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균형의 붕괴가 가져오는 독, 장기적으로 구단을 부패시킨다.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영국의 저명한 정치인이자 작가 존 에머리치 에드워드 달버그 액튼이 남긴 유명한 말이다. 실제로 견제 수단이 없을때 해당 단체는 부패하고 결국 한계에 다다를 때 멸망한다.
축구 구단에서도 마찬가지다. 특정 인물 한 명이 지나치게 방대한 권력을 가지거나 자신의 권한을 넘어 다른 사람의 권한을 침해하거나, 또는 다수의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휘둘릴 때 축구 구단은 큰 위기를 맞는다.
독재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부활을 이끈 명장 클롭이 이끄는 리버풀은 2018-19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이어 2019-20 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최초로 리그우승에 성공하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그 중심에는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윙포워드 듀오 모하메드 살라와 사디오 마네가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의외로 클롭의 픽이 아닌 그 당시 리버풀의 단장이었던 마이클 에드워즈가 고른 픽이었다. 원래 클롭은 마리오 괴체를 원했으나 클롭 감독의 결정에 제동을 걸 수 있었던 단장 에드워즈는 사디오 마네를 선택했다. 그리고 클롭 감독은 율리안 브란트를 원했지만 에드워즈 단장이 모하메드 살라를 선택했다.
살라와 마네는 클롭 체제에서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선수로 이름을 날렸으며 괴체와 브란트는 이번 시즌 부활하기 전까지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우수한 안목의 에드워드 단장과 클롭의 전술적 역량이 시너지를 발휘하며 살라와 마네는 리버풀의 성공신화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선수 중 하나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에드워드 단장이 단장직을 물러나면서 단장과 감독 간의 권력 균형이 깨지기 시작했다. 에드워즈 단장은 떠났지만 후임 줄리안 워드는 6개월 만에 자신이 생각했던 일과 다르다며 사직서를 낸다.
지난 5월 리버풀은 워드 단장의 후임으로 외르크 슈마트케를 선임했다. 이번 여름 이적 시장을 위한 소방수인데 외르크 슈마트케가 클롭과 친한 부분을 고려하면 이는 클롭의 권력 하 이적시장이 전개된다는 추론이 가능했다. 감독과 단장 사이의 권력균형이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 그리고 리버풀은 팬들과 약속했던 주드 벨링엄 영입은 물론 6번 수비형 미드필더 영입에서도 타겟들을 모조리 첼시에 뺏기며 실패해 팀을 떠난 파비뉴와 동년배인 엔도 와타루를 영입하는데 그쳤다.
심지어 클롭은 미드필더 보강을 원한 팬들에게 "플라스틱 팬(가짜 팬)"이라는 망언에 가까운 말도 한 사례도 있었다. 팬들이 원하는 대로 다 해줄 수는 없지만 주 고객인 팬들한테 이렇게 말한다는 것 자체가 권력의 균형이 깨지면서 클롭도 눈이 흐려졌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캐러거는 이런 현상을 두고 "이전에는 클롭 감독이라는 위대한 감독도 있었지만 동시에 마이클 에드워즈라는 단장계 최고봉이 있었다. 그리고 에드워즈 아래 이적 위원회도 있었다. 효과가 최고였지만 에드워즈는 떠났고 시스템도 와해되었다."라고 한탄했다. 클롭은 위대한 지휘관이지만 구단 운영의 천재는 아니다. 한신도 소하의 서포트가 있었기에 백전백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감독 클롭에게 권력이 집중되며 단장이 큰 힘을 쓸 수 없는 지금의 리버풀의 시스템으로는 프리미어리그 우승은 요원할 것임은 물론 지금 주축이 되는 91~92년생 세대가 늙어서 밀려나면 더 큰 위기가 올 것임은 자명하다.
