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80위~71위
주의사항
* 작성자 개인의 주관이 강하게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설득하셔도 바꿀 생각 없습니다.
* 과거 버전과는 대폭 수정되었습니다. 관점이 바뀐 부분도 있고 가진 자료가 그때보다 많아졌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 과거의 선수일수록 수상 기회가 적어 수상 횟수에서 불리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80위 빌리 반 데르 카일런
생년월일: 1946년 12월 6일
국적: 네덜란드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PSV 에인트호번
아약스의 크루이프에 대한 PSV의 대답이라 평가받았던 플레이메이커로 제공권 경합과 수비 가담에 약점을 보였지만 팀 공격을 지휘하는 유려한 패스와 드리블 돌파 및 슛 빌리라 불렸을 정도로 폭발적인 양발 슈팅으로 좌우중앙 어디서든 골을 노릴 수 있었다.
PSV 에인트호번에서 17년 동안 머물렀던 반 더 카일렌은 에레데비시 3회 우승 및 KNVB컵 2회 우승, 그리고 1977-78 시즌에는 정규리그 및 UEFA컵 더블 우승을 차지했고 반 더 카일렌 개인도 에레데비시 득점왕 3회 수상 및 1974-75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득점왕에 올랐다.
비록 네덜란드 축구계의 아이콘 크루이프와의 불화로 크루이프 중심의 팀을 구성하길 원했던 리누스 미헬스에 의해 대표팀에서 퇴출되며 큰 족적을 남기지 못했지만 PSV 에인트호번에서의 그의 위상은 대단해 PSV의 홈 구장인 필립스 스타디온 앞에는 그의 동상이 건립되었다.
79위 사페트 수시치
생년월일: 1955년 4월 13일
국적: 보스니아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파리 생제르맹
1980년대 유고슬라비아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았던 플레이메이커로 날카로운 스루패스로 아군 공격수의 득점 찬스를 만드는 뛰어난 플레이메이킹 능력으로 팀 공격을 지휘했으며 발에 자석이 달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정도로 정교한 드리블을\ 바탕으로 상대 수비진을 교란하기도 했음은 물론 유고슬라비아 리그 득점왕을 차지한 적이 있었을 정도로 득점력도 준수했는데 그 기량이 어찌나 대단했던지 전설적인 스트라이커 게르트 뮐러는 그를 두고 역대 최고의 선수들을 뽑을 때 최소한 40등 안에는 들 수 있는 선수라고 평가했다.
FK 사라예보에서 데뷔해 무려 열 시즌을 보냈는데 비록 소속팀 전력의 한계로 우승을 경험하진 못했지만 수시치 자체는 리그 정상급 선수로 평가받아 대표팀에서 주전으로 맹활약하며 1982 스페인 월드컵과 UEFA 유로 1984에서 주전으로 활약했다.
이후 프랑스 무대의 파리 생제르맹으로 이적한 수시치는 1981-82 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최초의 메이저 트로피인 쿠프 드 프랑스 우승에 공헌했으며 1983년에는 PSG 소속 선수로는 최초로 리그앙 올해의 외국인 선수가 되었다. 그리고 1985-86 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최초의 리그 우승에 공헌했다. 파리 시절에도 대표팀에 뽑혔는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주장으로서 조국의 8강행을 이끌었다.
