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영웅들/CAF

아프리카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Top 20

토르난테 2024. 4. 14.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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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일은 2024년 4월 14일 기준입니다.

 


20위 장 망가 응게네
 

 
생년월일: 1946년 6월 12일
국적: 카메룬
A매치 기록: 불명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카농 야운데
 

1970년대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컴플리트 포워드로 우수한 순발력과 재빠른 스피드, 그리고 탄탄한 기본기에서 나오는 드리블을 바탕으로 상대 수비수를 제쳤고 문전 앞에서 명민한 득점감각을 보였는데 정확한 양발 슈팅도 대단했지만 특히 당대 아프리카 최고의 헤더로 이름을 날려 팬들에게 '황금머리'라고 불렸다.

16년의 커리어를 전부 카농 야운데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 응게네는 정규리그와 카메룬컵에서 각각 6회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1971년, 1978년, 1980년에는 아프리카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고 1979년에는 아프리카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냈고 특히 1980년 대회에서는 정규리그와 아프리카 챔피언스리그 더블을 이뤄낸 일등 공신으로 평가받아 1980년 아프리카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카메룬 대표팀에서도 1970 아프리카 네이션스컵과 1972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참가한 응게네는 후자의 대회에서는 조국을 3위에 올리며 응게네로 시작해 밀러-오맘비크-음보마-에투로 이어지는 위대한 카메룬 스트라이커 계보를 재창했다.
 
 

19위 고드프리 치탈루

 

 

생년월일: 1947년 10월 22일
국적: 잠비아
A매치 기록: 111경기 79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카브웨 워리어스

 
잠비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키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빠른 순산스피드와 적절한 위치선정 및 득점에 대한 강한 집념을 바탕으로 온몸으로 득점에 성공하는 아프리카 축구사 최고의 골사냥꾼 중 한 명이었는데 FIFA에 의해 공인받지는 못했지만 1972년 한 해 동안 클럽, 대표팀, 공식전, 친선전을 모두 포함해 무려 116골을 기록했고 잠비아 축구협회는 이 기록을 공식 기록으로 인정해 리오넬 메시가 2012년 91골을 기록하며 연단위 최고 득점자에 올랐을 때 이에 대해 반발했다.

1964년 키트웨 유나이티드에서 데뷔해 6년간 활약했는데 비록 팀의 전력이 좋은 편이 아니라 우승을 이뤄내진 못했지만 치탈루 개인은 1968년에 공식전 81골을 기록하며 아프리카 무대 단일 시즌 공식전 최다 득점자의 자리에 올랐고 명문 카브웨 워리어스로 이적한 뒤에는 본격적으로 전성기를 누리며 정규리그 2회 우승을 포함해 크고 작은 대회에서 10회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치탈루 개인도 잠비아 올해의 선수 5회 선정 및 정규리그 득점왕 6회 수상과 같은 업적을 이뤄냈다.

잠비아 대표팀 통산 최다 득점자인 치탈루는 잠비아 대표침에서도 크고 작은 대회에 빠짐없이 나와는데 우간다에서 열린 1968 히어로즈컵 우승 및 1969 피터 스타이베센트 트로피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4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도 준우승을 기록했음은 물론 1980 모스크바 올림픽 축구종목에도 참가했다.
 
 

18위 배니 매카시
 

 
생년월일: 1977년 11월 12일
국적: 남아프리카 공화국
A매치 기록: 80경기 31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FC 포르투
 

21세기 남아공 축구계 최고의 선수로 전광석화와 같은 순간스피드로 상대 수비라인 배후로 침투해 미사일과 같은 슈팅 파워와 탄력적인 헤더를 모두 우수하게 활용해 다양한 방식으로 득점했다.

