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Top 10

국가의 영웅들/프랑스

프랑스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Top 10

토르난테 2025. 8. 11.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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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아르헨티나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으며 이탈리아나 스페인으로 귀화한 오리운디도 아르헨티나 대표팀 경력이 있으면 포함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RSSSF와 트렌스퍼마크트이며 둘의 기록이 상충할 경우에는 전자를 우선적으로 따릅니다.
*기록일은 2025년 8월 10일 기준입니다.

 


10위 루시앵 뮐러

 


생년월일: 1934년 9월 3일
A매치 기록: 16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레이몽 코파와 비슷한 플레이 스타일로 작은 코파라 불렸던 선수로 우수한 전진 드리블과 날카로운 원터치 패스를 활용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공격형 미드필더나 처진 공격수 이외에도 중앙 미드필더도 소화할 수 있었다.

선배 코파와 비슷하게 스타드 드 랭스와 레알 마드리드에서 전성기를 누린 뮐러는 랭스에서는 리그앙 2회 우승을 이뤄냈고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클럽에서는 라리가 3회 우승과 1963-64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이뤄내며 팬들로부터 루시아노 경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나 1965-66 시즌을 앞두고 바르셀로나로 이적하며 많은 마드리시모들을 화나게 했는데 그들의 바람과는 다르게 바르셀로나에서도 1965-66 시즌 인터시티 페어스 컵 우승과 1967-68 시즌에는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이뤄내기도 했다.

레 블뢰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한 뮐러는 UEFA 유로 1960에서 조국의 4강 진출에 기여하며 발롱도르 투표에서 유효표를 받았으나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팀의 조기 탈락을 막지 못했다.

 

9위 요앙 미쿠

 


생년월일: 1973년 7월 24일
A매치 기록: 17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베르더 브레멘

지네딘 지단과 동세대라 그의 그림자에 가려진 고전적인 공격형 미드필더로 우수한 판단력과 지단에 못지않은 패싱력을 바탕으로 팀의 플레이메이킹을 주도했다.

AS 캉에서 데뷔해 팀을 리그앙을 승격시켰음은 물론 중상위권까지 올리며 주목받은 미쿠는 1998-99 시즌에는 지롱댕 보르도의 리그앙 우승을 이끌었고 파르마에서는 2001-02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다. 베르더 브레멘으로 이적한 뒤에는 최전성기를 누렸는데 특히 2003-04 시즌에 바이에른 뮌헨을 제치고 분데스리가와 DFB포칼 우승을 이뤄내며 도메스틱 더블을 이뤄냈으며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다.

다만 프랑스 대표팀에서는 상술했듯 지네딘 지단의 존재로 인해 주전으로 뛸 수 없었고 백업 멤버로 UEFA 유로 2000 우승을 경험했다.

 

8위 베르나르 장기니

 


생년월일: 1958년 1월 18일
A매치 기록: 27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79cm
주 소속팀: 쇼쇼

1980년대 프랑스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트레콰르티스타로 드넓은 시야와 우수한 패싱력에서 나오는 자로 잰 듯한 정확한 중장거리 패스로 골 찬스를 만들었으며 직접 프리킥으로 득점을 노리는 부분에도 능했다.

쇼쇼에서 데뷔해 첫 전성기를 누린 장기니는 1980-81 시즌에는 UEFA컵에서 대회 디펜딩 챔피언인 프랑크푸르트를 제치고 준결승에 오르는데 큰 공을 세웠고 생테티엔을 거쳐 모나코에서도 전성기를 누리며 1984-85 시즌 AS 모나코의 쿠프 드 프랑스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말년에는 신흥강호 마르세유에서도 활약했다.

프랑스 대표팀에서도 중용받은 장기니는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조국의 준결승 진출에 공을 세웠는데 특히 쿠웨이트전과 오스트리아전에서 프리킥 득점을 성공하며 펠레, 히벨리누, 쿠비야스, 베컴과 함께 월드컵 역사에서 직접 프리킥으로 두 골을 넣은 다섯 선수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남겼다. 이후에는 플라티니의 백업 역할을 수행했다.

 

7위 디미트리 파예트

 


생년월일: 1987년 3월 29일
A매치 기록: 38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올림피크 마르세유

2010년대 중후반에 이름을 날렸던 2선 자원으로 강력하면서도 정확한 킥력과 우수한 테크닉은 물론 효율적인 패스로 찬스를 만드는 부분에도 능했다.

낭트에서 데뷔해 셍테티엔, 릴에서 활약하다가 마르세유에서 전성기를 맞은 파예는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를 잠시 활약하며 2015-16 시즌에 PFA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으며 다시 마르세유로 돌아와 2017-18 시즌 유로파리그 준우승을 이뤄냈고 개인적으로도 리그앙 올해의 팀에 3회 선정되었다.
 
