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 올스타 짜보기/K리그

FC 서울 역대 올스타

토르난테 2024. 3. 30.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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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서울

 

창단: 1983년 12월 22일

소속리그: 대한민국 K리그

연고지: 충청도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 경기도 안양시 → 서울특별시 마포구

홈구장: 서울월드컵경기장

K리그: 6회 우승

FA컵/코리아컵: 2회 우승

리그컵: 2회 우승

슈퍼컵: 1회 우승

전국축구선수권대회: 1회 우승

AFC 챔피언스 리그: 2회 준우승 (2001-02, 2013)

 


베스트 11

 

 

골키퍼

 

 

이름: 김용대
출생년도: 1979년 10월 11일
포지션: 골키퍼
신체조건: 키 189cm / 몸무게 82kg

활약 기간: 2010~2015
통산 기록: 222경기 239실점 / 70클린시트

 

2010년대 초반 아시아 정상급 골키퍼 중 한 명으로 체격이 좋고 냉정하며 침착한 성격의 골키퍼로 K리그에서 뛰어난 선방 능력을 인정받아 '용대사르'라는 별명이 붙었다.

K리그에서 오럤동안 정상급 골키퍼로 인정받으며 여러 구단에서 좋은 활약을 보인 김용대는 특히 FC 서울에서 커리어 하이를 누렸는데 상암의 골문을 지키면서 K리그 2회 우승 및 2010년 리그컵 우승을 이뤄냈는데 그 과정에서 2010년과 2012년에 라이벌 정성룡과 김영광을 제치고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2013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뛰어난 선방을 바탕으로 팀의 결승행에 큰 공을 세웠고 이 활약을 인정받아 대회 올스타팀에 선정되었다.

 

 

리베로

 

 

이름: 조민국
출생년도: 1963년 7월 5일
포지션: 센터백, 리베로, 수비형 미드필더, 포워드
신체조건: 키 182cm

활약 기간: 1986~1992
통산 기록: 144경기 16골 12도움

 

1980년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리베로 중 한 명으로 드넓은 시야와 강력한 카리스마에서 나온 수비라인 지휘 능력이 주특기였으며 탄탄한 기본기와 정밀도 높은 패싱력과 안정적인 수비력은 물론 우수한 축구지능을 겸비해 수비형 미드필더와 공격수도 소화 가능한 다재다능한 선수였다.

프로 커리어 전부를 럭키금성 황소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 조민국은 럭키금성 수비라인의 리더로 활약하며 1990년 K리그 우승과 준우승 2회 및 1988년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주역으로 활약하며 럭키금성 최초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조민국 개인도 1986년에는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센터백

 

 

이름: 오스마르
출생년도: 1988년 6월 5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센터백
신체조건: 키 192cm / 몸무게 86kg

활약 기간: 2014~2023
통산 기록: 344경기 25골 13도움

 

2010년대 중후반 K리그 정상급 수비형 미드필더 겸 센터백으로 큰 키와 강력한 몸싸움 능력을 기반으로 한 제공권 경합 능력이 우수했으며 영리한 예측력과 준수한 패싱력을 겸비했다. 특히 특유의 긴 다리로 상대방 공격수로부터 볼만 탈취하는 능력과 우수한 신체능력을 활용한 볼 간수 능력은 K리그 역사상 최고라 평가받는다.

FC 서울에서 K리그 첫 커리어를 시작한 오스마르는 감독 황선홍과의 불화로 세레소 오사카로 잠시 임대를 떠났던 기간을 제외하면 2014년부터 쭉 FC 서울에서만 쭉 활약하며 2015년 FA컵 우승 및 2016년 K리그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해당 시즌에는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FC 서울 구단 통산 출전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특히 서울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해 스페인 독자들에게 한국 생활에 대해 "서울은 거대한 도시다. 거기서 스타가 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축구를 다들 좋아하지는 않고, 야구 인기가 많은 곳이다. 구단과 팬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라고 소개했다.

 

 

센터백

 

 

이름: 아디
출생년도: 1976년 5월 12일
포지션: 센터백, 레프트백, 수비형 미드필더, 레프트윙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81kg

활약 기간: FC 서울
통산 기록: 305경기 20골 13도움

 

2000년대 중후반 K리그를 강타한 브라질 출신의 용병으로 리그 정상급 공격수조차도 그의 맨 마킹을 뚫기 어려워했음은 물론 리그 최고 수준의 활동량과 태클을 자랑했으며 브라질리언 특유의 뛰어난 스피드와 유연성을 살린 공격력도 겸비했음은 물론 축구지능이 좋고 팀에 헌신적이라 주 포지션인 측면 수비수는 물론 수비형 미드필더, 측면 미드필더, 센터백, 중앙 미드필더 등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했기다.

전성기 시절에는 츠르베나 즈베즈다, 레알 베티스, 세비야에도 머물렀던 아디는 K리그에서 말년을 보내면서도 리그 정상급 수비자원으로 활약했는데 말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대단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K리그 2회 우승 및 리그컵 2위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5회 선정되었음은 물론 FC 서울 구단 통산 출전 6위에 랭크되었다.

특히 절반 이상의 선수가 부상으로 이탈했던 2007 시즌에는 유틸리티 플레이어로서 능력을 살려 다양한 포지션을 메우면서 귀네슈 감독을 구해내기도 했던 아디는 은퇴한 뒤에는 외국인 선수였음에도 무려 5년간 구단에 코치로 재직했다.

 

 

라이트 윙백

 

 

이름: 고요한
출생년도: 1988년 3월 10일
포지션: 라이트백 外 골키퍼, 센터백을 제외한 모든 포지션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65kg

활약 기간: 2006~2023
통산 기록: 446경기 40골 34도움

 

2010년대 K리그를 대표하는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체격은 작았지만 우수한 지구력을 바탕으로 한 엄청난 활동량과 강력한 투지를 갖췄으며 기본기가 탄탄했는데 사이드백으로 출전할때는 민첩한 몸놀림을 바탕으로 한 오버래핑으로 유명했다.

프로 생활을 전부 FC 서울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 고요한은 2006년부터 2023년까지 무려 18시즌을 소화하며 K리그 3회 우승, 리그컵 2회 우승 및 2015년 FA컵 우승과 2013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는데 개인상과 인연이 없었음에도 세뇰 귀네슈, 최용수, 신태용 등 여러 지도자들에게 호평받았다.