아약스 케이프타운에게 흡수된 세븐스타즈 FC에서 데뷔해 만 19세의 나이에 아약스에 입단한 매카시는 약관의 나이에 두 시즌 연속으로 공식전 두 자릿수 득점을 이뤄내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스페인의 셀타 비고에서는 첫 시즌에 45경기 16골을 기록했지만 주전 경쟁에서 밀렸고 포르투에서 부활해 2003-04 시즌, 47경기에 출전해 25골을 기록하며 정규리그 우승 및 득점왕에 올랐고 이어서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에도 큰 공을 세운 것을 포함해 7개의 트로피를 들었고 프리미어리그의 블랙번 로버스에서도 상승세를 이어나갔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표팀에서도 어릴떄부터 핵심으로 군림했는데 1998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데뷔해 조국의 준우승을 이끌었고 매카시 개인도 득점왕과 MVP를 석권했으며 이후에도 주축으로 활약하며 결국 남아프리카 공화국 통산 A매치 최다 득점자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17위 프랑수아 오맘비크

 

 
생년월일: 1966년 5월 21일
국적: 카메룬
A매치 기록: 73경기 26골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클루브 아메리카
 

로저 밀러와 함께 카메룬의 검은 돌풍을 이끈 공격수로 용수철과 같은 탄력적인 점프력에서 나오는 강력한 헤더와 적절한 포스트플레이로 상대 수비진을 폭격했는데 카메룬 현지에서는 아예 오맘비크를 헤딩골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했다.

카농 야운데에서 데뷔해 2년 차에 스타드 라발루아로 이적해 제1의 전성기를 누렸고 프랑스의 낭트, 스타드 렌, AS 칸, 랑스 등지에서 활약하다가 1994년에 멕시코의 클루브 아메리카로 이적해 제2의 전성기를 누렸음은 물론 오맘비크 개인도 아프리카 올해의 축구선수 포디움에 통산 3회 선정되었다.

카메룬 대표팀에서도 로저 밀라와 함께 투톱으로 활약한 오맘비크는 네 번의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참가해 1988년 대회는 백업으로 우승을 경험했으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그의 장기인 헤더로 결승골을 득점하며 조국의 8강행에 공헌했다.
 

 
16위 파르티크 음보마

 

 
생년월일: 1970년 11월 15일
국적: 카메룬
A매치 기록: 57경기 33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6kg
주 소속팀: 칼리아리

 
에투 직전에 카메룬 스트라이커의 계보를 이어나갔던 스트라이커로 골리앗과 같은 강력한 피지컬에서 나오는 파워풀한 헤더와 두꺼운 장딴지에서 나오는 핵미사일과도 같은 왼발 슈팅으로 상대 골문을 유린했으며 우수한 신체능력에도 테크닉 역시 나쁘지 않아 개인기로 수비수 한 명쯤은 무난하게 제칠 수 있었다.

파리 생제르맹에서 데뷔했으나 조지 웨아와 같은 공격수들에게 밀려 기회를 잡지 못해 하부리그를 전전하다가 한창 스타선수들을 수집하던 J리그의 감바 오사카에서 1997년 34경기 29골을 기록했고 이후 칼리아리에서도 1.5 시즌 동안 우수한 모습을 보였는데 1999-2000 시즌에는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고 여기에 시드니 올림픽에서의 활약을 더해 아프리카 올해의 축구선수로 선정되었다.

카메룬 대표팀 소속으로는 클럽에서 보여준 활약을 상회하는 활약을 선보였는데 네 번의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출전해 2000년과 2002년 대회에서 조국의 우승을 도왔고 2002년 대회에서는 우승은 물론 득점왕과 대회 올스타팀에 선정되었으며 2004년 대회에서도 득점왕을 차지했다. 세계 무대에서도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우승을 차지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음은 물론 대회 득점왕에 올랐고 두 번의 월드컵에 주전으로 참가했다.
 
 

15위 라시다 에키니
 

 
생년월일: 1963년 10월 23일
국적: 나이지리아
A매치 기록: 58경기 37골
신체조건: 키 191cm / 몸무게 83kg
주 소속팀: 비토리아 세투발
 

20세기 나이지리아 축구사 최고의 정통파 스트라이커로 카두나의 황소라 불렸을 정도로 저돌적인 몸싸움으로 상대 수비수를 힘으로 밀어버렸고 한 박자 빠른 슈팅으로 상대 골키퍼를 농락하는 마무리와 호쾌한 헤더가 장점이었다.

자국리그의 슈팅 스타스에서 정규리그 우승 및 아프리카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뤄냈고 코트디부아르의 아프리카 스포르에서 정규리그 3연패를 이뤄냈다가 포르투갈의 비토리아 세투발에서 재차 전성기를 누리며 1993-94 시즌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다.

