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윙어 Top 10

국가의 영웅들/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윙어 Top 10

토르난테 2025. 6. 2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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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아르헨티나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으며 이탈리아나 스페인으로 귀화한 오리운디도 아르헨티나 대표팀 경력이 있으면 포함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RSSSF와 트렌스퍼마크트이며 둘의 기록이 상충할 경우에는 전자를 우선적으로 따릅니다.
*기록일은 2025년 6월 22일 기준입니다.

 


10위 레네 오우세만

 


생년월일: 1953년 7월 19일
A매치 기록: 55경기 13골
신체조건: 키 165cm / 몸무게 63kg
주 소속팀: CA 우라칸

1970년대 아르헨티나를 대표했던 측면 공격수로 민첩한 몸놀림과 우수한 드리블 돌파 실력은 물론 양발 모두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어서 어느 상황에서든 크로스와 슈팅을 날릴 수 있었기에 대표팀 감독 세사르 루이스 메노티는 그를 두고 "마라도나와 가린샤의 혼합체"라고 평가했다.

우수한 미드필더 미겔 앙헬 브란디시와 함께 우라칸에서 전성기를 보낸 오우세만은 1973년 전기 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오우세만 개인도 남미 올해의 선수 투표에서 1974년과 1977년에 모두 10위 안에 들었고 특히 1974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8위에 올랐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하며 3골을 득점해 대표팀 선수 중 가장 우수한 퍼포먼스를 선보인 오우세만은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는 베르토니와 함께 치열한 주전 경쟁을 벌이며 우승에 기여했다.

 

9위 다니엘 베르토니

 


생년월일: 1955년 3월 14일
A매치 기록: 30경기 11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CA 인데펜디엔테

1970년대 하반기와 1980년대 상반기에 이름을 날렸던 측면 공격수로 우수한 잔발 테크닉 능력과 기민한 드리블 능력을 겸비했으며 공격형 미드필더와 스위칭 플레이를 통해 상대 수비에 빈틈을 냈으며 라이벌 오우세만처럼 양발 능력이 뛰어나 적재적소에서 슈팅과 크로스를 올렸다.

베르토니는 인디펜디엔테에서 1977 시즌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후기리그를 우승했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3연패를 이뤄내며 1977년 남미 올해의 선수 투표에서 9위를 이뤄냈으며 유럽으로 간 뒤에도 세비야와 피오렌티나, 나폴리에서 이름을 날리며 활약했다.

아르헨티나 선수로서는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과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 활약했으며 전자의 대회에서 우승에 기여하며 대회 올스타 팀에 들었다.

 

8위 앙헬 디 마리아

 


생년월일: 1988년 2월 14일
A매치 기록: 145경기 31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파리 생제르맹

2010년대를 풍미한 정상급 윙어로 기술적으로 우수했음은 물론 빠른 스피드와 명민한 축구 센스를 바탕으로 날카로운 왼발 크로스와 우수한 킬패스를 활용한 찬스 메이킹에도 능했고 왕성한 활동량과 높은 전술 이해도를 활용해 메짤라 자리에서 윙어와 중앙 미드필더를 아우르는 플레이에도 능했다.

벤피카에서 유럽 정상급 선수로 성장한 디마리아는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해 첫 전성기를 누리며 2011-12 시즌에는 펩과 메시가 버티는 바르셀로나를 꺾고 라리가에서 우승하는데 일조했고 2013-14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내며 대회 올스타 스쿼드에 선정되었고 발롱도르 투표에서 10위에 올랐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는 좋지 못한 시간을 보내며 한 시즌만에 파리 생제르맹으로 이적한 디 마리아는 리그앙과 쿠프 드 프랑스를 각각 5회 우승했고 2019-20 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진출하는 활약을 보여줬으며 그 과정에서 ESM 올해의 팀 2회 선정과 리그앙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되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중용된 디 마리아는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이후에 2014 브라질 월드컵 준우승과 2015년과 2016년, 두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서 준우승을 거뒀지만 2021 코파 아메리카에서 절치부심 끝에 우승을 차지했으며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로테이션 멤버로 활약했지만 결승전에서 대단한 활약을 펼치며 우승에 큰 공을 세웠음은 물론 2024 코파 아메리카 우승도 추가하며 메이저 대회 3연패를 이뤄냈다.

