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영웅들/CAF

아프리카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Top 20

토르난테 2024. 4. 10.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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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일은 2024년 4월 10일 기준입니다.

 


20위 케빈프린스 보아탱

 

 

생년월일: 1987년 3월 6일
국적: 가나
A매치 기록: 15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6kg
주 소속팀: AC 밀란

 

제롬 보아텡의 이복형이자 2010년대 초반 전성기를 누린 공격형 미드필더로 높은 수준의 지구력과 운동능력, 그리고 다양한 방법의 슈팅으로 골문을 노리는 슈팅 기술이 뛰어났음은 물론 오프 더 볼 상황에서도 적절한 움직임으로 상대 수비수를 교란했으나 키핑과 탈압박 능력이 좋지 않았고 바이오리듬에 따른 기복이 심했다.

서독 서베를린에서 태어나 초년에는 독일 청소년 대표팀 및 분데스리가의 헤르타 BSC에서 활약하던 케빈프린스 보아탱은 토트넘에선 주전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났으나 포츠머스에서 재기에 성공해 2010년대 초반 AC 밀란에서 즐라탄과의 공격 콤비네이션으로 활약하며 2010-11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워 그해 세리에 A 올스타에 선정되었는데 특히 즐라탄이 헤딩으로 떨궈준 공을 받아 차서 득점하는 공격루트는 밀란 제1의 득점공식이었다.

청소년 시절에는 독일 대표팀에서 활약했으나 독일 대표팀 선수들과 좋은 사이가 아니었기에 2010년 가나 대표팀을 선택한 케빈프린스 보아탱은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아사모아 기안과 함께 가나 대표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16강 미국 전에서 선제골을 넣으며 팀의 첫 8강 진출에 크게 공헌하였다. 그러나 가나 축구협회와는 사이가 좋지 않아 2011년 11월에 대표팀 은퇴를 표명하였다가 2013년 다시 가나 대표에 복귀하였지만 2014년 브라질 월드컵 2차전 이후 훈련 도중 감독한테 폭언을 했기에 국가대표 자격 박탈이라는 징계를 받았다.

가나 대표팀에서 쫓겨난 이후 샬케, 라스 팔마스를 떠돌다가 프랑크푸르트에서 잠시 부활하며 2017-18 시즌 DFB포칼 우승에 공헌했지만 사수올로, 바르셀로나, 피오렌티나 등 여러 팀을 떠돌다가 고향 헤르타 BSC에서 은퇴했다.

 

 

19위 카림 압둘 라자크

 

 

생년월일: 1956년 4월 18일
국적: 가나
A매치 기록: 70경기 25골
신체조건: 키 156cm / 몸무게 60kg
주 소속팀: 아산테 코토코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아프리카 무대에서 활약한 플레이메이커로 키가 굉장히 작았지만 빠르면서 교묘한 몸놀림에서 나오는 드리블과 신속정확한 판단력에서 나오는 신속한 원터치 패스를 활용해 자신의 신체적인 약점을 속도라는 무기로 완벽하게 극복했다.

자국 리그의 아산테 코토코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가나 FA컵 우승을 이뤄냈고 중간에 미국의 뉴욕 코스모스로 이적해 1978년 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다시 아산테 코토코로 돌아온 뒤에는 정규리그 3회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이집트의 알모카우룬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펼치며 이집트 올해의 축구선수에 2회 선정되었고 말년엔 코트디부아르의 아프리카 스포츠에 입단해 1989년 도메스틱 트레블을 이뤄냈다.

