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Top 10

국가의 영웅들/스페인

스페인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Top 10

토르난테 2025. 9. 23.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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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스페인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RSSSF와 트렌스퍼마크트이며 둘의 기록이 상충할 경우에는 전자를 우선적으로 따릅니다.
*기록일은 2025년 9월 20일 기준입니다.

 


10위 에드문도 수아레스

 


생년월일: 1916년 1월 22일
A매치 기록: 3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발렌시아 CF

일명 '문도'라고 불리던 바스크족 출신의 스트라이커로 거대한 체구를 활용한 포스트 플레이와 헤더 득점에 능했으며 우수한 위치 선정과 정확한 양발 슈팅으로 수많은 득점을 이뤄냈다.

1940년대 라리가 최고의 센터 포워드 중 한 명이자 발렌시아 통산 최다 득점자에 랭크된 문도 수아레즈는 발렌시아에서 라리가 3회 우승과 코파 델 레이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41-42 시즌과 1943-44 시즌에는 리그 우승은 물론 라 리가 득점왕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해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훌륭한 기량에도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국제대회를 개최하기 어려운 시대상과 전후에는 텔모 사라라는 걸출한 공격수까지 등장하며 국제대회에서 거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비운의 선수이기도 했다.

 

9위 페르난도 모리엔테스

 


생년월일: 1976년 4월 5일
A매치 기록: 47경기 27골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엘 모로라 불렸던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에 전성기를 누렸던 공격수로 양발과 머리를 모두 사용해 위치, 거리를 가리지 않고 득점포를 가동하더 스트라이커였고 연계에도 일가견이 있어 라울, 슈케르, 미야토비치와 같은 공격수들과 호흡을 맞춰 상대 수비라인을 공략했는데 특히 라울과의 조합이 이름을 날렸다.

레알 사라고사에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모리엔테스는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뒤 라리가 2회 우승과 UEFA 챔피언스리그 3회 우승을 이뤄내며 마드리드가 바이에른 뮌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함께 유럽을 지배하는 3M이라 불리는데 공헌했으나 호나우두의 이적으로 인해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 AS 모나코로 임대를 떠났는데 그곳에서도 팀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을 이끌며 UEFA 올해의 공격수와 UEFA 챔피언스리그 득점왕을 석권했고 리그앙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리버풀에서는 FA컵 우승을, 발렌시아에서는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이끌었다.

소속팀에 이어 스페인 대표팀에서도 라울과 호흡을 맞춘 모리엔테스는 1998 스페인 월드컵과 2002 한일 월드컵에 출전했는데 후자의 대회에서는 3골을 득점하며 조국의 8강 진출에 공헌했다. 그러나 UEFA 유로 2004 이후 페르난도 토레스, 다비드 비야와 같은 쟁쟁한 후배들에게 밀려난다.

 

8위 라파엘 모레노

 


생년월일: 1892년 5월 23일
A매치 기록: 5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54cm
주 소속팀: 아틀레틱 빌바오

본명보다는 그의 체구로 인한 별명인 피치치로 더 유명한 1910~20년대 스페인 최고의 공격수로 150cm대로 추정되는 작은 체구의 소유자였기에 경합 능력은 크게 떨어졌지만 그 반대급부로 지구력이 매우 우수하고 스피드가 빨랐으며 훈련장에서의 엄청난 노력 덕에 빠른 스피드와 높은 수준의 테크닉을 겸비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제치고 정밀도 높은 슈팅으로 득점력도 우수했으며 왕성한 체력으로 항상 득점하기 가장 편한 위치를 잡는데 능했다.

1910년대 빌바오의 전성기를 이끈 피치치는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역 리그에서 5회 우승을 이뤄냈고 당시 스페인 전국대회로 리그보다도 권위가 더 높았던 코파 델 레이에서도 4회 우승했다. 그리고 스페인 대표팀 소속으로도 1920 앤트워프 올림픽에서 주전으로 나서며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1921년 선수생활을 은퇴하고 심판으로 제2의 축구인생을 살던 피치치는 이듬해인 1922년 3월에 굴을 충분히 익히지 않고 섭취해 그로 인한 발진티푸스로 추정되는 이유로 사망했다. 그의 사후 라리가 득점왕에게 주는 트로피의 이름이 피치치 트로피였을 정도로 그는 스페인 초기 축구사의 영웅으로 역사에 남았다.

