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이탈리아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오리운디의 경우에도 이탈리아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는 모두 포함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일은 2025년 5월 9일 기준입니다.
20위 로베르토 디 마테오

생년월일: 1970년 5월 29일
A매치 기록: 34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첼시 FC
2011-12 시즌 첼시의 기적적인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끈 감독으로 유명했던 디 마테오는 스위스 태생의 이탈리아인으로 드넓은 시야와 유려한 패싱력은 물론 우수한 볼 컨트롤까지 겸비해 트레콰르티스타 지역에서 플레이메이킹을 하는 부분은 물론 3선에서 레지스타 역할도 수행할 수 있었다.
스위스 무대에서 축구를 시작해 라치오와 첼시에서 두각을 나타낸 디 마테오는 특히 첼시에서 전성기를 맞이해 FA컵 2회 우승을 이뤄냈고 두 번 다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득점하는 클러치 능력을 보여주며 1997-98 시즌 리그컵과 UEFA 컵 위너스컵 더블 우승에 공헌했으며 1998 UEFA 슈퍼컵에서도 레알 마드리드를 이기고 우승하는데 공을 세웠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는 백업 멤버로 UEFA 유로 1996과 1998 프랑스 월드컵에 참가했다.
19위 프란체스코 리초

생년월일: 1943년 5월 30일
A매치 기록: 2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칼리아리 칼초
1960년대 세리에 A에서 이름을 날렸던 최고의 플레이메이커 중 한 명으로 지안니 리베라나 산드로 마촐라에 가려졌지만 양발을 이용한 정확한 패싱력과 날카롭게 골문으로 빨려들어가는 슈팅은 물론 상대 수비를 교란하는 발기술과 우수한 헤더는 그들 사이에서도 경쟁력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칼리아리의 전성기를 이끈 레전드 리초는 1964-65 시즌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에 올랐고 피오렌티나로 이적해서도 전성기를 이어나가며 1968-69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다. 그러나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는 리베라와 마촐라의 아성에 밀려 거의 출전하지 못했는데 1966년에 열린 친선경기에서 불가리아와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출전해 두 경기에서 모두 득점하는 활약을 펼쳤다.
18위 스테파노 피오레

생년월일: 1975년 4월 17일
A매치 기록: 38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SS 라치오
1990년대 하반기에 이름을 날렸던 재능으로 한때 아주리 군단의 향후 10년을 책임질 기대주로 평가받았으며 기민한 원터치 플레이와 정확한 패스, 그리고 상대의 예측을 불허하는 슈팅으로 이름을 날렸다.
하부리그의 여러 팀을 떠돌다가 파르마에 정착해서 첫 전성기를 누린 피오레는 1998-99 시즌 코파 이탈리아와 UEFA컵 우승을 이끌었으며 우디네세에서도 뛰어난 모습을 보였고 베론의 대체자로 라치오에 입성한 뒤에도 2003-04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끌며 대회 득점왕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라리가의 발렌시아에서 스페인 무대 도전을 천명했으나 실패한 이후에는 그저 그런 선수로 전락했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중용받은 피오레는 UEFA 유로 2000에서 주전 공격형 미드필더로 나서며 토티, 인자기와 삼각편대를 이루며 팀의 결승 진출을 이끌며 유럽 팬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17위 안토니오 디 젠나로

생년월일: 1958년 10월 5일
A매치 기록: 15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엘라스 베로나
1980년대 이탈리아 무대를 풍미하며 현대적인 축구 선수라 호평받았던 공격형 미드필더로 빠른 스피드와 민첩한 몸놀림을 활용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진을 교란시켰으며 드넓은 시야와 우수한 체력은 물론 뛰어난 수비 기술과 빠른 패싱력을 겸비한 다재다능한 선수였기에 본 포지션인 공격형 미드필더는 물론 수비형 미드필더와 레지스타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으며 경기장의 다양한 상황에 유려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만능 미드필더였다.
피오렌티나에서 데뷔했으나 안토뇨니의 아성에 밀려 벤치에서 대기하다가 페루자를 거쳐 엘라스 베로나에서 기량이 만개하며 전성기를 누린 디 젠나로는 1981-82 시즌 세리에 B 우승을 이뤄내며 승격을 이뤄냈고 승격한 지 3년 만인 1984-85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끌었으며 이때의 활약으로 아주리 군단에도 소집되어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주전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16위 시모네 페로타