나이지리아 대표팀 통산 최다 득점자이자 황금기에도 주축으로 활약했던 에키니는 1988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준우승을 시작으로 네 번의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나와 1994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는 조국의 우승을 포한해 득점왕과 MVP도 석권하며 트리플 크라운을 이뤄냈고 1994년 미국 월드컵과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조국의 16강행에 힘을 보탰다.
 
 

14위 호삼 하산
 

 
생년월일: 1966년 8월 10일
국적: 이집트
A매치 기록: 176경기 69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알아흘리
 

모하메드 살라, 마무드 엘카팁과 함께 이집트 축구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오른발, 왼발, 머리를 모두 활용해 득점할 수 있었음은 물론 볼 컨트롤과 테크닉도 우수해 상대 수비를 따돌리는 부분에서도 능숙했음은 물론 우수한 자기관리 능력을 바탕으로 대표팀 생활만 21년을 했을 정도로 롱런했다.

이집트 축구계의 양대산맥 알아흘리와 자말렉에서 모두 레전드로 통하는 하산은 알아흘리에서 정규리그 10회 우승 및 이집트컵 4회 우승을 이뤄냈고 국제 무대에서도 1987년 아프리카 챔피언스리그 우승, 아프리카 컵 위너스컵 3연패를 포함한 4회 우승, 1995년 아랍 컵 위너스컵 우승 및 1996년 아랍 클럽 챔피언스 컵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전성기가 지난 뒤에 합류했던 자말렉에서도 정규리그 3회 우승과 2002 CAF 챔피언스리그 우승 및 2003년 CAF 슈퍼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2003년 아랍 챔피언스 컵 우승을 이뤄냈고 하산 개인도 두 번이나 득점왕에 올랐으며 중간중간 그리스의 PAOK, UEFA의 알 아인으로 떠나서 활약하기도 했다.

이집트 대표팀에서도 통산 A매치 최다 득점자에 오른 하산은 1986년, 1998년, 2006년 대회에서 모두 우승하며 무려 세 연대에 걸쳐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을 우승하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는데 특히 1998년 대회에서는 공동 득점왕을 차지했다.
 
 

13위 하산 아케스비

 

 

생년월일: 1934년 12월 5일
국적: 모로코
A매치 기록: 기록 미상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62kg
주 소속팀: 님 올림피크

 
프랑스령 모로코 시절부터 활약했던 공격수로 작은 체구였지만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기가 막힌 뒷공간 침투와 적절한 위치 선정을 바탕으로 엄청난 득점력을 자랑하며 리그앙 역대 개인 통산 득점 11위에 올랐다.

리그앙 역사에서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 아케스비는 님 올림피크를 이끌고 3연속 리그앙 준우승 및 쿠프 드 프랑스 2회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이런 퍼포먼스를 인정받아 당대 프랑스 최강의 클럽이었던 스타드 드 랭스로 이적하며 1961-62 시즌 리그앙 우승을 이뤄내 리그앙에서만 도합 293경기에 출전해 173골을 기록했다. 모로코 독립 이후에는 모로코 축구의 태동기를 이끈 축구영웅으로 통했다.
 

 
12위 에마뉘엘 아데바요르

 

 
생년월일: 1984년 2월 26일
국적: 토고
A매치 기록: 87경기 32골
신체조건: 키 193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아스날 FC
 

자타공인 토고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기본적으로 골대를 등지는 등딱 플레이를 담당하는 타겟형 스트라이커였지만 유연하면서도 주력이 빠르고 개인기도 훌륭한 다재다능한 공격수였기에 그를 앙리의 대체자로 기용했던 아르센 뱅거는 그에 대해 "빠르고, 공중전에 강하다. 은완코 카누와 흡사한 선수지만, 거기에 침투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고 호평했지만 득점력에 대한 기복이 심해 기대만큼 성장하진 못했다.

프랑스의 메츠에서 데뷔해 AS 모나코에서 만개해 활약했으나 주급 문제와 무단이탈 등으로 갈등을 겪고 2006년 윈터 브레이크 때 아스날로 이적해 활약했고 첫 시즌에는 티에리 알리를 넘지 못해 백업으로 나섰으나 앙리가 떠나자 주전자리를 차지하며 2007-08 시즌 48경기에 출전해 30골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를 보내 PFA 올해의 팀과 아프리카 올해의 축구선수에 선정되었으며 이후 맨체스터 시티, 레알 마드리드, 토트넘 핫스퍼, 크리스탈 펠리스 등에서도 선수 커리어를 보냈다.

