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축덕 아저씨의 축구 썰/동축아썰 칼럼

팬들의 여론과 진실, 그 사이에서 내 스탠스

토르난테 2024. 4. 26.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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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팬들의 보고 싶어하는 것과 진실 사이의 괴리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나는 축구 블로그를 다년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이 블로그는 특정 주제의 역대 올스타와 인물들에 대한 순위 매기기를 바탕으로 컸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당연하게도 이는 많은 논란을 따른다. 그 과정에서 내 말은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무례한 태도를 견지하며 자신의 의견만 내는 일부 사람들을 차단하기도 했다. 봐주는 사람을 한 명 잃는 거지만 이 일을 오래 하기 위해선 스트레스 관리는 필수고 나는 진상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마인드다.

여러 논란이 있지만 특히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클럽 역대 올스타에 있었다. 아시다시피 지역 및 국내 최고의 라이벌 구단들끼리는 사이가 좋지 못하고 선수들도 이런 상황에서 라이벌 팀으로 옮기는 행위는 금기시하기 때문이다.

 

 

캠벨의 토트넘 시절. 하지만 캠벨은 지역 라이벌 아스날로 자유계약으로 떠나버렸고 스퍼스의 금기어로 전락했다.



그리고 그 금기를 어긴 선수들 역시 소수지만 항상 있었는데 문제는 이들 중 해당 구단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경우도 많았고 이에 나는 그들을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항상 선정했다. 대표적인 예가 FC 서울 역대 올스타팀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K리그 톱클래스의 선수이자 서울 구단 통산 최다 득점아임과 동시에 구단 최강의 선수 중 한 명인 데얀을 선정했다.

 

 

최고의 업적이자 최악의 여론을 동시에 가진 FC 서울에서의 데얀



그러나 데얀은 황선홍과의 갈등으로 인해 구단에서 입지를 잃었고 결국 울산 현대와 같은 다른 팀들의 오퍼를 거절하고 FC 서울과 최악의 라이벌 관계였던 수원 삼성으로 이적했고 서울 팬들은 데얀을 규탄하기 시작했고 데얀을 FC 서울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넣으면 화를 내는 경우가 잦았다. 비슷한 예가 여러 번 있었지만 파급력이 데얀만큼 큰 선수는 드물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나는 팬들의 여론과 진실, 그 사이에서 내 스탠스를 오랜 기간 정리했다.


2. 팬의 목소리


대한민국의 농구감독 최희암은 "너희들이 볼펜 한 자루라도 스스로 만들어본 적이 있느냐? 너희 같이 생산성 없는 공놀이를 주업으로 삼으면서 돈 벌고 대접받고 하는 것은 팬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다. 팬들에게 잘해야 된다."라고 말하며 선수들에게 팬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명장 알렉스 퍼거슨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 중 일부가 경기에서 패했다고 팬서비스 요청을 무시하자 "도대체 너희들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팬들이 너희들의 연봉을 주는 사람이다. 저분들은 너를 보고 온 거야."라고 외쳤다.

 



최희암과 퍼거슨이 한 말은 추호의 거짓도 없는 사실이다. 축구와 농구를 포함해 소위 예체능은 생산성이 거의 없지만 팬들을 즐겁게 해 주며 후원을 받으며 산업을 발전시켰기에 당연하게도 팬의 입김 자체는 무시할 수 없다. 만약 내가 구단과 관계된 사람이었다면 팬들의 눈치를 어느 정도 봤을 것이다. 팬들의 니즈를 맞춰주는 게 구단 관계자의 역할이 맞기 때문이다. 내가 서울 구단에게 돈 받고 베스트 일레븐 선정하라고 했으면 데얀은 제외하고 뽑았을 공산이 크며 광고주였어도 서울에서 현재 가장 민심이 좋은 선수들을 앞세워 광고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개인의 문제는 다르다. 팬들의 다수결 여론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개인이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자유다. 서울 팬들의 95% 이상이 데얀을 싫어한다고 하더라도 극소수의 아닌 사람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싫긴 하지만 구단에 세운 업적을 존중한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그들이 이런 여론을 펼치는걸 서포터즈라는 이름하에 억압하는 것은 폭력이다. 그들이 공식적으로 서울 팬덤의 대표로 말한 것도 아니고 개인의 생각을 말했는데 그럴 수가 없다. 이걸 부정한다면 전체주의를 옹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팬 각자에게는 특정 대상을 싫어할 권리가 있으며 구단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넣지 않을 권리 역시 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특정 대상이 팀을 좋지 않게 떠났음에도 그의 업적을 인정할 권리가 있고 구단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할 자유도 있다. 이는 모두 범죄의 테두리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설득도 아니고 강요를 하는 부분은 잘못된 거다. 실제로 법을 어기는 행위이며 도의적으로도 실례지 않는가? 서포터즈의 입장이 다수의 여론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팬들의 여론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해줬으면 좋겠다.

