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Top 11~25
*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아르헨티나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으며 이탈리아나 스페인으로 귀화한 오리운디도 아르헨티나 대표팀 경력이 있으면 포함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RSSSF와 트렌스퍼마크트이며 둘의 기록이 상충할 경우에는 전자를 우선적으로 따릅니다.
*기록일은 2025년 6월 5일 기준입니다.
25위 로베르토 보나노
생년월일: 1970년 1월 24일
A매치 기록: 13경기 15실점/ 5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3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1990년대 후반 아르헨티나 정상급 골키퍼 중 한 명으로 동물적인 반사신경을 바탕으로 아크로바틱한 슈퍼 세이브를 여러 번 보여주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로사리오 센트럴에서 데뷔해 1995년 코파 CONMEBOL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운 보나노는 명문 리버 플레이트로 이적해서는 부르고스와 치열한 주전 경쟁을 벌였는데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에서 전기리그 3회 우승과 후기리그 2회 우승을 이뤄내며 도합 5회 우승을 이뤄냈고 1996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뤄냈으며 이어서 수페르코파 수다메리카나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는 활약을 펼쳤다.
리버 플레이트에서의 활약으로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했으나 바르셀로나에서는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인 보나노는 이 여파로 인해 소속팀에서는 유스 출신인 레이나, 발데스에게 주전자리를 위협받았고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2002 한일 월드컵에 소집되었으나 주전 카바예로와 세컨드 부르고스에 이은 서드 골키퍼로 대기했고 그마저도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24위 루이스 이슬라스
생년월일: 1965년 12월 22일
A매치 기록: 30경기 29실점/ 12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92cm / 몸무게 89kg
주 소속팀: 인디펜디엔테
19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까지 아르헨티나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거구의 골키퍼로 기행을 보여주는 플레이 스타일로 인해 광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특히 일대일 방어에 능했으나 말년에는 살이 너무 쪄서 다이빙을 한 뒤 일어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려서 고전하기도 했다.
차카리타 주니오스에서 데뷔해 여러 팀을 떠돈 이슬라스는 에스투디안테스에서 첫 전성기를 누리며 1983년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나시오날 우승을 이뤄냈다. 그러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는 벤치로 밀려나며 단 한 경기도 나서지 못했고 로그뇨네스로 임대되서도 주전으로 활약하긴 했지만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인디펜디엔테 이적 이후 전성기를 누린 이슬라스는 1994년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클라우수라 우승을 이뤄냈으며 남미 대항전에서도 1994년 코파 수다메리카나와 1995년 수페르코파 수다메리카나 우승을 이뤄냈다.
23위 헤르만 부르고스
생년월일: 1969년 4월 16일
A매치 기록: 35경기 26실점/ 18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9cm / 몸무게 86kg
주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현세대 축구팬들에게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시메오네를 보좌하던 코치로 더 유명하지만 선수 시절에도 뛰어난 활약을 펼쳤는데 큰 키와 대단한 반사신경을 겸비했으며 수비진을 통솔하는 강력한 통솔력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단정치 못한 헤어스타일로 인해 원숭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페로 카릴 오에스테에서 데뷔해서 1990년대 중반 리버 플레이트의 약진을 이끌었던 부르고스는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전기리그 4회 우승과 후기 리그 1회 우승을 이뤄내며 도합 5회 우승을 이뤄냈고 1996년에는 경쟁자 보나노를 백업으로 밀어내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에 공헌하며 제2의 라 마키나라 불렸던 팀을 지탱했다.
전성기가 지난 뒤에는 라리가에서 강등당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해 세군다 리가 우승을 이끌며 팀의 라리가 복귀에 큰 공을 세웠다. 그리고 2002-03 시즌 마드리드 더비에서 루이스 피구의 페널티킥을 안면으로 막다가 코피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경기를 소화하며 2-2 무승부를 이끈 투혼을 보여주기도 했으며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1999년 코파 아메리카 주전 멤버로 참가했다.
