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영웅들/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최고의 3선 미드필더 Top 11~20

토르난테 2025. 6. 20.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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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아르헨티나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으며 이탈리아나 스페인으로 귀화한 오리운디도 아르헨티나 대표팀 경력이 있으면 포함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RSSSF와 트렌스퍼마크트이며 둘의 기록이 상충할 경우에는 전자를 우선적으로 따릅니다.
*기록일은 2025년 6월 17일 기준입니다.

 


20위 앙헬 페루카

 


생년월일: 1918년 8월 19일
A매치 기록: 25경기 2골
신체조건: 미상
주 소속팀: 뉴웰스 올드 보이스

1940년대 아르헨티나 무대 정상급 하프백 중 하나로 대단한 예측력을 자랑했는데 상대의 패스가 언제 어떻게 올지 정확하게 예측하며 상대의 패스 흐름을 끊어내는 플레이에 능했으며 스스로도 "공은 내 여자 친구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우수한 볼 컨트롤을 통해 볼을 잘 빼앗기지 않고 앞선의 다섯 명의 공격수에게 완벽하게 배급했다.

중견팀 뉴웰스 올드 보이스를 중상위권으로 올린 페루카는 대표팀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해 세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해 1945년 대회와 1947년 대회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화려한 공격진을 보좌해 조국의 우승을 이끌었으며 말년에는 엄청난 투자로 축구 붐을 일으켰던 엘도라도 시절의 콜롬비아 리그의 인데펜디엔테 산타페에서 활약하며 많은 돈을 벌기도 했다.

 

19위 후안 엑토르 귀디

 


생년월일: 1930년 7월 14일
A매치 기록: 37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4kg
주 소속팀: CA 라누스

1950년대 아르헨티나 무대 정상급 하프백으로 높은 수준의 테크닉에서 나오는 드리블로 상대의 압박을 뚫고 공격에 가담했으며 날카로운 쓰루패스로 공격을 지원했으며 큰 체격을 앞세운 수비력으로도 이름을 날렸으며 리더십도 뛰어나 소속팀에서는 주장직을 역임했다.

라누스에서 데뷔해 하부리그 우승을 경험한 귀디는 라누스를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으로 올리는 활약을 펼쳤고 아르헨티나 대표팀 소속으로도 더러운 얼굴의 천사들이라 불렸던 1957 코파 아메리카 우승에 활약했으나 1958 스웨덴 월드컵을 앞두고 당한 부상으로 월드컵에는 나서지 못했다. 그래도 1960년에 열린 파나메리칸 챔피언십에서 브라질을 꺾고 우승하는데 기여했다.

 

18위 후안 에바리스토

 


생년월일: 1902년 6월 20일
A매치 기록: 26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71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스포르티보 팔레르모

1920년대 하반기와 30년대 초반에 아르헨티나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라이트 하프로 일명 마리아넬라라고 불린 발리 힐 패스를 개발했다고 전해졌을 정도로 기술적인 완성도가 높았으며 수비적인 기여도도 높았다고 전해진다.

스포르티보 팔레르모에서 전성기를 보냈지만 정작 리그 우승은 말년에 보카 주니어스에서 이뤄낸 에바리스토는 클럽에서와는 반대로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코파 아메리카 2회 우승을 이뤄냈고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과 1930 초대 월드컵에서도 조국을 결승에 올렸지만 두 대회 모두 결승전에서 우루과이에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17위 아리코 수아레스

 


생년월일: 1908년 6월 5일
A매치 기록: 12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67cm
주 소속팀: 보카 주니어스

1930년대 아르헨티나 무대 최고의 레프트 하프로 체격은 작았지만 강력한 정신력과 우수한 지구력과 탄탄한 바디밸런스를 바탕으로 상대 공격의 흐름을 완벽하게 차단했으며 볼 경합에서 승리해 아군의 볼 소유를 도왔다.

보카 주니어스에서 전성기에 오른 수아레스는 제네시스 군단에서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5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1940년에는 정규리그 우승에 더해 코파 이바르구렌 우승까지 이뤄내며 더블 우승을 이뤄냈다.

1930년대 초반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한 수아레스는 1930년 우루과이 월드컵에서 루이스 몬티, 후안 에바리스토와 함께 주전으로 나서며 조국의 준우승을 견인했다.

 

16위 리카르도 지우스티

 


생년월일: 1956년 12월 11일
A매치 기록: 53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CA 인데펜디엔테

1980년대 아르헨티나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왕성한 활동량과 다재다능함, 그리고 높은 수준의 전술안을 겸비해 본 포지션인 3선 미드필더는 물론 측면 미드필더, 라이트백 등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다.

뉴웰스 올드 보이스에서 데뷔한 지우스티는 인데펜디엔테로 이적해 전성기를 누리며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2회 우승을 이뤄냈고 1984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을 석권했는데 특히 후자의 대회에서는 유럽 축구의 지배자 리버풀을 상대로 무실점 승리를 거두는데 크게 공헌했으며 1987년에는 남아메리카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중용받은 지우스티는 수비형 미드필더와 라이트백 등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며 1986 멕시코 월드컵 우승과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준우승을 이뤄냈다.

