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사이드백 Top 10
*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아르헨티나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으며 이탈리아나 스페인으로 귀화한 오리운디도 아르헨티나 대표팀 경력이 있으면 포함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RSSSF와 트렌스퍼마크트이며 둘의 기록이 상충할 경우에는 전자를 우선적으로 따릅니다.
*기록일은 2025년 6월 14일 기준입니다.
10위 호르헤 올귄

생년월일: 1952년 5월 17일
A매치 기록: 60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산 로렌소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에 아르헨티나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수비수로 체구는 작았지만 왕성한 활동량에서 나오는 집요한 대인 마킹으로 상대 공격수를 괴롭혔으며 탄탄한 수비력으로 인해 센터백으로도 자주 기용되었다.
아르헨티나 무대의 정상급 라이트백이자 센터백인 올긴은 산 로렌소에서는 1972년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전기리그와 후기리그 더블을 포함해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3회 우승을 이뤄냈고 인디펜디엔테에서는 1983년 전기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아르헨티노 주니오스에서는 1984년 전기리그 우승, 1985년 후기리그 우승 및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뤄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클럽 무대에서보다 더 우수한 기량을 선보인 올귄은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우승에 기여했으며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다.
9위 호르헤 카라스코사

생년월일: 1948년 8월 15일
A매치 기록: 30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5kg
주 소속팀: CA 우라칸
1970년대 아르헨티나 최고의 레프트백으로 빠른 스피드에서 나오는 번뜩이는 드리블과 거친 수비 스타일을 겸비해 늑대라고 불렸다.
우승과는 거리가 먼 로사리오 센트랄과 우라칸에서 활약했던 카라스코사는 로사리오에서는 1971년 후기리그 우승을 이뤄냈고 우라칸에서는 1973 시즌 전기리그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새우며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중용받은 카라스코사는 1974 서독 월드컵에 참가해 조국의 8강 2차 조별 리그 진출을 경험했고 페르푸모가 은퇴한 뒤 주장직을 수행했으나 호르헤 비델라의 군사독재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을 1년 앞두고 주장직을 사임하는 동시에 대표팀 은퇴를 했다.
8위 카를로스 소사

생년월일: 1919년 7월 21일
A매치 기록: 12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보카 주니어스
1940년대 아르헨티나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수비수 겸 미드필더로 2-3-5 시스템의 라이트 하프에서 뛰었지만 오늘날의 라이트백과 유사하게 움직였다. 우수한 지구력에서 나오는 넓은 활동 반경과 빠른 스피드와 적절한 수비 위치를 선점해 상대 공격수를 한 박자 빠르게 막아냈으며 우수한 축구 지능과 날카로운 롱패스 실력으로 이름을 날렸다. 혹자는 남미의 공격형 수비수의 시초를 카를로스 소사로 보기도 한다.
보카 주니어스에서 10년간 머물면서 라자티, 페스치아와 함께 강력한 허리라인을 구성한 소사는 라이벌 리버 플레이트의 전성기 속에서도 제네시스의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2연패를 포함해 7개의 크고 작은 대회에서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한 소사는 1945년과 1946년에 열린 코파 아메리카에서 하프백으로 출전해 팀의 코파 아메리카 2연패를 이끌며 1940년대를 아르헨티나의 시대로 만들었다.
7위 노르베르트 야코노

생년월일: 1919년 1월 8일
A매치 기록: 15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62cm / 몸무게 60kg
주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아르헨티나 축구의 황금기에 활약했던 수비수로 WM 시스템의 라이트 풀백에서 주로 활약했으며 우측면에서 견고한 대인 마킹 및 훌륭한 수비라인 커버로 명성을 떨쳤으며 특히 키가 굉장히 작았음에도 점프력이 뛰어나 공중볼 경합에서도 크게 밀리진 않았다.
라 마키나라 불리던 1940년대 리버 플레이트의 전성기를 이끌었는데 화려한 공격진을 뒤에서 묵묵히 보좌하며 로스 미요나리오스의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6회 우승과 코파 이바르구렌 3회 우승, 그리고 우루과이 챔피언과의 슈퍼컵인 코파 알다오 2회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이 황금기를 누리는데 일조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종종 소집되었던 당대 최고의 수비수 야코노는 1947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조국의 우승에 큰 공을 세웠고 말년에는 캐나다로 이주해서 활약했다.
6위 페데리코 바이로

생년월일: 1930년 2월 23일
A매치 기록: 41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8cm
주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1950년대 남미 무대에서 활약한 레프트백으로 강력한 집념과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한 집요한 대인 수비로 명성을 떨쳤으며 상대 공격수를 도발해 평정심을 흐리는 심리전에도 능했다.
로사리오 센트럴에서 데뷔해 훌륭한 활약을 펼쳤고 특히 라이벌 뉴웰스 올드 보이스를 상대로 강한 모습을 보였고 리버 플레이에 입단한 바이로는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3연패를 이뤄내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한 바이로는 1955년과 1957년에 열린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했는데 특히 후자의 대회에서는 더러운 얼굴의 천사들이라 불리며 강력한 모습을 보여줬고 1958 스웨덴 월드컵에도 참가했다.
5위 엔리케 올프