토고 대표팀 소속으로도 대단한 활약을 펼친 아데바요르는  2006 독일 월드컵 아프리카 예선에서는 11골을 넣으며 2002 한일 월드컵에서 8강까지 올랐던 세네갈을 탈락시키고 토고의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며 주목받아ㅛ으나 2010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출전하기 위해 해당 대회 개최국 앙골라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도중 괴한의 총격을 받아 3명이 사망하는 불미스러운 사건이 벌어져 대표팀에서 은퇴했다가 2013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대표팀 은퇴를 번복하고 복귀했고, 예선에서 케냐와 가봉을 차례대로 무찌르고 본선에 진출한 후 본선 조별리그에서 튀니지를 골득실로 제치고 토고 대표팀의 사상 첫 네이션스컵 1라운드 통과 기록을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웠다.
 
 

11위 프레데리크 카누테

 

 
생년월일: 1977년 9월 2일
국적: 말리
A매치 기록: 39경기 23골
신체조건: 키 193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세비야 FC
 

2000년대 라리가 정상급 스트라이커로 든든한 포스트플레이와 날카로운 오른발 슈팅을 바탕으로 공격 진영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큰 체격과 다르게 볼 컨트롤과 드리블로 상대를 따돌리는 부분에도 준수한 모습을 보였다.

말리 국적이지만 프랑스 태생이라 고향팀 올림피크 리옹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한 카누테는 잉글랜드의 웨스트햄과 토트넘 핫스퍼를 거쳐 성장했고 세비야에서는 전성기를 누리며 UEFA컵 2연패 및 2006년 UEFA 슈퍼컵 우승, 그리고 코파 델 레이 2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카누테 개인은 2006-07 시즌에 전성기를 누리며 47경기 29골을 기록해 팀의 UEFA컵 및 코파 델 레이 더블 우승을 이뤄냈고 카누테 개인도 2006-07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음은 물론 첼시에서 맹활약을 펼친 드로그바를 제치고 2007년 아프리카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말리 대표팀 소속으로도 짧지만 굵은 활약을 선보였는데 아프리카 축구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내면서 2004년 아버지 국적을 따라 말리 축구 국가대표팀을 선택한 카누테는 2004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총 4골을 넣어 대회 득점왕을 차지했고 말리 대표팀을 4강에 올려놓는 활약을 펼쳤다.
 

 
10위 로랑 포쿠
 

 
생년월일: 1947년 8월 10일
국적: 코트디부아르
A매치 기록: 70경기 (21골 이상)
신체조건: 키 178cm
주 소속팀: 스타드 렌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 선정 20세기 최고의 아프리카 선수 7위이자 20세기 코트디부아르 최고의 축구선수로 탄력적인 몸놀림과 상대를 완벽하게 농락하는 슈팅스킬을 바탕으로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중반 아프리카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군림했다.

ASEC 아비장에서 데뷔해 7년간 활약하며 정규리그 3회 우승 및 코트디부아르 컵 6회 우승을 이뤄낸 주역으로 이름을 날렸고 프랑스의 스타드 렌에 입단해 3년간 활약하며 정규리그 63경기에 출전해 44골을 기록하는 괴력을 펼쳤기에 프랑스의 명주심 미셸 바우트로트는 이제까지 보아온 선수 중 어떤 이가 가장 인상적이었냐는 질문에 '플라티니, 베켄바우어, 펠레, 지레스 등을 언급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포쿠만한 선수를 본 적이 없다."라고 답변하기도 했다.

코트디부아르 대표팀에서의 업적은 더 대단한데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역사를 논하는데 있어 빠져서는 안 되는 선수였던 포쿠는 비록 우승은 차지하지 못했지만 1968년 3위 및 1970년 4위를 기록했고 포쿠 개인은 그 두 대회에서 모두 득점왕에 올랐음은 물론 1970년에는 득점왕에 이어 대회 MVP도 석권했고 2008년에 사뮈엘 에투가 경신하기 전까지 대회 개인 통산 최다골 기록 역시 가지고 있었다.
 