22위 세르히오 로메로
생년월일: 1987년 2월 22일
A매치 기록: 96경기 69실점/ 47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92cm / 몸무게 89kg
주 소속팀: AZ 알크마르
큰 키와 우수한 반사신경을 겸비한 2010년대 아르헨티나 최고의 골키퍼로 큰 키와 긴 팔을 활용한 공중볼 경합에서 강점을 드러냈으며 킥력도 준수했으나 미리 예측해서 선방을 하는 스타일이라 한번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속절없이 무너지는 아쉬운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라싱 클루브에서 데뷔해 데뷔 2년 차에 네덜란드의 중상위권 클럽인 AZ 알크마르로 이적한 로메로는 2008-09 시즌에 에레데비시 우승을 이끌며 주목받았고 이후 삼프도리아를 거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데 헤아의 백업 자리에 머물던 시절도 있었는데 2016-17 시즌에는 유로파 리그에 전담해서 나오며 UEFA 유로파리그 올해의 스쿼드에 포함되었고 베네치아를 거쳐 현재는 보카 주니어스에서 말년을 보내고 있다.
클럽에서의 성과는 다소 아쉽지만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대단한 성적을 냈던 로메로는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을 시작으로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8강에 올랐고 2014 브라질 월드컵 준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2015년과 2016년에 열린 코파 아메리카에서 연달아 준우승을 이뤄내는 활약을 펼쳤는데 그 과정에서 아르헨티나 대표팀 골키퍼 중 가장 많은 대표팀 경기 출전수를 자랑했다.
21위 에드가르도 안드라다
생년월일: 1939년 1월 2일
A매치 기록: 20경기 29실점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바스쿠 다 가마
1960년대 아르헨티나 무대와 브라질 무대에서 모두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나간 골키퍼로 1969년에는 축구황제 펠레가 통산 1000번째 골을 득점하는데 그 상대를 맡는 영예 아닌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로사리오 센트럴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293경기에 출전한 레전드인 안드라다는 1969년 바스쿠 다 가마로 이적해 1970 시즌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우승과 1974 시즌 브라질 세리 A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1년에는 브라질 전국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월드컵에는 나서지 못했지만 1963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3위에 올랐다.
20위 파블로 카바예로
생년월일: 1974년 4월 13일
A매치 기록: 26경기 21실점/ 12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셀타 비고
스페인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골키퍼로 신속정확한 판단력에 근거한 반 박자 빠른 움직임과 적절한 위치 선정으로 상대방의 슈팅을 선방했고 기복이 적어 꾸준하게 좋은 모습을 보여줬고 특히 중거리 슈팅을 막아내는데 강점을 보여줬다.
벨레스 사르스필드에서 데뷔해 칠라베르트의 백업으로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전기리그인 클라우수라 2회 우승을 경험한 카바예로는 스페인으로 건너간 뒤에는 에스파뇰에서 1999-2000 시즌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이뤄냈고 셀타 비고로 이적해 전성기를 누리며 2002-03 시즌에는 셀타 비고를 라리가 4위에 올려 UEFA 챔피언스리그 예선 진출을 이끌며 라리가 최소 실점 골키퍼에게 수여하는 사모라상을 수상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주전으로 활약해 조국의 은메달 획득에 큰 공을 세운 카바예로는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스쿼드에는 포함되었지만 백업 멤버에 머물렀다. 그리고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헤르만 부르고스와 로베르토 보나노를 제치고 주전 골키퍼로 기용되었는데 폴 스콜스의 시속 114km 중거리슛을 막아내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조별 리그 탈락이라는 부진한 성적표를 받았다.
19위 카를로스 로아
생년월일: 1969년 8월 15일
A매치 기록: 16경기 12실점/ 7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91cm / 몸무게 87kg
주 소속팀: 레알 마요르카
1990년대 아르헨티나와 스페인에서 전성기를 누렸던 엄격한 채식주의자로 별명이 상추였던 선수며 큰 키와 원숭이같이 긴 팔다리는 물론 우수한 위치선정 능력을 겸비해 엄청난 선방을 보여줬다.
