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Top 11~20

국가의 영웅들/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Top 11~20

토르난테 2025. 6. 2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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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아르헨티나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으며 이탈리아나 스페인으로 귀화한 오리운디도 아르헨티나 대표팀 경력이 있으면 포함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RSSSF와 트렌스퍼마크트이며 둘의 기록이 상충할 경우에는 전자를 우선적으로 따릅니다.
*기록일은 2025년 6월 20일 기준입니다.

 


20위 지오바니 로셀소

 


생년월일: 1996년 4월 9일
A매치 기록: 61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레알 베티스

2010년대 후반~2020년대에 활약한 아르헨티나 출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오른발을 사용하지 못하고 수비가담이 떨어진다는 단전이 있지만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기술적인 온 더 볼 플레이를 활용한 드리블 돌파와 날카로운 패스로 득점 찬스를 만들어내는데 능했고 우수한 왼발 킥력과 영리한 공간지각능력을 바탕으로 한 오프 더 볼 능력으로 직접 골문을 노리는 부분에도 능했다.

로사리오 센트랄에서 데뷔해 두각을 나타내며 파리 생제르맹에 입단한 로셀소는 파리 생제르맹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레알 베티스로 임대를 떠나 좋은 모습을 보였고 그 덕분에 에릭센의 대체자로 토트넘에 입단했고 좋은 첫 시즌을 보냈다. 그러나 토트넘에서도 입지를 잃자 비야레알로 임대를 떠나서 재기에 성공했고 레알 베티스로 이적했으나 이스코의 맹활약에 의해 백업으로 밀려났지만 이스코가 빠진 날에는 주전으로 나와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도 자주 소집되는 로셀소는 2021 코파 아메리카에서 조국의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했지만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부상으로 참가하지 못해 우승의 영광을 지켜봐야 했다. 그래도 2024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다시 출전하며 결승전에서는 절륜한 패스로 라우타로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며 우승에 큰 공을 세웠다.

 

19위 엔리케 차사레타

 


생년월일: 1947년 7월 29일
A매치 기록: 11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산 로렌조

1970년대 상반기 아르헨티나 무대를 호령했던 다재다능한 2선 자원으로 정밀도 높은 패스와 드리블로 득점 찬스를 만드는데 능했으며 축구지능이 높고 다재다능하여 공격형 미드필더 이외에도 중앙 미드필더, 윙포워드, 처진 공격수를 모두 무난하게 소화할 수 있었던 공격진의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명성이 높았다.

산 로렌소에서 전성기를 누린 차사레타는 1972년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를 모두 제패하는데 큰 공을 세웠고 1974년에는 후기리그를 재차 우승하며 정규리그 총 3회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프랑스 무대로 진출해서는 AC 아비뇽과 올랭피크 알레스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고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백업으로 종종 소집되었다.

차사레타는 공중에서 공을 찾을 때 입을 지나치게 벌리는 특이한 습관이 있었는데 이 때문에 그의 친구들은 "차사레타는 공을 헤딩으로 치는 것이 아니라 삼키려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라고 발언하며 그를 두꺼비라고 불렀다.

 

18위 마르셀로 가야르도

 


생년월일: 1976년 1월 18일
A매치 기록: 44경기 13골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에 오르테가와 쌍벽을 이루던 공격형 미드필더로 제2의 마라도나라고 불렸던 선수로 날카로운 패싱력과 데드볼 상황에서 득점을 노리는 부분에서 특히 뛰어났으며 오르테가보단 프로의식이 뛰어난 선수였으나 유리몸으로 인해 잠재력에 비해 대성하지 못한 아쉬운 선수였다. 

