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축구 역사상 최고의 처진 공격수 Top 15

국가의 영웅들/스페인

스페인 축구 역사상 최고의 처진 공격수 Top 15

토르난테 2025. 9. 20.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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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스페인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RSSSF와 트렌스퍼마크트이며 둘의 기록이 상충할 경우에는 전자를 우선적으로 따릅니다.
*기록일은 2025년 9월 12일 기준입니다.

 


15위 페드로 무니티스

 


생년월일: 1975년 6월 19일
A매치 기록: 21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67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라싱 산탄테르

1990년대 말~2000년대 초에 라리가를 풍미한 왼발잡이 처진 공격수로 득점력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엄청난 가속력을 활용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수를 드리블로 따돌렸고 스피드를 앞세운 플레이 이외에도 창의적인 플레이로 상대의 허를 찌르는데 능해 언론으로부터 밀렵꾼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리고 처진 공격수는 물론 레프트윙 및 측면 미드필더로도 활약할 수 있었다.

라싱 산탄데르 역사상 최고의 선수인 무니티스는 1998-99 시즌과 1999-2000 시즌에 라싱에서 라리가 톱클래스 2선 자원으로 군림해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으나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라울 및 지단과 포지션이 겹치는 불운으로 인해 서브로 주로 나서며 2000-01 시즌 라리가 우승과 2001-02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2002-03 시즌에는 잠시 라싱 산탄데르로 임대로 돌아왔다가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로 이적해 프란과 루케의 백업 멤버로 활약하다가 2006-07 시즌에 라싱으로 리턴해 활약하다가 2011-12 시즌이 끝나고 은퇴했다.

스페인 대표티메서는 1999년과 2000년 사이에 주로 중용받았던 무니티스는 UEFA 유로 ​​2000에서 슈퍼 서브로 활약했는데 유고슬라비아 와의 조별 리그 4-3 승리에 교체 출전해서 동점골을 터트려 조국의 4-3 역전승을 이끌며 8강에 조 1위로 진출하는데 공헌했다.

 

14위 미겔 파르데사

 


생년월일: 1965년 2월 8일
A매치 기록: 5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65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레알 사라고사

1990년대 라리가 무대를 풍미한 다재다능한 공격 자원으로 측면과 중앙을 가리지 않고 뛰어난 역량을 보였으며 탄탄한 기본기를 앞세운 드리블과 유려한 패스를 활용한 찬스메이킹으로 팀의 공격 지휘자로 활약했음은 물론 우수한 슈팅 기술과 준수한 헤더까지 겸비해 마무리에도 장기를 드러냈다.

1980년대 레알 미드리드에서 부트라게뇨, 미첼, 마놀로 산치스, 라파엘 마르틴 바스케스와 함께 라 퀸타 델 부이트레, 즉 독수리 5형제로 불리며 기대받았던 기대주였으나 레알 마드리드에서 자리잡지 못해 사라고사로 이적한 뒤에 만개한 파르데사는 레알 사라고사 임대 시절에는 루벤 소사 및 피네다와 함께 공격 라인을 구축해 FC 바르셀로나를 꺾고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이뤄냈고 1987-88 시즌을 앞두고 레알 사라고사로 정식으로 이적해 활약한 결과 주장 자리까지 올라섰다. 그리고 1993-94 시즌 코파 델 레이 우승과 1994-95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냈는데 후자의 대회 4강 1차전에서는 첼시 FC를 상대로 기가 막힌 헤더로 선제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스페인 대표팀에서는 청소년 대표 레벨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하며 기대받던 파르데사는 성인 대표팀에서는 기회를 거의 받지 못했는데 메이저 국제 대회에서는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서브로 나서며 조별리그 벨기에와의 경기에서 2분 출전에 그쳤다.

 

 

13위 미켈 오야르사발

 


생년월일: 1997년 4월 21일
A매치 기록: 47경기 17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레알 소시에다드

레알 소시에다드의 토마스 뮐러라 불릴 만한 선수인데 해당 시대의 각 구단 최고의 유망주로 데뷔 시즌부터 중용되었던 성장 배경도 비슷하며 영리한 움직임과 우수한 공간 지각력을 바탕으로 효율적인 공간 활용의 진수를 보여주며 상대를 속이고 빠르게 침투해 직접 득점을 노리거나 찬스를 만들어 동료들을 돕는 두 부분에 모두 능해 상대 수비진과 골키퍼에게 다지선다를 강요하는 라움도이터라는 부분에서 굉장히 비슷하다.