월권행위와 하극상
2023년 3월 23일, UEFA 챔피언스리그 전승 및 분데스리가 우승 경쟁을 하던 나겔스만 감독이 갑작스럽게 경질되었다. 비록 직전 경기인 레버쿠젠전에서 초보 감독인 알론소와의 전술싸움에서 완패하며 다소 무기력하게 패배한 건 사실이지만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전승행진을 거두고 있었으며 분데스리가에서도 여전히 우승 경쟁을 하는 상황이었다는 부분, 그리고 한창 시즌 중이었음을 감안하면 다소 뜬금없이 경질되었다고 할 만했다.
원래도 나겔스만이 부진한 경기를 보였음에도 보드진들이 나겔스만이 위기에 빠졌을 때도 장기 프로젝트의 일환임을 언급하며 인터뷰로 신뢰하는 스탠스를 꾸준히 보여왔기 때문이었다. 특히 경질 나흘 전에는 바이언 회장 헤르베르트 하이너는 나겔스만이 경질되기 4일 전에 키커와의 인터뷰에서 나겔스만을 칭찬하며 그를 신뢰하는 인터뷰를 했었기에 이 경질은 팬들을 더더욱 놀라게 했다. 당연히 나겔스만도 경질을 예측하지 못하고 오스트리아에서 스키를 타다가 문자메시지로 경질을 통보받았다.
경질 이후 올리버 칸의 측근 언론인 플레텐베르크를 포함해 바이에른 담당 기자들은 나겔스만이 마누엘 노이어, 사디오 마네 등 베테랑 선수들과 충돌이 있었다는 부분을 언급하긴 했지만 다소 성급한 경질을 변명하기 위한 언론 플레이라는 해석이 많았고 실제로는 토마스 투헬을 역시 라리가 우승이 어려워진 레알 마드리드가 노리기 전에 영입하기 위해 경질했다는 부분이 컸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토마스 투헬이 온 뒤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으며 이겨야 될 경기에서 무승부를 거두거나 지는 경우가 잦았으며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로는 원정에서 3-0으로 완패했으며 포칼에서도 프라이부르크에게 밀려 탈락하며 더 좋지 못한 성적을 거두자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냈음에도 CEO 올리버 칸과 단장 하산 살리하미지치는 이사회에 의해 경질되는 엔딩을 맞았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나겔스만의 경질은 구단 특유의 주장단 선수까지 모두 이사회에 참석하는 만장일치제 정책을 무시하고 칸과 살리하미지치가 둘이서 독단적으로 벌인 행위였고, 이 사건으로 회네스의 눈밖에 난 상태였기 때문에 이 책임을 바로 이 둘에게 물은 것이라고 한다. 심지어 올리버 칸과 하산 살리하미지치의 상급자인 회장 하이너는 나겔스만의 경질 소식을 TV로 보고 알았다고 했다.
이는 명백한 월권행위였다. 감독을 교체하는 수준의 큰 일을 회장의 재가를 받지 않고 의장과 단장이 독단적으로 처리한 부분은 그간 월권행위를 절대 용납하지 않았던 바이에른 뮌헨 구단의 시스템을 크게 훼손한 일이었다. 실제로 회네스와 루메니게 체제에서도 서로 의견은 자주 달랐을지언정 항상 서로 상의해서 결정했고 그 덕분에 바이에른은 숱한 위기를 벗어났다. 바이에른의 이사회는 항상 월권행위에 경계했기에 바이에른 역사상 최초로 6관왕을 달성한 한지 플릭마저도 지금보다 더 많은 권한을 요구하자 사임하게 했을 정도로 견제와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구단이다.
구단주, 감독, 단장 등의 월권행위와 권력균형의 붕괴로 무너졌던 수많은 구단들을 생각하면 견제와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월권은 일절 용납하지 않았던 바이에른의 스탠스는 현명했다.
중우정치와 이를 악용한 네거티브
스페인의 두 명문이자 시민구단의 자존심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클럽의 유료회원인 ‘소시오’의 투표로 클럽 운영의 최고 책임자가 결정된다. 나름대로 민주주의에서 대통령을 뽑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소시오의 뜻을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는 장점과 중우정치로 흐를 수 있다는 단점이 공유된다.