리버 플레이트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누린 가야르도는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아페르투라 4회 우승과 클라우수라 2회 우승을 이뤄냈고 1996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뤄냈다. 프랑스 리그의 AS 모나코에서도 1999-2000 시즌 리그앙 우승을 이끌며 프랑스 리그앙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이력도 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오르테가, 베론과 경쟁하던 가야르도는 백업으로 1995 컨페드컵 준우승과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은 물론 두 번의 월드컵에 서브로 참가했으나 리켈메가 대두하자 대표팀에서의 입지를 완전히 잃었다.

 

17위 클라우디오 보르기

 


생년월일: 1964년 9월 28일
A매치 기록: 9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아르헨티노 주니어스

청소년 시절에는 마라도나에 버금가는 가졌으며 일찍이 드넓은 시야와 높은 수준의 창의성에서 나오는 킬패스를 활용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물론 우수한 수준의 드리블 돌파로도 이름을 날렸지만 자신의 잠재력을 다 꽃 피우지 못하고 전성기가 짧게 끝났다.

아르헨티노 주니오스에서 전성기를 누린 보르기는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2연패와 1985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끌며 1985년 남미 올해의 선수 3위에 올랐고 전성기가 지난 뒤에는 칠레의 콜로 콜로에서 활약했는데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마라도나와 부루차가의 서브로 대기했다.

 

16위 리카르도 비야

 


생년월일: 1952년 8월 18일
A매치 기록: 25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3kg
주 소속팀: 토트넘 핫스퍼

19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에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플레이메이커로 높은 수준의 테크닉과 정교한 패싱력을 바탕으로 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물론 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균열을 내며 강력한 오른발 슈팅으로 마무리짓기도 했으며 강건한 신체를 활용한 탈압박에도 능했다.

아르헨티나의 라싱 클루브에서 데뷔해 두각을 나타낸 비야는 토트넘 핫스퍼로 이적해 본격적으로 전성기를 누렸는데 같은 국적의 아르딜레스와 함께 아르헨티나 듀오로 이름을 날리며 1980-81 시즌 FA컵 결승전 2차전에서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로 멀티골을 득점하는 활약을 펼쳐 3-2 승리를 이끌어 우승에 공헌해 구단 명에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아르딜레스, 브린디시, 마라도나, 발렌시아 등 쟁쟁한 멤버들에 밀려서 큰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했던 비야는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 로테이션 멤버로 참가해 우승을 경험했다.

 

15위 호세 다니엘 발렌시아

 


생년월일: 1955년 10월 3일
A매치 기록: 41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65kg
주 소속팀: 타예레스 데 코르도바

19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에 활약했던 다재다능한 2선 미드필더로 빠른 스피드에서 나오는 높은 기동력과 정교한 볼 컨트롤은 물론 물론 강인한 부상 인내력과 왕성한 활동량으로 수비에도 적극 가담했던 현대적인 미드필더였다.

힘나시아 후후이에서 데뷔한 발렌시아는 타예레스 데 코르도바에서 본격적으로 전성기를 누리며 리가 코르도베사 데 풋볼 5회 우승을 이뤄냈고 1977년에는 프리메라 디비시온 준우승 및 코파 에르만다드 우승을 이뤄내는 등 13년 동안 우수한 활약을 선보이며 구단 역사상 최고의 레전드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상술한 실용적인 플레이 스타일로 인해 화려한 스타일에 노르베르트 알론소를 제치고 마리오 켐페스의 파트너로 발탁된 발렌시아는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했다.

 

14위 아리엘 오르테가

 


생년월일: 1974년 3월 4일
A매치 기록: 87경기 17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64kg
주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마라도나가 노쇠한 이후에 새롭게 떠오른 축구스타로 체구는 작았지만 정력적이고 빠른 스피드를 앞세운 드리블 돌파와 우수한 볼 컨트롤과 번뜩이는 센스를 바탕으로 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갖춰 작은 당나귀라고 불렸다.