가나 대표팀에서도 중핵으로 활약한 라자크는 두 번의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참가해 1978년 대회에서는 조국의 세 번째 우승에 큰 공을 새우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은 물론 대회 MVP까지 수상했고 이때의 활약을 바탕으로 1978년 아프리카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18위 오세이 코피

 

 

생년월일: 1940년 6월 3일
국적: 가나
A매치 기록: 34경기 17골
신체조건: 키 162cm / 몸무게 58kg
주 소속팀: 아센테 코토코

 

19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가나 축구의 태동기를 이끌었던 다재다능한 공격수로 매혹적인 드리블을 자랑해 드리블의 마슬사란 별명으로 불렸으며 굉장히 빠른 스피드로 인해 4개의 다리를 가진 사나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날카로운 왼발 슈팅으로 득점을 노리는 부분에서도 훌륭해 유럽 클럽들의 끈질긴 구애를 받았으나 가나 축구의 발전을 위해 모두 거절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츠 오브 오크에서 데뷔했으나 1년 만에 아센테 코토코로 이적해 은퇴할 때까지 활약하며 정규리그 3회 우승을 이뤄냈고 특히 1965 시즌에는 리그 우승은 물론 코피 개인은 미드필더였음에도 득점왕을 차지했다. 가나 대표팀에서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세 번 참가해 1963년과 1965년 대회에서는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1965년에는 우승은 물론 득점왕과 MVP를 싹쓸이하며 삼관왕을 이뤄냈으며 1968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도 3회 연속 결승에 진출했다.

세계 무대에서도 1964 도쿄 올림픽과 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 그리고 1972 뮌헨 올림픽에 모두 참가해 도쿄 올림픽에서는 조별리그를 1위로 통과해 8강에 진출했던 코피는 은퇴 이후 종교에 귀의해 사제가 되었다.

 

 

17위 루시아노 바살로

 

 

생년월일: 1935년 8월 15일
국적: 에티오피아
A매치 기록: 104경기 47골 (비공식 기록)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코튼 팩토리 클럽

 

자타공인 에티오피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1960년대 아프리카 정상급 선수로 공격형 미드필더 또는 중앙 미드필더에서 팀의 플레이메이킹을 맡아 팀의 공격 전개 과정의 중추로 활약했으나 최전방 공격수부터 풀백과 리베로까지 두루 소화했던 다재다능한 선수였기에 사람들로부터 '아프리카의 디 스테파노'라고 불렸다.

GS 게헤렛에서 레프트 풀백으로 포지션을 시작했으나 팀의 플레이메이커로 자리잡은 바살로는 아스마라 칼초 소속으로 에티오피아 대표팀과의 친선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자 에티오피아 대표팀은 그들의 리그 우승을 의도적으로 막아버리며 견제했기에 바살로는 코튼 팩토리 클럽으로 이적했고 여기서 정규리그 4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그 덕분에 일반 근로자의 10배에 달하는 월급을 받기도 했다.

에티오피아 대표팀 소속으로도 1962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지난 대회 우승팀 이집트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16위 모하메드 티무미

 

 

생년월일: 1960년 1월 15일
국적: 모로코
A매치 기록: 63경기 10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FAR 라바트

 

모로코 축구사 최고의 테크니션이자 1980년대 아프리카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왼발잡이 미드필더로 모로코 역사상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평가받았을 정도로 화려한 볼 컨트롤 능력과 빠르면서도 아름다운 원터치 플레이로 이름을 날렸다.

스페인과 벨기에 무대에서는 좋지 못한 활약을 펼쳤지만 자국 리그의 FAR 라바트에서만큼은 정상급 선수로 군림한 티무미는 1984년 리그 우승을 이뤄냈고 1985년 아프리카 클럽 챔피언스컵 우승을 이뤄내며 모로코 올해의 선수상과 아프리카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고 모로코컵 2회 우승을 이뤄냈다.

모로코 대표팀에서도 두 번의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나가 1980년 3위와 1988년 4위를 기록했으며 세계 무대에서도 1984 LA 올림픽과 1986 멕시코 월드컵에 참가해 후자의 대회에서는 우수한 테크닉으로 조국 모로코가 유럽 강호들 틈바구니에서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하는데 기여했고 은퇴한 뒤에는 2022년에 IFFHS에서 선정한 모로코 올타임 드림팀에 선정되었다.