 

15위 세르히오 바티스타

 


생년월일: 1962년 11월 9일
A매치 기록: 39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3kg
주 소속팀: 아르헨티노 주니어스

1980년대 남미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볼 위닝 미드필더로 커다란 체구와 왕성한 지구력을 겸비했으며 강력한 태클과 영리한 수비라인 커버는 물론 2선까지 올라가 상대의 공격을 적극적으로 막아냈다.

중견 구단 아르헨티노 주니어스의 레전드였던 바티스타는 1984년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전기리그와 1985년 후기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1985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까지 이끌어내는 맹활약을 펼쳤고 바티스타 개인도 남미 올해의 팀에 3회 선정되었다.

2020년대 아르헨티나 대표팀에 메시의 보디가드로 데 파울이 있었다면 1980년대 아르헨티나 대표팀에 마라도나의 보디가드에는 바티스타가 있었는데 상대 수비형 미드필더로부터 마라도나를 호위하는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며 1986 멕시코 월드컵 우승과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준우승에 큰 공을 세웠다.

 

14위 후안 바르바스

 


생년월일: 1959년 8월 23일
A매치 기록: 33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67cm / 몸무게 66kg
주 소속팀: 레알 사라고사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 중반에 이름을 날렸던 미드필더로 왕성한 활동량과 유려한 드리블, 그리고 기습적인 중거리 슈팅으로 유명했으며 이러한 다재다능함에 높은 수준의 축구 지능을 더해 3선 미드필더 이외에도 양 측면 수비수와 측면 미드필더를 볼 수 있었으며 기복이 적고 꾸준했다.

라싱 클루브에서 데뷔해 두각을 나타낸 바르바스는 레알 사라고사에서 커리어 피크를 누렸는데 라리가 정상급 미드필더로 군림하며 당대 바르셀로나의 에이스 베른트 슈스터를 제치고 돈 발롱 선정 라리가 최우수 외국인 선수에 2회 선정되었고 1982-83 시즌에는 문도 데포르티보 선정 라리가 MVP에 오르기도 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바르바스는 1979년 U-20 월드컵에서 마라도나와 함께 조국의 우승에 기여했으며 1979 코파 아메리카와 1980년 초대 월드컵 50주년 기념 대회인 문디알리오, 그리고 1982 스페인 월드컵에도 참가했으나 1986 멕시코 월드컵 로스터에는 기량부족으로 탈락했다.

 

13위 에르네스토 라자티

 


생년월일: 1915년 9월 25일
A매치 기록: 4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보카 주니어스

황금빛 소년이라 불리며 이름을 날린 하프백으로 왕성한 활동량에서 나오는 수비력과 정확한 패싱력을 겸비해 대표팀 후배 공격수 리날도 마르티노는 라자티를 두고 아르헨티나 축구계의 위대한 센터 하프 중 한 명이라고 높게 평가했다.

1930~40년대 보카 주니어스의 전성기를 이끈 라자티는 라이벌 리버 플레이트와 인디펜디엔테의 강세 속에서도 소사, 페스치아와 함께 황금 하프백 라인을 구성해 제네시스 군단의 약진을 이끌며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5회 우승을 포함해 크고 작은 트로피를 10개나 들어냈다.

보카 주니어스에서의 화려한 커리어에도 불구하고 라자티는 의외로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소외받았는데 그래도 1937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하며 우승을 이루는데 공을 세우기도 했다.

 

12위 나탈리오 페스치아

 


생년월일: 1922년 1월 1일
A매치 기록: 12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보카 주니어스

1940년대 아르헨티나 무대 최고의 레프트 하프로 170cm도 안 되는 단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더 큰 상대 공격수들을 끈질기게 따라붙으며 막아냈기에 작은 사자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선수 생활을 오직 보카 주니어스 한 구단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 페스치아는 소사, 라자티와 함께 강력한 허리라인을 구성하며 라이벌 리버 플레이트의 전성기 속에서도 제네시스의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2연패를 포함해 7개의 크고 작은 대회에서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했다.

1940년대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명성을 떨친 페스치아는 1945년부터 1947년까지 세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하며 코파 아메리카 3연패를 기록했는데 그중 1946년 대회와 1947년 대회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하며 우승에 공헌했다.

 

11위 호세 마리아 미넬라

 


생년월일: 1909년 8월 9일
A매치 기록: 24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1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1930년대 중반~40년대 초반에 명성을 떨쳤던 하프백으로 강인하면서도 지능적인 대인 수비로 상대의 볼을 탈취하는 부분과 우수한 볼 컨트롤과 정확한 패스로 아군의 볼 소유를 돕는 부분에 모두 능했는데 다방면에서  뛰어났지만 특히 강인한 정신력으로 유명했다.

힘나시아 라플라타에서 첫 전성기를 누린 미넬라는 1929년 구단 역사상 유일한 정규리그 우승을 이뤄냈고 1935년에는 리버 플레이트로 이적해 호세 마리아 모레노, 아돌포 페데르네라와 함께 리버 플레이트 전성기의 기초를 닦으며 정규리그 3회 우승 및 1937년 코파 알다오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한 미넬라는 세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 출전해 1935년 대회에서는 준우승을 기록했고 1937년과 1941년 대회에서는 팀의 주장 겸 센터하프로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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