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U Football Award/1960년대

토르난테 & Red Archive 선정 1960년 F.C.U Football Award

토르난테 2023. 3. 7.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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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1. 이 프로젝트는 티스토리 블로거이자 풋볼 크리에이터 연합(약칭 FCU) 소속 크리에이터 토르난테와 Red Archive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컨텐츠입니다.

2. 선정기간의 기준은 추춘제 리그의 경우에는 1959-60 시즌을 기준으로, 춘추제 리그의 경우에는 1960 시즌으로 잡았으며 1960년에 열린 국제대회를 모두 포함했습니다.

3. 상위 10인 外 최고의 축구선수 노미네이트는 출생일 순서대로 정렬했습니다.

4. 골든 보이의 기준은 해당 년도 12월 31일 기준 만 21세 이하의 선수로 한정되었으며 오직 한 번만 수상할 수 있습니다.

5. TOTY는 토르난테 혼자 선정하고 순위는 레드 아카이브와의 합산 및 토의로 선정해서 상충하는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6. 건조폼 사진 출처는 플레이어스에서 주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입니다.

 


1. 토르난테 & Red Archive 공동 선정, 1960년 최고의 축구선수

 

1960년 최고의 축구선수 최초 노미네이트 50인

 

 


공동 10위

 

이름: 발렌틴 이바노프
출생일: 1934년 11월 19일
국적: 소련
소속팀: FC 토르페도 모스크바

 

1960년 세계 최고의 선수 공동 10위는 토르페도의 에이스로 발돋움하며 소련 무대를 평정한 발렌틴 이바노프를 선정했다.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맡아 뛰어난 역량을 보였던 이바노프는 소속팀 토르페도 모스크바의 공격을 진두지휘하며 소비에트 탑 리그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본인도 소비에트 탑 리그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소비에트 컵에서도 멀티골을 기록했는데 특히 두 번째 골은 연장전 결승골이었을 정도로 대단한 클러치 능력을 선보였다.

소련 대표팀에서도 주전 인사이드 라이트로 활약하며 준결승전에서 마지막 중유럽컵 챔피언 체코슬로바키아를 상대로 멀티골을 득점하며 3-0 대승에 공헌했는데 그 과정에서 당대 유럽 최고의 레프트 풀백 중 하나인 라디슬라프 노박을 완벽하게 제압하는 우수한 경기력을 선보였으며 결승전 유고슬라비아전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조국의 첫 유럽선수권대회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바노프는 다소 억울한 일로 인해 소속팀 토르페도 모스크바와 소련 축구계에서 퇴출되었던 옛 팀동료 에두아르드 스트렐초프의 공백을 완벽하게 메우며 소련 공격의 새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공동 10위

 

이름: 이고르 네토
출생일: 1930년 1월 9일
국적: 소련
소속팀: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1960년 세계 최고의 선수 공동 10위는 소련 대표팀의 주장으로 강력한 리더십과 견고한 1차 저지선, 그리고 훌륭한 후방 플레이메이킹의 세 역할을 모두 훌륭하게 수행한 '거위' 네토를 선정했다.

비록 네토의 소속팀 스파르타크 모스크바는 우수한 수비력에도 기복 있는 공격진 문제로 리그 7위에 머물렀지만 네토 개인은 소비에트 탑 리그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을 정도로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소련 대표팀 소속으로 참가한 초대 유로에서는 라커룸 및 필드를 아우르는 강력한 리더십과 높은 수준의 전술 이해도 및 예측력, 그리고 강인한 신체능력을 바탕으로 파트너 보이노프와 함께 상대 중원을 완벽하게 요리하며 초대 유럽 선수권 대회의 올스타팀에 선정되는 활약을 선보였다.

 

 

공동 10위


이름: 보라 코스티치
출생일: 1930년 6월 14일
국적: 유고슬라비아
소속팀: 츠르베나 즈베즈다

 

1960년 세계 최고의 선수 공동 10위는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지난 세 번의 올림픽에서 은메달에 머물렀던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게 금메달을 선사한 보라 코스티치를 선정했다.

