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처진 공격수 Top 11~20

국가의 영웅들/이탈리아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처진 공격수 Top 11~20

토르난테 2025. 5. 18.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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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이탈리아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오리운디의 경우에도 이탈리아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는 모두 포함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일은 2025년 5월 11일 기준입니다.

 


20위 지노 피바텔리

 


생년월일: 1933년 3월 27일
A매치 기록: 7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볼로냐 FC

1950년대와 60년대에 걸쳐 활약한 다재다능한 양발잡이 공격 자원으로 WM 시스템의 공격 포지션인 양 인사이드 포워드와 양 측면의 아웃사이드 포워드는 물론 센터 포워드까지 소화할 수 있었던 만능 공격자원으로 특히 빠른 스피드를 이용해 상대방의 배후로 침투한 뒤 우수한 킥력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하는데 능했다.

세레아에서 데뷔해 엘라스 베로나를 거쳐 볼로냐에서 전성기를 누린 피바텔리는 1950년대 볼로냐의 암흑기에도 1955-56 시즌 세리에 A 득점왕을 수상하는 등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며 주목받았으나 볼로냐에서는 트로피를 들지 못해 나폴리를 거쳐 AC 밀란으로 이적했고 밀란에서 1961-62 시즌 세리에 A 우승 및 1962-63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냈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한 피바텔리는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는 백업으로 대기했고 1955년 3월 30일에는 슈투트가르트에서 월드컵 챔피언 서독을 상대로 결승골을 터트리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19위 아틸라 살루스트로

 


생년월일: 1908년 12월 15일
A매치 기록: 2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나폴리

나폴리 역사상 최초의 스타플레이어로 엄청난 스피드와 부드러움을 겸비한 드리블링과 우수한 테크닉은 물론 강력한 슈팅과 헤더를 통해 득점에도 능숙해 주세페 메아차에 비견되었다.

파라과이 태생이지만 SSC 나폴리의 전신팀 인테르나치오날레 나폴리에서 유스 시절부터 활약해 1군으로 데뷔한 살루스트로는 주세페 메아차에 필적하는 실력으로 평가받았음에도 가난한 나폴리를 위해 무급으로 뛰는 바다와 같은 충성심을 보여줘 팬들은 그를 두고 일 디비노, 즉 신성이라고 불렸고 이탈리아 대표팀에도 종종 소집되었지만 메아차, 페라리라는 강력한 벽을 뚫지는 못했다.

 

18위 세르지오 베르토니

 


생년월일: 1915년 9월 23일
A매치 기록: 6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제노아

1930년대 중반~1940년대 중반 이탈리아 무대 톱클래스 인사이드 포워드로 탄탄한 기본기와 창의적인 두뇌에서 나오는 절묘한 원터치플레이와 상대의 허를 찌르는 패스로 상대 수비진을 따돌리고 득점 찬스를 만드는 부분에 능했다.

피사에서 데뷔해 초년부터 주전으로 활약했던 베르토니는 제노아에서 전성기를 누렸는데 전쟁으로 인해 세리에 A가 중단되고 지역 컵 대회로 대체하던 시절인 1945년에 제노아컵 우승을 이뤄냈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중용받은 베르토니는 1936 베를린 올림픽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우승에 공헌했고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백업으로 우승을 경험했다.

 

17위 아리스토데모 산타마리아

 


생년월일: 1892년 2월 9일
A매치 기록: 11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제노아

1910~20년대 이탈리아 무대 정상급 인사이드 포워드로 공격지역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으며 드리블과 패스, 그리고 득점력 모두 준수했지만 특히 점프력이 우수해 헤더에 강점을 보였다.

지금의 삼프도리아의 일부인 안드레아 도리아에서 데뷔한 산타마리아는 제노아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이탈리아 챔피언십 3회 우승을 이뤄냈고 1921-22 시즌에는 노베세로 잠시 이적해 우승을 이뤄내기도 했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한 산타마리아는 제1차 세계대전 도중에 대표팀에서 데뷔했고 1920 앤트워프 올림픽에서는 이탈리아 대표팀 소속으로 참가했다.