팬들은 책임을 지지 않으며 전문가가 아니기에 항상 올바른 판단을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 제도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소시오들의 길을 잡아주는 정신적 지주가 필요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회장인 페레스가 직접 이 역할을 수행하며 바르셀로나에서는 감독 재임시절 구단의 역사를 새로 세운 요한 크루이프가 이 역할을 수행했었다. 크루이프 덕에 바르셀로나의 팬들은 정치인들의 언론플레이에 속지 않고 더 현명하게 볼 수 있었다.
게다가 바르셀로나의 회장은 암묵적으로 카탈루냐의 세족들만 나설 수 있었고 이 세족들은 축구를 잘 몰랐기에 크루이프의 도움이 없이는 소시오들에 쉽게 휘둘리기 좋은 구도였다. 하지만 라포르타가 선거에서 패해 물러나고 산드로 로셀이 권력을 잡았다. 그러나 로셀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네이마르 영입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요한 크루이프의 말까지 무시해가며 네이마르를 영입했는데 그 과정에서 여러 비리행위가 발각되며 법정구속을 피할 수 없었으며 이후 재임한 바르토메우는 2014-15 시즌 루이스 엔리케가 이룬 트레블 덕분에 정식 회장으로 부임했으나 그는 축구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게다가 2016년 3월 24일, 그나마 꾸레들의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었던 선지자 요한 크루이프가 사망했다. 이후 바르토메우는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팀에 얼마나 맞는지보다 당장 팬들이 원하는 스타를 영입하는 방식으로 급한 불을 껐는데 그렇게 1억 4000만 유로에 쿠티뉴를 영입했으며 1억 2천만 유로에 그리즈만을 추가로 영입했다. (우스만 뎀벨레의 영입은 결과적으로 실패했지만 뎀벨레 자체는 영입할 이유가 확실했기에 이 명단에서 제외한다.) 이후 바이에른 뮌헨에게 8-2로 패하고 메시가 팀을 떠나겠다고 선언하는 등 여러 악재가 터지며 바르토메우는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러한 악재의 원인은 전적으로 바르토메우였기에 이에 대해 할 말은 없었다.
2020년 2월 스페인의 언론 '카데나 세르'에서 발표한 기사에 따르면 메시, 푸욜, 차비를 포함한 구단 내부의 선수들과 레전드, 그리고 라포르타, 폰트 등 2021년 의장 후보들을 한 회사와 계약을 맺고 공개적으로 그들을 비판함은 물론 여론 조작까지 했단 사실이 밝혀졌다. 바르토메우는 소시오들을 선동하기 위해 소속팀 선수들의 명예를 깎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중우정치의 부작용인 팬들에게 휘둘리는 걸 넘어서 중우정치를 악용하는 여론조작까지 시도했다. 정신적 지주인 요한 크루이프가 사라지니 팬덤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 바르셀로나는 다음 회장인 라포르타 체제에서도 메시를 지키는데 실패했으며 전임 회장대의 실정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2년 연속으로 UEFA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선거에 대한 결과를 책임져야 하는 부분은 소시오들이다. 하지만 역시 항상 올바른 판단을 할 수도 없다. 그래서 소시오들과 보드진을 동시에 견제할 수 있는 권력의 균형추이자 정신적 지주가 반드시 필요했다. 바르셀로나가 다시 유럽 정상급에 오르려면 감독 사임 이후에 크루이프가 맡았던 역할을 해줄 사람의 등장이 필요하다.
결론
현실정치와 유사하게 축구 구단에서도 권력의 균형추가 무너지면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하며 서서히 팀의 가치가 하락하고 이를 알아차린 순간에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가기도 한다.
아무리 총명한 사람이라도 권력이 집중되면 모든 면을 혼자서 다 볼 수는 없으며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조직의 질서를 무너트리면 결국 잘려나가는 게 세상의 이치이며 이는 서포터와 구단 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과하게 흔들리면 구단 운영 방향이 흔들리고 서포터들을 기만하려 하면 누가 이 구단을 서포트하겠는가? 결국 중요한건 권력의 균형이다. 롱런하려면 기본적으로는 협력하더라도 서로 건전한 비판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여 한다.
다시 복습하자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