보라 코스티치는 소속팀 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도 팀의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우승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19골을 득점하며 득점왕에 오르며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붉은 별의 2연패의 일등 공신으로 빛났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팀의 주장이자 에이스로 뛰어난 활약을 펼쳤는데 유로 1960에서는 준결승전에서 레이몽 코파가 이끄는 프랑스를 상대로 조국의 5-4 신승을 이뤄냈으며 결승전에서도 날카로운 왼발 크로스로 예르코비치의 슈팅을 도왔으나 그 골을 야신이 선방했는데 밀란 갈리치가 세컨드 볼을 따낸 뒤 침착하게 슈팅해 득점하며 선제골의 득점 기점 역할을 하며 맹활약했고 후반전에도 공격을 이끎며 분전했지만 야신의 선방에 모두 막히며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리고 유고슬라비아가 지난 세 번의 대회에서 모두 은메달에 머물렀던 대망의 1960 로마 올림픽에서도 주전으로 나섰는데 이집트가 주축이 된 아랍 연합을 상대로 해트트릭, 터키를 상대로 멀티골을 기록하며 팀의 조별리그 통과를 도왔음은 물론 결승전 덴마크전에서도 팀의 세 번째 골을 득점하며 덴마크의 전의를 꺾으며 밀란 갈리치와 함께 조국의 우승에 큰 공을 세우며 금메달의 목을 걸며 팬들과 선배들의 한을 완벽하게 풀어냈다.

 

9위

 

이름: 알베르토 스펜세르
출생일: 1937년 12월 6일
국적: 에콰도르
소속팀: CA 페냐롤

1960년 세계 최고의 선수 9위는 에콰도르 축구계가 낳은 최고의 아웃풋이라 불리며 우루과이 무대와 남미 프로축구 무대를 호령하는 공격수 스펜세르를 선정했다.

인사이드 라이트와 센터 포워드를 모두 소화할 수 있었던 스펜세르는 소속팀 페냐롤에서 정규리그 16경기에 나와 10골을 득점하며 팀의 정규리그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도 7경기에 출전해 7골을 기록하며 팀을 남미 챔피언으로 올렸으며 그 과정에서 준결승전 산 로렌소와의 경기에서는 1차전과 2차전 모두 무승부인 상황에서 열린 플레이오프에서 멀티골을 기록하며 2-1 승리를 이끌며 팀을 결승에 올렸고 결승전 1차전에서도 파라과이의 클루브 올림피아를 상대로 결승골을 넣으며 페냐롤의 우승에 크게 기여했음은 물론 스펜세르 본인도 대회 득점왕에 올랐다.

비록 인터콘티넨탈컵에서는 레알 마드리드와의 베르나베우 원정에서 5-1로 패하며 우승에 실패했지만 만회골을 득점하며 무득점 패배는 면한 스펜세르는 그럼에도 1960년 페냐롤에서 총 48경기에 출전해 28골을 기록하며 좋은 시즌을 보냈다. 보통 이 정도의 활약상이면 더 높은 순위도 가능했지만 뒤에 언급할 예정인 상위권 선수들의 활약이 너무나도 대단해 밀린 아쉬운 케이스이다.

 

8위


이름: 줄리뉴
출생일: 1929년 7월 29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파우메이라스


1960년 세계 최고의 선수 8위는 펠레와 함께 상 파울루 주의 축구계를 이끄는 쌍두마차 줄리뉴를 선정했다.

비록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에서는 산투스에게 우승을 내줬음은 물론 리그 4위로 기대 이하의 활약을 보였지만 그의 진가는 작년에 최초로 열렸던 브라질 전국리그에서 보였는데 견고한 수비력을 자랑하는 플루미넨세를 상대로 4강에서 승리를 이뤄냈음은 물론 결승전에서는 세아라 주의 주립리그 캄페오나토 세아렌세의 절대강자 포르텔레자를 만났는데 결승 1차전 원정에서 3-1 대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결승 2차전에서는 드리블로 상대 수비진을 교란하며 찬스를 만들던 줄리뉴도 직접 득점하며 8-2로 대승을 거두며 총합 11-3이라는 압도적인 스코어로 우승을 이뤄내는데 크게 기여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아르헨티나와의 친선 대회인 코파 로카에서 1차전 4-2 패배를 2차전 4-1 대승으로 갚아주며 대회 우승을 기록했다.

 

공동 6위


이름: 오마르 시보리
출생일: 1935년 10월 2일
국적: 아르헨티나
소속팀: 유벤투스 FC


1960년 세계 최고의 선수 공동 6위에는 압도적인 재능을 바탕으로 이탈리아 무대를 제패하며 리그 최고의 선수로 거듭난 오마르 시보리를 선정했다.