78위 드라간 스토이코비치
생년월일: 1965년 3월 3일
국적: 유고슬라비아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츠르베나 즈베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걸쳐 유고슬라비아 축구계의 간판스타로 유려한 볼 컨트롤 능력과 상대의 수비라인을 궤멸시키는 날카로운 쓰루패스로 득점 찬스를 창출하는데 능했던 클래식한 공격형 미드필더였으며 이러한 플레이 스타일 때문에 요정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츠르베나 즈베즈다에 머무는 동안 리그 2연패와 1989-90 시즌 도메스틱 더블을 이뤄냈으며 리그 MVP를 2회 수상하며 맹활약한 스토이코비치는 팀을 떠난 뒤에는 마르세유에서 적응하지 못해 일본 무대로 떠나기도 했고 마르세유에 머물 때에는 유러피언 컵 결승전에서 친정팀 츠르베나 즈베즈다를 만났으나 본인은 벤치를 달궜으며 팀도 패하는 얄궂은 운명을 맞이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즈베즈다에 머문 시간에는 활약이 대단해 1989년 리그에서의 뛰어난 퍼포먼스로 발롱도르 투표에서 6위에 오르기도 했음은 물론 J리그의 나고야 그램퍼스에서도 부활하며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유고슬라비아의 대격변기에 활약한 스토이코비치는 분리 이전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 UEFA 유로 1984에 나섰고 1984 LA 올림픽에서는 동메달을 목에 걸었으며 1988 서울 올림픽과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 참가해 후자의 대회에서는 8강에 진출했음은 물론 스토이코비치 본인도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분리 이후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는 주장 완장을 차고 1998 프랑스 월드컵 16강과 UEFA 유로 2000 8강 진출을 이뤄냈다.
77위 움베르토 마스치오
생년월일: 1933년 2월 20일
국적: 아르헨티나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라싱 클루브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에 걸쳐 이름을 날렸던 인사이드 포워드이자 공격형 미드필더로 상대 수비진을 교란하는 명민한 드리블과 양발 모두를 사용하는 기습적인 슈팅은 물론 드넓은 시야와 창의적인 양발 패스에서 나오는 절륜한 플레이메이킹까지 겸비하며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부족함이 없었다.
라싱 클루브에서 활약하며 1957 코파 아메리카에서 오마르 시보리와 함께 더러운 얼굴의 천사들이라 불렸던 선수단의 공격을 이끌며 1957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냈는데 그 과정에서 9골을 득점하며 공동 득점왕에 올랐는데 우승의 분수령인 브라질전에서는 두 번째 골을 득점하며 3-0 대승을 이끌었고 우루과이전에서는 선제골을 포함한 멀티골을 득점하며 4-0 대승을 이끌었다.
이 대회 직후 이탈리아로 건너가 볼로냐, 아탈란타에서 활약하며 이탈리아 국적으로 잠시 활약하다가 인테르에서는 로테이션 멤버로 1962-63 시즌 세리에 A 우승에 일조했고 피오렌티나를 거쳐 다시 라싱 클루브로 돌아온 뒤에는 1966 시즌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과 1967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 우승을 이끌었다.
76위 호세 마리 바케로
생년월일: 1963년 2월 11일
국적: 스페인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19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 이름을 날린 바스크 출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드리블이 우수한 선수는 아니었지만 간결하고 빠른 퍼스트 터치를 앞세운 패스 플레이와 영리한 오프 더 볼 상황에서의 움직임으로 팀의 플레이메이킹을 주도했으며 키는 작았지만 엄청난 점프력을 보여주며 헤더를 활용해 결정적인 순간에 득점했다.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데뷔한 바케로는 백업 멤버로 라리가 2연패를 경험한 것을 시작으로 1982-83 시즌에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페리코 알론소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주전으로 도약하며 1982-83 시즌 유러피언 컵 8강전 스포르팅 리스본 전에 득점하며 준결승 진출에 공을 세웠다. 1982-83 시즌 이후에는 주전을 넘어 팀의 핵심 선수로 도약했으며 1986-87 시즌에는 코파 델 레이 결승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상대로 승부차기 첫 번째 키커로 나서 성공하며 우승에 기여했으나 1987-88 시즌에는 코파 델 레이 결승에서 바르셀로나에게 아쉽게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으며 그 경기가 바케로의 추리 우르딘 군단에서의 마지막 경기였다.
