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Top 11~20

국가의 영웅들/영연방

영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Top 11~20

토르난테 2025. 9. 26.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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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중 1개 이상의 국가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RSSSF와 트렌스퍼마크트이며 둘의 기록이 상충할 경우에는 전자를 우선적으로 따릅니다.
*기록일은 2025년 9월 24일 기준입니다.

 


20위 토미 로렌스

 


생년월일: 1940년 5월 14일
국적: 스코틀랜드
A매치 기록: 3경기 4실점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리버풀 FC

잉글랜드 풋볼 리그 역사상 최초의 스위퍼 키퍼로 평가받는 인물 중 한 명으로 일관성이 뛰어났고 대담해 특히 상대 공격수와의 일대일 수비에서 강한 모습을 보였고 감독인 빌 샹클리의 지시에 따라 6야드 이내에서만 머물던 기존의 골키퍼와는 다르게 18야드 라인까지 커버했다.

리버풀의 암흑기에 데뷔해 빌 샹클리 체제에서 2부 리그부터 올라온 로렌스는 1961-62 시즌에는 풋볼 리그 2부 우승을 이뤄내 승격했고 그 뒤에는 1964-65 시즌 FA컵 우승 및 잉글랜드 풋볼 리그 2회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하며 리버풀의 붉은 제국 시대의 기틀을 닦았다.

다만 풋볼 리그 정상급 선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스코틀랜드 대표팀에서는 영 중용받지 못했다.

 

19위 조 하트

 


생년월일: 1987년 4월 19일
국적: 잉글랜드
A매치 기록: 75경기 48실점/ 43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96cm / 몸무게 91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

2010년대 영국 최고의 골키퍼로 우수한 피지컬과 일대 일 상황에서의 뛰어난 판단력과 강력한 펀칭으로 상대 공격수를 막아냈으나 발밑이 약해 펩 과르디올라 체제에서는 밀려난 골키퍼였다.

맨체스터 시티에서 전성기를 누린 하트는 초년에는 기븐과의 주전 경쟁에서 밀렸지만 버밍엄 시티 임대 이후 심기일전해 기븐을 밀어내고 블루문 군단의 골대를 지키며 프리미어리그 2회 우승과 2010-11 시즌 FA컵 우승, 그리고 리그컵 2회 우승을 이뤄냈다. 하트 개인도 2011-12 시즌 PFA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펩 과르디올라의 부임 이후로는 상술했듯 발밑 문제가 발목을 잡아 이탈리아의 토리노와 잉글랜드의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등지로 밀려났고그저 그런 선수로 전락하는 비극을 맛본다.

삼사자 군단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던 하트는 두 번의 월드컵과 UEFA 유로에 참가했는데 UEFA 유로 2012,와 2014 브라질 월드컵, 그리고 UEFA 유로 2016에서 주전으로 나섰지만 국가대표팀 자체가 전 포지션 부분에서 암흑기였기에 좋은 성적을 내지는 못했다.

 

18위 버트 윌리암스

 


생년월일: 1920년 1월 31일
국적: 잉글랜드
A매치 기록: 24경기 34실점/ 3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울버햄튼 원더러스

1940년대 후반과 50년대 잉글랜드 풋볼 리그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로 골키퍼였음에도 리그에서 가장 빠른 선수 중 한 명이었으며 빠른 몸놀림을 통해 상대의 크로스를 적절하게 차단했으며 일대일 상황에서의 침착한 수비력으로도 이름을 날렸으며 팔힘이 강해 볼을 멀리 던져 빌드업을 이끌기도 했다.

수비수 빌리 라이트와 함께 울버햄튼 원더러스의 전성시대를 이끈 윌리암스는 1948-49 시즌 FA컵 우승과 1953-54 시즌 풋볼 리그 우승을 이끌어냈으며 친선 경기에서는 당대 매직 마자르 멤버들이 다수 포진한 부다페스트 혼베드를 상대로 3-2로 승리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스위프트가 은퇴한 이후 잉글랜드 대표팀의 주전으로 올라선 윌리암스는 1950 브라질 월드컵에 주전으로 참가했으나 미국전과 스페인전의 패배로 큰 비판을 받았고 결국 1954 스위스 월드컵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17위 빌 브라운

 


생년월일: 1931년 10월 8일
국적: 스코틀랜드
A매치 기록: 28경기 41실점/ 6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토트넘 핫스퍼

1950년대 초반~60년대 중반까지 롱런한 골키퍼로 골키퍼 치고는 키가 큰 편이 아니었지만 엄청난 반사신경과 적절하면서도 정확한 위치를 선점하는 능력을 바탕으로 경쟁력을 발휘했다.