세리에 A의 강호 유벤투스에 입단한 지 3년 차에 접어든 시보리의 활약은 매우 대단했는데 우수한 테크닉으로 경기를 지휘했음은 물론 세리에 A 31경기에 출전해 28골을 득점하는 엄청난 득점력으로 준우승팀 피오렌티나와 승점 8점 차로 압도적인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가장 큰 공을 세웠으며 특히 4월 26일에 열린 데르비 디탈리아에서 멀티골을 3-0 대승을 이끄는 퍼포먼스를 선보였으며 5월 15일에 만난 AC 밀란을 상대로도 멀티골을 기록하며 3-1 대승을 공헌하며 양 밀란에 강한 모습을 보여줬으며 코파 이탈리아에서도 4경기에 나와 3골을 득점하며 우승을 이끌었다.

소속팀 유벤투스의 도메스틱 더블 크라운의 1등 공신이자 세리에 A 최다 득점자에게 수상하는 카포칸노니에레까지 차지한 시보리는 해당 시즌 공식전 통합 35경기에 출전해 31골을 기록하며 이탈리아 축구계의 제왕으로 올라섰다.

 

 

공동 6위

 

이름: 레프 야신
출생일: 1929년 10월 22일
국적: 소련
소속팀: 디나모 모스크바


1960년 세계 최고의 선수 공동 6위에는 세간으로부터 초대 유럽 선수권 대회의 실질적인 MVP로 추앙받는 레프 야신을 선정했다.

비록 소속팀 디나모 모스크바의 소비에트 탑 리그 우승은 이뤄내지 못했지만 30경기 25실점으로 가장 적은 실점을 보였음은 물론 이를 보증하듯이 소비에트 탑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하지만 그가 정말 빛난 대회는 1960 유러피언 네이션스컵인데 준결승전 체코슬로바키아전을 무실점으로 마친데 이어 결승전에서는 유고슬라비아의 맹공을 압도적인 선방으로 막아냈는데 비록 세컨드 볼을 따낸 갈리치에게 선제 실점을 내줬지만 팀동료 메르레벨리가 동점골을 뽑아낸 뒤 야신은 유고슬라비아의 맹공을 모두 막아냈는데 특히 세큘라라치의 크로스를 빠르게 차단한 야신의 플레이에선 경이로움이 느껴졌으며 연장전에 돌입하고 유고슬라비아 측의 결정적인 찬스를 야신이 무산시키는 활약을 보여주며 주도권을 다소 내줬음에도 우승에 기여했다. 당연히 대회 최고의 골키퍼는 그의 몫이었다.

 

5위

 

이름: 우베 젤러
출생일: 1936년 11월 5일
국적: 서독
소속팀: 함부르크 SV

1960년 세계 최고의 선수 5위는 독일 무대를 완벽하게 평정하며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준 우베 젤러를 선정했다.

1959-60 시즌 소속팀 함부르크의 오베리가 노르트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26경기 36골이라는 경악스러운 득점력을 자랑했으며 독일 챔피언십에서도 7경기 13골을 기록하는 괴력을 보여줬으며 결승전에서 만난 오베리가 베스트의 제왕 FC 쾰른을 상대로 선제골을 내줬지만 당대 유럽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였던 슈넬링어를 완벽하게 제압하며 동점골을 득점했으며 이후 2-2 상황에서 결승골을 득점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는 당연하게도 전반기와 후반기 모두 월드클래스 등급을 받았음은 물론 34경기 49골을 기록한 우베 젤러는 디 만샤프트에서도 5경기에 나서 4골을 기록하며 1960년 독일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다.

 

 

4위


이름: 루이스 수아레스 미라몬테스
출생일: 1935년 5월 2일
국적: 스페인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1960년 세계 최고의 선수 4위는 엘레니오 에레라의 페르소나로 쿠발라를 밀어내고 FC 바르셀로나의 알파이자 오메가로 활약했던 루이스 수아레스 미라몬테스를 선정했다.

소속팀 FC 바르셀로나에서 수아레스는 1959-60 시즌 라리가에서 23경기에 출전해 13골을 기록하며 라리가 우승에 기여했으며 유럽대항전에서도 팀의 공격을 지휘하며 16강전 AC 밀란전 홈과 원정 도합 7-1 대승을 거두었으며 8강전에서는 잉글랜드의 강자 울버햄튼 원더러스를 상대로 두 경기 도합 9-2 대승을 이뤄냈지만 4강전에서 레알 마드리드에게 아쉽게 패했으며 1958년에 시작한 인터시티 페어스컵에서도 우승을 이뤄내는데 기여했다.