성인 무대에 데뷔한 2015-16 시즌부터 주전자리를 차지하며 다섯 시즌 연속으로 공식전 통산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한 오야르사발은 특히 2019-20 시즌 코파 델 레이 결승에서는 빌바오와의 바스크 더비에서 오야르사발이 직접 페널티킥을 성공해 결승골을 득점하며 21세기 첫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이뤄내는 활약을 펼쳤으며 현재는 구단의 부주장직을 역임했다.

스페인 대표팀에서도 연령별 대표팀을 두루 거친 오야르사발은 UEFA 유로 2020에서 크로아티아와의 16강전에서 연장 전반 상대 수비진의 잡중력 상실을 놓치지 않고 8강 확정골을 득점하는 등 조국의 4강 진출에 공을 세웠고 2020 도쿄 올림픽에서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UEFA 유로 2024에서는 결승전 직전까진 부진했지만 결승전에 결승골을 터트리며 조국의 우승을 이뤄내는데 중요한 분기에서 큰 활약을 펼쳤다.

 

12위 후안 아르사

 


생년월일: 1923년 6월 12일
A매치 기록: 2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세비야 FC

기예르모 캄파날, 프레데리크 카누테와 함께 세비야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로  평가받은 인물이자 1940년대 라리가 정상급 인사이드 포워드로 뛰어난 기본기와 화려한 드리블, 그리고 정확한 패스와 날카로운 득점 감각을 모두 겸비한 완성형 포워드였다.

세비야 구단 통산 득점 2위 및 통산 라리가 득점 1위에 랭크된 아르사는 1945-46 시즌 라리가 우승 및 1947-48 시즌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이끌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어냈고 1954-55 시즌에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와 쿠발라 라슬로를 모두 제치고 라리가 득점왕에 올랐다.

다만 스페인 대표팀과는 다소 인연이 없었는데 쿠발라 라슬로, 후안 파니소는 물론이고 백업 경쟁에서도 루이스 몰로니에 밀렸기에 스페인 대표팀 선발로는 거의 나서지 못했다. 

 

11위 루이스 몰로니

 


생년월일: 1925년 5월 12일
A매치 기록: 7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67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1940년대 중반~50년대 후반에 스페인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인사이드 레프트 겸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화려한 볼 컨트롤과 빠른 스피드를 바탕으로 한 신속정확한 드리블로 상대를 따돌렸고 드넓은 시야와 정확한 왼발 테크닉을 바탕으로 중앙으로 날카로운 패스를 찔러 넣거나 측면으로 빠져 왼발 크로스로 지원하는 플레이에 모두 능했음은 물론 작은 키에도 점프력과 위치 선정 능력도 뛰어나 헤더로도 많은 골을 터트렸다.

마리노에서 데뷔해 레알 마드리드에서 팀의 암흑기와 전성기를 모두 겪은 몰로니는 암흑기 시절에는 팀 공격을 이끄는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했는데 특히 1946-47 시즌에는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이뤄냈고 라리가 우승팀 발렌시아를 코파 에바 두아르테에서 격파하기도 했다. 디 스테파노가 합류한 뒤에는 그를 보조하는 역할을 맡아 라리가 3회 우승 및 유러피언 컵 2회 우승, 그리고 라틴컵 2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그의 레알 마드리드 마지막 시즌인 1956-57 시즌에는 라리가와 유러피언 컵, 그리고 라틴컵 트레블을 이뤄냈다.

스페인 대표팀 소속으로는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 파니소와 이고라의 백업 역할로 참가했다.

 

10위 주제프 에스콜라

 


생년월일: 1914년 8월 28일
A매치 기록: 2경기 1골
신체조건: 미상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1930년대부터 40년대까지 FC 바르셀로나의 아이콘으로 군림했던 인사이드 포워드 겸 센터 포워드로 남다른 볼 컨트롤과 절묘한 테크닉을 바탕으로 한 효율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원터치 플레이에 능했음은 물론 문전 앞에서는 굉장히 침착해 득점력도 우수했다.

1934년에 FC 바르셀로나에 입단한 에스콜라는 카탈루냐 챔피언십 3회 우승을 이뤄냈으나 스페인 내전으로 인해 잠시 프랑스의 세트 34로 떠났다가 1940년에 다시 돌아와 활약하며 1941-42 시즌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시작으로 라리가 2회 우승을 이뤄내며 화려하게 은퇴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인해 스페인 대표팀에서의 활약은 거의 없었던 에스콜라는 에스콜라는 그 누구에게도 나쁜 말을 한 적이 없었기에 동료들은 물론 상대 선수들에게도 존경을 받았다. 선수 은퇴 직후에는 바르셀로나의 지휘봉을 잡아 감독으로 라틴컵 우승을 이뤄내기도 했다.

