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Top 10

국가의 영웅들/이탈리아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Top 10

토르난테 2025. 4. 29.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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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이탈리아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오리운디의 경우에도 이탈리아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는 모두 포함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일은 2025년 4월 27일 기준입니다.

 


10위 조르지오 키엘리니

 


생년월일: 1984년 8월 14일
A매치 기록: 117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2010년대 이탈리아 무대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로 대인 수비 능력에서 강점을 보이는 수비수이며 자신의 우수한 피지컬을 잘 활용하는 선수이며 수비 커버 범위가 굉장히 넓은 선수였으나 큰 경기에서 유독 핸들링으로 인해 패배의 시발점이 되는 아쉬운 면모가 있었던 선수이기도 했다.

칼치오폴리로 인한 암흑기때부터 팀을 지탱했고 결국 2010년대 세리에 A에서 유벤투스가 독주하는데 큰 공을 세운 키엘리니는 보누치, 바르잘리와 함께 BBC라 불리는 수비라인을 이끌어 세리에 A 9연패와 코파 이탈리아 5회 우승, 그리고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2회라는 성적을 냈고 키엘리니 개인도 세리에 A 올해의 팀 5회 선정 및 올해의 수비수 3회 선정되었고 유럽 무대에서도 UEFA 챔피언스리그 시즌의 스쿼드에 2회 및 ESM 올해의 팀에 3회 선정되었다.

아주리에서도 2000년대 후반~2020년대 초반까지 주전 수비수로 활약한 키엘리니는 아주리의 암흑기였던 탓에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 탈락 2회와 지역예선 탈락 2회라는 나쁜 성적을 냈으나 유럽선수권대회에서는 UEFA 유로 2012 준우승을 이뤄냈고 코로나로 인해 2021년에 열린 유로 2020에서는 보누치와 함께 아주리의 우승을 이끌며 발롱도르 투표에서 공동 12위에 올랐다.

 

9위 레오나르도 보누치

 


생년월일: 1987년 5월 1일
A매치 기록: 121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90cm / 몸무게 86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키엘리니와 함께 2010년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수비수로 후방에서 날리는 치명적인 롱패스로 팀의 빌드업의 시작점 역할을 하며 수비력이 우수하진 않지만 상술한 빌드업 능력 이외에도 우수한 볼 간수 능력과 강력한 피지컬을 활용한 몸싸움에 능해 중용되었다.

바리에서 두각을 나타낸 보누치는 유벤투스로 이적한 뒤에는 조르지오 키엘리니, 안드레아 바르찰리와 함께 BBC라 불리는 스리백 라인을 구성해 활약했는데 이들과 함께 세리에 A 8회 우승과 코파 이탈리아 4회 우승을 이뤄냈고 2014-15 시즌과 2016-17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보누치 개인도 세리에 A 올해의 팀 4회 선정과 2015-16 시즌 세리에 A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으며 2016-17 시즌에는 ESM 올해의 팀과 UEFA 챔피언스리그 올해의 스쿼드에 선정되었다.

2010년대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한 보누치는 팀의 빌드업의 시작점이자 수비의 핵으로 활약했으나 아주리의 암흑기였던 탓에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 탈락 2회와 지역예선 탈락 2회라는 나쁜 성적을 냈으나 유럽선수권대회에서는 UEFA 유로 2012 준우승을 이뤄냈고 로나로 인해 2021년에 열린 유로 2020에서는 키엘리니와 함께 아주리의 우승을 이끌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 14위에 올랐다.

 

 

8위 비르지니오 로세타

 


생년월일: 1902년 2월 25일
A매치 기록: 52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20년대 하반기와 1930년대 상반기 정상급 수비수로 이름을 날리던 선수로 헌신적이며 왕성한 활동량을 활용해 경기장 전역에서 공격수들을 막아냈으며 우수한 수비 스킬과 경기를 읽는 전술안을 활용한 예측 수비에 능했으며 패스도 정확해 볼을 허무하게 잃지 않았다.

프로 베르첼리에서 데뷔해 두각을 나타내며 당대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로 평가받았던 로세타는 이적 과정에서 큰 문제가 있었지만 유벤투스가 이를 감수하고도 5만 리라의 이적료를 지급해서 데려왔는데 1920년대 유벤투스의 수비를 이끌었으며 칼리가리스 합류 이후에는 함께 수비라인을 조합해 세리에 A 5연패를 이뤄내며 유벤투스가 전국구 구단의 인기를 얻는 과정에서 큰 공을 세웠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오랫동안 활약한 로세타는 렌조 데 베키가 건재하던 시절에는 그의 파트너 자리를 두고 칼리가리스와 경쟁하다가 은퇴 이후에는 칼리가리스와 같이 출전하며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고 중유럽컵에서는 2회 우승 및 1회 준우승을 이뤄냈다. 그러나 분더 팀이라 불린 오스트리아 대표팀에게 4-2로 패하는데 원흉으로 지목되며 1934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첫 경기 미국전에만 선발 출전하고 8강부터는 벤치 멤버로 우승을 경험했다.