FC 바르셀로나의 중핵으로 활약하며 36경기 14골을 기록한 수아레스는 비록 골은 전년도보다 줄었지만 경기장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리그에서는 남미의 용병들과 호흡을 맞추고 유럽 무대에서는 헝가리 출신의 용병들과 호흡을 맞추는 과정에서 공격진끼리 치열한 주전 경쟁이 있었음에도 늘 에레라의 페르소나로서 중요한 경기에는 우선적으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3위 브론즈볼

 

이름: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출생일: 1926년 7월 4일
국적: 스페인, 아르헨티나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1960년 브론즈볼에는 FCU 어워드에서 1950년대 최고의 선수로 선정되며 플레티넘볼을 받았던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를 선정했다.

1959-60 시즌에도 디 스테파노의 활약은 여전히 대단했는데 지난 시즌에 다소 아쉬웠던 푸스카스와의 호흡이 한층 개선되었는데 비록 라리가에서는 23경기에 나와 12골을 득점하며 겉으로 보기에는 예년보다 활약이 부족해 보이지만 과거와는 다르게 득점이라는 부분에서는 푸스카스에게 양보하면서도 한층 플레이메이킹에 더 집중했다. 물론 라리가 우승은 골득실차로 아쉽게 바르셀로나에게 내줬으며 코파 델 레이에서는 결승에 진출했으나 과거 마드리드의 감독이었던 비야롱아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유러피언 컵에서는 당연하게도 득점력마저 폭발하며 6경기 8골을 기록했는데 파죽지세의 바르셀로나와의 4강 1차전에서 멀티골을 기록하며 3-1 대승을 이뤄냈으며 2차전에서도 1도움을 기록하며 재차 3-1 대승을 이뤄내며 2경기 합 6-2로 제치고 결승으로 진출했으며 결승전에서는 프랑크푸르트를 상대로 7-3으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대승을 거뒀다. 디 스테파노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클럽 공식전 34경기 23골 14도움을 기록하며 맹활약했으며 연말에 열린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우루과이 원정을 무승부로 마쳤으며 홈에서는 남미 챔피언 페냐롤을 5-1로 대파했으며 그 과정에서 푸스카스와 함께 10분 만에 세 골을 넘으며 남미 챔피언의 전의를 무너트렸다.

 

2위 실버볼

 

이름: 펠레
출생일: 1940년 10월 23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산투스 FC

 

1960년 실버볼에는 지난 2년간 골든볼을 수상했던 펠레가 선정되었다.

역시나 대단한 경기를 보여주며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에서는 디펜딩 챔피언 파우메이라스로부터 소속팀 산투스의 우승을 탈환하는 활약을 보였으며 그 과정에서 30경기 33골을 득점하며 맹활약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맹활약한 펠레는 1960년 A 매치에서 6경기 4골을 기록했는데 6경기에서 전부 승리를 거두는 괴력을 보여줬다. 특히 7월 12일에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는 5-1 대승을 이뤄냈으며 펠레 본인도 직접 득점했다.

 

 

1위 골든볼

 

이름: 페렌츠 푸스카스
출생일: 1927년 4월 1일
국적: 헝가리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1위 골든볼에서는 2년 출전 정지라는 징계라는 시련에서 돌아오며 7년 만에 다시 골든볼을 찾아온 백전노장 푸스카스를 선정했다.

축구를 2년간 쉬며 돌아왔음에도 1959년 부활의 조짐을 보여줬던 푸스카스는 올해에는 확실히 부활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디 스테파노에게 플레이메이킹을 일임하고 주로 득점을 노리며 라리가에서 24경기 25골을 득점하는 괴력을 보였으며 코파 델 레이에서는 5경기 10골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으로 득점왕에 올랐다.

유러피언 컵에서도 디 스테파노와의 조합은 빛났는데 7경기에 나서 12골을 득점했는데 특히 4강전에서는 파죽지세의 기세로 우승을 노리던 바르셀로나에게 1차전 1골, 2차전 멀티골을 득점하며 도합 스코어 6-2로 잠재웠으며 결승 프랑크푸르트전에서는 포트트릭을 기록하며 해트트릭을 기록한 디 스테파노와 함께 레알 마드리드의 7-3 대승을 이끌었으며 이 둘의 투톱 플레이는 완벽 그 자체였다. 푸스카스는 1959-60 시즌 저승사자 군단에서 공식전 36경기 47골을 기록했으며 연말에 열린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우루과이 원정을 무승부로 마쳤으며 홈에서는 남미 챔피언 페냐롤을 5-1로 대파했으며 그 과정에서 디 스테파노와 함께 10분 만에 세 골을 넘으며 남미 챔피언의 전의를 무너트리며 세계 무대에 자신의 부활을 알렸다.