FC 서울 구단 통산 최다 출전자이자 원 클럽맨 고요한은 은퇴 이후 그의 등번호 13번은 영구결번으로 선정되며 FC 서울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화려하게 은퇴했다.

 

 

레프트 윙백

 

 

이름: 구상범
출생년도: 1964년 6월 15일
포지션: 레프트백
신체조건: 키 175cm

활약 기간: 1986~1993
통산 기록: 166경기 15골 13도움

 

한때 아시아 최고의 레프트백으로 명성을 떨친 인물로 공수밸런스가 매우 우수했는데 뛰어난 활동량에서 나오는 지치지 않는 수비력과 공격 상황에서 나오는 예리한 킥력, 득점력을 갖춰 데뷔 시즌부터 주전으로 활약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대표팀 레귤러 멤버로 활약했던 구상범은 럭키금성에 머무는 동안 1987년에는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1990년에는 K리그 우승을 이뤄낸 것을 포함해 K리그 1회 우승 및 3회 준우승을 기록했다.

여담으로 구상범은 학창 시절에는 작은 신체 조건으로 축구부에서 중용받지 못했음은 물론 경신고등학교 2학년 시절에 발목 골수염에 걸려 아예 선수 생활을 접을 위기에 빠지기도 했지만 골수염으로 쉬는 와중에 키가 많이 자라서 다시 축구선수로 일어나 대표팀 주전까지 올랐던 인간승리의 상징이기도 했다.

 

 

수비형 미드필더

 

 

이름: 기성용
출생년도: 1989년 1월 24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89cm / 몸무게 84kg

활약 기간: 2006~2009, 2020~
통산 기록: 210경기 16골 20도움

 

2010년대 대한민국 축구를 지탱했던 최고의 미드필더로 경기장 전체를 아우르는 드넓은 시야와 시원한 중장거리 패스와 강력한 슈팅력을 바탕으로 했던 레지스타였다. 특히 롱패스만큼은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가장 잘했던 선수로 회자된다.

어릴 적부터 뛰어난 자질을 보여 FC 서울에서 데뷔한 기성용은 비록 K리그 우승을 이뤄내진 못했지만 기성용 개인은 K리그 베스트 일레븐 2회 선정 및 2009년 K리거들이 뽑은 최고의 K리거에 선정되며 리그 정상급 선수로 인정받았으나 유럽 무대에 대한 도전의 열망으로 셀틱으로 이적했다.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스페인 등에서 활약하고 다시 돌아와 팀의 정신적 지주이자 핵심 플레이메이커로 자리잡은 기성용은 말년에도 어려움에 빠진 팀을 구해내며 활약하고 있다.

 

 

수비형 미드필더

 

 

이름: 이영진
출생년도: 1963년 10월 27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69cm

활약 기간: 1986~1995, 1997
통산 기록:  231경기 16골 28도움

 

1990년대 상반기 대한민국 최고의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승부욕이 강해 악바리라고 불렸을 정도로 중앙에서 지칠 줄 모르고 뛰어다니며 상대방을 압박했으며 패싱력도 준수해 간간히 좋은 찬스를 만들어냈다.

1986년 럭키금성 황소에 입단한 이영진은 그 해 K리그 준우승에 공헌했고 1990 시즌에는 K리그 우승을 이뤄낸 주역으로 이름을 날렸고 1991년에는 리그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이영진 개인은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K리그 베스트 일레븐이 선정되었다.

 

 

공격형 미드필더

 

 

이름: 몰리나
출생년도: 1980년 4월 30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레프트윙, 포워드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66kg

활약 기간: 2011~2015
통산 기록: 205경기 54골 67도움

 

2010년대 초반 K리그 최강의 선수 중 한 명으로 한때 네이마르의 우상 중 한 명으로 스피드가 빠른 편은 아니지만 축구센스가 좋아 지능적으로 경기를 풀어가는데 능했던 플레이메이커였으며 강력한 킥력과 특유의 패스센스를 활용해 수많은 찬스를 만들어냈다.

콜롬비아 대표팀 출신으로 조커 멤버로 2001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경험했으며 산투스에서도 활약한 적이 있었던 몰리나는 성남 일화를 거쳐 FC 서울에 이적해 데얀과 함께 데몰리션 콤비라는 공격 조합으로 이름을 날리며 2012년 K리그 우승, 2013 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및 2015년 FA컵 우승을 이뤄냈고 몰리나 개인도 2012년 K리그 베스트 일레븐 선정 및 K리그 도움왕을 2회 수상했다.

특히 2011년 8월 27일 강원 FC와의 경기에서는 한 경기에서 3골 3도움을 기록하는 괴력을 선보이며 6-3 대승을 거의 홀로 이끌며 K리그 역사에 남을만한 일당백의 활약을 선보였다.

 

 

스트라이커

 

 

이름: 윤상철
출생년도: 1965년 6월 14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3kg

활약 기간: 1988~1997
통산 기록: 306경기 102골 32도움

 

LG 치타스 시절 구단의 아이콘으로 추앙받았던 스트라이커로 체격이 크지도, 그렇다고 발이 빠르지도 않았으며 지구력이 좋은 편도 아니라 활동 반경이 좁아 영향력이 철저하게 페널티 박스 안에 한정되었지만 그럼에도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의 득점감각과 판단력, 그리고 슈팅센스는 당대 K리그에서 독보적으로 뛰어났던 필리포 인자기 스타일의 공격수였기에 럭키 금성 감독이었던 고재욱은 그를 두고 "한마디로 때와 장소에 구애됨이 없는 꾸준한 슈터"라고 평가했다.

럭키금성 시대에 데뷔해 안양 치타스 시절에 전성기를 누린 윤상철은 LG 치타스 시절 감독이었던 조영증으로부터 "LG의 공격축구는 윤상철의 득점과 궤를 같이한다."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로 팀의 핵심으로 활약하며 1990년 K리그 우승 및 두 번의 K리그 준우승을 이뤄냈고 리그컵에서도 두 번이나 결승에 올랐다. 윤상철 개인도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4회 선정되었으며 1990년과 1994년에 K리그 득점왕을 수상했고 1993년에는 도움왕을 수상했다.