 

 

15위 타라크 디아브

 

 

생년월일: 1954년 7월 15일
국적: 튀니지
A매치 기록: 101경기 17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에스페랑스

 

튀니지 축구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이자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아프리카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았는데 세계구급 드리블 스킬과 공을 원하는 공간으로 완벽하게 보내는 치명적인 왼발 패싱력을 갖춘 플레이메이커였기 때문에 세간에서는 그를 '튀니지의 미셸 플라티니'라 부르거나 '튀니지 축구의 황제'라고 불렀다.

1972년 에스페랑스에서 데뷔해 중간에 2년간 사우디아라비아의 알아흘리로 이적한 것을 제외하면 선수생활 전부를 에스페랑스에서 보낸 디아브는 튀니지 정규리그 6회 우승 및 튀니지컵 5회 우승을 이뤄냈고 1986년에는 아랍 클럽 챔피언스컵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았다.

튀니지 대표팀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친 디아브는 1977년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지역예선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대단한 플레이를 펼쳐 아프리카 올해의 축구선수상을 수상했고 1978 아르헨타나 월드컵 본선에서도 멕시코전 쐐기골을 득점하며 3-1 승리를 이끌었고 서독을 상대로도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였음은 물론 10년 후에는 1988 서울 올림픽에 튀니지 멤버로 참가했다.

 

 

14위 살레 셸림

 

 

생년월일: 1930년 9월 11일
국적: 이집트
A매치 기록: 불명
신체조건: 불명
주 소속팀: 알 아흘리

 

1950년대 아프리카 무대를 평정한 플레이메이커로 게임을 설계하는 정교한 패싱력과 유려한 볼 컨트롤을 바탕으로 팬들로부터 마에스트로라 불렸다.

알 아흘리의 전성기를 진두지휘하며 구단 역사에 큰 존재로 군림했던 셸림은 1948-49 시즌부터 정규리그 9연패를 달성한 것을 포함해 정규리그에서만 11회 우승 및 이집트컵 8회 우승을 이뤄냈다.

이집트 대표팀에서도 1959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조국의 우승에 큰 공을 세운 셸림은 2007년 아프리카 축구연맹이 선정한 근 50년 최고의 아프리카 선수 13위에 올랐다.

 

 

13위 모하메드 아부트리카

 

 

생년월일: 1978년 11월 7일
국적: 이집트
A매치 기록: 100경기 38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알 아흘리

 

2000년대 북아프리카 무대 최고의 선수로 유려한 볼 컨트롤과 구렁이 담 넘어가든 자연스럽게 상대 수비를 넘기는 드리블, 그리고 중요한 경기에서의 클러치 능력이 돋보여 이집트의 지단이라 불렸다.

테르사나에서 데뷔해 전성기 전부를 알 아흘리에서 보낸 아부트리카는 10년가량 클럽에 머무르며 이집트 프리미어리그 7회 우승, 이집트컵 2회 우승 및 슈퍼컵 5회 우승을 이뤄냈고 국제무대에서도 CAF 챔피언스리그 5회 우승 및 아프리카 슈퍼컵 4회 우승을 이뤄내며 알 아흘리를 아프리카 최고의 명문으로 도약시켰음은 물론 아부트리카 개인도 2005-06 시즌 정규리그와 클럽 월드컵에서 득점왕에 올랐다.

이집트 대표팀 소속으로도 2006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과 2008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참가해 조국의 대회 2연패의 업적을 세웠고 두 대회에서 모두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아부트리카 개인은 이집트 올해의 선수 4회 수상, 아프리카 인터클럽 올해의 선수와 CAF 올해의 팀에 각각 4회 선정되었고 2008년에는 아프리카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12위 아지즈 부데르발라

 

 

생년월일: 1960년 12월 26일
국적: 모로코
A매치 기록: 57경기 14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올림피크 리옹

 

모로코의 마라도나라 불렸던 1980년대 모로코 축구의 아이콘으로 번개같이 빠른 드리블 돌파로 상대 수비진을 교란시켰으며 상대 골키퍼의 허를 찌르는 양발 슈팅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주 포지션인 공격형 미드필더 이외에도 양 측면 윙어와 처진 공격수, 그리고 스트라이커를 소화할 수 있었던 공격진의 멀티플레이어였다.