 

 

9위 엑토르 리알

 


생년월일: 1928년 10월 14일
A매치 기록: 5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저승사자 군단의 공격을 이끈 포워드 중 한 명으로 뛰어난 테크닉과 넓은 시야, 그리고 빈 공간으로의 적절한 롱패스로 공격 활로를 개척했음은 물론 굵은 허벅지를 이용한 강력한 슈팅과 다부진 체격을 바탕으로 제공권 경합에서 상대에게 우위를 점해 헤더로 찍어 누르는 부분에도 능했다.

아르헨티나의 산 로렌소, 콜롬비아의 인디펜디엔테 산타페, 우루과이의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리그 우승을 경험했다가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한 리알은 디 스테파노, 헨토, 호세이토 등과 함께 유려한 스위칭 플레이로 라리가 4회 우승 및 유러피언 컵 5연패, 그리고 라틴컵 2회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끈 주역으로 이름을 날렸다.

아르헨티나 대표팀 경력은 없고 스페인 대표팀에서 A매치 다섯 경기에 나선 리알은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펼쳐진 잉글랜드와의 친선전에서 결승골을 터트렸다.

 

8위 파코 캄포스

 


생년월일: 1916년 3월 8일
A매치 기록: 6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940년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에이스로 주 포지션은 인사이드 레프트였지만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던 공격자원으로 빠른 선수는 아니었지만 뛰어난 테크닉을 활용한 드리블로 수비수 두 명 정도는 뚫어낼 수 있었으며 동료들에게 양질의 패스를 지원해 공격 찬스를 만드는 능력은 물론 상대 패널티박스 안으로 직접 침투해 헤딩이나 강력하면서도 정교한 왼발 슈팅으로 수많은 득점을 이뤄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통산 득점 3위에 올라있는 캄포스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1939-40 시즌에 라리가와 코파 델 레이 더블을 이뤄냈고 1940-41 시즌에도 라리가에서 재차 우승하는 등 라리가 2연패를 이뤄내며 구단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특히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총 12골을 터트리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소속 한정 마드리드 더비 최다 득점자의 기록을 세워 반세기 넘게 타이틀을 지키고 있었다. 말년에는 하부리그의 스포르팅 히혼으로 떠나 히혼을 라리가로 승격시키는 공을 세우기도 했다.

스페인 대표팀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이라 많은 경기를 뛰지 못한 캄포스는 6경기라는 제한적인 출전 시간에도 무려 다섯 골이나 터트렸다.

 

7위 호아킨 페이로

 


생년월일: 1936년 1월 29일
A매치 기록: 12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950년대 하반기와 1960년대 상반기에 활약한 인사이드 포워드로 화려한 발재간과 질풍같은 순간스피드를 겸비했으며 정확한 슈팅으로 득점으로 마무리하는 한 편의 음악을 들려준다고 하여 팬들에게 바이올리니스트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누린 피에로는 코파 델 레이 2회 우승 및 1961-62 시즌에는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냈고 인테르로 이적해서는 세리에 A 2연패와 1964-65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냈으나 출전시간 부족으로 팀을 떠났다. AS 로마에서도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다.

스페인 대표팀에서도 중용받은 피에로는 1962 칠레 월드컵에서는 주축으로 활약했고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도 주전으로 참가했으나 정작 UEFA 유로 1964에는 나서지 못했다.

 

6위 파울리노 알칸타라

 


생년월일: 1896년 10월 7일
A매치 기록: 5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56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스페인과 필리핀의 혼혈 선수로 마른 체형과는 다르게 엄청난 슈팅 파워로 인해 1922년 4월 30일,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35 야드 거리에서 골을 넣었는데, 네트가 찢어지며 골네트 파괴자라는 별명이 생겼으며 두 번째는 1922년 5월 20일 경기에서 또 네트를 찢었으며 엄청난 슈팅 파워와 중거리 슈팅 능력 이외에도 드리블로 풀어나가는 능력도 능했다. 

바르셀로나로 입단했다가 필리핀에서 떠나 다시 돌아와 에이스로 군림한 알칸타라는 바르셀로나에서만  399경기에 나서 395골을 기록했고 카탈루냐 주립 리그에서 10회 우승했으며 전국 대회인 코파 델 레이에서도 5회 우승을 기록하는 괴력을 펼쳐 바르셀로나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특히 최고 전성기라 평가받는 1921-22 시즌에는 24경기에 출전해 45골을 득점하는 괴력을 선보인 파울리뉴 알칸타라는 카탈루냐 챔피언십에서 19골을 득점하며 우승과 득점왕을 동시에 석권했고 전국 대회인 코파 델 레이에서도 8강전 세비야와의 2차전 해트트릭, 준결승전 히혼과의 2차전 해트트릭 및 결승전에서도 레알 우니온을 상대로 멀티골을 득점하며 우승과 대회 득점왕을 동시에 석권했다.