FC 서울 구단 통산 출전 5위, 통산 득점 2위를 기록했고 선수 생활을 이곳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인 윤상철에게 구단이 한 행동은 충격적인데 1997년 부진했으나 윤상철의 득점 주기를 보면 언제든지 다시 폭발할 가능성이 있었기에 LG는 리빌딩을 선언하면서 윤상철과의 재계약을 포기했음은 물론 임의탈퇴를 걸어버려 K리그 다른 팀으로 가지 못하게 막아버렸다. 결국 호주에서 쓸쓸히 선수생활을 마감했음은 물론 LG 치타스가 서울로 돌아가면서 다수의 안양 로컬팬들을 잃자 안양 시절이 전성기였던 윤상철은 활약상 자체가 잊혀버린 비운의 선수다.

 

 

스트라이커

 

 

이름: 데얀 다마노비치
출생년도: 1981년 7월 27일
포지션: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81kg

활약 기간: 2008~2013, 2016~2017
통산 기록: 330경기 184골 48도움

 

K리그 역사상 최고의 용병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공격수로 스피드가 생각보다 빠르진 않지만 동물적인 감각을 통해 적절한 위치를 선점하는 능력이 뛰어났으며 문전 어느 위치에서도 골로 연결할 수 있는 대단한 슈팅 능력과 상대 골키퍼의 예측을 불허하는 슈팅 타이밍을 잡는 부분과 문전 앞에서 침착한 부분이 돋보이는 선수였다.

인천 유나이티드를 거쳐 FC 서울로 이적한 데얀은 몰리나와 함께 데몰리션이라 불리는 K리그 역사상 최고급 공격 듀오를 구성하며 K리그 3회 우승 및 2010년 리그컵 우승과 2013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준우승과 같은 굵직한 성과를 냈고 데얀 개인도 K리그 베스트 4년 연속 선정, AFC 챔피언스리그 대회 올스타팀 2회 선정 및 K리그 득점왕 3회 수상을 이뤄냈음은 물론 2012년에는 K리그 우승, 득점왕, MVP, 대회 베스트 일레븐, K리그 팬타스틱 플레이어를 모두 석권하는 영광을 누렸다.

장쑤 슌톈과 베이징 궈안을 거쳐 다시 FC 서울로 돌아온 데얀은 선수 말년에 감독 황선홍과의 갈등으로 수원 삼성으로 이적하면서 FC 서울 팬들의 민심을 잃었지만 데얀은 여전히 FC 서울 통산 최다 득점지이자 통산 출전 3위를 기록하고 있음은 물론 선수 개인은 여전히 서울을 떠나서도 서울에 애정을 보이고 있고, 서울에서 쌓은 경이로운 커리어는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감독

 

 

이름: 최용수

출생년도: 1971년 9월 10일

부임기간: 2011~2016, 2018~2020


2010년대 초중반 K리그에 공격적으로 라인을 올린 3-5-2 시스템을 선보인 감독으로 전술적으로도 나쁘지 않았지만 이른바 '형님 리더십'이라 불렸던 강력한 카리스마에서 나오는 선수단 장악 및 소통 능력 및 언론에 대한 대처 능력이 뛰어난 즉 유럽 축구계의 '안토니오 콘테'와 유사한 스타일의 감독이었다.

FC 서울의 코치 역할을 하다가 전임 감독 황보관의 부진으로 인해 코치에서 승격해 감독대행으로 커리어를 시작한 최용수는 취임 이후 5경기 4승 1무라는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정식 감독으로 승격했고 최용수 체제에서의 FC 서울은 2012년 K리그 우승 및 2013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뤄냈고 2015년에는 FA컵을 우승했으며 최용수 개인도 2012 K리그 올해의 감독, 2013 AFC 올해의 감독 및 2015 FA컵 감독상을 수상했으나 2016년 장수 쑤닝으로 떠났다.

장쑤에서 사임한 뒤 국내에서 방송 출연과 해설로 소일하다가 황선홍 체제에서 무너진 FC 서울을 재건하기 위해 왔으나 이미 FC 서울은 크게 무너진 뒤였고 2019년에는 리그 3위로 반등했지만 2020년에는 세부전술 부재 및 변화 없는 용병술이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부진했으며 최용수 체제에 대한 팬덤의 부정적인 여론이 강해지자 시즌 도중 자진 사임했다.

 


베스트 일레븐

 

 


25인 스쿼드 / 서브 14인

 

 

 

이름: 김현태
출생년도: 1961년 5월 1일
포지션: 골키퍼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4kg

활약 기간: 1984~1991
통산 기록: 120경기 156실점 / 32클린시트
(전국축구선수권 대회 기록 추정해서 포함)

 

창단 초기부터 동대문 시절까지 구단의 에이스로 활약한 창단 멤버이자 레전드로 침착한 판단력과 안정적인 선방으로 이름을 날렸다.

대학시절이었던 1983년 고려대의 7관왕과 추계대학축구리그 MVP를 수상하는 활약으로 주목받아 1984년 럭키금성 황소의 창단멤버로 합류한 김현태는 K리그 2회 우승 및 2회 준우승을 기록했으며 김현태 개인도 K리그 베스트 일레븐 2회 수상을 이뤄냈고 1988년에는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을 이뤄낸 일등 공신으로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수 골키퍼상을 수상했으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부상으로 물러난 뒤에는 정해성 코치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 플레잉 코치로 전업했으며 은퇴 이후에는 대한민국에서 골키퍼 코치의 영역을 넓힌 제1 세대 GK 코치로 평가받았다.

 

 

 

이름: 유상훈
출생년도: 1989년 5월 25일
포지션: 골키퍼
신체조건: 키 195cm / 몸무게 85kg

활약 기간: 2011~2021
통산 기록: 148경기 172실점 / 41클린시트

 

2010년대 K리그를 대표하는 페널티킥 킬러로 K리그에서 페널티킥에 강한 골키퍼 하면 반드시 거론되었는데 장신에 팔이 길었으며 반사신경도 준수했음은 물론 페널티킥 상황에서 키커를 압박하는 심리전에 능해 프로 통산 15회의 PK 중 무려 8회를 선방하며 53.5%의 선방률을 기록했음은 물론 페널티킥 방어 이외에도 넓은 활동 반경을 바탕으로 수비라인의 뒷공간을 커버했고 공중볼 수비에도 능했으나 발밑은 아쉬웠다.