생년월일: 1949년 2월 21일
A매치 기록: 27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라싱 클루브
1970년대에 아르헨티나 무대와 스페인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테크니션 풀백으로 수비수였음에도 볼 다루는 기술이 매우 우수했으며 양발 모두를 사용해 정확한 크로스를 날렸으며 양발 사용 능력을 앞세워 주 포지션인 라이트백 이외에도 레프트백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보여줬으며 뛰어난 테크닉과 높은 수준의 축구 지능을 앞세워 리베로와 수비형 미드필더, 그리고 중앙 미드필더까지 막힘없이 소화했다.
라싱 클루브에서 이름을 날린 뒤 리버 플레이트를 거쳐 스페인의 라스 팔마스에서 활약하며 전성기를 누린 활약을 인정받아 1977-78 시즌 여름 이적시장에서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고 활약했는대 마드리드에 머무는 동안 라리가 2연패를 이뤄냈다.
스페인으로 건너가기 이전에는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했던 울프는 1974 서독 월드컵에 참가했으며 조국의 8강 2차 조별리그 진출을 이끌었다.
4위 후안 파블로 소린

생년월일: 1976년 5월 5일
A매치 기록: 75경기 11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21세기 남미와 유럽 무대를 돌며 활약했던 레프트백으로 부족한 수비력이 도마 위에 오르긴 했지만 왼쪽 측면을 지배하면서 자주 오버래핑했으며 크로스는 물론 플레이메이킹에도 능하며 미드필더들과 함께 좌측면을 확실하게 장악했다.
여러 팀을 떠도는 저니맨이었음에도 꾸준하게 성과를 냈던 소린은 특히 리버 플레이트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아페르투라와 3회 우승과 클라우수라 1회 우승을 이뤄내며 도합 4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1996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는 제2의 라 마키나 군단의 왼쪽 공격을 활발하게 이끌며 우승에 기여했다.
브라질의 크루제이루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친 소린은 코파 데 브라질을 우승하는 활약을 펼치며 2000 시즌 브라질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소린은 개인 통산 남아메리카 올해의 팀에 3회 선정되었고 유럽에서는 비야레알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구단 역사상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을 이끌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특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레프트백과 중앙 미드필더의 중간 격인 하프백 역할을 수행한 소린은 팀 빌드업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는데 특히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리켈메와 함께 팀의 볼을 좌지우지하며 조국의 8강행을 이뤄냈다.
3위 알베르토 타란티니

생년월일: 1955년 12월 3일
A매치 기록: 61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보카 주니어스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에 아르헨티나 무대에서 활약했던 수비수로 튀어나온 앞니에서 나온 외모 때문에 토끼라고 불렸지만 과격하고 거친 플레이를 자주 보였으며 저돌적인 오버래핑으로 이름을 날렸다.
보카 주니어스와 리버 플레이트에서 활약한 타란티니는 각각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전기리그 1회 우승과 후기리그 1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7년에는 보카 주니어스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에 공헌했고 1982년에는 남미 올해의 선수 9위에 올랐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한 타란티니는 특히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대표팀의 우승에 공헌했는데 이때의 활약으로 대회 베스트 일레븐과 월드 사커지 선정 1978년 월드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은퇴한 이후 2015년에는 아르헨티나 축구협회 선정 아르헨티나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2위 실비오 마르솔리니

생년월일: 1940년 10월 4일
A매치 기록: 28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보카 주니어스
1960년대 중후반 남미 최고의 레프트백으로 유럽의 자친토 파케티에 대한 남미의 대답이라 불렸으며 왼쪽 사이드에서 오버래핑하며 저돌적인 돌파와 정확한 크로스를 올리며 상대를 위협했다.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보카 주니어스에서 보내며 구단 통산 출전 랭킹 3위에 오른 마르솔리니는 제네시스에 머무는 동안 프리메라 디비시온 5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69년에는 후기리그 우승에 이어 코파 아르헨티나 우승까지 이뤄내며 도메스틱 더블을 이뤄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핵심 수비수로 활약한 마르솔리니는 1962 칠레 월드컵에 첫 메이저 대회를 경험했고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8강에서 탈락했으나 좋은 활약을 보여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1967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결승에 진출했으나 상승세의 우루과이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로베르토 무소와 함께 보카 주니어스 소속으로 리그에서 가장 많은 수페르클라시코에 출장한 선수였던 마르솔리니는 1969년에 엘 그라피코가 선정한 1960년대 남미 최고의 선수 레프트백 부문에서 니우통 산투스의 뒤를 이어 2위에 올랐다.
1위 하비에르 사네티

생년월일: 1973년 8월 10일
A매치 기록: 145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축구 역사상 최고의 주장 중 하나이자 인테르의 대표적인 주장 중 한 명으로 공격 상황에서 크로스 능력은 아쉬웠지만 견고한 수비력과 강인한 체력과 빠른 주력을 활용해 공수를 오가며 훌륭한 활약을 펼쳤으며 수비형 미드필더와 메짤라, 레프트백도 볼 수 있었을 정도로 축구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인테르에서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보내며 구단 통산 최다 출전자의 자리에 랭크된 사네티는 입단 초기부터 꾸준히 리그 상위권의 실력을 유지했는데 30대 후반의 나이에도 주전으로 활약해 세리에 A 외국인 최다 출전자 자리에 올랐고 세리에 A 5연패와 2009-10 시즌 트레블을 이루며 주장으로 빅이어를 들어내며 그의 등번호 4번을 구단의 영구결번으로 만들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센츄리 클럽에 가입했을 정도로 롱런했던 사네티는 1995년에 데뷔해 다섯 번에 코파 아메리카에 나가 2004년과 2007년에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1998 프랑스 월드컵과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했다. 현역 은퇴 이후인 2015년에 아르헨티나 축구협회가 선정한 아르헨티나 대표팀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