 

16위 지노 로제티

 


생년월일: 1904년 11월 7일
A매치 기록: 13경기 9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토리노 FC

1920년대 하반기에 이탈리아 무대에서 전성기를 누린 공격수로 주로 인사이드 레프트에서 활약했는데 강력한 왼발 슈팅으로 직접 득점에 능했으며 엄청난 근육량에서 나오는 육중한 체구를 활용한 몸싸움과 창의적인 드리블 돌파를 혼용해 상대 수비를 돌파했으며 때로는 센터 포워드로도 출전했다.

토리노 통산 득점 3위에 랭크된 로제티는 발론치에리, 리보나티와 함께 공격 편대를 구성해 활약하며 1926-27 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나 알레만디 스캔들로 인해 리그 우승이 취소되었다. 그러나 로제티는 이에 굴하지 않고 1927-28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을 세웠으며 1928-29 시즌에는 세리에 A 득점왕에 올랐다.

메아차와 페라리 이전 세대의 아주리 군단에서 발론치에리와 함께 팀의 공격을 이끈 로제티는 1927-1930 중유럽컵 우승을 이뤄냄과 동시에 대회 득점왕을 수상했으며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는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15위 다니엘레 마사로

 


생년월일: 1961년 5월 23
A매치 기록: 15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AC 밀란

1980년대~90년대 이탈리아의 다재다능한 공격수로 젊은 시절에는 레프트윙으로 활약했으나 커리어 후반부에는 중앙 공격수로 활약했는데 빠른 스피드와 우수한 판단력을 겸비해 많은 득점을 만들어냈으며 우수한 전술안과 축구 지능, 그리고 왕성한 활동량을 겸해 공격수는 물론 미드필더와 수비 전 지역에서 활약할 수 있어서 밀란의 감독인 사키와 카펠로의 사랑을 받았다.

피오렌티나에서 데뷔해 세리에 A 정상급 2선 자원 겸 유틸리티 자원으로 평가받은 마사로는 AC 밀란으로 이적해 밀란 제너레이션 1기에서 로테이션 멤버로 활약하다가 반 바스텐의 잦은 부상으로 주전으로 도약한 마사로는 밀란 제너레이션 1기라 불리는 시대에서 세리에 A 4회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과 2회 준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에 이바지했다.

1982 스페인 월드컵에 백업 멤버로 소집되어 우승을 경험한 다니엘 마사로는 밀란 이적 이후에는 소속팀에서의 입지 문제로 인해 오랜 시간 대표팀에 뽑히지 못하다가 그의 헌신을 높게 평가한 아리고 사키가 대표팀에 그를 다시 소집했고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바조의 파트너로 주전으로 출전해 결승 진출을 이뤄냈지만 좋지 못한 결정력과 승부차기에서의 실축으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14위 안토니오 디 나탈레

 


생년월일: 1977년 10월 13일
A매치 기록: 42경기 11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우디네세

2010년대 초반 세리에 A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군림한 포워드로 빠른 순간스피드를 활용해 날카롭게 페널티 박스의 빈 공간으로 침투해 날카로운 득점을 보였으며 우수한 기본기를 활용한 드리블 실력을 인정받아 때때로 윙포워드로 출전하기도 했다.

우디네세에서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인 디 나탈레는 중위권으로 분류된 우디네세의 2010-11 시즌 세리에 A 4위, 2011-12 시즌에는 세리에 A 3위에 올리는데 큰 공을 세웠고 디 나탈레 개인도 2009-10 시즌과 2010-11 시즌 세리에 A 득점왕에 올랐으며 2010년에는 세리에 A 올해의 이탈리아 선수상을 수상하기도 했음은 물론 세리에 A 올해의 팀에도 3회 선정되었다. 그리고 2014-15 시즌에는 만 37세의 고령에도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에 올랐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종종 소집되었으나 클럽에서 보여준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하며 부진한 디 나탈레는 그래도 UEFA 유로 2012에서 발로텔리와 카사노의 백업 역할을 맡아 준우승에 기여했다.