 

7위 움베르토 칼리가리스

 


생년월일: 1901년 6월 26일
A매치 기록: 59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20년대~1930년대 초반, 정상급 수비수로 이름을 날리던 선수로 강한 태클을 날리며 집요한 수비 능력을 지녔으며 우수한 공중볼 능력과 훌륭한 볼 테크닉 능력은 물론 양발을 모두 잘 써 수비라인에 있는 포지션은 모두 소화할 수 있었던 선수였다.

카살레 시절부터 이탈리아 축구계 톱클래스 수비수로 명성을 떨쳤던 칼리가리스는 1928-29 시즌 유벤투스로 이적해서 대표팀 파트너 비르지니오 로세타와 수비라인을 구성해 세리에 A 5연패를 이뤄냈는데 칼리가리스와 오르시, 그리고 몬티의 합류로 이탈리아 무대 독재자로 군림한 유벤투스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국민구단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 비토리오 포초로부터 검투사로 칭해진 칼리가리스는 탈리아 대표팀에서도 렌조 데 베키 은퇴 이후에는 로세타와 파트너로 출전해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했고 중유럽컵에서는 2회 우승 및 1회 준우승을 이뤄냈다. 그러나 분더 팀이라 불린 오스트리아 대표팀에게 4-2로 패하는데 원흉으로 지목되며 1934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벤치에서 대기해하며 우승을 경험했다. 여담으로 칼리가리스가 기록한 A매치 59경기는 오랜 시간 이탈리아 대표팀 A매치 최다 출전자로 군림했는데 파케티가 이 기록을 갱신하기까지 37년이 걸렸다.

 

6위 렌조 데 베키

 


생년월일: 1894년 2월 3일
A매치 기록: 43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63cm / 몸무게 62kg
주 소속팀: 제노아

헝가리의 휘글 형제와 함께 1920년대 유럽 최고의 수비수로 이름을 날렸던 선수로 키와 덩치가 작았지만 덩치와 다르게 힘이 좋았으며 뛰어난 예측력과 세련된 태클을 겸비해 세련된 수비를 보여줬으며 수비수임에도 볼 컨트롤과 드리블에 능해 하프백에서도 뛸 수 있었으며 페널티 킥에 능했고 리그에서 통산 47골을 기록했을 정도로 득점력도 제법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AC 밀란에서 1909년, 만 15세의 어린 나이에 데뷔했음에도 출중한 실력을 보여준 데 베키를 두고 밀라니스타들은 신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으며 그 별명에 걸맞게 AC 밀란의 최연소 득점 기록 보유자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다가 전성기 시절에는 2만 4천 리라에 제노아로 이적한 뒤에는 제노아에서 16년간 활약하며 이탈리아 풋볼 챔피언십 3회 우승을 이뤄내며 제노아가 1920년대 이탈리아 최고의 팀 중 하나로 군림하는데 기여한다.

만 16세 3개월이라는 어린 나이에 아주리에 소집되는 영예를 누린 데 베키는 이후 국가를 대표해 세 번의 올림픽에 나섰으며 그가 은퇴하기 전까지 이탈리아 대표팀은 그가 확고한 주전으로 자리잡았으며 칼리가리스와 로제타가 경쟁하는 구도였다.
 

 

5위 피에트로 비에르코보드

 


생년월일: 1959년 4월 6일
A매치 기록: 45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UC 삼프도리아

위르겐 콜러와 함께 1980년대와 90년대를 풍미한 우크라이나계 혈통의 스토퍼로 굉장히 빠른 스피드와 강력한 피지컬, 그리고 뛰어난 지능과 예측력도 겸비해 상대를 압도적으로 찍어 누르는 플레이를 펼쳐 그의 소련계 혈통과 엮어 차르라고 불렀으며 마라도나와 리네커가 밝힌 자신들이 가장 상대하기 힘들었던 수비수로 뽑았다.

AS 로마에서 1982-83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내고 세리에 A 평점왕인 구에린 도르를 수상한 비에르코보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으로 주전자리를 보장받지 못하자 삼프도리아로 이적해 전성기를 누렸는데 이탈리아 무대에서는 코파 이탈리아 4회 우승 및 1990-91 시즌에는 삼프도리아 역사상 유일한 스쿠테토를 드는데 큰 공을 세웠고 유럽 무대에서는 1989-90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과 1991-92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뤄냈다. 심지어 30대 후반의 나이에 유벤투스로 입성한 뒤에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1995-96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세 구단에서 활약하며 구에린 스포르티보 선정 세리에 A 최우수 스토퍼에 6회 선정된 비에르보코드는 의외로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는 소속팀에서의 실력을 다 보여주지는 못했는데 백업 멤버로 1982 스페인 월드컵 우승을 경험했으나 이후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주전으로 출전했음에도 부진했기에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리카르도 페리의 백업 멤버로 참가했다.

