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식 4-3-3의 원조는 누구인가?
서론
현대 축구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포메이션을 물어본다면 십중팔구 4-2-3-1 시스템과 4-3-3 시스템을 답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저 두 포메이션을 보편적으로 쓰인다.
특히 4-3-3 시스템은 아약스-바르셀로나의 토털 풋볼을 상징하는 포메이션으로 잘 알려졌으며 2000년대에 처음 유행한 4-2-3-1 시스템에 비해 더 오랜기간 유행하고 있는 포지션이다.
보통은 이 시스템의 원류를 리누스 미헬스로 알고 있다. 하지만 리누스 미헬스는초년에는 4-2-4 시스템의 신봉자였으나 라이벌 클럽 페예노르트의 감독 에른스트 하펠이 쓰는 4-3-3 시스템을 도둑질했다는 조롱을 듣기도 한다. 실제로도 에른스트 하펠이 덴 하그와 페예노르트에서 먼저 사용했다.
그럼 4-3-3 시스템의 원조는 도대체 누굴까?
1. 칼 라판의 베로우 시스템
1930년대 유럽 대륙에서 2-3-5 시스템이 유행하던 시절, 칼 라판은 아마추어팀 세르베트를 이끌고 있었다. 당연히 프로 선수들에 비해 아마추어 선수들의 개인 기량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칼 라판은 우수한 전략 전술을 고안하면 보통 수준의 기량을 가진 선수들이 모인 팀이 수준급의 선수들이 모인 팀을 꺾을 수 있다고 믿었다.
세르베트는 상술했듯이 세미프로들로 구성된 팀이었기에 이런 방식의 정면 대결에서는 승산이 없었다. 라판은 이에 새로운 발상을 한다. "선 수비 후 역습 축구"
라판은 2-3-5 대형에서 세 명의 하프백 중 좌우 윙하프를 풀백이 있는 후방에 가깝게 내렸으며 조금 더 원활한 역습을 위해 전방에 있는 인사이드 포워드를 미드필더 지역으로 내리면서 오늘날의 4-1-2-3과 유사한 형태의 시스템을 갖췄다. 이 시스템은 빗장이라는 뜻의 베로우(Verrou) 시스템이라 불렀다.
1931년 플레잉 코치로 처음 세르베트에 부임한 이래 1935년까지 다섯 시즌을 머물면서 1932-33 시즌과 1933-34 시즌에 스위스 리그 우승을 하는 기적을 이루어냈으며 1935-36 시즌을 앞두고 그라스호퍼 클럽으로 떠나서 다섯 번의 스위스 리그 우승을 이루었고 1948-49 시즌에 세르베트로 돌아와 1948-49 시즌 스위스 컵 우승과 1949-50 시즌 스위스 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클럽에서의 실적을 바탕으로 1937년부터 1963년까지 스위스 국가대표팀 감독을 겸직하게 된다. 중도에 사임했던 기간들이 있긴 하지만 그 기간을 제외하더라도 총 12년간 재임했고 약체라 불리던 스위스 대표팀을 이끌고 1938 이탈리아 월드컵과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 8강 진출을 이뤄냈다.
라판의 이 대형은 다소 원시적이지만 현대적인 4-3-3의 밑그림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2. 셀레상만의 독특한 4-2-4 시스템
헝가리 국적의 벨라 구트만 감독이 브라질에 머문 동안 만들어낸 4-2-4 시스템은 오늘날 4-4-2 시스템 및 4-2-3-1 시스템의 아버지로 통함은 물론 스위칭 플레이에 대항해 대신방어 시스템 대신 지역방어 시스템을 채택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상 파울루의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우승을 이뤄냈다.
이때 브라질 대표팀의 감독이었던 비센치 페올라는 이 4-2-4 시스템을 받아들였는데 단순히 받아들임에 그치지 않고 4-2-4 시스템의 레프트윙에 인사이드 레프트와 아웃사이드 레프트를 모두 플레이할 줄 아는 마리우 자갈루를 중용했는데 실제로 자갈루는 중원으로 내려와 플레이하는데 익숙해 브라질의 원활한 볼 소유를 도왔다. 자갈루가 이동하면서 빈자리는 레프트백 니우통 산투스의 오버래핑으로 메웠으며 원래 레프트 하프 출신이었던 센터백 베우리니는 대단한 커버력으로 니우통 산투스가 공격할 수 있게 수비라인을 잘 커버했다.
이런 복잡한 스위칭 플레이는 난이도가 높았고 조금만 실수해도 무너지는 단점이 있었는데 이를 지휘하는 인사이드 포워드 출신의 중앙 미드필더 디디는 팀의 실질적인 리더로서 선수들의 위치와 간격을 잘 조정하며 브라질 대표팀의 두뇌 역할을 맡았다. 심지어 경기 중 자주 조는 버릇이 있었던 페올라 감독이 조는 것을 눈치채면 자신이 직접 감독 역할도 겸했던 훌륭한 리더였다.
브라질 대표팀은 왼쪽 라인과 훌륭한 두뇌 디디, 그리고 천재적인 골 감각과 축구 지능을 겸비한 펠레 덕분에 4-2-4 대형에서 필요하다면 4-3-3 대형이나 WM 대형으로도 바뀔 수 있었다. 페올라가 잘 짜여진 4-3-3과 같은 4-2-4라 말했던 이런 변화무쌍한 대형을 가진 축구를 유럽 팀들은 막을 수 없었고 브라질 대표팀은 이 전술을 바탕으로 1958 스웨덴 월드컵과 1962 칠레 월드컵, 그리고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 우승하며 줄리메 컵을 영구소장했다.
3. 4-3-3 대형으로 네덜란드 무대를 강타한 에른스트 하펠
오스트리아 대표팀의 스타플레이어 출신의 명장 하펠은 선수시절 압박 축구의 선두주자였던 소련과 자주 경기를 하며 압박축구를 실감했는데 지도자로 전환한 이후 네덜란드 무대에서 활약하며 4-2-4 시스템보다 조금 더 압박에 용이한 4-3-3 시스템을 개발했다.
실제로 이 4-3-3 시스템으로 ADO 덴하흐의 약진을 이끌며 컵대회 우승을 이뤄냈고 페예노르트에서는 1969-70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과 1970-71 시즌 에레데비시 우승을 이뤄냈는데 이때 네덜란드 무대는 하펠이 고안한 4-3-3 시스템에 큰 영향을 받았으며 아약스의 리누스 미헬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현대 아약스식 토털풋볼을 계승한 팀들이 메인 플랜으로 애용했던 4-3-3 시스템은 페예노르트의 하펠의 작품이었던 것이다.
결론
현대의 다양한 4-3-3은 과거에 있던 다양한 축구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는 점은 확실하다. 암스테르담-카탈루냐-맨체스터에서 이어지는 펩과 크루이프의 축구를 가장 잘 구현한 4-3-3 시스템은 브라질의 스위칭 플레이와 하펠의 압박 대형의 영향을 받았으며 이와 상반되는 주제 무리뉴 1기 시절 첼시에서 보여준 4-3-3 시스템은 칼 라판이 보여준 베로우 시스템의 현대화 버전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닮았다.
항상 말하지만 현대의 축구전술을 완벽하개 이해하려면 역시 변천과정을 잘 섭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변화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