FC 바르셀로나에서는 크루이프의 드림팀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라리가 4연패와 1989-90 시즌 코파 델 레이 우승, 그리고 두 번의 컵 위너스컵 우승과 1991-92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을 모두 이뤄냈는데 특히 1991-92 시즌 4강 벤피카전에서는 헤딩골로 득점해 팀을 결승으로 이끈 클러치 능력도 보여줬다. 이 시기의 바케로는 스페인 대표팀에서도 자주 선발되었는데 UEFA 유로 1988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과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백업으로 대회에 참가했다.
75위 루이스 엔리케
생년월일: 1970년 5월 8일
국적: 스페인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스페인 버전의 루드 굴리트라고 할 수 있는 선수로 양발을 모두 잘 썼으며 우수한 스테미너에서 나오는 왕성한 활동량과 빠른 반응속도는 물론 간결하고 효과적인 턴과 드리블로 상대 수비수를 잘 속이는데 슈팅력도 겸비했음은 물론 수비 가담도 성실히 이행해 필드의 거의 모든 포지션에서 뛸 수 있었다.
스포르팅 히혼에서 데뷔해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양 팀에서 모두 우수한 활약을 펼쳤는데 전자의 구단에서는 1992-93 시즌 코파 델 레이 우승과 1994-95 시즌 라리가 우승을 이뤄내며 주축 선수로 자리 잡았으나 돌연 라이벌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해 활약하며 라리가와 코파 델 레이를 각각 2연패를 이뤄냈고 1996-97 시즌에는 UEFA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내며 ESM 올해의 팀에 들었고 1997년 발롱도르 투표에서는 13위에 올랐으며 1997-98 시즌에는 도메스틱 더블을 이뤄냈다.
아르마다 군단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을 시작으로 1994 미국 월드컵과 UEFA 유로 1996, 그리고 1998 프랑스 월드컵과 2002 스페인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두 번의 월드컵에서 8강에 진출하는 성과를 냈다.
74위 흐리스토 보네프
생년월일: 1947년 2월 3일
국적: 불가리아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로코모티프 플로브디프
불가리아를 대표하면 두 명의 명품 트레콰르티스타중 한 명으로 뛰어난 발재간과 우수한 킥력을 겸비했는데 서독의 귄터 네처와 네덜란드의 요한 네스켄스에 비견되었는데 특히 킥력과 득점력만큼은 이들보다 우수했는데 롱패스로 단숨에 찬스를 만드는 능력과 프리킥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로코모티프 플로브디프에서 주로 활약한 보네프는 우승을 이뤄낸 적은 없지만 보네프 개인은 불가리아 대표팀의 에이스를 맡았을 정도로 인정받았고 실제로도 불가리아 올해의 선수에 3회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불가리아 대표팀에서는 1970 멕시코 월드컵과 1974 서독 월드컵에서 본선에 진출해 뛰어난 활약을 선보였다.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통산 4회 선정된 보네프는 20세기 불가리아 최고의 축구 선수 3위 및 20세기 플로브디프 최고의 축구선수 및 명예시민으로 선정되었다.
73위 크라시미르 발라코프
생년월일: 1966년 3월 29일
국적: 불가리아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VfB 슈투트가르트
불가리아를 대표하면 두 명의 명품 트레콰르티스타중 한 명으로 드넓은 시야와 경기 흐름을 완벽하게 파악하는 우수한 전술안, 그리고 화려한 왼발 테크닉과 정교한 왼발 패스를 바탕으로 팀의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하며 팀의 공격을 풀어나갔으며 지구력도 우수해 수비와 압박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했으며 가끔은 높은 수준의 드리블 돌파로 상대 수비진을 모두 제치고 찬스를 만들거나 득점하는 괴력을 보여줬기에 잉글랜드의 명감독 바비 롭슨은 그를 두고 "내가 봐왔던 선수 중에 최고의 테크니션"이라고 평가했다.