FC 서울에서 데뷔해 선수생활의 대부분을 서울에서 활약한 유상훈은 2015년 FA컵 우승 및 2016년 K리그 우승을 이뤄냈고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도 2013년에 백업으로 준우승을 경험했고 4강에 2회 진출하는 활약을 펼쳤다. 특히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더비 매치인 슈퍼매치에서 강세를 보인 유상훈은 슈퍼매치에서 개인 통산 8승 5무를 기록하며 무패행진을 세웠다.

 

 

 

이름: 이영익
출생년도: 1966년 8월 30일
포지션: 센터백, 라이트백, 수비현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85kg

활약 기간: 1989~1997
통산 기록: 195경기 7골 6도움

 

1990년대 LG 치타스 시대를 대표하는 스토퍼로 다부진 체격에서 나오는 강력한 몸싸움과 우수한 점프력을 바탕으로 한 제공권 경합능력, 그리고 강력한 투지를 바탕으로 한번 문 상대 공격수를 절대 놔주지 않고 철통같이 막아냈던 공격수였다.

럭키금성 황소 및 LG 치타스에서 선수생활 전부를 보낸 원 클럽맨 이영익은 1990년 K리그 우승 및 2회 준우승을 이뤄냈고 1992년에는 리그컵 결승에 진출하는데 한 팔 힘을 보탰다. 이영익 개인도 1989년 소속팀의 K리그 준우승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활약이 대단해 해당 시즌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이름: 김진규
출생년도: 1984년 12월 16일
포지션: 센터백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7kg

활약 기간: 2007~2010, 2012~2015
통산 기록: 270경기 16골 8도움

 

2000년대 후반 K리그 정상급 수비수로 100m를 13초 중후반에 끊었을 정도로 느렸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거친 플레이를 선보여 저평가받았고 실제로도 선수 초년에는 거친 플레이를 바탕으로 한 파이터형 수비수였지만 FC 서울 이적 이후에는 강력한 발목힘을 바탕으로 한 롱패스로 팀 빌드업의 시작점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던 우수한 커맨더형 센터백으로 성장했다.

FC 서울에서 구단 통산 출전 8위에 랭크되며 전성기를 누린 김진규는 서울에 머무는 동안 K리그 2회 우승 및 2013년 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및 2015년 FA컵 우승을 이끌었음은 물론 그가 이끄는 서울의 수비진은 탄탄하기로 유명했는데 2007, 2009, 2012 시즌 리그 최소 실점 및 2010 시즌 최소 실점 2위를 기록하는 데 큰 공을 세웠으며 최악의 스타트를 보였던 2013년에는 탁월한 공격 가담으로 주포 데얀의 부상과 쓰리백으로의 전환 실패 여파를 딛고 일어서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름: 차두리
출생년도: 1980년 7월 25일
포지션: 라이트백, 라이트윙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9kg

활약 기간: 2013~2015
통산 기록: 114경기 2골 7도움

 

대한민국 축구사 최고의 레전드 차범근의 아들로 2000년대 대한민국 축구를 대표하는 준족으로 북유럽인이 연상되는 뛰어난 피지컬과 공을 앞질러가는 빠른 스피드로 차미네이터라 불렸으며 초년에는 윙 포워드로 활약했으나 마인츠에서 측면 수비수로 자리 잡아 전성기를 맞은 선수였다.

레버쿠젠에서 데뷔해 마인츠, 프라이부르크, 셀틱 등 유럽 구단에서 전성기를 보내다가 말년에 K리그의 FC 서울에서 활약한 차두리는 말년임에도 엄청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2015 시즌에는 주장으로서 FA컵 우승을 이뤄냈고 차두리 개인도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며 유종의 미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름: 김치우
출생년도: 1983년 11월 11일
포지션: 레프트백, 레프트윙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68kg

활약 기간: 2008~2017
통산 기록: 231경기 14골 24도움

 

유망주 시절부터 제2의 이영표라 불린 공격형 레프트백으로 수비적인 부분에서는 아쉬운 모습을 보였지만 강력한 공격력을 바탕으로 팀의 측면 공격을 이끌었는데 날카로운 왼발 크로스로 득점을 지원했음은 물론 상황에 따라 중앙으로 침투해서도 우수한 연계플레이를 선보였으며 때때로 돌파 후 직접 슈팅을 노리기도 했음은 물론 스로인이 길고 정확하기에 팀의 스로인을 전담하기도 했다.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데뷔해 파르티잔과 전남을 거쳐 FC 서울에서 전성기를 누린 김치우는 K리그 3회 우승 및 2015 FA컵 우승, 그리고 2013 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특히 2010년 정규리그 최종전에서는 대전을 상대로 1-1로 맞서던 후반 42분, 아크 정면에서 멋진 오른발 결승골을 터뜨리며 팀의 정규리그 우승을 이끈 장면은 백미다.

 

 

 

이름: 김한윤
출생년도: 1974년 7월 11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센터백, 라이트백, 레프트백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5kg

활약 기간: 2006~2010
통산 기록: 145경기 1골 3도움

 

1990년대와 2000년대 K리그를 대표하는 언성히어로로 매우 거친 플레이로 유명해 마킹맨을 물고 절대 놓아주지 않았기에 독사라는 별명으로 불렸는데 K리그 통산 430경기에서 143장의 옐로카드를 받아 K리그 통산 최다 경고로 악명이 높았으며 자기 관리도 훌륭해 30대 후반의 나이에도 엄청난 지구력을 보여줬다.

