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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네즈 모터볼의 기적-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광인

토르난테 2024. 4. 29.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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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7-2 포메이션을 꿈꾸는 광인

 

"2-7-2 포메이션을 주목하라. 이 포지션은 축구의 미래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보통 포메이션에 나온 숫자를 셀 때 골키퍼는 세지 않기에 포메이션에 언급된 숫자의 합은 10이 된다. 그러나 모타는 기존의 관념과는 다르게 골키퍼를 포함한 11명을 배치했는데 심지어 골키퍼를 두 명의 센터백보다 앞자리에 배치했다.

 

 



UEFA 프로 라이선스 과정에서 논문 작성과 발표를 포함해 110점 만점에 108점으로 수석을 차지했던 모타는 지도자 커리어의 시작점이었던 파리 생제르맹 U-19 시절부터 이를 주장했다. 제노아에서는 이를 적용하려다가 팀이 최하위로 떨어지며 경질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지만 스페지아 칼초에서 반등에 성공해 2022년 1월 세리에 A 이 달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시즌이 끝난 뒤, 스페지아의 지휘봉을 내려놓은 모타는 2022-23 시즌을 앞두고 백혈병으로 사임한 미하일로비치 감독의 뒤를 이어 볼로냐의 지휘봉을 잡았다.

2021-22 시즌에 세리에 A 13위로 마쳤던 볼로냐에서 모타는 처음에는 10경기 1승 4무 5패로 혹독한 신고식을 겪었으나 점차 승점을 쌓아가더니 막판에는 5경기 3승2무라는 호성적을 거두며 9위로 순위상승을 이뤄내 적응기를 마쳤다. 적응기를 마친 모타는 이상과 현실의 타협점을 찾기 시작했다.


2. 모타볼이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1920년대와 30년대, 볼로냐는 유벤투스, 인테르와 함께 이탈리아와 중유럽 지역 최고의 클럽으로 군림했었다. 센터포워드의 교과서와 같은 안젤로 스키아비오와 세계 최초의 후방 플레이메이커 미켈레 안드레올로 등 스타플레이어들을 여럿 보유했었지만 1960년대 이후로 쇠퇴해 1990년대에는 세리에 C1까지 강등당한 경험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올라온 현재의 볼로냐 역시 강력한 전력을 가진 팀도, 예산이 많은 팀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팀을 떠나기 원하는 주축 선수들을 잡기가 쉽지 않았으며 모타의 입맛대로 선수를 영입하기도 어려웠다.

 

 

볼로냐의 왕이자 센터 포워드의 교과서, 스키아비오



실제로 중원의 핵 니콜라스 도밍게스는 노팅엄 포레스트로 떠났고 지난 시즌 리그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한 해결사 아르나우토비치도 특정 조건 만족 시 완전 이적료 1000만 유로라는 조건을 달고 인테르 밀란으로 임대를 떠났으며 준족의 레프트윙 무사 바로우 역시 막대한 투자로 급격하게 세를 불리는 사우디 프로페셔널리그의 알타아원으로 이적했다. 그리고 이들을 포함한 1군 및 2군의 선수 24명이 팀을 떠났다.

이에 모타는 새 그림을 그리기 위해 아탈란타 시절에 세리에 A 경험이 많았던 레지스타 레모 프로일러를 노팅엄 포레스트로부터 임대로 데려왔고 라이트백과 센터백을 모두 소화했던 슈테판 포슈와 유망주 미드필더 니콜라 모로의 구매옵션을 발동해 완적이적시켰다. 그리고 공격진에도 대체자들을 영입했는데 바로우의 대체자로는 우선 AC 밀란에서 샬레마커스를 임대했고 추가로 제스퍼 칼손과 단 은도이를 영입했다. 아르나우토비치의 대체자로는 바이에른 뮌헨 유스팀에서 두각을 냈던 지어크제에게 기회가 돌아갔다.

생각보다 평범한 행보를 보였기에 시즌 시작 전에는 별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개막전 AC 밀란전 패배 이후 2라운드부터 11라운드까지 10경기 연속 무패행진을 벌였는데 그 과정에서 유벤투스, 나폴리, 인테르와 무승부를 냈고 라치오를 꺾었다. 비록 피오렌티나에게 패해 한풀 꺾였지만 12라운드부터 17라운드까지 4승 1무라는 훌륭한 성적을 냈고 후반기에는 23라운드부터 27라운드까지 6연승을 거뒀다.

 

 

볼로냐는 33라운드에서 챔피언스리그 진출 경쟁팀 AS 로마를 꺾었다.