리버 플레이트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아페르투라 4회 우승과 클라우수라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프란체스콜리와 함께 뉴 라 마키나 군단의 플레이메이킹을 담당하며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및 슈퍼컵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뉴웰스 올드 보이스에서도 2004년 아페르투라 우승을 이뤄내며 남미 올해의 팀에 4회 선정되었지만 유럽 무대에서의 활약은 좋지 못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1994 미국 월드컵부터 2002 한일 월드컵까지 주축 멤버로 중용받은 오르테가는 1995 컨페드컵 준우승과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 그리고 1998 프랑스 월드컵 8강에 오르는데 공헌했지만 중요한 순간에 퇴장을 당하거나 부진하며 승부처에서는 다소 아쉬웠다.

 

13위 카를로스 바빙톤

 


생년월일: 1949년 9월 20일
A매치 기록: 13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CA 우라칸

잉글랜드계 아르헨티나인이라 엘 잉글리시로 불렸던 선수로 유려한 볼 컨트롤과 대지를 가르는 왼발 롱패스는 물론 데드볼 상황에서도 우수한 프리킥으로 팀의 승리에 기여하며 1970년대 초중반을 대표하는 고전적인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우라칸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보낸 바빙톤은 1973년에 미겔 앙헬 브린디시와 함께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전기리그 우승을 이뤄냈고 독일의 SG 바텐샤이트에 잠시 머무르다가 다시 우라칸으로 돌아와서도 팀의 주축으로 활약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1974 서독 월드컵에 주전으로 나선 바빙톤은 비록 팀은 8강 2차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지만 바빙톤 개인은 우수한 활약을 보여 1974년 남미 올해의 선수 투표에서 3위에 올랐다.

 

12위 호세 오마르 파스토리사

 


생년월일: 1942년 5월 23일
A매치 기록: 18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CA 인데펜디엔테

1960년대 하반기와 70년대 초반에 이름을 날렸던 플레이메이커로 높은 수준의 전술안과 유려한 테크닉과 패싱력을 겸비했으며 뛰어난 플레이메이킹뿐만이 아니라 간혹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되었을 정도로 수비적인 부분에서도 우수했다. 

인디펜디엔테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미겔 앙헬 라이문도와 함께 중원을 구성해 이름을 날렸던 파트로리사는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3회 우승과 1972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1971년에는 아르헨티나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남미 올해의 선수 투표에서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 소속으로도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한 파트로리사는 팀의 8강행을 이끌었다.

 

11위 파블로 아이마르

 


생년월일: 1979년 11월 3일
A매치 기록: 52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65kg
주 소속팀: 발렌시아 CF

2000년대 초반에 두각을 나타냈던 천재적인 유망주로 상대 수비수들을 농락하는 날렵한 몸놀림과 우수한 볼 컨트롤 능력은 물론 예측을 불허하는 킬패스를 활용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통해 어릿광대, 마술사라 불렸음은 물론 리오넬 메시의 우상으로 추앙받기도 했다.

리버 플레이트에서 어린 나이에도 팀의 주전으로 활약한 아이마르는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3회 우승 및 남미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되며 두각을 나타냈고 라리가의 강호 발렌시아로 이적해서도 전성기를 이어나가며 2000-01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시작으로 라리가 2회 우승 및 2003-04 시즌 라리가와 UEFA컵 더블 우승, 그리고 2004 UEFA 슈퍼컵에서 포르투를 꺾고 우승하는 활약을 보여줬고  2002-03 시즌에는 지단, 피구, 라울 등 전설적인 선수들을 제치고 라리가 도움왕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고 2005-06 시즌에는 라리가 올해의 라틴 아메리카 선수상을 수상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 소속으로도 1997년 FIFA 월드컵 유스 챔피언십에서 조국의 우승을 이끌며 브론즈볼을 수상한 아이마르는 성인 대표팀에서도 베론, 리켈메와 치열한 경쟁을 펼쳤는데 2002 한일 월드컵과 2006 독일 월드컵에 참가했으며 백업 멤버로도 2005 컨페드컵과 2007 코파 아메리카에서 준우승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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