 

7위 세사르 로드리게스

 


생년월일: 1920년 7월 6일
A매치 기록: 12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1940년대 초반~1950년대 중반에 바르셀로나의 득점을 책임졌던 스트라이커로 키는 작았지만 용수철 같은 점프력에서 나오는 강력한 헤딩으로 득점했으며 타고난 골 감각과 양발 슈팅으로 수많은 득점을 기록했음은 물론 드리블 능력도 좋아 쿠발라, 바소라, 모레노 등과 함께 조합해서 활약했다.

바르셀로나 구단에서 공식전 기준 리오넬 메시 다음으로 많은 골을 넣었던 세사르 로드리게스는 라리가 5회 우승과 코파 델 레이 3회 우승, 그리고 라틴 컵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48-49 시즌에는 24경기 28골을 득점해 피치치 트로피를 수상했다.

바르셀로나에서의 출중한 활약을 바탕으로 아르마다 군단에 소집되었던 세사르 로드리게스는 텔모 사라가 몰락하기 전에는 그를 밀어내지 못해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 서브로 결승리그 진출을 경험했고 경쟁자 텔모 사라가 은퇴한 뒤에는 스페인 자체가 국제대회에서 힘을 못써 큰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6위 산티야나

 


생년월일: 1952년 8월 23일
A매치 기록: 56경기 15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1970년대와 80년대 레알 마드리드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로 발에 용수철이 달렸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압도적인 점프력을 활용해 헤더로 수많은 골을 득점했으며 헤더 한 부분만큼은 산도르 코치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호어스트 흐루베쉬 등과 함께 축구 역사상 최고의 헤딩의 달인으로 평가받는다.

데뷔 시즌에 라싱 산탄데르에서 데뷔해서 1년을 머문 것을 제외하고는 선수 생활 전체를 레알 마드리드에서 보낸 산티야나는 라리가 우승 9회, 코파 델 레이 우승 4회는 물론 UEFA 컵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82-83 시즌 컵 위너스컵에서는 퍼거슨이 이끄는 에버딘에게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산티야나 본인은 8골을 득점하며 대회 득점왕에 올랐고 구단에 머무는 동안 무려 열 시즌이나 리그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다.

스페인 대표팀에서도 퀴니를 제치고 주포로 중용받은 산티야나는 조국이 긴 암흑기를 탈출하고 메이저 대회에 복귀하는데 큰 공을 세웠는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과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했고 UEFA 유로 1984에서는 조국의 준우승에 공헌했다.

 

5위 퀴니

 


생년월일: 1949년 9월 23일
A매치 기록: 35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스포르팅 히혼

라리가의 앨런 시어러와 같은 선수로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서 라리가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으며 정확한 위치선정 능력과 날카로운 슈팅을 앞세워 활약했던 고전적인 스트라이커였는데 라리가 득점왕에게 수상하는 피치치 트로피를 스포르팅 히혼에서 3회, FC 바르셀로나에서 2회 수상했다.

1970년대~80년대 초반 라리가 최고의 공격수로 평가받았던 퀴니는 스포르팅 히혼에서 421경기 234골을 기록하며 맹활약했는데 특히 1978-79 시즌 돈 발롱 선정 라리가 MVP를 수상했고 이 활약을 바탕으로 바르셀로나로 이적해서도 팀 공격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두 팀에서 개인 통산 라리가 득점왕에게 수상하는 피치치 트로피를 5회 수상했다. 특히 1980-81 시즌에는 퀴니의 활약으로 바르셀로나가 리그 1위를 질주하고 있었지만 그가 괴한들에게 납치된 이후에는 주포를 잃은 타격으로 성적이 곤두박질쳤던 일화도 존재했다.