 

9위 프랑수아 음펠레
 

 
생년월일: 1947년 7월 13일
국적: 콩고
A매치 기록: 29경기 12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파리 생제르맹
 

콩고 역사상 최고의 축구 선수이자 아프리카 축구계에서는 유럽 진출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여겨지는 선수로 스피디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수를 제쳐냈으며 수비수를 따돌린 이후에는 파워와 정확도를 겸비한 슈팅으로 득점포를 가동했으며 점프력이 뛰어나 헤더를 활용한 득점도 종종 보여줬음은 물론 말년에는 리베로로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아작시오에서 프랑스 무대에서 데뷔했고 파리 생제르맹이 2부 리그에 있던 시절부터 활약한 음펠레는 비록 트로피를 들지는 못했지만 빼어난 활약을 펼치며 파리 생제르맹이 신흥강호로 발돋움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콩고 대표팀 소속으로도 경이로운 업적을 쌓았던 음펠레는 1972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장미셸 음보노와 함께 공격 조합을 구성해 활약하며 카메룬과 말리를 연파하고 우승을 차지하는 과정에서 압도적인 공헌을 했기에 대회 MVP로 수상되었다. 이는 콩고 대표팀이 국제대회에서 이룬 유일한 성과였다.
 
 

8위 토니 예보아

 

 

생년월일: 1966년 6월 6일
국적: 가나
A매치 기록: 59경기 29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가나 축구 역대 최고의 공격수로 평가받는 선수로 흑인 특유의 탄력을 이용한 전진 드리블과 벼락같은 중거리 슈팅을 활용한 당대 최고의 원더골 제조기로 이름이 높았다. 

가나의 명문 아산테 코토코 SC에서 만 15세의 나이로 데뷔해 오콰우 유나이티드에서 리그 정상급 공격수로 성장해 정규리그 득점왕을 2회 수상한 예보아는 자르브뤼켄을 거쳐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서 전성기를 누려 분데스리가 득점왕에 2회 올랐고 1993-94 시즌 전반기에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을 받으며 리가 정상급 공격수로 명성을 떨쳤고 리즈 유나이티드에서도 상승세를 이어나가며 1996년 리즈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1990년대 검은별 군단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세 번의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출전해 1992년에 결승에 진출했으나 코트디부아르와의 승부차기에서 패해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다. 하지만 예보아는 그 대회를 포함해 두 번의 대회에서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토니 예보아는 1992년 아프리카 올해의 선수 3위, 1993년 아프리카 올해의 선수 2위에 올랐으며 1993년에는 피파 올해의 선수상에서도 9위에 올랐고 1997년에는 가나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7위 살리프 케이타
 

 
생년월일: 1946년 12월 8일
국적: 말리
A매치 기록: 28경기 13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67kg
주 소속팀: 생테티엔
 

1996년 FIFA로부터 공로훈장까지 수훈받은 20세기 아프리카 축구계의 전설로 공터에서 나무들을 수비수라 생각하며 드리블 기술을 연마했는데 실제로 탄탄한 기본기에서 나오는 드리블과 높은 수준의 집중력을 바탕으로 수많은 득점을 기록했기에 세간에서는 그를 말리의 흑진주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말리의 AS 레알 바마코에서 데뷔해 정규리그 3회 우승을 이뤄냈고 1966년 아프리카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및 1965년과 1966년 대회에서 득점왕에 오른 케이타는 AS 생테티엔으로 이적해 전성기를 누렸는데 정규리그 3연패를 이뤄내며 생테티엔 왕조를 세웠고 그중 1967-68 시즌과 1969-70 시즌에는 쿠프 드 프랑스도 함께 우승하며 더블을 이뤄냈고 슈퍼컵에서도 3년 연속으로 우승했다. 이후 마르세유를 거쳐 발렌시아와 스포르팅 리스본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말리 대표팀 소속으로도 대단한 활약을 펼쳤는데 1965년 아프리카 게임에서 준우승을 이뤄냈고 1972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도 팡타마디 케이타와 함께 팀의 공격을 이끌며 준우승을 기록했으며 1970년에는 아프리카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여담으로 그의 가문은 말리 축구계 최고의 명가인데 그의 조카 세이두 케이타와 모하메드 시소코도 말리 축구 역사에 남을 선수였다.
 