 

상위 12인 外 최고의 축구선수 최종 노미네이트 18인

자우마 산투스 (브라질 / 파우메이라스)
호세 산타마리아 (스페인, 우루과이 / 레알 마드리드)
요제프 마소푸스트 (체코슬로바키아 / 두클라 프라하)
레이몽 코파 (프랑스 / 스타드 드 랭스)
라디슬라프 노박 (체코슬로바키아 / 두클라 프라하)
존 찰스 (웨일스 / 유벤투스 FC)
콰렌치냐 (브라질 / 보타포구)
가린샤 (브라질 / 보타포구)
프란시스코 헨토 (스페인 / 레알 마드리드)
호어스트 시마니악 (서독 / 카를스루헤 SC)
와우두 마차두 (브라질 / 플루미넨시)
쿠르트 함린 (스웨덴 / 피오렌티나)
주제 마시아 페페 (브라질 / 산투스 FC)
에울로히오 마르티네스 (파라과이 / FC 바르셀로나)
호세 산필리포 (아르헨티나 / 산 로렌소)
존 코넬리 (잉글랜드 / 번리 FC)
자우마 디아스 (브라질 / 아메리카 RJ)
루이스 쿠비야 (우루과이 / CA 페냐롤)


2. 토르난테 선정 1960년 최고의 축구감독

 

골든 바통


이름: 엘레니오 에레라
국적: 아르헨티나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주 업적: 1959-60 라리가 우승 및 1958-60 인터시티 페어스컵 우승

 

1960년 골든 바통에는 작년 수상자 엘레니오 에레라를 선정했다.

비록 팀의 아이돌 라슬로 쿠발라와의 갈등으로 인해 인터시티 페어스컵 결승전 2차전을 앞두고 6월에 사임했지만 그럼에도 엘레니오 에레라가 바르셀로나에서 보여준 업적은 빛났다.

라리가 2연패에 성공했음은 물론 유럽 무대에서도 까다로운 강팀들을 여럿 만났음에도 16강 AC 밀란과의 두 경기에서는 원정에서 2-0으로 승리했으며 홈에서는 5-1로 승리하며 도합 7-1 대승을 이뤄냈으며 8강에서는 잉글랜드의 제왕 울버햄튼 원더러스에서 만나 홈에서 4-0 완승을 거뒀음은 물론 원정에서도 5-2 대승을 거두며 도합 9-2 대승을 이뤄냈다. 비록 숙적 레알 마드리드에게 모두 지며 4강에서 아쉽게 떨어졌지만 인터시티 페어스컵에서는 승승장구해서 인테르 밀란을 홈에서 4-0, 원정에서 4-2로 대파했으며 4강에서는 베오그라드 연고의 올스타팀을 제치고 결승에 진출했으며 결승 1차전 버밍엄 원정에서도 무승부를 거두며 선전하며 홈에서의 대승의 기반을 쌓으며 우승 트로피를 드는데 절대적인 공헌을 했다.

바르셀로나는 남미와 헝가리에서 여러 용병을 영입했는데 문제는 한 경기에 기용할 수 있는 외곡인 선수 수는 제한된 상황에서 리가와 인터시티 페어스컵에서는 남미의 용병 에바리스투와 에울로히오 마르티네스를 중용했으며 유러피언 컵에서는 코치슈와 졸탄 치보르를 중용하는 이른바 로테이션 제도를 최초로 시도했다.

 

 

실버 바통

 

이름: 로베르토 스카로네
국적: 우루과이
소속팀: CA 페냐롤
주 업적: 1960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토르네오 쿼드라굴라르 우승 및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1960년 실버 바통에는 남미의 새로운 명장으로 등극한 로베르토 스카로네를 선정했다.

페냐롤의 지휘봉을 잡고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초대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는 볼리비아 챔피언 클루브 호르헤 윌스테르만, 아르헨티나 챔피언 산 로렌소를 모두 제압하고 결승에 진출해 결승전애서도 파라과이 챔피언 클루브 올림피아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비록 인터콘티넨탈컵에서는 디 스테파노와 푸스카스를 막지 못하고 대패했지만 남미를 평정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한다.

 

브론즈 바통

 

이름: 빅토르 마슬로프
국적: 소련
소속팀: 토르페도 모스크바
주 업적: 1960 소비에트 탑 리그 우승 및 소비에트 컵 우승


1960년 브론즈 바통에는 소련 축구계를 평정한 마슬로프를 선정했다.