 

5위 에밀리오 부트라게뇨

 


생년월일: 1963년 7월 22일
A매치 기록: 69경기 26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1980년대 스페인 축구를 상징하던 공격수로 부드러운 볼 터치와 상대를 기만하는 드리블, 그리고 양발을 모두 잘 썼으며 슈팅 스킬도 우수했던 완벽한 공격수였는데 처진 공격수로 분류되었지만 득점력이 우수했음은 물론 탁월한 위치선정과 적시에 점프해서 헤더 득점 부분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스페인 무대를 호령한 라 퀸타 델 부이트레, 즉 독수리 오형제라 불리던 레알 마드리드 유스 출신 주전 선수들의 우두머리라 불렸던 부트라게뇨는 멕시코산 득점기계 우고 산체스와 호흡을 맞추며 라리가 5연패를 포함해 총 6회 우승을 이뤄냈고 코파 델 레이와 UEFA컵에서도 각각 2회 우승을 이뤄냈다. 부트라게뇨 개인도 1986년과 1987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3위를 기록하며 포디움에 들었으며 1990-91 시즌에는 라리가 득점왕을 차지하며 피치치상을 수상했다.

스페인 대표팀에서도 일찍부터 소집되어  UEFA 유로 1984에서 백업 멤버로 준우승을 경험했고 이후 주전으로 도약해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서독, 우루과이, 스코틀랜드를 상대로 3전 전승으로 올라온 데니쉬 다이너마이트 덴마크를 상대로 네 골을 넣으며 5-1로 대승하는데 공헌하며 대회 실버슈를 수상함과 동시에 올스타팀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UEFA 유로 1988과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활약으로 비판받기도 했다.

 

4위 라울 곤살레스

 


생년월일: 1977년 6월 27일
A매치 기록: 102경기 44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2000년대 상반기 스페인을 대표하는 공격수였으며 빼어난 슈팅 스킬, 탄탄한 기본기, 정확한 판단력과 영리한 축구 지능은 물론 지치지 않는 지구력까지 겸비한 만능형 공격수였으며 공격형 미드필더와 좌우 윙어, 그리고 좌측 메짤라까지도 소화할 수 있는 높은 전술안을 가졌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보내며 구단의 황금기와 갈락티코 1기를 거쳐 칼데론 시절 암흑기까지 헌신한 라울은 꾸준하면서도 번뜩이는 모습을 보이며 라리가 6회 우승과 UEFA 챔피언스리그 3회 우승을 이뤄내며 이 시대를 라울 마드리드라 불렀을 정도로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그의 위상은 대단했다. 라울 개인도 피치치상 2회 수상과 텔모 사라상 4회 수상은 물론 챔피언스리그 득점왕 2회와 UEFA 클럽 올해의 공격수 3회 수상의 위엄을 자랑했으며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서도 8번 선정되어 2001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의 순위인 2위를 차지했다.

클럽에서는 영광의 시대를 보냈지만 국가대표팀에서는 아쉬운 시대를 보낸 라울은 그래도 개인 기량은 훌륭해 UEFA 유로 2000에서는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고 이에로가 보유하고 있던 스페인 대표팀 최다 득점자 타이틀을 갱신했었고 2002 한일 월드컵에서의 폼도 우수했으며 총 세 번의 월드컵과 두 번의 유로에 참가했다.

 

3위 쿠발라 라슬로

 


생년월일: 1927년 6월 10일                         
A매치 기록: 19경기 11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아이돌이라는 별명에 맞게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는 화려한 플레이로 명성을 날렸는데 힐 패스나 드래그백 후 패스 같은 고난도 기술도 서슴없이 구사했으며 디 스테파노와 푸스카스를 능가하는 발재간 능력과 창의적이고 상대의 허를 찌르는 패스를 활용해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보여줬고 득점력도 준수했다.

페렌츠바로시에서 활약하다가 헝가리 공산정부의 박해를 피해 탈출하여 체코슬로바키아를 거쳐 1951년부터 바르셀로나에 정착해 활약한 쿠발라는 라리가 4회 우승과 코파 델 레이 5회 우승을 포함해 총 13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며 레알 마드리드의 디 스테파노와의 라이벌리는 라리가를 세계적인 리그로 성장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다.