 

6위 로저 밀러
 

 
생년월일: 1952년 5월 20일
국적: 카메룬
A매치 기록: 77경기 41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바스티아 SC
 

2004년 펠레가 선정한 FIFA 100의 일원이자 2007년 아프리카축구연맹이 선정한 근 50년간 최고의 아프리카 선수로 노년에 뛰어난 기량을 전 세계에 알린 백전노장의 상징으로 괴물과도 같은 운동능력과 탄탄한 기본기, 그리고 경기 흐름을 완벽하게 읽는 전술안을 겸비했는데 파괴적인 드리블로 상대를 따돌리며 직접 득점하는 부분은 물론 특유의 우수한 시야를 바탕으로 적시적소에 사각지대로 침투해 마무리하기도 했다.

레오파르 두알라에서 프로로 데뷔해 활약하며 정규리그 3연패를 이뤄냈고 토네르 야운데에서는 1975년 아프리카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6년에는 아프리카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가 유럽 무대에 진출한 밀러는 프랑스 무대에서도 발랑시엔과 AS 모나코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바스티아에서 적응에 성공하며 좋은 모습을 보였고 32세의 나이로 명문 생테티엔에서는 정규리그 59경기에 출전해 31골을 터트리며 리그 정상급 공격수로 발돋움했다가 1988-89 시즌까지 몽펠리에 HSC에서 활약했다가 고국으로 돌아갔다.

카메룬 대표팀에서는 더 대단한 활약을 펼친 로저 밀러는 1982 스페인 월드컵에 참가해 이탈리아, 폴란드, 페루와 같은 강호들을 상대로 조국의 무패행진을 이끌었고 1986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준우승 및 1988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해 두 대회에서 모두 대회 베스트 일레븐과 득점왕을 석권했다. 그럼에도 그의 하이라이트는 1990 이탈리아 월드컵이었는데 이 대회에서만 4골을 터트리며 조국 카메룬의 8강 돌풍을 이끌었고 덕분에 복수의 매체에서 대회 올스타팀에 선정되었음은 물론 아프리카 올해의 선수상을 재차 가져갔으며 4년 뒤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러시아를 상대로 만 42세의 나이에 득점에 성공하며 월드컵 본선 최고령 득점자 기록을 경신했다.
 
 

5위 라바 마제르
 

 
생년월일: 1958년 12월 15일
국적: 알제리
A매치 기록: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FC 포르투
 

알제리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추앙받는 인물로 공격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으며 적절한 바디페인팅을 활용한 일대 일 돌파와 다양한 각도에서 슈팅으로 득점을 만들어내는 우수한 슈팅 스킬과 유려한 볼 터치를 겸비했다.

포르투에서 전성기를 누린 마제르는 프리메이라 리가 3회 우승과 타사 데 포르투갈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86-87 시즌 유러피언 컵 결승에서는 바이에른 뮌헨의 레전드 골키퍼 장 마리 파프를 상대로 알라의 백힐이라 불리는 백힐 동점골을 득점해 우승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으며 1987 인터콘티넨탈컵에서는 남미 챔피언 페냐롤을 상대로 연장 결승골을 득점해 대회 MVP를 수상했다.

알제리 대표팀 소속으로도 뛰어난 활약을 펼친 마제르는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 서독과 칠레를 무찌르는 기염을 토했고 1990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도 우승을 이뤄내며 대회 MVP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4위 피에르에메릭 오바메양
 

 
생년월일: 1989년 6월 18일
국적: 가봉
A매치 기록: 74경기 30골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010년대 하반기 분데스리가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번개와도 같은 스피드로 질주하며 상대의 오프사이드 트랩을 무너트리며 절묘하게 공간으로 침투해 무수히 많은 찬스를 득점으로 이어나갔다.

생테티엔에서 리그앙 정상급 선수로 발돋움한 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전성기를 누린 오바메양은 레반도프스키 이적 이후 포지션을 스트라이커로 변경한 뒤에 기량이 크게 만개하며 2015년 아프리카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2015-16 시즌 분데스리가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특히 DFB포칼 3년 연속 준우승을 거뒀으나 결국 2016-17 시즌에 바이에른과 프랑크푸르트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고 해당 시즌에 레반도프스키를 밀어내고 분데스리가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으며 월드클래스 등급에 3회 선정되었다.