자국 무대의 라싱 클루브에서 데뷔한 로아는 1989년 수페르코파 수다메리카나에서 우승을 이뤄냈고 CA 라누스로 이적한 뒤에도 1996년 코파 CONMEBOL에서 우승했다.
스페인의 레알 마요르카로 이적한 뒤에는 본격적으로 전성기를 누리며 1997-98 시즌 코파 델 레이 준우승을 이끌었고 라리가에서도 최소 실점 골키퍼에게 수상하는 사모라상을 수상했으며 1998년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우승 및 1998-99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준우승과 라리가에서도 3위에 오르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로아 개인도 1998-99 시즌에는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고이코체아 은퇴 이후 주전으로 활약한 로아는 1997 코파 아메리카와 1998 프랑스 월드텁에 출전했는데 후자의 대회에서는 조별리그 전 경기 클린시트와 잉글랜드와의 16강전 승부차기 승리를 이끌며 주목을 받았다.
18위 앙헬 보시오
생년월일: 1905년 5월 5일
A매치 기록: 21경기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1920년대와 30년대에 걸쳐 아르헨티나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골키퍼로 기적의 탄력이라 불렸을 정도로 엄청난 탄력에서 나오는 유연한 플레이와 대단한 점프력을 보여줬다.
타예레스와 리버 플레이트에서 활약하던 보시오는 후자의 클럽에서 1936 시즌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을 차지했고 대표팀에서도 1927년과 1929년에 열린 두 번의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내며 우루과이의 독주 체제를 종식시키는 활약을 펼쳤으나 1930 우루과이 월드컵 결승에서 우루과이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무른다.
17위 엑토르 리카르도
생년월일: 1925년 2월 10일
A매치 기록: 7경기 13실점
신체조건: 미상
주 소속팀: 로사리오 센트랄
1940년대 세계 최고의 축구강국 아르헨티나에서 경쟁력을 선보였던 골키퍼로 풀백들을 지휘하는 우수한 수비라인 지휘능력을 바탕으로 명성을 떨쳤고 선방도 준수했다.
로사리오 센트랄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누린 리카르도는 두 풀백 로돌포 데 조르지와 사투르니노 로베르토 예브라와 함께 철벽수비를 자랑했고 라싱 클루브와 우라칸을 거쳐 보카 주니어스에서는 1954년 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1945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조국의 우승을 이끌었다.
16위 클라우디오 베카
생년월일: 1915년 10월 24일
A매치 기록: 7경기
신체조건: 미상
주 소속팀: 보카 주니어스
1930년대 후반~40년대 후반 아르헨티나 무대 톱클래스 골키퍼 중 한 명으로 운동신경이 우수해 손이 자유자재로 움직였기에 우수한 선방 능력은 물론 공을 멀리 던져 공격을 전개하는 부분에서도 준수했다고 전해진다.
우라칸에서 데뷔해 보카 주니어스에서 전성기를 누린 베카는 프리메라 디비시온 2회 우승 및 코파 이바르구렌 2회 우승을 포함해 총 6회의 크고 작은 대회에서 우승을 이뤄내며 보카 주니어스의 위대한 골키퍼 계보를 이어갔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1946 코파 아메리카에서 지난 대회 주전이었던 엑토르 리카르도를 밀어내고 주전으로 활약하며 우승을 이뤄냈다.
15위 훌리오 코찌
생년월일: 1922년 7월 14일
A매치 기록: 6경기 4실점/ 3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미요나리오스
1940년대 세계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아르헨티나 현지에서는 세기의 골키퍼라는 별명으로 불렸는데 일대일 선방에 특히 능했다고 전해진다.
아르헨티나 무대의 플라센테에서 전성기를 보낸 코찌는 1940년대 후반부터 엄청난 투자로 축구 붐을 일으켰던 엘도라도 시절의 콜롬비아의 미요나리오스로 이적해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아돌포 페데르네라, 네스토르 로시 등 아르헨티나의 스타플레이어들과 발을 맞추며 리그 4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53년에는 페케냐 코파 델 문도 데 클루베스 우승을 이뤄내기도 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1947년에 열린 코파 아메리카에서 주전을 차지한 코찌는 조국의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으나 콜롬비아 무대로 이적하며 대표팀과 멀어졌다.