에타르 벨리코 터르노보와 스포르팅을 거쳐 슈투트가르트에서 팀과 개인의 전성기를 모두 누렸는데 비록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내지는 못했지만 에우베르, 보비치와 함께 매직 트라이앵글이라는 공격 트리오를 형성해 1996-97 시즌 DFB포칼 우승과 1997-98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준우승을 이뤄냈고 함께 공격을 이끈 에우베르와 보비치가 각각 분데스리가의 양강 바이에른 뮌헨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했을 때에도 슈바벤에 충성하며 팀을 홀로 이끌며 유망주들의 성장을 도왔으며 자신이 케어한 유망주들과 함께 인터토토컵 2회 우승과 2002-03 시즌 분데스리가 준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발라코프 개인도 키커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다.
불가리아 대표팀에서의 활약도 대단했던 발라코프는 1994 미국 월드컵에서 스토이치코프와 함께 조국 불가리아의 월드컵 첫승과 준결승 진출을 모두 이뤄냈고 발라코프 개인도 소파스코어 기준 7.64점이라는 높은 평점을 받았고 대회 공식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이 대회 이후에도 UEFA 유로 1996과 1998 프랑스 월드컵에도 참가했던 발라코프는 불가리아 올해의 선수상을 2회 수상했다.
72위 세사르 쿠에토
생년월일: 1952년 6월 16일
국적: 페루
신체조건: 키 171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알리안사 리마
테오필로 쿠비야스, 훌리오 세사르 우리베와 함께 페루 축구 3대 공격형 미드필더로 평가받는 선수로 매혹적인 왼발 패스를 바탕으로 하는 플레이메이킹은 당대 남미무대 최고로 평가받았기에 세간 사람들은 그를 두고 왼발의 시인이라 불렀다.
페루의 알리안사 리마에서 1차 전성기를 누리며 정규리그 3회 우승 및 1976년 시몬 볼리바르컵 우승을 이뤄냈고 그 과정에서 1978년 남미 올해의 선수 4위 및 1980년 페루 올해의 축구선수로 선정되었다. 말년에는 콜롬비아 리그의 아틀레티코 나시오날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정규리그 2회 우승 및 1980년과 1981년에 콜롬비아 리그 MVP 2연패를 이뤄냈다.
페루 대표팀에서도 벨라스케스, 쿠비야스와 함께 팀의 중원을 이끌며 1975 코파 아메리카 우승 및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2차 조별 리그 진출을 이뤄냈고 1982 스페인 월드컵에도 참가했다. 은퇴한 뒤에는 알리안사 리마 역대 베스트 일레븐 및 콜롬비아 축구의 역대 최고의 외국인 1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71위 베슬리 스네이더르
생년월일: 1984년 6월 9일
국적: 네덜란드
신체조건: 키 171cm / 몸무게 67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2000년대 후반을 빛낸 고전적인 플레이메이커로 양발 모두를 잘 썼으며 짧은 패스와 중장거리 패스를 안 가리고 잘 활용했으며 중거리 슈팅, 그리고 데드볼 상황에 능해 '스나이퍼'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AFC 아약스에서 데뷔해 2003-04 시즌 에레데비시 우승을 이끌어 주목받았고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으나 기대 이하의 활약을 펼치며 2009년에 영입된 카카에 밀려나 인테르로 쫓겨났다. 그러나 인테르에서는 이를 비웃듯 그리고 2009-10 시즌 인터 밀란에서 트레블을 이뤄내는데 큰 역할을 하며 2010년 UEFA 클럽 올해의 미드필더를 수상했다. 그러나 이후에는 하락세를 겪었다.
네덜란드 대표팀에서도 뛰어난 모습을 보인 스네이더는 특히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팀의 결승 진출을 이끌며 실버볼을 수상했고 클럽에서의 활약에 이어 월드컵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쳤기에 2010년 피파 발롱도르 투표에서 4위를 기록했다. 더 놀라운 점은 피파 올해의 선수상과 통합하지 않고 과거의 발롱도르 투표처럼 기자단 투표로 했으면 2010년의 발롱도르는 스네이더의 차지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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