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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마켈렐레 하나 때문에 갈락티코가 무너졌는가?

토르난테 2024. 4. 9.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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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아무리 좋은 자원을 가지고 있어도 쓸모 있게 만들어야 값어치가 있다는 뜻인데 2000년대 중반, 갈락티코 1기 말기의 레알 마드리드가 축구에서 꿰지 못한 보배의 대명사로 회자된다.

 

 

레알 마드리드 시절의 클로드 마켈렐레



이에 대해 다수가 알고 있는 원인은 마켈렐레가 연봉을 대폭 인상할 것을 요구하자 회장 플로렌티노 페레즈는 스타군단을 꾸려 마케팅을 유지했는데 재계약 과정에서 마켈렐레와 같이 평범한 패스를 하는 선수에게는 고액의 연봉을 줄 수 없다고 받아쳤고 이에 마켈렐레가 자신에게 고액연봉을 약속한 첼시로 떠났기에 공수밸런스가 무너졌다는 뜻이다.

실제로 마켈렐레가 떠난 것이 레알 마드리드에게 타격이 되었고 실제로 마켈렐레는 첼시에서 커리어 하이를 찍었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이것이 과하게 왜곡되어 마켈렐레 한 명이 떠났을 뿐인데 팀이 망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다. 이에 대해 바로잡고 싶기에 이 글을 쓴다.


협응력과 밸런스

보기 좋은 몸을 가졌음에도 상대적으로 보기 좋지 않은 몸을 가진 사람보다 삼대중량과 같은 운동능력이 더 뛰어나지 못한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각각의 근육들이 아무리 기능이 뛰어나더라도 신체의 신경기관, 운동기관, 근육이 서로 유기적인 협력이 일어나지 않으면 좋은 퍼포먼스를 낼 수 없기에 그렇다. 그래서 머신 위주로 몸을 관리하는 보디빌더는 삼대중량 수행능력이 파워리프팅 위주로 운동하는 일반인보다 좋지 않은 경우가 있는 것이다.

축구에서도 이와 같다. 아무리 스타가 많아도 팀의 공수밸런스가 무너지고 서로 유기적인 협력이 일어나지 않으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에 대한 차이는 감독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크게 갈리는데 2002-03 시즌까지 재임한 비센테 델 보스케 시절의 레알 마드리드는 바이에른 뮌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함께 3M이라고 불리는 유럽 최정상 삼대장으로 평가받았다.  델보스케는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스타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했지만 전술적 안목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평가와 다르게 팀의 밸런스를 굉장히 노련하게 잘 잡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덕장 비센테 델 보스케와 에이스 지네딘 지단



클로드 마켈렐레의 활동량이 아무리 초월적이라도 혼자서 3선 자체를 커버하는 동시에 좌측 공격을 이끄는 호베르투 카를루스의 뒷공간 커버까지 수행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으며 개인의 패싱력이 좋지 못해 빌드업 기점 역할은 할 수 없었다. 델 보스케는 이를 좌측 메짤라 자리에서 활약하던 산티아고 솔라리로 잡았다. 동세대에 활약한 제 호베르투, 박지성과 유사한 스타일의 솔라리는 마켈렐레를 도와 상대 미드필더들과 치열한 중원싸움을 하면서도 2선에 있던 지단, 피구에게 효과적으로 볼을 배급했으며 호베르투 카를루스가 좌측면에서 오버래핑하는 상황에서는 좌측면 수비까지 커버하는 등 화려하진 않았지만 특유의 영리함과 성실함을 바탕으로 팀의 밸런스를 확실하게 잡아주며 갈락티코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당대 레알 마드리드의 플랜



팀의 균형을 잡는 열쇠였던 솔라리 이외에도 수비라인의 리더로 높은 라인에서도 안정적인 수비력을 구사한 페르난도 이에로, 공중볼에는 다소 아쉬웠던 호나우두와 라울 투톱의 백업 멤버로는 공중전에 능했던 페르난도 모리엔테스가 백업으로 대기했고 공중볼 경합이 필요한 상황에서 등장해 팀을 구하기도 했음은 물론 상황에 따라서 맥마나만, 플라비우 콘세이상과 같은 지원도 로테이션 멤버로 주전들의 적절한 체력안배를 도와주는 등 팀이 조화롭게 흘러갔기에 좋은 성적을 냈다.

 

 

카를루스와 솔라리, 그리고 호나우두. 상술했듯 솔라리와 카를루스의 관계는 악어와 악어새 같은 관계였다.



그러나 2002-03 시즌이 끝나고 페레스는 데이비드 베컴 영입을 시작으로 공격과 중원은 외국인 스타 선수들이 채우고 수비는 파본을 위시한 자국 유망주들이 한다는 지단파본정책을 발표하며 델 보스케 감독과 계약연장을 하지 않았고 마켈렐레, 모리엔테스, 콘세이상, 맥마나만 등을 방출했으며 이에 반발한 이에로마저도 내쳤다. 그리고 페레스는 신임 감독 케이로스에게 솔라리를 벤치로 내리고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잘생긴 외모로 스타성이 뛰어났던 구티를 중용할 것을 요청했는데 이때문에 팀의 중원 및 좌측면의 밸런스가 깨지며 마켈렐레의 대체자였던 엘게라와 캄비아소는 결국 고전을 면치 못했다. 결국 구티 대신 중앙 미드필더로 베컴을 기용하기까지 했지만 베컴 역시 느린 발과 익숙하지 못한 포지션으로 인해 고전을 면치 못하며 팀의 밸런스가 무너졌다.