 

4위 파비오 칸나바로

 


생년월일: 1973년 9월 13일
A매치 기록: 136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파르마

아주리를 대표하는 수비수 중 한 명으로 작은 키임에도 용수철과도 같은 점프력을 보여주며 제공권 장악에 강했고 터프한 대인 수비와 날카로운 슬라이딩 태클, 그리고 지능적인 수비라인 통솔 능력을 겸비한 우수한 수비수였으며 베테랑이 된 뒤에는 수비라인 지휘 능력도 발군이었다.

나폴리에서 데뷔했다가 팀의 재정난으로 인해 1995-96 시즌을 앞두고 파르마로 이적했으며 센시니, 튀랑과 함께 강력한 수비라인을 구축하며 1996-97 시즌에는 창단 이후 세리에 A 최고 성적인 준우승을 이뤄냈고 1999년에는 코파 이탈리아, UEFA컵, 그리고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에서 모두 우승하며 3관왕을 차지하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팀 수비의 주축인 부폰과 튀랑이 떠난 2001-02 시즌에도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힘을 보탰지만 정작 부상으로 결승전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파르마의 재정난으로 인테르로 이적했으나 부상과 그로 인한 컨디션 난조가 겹치면서 부진에 빠졌던 칸나바로는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유벤투스로 이적했는데 튀랑과 함께 세리에 A 1위를 2년 연속으로 달성했고 칸나바로 개인은 세리에 A 올해의 수비수 2회 연속 수상 및 2004-05 시즌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고 2005-06 시즌 세리에 A 올해의 선수와 올해의 이탈리아 선수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칼치오폴리로 인해 두 번의 리그우승이 취소되었음은 물론 팀도 대규모의 승점 삭감과 함께 세리에 B로 강등되자 레알 마드리드로 떠났으나 그곳에서 전성기는 끝났다.

클럽에서의 활약도 대단하지만 아주리에서의 활약이 백미인 칸나바로는 1996년 올림픽을 시작으로 1998 프랑스 월드컵부터 2010 남아공 월드컵까지 부상으로 빠진 UEFA 유로 2008을 제외하곤 모두 참가했다. 특히 UEFA 유로 2000에선 짠물 수비의 진수를 보여주며 팀을 결승에 진출시킨 공로로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올랐고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부폰과 함께 수비라인을 이끌고 아예 필드골은 내어주지 않았을 정도로 경악할만한 퍼포먼스를 보인 칸나바로는 실버볼과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고 발롱도르를 수상하며 그의 아주리 경력에 방점을 찍었다.

 

3위 가에타노 시레아

 


생년월일: 1953년 5월 25일
A매치 기록: 78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유벤투스의 황금기를 이끈 리베로로 뛰어난 통솔력과 정확한 커버 플레이는 물론 롱패스와 중거리 슈팅 같은 공격적인 재능에도 능했으며 냉정한 성격으로 돌발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팀을 잘 수습했기에 후배 카브리니도 "베켄바워를 제외하면 우리 팀 리베로들이 최고였다. 원래 리베로들은 극도로 수비 지향적이지만, 그들은 모두 진화하기 시작했고 결국 경기를 조절하는 선수들이 되었다. 가에타노 시레아가 그 첫 번째 진화를 거친 선수였는데, 그는 항상 공이 있는 곳에서 경기했다."라고 호평했다.

아탈란타에서 데뷔했지만 선수 생활 대부분을 유벤투스에서 보내며 유벤투스 구단 통산 출전 4위에 랭크된 시레아는 트라파토니 체제에서 유벤투스의 리베로를 맡아 구단의 세리에 A 7회 우승과 각 한 차례의 UEFA컵, 유러피언 컵 위너스 컵, 유러피언컵을 모두 우승해 3대 유럽 대항전을 모두 석권하는 등 구단 역사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선수가 되었다. 이런 업적을 바탕으로 2011년에 유벤투스 명예의 거리 및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아주리 군단에서도 눈부신 활약을 펼친 시레아는 팀의 리베로이자 수비라인의 중심으로 활약하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과 UEFA 유로 1980에서 4위를 기록했고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탄탄한 수비로 팀의 우승을 이끌며 파올로 로시, 디노 조프와 함께 팀 우승의 일등 공신으로 평가받았고 UEFA 유로 1980에서는 팀 오브 더 토너먼트에 들었으며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발롱도르 투표에서 12위에 랭크되었으며 구에린 스포르티보 선정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시레아와 함께 이탈리아 대표팀과 유벤투스의 대약진을 이끌었던 조프는 그를 두고 "가에타노는 확실한 스타일과 함께 모든 면에서 예외적인 사람이었다."라고 평가했고 라이벌 프랑코 바레시는 그에게 "상대가 알아차리지도 못하게 공을 걷어내던 우아함"이라고 감탄했음은 물론 80년대 세계 최고의 선수 디에고 마라도나조차 그를 세계 최고로 평가하며 "모든 수비수들은 시레아의 '그것'을 배울 필요가 있다."라고 호평했다.