생년월일: 1977년 9월 17일
A매치 기록: 48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AS 로마
21세기 세리에 A를 대표하는 언성 히어로로 측면과 중앙을 모두 막힘없이 소화했으며 오프 더 볼 상황에서의 영리한 움직임과 왕성한 활동량으로 공수 양면에서 큰 영향력을 끼쳤던 오프 더 볼 상황에서 더 강력했던 유니크한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키에보 베로나에서 만개한 페로타는 구단 역사상 최초의 세리에 A 승격을 이끌었고 승격한 2001-02 시즌에는 전반기에 1위를 달리는 기염을 토했으며 최종 순위도 5위로 마치며 UEFA컵에 진출하는 이변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AS 로마로 이적한 뒤에는 팀의 살림꾼을 맡아 잘로로시 군단의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과 2007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을 이뤄냈고 특히 2006-07 시즌에는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에 올랐는데 세리에 A 준우승만 4회를 기록하며 스쿠테토와는 인연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팬들은 그의 활약을 높게 평가했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는 UEFA 유로 2004에 데뷔한 페로타는 2006 독일 월드컵에서 팀의 왼쪽 측면을 맡아 왕성한 활동량과 넓은 활동반경을 보여주며 그로소의 활발한 오버래핑을 커버하거나 가투소, 피를로를 도와 중원 싸움에 가세하는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활약하며 아주리 군단의 월드컵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역할을 했다.
15위 주세페 도세나

생년월일: 1958년 5월 2일
A매치 기록: 38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토리노 FC
1980년대 이탈리아 무대에서 활약한 플레이메이커로 군더더기 없이 빠르게 주는 원터치 패스와 세련된 볼 컨트롤은 물론 적절한 전진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허문 뒤 중거리 슈팅으로 마무리하는 플레이도 능했으며 중앙과 측면을 모두 막힘없이 소화했다.
토리노의 유스 출신인 도세나는 1976-77 시즌 처음 데뷔했을 때에는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방출되었지만 여러 팀을 거치며 성장한 뒤 1981-82 시즌에 다시 돌아와 활약하며 1981-82 시즌 코파 이탈리아 준우승과 1984-85 시즌 세리에 A 준우승을 이뤄내며 리그 정상급 플레이메이커로 명성을 떨쳤고 이 시기에 이탈리아 대표팀에도 선발되며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 조국의 우승을 경험하기도 했다.
토리노에서 전성기를 보내다 삼프도리아에 입단한 도세나는 구단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이뤄내는데 일조했는데 1988-89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989-90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 그리고 1990-91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내며 세 시즌 머무는 동안 무관으로 시즌을 보낸 적이 없었을 정도로 활약했고 반대로 그를 보낸 토리노는 그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강등당했을 정도로 경기장 내외에서 영향력이 컸다.
14위 프란체스코 페둘로

생년월일: 1905년 5월 27일
A매치 기록: 2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볼로냐 FC
1930년대 이탈리아 무대에서 활약하던 우루과이계 인사이드 레프트로 뛰어난 테크닉과 창의적인 패싱력을 바탕으로 한 찬스 메이킹을 겸비했으며 특히 강력한 왼발 킥력을 바탕으로 득점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우루과이의 수드 아메리카에서 활약하다가 동향의 안드레올로, 산소네와 함께 볼로냐로 이적한 페둘로는 1930년대 팀의 약진을 이끌며 당시 중유럽의 챔피언스리그였던 미트로파컵 2회 우승을 이뤄냈고 1930년대 하반기에는 세리에 A 3회 우승을 이뤄내며 유벤투스에게 넘어갔던 이탈리아 내 패권을 다시 볼로냐로 되찾아오는 데 성공하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분명 당대 유럽 톱클래스 인사이드 포워드였으나 이탈리아 대표팀에는 주세페 메아차와 지오반니 페라리라는 압도적인 존재가 있었기에 주전으로 나설 수 없었다.
13위 라파엘 산소네