그러나 클럽에서의 대단한 퍼포먼스에도 불구하고 스페인 대표팀에서는 약세를 보였던 퀴니는 아르마다 군단에서도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과 UEFA 유로 1980, 그리고 1982 스페인 월드컵에 참가했으나 UEFA 유로 1980에서만 선발로 출전했고 나머지 대회에서는 라이벌 산티야나에게 밀렸다. 물론 클럽에서의 평균적인 활약은 산티야나를 크게 웃돌긴 했다.

 

4위 이시드로 랑가라

 


생년월일: 1912년 5월 25일
A매치 기록: 12경기 17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레알 오비에도

1930년대 유럽 정상급 공격수로 이름을 날렸으며 레슬러 같은 탄탄한 피지컬과 대단한 가속력을 바탕으로 활약을 펼쳤으며 특히 중거리 슈팅에 능했으며 랑가라가 뛰던 오비에도가 1933-34 시즌에 바르셀로나를 7-3으로 꺾은 적이 있었는데 랑가라는 50미터도 넘는 거리에서 프리킥으로 두 골을 넣었을 정도로 그의 슈팅은 대단했다.

레알 오비에도에서 첫 전성기를 누린 랑가라는 라리가에서 37경기만에 50골, 82경기만에 100골을 기록하는 등 스페인 축구 역사상 가장 빠른 50골, 100골 기록을 보유했는데 이는 호날두조차 깨지 못한 기록으로 이런 괴랄한 득점력을 바탕으로 라리가 득점왕에 3회 올랐음은 물론 이를 바탕으로 아르마다 군단에 승선해 1934 이탈리아 월드컵에 참가해 조국의 8강 진출을 이끌어냈다. 

1936년에 일어난 스페인 내전으로 인해 라틴 아메리카로 떠난 랑가라는 아르헨티나의 산 로렌소에서는 1940년에 아르세니오 에리코를 제치고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득점왕에 올랐음은 물론 두 번의 리그 준우승을 이뤄냈고 레알 클루브 에스파냐에서 멕시코 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두 번이나 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3위 페르난도 토레스

 


생년월일: 1984년 3월 20일 
A매치 기록: 110경기 38골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리버풀 FC

2000년대 후반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평가받았던 선수로 질풍과도 같은 순간 스피드로 상대 수비진의 오프사이드 트랩을 뚫어냈으며 우수한 득점력과 클러치 능력도 겸비한 금발의 스트라이커였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유스팀의 역작인 토레스는 2002-03 시즌부터 다섯 시즌 연속으로 라리가 두 자릿수 득점에 성공해 스페인 무대 정상급 공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라리가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리버풀에 입단한 첫 시즌에도 시즌 30골을 넘겨 세계의 축구팬들의 눈도장을 받아 발롱도르 투표에서 3위를 기록했고 2007-08 시즌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으며 PFA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되었다. 특히 이 시기에 공격형 미드필더에서 주로 활약했던 제라드와 제토라인으로 불리며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공격 듀오 중 하나로 명성을 떨쳤다.

첼시에서도 2011-12 시즌 4강에서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결승 진출을 확정 짓는 골을 득점하며 클러치 능력이 살아있음을 보여줬지만 전체적으로 하락세였고 AC 밀란에서는 완전히 몰락했다가 시메오네가 이끌던 친정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다시 폼을 일정 부분 찾으며 2017-18 시즌 UEFA 유로파 리그 우승을 경험하며 팀을 떠났고 말년에는 일본 J리그의 사간 도스에서 보내며 은퇴했다.

스페인 대표팀에서도 엘리트 코스를 밟아 UEFA U-16 선수권 대회와 UEFA U-19 선수권 대회에서 모두 득점왕을 차지했던 토레스는 UEFA 유로 2008에서는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득점하며 아르마다 군단의 유로 우승에 방점을 찍었고 이후 2010 남아공 월드컵과 UEFA 유로 2012에서는 서브 멤버로 활약했음에도 2012 UEFA 유로 골든슈를 수상하며 메이저 대회 3연패에 공헌했다.