프리미어리그 이적을 원해 2017-18 시즌 겨울 이적시장에서 아스날로 이적한 오바메양은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초반에는 적응기를 겪다가 2018-19 시즌과 2019-20 시즌 두 시즌 연속으로 20골 넘게 득점하는 활약을 펼쳤으며 2018-19 시즌에는 마네, 살라와 함께 프리미어리그 공동 득점왕에 올랐고 2019-20 시즌에는 PFA 올해의 팀에 들며 암흑기에 빠진 아스날의 에이스로 활약했으나 팀과의 불화로 겨울이적시장에서 팀을 떠났다. 가봉 대표팀에서는 대표팀 전력의 한계로 가시적인 성과를 내진 못했지만 아프리카 네이션스 컵에 5회 출전했다.
 
 

3위 디디에 드로그바
 

 
생년월일: 1978년 3월 11일
국적: 코트디부아르
A매치 기록: 105경기 65골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첼시 FC
 

아프리카 축구사를 대표하는 선수 중 한 명으로 압도적인 피지컬을 바탕으로 파워풀한 타겟 스트라이커의 모습을 보여줬으며 동시에 다른 공격진과의 연계에도 훌륭했으며 무엇보다 큰 경기에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올림피크 마르세유에서 2003-04 시즌 리그앙 올해의 선수에 오르며 전 유럽의 주목을 한 몸에 받은 드로그바는 첼시로 이적해 전성기를 누리며 프리미어리그 우승 4회, FA컵 우승 4회, 그리고 2011-12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동점골을 넣고 결국 승부차기까지 끌고 가서 이기는데 공헌하며 구단 역사상 첫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맨 오브 더 매치를 수상했고 그 외에도 프리미어리그 골든슈 2회 수상 및 PFA 올해의 팀 2회 선정, 그리고 2006-07 시즌에는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코트디부아르 대표팀 A매치 통산 최다 득점자이기도 한 드로그바는 코끼리 군단을 이끌고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5회 출전해 2006년과 2010년 2회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2012년에는 득점왕에 올랐으며 세 번의 월드컵에 주전으로 나섰다. 특히 자국에서는 평화의 상징으로 존경받는데 그의 진심 어린 호소에 내전이 중단되었으며 결국 내전은 멈추고 코트디부아르의 평화를 찾아오기도 했으며 이에 검은 예수라는 별명이 생겼다.
 
 

2위 조지 웨아
 

 
생년월일: 1966년 10월 1일
국적: 라이베리아
A매치 기록: 75경기 18골
신체조건: 키 185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AC 밀란
 

자타공인 20세기 아프리카 최고의 축구선수로 치타와 같은 스피드와 화려한 몸놀림에서 나오는 파괴적인 드리블로 상대 수비진을 무너트린 뒤 동물적인 골 감각으로 득점하는 플레이를 보여주며 팬들을 놀라게 했고 세간에서는 그를 아프리카의 호나우두라고 부르기도 했다.

파리 생제르맹과 AC 밀란에서 커리어 하이를 보낸 웨아는 파리에서는 1992-93 시즌 쿠프 드 프랑스 우승을 이뤄낸 것을 시작으로 1993-94 시즌에는 리그앙 우승을 이뤄냈고 1994-95 시즌에는 쿠프 드 프랑스와 리그컵 더블 우승과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을 이뤄내며 맹활약했는데 그 과정에서 UEFA 챔피언스리그 득점왕을 수상했기에 1995년에 비유럽인에게 문호를 연 이후 최초의 비유럽인 발롱도르 수상자가 되었으며 피파 올해의 선수상도 석권했다.

AC 밀란에서도 세리에 A 2연패를 이뤄낸 웨아는 1996년 옹즈도르와 피파 올해의 선수상에서도 2위에 올랐으며 1999년에는 IFFHS 선정 20세기 최고의 아프리카 선수로 선정되었고 은퇴한 뒤인 2021년에는 IFFHS 선정 아프리카 축구 올 타임 드림팀에 선정되었다.
 
 

1위 사뮈엘 에투

 

 
생년월일: 1981년 3월 10일
국적: 카메룬
A매치 기록: 118경기 56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카메룬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흑표범이라 불렸을 정도로 빠른 순간 스피드와 반응속도, 그리고 적절한 타이밍에 들어오는 라인 브레이킹 능력으로 상대 수비진을 완벽하게 뚫어내 득점했으며 특히 큰 경기에 강했다.