 

 

특히 돋보이는 부분은 점유율인데 58.5%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나폴리 다음으로 공을 오래 소유했고 수비적인 부분에서도 크게 개선되며 34경기에서 27실점으로 탄탄한 수비력을 선보였고 결국 인테르와 유벤투스 다음으로 적은 실점을 기록했다. 지난 시즌에 경기당 평균 점유율 55%를 기록해 6위에 그쳤고 수비적인 부분에서는 49실점으로 뒤에서 여덟 번째로 많은 실점을 기록했는데 이번 시즌에는 이 두 부분에서 크게 개선되었다.

 

볼로냐는 공격, 미드필더, 수비 모두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며 1992-93 시즌 개편 이후로 첫 챔피언스리그 진출이 유력해졌는데 5위 AS 로마를 상대로 홈과 원정에서 모두 이겼음은 물론 승점도 4점이나 차이나기에 로마는 자력으로 이를 뒤집긴 어렵다. 반면 볼로냐는 37라운드에서 3위 유벤투스를 홈으로 불러내 상대하는데 유벤투스는 최근 15경기에서 3승7무5패로 부진한 반면 볼로냐는 최근 15경기에서 9승4무2패를 기록했기에 기세 면에서 크게 유리하다.

자 그럼 모타가 어떤 책략을 반죽했길래 볼로냐가 이렇게 완성도가 높은 팀으로 업그레이드했을까?


3. 볼받을 때 뛰쳐나와서 짜자자잔 이옵니다.

 

볼로네즈 모타볼의 핵심은 역시 최후방에서부터 탄탄한 빌드업을 통해 높은 점유율을 가져가는 플레이를 선호했는데 이를 위해 볼을 받기 용이하면서도 전술적이 이점이 있는 위치에 선수들이 적재적시, 적재적소에 이동해야 했다. 당연하게도 이를 위해 모타는 후방에서부터 탄탄한 빌드업 체계를 구축했다.

 



모타의 볼로냐는 4-3-3 포메이션을 기본 대형으로 삼았는데 이 팀의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팀이 구축되면 중앙 수비수들은 상횡에 따라 본연의 포지션과 3선 미드필더 포지션을 번갈아 가며 맡는데 실제로 주전 칼라피오리와 수마오로는 물론 서브 뵈케마까지도 3선 미드필더 포지션에서도 자연스럽게 플레이할 수 있었다. 이때 볼로냐의 수비대형은 풀백들이 좁혀 들어오며 WM과 유사한 대형으로 나선다. 센터백들의 보좌 덕분에 3선 미드필더 프로일러는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본연의 위치로 돌아가거나 백을 메고 공격에 가담할 수 있는 마치 리베로, 즉 자유인과 같은 플레이를 펼치고 있다.

 

심지어는 센터백들은 볼을 몰고 상대 페널티 위치로 가기도 했는데 이때 한 명이 올라가면 최후방 골키퍼인 우카시 스코룹스키가 3선까지 올라오진 않더라도 양쪽 센터백 중 한 자리를 커버하기도 한다. 추가로 볼로냐의 수비수들은 위치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데 다른 팀원들이 공을 몰고 전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거나 패스길을 열기 위해 자신의 위치를 포기하고 앞으로 달려가 마커를 유인하는 플레이를 능숙하게 사용했다. 좌우 풀백들 역시 중앙으로 갔다가도 종종 상대를 유인하거나 볼을 받는 이지선다를 상대에게 걸기 위해 적절한 위치를 잡아 메짤라 및 윙포워드와 삼각 대형을 이루기도 한다.

 

사진 출처: https://www.coachesvoice.com/



중원 역시 피보테로 시작해 리베로의 권리를 누리는 프로일러와 2.5선 메짤라 자리에 배치된 퍼거슨과 미셸 애비셔, 그리고 그들의 백업인 우르반스키는 기동력이 뛰어나고 활동 반경이 넓은 선수들이기에 이들은 측면으로 내려와 박스 안까지 침투하고 심지어는 페널티 라인에서도 모습을 드러낸다. 게다가 이들은 서로 포지션을 바꿔 상대를 교란하며 두 명 중 한 명이 안쪽으로 들어가 공격에 가담한다. 물론 센터백이나 프로일러가 공격에 가담하는 순간에는 순간적으로 수비하기 유리한 위치를 빠르게 차지해 풀백 및 윙어와 삼각대형을 이루며 상대를 견제한다. 그리고 양 측면 윙어 샬레마커스 및 오르솔리니와 상대 견제 및 하프스페이스 침투의 역할을 서로 곧잘 바꾼다.