던디에서 데뷔해 첫 전성기를 보내며 1951-52 시즌 리그컵 우승을 이끌었고 정규리그에서만 215경기에 출전한 브라운은 토트넘 핫스퍼에서 본격적인 전성기를 누렸는데 1960-61 시즌 잉글랜드 풋볼 리그 1부와 FA컵 더블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했고 이듬해인 1961-62 시즌에는 FA컵 2연패 및 유러피언 컵 4강 진출을 이뤄냈다, 그리고 1962-63 시즌에는 UEFA 컵 위너스컵에서 레인저스, 슬로반 브라티슬라바, OFK 베오그라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연달아 꺾고 우승을 차지하는데 공헌했다.

스코틀랜드 대표팀에서도 7년간 주전으로 활약한 브라운은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 토미 영거의 백업으로 국제무대에 데뷔했고 이후에는 대표팀의 암흑기로 국제대회에 선발되지는 못했다. 그래도 스코틀랜드 명예의 전당 및 토트넘 핫스퍼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16위 앤디 고람

 


생년월일: 1964년 4월 13일
국적: 스코틀랜드
A매치 기록: 43경기 34실점/ 20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레인저스 FC

1990년대 스코틀랜드 무대에서 독보적인 클래스를 보여줬던 골키퍼로 골키퍼 치고는 키가 작고 뚱뚱했지만 엄청난 수준의 유연성과 뛰어난 반사신경 및 용수철과 같은 점프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며 '날아다니는 돼지'라고 불렸다.

1990년대 레인저스의 약진을 이끈 고람은 정규리그 4연패를 포함해 총 5회 우승을 이뤄냈고 스코티시 컵에서는 3회 우승했으며 리그컵에서는 2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1992-93 시즌에는 정규리그와 스코티시 컵, 그리고 리그컵을 모두 우승하며 도메스틱 트레블을 이뤄내는데 공헌했고 해당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그룹 스테이지에서도 해당 대회 챔피언 마르세유를 상대로 엄청난 선방을 보이며 두 번의 무승부에 공헌하며 1992-93 시즌 SFWA 올해의 축구선수 및  SPFA 올해의 축구선수에 선정되었다.

청소년 시절에는 잉글랜드 대표팀에 나섰다가 U-21 대표팀에서 작은 키 때문에 후보로 밀리면서 스코틀랜드 대표팀 경력을 시작했는데 1985년 감독대행인 알렉스 퍼거슨에 의해 첫 발탁되며 짐 레이튼의 후보로 시작해 1986 멕시코 월드컵과 UEFA 유로 1988, 그리고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짐 레이튼의 백업으로 대기했다가 UEFA 유로 1992에서 주전으로 도약했다. 그리고 UEFA 유로 1996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다. 은퇴한 이후인 2010년에는 스코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15위 론 스프링겟

 


생년월일: 1935년 7월 22일
국적: 잉글랜드
A매치 기록: 33경기 48실점/ 7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셰필드 웬즈데이

1950년대 하반기와 60년대 초반 잉글랜드 축구 무대를 주름잡은 골키퍼로 키는 작았지만 적절한 위치선정과 예리한 판단력과 정확한 계산력을 바탕으로 상대의 공격을 막아냈으며 상대 선수가 어떤 식으로 페널티킥을 차는지 노트에 따로 적어 매번 가지고 다니면서 숙지했기에 페널티킥을 잘 막았다고 한다.

퀸즈 파크 레인저스와 셰필드 웬즈데이에서 전성기를 보낸 스프링겟은 1958-59 시즌 셰필드 웬즈데이의 2부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1965-66 시즌에는 FA컵 준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삼사자 군단에서도 1962 칠레 월드컵에서 조국의 8강 진출을 이뤄냈으며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주전 골키퍼 자리를 뱅크스에게 내줬지만 백업 멤버로 나서며 우승의 영광을 경험했다.

 

14위 해리 힙스

 


생년월일: 1906년 5월 27일,
국적: 잉글랜드
A매치 기록: 25경기 26실점/ 10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77cm
주 소속팀: 버밍엄 시티

1930년대 삼사자 군단의 골문을 지켰던 골키퍼로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믿음직스러운 골키퍼였으며 예리한 판단력과 대단한 위치 선정 능력으로 지능적인 선방을 보여줬다고 전해진다.