 

7위 후안 라몬 베론

 


생년월일: 1944년 3월 17일
A매치 기록: 4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에스투디안테스

그 유명한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의 아버지로 레프트윙에서 활약하며 유려한 볼 컨트롤은 물론 바이시클킥을 자유자재로 구사해 마녀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에스투디안테스에서 전성기를 누린 라몬 베론은 수벨디야의 지휘 아래 1967 시즌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전기리그 우승을 이뤄냈고 남미 무대에서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3연패를 이뤄는데 특히 1968년 대회 결승전에서는 파우메이라스를 상대로 1,2,3차전에 모두 득점하며 우승에 크게 기여하며 유럽 무대의 조지 베스트, 드라간 자이치와 함께 1968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다만 에스투디안테스의 황금기를 이끈 화려한 클럽 커리어와는 다르게 대표팀에서의 족적은 미미했는데 당시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포지션 경쟁자인 오스카르 마스가 더 중용받았다.

 

6위 펠릭스 로스타우

 


생년월일: 1922년 12월 25일
A매치 기록: 28경기 10골
신체조건: 키 164cm / 몸무게 64kg
주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1940년대 남아메리카 정상급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라 마키나라고 불렸던 리버 플레이트의 공격 조합에서 다른 동료들과의 스위칭 플레이로 유명했으며 당시로서는 획기적으로 상대 아웃사이드 라이트를 직접 마킹하며 수비에 가담하기도 했던 선구자였다.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리버 플레이트에서 보낸 로스타우는 모레노, 라브루나, 페데르네라 등과 함께 공격 조합을 구성해 라 마키나의 일원으로 활약했는데 이들과 함께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8회 우승과 코파 이바르구렌 3회 우승 및 우루과이 챔피언과의 슈퍼컵인 코파 알다오 3회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뤄냈음은 물론 국가적인 경제위기로 로스타우는 페데르네라, 모레노, 디 스테파노 등이 팀을 떠나고 전성기가 지난 뒤에도 라브루나와 함께 로스 미요나리오스를 지탱하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1940년대 아르헨티나의 강세를 이끌며 코파 아메리카 3연패를 주전으로 이뤄내며 아르헨티나의 시대를 쓰는데 크게 공헌했다.

 

5위 카를로스 페우셀레

 


생년월일: 1908년 9월 13일
A매치 기록: 59경기 12골
신체조건: 키 171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1920년대 후반과 1930년대 남미를 풍미했던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테크니컬한 드리블 실력과 대포 같은 중거리 슈팅을 겸비한 우수한 측면 공격수였다.

당대 남미 역대 최고 이적료인 1000만 페소에 리버 플레이트로 이적하며 최초의 백만장자라 불렸던 페우셀레는 리버 플레이트에서 프리메라 디비시온 4회 우승을 포함해 공식전에서만 총 11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돈값을 제대로 했는데 특히 1930년대 중후반에는 페데르네라, 모레노와 함께 공격 조합을 구성해 위력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한 페우셀레는 1929년과 1937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냈으며 1930 우루과이 월드컵에서도 결승에 진출하는데 기여했다.

 

4위 오마르 코르바타

 


생년월일: 1936년 3월 11일
A매치 기록: 43경기 18골
신체조건: 키 165cm / 몸무게 62kg
주 소속팀: 라싱 클루브

브라질의 가린샤에 대한 아르헨티나의 대답이라 불렸던 코르바타는 상대 수비를 수월하게 따돌리는 드리블 스킬과 폭발적인 가속력을 겸비했으며 뛰어난 슈팅력과 볼 운반 능력도 겸비한 완성형 윙어였다.

라싱 클루브와 보카 주니오스에서 각각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2회 우승을 이뤄낸 코르바타는 콜롬비아 리그에서도 정상급 선수로 활약하는 등 당대 남미 무대를 평정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중용받은 코르바타는 월드컵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두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했는데 특히 1957년 대회에서는 시보리, 마스치오, 안젤리요와 함께 더러운 얼굴을 한 천사들이라는 공격 조합을 결성해 상대팀의 수비 진영을 유린했다.

 

3위 엔리케 가르시아

 


생년월일: 1912년 11월 20일
A매치 기록: 35경기 9골
신체조건: 미상
주 소속팀: 라싱 클루브

왼발의 시인이라 불렸던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윙 중 한 명으로 현란한 볼 컨트롤 능력과 테크니컬한 드리블 돌파로 상대 수비를 벗겨낸 뒤 중거리 슈팅을 날려 득점하던 선수였다. 오른발을 잘 쓰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가르시아는 "만약 내가 두 다리를 모두 사용하는 법을 배우려고 했다면 왼쪽 다리로 그리 능숙하게 기술을 쓸 수 있었을까?"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함나시아에서 데뷔해 로사리오 센트럴과 라싱 클루브에서 전성기를 보낸 가르시아는 소속팀에서는 우승 트로피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실력은 확실하게 인정받아 코파 아메리카에 3회 출전해서 1937년 대회와 1941년 대회에서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고 1942년 대회에서도 준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여러 친선 대회에서도 총 12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아르헨티나의 전성시대를 대표했다.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저널리스트 다니엘 판세리는그를 두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웃사이드 레프트였으며 펠릭스 로스타우가 팀에는 더 나았지만 엔리케 가르시아는 필드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라고 평가했으며 엔리케 가르시아 본인도 자신의 선수 시절에 자부심이 대단해 단골 카페에서 종종 스스로를 역대 최고의 아웃사이드 레프트라고 소개했다고 한다.

