승은 없지만 팀이 강등당했음에도 충성심을 보여주며 남아 팀을 승격시킨 공로로 주장 완장을 차지하기도 했고 1976-77 시즌 FA컵 결승에서 트레블을 노리는 리버풀의 에이스 키건을 완벽하게 막아내며 우승에 공헌해 라이벌 리버풀의 트레블을 좌절시켰다. 부찬 개인도 1977-78 시즌에는 PFA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스코틀랜드 대표팀 소속으로도 꽤 많은 경기에 출전한 부찬은 1974 서독 월드컵과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본선행을 이끌었음은 물론 본선에서도 주전 센터백으로 활약했다.

 

17위 조지 영

 


생년월일: 1922년 10월 27일
국적: 스코틀랜드
A매치 기록: 54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95kg
주 소속팀: 레인저스 FC

1940~50년대 스코틀랜드 무대 최고의 수비수로 거대한 체격과 포기를 모르는 강인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바탕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강력한 몸싸움과 우수한 헤더 클리어링이 장점이었음은 물론 일반적으로 덩치가 큰 선수들의 약점인 스피드와 지구력도 우수했기에 다른 선수들보다 한수 위의 기량을 선보였다.

선수 생활 전체를 레인저스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이자 구단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인 영은 정규리그 6회 우승 및 스코티시 컵 4회 우승과 리그컵 2회 우승을 이뤄냈다. 여담으로 그는 행운의 상징이라 믿고 코르크라는 샴페인을 가지고 다녔는데 이는 그에게 코키라는 별명을 안겨주기도 했다.

스코틀랜드 대표팀에서도 54경기의 A매치에 출전한 조지 영은 그중 48경기에서 주장 완장을 맡아 활약했고 특히 1948년부터 1953년까지 5년 동안 스코틀랜드 대표팀의 34경기에 연속으로 출장하는 괴력을 자랑하기도 했다. 사후에는 레인저스 명예의 전당과 스코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16위 존 스톤스

 


생년월일: 1994년 5월 28일
국적: 잉글랜드
A매치 기록: 83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76kg
현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

현세대 맨체스터 시티의 수비슬 이끄는 센터백이자 수비형 미드필더로 유려한 발기술과 우수한 숏패스 및 활발한 전진성을 바탕으로 팀 빌드업의 시발점 역할에 능하며 다른 파트너가 볼 배급을 맡았을 때에는 후방을 커버하는 부분에도 능했다. 게다가 2022-23 시즌을 기점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올라가 활약하며 장점이 더욱 극대화되었다.

에버튼에서 두각을 나타낸 뒤 2016년 당시 비공식 수비수 역대 이적료 2위를 기록하며 블루문 군단에 입성한 스톤스는 프리미어리그 5회 우승, FA컵 2회 우승 및 리그컵 4연패를 이뤄냈으며 그 과정에서 2018-19 시즌 도메스틱 트레블과 2020-21 시즌 구단 역사상 첫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 그리고 2022-23 시즌 트레블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새웠고 스톤스 개인도 2020-21 시즌에는 PFA 올해의 팀과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으며 2022-23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청소년 대표팀 시절부터 연령별 대표팀을 두루 거친 엘리트였던 스톤스는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견고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조국의 28년 만의 준결승행을 이끌며 스카이스포츠 선정 2018 러시아 월드컵 베스트 11에 선정되었고 UEFA 유로 2020과 UEFA 유로 2024에서도 뛰어난 퍼포먼스로 조국의 2회 연속 결승 진출에 큰 공을 세웠다.

 

15위 콜린 토드

 


생년월일: 1948년 12월 12일
국적: 잉글랜드
A매치 기록: 27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더비 카운티

1970년대 잉글랜드 풋볼 리그를 풍미한 리베로이자 한때 잉글랜드 수비수 최고액 이적료를 기록했던 인물로 기본적으로 우수한 수비력을 지녔으며 높은 수준의 축구 지능과 우수한 발밑 기술로 수비라인 지휘와 롱패스를 활용한 빌드업의 시작점 역할을 맡는 부분에도 장기를 드러냈다.