부천 SK를 거쳐 33세의 나이로 FC 서울에 입단한 김한윤은 팀의 핵심 플레이메이커 기성용의 보디가드로 활약하며 기성용의 수비 부담을 최소화하게 도와줬는데 상술한 플레이스타일 때문에 타 팀 팬들의 원성의 중심에 있던 선수였으나 서울팬들에게만큼은 크게 사랑받았던 언성 히어로로 이름이 높았다. 2010년 37세의 나이로 팀과 재계약이 실패해 은퇴했는데 이때 이러한 편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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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인사드리게 되는군요. 운동장에서 저는 언제나 주연이기보다는 조연이길 바라며 항상 최선을 다해 달려왔다 생각합니다. 때론 거친 플레이로 여론의 비난을 받은 적도 있었지요. 그러나 항상 제자신보다는 팀동료를 먼저 생각하려고 했던 플레이들이었으니 너그럽게 좋은 추억으로 남겨 두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 어디서나 여러분들과 함께였기에 행복한 저 김한윤이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의 뜨거운 함성을 뒤로하고 정든 그라운드를 떠나려 합니다. 제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여러분들이 주셨던 사랑... 가슴 깊은 곳에 간직하고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 제가 그라운드 밖에서 방황하고 실수할 땐 언제든지 "정신 차려 한윤!"이라고 외쳐 주세요! 이제 그라운드가 아닌 곳에서 서포터즈 여러분들과 함께 "FC 서울"을 응원하겠습니다. 또 땀 흘리고 몸을 던지는 후배들에겐 여러분들의 뜨거운 함성이 언제나 필요할 겁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응원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그동안 감사했고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__)

 

 

 

이름: 하대성
출생년도: 1985년 3월 2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5kg

활약 기간: 2010~2013, 2017~2019
통산 기록: 162경기 26골 19도움

 

2010년대 초반, K리그 정상급 중앙 미드필더로 엄청난 활동량과 뛰어난 볼 키핑 능력은 물론 높은 지능과 순간적인 판단력도 훌륭했던 공수겸장의 중원 자원으로서 수비적인 부분이 부족했던 대구에서는 후방에서 포백보호를 훌륭하게 소화했으며 상대적으로 수비라인이 안정적인 FC 서울에서는 플레이메이커로 경기를 지휘하는 역할에 더 집중했기에 팀 내에서는 하대성 + 챠비 에르난데스라는 뜻의 하비라고 불렸다.

2010년대 초반 FC 서울의 약진을 이끈 하대성은 팀의 에이스로 우뚝 서며 2010년과 2012년 K리그 우승을 이끌었으며 2013년에는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하대성 개인도 2011년부터 2013년까지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연속으로 선정되는 대단한 활약을 보였기에 팬덤에서는 그를 두고 '상암의 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FC 서울을 떠난 이후 중국의 베이징 궈안과 일본의 FC 도쿄, 나고야 그램퍼스를 거쳐 말년에 서울로 돌아왔는데 말년에는 출전할 때는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잦은 부상으로 고생하며 출전 자체를 못했기에 결국 2019년을 끝으로 서울에서 은퇴했다.

 

 

 

이름: 고명진
출생년도: 1988년 1월 9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윙어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9kg

활약 기간: 2003~2015
통산 기록: 283경기 18골 20도움

 

1988년생 FC 서울의 전설적인 라인 스리고 삼인방의 일원으로 뛰어난 테크닉에서 나오는 드리블 및 볼 키핑과 정확한 패스, 그리고 우수한 템포 조절 능력을 바탕으로 팀의 플레이메이킹을 담당했으며 키가 크고 키에 비해서도 다리가 긴 편인데 이 긴 다리를 활용한 스피드도 우수했다.

최후의 안양 LG 치타스 보이라고 불리며 2003년에 데뷔해 FC 서울에서 오랜 기간 활약하며 구단 통산 출전 7위에 랭크된 고명진은 2010년대 초반에 하대성, 한태유와 호흡을 맞춰 FC 서울의 약진을 이끌며 K리그 2회 우승 및 2010년 리그컵 우승과 2013 AFC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름: 최진한
출생년도: 1961년 6월 22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4cm

활약 기간: 1985~1991
통산 기록: 159경기 24골 19도움
(전국축구선수권 대회 출전 기록으로 추정되는 3경기 4도움 포함 기록)

 

럭키금성 황소 시절 팀을 대표하는 플레이메이커로 드넓은 시야와 뛰어난 패싱력, 그리고 준수한 지구력을 바탕으로 팀의 플레이메이킹을 담당했던 중원사령관이었다.

명지대에서 대학 무대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명성을 떨치며 대학 시절에 이미 대표팀에 뽑혔던 최진한은 1985년 럭키금성 황소에 입단하면서 프로생활을 시작했는데 입단 첫 해에는 잦은 대표팀 소집으로 5경기 선발에 그쳤지만 1986년 이후로 주전으로 도약해 K리그 2회 우승 및 1988년 전국축구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특히 1990년에는 팀의 주장으로 우승을 이뤄내며 K리그 MVP를 포함해 1988년과 1990년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된 최진한은 앞으로도 서울의 전설로 남을 줄 알았으나 1991 시즌을 앞두고 LG 치타스와의 재계약 협상과정에서 받은 푸대접으로 이에 상처를 받은 최진한은 1991 시즌 전반기에 부진에 빠졌고 구단에 의해 강제로 유경으로 팀을 떠났고 그곳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이름: 최태욱
출생년도: 1981년 3월 13일
포지션: 라이트윙, 레프트윙, 스트라이커, 사이드백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3kg

활약 기간: 2000~2003, 2010~2013
통산 기록: 124경기 9골 15도움

 

2000년대 K리그에서 이름을 날린 스피드스터로 투박한 드리블에도 K리그 최고 수준의 순간스피드를 바탕으로 한 빠른 측면돌파로 이름을 날렸으며 예상치 못한 번뜩이는 플레이로 상대의 예측 수비를 뚫어내기도 했음은 물론 축구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 양측면 윙포워드 외에도 라이트백, 레프트백 및 스트라이커도 훌륭하게 소화했는데 히딩크가 이 점을 높이 평가했기에 2002 한일 월드컵 멤버로 발탁하기도 했다.

고교 시절부터 이천수, 박용호와 함께 부평고 트로이카로 주목받으며 부평고의 고교축구 천하통일을 이뤄냈고 그 활약을 바탕으로 고졸 이후 바로 안양 치타스에 입단했고 처음에는 윙백으로 활약하며 안양 치타스의 주전으로 도약해 데뷔 시즌 K리그 우승을 이뤄냈고 2003년에는 전북과의 K리그 경기에 출전해 안양에서 100번째 경기에 출전했는데 이는 만 22세 4개월 18일의 기록으로, 역대 안양 LG 치타스 통산 최연소 100경기 출전 선수로 이름을 남겼다.

