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Top 10

국가의 영웅들/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Top 10

토르난테 2025. 6. 13.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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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아르헨티나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으며 이탈리아나 스페인으로 귀화한 오리운디도 아르헨티나 대표팀 경력이 있으면 포함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RSSSF와 트렌스퍼마크트이며 둘의 기록이 상충할 경우에는 전자를 우선적으로 따릅니다.
*기록일은 2025년 6월 5일 기준입니다.

 


10위 오스발도 피아차

 


생년월일: 1947년 4월 6일
A매치 기록: 15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생테티엔

1970년대 프랑스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아르헨티나의 월드클래스 리베로로 준수한 발밑 기술과 기습적인 공격 가담은 물론 터프한 몸싸움과 정력적인 활동량까지 겸비하며 스토퍼로서도 우수한 면모를 보이며 기관차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자국 무대가 아닌 생테티엔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끈 피아짜는 외국임에도 강력한 카리스마로 수비라인의 리더로 활약하며 리그앙 3연패와 쿠프 드 프랑스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5-76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피아짜 개인도 옹즈 몽디알의 독자들이 뽑은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고 말년에는 자국 리그인 벨레스 사르스필드에서 커리어를 보냈다.

프랑스에서 주로 활약해 대표팀 소집이 어려워 메이저 대회에는 참가하지 못했음에도 생테티엔에게 강력한 충성심을 보였고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9위 루도비코 비도글리오

 


생년월일: 1900년 2월 5일
A매치 기록: 34경기 0골
신체조건: 미상
주 소속팀: 보카 주니어스

1920년대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수비수로 초년에는 아웃사이드 라이트였으나 라이트 풀백으로 전향한 뒤 뛰어난 퍼포먼스를 선보였는데 아웃사이드 포워드 출신답게 빠른 스피드와 높은 수준의 기술을 앞세운 화려한 수비 스타일로 이름을 날렸다.

보카 주니어스에서 전성기를 누린 비도글리오는 자신과 상반되는 스타일의 라몬 무티스와 함께 수비라인을 구성하며 제네시스의 프리메라 디비시온 5회 우승을 포함해 크고 작은 대회에서 10회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우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붙박이 라이트 풀백으로 활약한 비도글리오는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도 조국의 결승에 진출하는데 큰 공을 세웠으나 재경기 끝에 우루과이를 넘지 못하며 은메달에 머물렀고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6회 참가해 2회 우승을 이뤄냈다.

 

8위 로베르토 센시니

 


생년월일: 1966년 10월 12일
A매치 기록: 60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파르마

1990년대에 이름을 날린 다재다능한 수비자원으로 뛰어난 태클 기술과 적절한 위치선정, 그리고 부상을 견디는 강력한 정신력을 겸비했으며 축구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주 포지션인 센터백 이외에도 측면 수비수와 3선 미드필더는 물론 측면 미드필더도 막힘없이 소화했다.

뉴웰스 올드 보이스에서 데뷔한 센시니는 1987-88 시즌, 팀의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을 이끌어 주목을 받아 당대 최고의 리그 세리에 A의 우디네세로 이적해 활약했고 우디네세에서도 준수한 기량을 펼쳤고 파르마로 이적한 뒤에는 전성기를 누리며 UEFA컵과 코파 이탈리아를 각각 2회 우승했고 잠시 머문 라치오에서도 백업이지만 1999-2000 시즌 세리에 A와 코파 이탈리아 더블 우승을 경험했다. 그리고 다시 우디네세로 돌아가 불혹의 나이에도 주축으로 활약한 뒤 은퇴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한 센시니는 1989 코파 아메리카에 데뷔해서 3위에 오르는데 기여했으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도 수비의 핵으로 활약했으나 결승전에서 클린스만한테 반칙을 범해 페널티킥을 헌납했고 그 페널티킥을 브레메가 성공시키며 아쉽게 준우승을 차지한 이력이 있다. 이후 1994 미국 월드컵과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던 센시니는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도 와일드카드로 참가해 은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7위 호세 살로몬

 


생년월일: 1916년 7월 9일
A매치 기록: 44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5cm
주 소속팀: 라싱 클루브

1940년대 상반기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전성기를 이끈 수비수로 날카로운 태클과 강력한 정신력을 통한 뛰어난 대인 마킹 능력은 물론 수비라인을 지휘하는 능력에도 능했던 수비라인의 리더였다.