위다드 카사블랑카엣 데뷔해 1978년 정규리그 우승 및 모로코컵 3회 우승을 이뤄냈고 스위스의 시옹을 거쳐 프랑스의 라싱 파리와 올림피크 리옹에서 전성기를 누려 올림피크 리옹의 UEFA컵 진출을 이뤄내기도 했던 부데르발라는 말년에 위다드로 돌아와 개인 통산 네 번째 모로코컵 우승을 추가했다.

1990년대 모로코 대표팀에서도 중핵을 맡았던 부데르발라는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4회 출전해 1986년에는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1988년에는 대회 MVP와 베스트 일레븐을 석권했다. 세계 무대에서도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잉글랜드, 폴란드, 포르투갈을 상대로 1승 2무라는 성적을 이뤄내며 토너먼트에 진출하는데 공헌했고 우승후보 서독과의 경기에서는 서독의 에이스 로타어 마테우스와 치열한 경합을 펼쳤다. 은퇴 이후에는 2022년에 IFFHS가 선정한 모로코 올타임 드림팀에 선정되었다.

 

 

11위 하킴 지예흐

 

 

생년월일: 1993년 3월 19일
국적: 모로코
A매치 기록: 61경기 22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65kg
주 소속팀: AFC 아약스

 

현세대 모로코의 공격을 이끄는 왼발의 마술사로 고강도의 압박에 다소 고전했으며 느린 스피드와 평범한 드리블이라는 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뛰어난 왼발 킥력으로 극복했는데 우측면에서 접고 올리는 크로스와 중앙으로 침투해 날리는 중거리 슈팅은 물론 데드볼 상황에서도 왼발 프리킥으로 전세를 뒤집는 플레이에 능했으며 우수한 패스 센스를 활용한 플레이메이킹에도 능했다.

네덜란드의 헤렌벤에서 데뷔해 트벤테에서 공식전 76경기 34골 30도움을 기록하며 에레데비시 정상급 선수로 성장한 지예흐는 아약스로 이적해 커리어하이를 누렸는데 018-19 시즌 아약스의 에레데비시 우승과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을 이끌었는데 이 시즌 지예흐는  UEFA 챔피언스리그 시즌의 팀에 포함되었으며 개인 통산 에레데비시 도움왕과 올해의 팁을 각각 4회 연속으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첼시에서는 부진했지만 백업 멤버로 2020-21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포함해 2021년 국제대회 3관왕을 함께했다.

모로코 대표팀에서도 2018년 러시아 월드컵과 2019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활약한 지예흐는 할릴호지치 감독과의 갈등으로 대표팀에 은퇴했다가 그가 경질되자 다시 복귀해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조국 모로코가 아프리카 축구 역사상 최초로 월드컵 4강 진출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10위 자페 은도람

 

 

생년월일: 1966년 2월 27일
국적: 차드
A매치 기록: 36경기 13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낭트 FC

 

1990년대 리그앙에서 차드 축구의 자존심을 지킨 공격형 미드필더로 우수한 볼 컨트롤 능력이 마치 마법과도 같다는 이유로 마법사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드넓은 시야와 우수한 패싱력에서 나오는 킬러패스로 팀의 플레이메이킹을 이끌었다.

차드의 뚜르비옹에서 데뷔해 카메룬의 토네르 야운데로 이적해 1988년 리그 우승을 이끈 은도람은 리그앙의 낭트에서 활약하며 1994-95 시즌 리그앙 우승을 이끈 일등 공신으로 이름을 날렸고 이때의 활약을 바탕으로 발롱도르 1차 노미네이트에 선정되었다.

1996-97 시즌에는 35경기에 출전해 21골을 터트리며 물오른 득점력까지 보여준 은도람이었지만 차드 대표팀이 아프리카에서도 약체였기에 국제 대회에는 나서지 못했다.