압박과 공간이란 개념을 최초로 언어화하며 체계화시키며 브라질이 보여준 4-2-4 시스템을 한층 더 수비적이고 끈끈하게 재해석한 마슬로프는 기존의 인사이드 포워드들을 한 명은 중앙으로, 한 명은 최전방으로 내렸음은 물론 아웃사이드 포워드들에게 상대의 측면 공격을 1차적으로 저지하게 했던 신개념의 축구를 보여줬다.

이런 화려한 성과에 더해 1960 시즌에 열린 정규리그와 소련 컵 대회를 모두 우승하는 기염을 토하며 축구 전술사에 발전과 토르페도 모스크바의 도메스틱 더블 크라운이라는 결과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으며 소련 축구를 한층 더 발전시켰다.

 

상위 3인 外 최고의 축구감독 노미네이트

 

이름: 제제 모레이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플루미넨시
주 업적: 1960 토르네오 히우상파울루 우승

이름: 가브릴 카차린
국적: 소련
소속팀: 소련 축구 국가대표팀
주 업적: 1960 유러피언 네이션스컵 (UEFA EURO) 우승

이름: 카롤로 파롤라
국적: 이탈리아
소속팀: 유벤투스 FC
주 업적: 1959-60 세리에 A 우승 및 코파 이탈리아 우승

이름: 오스발도 브란당
국적: 브라질
소속팀: 파우메이라스
주 업적: 1960 브라질 전국리그 우승

이름: 해리 포츠
국적: 잉글랜드
소속팀: 번리 FC
주 업적: 1959-60 잉글랜드 풋볼 리그 1부 우승

이름: 미겔 무뇨스
국적: 스페인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주 업적: 1959-60 유러피언 컵 우승 및 1960 인터콘티넨탈컵 우승

이름: 호르헤 비에이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아메리카 RJ
주 업적: 1960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우승

 


3. 토르난테 선정 1960년 축구 특별상

 

토르난테 선정 골든 글러브


이름: 레프 야신
출생일: 1929년 10월 22일
국적: 소련
소속팀: 디나모 모스크바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60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토르난테 선정 골든 보이

 

이름: 플로리안 알베르트
출생일: 1941년 9월 15일
국적: 헝가리
소속팀: 페렌츠바로시


헝가리에도 푸스카스의 후계자이자 마자르의 펠레라 불리는 초신성이 나타났다.

그 주인공은 바로 페렌츠바로시 소속의 만 19세의 플로리안 알베르트로 지난 시즌 후반기에 주전으로 도약했으며 1959-60 시즌에는 넴제티 버이녹샤그에서 26경기에 출전해 27골을 득점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전 유럽에 충격을 선사했다.

비록 팀은 리그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알베르트는 대표팀 에이스 라요스 티치를 제치고 득점왕에 올랐으며 국가대표팀에서도 주전 자리를 차지했다.

 

 

토르난테 선정 골든 쉴드

 

이름: 이고르 네토
출생일: 1930년 1월 9일
국적: 소련
소속팀: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60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토르난테 선정 골든 렌즈

 

이름: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출생일: 1926년 7월 4일
국적: 스페인, 아르헨티나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60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토르난테 선정 골든 에로우

 

이름: 페렌츠 푸스카스
출생일: 1927년 4월 1일
국적: 헝가리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60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토르난테 선정 골든 암밴드

 

이름: 이고르 네토
출생일: 1930년 1월 9일
국적: 소련
소속팀: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주장으로서 최초로 유로 우승을 이뤄낸 이고르 네토가 거위라 불린 이유는 단지 거위를 닮은 외모 때문만이 아니었다.

마치 거위울음소리와 같은 크면서도 쉭쉭거리는 목소리로 농장의 파수꾼들의 대장 거위처럼 대표팀 선수들을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적절한 지시를 내리며 팀의 야전사령관이자 가브릴 카차린의 대리인으로 활약했다.

선수로서의 실력과 강력한 리더십을 겸비한 거위 네토는 야신을 비롯한 팀원들의 강력한 신뢰를 받았으며 팀의 우승에 크게 기여했으며 이에 그에게 1960년 골든 암밴드를 수여한다.

 


4. 토르난테 선정 1960 Team Of The Year

 

 

골키퍼

 


이름: 레프 야신
출생일: 1929년 10월 22일
국적: 소련
소속팀: 디나모 모스크바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60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센터백

 


이름: 자우마 디아스
출생일: 1939년 8월 21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아메리카 RJ


리우 데 자네이루의 최상위 주립 리그 캄페오나투 카리오카는 현시점 브라질 대표팀 주전급 선수들을 다수 보유한 보타포구와 1940년대와 50년대에 걸쳐 승리의 급행열차라 불렸던 강호 바스쿠 다 가마가 있으며 이외에도 전통의 강호였던 플라멩구와 플루미넨시도 항상 우승 트로피를 노리고 있으며 그리고 간간히 이변을 일으킨 방구나 포르투게자와 같은 복병들이 많다.