 

2위 다비드 비야

 


생년월일: 1981년 12월 3일
A매치 기록: 98경기 59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발렌시아 CF

2000년대 후반과 2010년대 초반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우수한 판단력에서 나오는 절대 타이밍의 라인 브레이킹 능력과 양발 모두에서 날리는 정확한 슈팅으로 명성을 떨쳤고 우수한 축구지능에서 나오는 뛰어난 연계플레이를 자랑했음은 물론 최전방 공격수 외에도 처진 공격수나 측면공격수 포지션에서도 뛰어난 모습을 선보였다.

스포르팅 히혼에서 착실하게 성장해 레알 사라고사에서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워 세간의 주목을 받은 다비드 비야는 발렌시아에서 본격적인 전성기를 누리며 2006-07 시즌 라리가 도움왕에 올랐고 텔모 사라 트로피를 4회 수상했다. 그리고 2007-08 시즌 코파 델 레이에서는 우승을 이뤄냈다. 그러나 소위 쿠만 시절이라고 불리는 암흑기에 활약해서 우승 트로피를 손에 넣지 못하자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다.

티에리 앙리의 대체자로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다비드 비야는 펩 체제의 바르셀로나에서 2010-11 시즌 라리가와 챔피언스리그 더블 우승에 공헌했으나 2011년 클럽 월드컵에서 당한 부상으로 이후 시즌에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결국 2013-14 시즌을 앞두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팀을 떠나고 그곳에서도 디에고 코스타와 투톱을 구성해서 라리가 우승과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에도 기여했다. 그리고 말년에 머문 뉴욕 시티에서도 골 폭격을 멈추지 않았고 구단 통산 득점자에 오르기도 했다.

스페인 대표팀 통산 A매치 최다 득점자 타이틀을 보유한 다비드 비야는 UEFA 유로 2008에서는 득점왕에 오르며 팀의 우승에 크게 기여했고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무적함대의 월드컵 제패에 큰 공을 세우며 월드컵 브론즈볼과 실버슈를 수상했음은 물론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탈락 속에서 득점을 이뤄냈다. 그러나 부상으로 인해 주전 출전이 유력했던 UEFA 유로 2012에서 낙마해 메이저대회 3연패를 같이 이뤄내지 못한 부분은 아쉬웠다.

 

1위 텔모 사라

 


생년월일: 1921년 1월 20일
A매치 기록: 20경기 20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92kg
주 소속팀: 아틀레틱 빌바오

1940년대를 풍미한 폭격기로 양 발과 머리 모두로 득점하는 데 타고난 스페인 역사상 최고의 골잡이였고 그중에서도 특히 헤더는 당대 유럽 축구선수 중 최고로 평가받았는데 1950 브라질 월드컵 결승리그 스웨덴전에서 장내 아나운서가 그를 두고 "윈스턴 처칠의 뒤를 이은 유럽 최고의 헤더에게 경의를!"이라고 소개했다.

아틀레틱 빌바오에서 전성기의 대부분을 보낸 사라는 1942-43 시즌 라리가 우승과 코파 델 레이 5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라리가 득점왕에게 수여하는 피치치 트로피를 6회나 차지했고 라리가 역대 스페인 선수 최다 득점왕 수상자, 코파 델 레이 역대 최다 득점자 및 코파 델 레이 결승전 역대 최다 득점자에 올라섰다.

스페인 대표팀에서도 A매치 20경기에 출전해 20골을 득점한 사라는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아르마다 군단이 잉글랜드를 따돌리고 결승리그에 진출하는데 공을 세웠는데 이는 2010 남아공 월드컵 우승 이전까지 스페인 대표팀의 월드컵 최고 성적이었다. 2006년 2월 23일에 향년 85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그를 기념하기 위해 스페인 출신 라리가 최다 득점자에게 텔모 사라 트로피를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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