4-3-3 포메이션 최잔벙에 머무는 지어크제는 거대한 체격의 현대 축구에 부합하는 공격수인데 상대 센터백을 제자리에서 끌어내면서 공간을 만들 때 오르솔리니와 샬레마커스는 상대 풀백들을 견제하고 이 자리를 메짤라들이 침투해 상대의 골문을 위협한다. 이 사진과 같이 퍼거슨은 돌파에 장점을 보이고 지어크제는 지원에 장점을 보이는데 둘 다 서로의 역할, 즉 각자의 자질에 맞는 역할을 통해 이득을 본다. 물론 메짤라들에게 신경 쓰면 오르솔리니는 빈 공간을 빠르게 침투해 날카로운 슈팅으로 득점하는 선택지도 가져갈 수 있었다. 전방에서 볼을 뺏기면 최전방에서부터 빠르게 압박태세로 전환해 일정한 구역 조직을 갖추고 높은 라인에서부터 압박을 시작해 자신들이 볼을 탈환하기 유리한 곳으로 유인한다.

 

적절한 역할부담의 선례. 지어크제와 퍼거슨 (출처: 트위터  Roger Bonet)



볼로냐의 축구를 보면 겉으로는 굉장히 자유도가 높고 무질서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선수들의 자유로운 플레이를 커버하는 수많은 패턴이 완벽하게 짜여있고 이에 최적의 위치에서 볼을 받기 위해 짜잔 하고 나타난다. 그렇기에 볼로냐는 볼을 오래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기술적으로 뛰어난 센터백과 풀백을 보유했고 기동력이 뛰어난 장신 미드필더를 보유했으며 전방에서 연계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스트라이커 역시 준비되었기에 선수들에게 자유를 주고 다른 영역에서 자유롭게 활약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대신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며 서로의 움직임을 보완해 준다는 조건을 단다. 실제로 이를 위해 주전 골키퍼 우카시 스코룹스키는 원래 선방 능력은 우수했지만 빌드업과 킥력 및 발밑이 아쉽다고 평가받았으나 모타 체제에서 피나는 노력으로 이를 장점으로 전환시켰다.


4. 볼로냐와 모타, 일심동체일까 동상이몽일까?

 

볼로냐는 남은 여섯 경기에서 특별한 문제만 생기지 않으면 높은 확률로 다음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에 진출한다. 특히 AS 로마와의 경기에서 홈과 원정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며 사실상 확정지었다. 게다가 또 다른 경쟁팀 유벤투스의 기세와 남은 일정이 매우 좋지 않기에 37라운드에서 유벤투스를 만나서 꺾는다면 3위까지도 노릴 수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시즌이 끝난 뒤에 생긴다. 보통 구단의 체급이 낮은 팀이 뛰어난 전술 또는 굉장히 좋은 운으로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면 주축이 빅클럽으로 떠나고 얕은 스쿼드로 유럽대항전을 병행하며 고군분투하다가 한 시즌을 어렵게 보내기도 한다. 당장 독일의 우니온 베를린도 저번 시즌의 영광과 무색하게 이번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 진출권보다는 강등권과 더 가까운 성적을 기록하며 고전을 면치 못했고 과거 세리에 A에서도 칼치오폴리로 인해 상위권 클럽들이 승점이 대폭 삭감되며 대신 챔피언스리그에 나갔던 키에보 베로나는 강등을 당하기도 했다.

 

2006-07 시즌 강등당한 키에보 베로나. 스쿼드 뎁스가 얕은 팀에게 유럽대항전 병행은 매우 어렵다.

 


그나마 팀의 철학을 이끄는 모타 감독이 남으면 어려울지라도 최악은 피할 수 있다. 그러나 모타 감독을 탐내는 빅클럽들이 많은 것이 현실인데, 현재 상황이 좋지 못한 바르셀로나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그리고 같은 리그의  AC 밀란과 유벤투스 역시 그를 원한다. 특히 ocwsport의 기자 세바스티아노 사르노는 모타가 유벤투스의 차기 감독으로 유력하다는 기사도 냈다.

 

설상가상으로 볼로냐의 공격을 지휘하는 지어크제도 팀을 떠날 공산이 크다. 친정팀 바이에른 뮌헨을 포함해 유벤투스, AC 밀란, 아스날, 토트넘 핫스퍼 역시 그를 노리고 있다. 둘이 동반으로 이탈한다면 볼로냐는 큰 틀에서 수정이 불가피하고 또다시 혼란한 시간을 보내야 할 가능성이 높다.

 

볼로냐의 일등공신 모타와 지어크제,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커리어의 상승을 고려하고 있다.

 


로쏘블루들은 그들이 팀에 남길 원할 것이다. 하지만 들려오는 상황은 그럴 확률이 희박하다는 소식이 주를 이룬다. 볼로네즈는 기적을 원하지만 모타와 지어크제는 자신의 네임밸류 상승을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쉽게도 2023-24 시즌이 볼로네즈 동화의 마지막일 공산이 크다. 팬들의 열정은 뜨겁지만 프로스포츠의 현실은 냉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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