14위 페르난도 베요
생년월일: 1910년 11월 29일
A매치 기록: 12경기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CA 인데펜디엔테
1930년대와 40년대에 걸쳐 활약한 골키퍼로 타고난 운동 능력과 몸을 사리지 않는 투지 넘치는 다이빙으로 대단한 선방을 보여줘 타잔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선수 생활을 오직 인디펜디엔테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 베요는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2연패와 코파 알 다오 2연패를 포함해 크고 작은 공식대회에서 일곱 번의 우승을 이뤄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 소속으로도 롱런한 베요는 1935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했고 1937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주전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1945년에는 백업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13위 미겔 앙헬 산토로
생년월일: 1942년 2월 27일
A매치 기록: 14경기 11실점/ 9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CA 인데펜디엔테
1960년대와 70년대 남미 정상급 수문장 중 하나로 용수철같이 높은 점프력과 우수한 반응속도, 그리고 안정적인 위치선정으로 이름을 날렸다.
인디펜디엔테 구단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로 평가받는 산토로는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4회 우승을 이뤄냈고 남미 무대에서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4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3년에는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이뤄낸 유벤투스와 인터콘티넨탈컵에서 만나 1-0으로 승리하며 무실점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다만 인디펜디엔테에서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 대표팀과는 큰 인연이 없었던 산토로는 1974 서독 월드컵에서 카르네발리와 피욜의 백업을 맡았다.
12위 다니엘 카르네발리
생년월일: 1946년 12월 4일
A매치 기록: 26경기 39실점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라스 팔마스
25년간 선수생활을 했던 철인 골키퍼로 우수한 자기관리 능력으로 오랫동안 꾸준한 모습을 보여줬기에 총 네 개의 클럽에서 리그 100경기 이상 출전하는 기염을 토했다.
로사리오에서 데뷔해 차카리타 주니어스에서 첫 전성기를 누린 카르네발리는 라스 팔마스에서 개인의 최전성기를 누리며 당대 라리가 정상급 골키퍼로 이름을 날렸는데 특히 1978-79 시즌에는 돈 발롱이 선정한 평점에서 라리가 8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친정팀 로사리오 센트랄로 이적한 이후에는 1980년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후기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1970년대 초반 아르헨티나 대표팀 주전 수문장으로 활약한 카르네발리는 1974 서독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8강 2차 조별리그 진출을 이뤄냈다.
11위 로베르토 아본단시에리
생년월일: 1972년 8월 19일
A매치 기록: 49경기 45실점/ 22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8kg
주 소속팀: 보카 주니어스
21세기 아르헨티나 최고의 골키퍼이자 2012년 IFFHS 선정 2000년대 최고의 골키퍼 10위에 오른 골키퍼로 영리한 위치선정과 신속정확한 판단력으로 팀의 골문을 착실하게 지켰다.
보카 주니어스에서 전성기를 누린 아본단시에리는 제네시스 군단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의 전기리그인 아페르투라 4회 우승과 후기리그인 클라우수라 2회 우승을 이뤄내며 정규리그 6회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남미 대륙에서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3회 우승과 코파 수다메리카나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유럽 챔피언과의 인터콘티넨탈컵 2회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하며 제네시스가 남미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는데 큰 공을 세웠고 2003년에는 남미 올해의 골키퍼에 선정되었다.
라리가의 헤타페에서도 대단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카시야스, 발데스와 같은 골키퍼들을 제치고 2006-07 시즌 라리가 최소 실점 골키퍼에게 수여하는 사모라상을 받았으며 말년에 잠시 머문 브라질의 인테르나시오나우에서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차지해 개인 통산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4회 우승을 이뤄냈다.
2000년대 중후반,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한 아본단시에리는 2006 독일 월드컵 8강과 2004 코파 아메리카와 2007 코파 아메리카에서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