 

 

9위 오우마르 세네

 

 

생년월일: 1959년 10월 23일
국적: 세네갈
A매치 기록: 30경기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파리 생제르맹

 

20세기 세네갈 최고의 축구선수 중 한 명으로 기가 막힌 퍼스트 터치를 활용한 신속정확한 원터치 플레이와 환술과도 같은 매혹적인 드리블로 상대 수비라인을 교란했다.

아프리카 무대에선 스트라이커로 데뷔했지만 유럽 무대에서 정착하면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자리잡은 세네는 파리 생제르맹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1985-86 시즌 구단 역사상 첫 리그앙 우승을 이끌며 1990년대 대약진의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세네갈이 아프리카에서 약체였던 이유로 오랫동안 대표팀에서는 성과가 없었지만 은퇴 직전에 생애 최초로 1992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참가했다.

 

 

8위 장피에르 토코토

 

 

생년월일: 1948년 1월 26일
국적: 카메룬
A매치 기록: 20경기 (득점 기록 미상)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지롱댕 보르도

 

1970년대 아프리카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공격형 미드필더와 좌우 윙어를 겸할 수 있었으며 절륜한 패싱력과 드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한 명민한 플레이메이킹이 돋보였음은 물론 결정적인 순간에 클러치 능력을 보이기도 했다.

자국 리그의 오릭스 두알라에서 정규리그 4회 우승 및 카메룬컵 2회 우승을 이뤄냈고 1965년에는 정규리그에 이어 아프리카 챔피언스리그 우승까지 이뤄내 아프리카 무대에 일대 왕조를 세운 토코토는 프랑스 무대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였는데 마르세유에서는 적응에 실패했지만 보르도와 파리 생제르맹에서는 전성기를 보냈다.

대표팀에서도 위명을 떨친 토코토는 1972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조국을 3위에 올린 공을 인정받아 대회 올스타팀에 선정되었고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도 이탈리아, 폴란드, 페루라는 강호들을 상대로 무패 돌풍에 공헌했다.

 

 

7위 테오필레 아베가

 

 

생년월일: 1954년 7월 9일
국적: 카메룬
A매치 기록: 16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카농 야운데

 

1980년대 아프리카 정상급 플레이메이커로 적절한 타이밍에 정확한 위치로 가는 양발 패스와 의사 라이선스를 땄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전술안을 바탕으로 팀의 템포를 훌륭하게 지휘했고 파괴적인 전진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교란시키는 부분에서도 뛰어난 모습을 보였다.

카농 야운데에서 대부분의 커리어를 보낸 아베가는 정규리그 4회 우승 및 카메룬컵 5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1977년에는 도메스틱 더블을 이뤄냈다. 그리고 1978년에는 아프리카 챔피언스리그와 카메룬컵 더블 우승을, 1979년에는 정규리그와 아프리카 컵 위너스컵 더블 우승을 이뤄냈으며 1980년에는 정규리그와 아프리카 챔피언스컵 더블을 이뤄내며 커리어 하이를 보냈고 말년에는 유럽에도 진출해 프랑스의 툴루즈와 스위스의 브비에서도 활약했다.

카메룬 대표팀에서도 핵심으로 활약한 아베가는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팀의 무패행진에 공헌했고 세 번의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출전해 1984년 대회에서는 조국의 우승을 이끈 수훈을 인정받아 대회 MVP를 수상했고 1986년 대회에서도 준우승을 기록했다.

 

 

6위 무스타파 달렙

 

 

생년월일: 1952년 2월 8일
국적: 알제리
A매치 기록: 20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파리 생제르맹

 

1980년대 알제리 축구의 약진을 이끌었던 왼발잡이 공격형 미드필더로 우수한 왼발 테크닉을 바탕으로 한 화려한 드리블과 예리한 슈팅을 바탕으로 득점에도 능해 리그앙 통산 100골 이상 득점하기도 했으며 레프트윙과 포워드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다.