그러나 여기서 중소 수준 구단인 아메리카가 1960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우승을 이뤄냈다. 그들은 22경기에서 39골을 넣으며 최다 득점팀 보타포구보다 무려 25점이나 적은 골을 기록했지만 22경기에서 15실점이라는 탄탄한 짠물 수비를 바탕으로 공격을 잘하는 팀은 승리를 거둘 수 있고 수비를 잘하는 팀은 우승을 차지할 수 있다는 명제를 실현시켰다.

그 중심에는 21세의 어린 센터백 자우마 디아스가 있었다. 타고난 수비 리더였던 자우마 디아스는 어린 나이에도 절륜한 라인 컨트롤과 적절한 커버 플레이를 바탕으로 팀의 철벽 수비의 중핵으로 활약했으며 가린샤, 콰렌치냐, 와우두 마차두 등 거물급 공격수들과의 맞대결에서도 특유의 지능적인 플레이를 바탕으로 손쉽게 막아내며 팀을 리우 데 자네이루 최강자로 올렸기에 1960 T0TY의 중앙 수비수로 선정한다.

 

 

센터백

 

 

이름: 호세 산타마리아
출생일: 1929년 7월 31일
국적: 스페인, 우루과이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스페인으로 귀화하며 레알 마드리드에서 완벽하게 적응하며 유럽 최고의 수비수로 평가받았던 우루과이인 산타마리아를 1960년 세계 최고의 센터백으로 선정했다.

수비라인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의 유러피언 컵 우승과 인터콘티넨탈컵 우승을 이끌며 저승사자 군단의 벽으로 불렸던 산타마리아는 영국의 월드 사커가 선정한 월드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프랑스 풋볼이 선정한 유럽 최고의 선수상인 발롱도르에서도 수비수 포지션 중에서는 가장 높은 등수인 10등을 받으며 자타공인 최강의 센터백으로 평가받았기에 1960 TOTY의 일원으로 선정했다.

 


라이트백

 

 

이름: 자우마 산투스
출생일: 1929년 2월 27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파우메이라스


라이트백에는 파우메이라스의 브라질 전국 리그 제패를 이뤄내며 바위라 불렸던 자우마 산투스를 선정했다.

소속팀 파우메이라스는 물론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일관적으로 뛰어난 모습을 보였기에 1960 TOTY의 일원으로 선정했다.

 

 

레프트백

 

 

이름: 라디슬라프 노박
출생일: 1931년 12월 5일
국적: 체코슬로바키아
소속팀: 두클라 프라하


레프트백에는 체코슬로바키아 무대의 두클라 프라하의 삼총사의 일원으로 불리며 소속팀과 국가대표팀의 약진을 이끄는 유럽 최고의 레프트 풀백 라디슬라프 노박을 선정했다.

왕성한 활동량과 견고한 대인 수비를 앞세워 상대 측면 공격수들을 제압했으며 소속 클럽과 대표팀에서 주장 완장을 오랜 기간 찼을 정도로 강력한 리더십을 겸비했던 노박은 1960년에 조국의 마지막 중유럽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최초의 유로에서도 조국이 3위를 차지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다만 준결승전에서는 소련의 메르레벨리와 발렌틴 이바노프 콤비에 고전했지만 3.4위 결정전에서 프랑스를 상대로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이며 명예회복에 성공했다.

 

인콘트리스타

 

 

이름: 이고르 네토
출생일: 1930년 1월 9일
국적: 소련
소속팀: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60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플레이메이커

 

 

이름: 루이스 수아레스 미라몬테스
출생일: 1935년 5월 2일
국적: 스페인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60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라이트윙 포워드

 


이름: 줄리뉴
출생일: 1929년 7월 29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파우메이라스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60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레프트윙 포워드

 

 

이름: 펠레
출생일: 1940년 10월 23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산투스 FC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60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센터 포워드

 

 

이름: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출생일: 1926년 7월 4일
국적: 스페인, 아르헨티나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60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센터 포워드

 

 

이름: 페렌츠 푸스카스
출생일: 1927년 4월 1일
국적: 헝가리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60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1960 TOTY 베스트 일레븐

 

 


5. Red Archive 선정 1960년 세계 최고의 축구팀

 

1위 골든 팀

 

 