버밍엄 시티의 1930-31 시즌 FA컵 결승 진출을 이끈 구단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힙스는 삼사자 군단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고 사후 1998년에 전문가들이 선정한 풋볼 리그 100인의 레전드의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13위 잭 켈시

 


생년월일: 1929년 11월 19일
국적: 웨일스
A매치 기록: 41경기 63실점/ 7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91kg
주 소속팀: 아스날 FC

웨일스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로 경이로운 반사신경과 탁월한 선방 능력을 겸비했으며 특히 크로스를 중간에서 차단하는데 능했던 당대 잉글랜드 풋볼 리그 정상급 슛 스토퍼였다.

토니 아담스와 함께 아스날의 유이한 원 클럽맨인 잭 켈시는 1949-50 시즌 FA컵 결승에서는 스웬딘의 백업으로 우승에 공헌했다가 1952-53 시즌에는 주전자리를 차지하며 리그 우승에도 큰 공을 세웠고 1954-55 시즌에는 무려 12개의 클린시트를 기록했다.

웨일스 대표팀에서도 핵심으호 활약한 켈시는 조국의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었음은 물론 절륜한 선방을 바탕으로 3경기 모두 무승부로 비기며 8강에 올랐고 8강에서도 펠레와 가린샤, 지지를 앞세운 브라질의 파상공세를 고작 1실점으로 막아냈다. 4강과 결승에서 프랑스와 스웨덴이 브라질에게 모두 5실점을 거둔 것과 그 당시 웨일스의 수비진이 톱클래스와는 거리가 멀었던 것을 감안하면 대단한 성과였다.

 

12위 엘리샤 스콧

 


생년월일: 1893년 8월 24일
국적: 북아일랜드
A매치 기록: 31경기 60실점/ 6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리버풀 FC

리버풀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로 평론가들로부터 스콧은 독수리의 눈처럼 날카로운 동체시력을 가졌으며 공을 던질 때 표범의 빠른 움직임을 보여주며 공을 잡을 때 우수한 클러치 능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1920년대 세계구급 골키퍼라 평가받았던 스콧은 하디의 후계자로 활약하며 리버풀에서 잉글랜드 풋볼 리그 1부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콥들의 사랑을 받은 최초의 스타플레이어였다.

현재 북아일랜드 대표팀의 모체인 아일랜드 자유주 대표팀에서 활약한 스콧은 대표팀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이자 넘버 원 골키퍼로 활약했다. 당시는 브리튼 섬 내 잉글랜드, 스코틀랜드와의 국제 경기가 다수였기에 딕시 딘과의 라이벌리를 국가대표에서도 이어갔는데 아일랜드 자유주의 약한 전력에 의해 많은 실점을 기록했다.

 

11위 해리 그렉

 


생년월일: 1932년 10월 27일
국적: 북아일랜드
A매치 기록: 25경기 57실점/ 4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북아일랜드의 월드컵 토너먼트 진출을 이끌었던 1950년대 후반 영연방 최고의 골키퍼로 큰 키에서 나오는 긴 팔다리와 뛰어난 반응속도, 그리고 일대일 상황에서 각을 좁혀서 상대 공격수를 막아내는 플레이에 능했다.

돈캐스터 로버스에서 데뷔해 활약하다가 1957-58 시즌 겨울 이적시장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둥지를 옮긴 그렉은  맨유를 유러피언 컵 4강으로 인도했다. 뮌헨 비행기 참사로 인해 하락세를 겪었을 시절에도 굳건하게 팀의 기둥으로 활약했다. 특히 뮌헨 비행기 참사 현장에서 그는 비행기가 전복하는 사고에서 재빨리 몸을 피해 생존했는데 그대로 도망치거나 구경만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닌 다시 사고현장으로 뛰어나 감독 맷 버스비 외에 다수의 선수를 구해내며 희생자가 더 늘어나는 최악의 사태를 막아내며 뮌헨의 영웅이라고 불렸다.

북아일랜드 대표팀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한 그렉은 1958 스웨덴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조국의 첫 월드컵 진출을 이끌었고 본선 조별리그에서도 조 최약체로 평가받았던 조국 북아일랜드를 아르헨티나와 체코슬로바키아를 꺾고 서독의 뒤를 이어 조 2위로 8강에 진출하는데 큰 공을 세웠고 그렉은 복수의 매체로부터 대회 최우수 골키퍼로 평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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