스페인 대표팀에서의 활약상은 아쉬웠움에도 FC 바르셀로나의 아이돌로 군림한 쿠발라 개인도 마르카 평점 기반 라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으며 1957년에는 발롱도르 5위에 올랐고 1999년에는 클럽 창단 100주년 선성 바르셀로나 팬들이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바르셀로나 선수로 선정되었다.

 

2위 푸스카스 페렌츠

 


생년월일: 1927년 4월 1일
A매치 기록: 4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축구 역사상 최고의 유럽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선수로 오른발과 헤딩을 하지 못했음에도 오직 왼발로만 축구계를 평정했으며 뚱뚱한 체구와는 다르게 빠른 스피드를 보유했으며 우수한 볼 컨트롤과 테크닉, 그리고 공격을 주도하는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모두 겸비했으며 특히 드래그 백을 실전에서 처음 상대한 선수로 유명했다.

자타공인 부다페스트 혼베드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구단 통산 공식전 최다 득점자로 키슈페슈트에 데뷔해 활약한 푸스카스는 혼베드에서 소령 계급장을 달고 공격의 핵으로 군림하며 정규리그 넴제티 버이녹샤그 5회 우승했고 득점왕을 4회 수상하는 등 구단의 황금기에 크게 기여했다.

헝가리 대표팀 시절에는 매직 마자르 시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헝가리 대표팀 통산 최다 득점자에 이름을 올린 푸스카스는 1952 헬싱키 올림픽에서 우승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5년간 진행된 중유럽컵에서도 우승은 물론 득점왕까지 차지했다. 1954 서독 월드컵에서도 조별리그 서독전에서 당한 부상으로 고생했고 이 여파로 준우승에 머물렀음에도 ESPN이 선정한 대회 올스타팀에 선정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쳤으나 헝가리 혁명을 외세인 소련군을 불러 진압한 헝가리 정부에게 실망해 스페인에 망명하면서 매직 마자르 시대를 끝내기도 했다.

스페인으로 망명하고 2년을 쉬었음에도 여전히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했던 푸스카스는 디 스테파노와 함께 저승사자 군단에 선봉을 서며 라리가 5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3회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으며 레알 마드리드가 축구라는 종목을 대표하는 클럽으로 성장하는데 크게 기여했으며 1959-60 시즌 유러피언 컵 결승에서만 4골을 기록했으며 인터콘티넨탈컵에서 남미의 왕 페냐롤을 이긴 2차전에서 5분 만에 선제골을 넣으며 5-1 대승에 크게 공헌했음은 물론 라리가 득점왕 4회 수상, 유러피언 컵 득점왕 2회 수상하며 득점력을 뽐냈다. 특히 1960년 발롱도르에서 2위를 차지했는데 그 해 발롱도르는 푸스카스가 받았어야 한다는 여론이 더 많았다.

 

1위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생년월일: 1926년 7월 4일
A매치 기록: 31경기 23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축구 역사상 가장 다재다능한 선수로 평가받는 인물로 60년대를 수놓은 명장 에레라의 말을 빌리면 "디 스테파노는 최고의 공격수이자 최고의 미드필더이며 훌륭한 수비수였다."라는 표현을 받았을 정도로 대단한 선수였다.

아르헨티나 시절에는 리버 플레이트에서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2회 우승을 이뤄낸 디 스테파노는 대표팀에서도 1947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와 FIFA의 갈등으로 콜롬비아 국적을 취득한 뒤 엘도라도라 불리던 콜롬비아 무대의 미요나리요스에서 리그 3회 우승을 이뤄냈으나 콜롬비아 역시 FIFA로부터 징계를 받자 스페인으로 떠난다.

1940년대부터 50년대 초반까지의 레알 마드리드는 카스티야에서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치이고 스페인 전체에서는 바르셀로나와 빌바오에게 밀리는 암흑기였으나 디 스테파노가 레알 마드리드에 입성한 순간부터 라리가의 생태계는 일명 저승사자라 불렸던 레알 마드리드의 독주 체제로 변했다. 실제로 디 스테파노는 라리가 8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5연패를 포함해 총 18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내며 레알 마드리드를 축구라는 종목을 대표하는 클럽으로 성장시켰다.

라리가 득점왕을 다섯 번이나 차지했으며 유러피언 컵에서는 득점왕을 두 번 차지했고 두 번의 발롱도르를 수상한 디 스태파노는 스페인에서도 대표팀의 한을 풀지 못했는데 스페인에서도 월드컵 개막 직전에 부상당하며 월드컵과의 악연을 끝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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