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사이드백 Top 21~30

국가의 영웅들/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사이드백 Top 21~30

토르난테 2025. 6. 14.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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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아르헨티나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으며 이탈리아나 스페인으로 귀화한 오리운디도 아르헨티나 대표팀 경력이 있으면 포함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RSSSF와 트렌스퍼마크트이며 둘의 기록이 상충할 경우에는 전자를 우선적으로 따릅니다.
*기록일은 2025년 6월 14일 기준입니다.

 


30위 넬슨 비바스

 


생년월일: 1969년 10월 18일
A매치 기록: 39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66cm / 몸무게 65kg
주 소속팀: 보카 주니어스

1990년대 후반에 전성기를 누린 만능 수비수로 우수한 지구력과 스피드를 앞세워 활약했으며 우수한 전술안과 포지션에 대한 높은 이해도로 라이트백은 물론 레프트백과 센터백도 막힘없이 소화했다.

킬메스에서 데뷔해 보카 주니어스에서 이름을 날리고 스위스의 루가노로 임대를 떠난 뒤에도 유럽 무대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비바스는 아스날에서는 백업으로 프리미어리그 3회 준우승을 경험했고 셀타 비고 임대 시절에는 2000년 인터토토컵 우승을 이뤄냈으나 인테르에서는 실패했다. 그리고 자국 무대로 돌아간 뒤에는 보카의 라이벌인 리버 플레이트로 입단해서 백업으로 우승을 경험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주로 백업을 맡았던 비바스는 1995 킹파드컵 준우승을 경험했고 1997 코파 아메리카와 1998 프랑스 월드컵, 그리고 1999 코파 아메리카에서 로스터에 포함되었다.

 

29위 후안 포이스

 


생년월일: 1998년 1월 12일
A매치 기록: 20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83kg
주 소속팀: 비야레알

2020년대 라리가에서 준수한 폼을 보이는 라이트백으로 키가 크면서 빠른 스피드를 바탕으로 체격은 다소 말랐지만 큰 키와 긴 팔다리를 이용한 수비를 선보이며 발밑도 준수해  후방에서의 원활한 빌드업 전개나 연계 플레이에도 유려해 공격적으로 지원하는 부분에서도 능했다.

에스투디안테스에서 데뷔해 가능성을 보였기에 토트넘 핫스퍼에 영입된 포이스는 비록 토트넘에서는 센터백으로 기용되었을 때 단점이 부각되었고 부상도 잦아 실패했으나 비야레알로 임대를 떠나 라이트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하면서 라리가 수위급 라이트백으로 성장하면서 2020-21 시즌 UEFA 유로파 리그 우승을 이뤄냈고 2021-22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4강행을 이끌었다. 그리고 2024-25 시즌에는 라리가 5위를 이뤄내며 차기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했다.

2017년 U-20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했고 아르헨티나 성인 대표팀에서도 자주 소집되는 포이스는 2021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소집되지 못했지만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백업으로 우승을 경험했다.

 

28위 리오넬 스칼로니

 


생년월일: 1978년 5월 16일
A매치 기록: 7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현재는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메이저 대회 3연패를 이뤄낸 감독으로 유명하지만 현역 시절에는 라리가에서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이름을 날렸던 인물로 주 포지션은 라이트백으로 우측면을 90분 내내 왕복하며 상대 측면 공격수를 투지 넘치는 거친 수비로 마크하고, 공격 시에는 빠르게 올라가 정확한 크로스를 통해 공격을 지원했으며 기술적으로는 다소 평범했지만 축구 지능과 지구력이 높고 헌신적인 마인드를 가졌기에 레프트백, 수비형 미드필더, 센터백, 라이트윙 등 여러 포지션에서 1인분을 할 수 있었다.

뉴웰스 올드 보이스에서 데뷔했고 에스투디안테스를 거쳐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에서 처음 유럽 무대에 입성해 전성기를 모두 보낸 스칼로니는 로테이션 멤버로 활약하며 1999-2000 시즌 라리가 우승 및 2001-02 시즌 코파 델 레이 우승과 두 차례의 수페르코파 우승을 이뤄냈고 2003-04 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최초로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4강에 오르기도 했다. 데포르티보에 머무는 동안 마누엘 파블로, 빅토르 산체스, 세르지오 등과 여러 포지션에서 치열한 주전 경쟁을 했다. 그리고 데포르티보를 떠난 이후에는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와 라치오, 아탈란타 등 다른 빅리그도 경험했다.
 