프랑스 대표팀에서는 UEFA 유로 2016에 주전으로 활약하며 3골을 득점하며 팀의 결승행에 기여했고 결승전에서는 전반 초반에 호날두를 부상을 입혔으나 그 뒤로는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치지 못하며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지만 파예 본인은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6위 르네 프티

 


생년월일: 1899년 10월 8일
A매치 기록: 2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레알 우니온

프랑스와 스페인의 두 국적을 가진 인사이드 포워드로 최전방에서도 활약할 수 있었지만 드넓은 시야와 높은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킬패스로 어시스트를 주는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선호했던 판타지스타였으며 하프백에서도 종종 활약했다.

프랑스 국적이 있었고 A매치도 뛰었지만 선수 생활 대부분을 스페인에서 보낸 프티는 지금은 레알 마드리드로 불리는 마드리드 FC에서 데뷔하며 1917년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이뤄냈고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보낸 레알 우니온에서는 1918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이끌었다.

본업으로는 엔지니어로 활동했던 르네 프티는 프랑스 대표팀에서는 1920 앤트워프 올림픽에 참가했는데 1차전에서 스위스를 이겼지만 8강전에서 체코슬라비아에게 대패했다.

 

5위 라르비 벤바렉

 


생년월일: 1917년 6월 16일
A매치 기록: 19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블랙펄, 일명 흑진주라 불렸던 1940년대 최고의 미드필더로 2차 세계 대전으로 커리어가 끊길뻔했으나 뛰어난 자기 관리 능력을 바탕으로 30대가 넘어서도 기량을 유지했으며 탄탄한 기본기와 뛰어난 창의력, 그리고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플레이메이킹에 능했으며 득점력도 준수한 인사이드 포워드였다.

모로코에서 축구를 시작한 벤바렉은 프랑스에서는 마르세유, 스타드 프랑스에서 활약했고 여러 인종차별을 이겨낸 뒤 프랑스 대표티메서도 활약했던 첫 번째 흑인으로 이름을 남겼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는 스페인 무대에서 활약한 벤바렉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라리가 2연패와 1950-51 시즌 도메스틱 더블을 이뤄냈는데 특히 마드리드 더비에서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며 1949년부터 1952년까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4연승을 이뤄냈고 특히 1950-51 시즌에는 멀티골을 터트리며 6-3 대승을 주도하며 맹활약했다. 이런 활약을 본 펠레는 그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축구의 왕이라면 벤바렉은 축구의 신이다."

 

4위 알랭 지레스

 


생년월일: 1952년 8월 2일
A매치 기록: 47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63cm / 몸무게 59kg
주 소속팀: 지롱댕 보르도

미셸 플라티니와 함께 1980년대 프랑스 리그를 대표하던 공격형 미드필더로 163cm라는 매우 작은 키를 가지고 있었지만 비단뱀과 같은 드리블과 유려한 볼 컨트롤은 물론이고 넓은 시야와 기발한 창의성을 바탕으로 찔러주는 패스를 활용한 플레이메이킹은 당대 유럽 제일이었다.

지롱댕 보르도에서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보내며 구단 통산 최다 출전자이자 최다 득점자인 지레스는 리그앙 2연패를 이뤄냈고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에 5회 연속으로 선정되었음은 물론 프랑스 올해의 선수 3회 선정 및 옹즈 몽디알이 뽑은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연속 선정되었다.

프랑스 대표팀에서도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인 지레스는 플라티니, 장 티가나, 루이 페르낭데와 함께 마법의 사각형의 일원으로 활약했는데 1982 스페인 월드컵 4위, UEFA 유로 1984 우승, 1986 멕시코 월드컵 3위를 기록했다. 특히 1982 스페인 월드컵과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두 대회 합쳐서 48개의 골 찬스를 만들어내며 플라티니 이상의 존재감을 뿜어내기도 했고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발롱도르와 옹즈도르 2위에 올랐으며 1984년 발롱도르 투표에서는 9위에 올랐다.

 

3위 레이몽 코파

 


생년월일: 1931년 5월 5일
A매치 기록: 45경기 18골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스타드 드 랭스

1950년대 유럽을 대표하는 공격형 미드필더이자 프랑스 축구를 대표하는 스타로 키가 작았지만 뛰어난 리더십과 우수한 기량을 보여줘서 나폴레옹이라 불렸던 선수다. 양발 사용 능력과 드리블 돌파 능력이 특히 대단했으며 상대 수비의 허를 찌르는 킬 패스로 스트라이커들을 지원하는데 능했으며 레알 마드리드 시절에는 측면 공격수로도 훌륭한 모습을 보여줬다.

스타드 드 랭스의 전성기를 이끈 레이몽 코파는 프랑스 리그 2회 우승은 물론 1953년에는 라틴 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첫 유러피언 컵 결승전에서는 랭스를 결승에 올렸지만 레알 마드리드에게 패했다. 이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뒤에는 디 스테파노, 푸스카스에 밀려 자신의 포지션에서 플레이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웃사이드 라이트에서도 우수한 기량을 발휘하며 라리가 2연패와 유러피언 컵 3회 연속 우승, 그리고 1957년 라틴 컵 우승에 공헌하며 저승사자 군단의 신화를 쓰는데 일부 기여하기도 했으나 다시 랭스로 돌아가 리그 우승 2회를 더 추가하며 랭스에서 총 4번의 정규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1950년대 프랑스 대표팀을 이끌고 두 번의 월드컵에 출전한 코파는 1958년 대회에서는 퐁텐, 장 뱅상, 피앙토니, 위스네스키와 함께 위협적인 공격 편대를 구상했으나 펠레의 브라질에 패해 3위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코파는 3골 9도움이라는 우수한 활약으로 대회 베스트 일레븐과 발롱도르를 수상함으로써 유럽 국적의 선수들 중에서는 최고의 선수임을 입증했다.

