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영웅들/이탈리아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Top 21~30

토르난테 2025. 5. 21.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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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이탈리아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오리운디의 경우에도 이탈리아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는 모두 포함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일은 2025년 5월 11일 기준입니다.

 


30위 마리오 발로텔리

 


생년월일: 1990년 8월 12일
A매치 기록: 36경기 14골 
신체조건: 키 190cm / 몸무게 90kg
주 소속팀: AC 밀란

축구선수로서의 실적보다는 기행으로 더 유명한 스트라이커로 전성기 시절에는 우수한 신체조건에도 불구하고 몸을 적극적으로 쓰는 것을 지양하고 과도할 정도로 기술적인 플레이를 추구했는데 득점할 수 있는 위치로 찾아들어가는 오프 더 볼 상황에서의 뛰어난 움직임과 빠른 스피드, 그리고 골문 앞에서 침착한 결정력을 선보였으며 창의적인 패스로 동료에게 양질의 찬스를 만들어주는 부분에도 능했다. 특히 페널티킥만큼은 세계 최고라 불려도 손색이 없었다.

루메차네에서 데뷔한지 1년 만에 인테르로 이적해 주목을 받은 발로텔리는 인테르에서는 백업 멤버로 2009-10 시즌 트레블을 포함해 세리에 A 3연패를 이뤄냈고 발로텔리 개인도 2010년 골든 보이를 수상했다.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해서도 주전과 백업을 오가며 2010-11 시즌 FA컵 우승 및 2011-12 시즌에는 기적적인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나 개인의 사생활 문제로 언론의 잡음이 심했고 축구 내적으로도 제코와 아구에로라는 벽을 넘지 못해 AC 밀란으로 이적해 본격적인 전성기를 누렸는데 비록 트로피를 들어올리지는 못했지만 2012-13 시즌 세리에 A 올해의 팀에 들었다. 이후에는 내리막을 걸었으나 프랑스의 니스에서는 잠시 부활하기도 했다.

2010년대 초반, 소속팀인 인테르와 맨체스터 시티에서는 로테이션 멤버였지만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는 주전 스트라이커를 맡았던 발로텔리는 UEFA 유로 2012에서 카사노와 공격듀오를 구성해 3차전 아일랜드 전에서 90분에 멋진 발리 슈팅으로 팀의 승리에 쐐기를 박는 골을 넣었고 독일과의 준결승전에서는 멀티골을 터트리며 팀의 결승 진출을 이뤄내 UEFA 유로 팀 오브 더 토너먼트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잉글랜드전에서 헤더로 결승골을 기록하며 10년이 넘은 현재까지도 FIFA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마지막으로 득점을 올린 이탈리아 선수로 남아있게 되었다.

 

29위 안드레아 카르네발레

 


생년월일: 1961년 1월 12일
A매치 기록: 10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SSC 나폴리

1980년대 후반 세리에 A 무대 수위급 공격수로 결정력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강력한 피지컬과 왕성한 활동량을 통해 수비와 압박에 적극 가담했으며 뛰어난 제공권 경합 승률을 바탕으로 포스트 플레이에 능했다.

초년에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며 여러 팀을 떠돌았지만 1986-87 시즌을 앞두고 나폴리에 입단한 카르네발레는 마라도나, 카레카와 함께 팀 공격을 이끌며 1986-87 시즌 도메스틱 더블을 포함해 세리에 A 2회 우승과 2회 준우승을 이뤄냈고 1988-89 시즌에는 UEFA컵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 역사상 첫 UEFA 주관 대회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했다.

 

28위 알도 세레나

 


생년월일: 1960년 6월 25일
A매치 기록: 24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19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 이탈리아 무대에서 소소하게 활약했던 스트라이커로 다른 능력은 크게 돋보이지 않았지만 당대 세리에 A 최고 수준의 헤더와 포스트플레이를 통한 지원 능력을 바탕으로 아주리 군단에 성공하기도 했던 입지전적인 스트라이커다.

칼초 몬테벨루나 시절 가능성을 인정받아 인테르로 이적했으나 코모, 바리, AC 밀란 및 토리노 등 여러 팀을 떠돌았음에도 가능성을 인정받지 못해 결국 유벤투스로 합류해서 1985-86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고 인테트에 돌아온 뒤에는 마테우스, 브레메의 지원을 받아 1988-89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반 바스텐, 카레카, 푈러, 비알리 등 세계구급 스트라이커들을 모두 제치고 득점왕을 수상했으며 1990-91 시즌에는 UEFA컵 우승을 이뤄냈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1986년 멕시코 월드컵과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 백업으로 참가한 세레나는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서 득점을 기록하였으나, 아르헨티나와의 준결승전 승부차기에서 5번째 키커로 나서 슈팅이 막히며 결승 진출에 실패하였다. 말년에는 AC 밀란에서 백업 역할을 수행했으나 한 골도 득점하지 못했다.