2003년 안양을 떠난 이후 2004년 인천 유나이티드의 창단 멤버로 합류했고 일본의 시미즈, K리그의 포항 등을 돌면서 부진하다가 전북에서 최강희의 지도를 받아 부활했고 2010년에는 친정팀의 후신 구단이었던 FC 서울로 돌아와 볼턴으로 떠난 이청용의 공백을 메워냈고 데몰리션 콤비를 보좌하는 조연으로 구단의 K리그 2회 우승에 크게 공헌했다.

 

 

 

이름: 강득수
출생년도: 1961년 8월 16일
포지션: 레프트윙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67kg

활약 기간: 1984~1989
통산 기록: 147경기 21골 37도움

 

K리그 출범 초반 리그 정상급 측면 공격수로 오른발잡이임에도 불구하고  빠른 스피드와 세련된 드리블 능력을 겸비해 측면에서 중앙으로 침투해 컷인 플레이에 능해 좌측면에서 활약했기에 훗날 한국 축구계에서는 시대를 앞서간 반대발 윙어라고 평가했다. 물론 직접 득점하는 부분보다는 포워드에게 패스해 찬스를 만들어 주는 플레이를 선호하기도 했다.

1984년에 럭키금성에서 데뷔한 강득수는 1985년 K리그 우승 및 2회 준우승을 이뤄냈고 1985년에는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는데 특히 태국 특급 스트라이커 피아퐁과의 연계 플레이로 이름을 날렸는데 1985년에는 피아퐁과 함께 팀의 우승을 견인하며 피아퐁을 득점왕과 도움왕 동시 석권을 이뤄내게 했으며 1986년에는 도움왕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1989년 현대 호랑이로 이적하는 과정에서 럭키금성 측은 강득수가 임의로 현대와 계약을 체결했다는 이유로 임의탈퇴 선수로 공시했으나 임의탈퇴 공시요청을 받은 대한축구협회가 임의탈퇴를 무효화했기에 선수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여담으로 강득수는 담대하며 자신감이 강한 성격이었는데 1984년 데뷔 시즌에 다른 럭키금성 선수들이 부담감 때문에 10번을 안 고르고 다른 번호만 고르려 하길래 냉큼 에이스의 상징인 10번을 골랐다고 한다.

 

 

 

이름: 박주영
출생년도: 1985년 7월 10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포워드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5kg

활약 기간: 2005~2008, 2015~2021
통산 기록: 314경기 90골 31도움

 

2000년대 중반에 축구 천재라 불리며 데뷔한 선수로 별명에 걸맞게 높은 전술안에서 나오는 오프 더 볼 능력과 적절한 위치 선정 능력, 그리고 탄탄한 볼 컨트롤과 정확한 슈팅과 헤더로 득점포를 가동했다.

데뷔 시즌부터 32경기에 출전해 18골을 기록하며 주목받았던 박주영은 이 시기에 박주영은 K리그 영플레이어상을 수상했고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2006년에는 리그컵 우승을 이뤄냈고 2008년에는 전반기만 마치고 프랑스의 AS 모나코로 이적했다.

유럽 무대에서 희로애락을 모두 경험하고 2015년 만 30세의 나이로 돌아온 박주영은 다시 서울의 핵심으로 올라서며 K리그 무대에서 준수한 활약을 보였는데 2015년 FA컵 우승 및 2016년 생애 첫 K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2021년까지 뛰며 FC 서울 구단 통산 출전 4위 및 구단 통산 득점 3위를 기록했다.

 

 

 

이름: 최용수
출생년도: 1971년 9월 10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0kg

활약 기간: 1994~2000, 2006
통산 기록: 154경기 60골 26도움

 

독수리라 불렸던 1990년대 후반 대한민국 대표팀의 간판 공격수로 예리한 슈팅 감각은 물론 강력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상대 수비수를 등지고 플레이하는 부분에 능했다.

연세대학교에 입학해 활약하다가 안양 LG 치타스에 입단한 최용수는 입단 첫 시즌인 1994 시즌에 K리그 신인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고 1998년 FA컵 우승 및 2000 시즌에는 K리그 우승을 이끄는데 큰 공을 세워 K리그 베스트 일레븐과 K리그 MVP를 수상했다.

이후 J리그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펼치다가 2006년 FC 서울로 돌아와 마지막 시즌을 보낸 뒤에 은퇴했으며 감독으로서는 상암 시절 FC 서울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다.

 


25인 스쿼드 완성판

 


FC 서울 역대 올스타 리저브 팀 11인

 

 

 

이름: 신의손
출생년도: 1960년 1월 12일
포지션: 골키퍼
신체조건: 키 193cm / 몸무게 87kg

활약 기간: 2000~2004
통산 기록: 137경기 146실점 / 49클린시트

 

본명은 발레리 사리체프로 타지키스탄 출신의 K리그 역대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선수이며 포항의 전설적인 공격수이자 K리그 득점왕 이력까지 있었던 차상해의 말에 따르면 "느낌상 분명 '골이다' 싶어 세리머니를 펼치려는 순간 손을 뻗어 막아냈다. '이번에는 정말 들어갔다' 싶어 동료들에게 뛰어가려는 순간 발을 뻗어 막아냈다. 정말 밉더라"라고 했을 정도로 막기 힘든 슈팅마저도 막아냈다.

일화 천마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일화 왕조를 세웠던 신의손은 그의 괴물같은 활약 때무에 용병 골키퍼가 유행하며 대한민국 국적 골키퍼의 설 사라지가 사라지자 외국인 골키퍼 기용을 금지 규정이 생기며 1998년 K리그를 떠났다가 2년 뒤에 귀화자격을 갖춰 대한민국으로 귀화하며 이름을 자신의 별명인 신의손으로 짓고 안양 LG 치타스에 입단해 2000년 K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신의손 개인도 안양 치타스에서만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며 개인 통산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6회 선정되기도 했다.