파리 생제르맹이 창단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영입한 선수로 1976-77 시즌에는 미드필더임에도 불구하고 38경기 22골을 기록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프랑스 올해의 외국인 선수에 선정되었고 이후 1980년대 초반에는 쿠프 드 프랑스 2연패를 이뤄냈다.

프랑스에서 주로 뛰었기에 알제리 대표팀에서는 많은 경기를 뛰지는 못했지만 1982 스페인 월드컵에 참가해 유럽 챔피언 서독을 꺾는 파란을 일으키는데 공헌한 달렙은 수 생활 은퇴 이후인 2003년에는 외국인임에도 리그앙 흥행에 큰 공을 세워 프랑스 최고 권위의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수훈받았다.

 

 

5위 아흐메드 하산

 

 

생년월일: 1975년 5월 2일
국적: 이집트
A매치 기록: 184경기 23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베식타스 JK

 

모하메드 살라가 리버풀에 입단하기 전, 이집트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 중 한 명으로 주 포지션은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였지만 2선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고 안정적인 볼 컨트롤과 창의적인 패스를 바탕으로 수많은 골찬스를 만들어냈다.

자국리그의 이스마일리에서 이집트 컵을 우승한 하산은 튀르키예의 베식타스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2005-06 시즌 튀르키예 쿠파스 우승을 이뤄냈고 벨기에의 안더레흐트에서도 상승세를 이어나가며 2006-07 시즌 주필러리가 우승 및 2007-08 시즌 벨기에컵 우승을 이뤄냈다.

 

다시 이집트로 돌아온 뒤에는 알 아흘리의 정규리그 3연패 및 2008년 CAF 챔피언스리그 및 2009년 아프리카 슈퍼컵 우승에 큰 공을 세웠고 이를 인정받아 아프리카 인터클럽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고 알 아흘리의 라이벌 자말렉에서 2013년 이집트컵 우승을 이뤄내는 등 선수생활 황혼기까지 아름답게 장식했다.

이집트 대표팀 통산 최다 출전자이자 A매치 통산 출전 5위를 기록한 하산은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8회 출전 4회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는데 그중 2006년과 2010년은 팀의 중핵으로 활약하며 대회 올스타에 선정되었음은 물론 두 대회 모두 MVP를 수상하며 대회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군림했다.

 

 

4위 라크다르 벨루미

 

 

생년월일: 1958년 12월 29일
국적: 알제리
A매치 기록: 100경기 27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GC 마스카라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 선정 20세기 최고의 아프리카 선수 4위에 오른 알제리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번뜩이는 볼 컨트롤과 구렁이 담 넘어가듯 상대 수비진을 따돌리는 드리블로 명성을 날렸으며 극한의 센스를 바탕으로 하는 노룩패스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당대 세계 최고의 클럽 유벤투스의 적극적인 구애애도 불구하고 알제리 무대에 대한 애정으로 잔류했는데 CG 마스카라에서는 1983-84 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이뤄냈고 MC 오란에서는 1987-88 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벨루미 개인도 1978-79 시즌에는 득점왕에 올랐다.

알제리 대표팀에서의 활약은 더욱 대단했는데 1979년 지중해게임 축구 동메달, 1980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준우승 및 모스크바 올림픽 축구 8강 진출을 이뤄낸 벨루미는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대회 올스타팀에 2회 선정되었고 특히 1 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유럽 챔피언 서독을 상대로 결승골을 터트리며 파란을 일으켰고 이를 본 펠레로부터 '환상적인 선수'라는 극찬을 받았다.

 

 

3위 제이제이 오코차

 

 

생년월일: 1973년 8월 14일
국적: 나이지리아
A매치 기록: 73경기 14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파리 생제르맹

 

나이지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평가받는 선수이자 자타공인 아프리카 축구 역사상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스텝오버, 드래그 벡, 팬텀드리블, 슛 페이팅에 모두 능했으며 바이시클킥, 호커스포커스, 사포 등 고난도의 개인기도 실전에서 활용할 수 있었다.