라싱 클루브에서 이름을 날린 살로몬은 대표팀에서도 주장이자 핵심 수비수로서 라 마키나라 불렸던 공격진의 뒤를 잘 받쳐주며 코파 아메리카 3회 우승과 1회 준우승을 이뤄내는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1946년에 절정의 기량을 누리던 살로몬은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자이르 다 호사의 살인태클로 인해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살로몬은 오랜 기간 재활해야 하는 부상을 당해 대표팀을 떠났으며 그렇지 않아도 월드컵 개최 문제로 사이가 벌어진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관계는 살로몬의 부상을 기점으로 더욱 심해지기에 이른다.

 

6위 왈테르 사무엘

 


생년월일: 1978년 3월 23일
A매치 기록: 57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2000년대 이탈리아 무대를 풍미한 센터백으로 강건한 어깨와 용수철이 연상되는 점프력을 지녔으며 벽이라 불렸을 정도로 탄탄한 수비력을 자랑했음은 물론 강력한 집념으로도 유명했다.

보카 주니어스에서 데뷔해 1999년 남아메리카 올해의 팀에 선정되며 두각을 나타낸 사무엘은 소위 세리에 A 7공주라고 불렸던 AS 로마로 이적해 2000-01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끌었음은 물론 사무엘 개인도 2001-02 시즌과 2003-04 시즌에는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는 활약을 펼치며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으나 리그 수비 스타일의 차이에 따른 전술적인 이유 및 부상으로 인한 신체적인 이유가 모두 겹치며 부진했다.

인테르 밀란으로 이적하며 난국을 타개한 사무엘은 인테르에서 화려하게 부활하며 세리에 A 5연패와 코파 이탈리아 3회 우승을 이뤄냈고 2009-10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내며 트레블을 달성했고 2010년 세리에 A 올해의 수비수에 선정되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1997년 FIFA 월드 유스 챔피언십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던 사무엘은 기본적으로는 아얄라와 함께 주전조로 분류되었으나 잦은 부상으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는데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주전으로 나왔으나 조별리그 탈락을 경험했고 이후로도 부상으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5위 페드로 델라차

 


생년월일: 1926년 7월 9일
A매치 기록: 35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라싱 클루브

1950년대 아르헨티나를 상징하는 센터백으로 강인한 정신력과 견고한 대인 수비로 이름을 날렸으며 센터백은 물론 라이트백도 막힘없이 소화했고 리더십이 뛰어나 주장으로서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

킬메스 AC에서 데뷔해 라싱 클루브에서 전성기를 누린 델라차는 1958 시즌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우승을 이뤄냈으며 말년에는 멕시코의 클루브 넥카사에서 보내며 1959-60 시즌 코파 멕시코 우승에 기여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주전 센터백이자 주장으로 활약한 델라차는 1955 코파 아메리카와 1957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끌었는데 특히 1957 코파 아메리카 우승팀은 더러운 얼굴의 천사들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후세에도 회자되었고 1958 스웨덴 월드컵에도 참가했다.

 

4위 로베르토 아얄라

 


생년월일: 1973년 4월 14일
A매치 기록: 115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발렌시아 CF

2000년대 남미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키는 작았지만 용수철과 같은 점프력으로 이를 극복했으며 교활한 수비 지능과 태클로 악명을 날리며 팬들로부터 생쥐라 불렸는데 특히 전진수비에 능해 세리에 A보다는 라리가에서 더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페로 카릴 오에스테에서 데뷔해 리버 플레이트에서 아르헨티나 리그 정상급 수비수로 성장한 아얄라는 1994년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전기리그 우승을 이뤄내며 남미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고 이탈리아 세리에 A에 도전하며 나폴리와 AC 밀란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AC 밀란에서는 다소 아쉬웠지만 발렌시아로 이적해서 본격적인 전성기를 누린 아얄라는 라리가 2회 우승 및 2000-01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과 2003-04 시즌 라리가와 UEFA컵 더블을 이뤄내며 박쥐군단의 황금기를 이끌었고 아얄라 개인도 2000-01 시즌에는 라리가 올해의 수비수상을 받았으며 2003-04 시즌에는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며 그의 시대에 라리가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군림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을 정도로 오랜 기간 수비의 핵으로 활약한 아얄라는 코파 아메리카 4회 출전해서 2회 준우승을 이뤄냈고 1998 프랑스 월드컵부터 2006 독일 월드컵까지 세 번의 월드컵에서 모두 주전으로 활약했는데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올림픽에서도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에 이어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와일드카드로 참가해 금메달의 영예를 누렸다.