 

 

 

이름: 조영증
출생년도: 1954년 8월 18일
포지션: 리베로, 센터백,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83cm

활약 기간: 1984~1987
통산 기록: 56경기 15골 5도움

 

1980년대 대한민국 수비를 대표했던 선수로 코끼리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몸싸움에 능했으며 드넓은 시야와 뛰어난 전술안과 판단력을 겸비했으며 패싱력과 득점력도 뛰어났다.

실업 리그 시절에는 대한민국 최고의 수비수였으며 여러 스타들이 활약하던 미국 리그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보였던 조영증은 1984년 K리그로 돌아와서는 럭키금성 황소의 창단 멤버로 활약했는데 처음에는 센터백으로 활약하다가 피아퐁이 오기 이전까지 스트라이커의 부재로 1984년 6경기 연속골을 이뤄내기도 했다.

다만 멕시코 월드컵 대표팀에 발탁돼 장기 합숙에 들어갔기 때문에 럭키 금성에서 활약할 기간이 적어 1985년의 우승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

 

 

 

이름: 박용호
출생년도: 1981년 3월 25일
포지션: 센터백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6kg

활약 기간: 2000~2011
통산 기록: 187경기 9골 1도움

 

2000년대 K리그 수위급 센터백으로 기본기가 뛰어나 고교 시절에는 스위퍼부터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모두 소화하는 만능 수비자원으로 유명했지만 프로 입단 이후에는 센터백으로 정착했는데 탄탄한 기본기와 우수한 제공권 경합을 바탕으로 상대 공격수를 잘 마킹했고 리더십도 뛰어나 2010년대 초반, FC 서울의 주장을 역임했다.

고교 시절부터 이천수, 최태욱과 함께 부평고 트로이카로 주목받으며 부평고의 고교축구 천하통일을 이뤄냈고 결국 최태욱과 함께 2000년 지역 연고 구단이던 안양 LG 치타스에 입단했는데 초기에는 청소년 대표팀에 너무 자주 불려 다니는 탓에 소속팀에서는 오히려 제대로 활약하지 못하는 경우가 잦았음에도 2000년 K리그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했고 FC 서울에서도 주장으로 맹활약했는데 안양 시절을 포함해 K리그 2회 우승 및 2회 준우승, 2001년 대한민국 슈퍼컵 우승, 2002년 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및 2010년 리그컵 우승을 이뤄냈다.

 

 

 

이름: 고광민
출생년도: 1988년 9월 21일
포지션: 라이트백, 레프트백, 라이트윙, 레프트윙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3kg

활약 기간: 2011~2022
통산 기록: 214경기 8골 18도움

 

1988년생 FC 서울의 전설적인 라인 스리고 삼인방의 일원으로 이름을 날린 좌우 측면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로 비록 전문 사이드백들에 비해 수비력은 떨어졌지만 팀 동료 고명진은 그를 두고 "광민이는 빠르다. 측면 플레이에 능해 팀 전술에 꼭 필요한 선수다."라고 했는데 실제로 빠른 스피드와 리그 정상급 드리블 실력을 바탕으로 한 공격 가담으로 유명했으며 우측에 섰을 때는 날카로운 오른발 크로스로 팀 공격을 지원했지만 좌측에 섰을 때는 크로스를 자제하고 공격수들과 패스를 주고받으면서 박스 침투를 자주 시도했다.

대학을 졸업했기에 동기인 고요한, 고명진에 비해 입단 시기는 늦었지만 2010년대 중후반 FC 서울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K리그 2회 우승 및 2015년 FA컵 우승에 크게 공헌했는데 특히 2016년에는 한 시즌 동안 50경기에 출전하며 FC 서울의 한혈마로서 엄청난 체력과 정신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때 팀에 들어온 고참인 박주영에게 "네가 볼 잡고 내달리면 아무도 못 잡는다. 너는 드리블 실력도 수준급이다. 자신감 있게 해라."라는 격려를 받기도 했다.

 

 

 

이름: 김동진
출생년도: 1982년 1월 29일
포지션: 레프트백, 센터백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4kg

활약 기간: 2000~2006, 2011
통산 기록: 148경기 14골 7도움

 

2000년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수비형 풀백으로 기동력은 평범했지만 체격이 좋고 중앙 수비수 경험도 있기에 대인방어 능력이 우수한 데다가 크로스 능력도 준수해 공격적으로도 부족한 선수는 아니었다.

안양 LG 치타스에서 데뷔해 황금 날개라는 별명으로 불린 김동진은 데뷔 시즌에 K리그 우승을 경험했고 2004년에는 연고지를 옮긴 뒤에 기량이 만개해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2004년에는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2006 독일 월드컵에서 뛰어난 활약을 선보이며 러시아의 신흥강호 제니트에서 뛰기도 했다.

 

 

 

이름: 한태유
출생년도: 1981년 3월 31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센터백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9kg

활약 기간: 2004~2006, 2008~2014
통산 기록: 161경기 5골 5도움

 

2000년대 하반기부터 2010년대 상반기까지 K리그의 대표적인 살림꾼으로 이름을 날렸던 수비형 미드필더로 팀 동료 하대성, 고명진이 마음껏 공격에 가담하는 동안 뒤에서 묵묵히 그들과 포백 사이를 보호하며 상대 플레이메이커와 공격수 사이를 잘 끊어내  '서울의 잠금장치'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군 복무 기간을 제외하고 선수 생활 전부를 FC 서울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인데 명지대 시절에는 공격수로 활약했지만 당시 서울의 포워드였던 김은중, 정조국에 밀려나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한 뒤에 김성재의 대체자로 활약하다가 군입대로 인해 상무로 떠났다. 그러나 전역한 이후에는 김한윤, 최현태한테 밀려나다가 최용수 체제에서 하대성과 고명진의 수비력을 보완해 줄 적임자로 중용받아 활약하며 K리그 2회 우승을 이뤄냈다.

 

 

 

이름: 김성재
출생년도: 1976년 9월 17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3kg

활약 기간: 1999~2005
통산 기록: 217경기 13골 11도움

 

2000년대 상반기 K리그에서 명성을 날린 살림꾼으로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경기장 전역에서 팀의 볼 점유를 도왔음은 물론 넓은 시야와 강력한 리더십으로 팀원들에게 적절한 지휘를 했던 야전사령관이라 조광래 체제에서 중용받았다.