 

2위 라이문도 오르시

 


생년월일: 1901년 12월 2일
A매치 기록: 35경기 13골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20년대와 30년대 당시 최고의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빠른 스피드와 교묘한 드리블을 겸비해 상대 수비수를 속이며 크로스를 올려 공격수를 지원하는 능력과 왼발 슈팅으로 직접 마무리하는 능력 모두 훌륭했으며 중요한 경기에서 강한 면모를 보였다.

아르헨티나의 인데펜디엔테에서 데뷔해 정규리그 우승 3회를 이뤄낸 라이문도 오르시는 이탈리아로 건너가서는 유벤투스의 공격진 핵심으로 세리에 A 5연패에 큰 공을 세워 구단을 전국구급 인기 구단으로 만들었고 다시 남미로 돌아가서는 페냐롤에서 우루과이 프리미어 디비시온 우승을 했으며 플라멩구에서 캄파오네투 카리오카 우승을 이뤄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 시절에는 1927 코파 아메리카 우승컵을 들어냈고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 은메달을 목에 걸었던 오르시는 이탈리아로 귀화한 뒤에는 1927-30 중유럽컵과 1933-35 중유럽컵 우승에 기여했으며 1934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결승전에서 1-0으로 뒤지던 와중 구아이타의 크로스를 받아 골대를 등진 채로 오른발로 공을 받았고 골대 쪽으로 몸을 돌리면서 바로 왼발로 터닝 슈팅을 날려 동점골을 기록하며 승부를 연장전까지 끌고 갔으며 결국 아주리의 우승에 기여했다.

 

1위 리오넬 메시

 


생년월일: 1987년 6월 24일
A매치 기록: 164경기 90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펠레와 함께 축구사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 선수로 축구 역사상 최고라 불리는 드리블 돌파와 한 시즌에 리그에서만 50골을 득점한 경력이 있는 득점력부터 넓은 시야와 창의적인 패스로 게임을 만들어가는 플레이메이커로서 자질 또한 일품이라 그의 동료 챠비 에르난데스는 "메시가 스타일리시한 개인기나 잔재주를 부리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그는 그런건 일체하지 않는다. 그저 좋은 축구를 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너무 좋은 축구를 하다보니 그게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하는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커리어의 대부분을 FC 바르셀로나에서 보낸 메시는 구단 통산 최다 출전과 최다 득점, 최다 도움을 모두 기록하고 있으며 축구 역사상 유일하게 한 구단에서 300골 300도움을 달성한 선수며 두 번의 트레블을 포함해 라리가 10회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4회 우승을 포함해 바르셀로나에서만 34개의 우승 트로피를 휩쓸었음은 물론 메시 개인도 발롱도르만 8회 수상했음은 물론 아르헨티나 올해의 선수 14회 선정, ESM 올해의 팀 14회 선정, 라 리가 득점왕 8회 수상 및 라리가 베스트 플레이어 6회 수상, 유러피언 골든슈 6회 수상을 이뤄냈으며 라리가 통산 최다 득점자에 이름을 올렸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A매치 통산 최다 출전자이자 최다 득점자인 메시는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을 시작으로 다섯 번의 월드컵과 여섯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했는데 비록 국제대회에서 준우승만 통산 4회 기록했지만 2014 브라질 월드컵 골든볼과 2015 코파 아메리카 MVP를 수상했다. 실제로 디에고 마라도나는 이때의 메시를 두고 "나에겐 발다노와 부루차가가 있었지만 메시에게는 그런 도우미가 없다."라고 변호하기도 했다.

그러나 말년에는 아르헨티나 대표팀에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 수혈되자 이들의 리더이자 에이스로 군림한 메시는  2021 코파 아메리카에서 4골 5도움을 기록하며 우승에 성공하며 국대 무관에서 탈출하며 득점왕과 MVP를 수상했으며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7골 3도움을 기록했고 토너먼트 전 경기를 포함해 다섯 경기에서 맨 오브 더 매치를 따내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1994년 브라질의 호마리우 이후로 28년 만에 월드컵 우승과 골든볼을 동시에 석권하는 활약을 보여주며 정점에 올랐고 2024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우승에 공헌하며 메이저 대회 3연패라는 위업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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