여러 팀을 떠돌던 오코차는 프랑크푸르트, 페네르바체, 파리 생제르맹, 볼턴 원더러스에서 전성기를 누렸는데 프랑크푸르트에서는 가나 국적 스트라이커 예보아와의 콤비 플레이로 명성을 떨쳤고 파리에서는 호나우지뉴와 함께 2001년 UEFA 인터토토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볼턴 원더러스에서도 2003-04 시즌에 주장 완장을 찼고 2004-05 시즌 구단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으며 개인 통산 나이지리아 올해의 선수에 6회 선정되었다.

나이지리아 대표팀 소속으로도 핵심으로 활약한 오코차는 서브 멤버였던  1994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우승 및 미국 월드컵 16강을 경험했고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우승 주역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스페인, 불가리아, 파라과이와 함께 한 죽음의 조를 1위로 통과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2년부터 2006년까지 네이션스컵 3개 대회 연속으로 3위에 올랐는데 특히 2004년 네이션스컵에서는 팀이 3위에 그쳤음에도 오코차의 활약은 대단해 대회 MVP와 득점왕을 동시에 석권했다.

 

 

2위 아베디 펠레

 

 

생년월일: 1964년 11월 5일
국적: 가나
A매치 기록: 73경기 33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올림피크 마르세유

 

본명은 아베디 아이유였으나 가나 팬들은 그의 플레이가 마치 펠레와 같다고 아베디 펠레라 불렀으며 벼락같은 스피드는 물론 펠레라는 별명이 부끄럽지 않았을 정도로 우수한 볼 컨트롤과 드리블을 보여줬으며 우수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으로 팀의 공격을 지휘했다.

1987-88 시즌에 2부 리그에서의 잠재력을 인정받아 마르세유에 합류한 펠레는 2년 동안 릴로 임대를 다녀온 뒤 경기력이 급성장했으며 이후 마르세유의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하며 리그앙 2회 우승과 1990-91 시즌 유러피언컵 준우승, 그리고1992-93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내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고 아베디 펠레 개인도 1991년부터 1993년까지 3년 연속으로 아프리카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1992년에는 피파 올해의 선수상 투표에서 9위에 올랐다.

가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도 평가받는데 가나 대표팀에서는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다섯 번 출전해 1982년에는 우승에 기여했으며 1992년에는 결승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코트디부아르에게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으나 아베디 펠레 개인은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줬기에 대회 골든볼을 수상했다. 그리고 IFFHS는 그를 20세기 최고의 아프리카 선수 3위로 평가했으며 2021년에는 아프리카 남자 축구 올타임 드림팀에 선정했다.

 

 

1위 라르비 벤바레크

 

 

생년월일: 1917년 6월 16일
국적: 모로코
A매치 기록: 3경기 득점불명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블랙펄, 일명 흑진주라 불렸던 1940년대 최고의 미드필더로 2차 세계 대전으로 커리어가 끊길뻔했으나 뛰어난 자기 관리 능력을 바탕으로 30대가 넘어서도 기량을 유지했으며 탄탄한 기본기와 뛰어난 창의력, 그리고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플레이메이킹에 능했으며 득점력도 준수한 인사이드 포워드였다.

모로코에서 축구를 시작한 벤바렉은 프랑스에서는 마르세유, 스타드 프랑스에서 활약했고 여러 인종차별을 이겨낸 뒤 프랑스 대표티메서도 활약했던 첫 번째 흑인으로 이름을 남겼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는 스페인 무대에서 활약했는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라리가 2연패와 1950-51 시즌 도메스틱 더블을 이뤄냈으며 특히 마드리드 더비에서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며 1949년부터 1952년까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4연승을 이뤄냈는데 1950-51 시즌에는 멀티골을 터트리며 6-3 대승을 주도하며 맹활약했다. 이런 활약을 본 펠레는 그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축구의 왕이라면 벤바렉은 축구의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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