 

3위 오스카 루헤리

 


생년월일: 1962년 1월 26일
A매치 기록: 97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아르헨티나의 양대 명문 보카 주니어스와 리버 플레이트 양 팀에서 모두 활약한 파이터형 수비수로 특히 공중볼 경합에 능해 큰 머리라 불렸으며 열정적인 수비로 상대 공격수를 제압하는 대인 수비 능력도 단연 일품이었다.

보카 주니어스의 성골 유스로 큰 기대 속에 데뷔한 루헤리는 데뷔 첫 시즌부터 주전 자리를 차지하며 리그 정상급 활약을 펼쳤고 1981년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전기리그에서는 마라도나와 함께 팀의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으나 1985-86 시즌을 앞두고 라이벌 리버 플레이트로 이적을 택하며 팬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리버 플레이트로 이적한 뒤에는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한 루헤리는  1985-86 시즌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을 이뤄냈음을 물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코파 인터 아메리카, 그리고 인터콘티넨탈컵을 모두 석권하며 아르헨티나. 남아메리카, 아메리카, 세계 무대를 모두 제패하는데 일조했다. 그리고 스페인 무대로 옮겨 로그로네스와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펼치며 1988-89 시즌 돈 발롱 선정 라리가 MVP를 수상했으며 라리가 올해의 외국인 선수상을 수상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파사레야가 은퇴한 이후 수비라인의 주축으로 활약한 루헤리는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수바의 핵으로 우승에 기여했고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준우승에 공헌했다. 그리고 1991년과 1993년 두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철벽과도 같은 수비로 우승을 차지했는데 특히 1991년에는 우수한 활약을 펼쳐 남미 올해의 선수상과 아르헨티나 올해의 선수상을 모두 석권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2위 로베르토 페르푸모

 


생년월일: 1942년 10월 3일
A매치 기록: 37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라싱 클루브

1960년대 남미 최고의 수비수로 평가받았던 선수로, 사령관이라 불릴 정도로 훌륭한 수비 라인 지휘 능력과 적절한 커버플레이, 그리고 수많은 공격수를 좌절시킨 대인 수비 능력을 모두 겸비했다.

라싱 클루브에서 첫 전성기를 누린 페르푸모는 1966 시즌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과 1967 시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인터콘티넨탈컵 우승에 공헌했고 크루제이루로 이적해서도 전성기를 이어나가며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3연패에 공헌했고 리버 플레이트에서는 파사레야와 발을 맞추며 1975 시즌 전기리그와 후기리그 더블 우승과 1977년 전기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수비라인의 핵으로 활약한 페르푸모는 1966 잉글랜드 월드컵과 1974년 서독 월드컵에 출전했는데 전자의 대회에선 8강에서 잉글랜드에게 석연치 않았던 판정으로 주장 라틴이 퇴장당하며 아쉽게 석패하기도 했으며 후자의 대회에서는 주장으로 8강 2차 조별리그에 진출했다.

 

1위 다니엘 파사레야

 


생년월일: 1953년 5월 25일
A매치 기록: 70경기 22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완벽한 수비 능력과 훌륭한 수비라인 지휘 능력, 그리고 강력한 킥력을 활용해 득점과 찬스 메이킹마저 담당했으며 173cm의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제공권 장악 능력이 오히려 강점에 속하는 만능 디펜더로 남미 축구 역사상 최고의 리베로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CA 사르미엔토에서 데뷔해 리버 플레이트에서 페르푸모와 함께 견고한 수비라인을 구성한 파사레야는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전기리그 4회 우승과 후기리그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5 시즌과 1979 시즌에는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를 모두 제패했고 1976년에는 35경기 24골이라는 공격수라 해도 믿을 득점력을 보여주며 아르헨티나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1980년대 세계 최고 레벨의 이탈리아 무대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발휘한 파사레야는 피오렌티나에서는 마지막 시즌인 1985-86 시즌에는 수비수임에도 무려 11골이나 득점했는데 이는 마테라치가 갱신하기 전까지 세리에 A 수비수 시즌 최다골을 기록하며 구에린 스포르티보 선정 세리에 A 외국인 선수 랭킹 2위에 2회 올랐다. 실제로 피오렌티나 시절은 물론 말년인 인테르 시절에도 좋음 모습을 보였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위대한 주장으로 이름을 남긴 파라세야는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의 우승을 차지했고 개인적으로도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할 예정이었지만 대회 직전 식중독으로 인한 컨디션 난조로 벤치로 내려가는 비극을 겪었다. 그럼에도 결과적으로 월드컵 2회 우승이라는 영예를 누렸으며 은퇴 이후 2015년에는 아르헨티나 축구협회 선정 아르헨티나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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