생년월일: 1910년 9월 20일
A매치 기록: 3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볼로냐 FC
1930년대 후반 볼로냐의 전성기를 이끈 우루과이 태생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인사이드 라이트에 위치하며 득점을 노리기보다는 빠르고도 정확한 패스와 날카로운 드리블, 그리고 아웃사이드 라이트인 비아바티와의 유려한 연계 플레이로 상대 왼쪽을 위협했던 선수였다.
우루과이의 페냐롤에서 데뷔했으나 데뷔한 지 1년도 안되어 볼로냐가 영입했던 산소네는 로쏘블루의 일원으로 활약하는 동안 당대 중유럽의 챔피언스리그였던 미트로파컵 2회 우승을 이뤄낸 것을 시작으로 동향의 안드레올로, 페둘로와 함께 세리에 A 4회 우승을 이뤄내며 유벤투스에게 옮겨간 이탈리아의 패권을 다시 볼로냐로 가져오는데 큰 공을 세웠다.
분명 당대 유럽 톱클래스 인사이드 포워드였으나 이탈리아 대표팀에는 주세페 메아차와 지오반니 페라리라는 압도적인 존재가 있었기에 주전으로 나설 수 없었다.
12위 알도 캄파텔리

생년월일: 1919년 4월 7일
A매치 기록: 7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1940년대 이탈리아 무대에서 명성을 날린 인사이드 포워드 겸 하프백으로 스피드와 드리블, 그리고 태클 실력이 모두 평범한 수준이거나 그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으며 활동량이 많은 선수도 아니었지만 영리한 인터셉트로 볼을 자신의 것으로 가로채거나 자신에게 전달된 볼을 능숙하게 다루며 정확하게 전달했으며 전진된 위치에서 활약했을 땐 정확한 중거리 슈팅으로 분위기를 반전하기도 했다.
레오폴도 콘티와 주세페 메아차를 동경하던 인테르 유스 출신으로 인테르에서 데뷔해 14년간 활약한 캄파텔리는 인사이드 포워드와 하프백, 그리고 말년에는 풀백까지 뛰었을 정도로 멀티성이 대단했으며 1943-44 시즌부터 1949-50 시즌까지 일곱 시즌 동안 인테르의 주장직을 역임했다. 초년에는 세리에 A 2회 우승 및 1938-39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격해지면서 리그가 중단되었고 전후에는 '그란데 토리노'라고 불리던 토리노의 독주로 힘을 쓰지 못했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메아차와 페라리의 후계자로 활약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제대로 활약하지 못했던 캄파텔리는 전후에는 토리노 멤버들의 약진으로 벤치로 밀려났고 그들이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자 전성기가 지난 뒤인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메이저 대회에 나설 수 있었다.
11위 에지오 로이크

생년월일: 1919년 9월 26일
A매치 기록: 9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토리노 FC
1940년대 유럽 축구계 정상급 인사이드 포워드 중 한 명으로 WM 시스템의 인사이드 포워드와 하프백을 모두 능숙하게 소화할 수 있었으며 양발 모두를 활용한 강력한 슈팅과 우수한 볼 컨트롤과 드넓은 시야를 활용한 우수한 볼 배급 능력은 물론 근육질의 몸을 활용한 몸싸움과 수비력을 겸비했다.
베네치아에서 데뷔했다가 토리노로 이적해 2선 라인에서 에이스 마촐라를 보좌한 로이크는 1940년대를 풍미하며 유럽 최강의 팀이라 불렸던 엘 그란데 토리노의 전성기를 이끌며 팀의 세리에 A 5연패를 이뤄냈고 1942-43 시즌에는 코파 이탈리아도 석권하며 도메스틱 더블을 이뤄내는 등 승승장구했으나 1949년, 벤피카와의 친선 경기 이후 리스본에서 돌아오는 길에 발생한 수페르가 비행기 참사로 인해 숨을 거뒀고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토리노의 전설적인 신화는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캄파텔리를 밀어내고 마촐라의 파트너로 중용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