토드가 입단하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2부 리그에 있던 더비 카운티의 전성시대를 이끈 토드는 파트너 로이 맥팔란드와 함께 견고한 수비라인을 구축하며 풋볼 리그 2회 우승을 이뤄냈고 토드 개인의 영광도 대단해 1972년 더비 카운티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1975년 P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며 그 해 연말에 열린 발롱도르 투표에서 9위에 올랐고 PFA 올해의 팀에 3회 선정되었으며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다.
 
화려한 클럽 커리어에도 불구하고 대표팀 경력이 짧은데 이는 더비 카운티의 감독 브라이언 클러프와 잉글랜드 대표팀의 감독 돈 레비와의 갈등으로 인해 그가 대표팀에 선발되지 않았음은 물론 선발되던 시절에도 삼사자 군단은 암흑기를 겪었기에 국제대회에서 토드의 볼 수 없는 아쉬운 상황이 연출되었다.

 

14위 로이 구달

 


생년월일: 1902년 12월 31일
국적: 잉글랜드
A매치 기록: 24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3cm
주 소속팀: 허더스필드 타운

1920년대 중반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 호세 나사치, 비르지니오 로세타, 휘글 카로이 등과 함께 세계 최고의 라이트 풀백 중 한 명으로 평가받던 선수로 강인한 정신력과 날카로운 슬라이딩 태클 및 우수한 커버 플레이를 바탕으로 한 협력 수비로 이름을 날렸던 무결점의 수비수로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모두 주장직을 역임했을 정도로 리더십 역시 훌륭했다.

선수 생활 전부를 허더즈필드 타운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이자 440경기에 출전해 21골을 기록한 구달은 허버트 채프먼의 지도로 풋볼 리그 최고의 수비수로 성장하며 1922년 FA컵 우승을 시작으로 풋볼 리그 1부 3회 연속 우승이라는 대업을 이뤄냈다. 이후에도 풋볼 리그 1부 3회 준우승 밀 FA컵 2회 준우승을 기록했다.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도 핵심 수비수로 활약했던 구달은 브리티시 홈 챔피언십에서 1926-27 시즌 스코틀랜드와 공동 우승 및 1929-30 시즌부터 1931-32 시즌까지 3회 연속 우승을 포함해 총 4회 우승을 이뤄내며 스코틀랜드가 주도하던 영국 연방의 질서를 잉글랜드로 되돌리는 데 성공했는데 혹자는 만약 잉글랜드가 초대 월드컵에 참가했다면 구달이 첫 월드컵 대표팀 주장을 맡았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13위 밥 크롬튼

 



생년월일: 1879년 9월 26일
국적: 잉글랜드
A매치 기록: 41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9cm
주 소속팀: 블랙번 로버스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세계 최고의 수비수로 불렸던 인물로 주로 2-3-5 포메이션에서 라이트 풀백으로 활약했는데 냉정한 판단력과 예리한 태클을 앞세운 대인 수비로 명성을 떨쳤음은 물론 날카로운 롱킥을 바탕으로 한 빌드업에도 능해 잉글랜드의 전설적인 인사이드 포워드 찰리 버칸으로부터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풀백이었다. 리더십이 있었으며 내 일상에서 본 선수 중 가장 킥을 잘하는 선수였다."라는 호평을 듣기도 했다.

블랙번에서 태어나 블랙번 로버스의 원 클럽맨으로 활약하며 576경기에 출전해 구단 역사상 최전성기를 이끈 캡틴 크롬튼은 잉글랜드 풋볼 리그 2회 우승을 이뤄내며 아스톤 빌라의 왕조를 끝내는데 일조하며 블랙번 로버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제1차 세계대전 도중에는 전국리그의 중단으로 지역리그의 블랙풀에서 잠시 활약하기도 했다.