양은 양만의 질이 있다.

동서고금 인해전술의 최대 장점은 수가 적은 상대를 로테이션으로 공략하며 체력적 우위를 가져가며 승률을 높일 수 있었다. 오죽하면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대군에게 병법은 필요 없다."라는 말을 했겠는가? 병법이 필요없다고 하지만 계획적으로 로테이션을 하면 상대하는 입장에서 더욱 답이 없음을 느끼는게 인해전술이다.

상술했듯 델보스케는 이를 잘 활용했는데 모리엔테스는 라울과 호나우두의 뒤를 받쳤고 솔라리-지단-피구가 구성한 2선은 구티와 맥마나만 등 다른팀이었으면 주전 선수로 활약할 선수들이 대체했다. 3선에서도 데포르티보에서 라리가 정상급 수비형 미드필더라 평가받았던 플라비우 콘세이상이 마켈렐레의 체력을 안배하며 중요한 경기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경기를 다르게 운영할 수 있었다.

케이로스는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수바라인의 사령관 이에로의 이탈과 중원 구성에서 시행 착오를 겪었음에도 특유의 우수한 수비전술을 바탕으로 전반기 공식전 19승 5무 3패라는 호성적으로 마무리했다. 물론 세비야전에서는 4-1로 대패했지만 베테랑 엘게라가 전반전에 자책골을 득점하며 팀이 크게 흔들린 탓이 컸다. 오히려 공격 조합을 항상 내던 선수만 내서 공격 패턴이 다소 단조로웠다.

 

 

레알 마드리드 감돗 시절의 카를로스 케이로스



그러나 케이로스 체제는 후반기에 무너졌는데 인해전술의 효용성을 무시하고 자신이 생각한 베스트 일레븐만 고집했다. 후반기에 구티가 밀리고 엘게라와 베컴이 중원으로 나선 것만 수정했고 전반기에 헤맸던 유망주 캄비아소에게도 더는 기회가 없었다. 심지어 공격진에 지네딘 지단과 루이스 피구는 32세, 체력을 많이 쓰는 레프트백 호베르투 카를루스는 31세로 고령의 선수들이었기에 관리가 필요했으나 케이로스는 이를 무시했다.

 

 

지단과 파본, 그러나 지단파본정책은 여러 요인으로 인해 무너졌다.



더 큰 문제는 이 로테이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점이 케이로스의 탓만은 아니다. 페레스가 2003-04 시즌을 앞두고 백업 선수들을 대거 내보내고 그 자리를 후안프란, 보르하, 하비에르 포르티요, 알바로 메히아와 같은 유스출신들로 채웠고 이들은 제 역할을 할 기량이 아직 아니었다. 결국 레알 마드리드는 시즌 막판에 코파 델 레이 결승에서 레알 사라고사에게 연장 혈투 끝에 패했고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모나코에게 원정 다득점으로 탈락했으며 라리가에서도 오사수나에게 3-0으로 패했고 라리가 마지막 다섯 경기를 내리 패하며 용두사미의 시즌을 보냈다.


결론

플로렌티노 페레스는 2003-04 시즌 당시에는 교훈을 찾지 못해 2004-05 시즌에는 감독만 세 번 경질했고 2005-06 시즌에도 바르셀로나에게 라리가 왕좌를 내주며 3년간 축구계를 떠나야 했다. 그리고 2009-10 시즌에 복귀한 뒤에는 이런 단점들을 상당 부분 개선한 새로운 갈락티코 체제로 빅이어를 5개, 라리가 우승 트로피를 4개 추가한다.

실제로 2010년대 하반기 챔피언스리그 3연패 시절 레알 마드리드는 중원에서 분업화가 적절히 운용되었고 주축 선수들이 부상 및 징계로 빠져도 이스코, 바란, 나초, 하메스 로드리게스, 아센시오, 바스케스, 모라타와 같은 백업 선수들을 적극 활용했기에 클럽 월드컵과 UEFA 슈퍼컵을 계속해서 치르는 지옥의 일정에서도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었다.

설명을 들으면 알겠지만 마켈렐레의 이탈은 지엽적인 문제였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솔라리가 마켈렐레가 멀쩡하던 시절처럼 올바르게 돌아갔다면 캄비아소도 레알 마드리드에서 실패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마켈렐레 이전에 여러모로 팀의 전체적인 밸런스가 깨진 게 문제였다. 갈락티코 1기의 몰락은 마켈레레와의 재계약 실패가 아닌 델보스케가 추구했던 조화로운 축구를 페레스가 깼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다시 한번 말한다. 갈락티코 1기의 실패 요인은 화려함에 취해 협응력을 무시했던 페레스의 전략 실패고 마켈렐레 재계약 실패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일 뿐이다.

 

 

실패에서 교훈을 찾은 페레스는 갈락티코를 대거 개편했고 결국 챔피언스리그 3연패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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