리켈메, 아이마르, 캄비아소 등과 함께 1997년 FIFA U-20 월드컵 우승 주역 중 한 명으로 청소년 시절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은 스칼로니는 성인 대표팀에서는 많은 경기를 소화하지 못했지만 백업으로 2006 독일 월드컵에 참가했다.

 

27위 비센테 페르니아

 


생년월일: 1949년 4월 25일
A매치 기록: 7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보카 주니어스

1970년대 아르헨티나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측면 수비수로 강력한 집중력을 바탕으로 왕성한 활동량과 적극적인 수비를 선보였으며 매우 거친 플레이를 펼쳐 퇴장을 자주 당하며 보카 주니어스 구단 통산 최다 퇴장자로 기록되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보카 주니어스에서 전성기를 누린 페르니아는 무소, 타란티니와 함께 제네시스가 자랑하는 수비라인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1976년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를 모두 우승했고 1981년 후기리그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남미 무대에서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2연패를 이뤄냈는데 특히 1977년에 열린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홈에서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와 비겼지만 원정에서 3-0 대승을 거두며 세계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

 

26위 에르난 디아스

 


생년월일: 1965년 2월 26일
A매치 기록: 28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83kg
주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1990년대 남미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라이트백으로 체구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마치 한혈마와 같은 강력한 지구력을 바탕으로 공수 양면을 쉴 새 없이 뛰어다녔으며 악착같은 수비와 강력한 오른발 킥력을 바탕으로 한 크로스와 슈팅으로 공격 상황에서도 두각을 냈다.

로사리오 센트랄에서 데뷔해 첫 전성기를 누린 디아스는 리버 플레이트로 이적해 본격적인 전성기를 누리며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에서 아페르투라와 클라우수라를 합쳐 8회 우승을 이뤄냈고 특히 1996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는 제2의 라 마키나 군단의 뒤를 받히며 결승전에서 콜롬비아의 아메리카 데 칼리를 제압하는데 이바지하며 로스 미요나리오스를 남미 챔피언으로 올렸고 이듬해에는 수페르코파 수다메리카나 우승을 이뤄냈다.

로사리오 센트럴에서 리버 플레이트로 이적했던 초기에는 경기 중 서토퍼들과 언쟁을 벌였을 정도로 사이가 좋지 못했으나 헌신적인 플레이를 바탕으로 팬덤이 그에게 가진 부정적인 인식을 긍정적인 응원으로 바꿨던 노력의 화신이기도 했던 디아스는 아르헨티나 대표팀 소속으로도 종종 백업 역할을 맡았는데 1987 코파 아메리카 4위 및 1989 코파 아메리카 4위를 경험했고 1988 서울 올림픽에도 참가했으며 1994 미국 월드컵에도 백업으로 대기했다.

 

25위 디에고 플라센테

 


생년월일: 1977년 4월 24일
A매치 기록: 22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바이어 04 레버쿠젠

2000년대 상반기에 이름을 날렸던 레프트백으로 터미네이터와 같은 지구력에서 나오는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공수 양면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며 왼쪽 측면을 쉴 새 없이 뛰어다녔다.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에서 데뷔해 1996-97 시즌 후기리그 우승을 이뤄낸 플라센테는 리버 플레이트에서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3회 우승 및 1997년 수페르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응 이뤄내며 아르헨티나 무대를 평정했고 2001-02 시즌에 레버쿠젠에서 유럽 무대 도전장을 냈는데 도전장을 내밀며 해당 시즌, 분데스리가, DFB포칼, 그리고 UEFA 챔피언스리그의 준우승을 거두며 트리플 러너업을 이뤄내는데 공헌했고 2003-04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3위에 오르며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공헌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1997년 FIFA 세계 청소년 대회 아르헨티나 국가대표로 참가해 조국을 우승으로 이끌며 기대주로 뽑혔던 플라센테는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후안 소린을 제치고 주전으로 활약했으나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굴욕을 당했고 2004 코파 아메리카와 2005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도 참가했지만 주전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나며 국가대표팀을 은퇴했다.