 

2위 지네딘 지단

 


생년월일: 1972년 6월 23일
A매치 기록: 108경기 31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1990년대 후반기와 2000년대 상반기에 호나우두와 함께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던 선수로 드넓은 시야와 신속정확한 판단력, 그리고 우아한 볼 컨트롤 능력과 창의적인 패스로 경기장을 지배하는 마에스트로였는데 신체 능력도 우수해 탈압박에도 능했으며 특히 큰 경기에서의 클러치 능력이 빛나던 선수였다.

AS 캉에서 데뷔해 지롱댕 보르도에서 월드클래스 선수로 성장한 지단은 첫 전성기를 누린 유벤투스에서는 세리에 2연패와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2회라는 성적을 거뒀고 세계 최고 이적료를 경신하고 이적한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2001-02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의 발리 슈팅을 활용한 결승골과 2002-03 시즌 라리가 우승에 기여한 활약으로 다소 꾸준하게 활약하지 못하고 엘 클라시코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줬음에도 레알 마드리드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클럽에서의 개인 커리어도 대단한 지단은 1993-94 시즌 리그앙 영 플레이어상을 시작으로 1995-96 시즌에는 리그앙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고 피파 올해의 선수상을 3회나 수상했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5위 안에 6회 들었음은 물론 1998년에는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지단의 백미는 클럽 활약이 아닌 역시 레 블뢰의 최전성기를 이끈 활약상인데 UEFA 유로 1996부터 2006 독일 월드컵까지 모든 대회를 참가했고 그중 UEFA 유로 1996과 2002 한일월드컵을 제외한 모든 대회에서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특히 1998 프랑스 월드컵과 UEFA 유로 2000은 우승을 차지했는데 1998년에는 결승전에서 멀티골을 득점하는 맹활약을 앞세워 발롱도르를 수상했으며 UEFA 유로 2000과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대회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다.

 

1위 미셸 플라티니

 


생년월일: 1955년 6월 21일
A매치 기록: 72경기 41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80년대 상반기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로 1983년부터 1985년까지 발롱도르 3회 연속 수상을 기록해 남미의 지쿠, 디에고 마라도나에 대한 유럽의 대답이라 불렸는데 드넓은 시야와 창의적인 패싱력을 바탕으로 하는 플레이메이킹은 일품이었으며 경기가 안 풀릴 때에는 3선 지역까지 내려가서 볼을 순환시켰다. 그리고 전방에서 동료들과 연계하며 많은 득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훌륭한 킥력을 바탕으로 하는 롱패스는 당대를 넘어 역대에서도 최고라 할 만했다.

낭시에서 데뷔해 1974-75 시즌 2부 리그 우승 및 1977-78 시즌 쿠프 드 프랑스 우승을 이뤄내며 두각을 나타낸 플라티니는 생테티엔에서도 1980-81 시즌 리그앙 우승을 이뤄냈고 유벤투스 시절에는 본격적으로 세계 최고의 기량을 선보였는데 입단 첫 시즌에 1982-83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 및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이뤄냈고 이후에는 세리에 A 2회 우승 및 1983-84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과 1984-85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냈다. 당연하게도 1984 유러피언 슈퍼컵과 1985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플라티니 개인도 리그앙 시절에는 프랑스 올해의 선수에 2회 선정되었고 유벤투스에 머무는 동안 발롱도르 3회 연속 수상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으며 1983-84 시즌 구에린 도르 수상과 세리에 A 득점왕 3회 수상 및 1984-85 시즌에는 세리에 A와 유러피언 컵에서 동시에 득점왕을 수상했다. 옹즈 몽디알 선정 유럽 베스트 일레븐 6회 선정 및 월드 사커 올해의 팀 4회 선정, 그리고 구에린 스포르티보 올해의 선수에도 2회 선정되었다. 당연하게도 유벤투스 명예의 거리와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었다.

프랑스 대표팀에서도 역시 대단한 활약을 펼친 플라티니는 티가나, 지레스, 루이 페르난데스와 함께 마법의 사각형이라 불리는 중원 조합을 구성해 1982 스페인 월드컵과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4강에 진출했고 UEFA 유로 1984에서는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UEFA 유로 1984에서의 활약이 일품이었는데 경기에 끼치는 영향력이 대단했음은 물론 단일대회 5경기 9골을 기록하며 2021년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경신할 때까지 유로 역대 최다 득점자에 이름을 올렸었다. 호날두가 다섯 대회에서 득점을 기록한 것을 생각하면 다섯 경기에서 9골이나 득점한 플라티니의 활약이 얼마나 대단한 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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