안양 치타스 시대의 마지막 주장이자 상암 시대의 첫 주장을 역임한 김성재는 2년차인 2000년에 등번호를 8번으로 바꿨는데 주전으로 나서며 리그와 리그컵을 포함해 34경기 3골 6도움을 기록, 팀의 안양 연고지 정착 후 첫 우승에 기여했고 2001년 대한민국 슈퍼컵에서도 전북 현대를 꺾는데 큰 공을 세웠다.

FC 서울로 바뀐 이후 이장수 체제에서도 팀의 주장으로 중용받은 김성재는 2006년 세대교체를 이유로 전남으로 떠났다.

 

 

 

이름: 이을용
출생년도: 1975년 10월 12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레프트윙, 수비형 미드필더, 레프트백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69kg

활약 기간: 2003~2004, 2006~2008
통산 기록: 106경기 1골 6도움

 

2000년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드필더로 피지컬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한국 축구 역대 최고의 왼발잡이 테크니션이며 뛰어난 패싱 능력과 넓은 시야, 그리고 뛰어난 볼 키핑 능력을 바탕으로 하는 중원에서 팀을 조율하는 능력이 대단했다.

부천 SK를 떠난 뒤 잠시 트라브존스포르로 임대를 떠났다가 안양 LG 치타스로 돌아왔으며 FC 서울로 연고를 바뀔 때까지 활약하며 좋은 퍼포먼스를 보였지만 다시 트라브존스포르로 떠났다. 이후 2006년 하반기에 FC 서울로 다시 돌아왔는데 2008 시즌 주장으로서 팀의 준우승을 함께했다.

 

 

 

이름: 세르히오 에스쿠데로
출생년도: 1988년 9월 1일
포지션: 라이트윙, 레프트윙,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75kg

활약 기간: 2012~2014
통산 기록: 118경기 20골 18도움

 

일본과 스페인, 아르헨티나 삼중 국적의 선수로 2선 전 지역에서 활약할 수 있었는데 겉보기엔 단신에 둔중해 보이지만 낮은 무게중심을 바탕으로 한 탄탄한 피지컬과 전광석화와 같은 스피드와 우수한 테크닉을 겸비해 저돌적인 드리블로 상대 측면을 돌파했으며 활동량도 많고 본인이 몸싸움을 피하지 않았기에 상대가 공을 가지고 있으면 좌우중앙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압박했다.

우라와에서 활약하다가 2012년 FC 서울로 임대 이적하며 인연을 시작한 에스쿠테로는 노쇠화된 최태욱의 뒤를 이어 데몰리션 콤비를 보좌하며 중앙과 측면을 쉬지 않고 오가며 상대 수비진을 최대한 흔들어 놓았고 K리그 우승을 이끌며 완전이적했으며 2013년에는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끌었고 데얀이 떠난 뒤에는 스트라이커 역할을 소화해 FA컵 준우승을 이뤄냈다.

 

 

 

이름: 정조국
출생년도: 1984년 4월 23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7kg

활약 기간: 2003~2010, 2012~2015
통산 기록: 266경기 84골 22도움

 

21세기 초반 K리그에서 활약한 정통파 공격수로 발이 빠르거나 개인기가 뛰어나진 않았으며 심지어 좋은 신체조건에도 몸싸움을 적극적으로 하는 선수는 아니었으나 적절한 타이밍에 최적의 위치로 침투해 침착하게 득점했던 정통파 스트라이커로 '패트리어트'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특히 상대의 오프사이드 라인을 붕괴하는데 능했으며 2010년 이후로는 수비가담도 적극적으로 하며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됐다.

안양 치타스 시절이었던 2003년 신인상을 수상해 화려하게 데뷔한 정조국은 데뷔 시즌 이후로는 기복있는 모습으로 비판받았지만 2010년에는 29경기 13골을 기록하며 K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그 덕분에 프랑스 리그의 오세르로 떠나기도 했다. 낭시를 거쳐 다시 2012년 7월 6일 FC 서울에 돌아와서도 슈퍼매치에서 복귀골을 넣는 등 활약했고 특히 41라운드 제주 유나이티드전에서는 3경기 남은 상황에서 팀의 우승을 확정지은 결승골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을 확정지었다.

 

 

 

이름: 피야퐁 피우온
출생년도: 1959년 11월 14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8kg

활약 기간: 1984~1986
통산 기록: 34경기 17골 6도움

 

태국에서 가장 성공한 축구 선수로 태국 축구의 영웅이자 K리그에서 가장 성공한 아시아 외인으로 치타와 같은 스피드로 상대 수비진을 허문 뒤 반 박자 빠른 슈팅으로 상대 골키퍼를 농락했다. 게다가 판단력도 우수해 거친 축구가 대세이던 K리그에서 태클을 잘 피해 다녔다.

타이 왕실 공군 FC에서 5년간 활약한 뒤 럭키금성 황소의 창단 멤버로 1984년 5월 31일 정식으로 입단을 완료했고 1984 시즌 9월 8일 포항제철 돌핀스와의 경기부터 출장해 1986 시즌까지 7월 2일 현대 호랑이와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세 시즌에 걸쳐 대략 2년간 K리그에서 활약한 피야퐁은 1985년 럭키금성의 첫 번째 K리그 우승에 큰 공을 세웠고 이 과정에서 득점왕과 도움왕을 동시에 석권했음은 물론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1986년, 피아퐁의 스타일이 상데에게 읽혔기에 수비수가 전담마킹하며 압박하자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태국으로 돌아갔지만 그럼에도 피야퐁 신드롬은 대단했는데 럭키금성의 모기업인 럭키금성 그룹 또한 태국에서 피야퐁의 인기 후광에 힘입어 방콕 최대 백화점인 소보 백화점의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수주를 따내고 백화점 내에 계열사인 금성사 매장도 들어설 수 있었다.

 


*기록은 K리그 공식 기록을 봅니다.

* 스탯 기록일 기준은 2024년 3월 30일 입니다.

 

* 데얀 등 일부 선수는 팬들 사이에서 민심이 좋지는 않지만 활약상이 대단해 제 주관상 명단에 포함하지 않을 수 없었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에펨네이션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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