레알 마드리드 유스로 시작해 마요르카에서 기량이 만개하며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이뤄냈고 바르셀로나에서는 2008-09 시즌 트레블을 포함해 라리가 3회 우승과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를 이뤄냈으며 이후 인테르로 건너가서 2009-10 시즌에 다시 한번 트레블을 이뤄내는 맹활약 보였고 2010-11 시즌에는 팀원들 대부분이 부진하는 와중에도 뛰어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고 에투 개인도  ESM 올해의 팀 4회 선정, 2005-06 시즌 피치치와 UEFA 클럽 올해의 공격수를 수상했다.

카메룬 대표팀에서도 A매치 통산 최다 득점자에 오른 에투는 시드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시작으로 2000년과 2002년의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우승을 이뤄냈고 2006년과 2008년 대회에서는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대회 역사상 최다 득점자였다. 그러나 월드컵에서는 네 번이나 참가했음에도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인 게 아쉬운 부분이다.

21세기 아프리카 축구를 대표하는 선수 중 한 명인 에투는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8회 선정되었으며 2009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5위에 랭크되었고 아프리카 축구 협회 선정 올해의 팀 6회 선정, 아프리카 올해의 선수 4회 선정 및 2005 피파 올해의 선수상 3위에 선정되었으며 2006 UEFA 클럽 올해의 공격수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2021 IFFHS 선정 아프리카 축구 올 타임 드림팀에도 선정되었다.
 


선외 명딘
 

 

쥘 보캉데

 

 
생년월일: 1958년 11월 25일
국적: 세네갈
A매치 기록: 73경기 20골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FC 메츠

 
1980년대 서아프리카를 대표했던 타겟 스트라이커로 건장하며 단단한 등을 바탁으로 든든한 포스트플레이를 선보이며 2선 공격수에게 기회를 내줬고 자신에게 기회가 오면 상대 골키퍼의 허를 찌르는 원샷 원킬의 마무리로 유명했다.

카사 스포츠에서 데뷔해 벨기에의 RFC 투르네와 RFC 세레인을 거쳐 프랑스의 FC 메츠에서 전성기를 누린 보캉데는 1985-86 시즌 메츠 소속으로 정규리그 득점왕에 올랐고 파리 생제르맹, OGC 니스, 렌스 등지에서 활약했고 사후인 2022년에는 프랑스의 매거진 So Foot에서 그를 프랑스 리그앙 역대 최고의 선수 1000명 중 440위로 선정했다.

세네갈 대표팀에서도 어린 시절부터 주축으로 나선 엘리트였으나 소속팀에서 주심을 폭행해 세네갈 리그와 대표팀 영구정치 처분을 받았다가 월드컵 예선에서 고전하자 1년 만에 복귀했고 이후 세네갈 대표팀의 중핵으로 활약하며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4회 참가해 1990년 대회에서는 조국을 4위로 올렸다.


 

빅터 오시멘

 

 
생년월일: 1998년 12월 29일
국적: 나이지리아
A매치 기록: 35경기 21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8kg
현 소속팀: SSC 나폴리
 

현세대 아프리카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엄청난 운동능력과 한혈마를 연상하게 하는 지구력과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활발한 전방압박과 상대방의 뒷공간을 노리는 침투플레이에 능한 공격수였다.

VfL 볼프스부르크에서 데뷔했으나 그의 자리가 없었고 로얄 샤를루아 임대 이후 LOSC 릴에서 기량이 만개했고 2020-21 시즌을 앞두고 나폴리로 이적해 활약하며 2022-23 시즌, 흐비차, 김민재, 로보트카와 함께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나폴리의 세리에 A 우승을 이끌었고 오시멘 개인도 세리에 A 올해의 선수와 득점왕, 최우수 공격수 및 베스트 일레븐을 석권했고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 11위에 올랐다.

나이지리아 대표팀에서도 주포로 활약했는데 청소년 대표 시절이었던 2015 FIFA U17 월드컵에서 홀로 10골을 넣으며 나이지리아의 5번째 우승을 견인했고 골든부츠와 실버볼을 수상했고 성인 대표팀에서도 A매치 21골을 기록했다. 세월이 지나 양질의 활약이 누적되면 평가가 크게 오를 가능성이 매우 높은 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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