레알 마드리드

성적: 1959-60 유러피언 컵 우승 및 1960 인터콘티넨탈컵 우승

1960년 최고의 클럽으로는 레알 마드리드를 선정했다. 비록 라리가에서는 바르셀로나와 승점 동률을 기록했지만 상대 전적 열세로 아쉽게 우승을 내주었으며 코파 델 레이에서도 결승에 올랐지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게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하지만 마드리드가 유럽 무대에서 세운 업적은 실로 대단한데 유러피언 컵 준결승에서 바르셀로나를 합산 6-2로, 결승전에서 프랑크푸르트를 7-3으로 대파하며 5번째 우승을 차지하였다. 이로써 전무후무한 5회 연속 유럽 챔피언이 되었으며 시즌 종료 후 치러진 초대 인터콘티넨탈 컵에서는 페냐롤을 상대로 우루과이 원정에서는 무승부를 거두었지만 마드리드에서는 전반 10분 동안 세 골을 넣는 괴력을 선보이며 합산 5-1 대승을 거두며 세계 챔피언에 올랐다.

 

 

2위 실버 팀

 

 

CA 페냐롤

성적: 1960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토르네오 쿼드라굴라르 우승 및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우루과이를 양분하는 강호 페냐롤은 비록 인터콘티넨탈컵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과 초대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를 모두 우승하며 역사적인 더블을 달성했다. 리그에서는 CA 세로와 승점 동률을 기록하였지만 플레이오프에서 3-1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하였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는 준결승에서 산 로렌소를, 결승전에서 클루브 올림피아를 꺾으며 남아메리카 왕좌에 올랐다.

 

 

3위 브론즈 팀

 

 

FC 바르셀로나

성적: 1959-60 라리가 우승 및 1958-60 인터시티 페어스컵 우승

감독 엘레니오 에레라가 여러 문제로 인해 팀의 아이콘 라슬로 쿠발라, 회장 프란세스크 미로산스와 불화로 구단 내부의 분위기가 뒤숭숭했음에도 불구하고 에레라의 승부사적 기질은 어디 가지 않아 라리가와 인터시티 페어스 컵을 모두 우승하며 더블을 달성했다.

라리가에서는 유럽 챔피언 레알 마드리드와 승점 동률을 기록했지만 두 번의 맞대결에서 모두 승리하여 상대 전적 우세로 우승을 차지했다. 유러피언 컵에서도 강호 CSKA 소피아, AC 밀란, 울버햄튼을 상대로 모두 4점 차 이상의 대승을 거두었지만 준결승에서 레알 마드리드에게 아쉽게 탈락했다. 그래도 1958년부터 이어진 인터시티 페어스컵에서 인테르 밀란과 베오그라드 연합, 버밍엄 시티 등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하며 2관왕을 달성했다.

 


6. 평가자 소개

 

1. 토르난테


해당 블로그의 주인이자 F.C.U의 회장으로 축구역사 매니아, 중부 유럽과 남부 유럽 그리고 동부 유럽 축구에 관심이 많다.

선수와 감독을 평가하는 부분에서 전술적 상징성과 최고점에서의 퍼포먼스를 굉장히 중시하는 성향

응원팀: 바이에른 뮌헨, 인테르 밀란, 디나모 키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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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d Archive


F.C.U의 회원으로 축구역사 매니아, 특히 남미 축구에 관심이 많다.

선수와 감독을 평가하는 부분에서 토르난테에 비해 상징성보다는 어빌리티에서 더 섬세하게 평가하는 성향

응원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CA 인데펜디엔테, 아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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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Archive Football

축구 역사를 다루는 블로그입니다. 응원팀에 대한 생각도 전합니다. 업로드 주기가 불규칙적이고 느린데, 규칙적이고 빠르게 쓸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입니다.

red-archive.tistory.com

 


7. 축하사

 

전쟁의 아픔을 딛고 AFC 아시안컵 2연패에 성공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업적에 축하드립니다. 특히 인사이드 포워드 포지션의 아시아 최고의 축구선수 조윤옥의 압도적인 퍼포먼스에 경의를 표합니다.

 



최초의 UEFA 유로에서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 소련 대표팀의 업적에 축하드립니다. 레프 야신, 이고르 네토, 발렌틴 이바노프, 슬라바 메트레벨리 등의 활약은 특히 대단했습니다. 경의를 표합니다.

 



유러피언 컵 5연패의 금자탑을 달성한 레알 마드리드의 업적을 축하드립니다. 특히 1959-60 시즌 결승전에서 보여준 푸스카스의 포트트릭과 디 스테파노의 해트트릭의 활약에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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