 

13위 안토니오 발렌틴 안젤리오

 


생년월일: 1937년 9월 13일
A매치 기록: 2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세리에 A에서 성공적인 활약을 펼친 아르헨티나 출신 인사이드 포워드로 스피드가 매우 빨랐으며 날카로운 킬패스와 상대 수비수를 기만하는 드리블링으로 찬스를 만든 뒤 직접 마무리하는 부분에도 능했고 심지어 헤더에도 능숙했는데 창의적인 두뇌까지 겸비해 다채로운 패턴으로 상대를 공략했다.

아르헨티나에 머물던 시절 일명 더러운 얼굴의 천사들의 일원으로 1957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냈고 이때의 활약을 바탕으로 인테르로 이적한 안젤리오는 인테르 밀란에서 1958-59 시즌 33골을 득점하며 득점왕에 올랐는데 이 기록은 2015-16 시즌에 곤살로 이과인이 깨기 전까지 세리에 A 단일 시즌 최다 득점기록을 57년간 지켰었다.

그러나 특유의 반항적인 성미로 인해 엘레니오 에레라와의 불화가 생기며 AS 로마로 이적한 안젤리오는 AS 로마에서 1961년 인터시티 페어스컵 우승 및 1963-64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지만 그가 등진 인테르 밀란이 유럽을 호령하면서 그 대열에 끼지 못한 아쉬움을 삼켰다.

 

12위 루이지 체베니니 3세

 


생년월일: 1895년 3월 13일
A매치 기록: 29경기 11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65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이탈리아 축구 초창기를 대표하는 인사이드 포워드이자 아이콘으로 기술적으로 정교한 드리블과 우수한 왼발 테크닉을 바탕으로 절륜한 패싱력을 바탕으로 득점 찬스를 만들고 그림같은 중거리 슈팅으로 득점하는 등 팀의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했다.

AC 밀란에서 데뷔했지만 인테르 밀란에서 전성기를 누린 체베니니는 1919-20 시즌에 리그 우승을 이뤄냈고 1920-21 시즌에는 19경기에 출전해 31골을 득점하는 괴력을 보여줬으며 1921-22 시즌에는 노베세로 잠시 떠나 리그 우승을 이뤄내기도 했다. 이후에도 인테르로 돌아와서 활약하다가 유벤투스를 거쳐 어러 구단을 전전하다 은퇴했다.

아주리 군단에서도 주세페 메아차 이전 세대를 대표하던 인사이드 포워드로 활약했던 체베니니는 1927-30 시즌 중유럽컵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했다.

 

11위 아틸리오 데마리아

 



생년월일: 1909년 3월 19일
A매치 기록: 13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아르헨티나 태생이었으나 귀화한 오리운디로 1930년대와 40년대에 걸쳐 유럽과 남미를 풍미했으며 기술적으로 완성되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정밀도 높은 패스와 우수한 드리블 실력과 빠른 반사 신경은 물론 정교한 왼발 슈팅력까지 겸비했으며 인사이드 레프트는 물론 아웃사이드 레프트나 센터 포워드의 위치에서도 훌륭한 모습을 보여줬다.

아르헨티나에서 활약하다가 1931년 이탈리아의 인테르로 건너와 주세페 메아차와 함께 세리에 A 무대를 주름잡았던 데마리아는 잠시 남미에 머물렀지만 다시 인테르로 돌아와 활약하며 1938-39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과 1939-40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을 세웠다.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 두 국가에서 대표팀을 지냈던 데마리아는 1930 우루과이 월드컵 시절에는 아르헨티나 대표팀 벤치에 머물며 준우승을 경험했고 이후 이탈리아로 귀화한 뒤에 치른 1934 이탈리아 월드컵과 1933-35 중유럽컵에서는 아주리 군단의 백업으로 머물면서 우승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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