삼사자 군단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한 크롬튼은 41번의 A매치에서 절반이 넘는 22회의 A매치에 참가했으며 빌리 라이트가 경신하기 전까지 잉글랜드 대표팀의 A매치 최다 출전을 기록했다. 은퇴한 이후에는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과 풋볼 리그 100인의 레전드로 선정되었다.

 

12위 윌리 밀러

 


생년월일: 1955년 5월 2일
국적: 스코틀랜드
A매치 기록: 65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에버딘 FC

1980년대 스코틀랜드 무대 최강의 리베로 중 한 명으로 강인한 대인 수비 능력은 물론 롱패스를 활용해 팀의 빌드업의 시작점 역할을 하는 부분에서도 능숙했고 키가 작았음에도 제공권에도 강점을 보였다. 특히 가장 뛰어난 능력은 수비라인 지휘 능력인데 주변의 수비수들은 그와 뛰면 부족했던 부분들을 다소 개선하기도 했다.

초년에 피터헤드 FC로 잠시 임대를 떠난 것을 제외하면 선수생활의 전부를 에버딘에서만 보낸 윌리 밀러는 퍼거슨 체제 에버딘 대약진의 주역이었는데 스코티시 풋볼 리그 3회 우승 및 스코티시 컵 4회 우승과 리그컵 3회 우승을 이뤄냈고 유럽 무대에서도 1982-83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바이에른 뮌헨과 레알 마드리드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유러피언 컵 챔피언 함부르크를 상대로도 4-0 무실점 대승에 큰 공을 세웠다. 그리고 1983-84 시즌에는 리그 우승의 일등 공신임을 인정받아 PFA 스코틀랜드 올해의 선수 및 SFWA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며 고점을 맞았다.

스코틀랜드 대표팀에서는 대표팀 수석코치를 겸직하거나 감독 대행을 맡았던 퍼거슨이 리버풀에서 잉글랜드 풋볼 리그를 지배하던 앨런 한센보다도 중용받기도 했던 밀러를 두고 "페널티박스 안에서만큼은 세계 최고의 수비수다"라고 말할 정도로 아꼈기에 대표팀에서는 한셈보다도 중용받아 소속팀 파트너 알렉스 메클레이시, 골키퍼 짐 레이튼과 함께 최후방 3인으로 중용받아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11위 솔 캠벨

 


생년월일: 1974년 9월 18일
국적: 잉글랜드
A매치 기록: 73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89cm / 몸무게 89kg
주 소속팀: 아스날 FC

2000년대 잉글랜드 최고의 센터백 중 하나로 떡 벌어진 어깨와 압도적인 근육량에서 나오는 몸싸움 능력과 제공권 장악 능력으로 상대 수비수를 바위처럼 짓눌렀음은 물론 육중한 체구에도 100m를 10초대 중반에 주파했을 정도로 스피드도 빨랐다.

토트넘에서 데뷔해 팀 수비의 에이스이자 맷부트에 이어 주장까지 맡으며 두각을 나타낸 캠벨이었으나 2001-02 시즌을 앞두고 자유계약으로 지역 라이벌 아스날로 이적했는데 해당 시즌에 더블을 달성했고 2003-04 시즌 무패 우승을 포함해 리그 2회 우승과 FA컵 3회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2005-06 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최초로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오르는데 큰 역할을 했다. 캠벨 개인도 1998-99 시즌에는 토트넘에서 PFA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고 2002-03 시즌과 2003-04 시즌에는 아스날 소속으로 PFA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음은 물론 2004년에는 옹즈 몽디알이 선정한 유럽 축구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도 오랫동안 활약한 캠벨은 UEFA 유로 1996에서는 백업 멤버로 준우승을 경험한 것을 시작으로 1998 프랑스 월드컵부터 주전 자리를 차지해 UEFA 유로 2000과 2002 한일 월드컵까지 활약했으며 한일 월드컵에서는 조국의 8강 진출을 이끌며 대회 올스타 스쿼드에 포함되었다.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후배 테리와 퍼디난드의 백업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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