실제로 그의 오랜 부상복귀를 기다려준 인테르를 버리고 레알 마드리드로 떠난 호나우두도 인테르 팬들의 팬투표로 최초의 명예의 전당 멤버 4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그렇다고 호나우두를 무조건 인테르 레전드로 인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최악의 배신자라 불리는 루이스 피구는 바르셀로나에 있던 기간 동안 히바우두, 클루이베르트와 함께 팀의 공격을 이끌며 맹활약했지만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는 과정에서 거짓말까지 쳐서 팬들의 민심은 최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구가 바르셀로나에서 세운 업적을 부정하지 않았다고 진정한 바르셀로나 팬이 아닌 것이 아니다.

 

 

레알 마드리드에 합류하면서 전 소속팀 팬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았던 호나우두와 피구



즉 팬덤은 다양한 객체의 사람들이 모여있고 내부의 주류 의견을 거스른다고 그들이 서포터가 아닌 것이 아니다. 그 구단을 좋아해서 응원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게 서포터가 아니면 무엇이 서포터겠는가?


3. 진실을 원하는 사람들

 

그렇다면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래. 팬들이 말하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팬도 아니면서 남의 구단 이야기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은 용납하지 못한다."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타팀의 팬들이 놀리는 경우를 경계해서 한 발언일 수도 있다. 그러나 타팀팬이라고 그 팀에 대해 언급할 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해당 팬이 아니라도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으며 축구에 대한 진실을 탐구하고자 하는 사람들 역시 많아졌기 때문이다.

인간은 보통 자신들이 믿고 싶어하는 부분을 믿고 보고 싶어하는 부분만 보려는 게 본성이고 대다수의 팬들이 그렇다. 그래서 과거의 에이스가 세운 업적을 보지 않으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는 진실을 탐독하고자 하는 사람들 역시 존재한다. 축구 자체를 하나의 학문이라 생각하고 탐독하는 사람도 전 세계에 상당히 많고 그들은 커뮤니티 혹은 자신의 블로그 및 유튜브에서 자신의 관점을 대중들에게 설파한다.

 

 

축구 역사상 손꼽히는 천재 크루이프는 자신의 방식 외에는 타인을 존중하지 않아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들에게 축구는 하나의 연구대상이자 철학이기에 자신이 좋아하는 구단의 입장보다는 자신의 관점에 따라 축구를 탐독한다. 그래서 해당 팀의 팬들이 외면하고 싶어하는 부분에 대해 말하기도 한다. 나도 이 부류의 사람이다. 처음에는 아니었지만 축구사에 대해 탐독하다가 이 길을 택했다. 내가 우월하고 일반 팬들이 열등하다는 게 아니다. 서포팅 방식의 차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생각을 존중한다. 하지만 그들 중 일부는 내 생각을 존중하지 않았다.

여러분은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주장에 대해 긍정하지 않을 권리는 있다. 하지만 존중은 일방향이 아니다. 부정할 권리가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입을 막을 권리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집단의 위력을 동원해 강제로 입을 막으려고 한다면 인터넷상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도 그게 사이버불링이고 이는 범죄다. 건전한 의견 교환을 저해하고 축구팬들을 피곤하고 지치게 만들어 떠나게 하는 행동인 것은 덤이다. 다수의 사람들이 다양한 생각을 들을 권리를 이렇게 잃어가는 것임과 동시에 축구시장의 폭을 좁히는 판에 대해 실례인 행동이다.

당신들의 의견이 소중하면 당신들과 반대되는 사람의 의견 역시 소중하다. 물론 진실을 원하는 사람들이라면서 사실을 왜곡하거나 무례한 태도를 견지한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그 이유가 아니라면 팬도 아니면서 남의 구단 이야기 하는 것을 못하게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4. 일개 축구팬 토르난테의 스탠스는?

 

나도 한때는 그들이 나를 존중하지 않는 것에 꽤 오랜 기간 동안 반발했고 그들의 의견을 틀린 것으로 치부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 태도는 잘못됐다고 판단하고 그들의 의견을 틀렸다고 매도하지도, 바꾸려고 설득하지도 않기로 했다.

그들은 그들의 방식으로 응원했다. 돈과 시간을 투자해서 직관을 가서 큰 목소리로 응원하고, 구단에서 내는 굿즈를 사며 구단이 광고하는 제품을 산다. 그들이 있기에 구단의 투자도 있고 덕분에 시장이 커져 나도 즐길 컨텐츠가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아발란차라 불리는 엄청난 응원을 보여주는 보카 주니어스의 팬들



하지만 그들 역시 내가 어떻게 뽑든 내 관점은 존중해 줬으면 좋겠다. 내가 사실을 잘못 알고 있거나 관점에 일관성이 없다고 생각된다면 의견을 내서 지적해 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구단에서 배신자라고 욕먹는 인물들의 업적 역시 널리 기록하고 평가할 것이다. 그게 내가 축구를 대하는 자세이기 때문이다.

난 앞으로도 계속 여러분들을 존중하겠다. 내 의견에 대해 동의하라고 강요하는 일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도 내가 축구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권리는 존중했으면 좋겠다. 다시 한번 말한다. 존중은 일방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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