 

24위 호세 쿠시우포

 


생년월일: 1961년 2월 1일
A매치 기록: 21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벨레스 사르스필드

1980년대 중후반에 아르헨티나 무대에서 명성을 떨친 다재다능한 수비수로 라이트백과 센터백, 그리고 수비현 미드필더를 모두 훌륭하게 소화할 수 있었는데 높은 수준의 전술안과 탄탄한 기본기를 자랑했음은 물론 정확한 패싱력을 앞세워 빌드업 상황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벨레스 사르스필드에서 첫 전성기를 맞아 1985년 프리메라 디비시온 후기리그 준우승을 이뤄냈고 보카 주니어스에서도 전성기를 이어나가며 1989년 수페르코파 수다메리카나 우승 미 1990년 레코파 수다메리카나 우승을 차지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리고 유럽 무대에 진출해 프랑스의 님 올랭피크에서 3년간 주전으로 활약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빌라르도 체제에서 중용받은 쿠시오포는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조국의 우승을 이끌며 남미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고 1987년과 1989년 코파 아메리카에도 참가했다. 그러나 조국의 축구영웅이었던 쿠시우포의 최후는 비극 그 자체였는데 2004년 사냥 도중 총격 사고에 휘말려 향년 4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23위 마르코스 로호

 


생년월일: 1990년 3월 20일
A매치 기록: 61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스포르팅 리스본

2010년대 아르헨티나 국적 수위급 레프트백 겸 센터백으로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한 광범위한 커버와 경합 능력을 바탕으로 레프트백과 스토퍼를 모두 완벽하게 소화했고 왼발을 활용한 후방 빌드업에도 준수했으나 수비 지능이 좋은 편이 아니고 경합을 적극적으로 나서기에 부상을 자주 당하기도 했다. 

에스투디안테스에서 데뷔한 로호는 백업으로 2009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2010년 프리메라 디비시온 전기리그 우승을 경험했고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에서 성장해 스포르팅 리스본에서는 전성기를 누렸으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해서는 부진한 활약으로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그리고 보카 주니어스에서 말년을 보내며 2019-20 시즌 코파 아르헨티나 우승 및 2022년 정규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2010년대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레프트백으로 중용받았던 로호는 2011 코파 아메리카에서 백업으로 대기했지만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뛰어난 퍼포먼스로 조국의 준우승에 공헌하며 FIFA 월드컵 캐스트롤 인덱스 톱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2015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준우승을 경험했고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아르헨티나의 16강이 걸린 나이지리아 전에서 득점포를 가동하며 팀의 2-1 승리에 공헌했다.

 

22위 호세 차모트

 


생년월일: 1969년 5월 17일
A매치 기록: 43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SS 라치오

1990년대 하반기에 유럽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레프트백으로 우수한 신체조건에서 나오는 탄탄한 수비력과 빠른 스피드는 물론 높은 수준의 전술안과 약발 사용 능력도 겸비해 센터백과 라이트백도 무리 없이 소화했다.

로사리오 센트랄에서 데뷔해 이탈리아 무대의 피사에서 두각을 나타낸 차모트는 제만 체제의 라치오애서 전성기를 누리며 1997-98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거쳐 AC 밀란으로 이적해 로테이션 멤버로 나서며 2002-03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와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경험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주전과 백업을 오가며 활약한 차모트는 1995 컨페드컵 준우승을 이뤄냈고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했다. 그리고 1994 미국 월드컵부터 2002 한일 월드컵까지 세 번의 대회에 참가했는데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하며 조국의 8강 진출을 이뤄냈다.

 

21위 프란시스코 사

 


생년월일: 1945년 10월 25일
A매치 기록: 12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CA 인데펜디엔테

1970년대 아르헨티나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유틸리티 수비자원으로 탄력적인 점프력과 탄탄한 바디밸런스에서 나오는 투지 넘치는 밀착수비와 반 박자 빠른 슬라이딩 태클로 이름을 날렸다.

리버 플레이트에서는 벤치에 머물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다가 인데펜디엔테로 이적한 뒤에 만개하며 전성기를 누린 프란시스코 사는 1971년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전기리그 우승을 이끌었으며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4연패를 이끄는 대업적을 세웠다. 그리고 1973년에는 인터콘티넨탈컵에서 유벤투스를 격파하는데 공을 세웠다.

말년에는 보카 주니어스로 이적해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2회 우승을 추가하며 개인 통산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최다 우승자로 이름을 날렸고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1974 서독 월드컵에서 8강 2차 리그 진출에 공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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