 

2위 알레산드로 네스타

 


생년월일: 1976년 3월 19일
A매치 기록: 78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SS 라치오

2000년대 세계 최고의 센터백 중 한 명으로 우아하고 지능적인 수비수로 아름다우면서도 실용적인 태클과 뛰어난 수비 지능으로 유리한 위치를 먼저 선점하며 상대방의 슈팅 각도를 좁혔으며 빌드업 능력도 뛰어난 우아한 수비수였다.
 
라치오에서 데뷔해 제만 체제에서 세계 최고 레벨의 센터백으로 성장한 네스타는 소위 세리에 7공주 시절에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며 1997-98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시작으로 1998-99 시즌에는 컵 위너스 컵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 역사상 최초로 유럽 대항전에서 우승했고 여름에는 UEFA 슈퍼컵에서 퍼거슨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승리했다. 그리고 1999-2000 시즌에는 세리에 A와 코파 이탈리아를 모두 제패하며 자타공인 리그 최고의 수비수로 군림했고 1998년 세리에 A 올해의 영 플레이어에 선정되었고 2000-01 시즌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라치오의 재정난으로 AC 밀란으로 이적해서도 세계 최고의 수비수로 군림한 네스타는 세리에 A 2회 우승 및 2002-03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고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도 3회 결승에 진출해 2002-03 시즌과 2006-07 시즌에는 우승을 이뤄냈고 네스타 개인도 라치오 시절부터 밀란 시절까지 세리에 A 올해의 수비수에 2000년부터 2003년까지 4년 연속으로 선정되었으며 UEFA 올해의 팀 4회 선정 및 2010-11 시즌 세리에 A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고 은퇴한 이후에는 AC 밀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다만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는 국가대항전 도중 부상으로 자주 낙마하는 등 운이 나쁜 편이었던 네스타는 그럼에도 UEFA 유로 2000에서는 칸나바로와 함께 짠물 수비의 진수를 보여주며 팀을 결승에 올리며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고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5위에 올랐으며 대회 도중 부상으로 이탈했지만 2006 독일 월드컵에서도 우승 메달을 목에 걸었다. 은퇴한 뒤에는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1위 프랑코 바레시

 


생년월일: 1960년 5월 8일
A매치 기록: 81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AC 밀란

AC 밀란과 아주리의 위대한 캡틴이자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 수비수 중 한 명으로 뛰어난 수비라인 통솔 능력과 빠른 스피드, 정확한 롱패스, 몸을 사리지 않는 태클을 모두 겸비한 완벽한 수비수이자 로쏘네리의 심장이었다.

AC 밀란의 원 클럽맨이자 통산 출전 2위에 랭크된 프랑코 바레시는 암흑기 시절 세리에 B 우승을 두 번 이뤄내며 팀을 승격시키며 암흑기의 기둥으로 활약했고 이후 베를루스코니에게 인수된 이후 사키의 밀란 제너레이션 기간에는 무패 우승을 포함해 세리에 A 6회 우승과 UEFA 챔피언스리그 3회 우승을 이뤄냈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AC 밀란에서 우수한 활약을 펼친 바레시는 구단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음은 물론 그의 등번호 6번은 밀란의 영구결번으로 남았다.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낸 바레시는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는 가에타노 시레아라는 큰 벽에 의해 오랜 기간 벤치를 지켰고 주전 멤버로 월드컵 우승을 이뤄내지 못했지만 그가 은퇴하자 바로 주전으로 도약하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조국의 3위 및 월드컵 최장시간 무실점 행진을 이끌며 복수의 매체에서 대회 올스타팀에 선정되었고 1994 미국 월드컵에서도 결승전에서 말디니와 함께 호마리우, 베베투 라인을 완벽하게 봉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대표팀에서도 시레아 못지않은 퍼포먼스를 충분히 보여주며 은퇴한 뒤에는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역대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바레시는 수많은 개인상을 수상했는데 수비수임에도 1989-90 시즌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옹즈 몽디알이 뽑은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3년 연속 선정되었고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일곱 번 선정되어 1989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2위를 차지하며 포디움에 들었다. 은퇴한 뒤에는 1999년 AC 밀란 세기의 선수와 2000년 세리에 A 세기에 선수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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