 

27위 피에를루이지 카시라기

 


생년월일: 1969년 3월 4일
A매치 기록: 44경기 13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SS 라치오

1990년대 세리에 A에서 이름을 날렸던 공격수로 화려한 테크닉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우수한 제공권 경합에서 나오는 타점 높은 헤더와 우수한 활동량으로 상대 수비수를 압박하거나 등지고 버티면서 다른 공격수에게 기회를 만들어주는 부분에 능했던 실속 있는 공격수였다.

몬차에서 데뷔해 유벤투스와 라치오에서 전성기를 누린 카시라기는 유벤투스에서는 1989=90 시즌 코파 이탈리아와 UEFA컵 더블 우승을 이뤄냈고 라치오에서는 1997-98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말년에는 첼시에서 보냈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꽤 많은 기회를 받은 카시라기는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백업 멤버로 우승을 경험했고 UEFA 유로 1996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특히 러시아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멀티골을 득점하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26위 살바토레 스킬라치

 


생년월일: 1964년 12월 1일
A매치 기록: 16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오직 1990 이탈리아 월드컵을 위한 신데렐라로 최전성기에도 경기에 끼치는 영향력은 적었지만 상대의 페널티 박스 앞에서는 엄청난 스피드와 빠른 반응속도를 겸비해 상대의 빈 공간을 포착해 침투한 뒤 우수한 슈팅 스킬과 양발 사용능력을 바탕으로 다채로운 골을 만들어냈다.

1988-89 시즌까지 메시나에서 활약하며 하부리그에서 머물던 평범한 선수였던 스킬라치는 1988-89 시즌 메시나에서 세리에 B 35경기 23골을 득점한 활약을 인정받아 유벤투스로 이적했고 1989-90 시즌에는 주전 공격수로 활약하며 공식전 50경기 21골을 기록했으며 유벤투스는 코파 이탈리아와 UEFA컵 더블 우승을 이뤄냈다.

1989-90 시즌의 활약으로 아주리 군단에 비알리의 백업으로 승선했는데 비알리와 만치니의 부진으로 빈공에 시달렸을 때 교체로 나와 조별리그 1차전 오스트라이와의 경기에서 멀티골을 득점했는데 이러한 활약 덕분에 조별리그 3차전 이후로는 바조와 함께 주전 공격수로 나오며 팀을 4강에 이끌었고 총 6골을 득점하며 대회 득점왕에 올랐음은 물론 우승팀의 에이스 마테우스와 세계 최고의 선수 마라도나를 제치고 대회 MVP인 골든볼을 수상했으며 1990년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2위에 올랐다.

그러나 1990-91 시즌에 리그에서 29경기에 나와 고작 다섯 골 밖에 득점하지 못했으며 이후 클린스만의 대체자로 인테르로 이적했으나 그곳에서도 부진하면서 아주리와 멀어지며 일본 J리그로 이적해 주빌로 이와타에서 1995 시즌 34경기 31골을 득점하며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25위 치로 임모빌레

 


생년월일: 1990년 2월 20일
A매치 기록: 55경기 15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SS 라치오

현세대 이탈리아 최고의 중앙 공격수로 비록 수비 가담이 적고 연계 플레이에서 약점을 드러냈지만 강력한 피지컬과 큰 체구에 비해 우수한 주력, 그리고 정확한 위치 선정을 바탕으로 라인 브레이킹이 장점으로 양발 능력과 헤더에 모두 능해 적어도 페널티 에어리어에서는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유벤투스에서 데뷔했지만 자리를 잡지 못했던 임모빌레는 토리노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며 2013-14 시즌 세리에 A 득점왕에 올랐다. 그러나 도르트문트와 세비야에서는 최악의 부진으로 잊혀진 스타로 전락할뻔했으나 라치오에서 반등에 성공하며 라치오 통산 최다 득점자에 올랐는데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2회 우승과 2018-19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다. 그러나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는 UEFA 유로 2020을 우승했음에도 불구하고 퍼포먼스가 다소 아쉬웠다.

 

세리에 A에서만 201골을 득점한 임모빌레 개인도 많은 영예를 누렸는데 토리노 시절을 포함해 세리에 A 득점왕 4회 수상 및 세리에 올해의 팀에 4회 선정되었고 세리에 A 올해으 공격수에 2회 선정되었다, 그리고 2017-18 시즌 유로파 리그 득점왕 수상은 물론 2019-20 시즌에는 엄청난 득점력을 보여준 레반도프스키를 제치고 유러피언 골든슈를 수상했다.

 

24위 엔리코 키에사

 


생년월일: 1970년 12월 29일
A매치 기록: 22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파르마

현세대의 축구팬들에게는 페데리코 키에사의 아버지로 유명하지만 1990년대 하반기를 이끈 다재다능한 공격수 중 하나로 키가 크진 않았지만 발이 굉장히 빠르며 테크닉이 상당히 뛰어나 드리블 돌파에 장기를 드러냈고 킥력이 매우 강했는데 오른발잡이지만 왼발도 잘 썼기에 상대 골키퍼를 상대로 다지선다를 강요하며 손쉽게 득점했으며 특유의 다재다능한 스타일이라 주 포지션인 처진 공격수는 물론 최전방과 측면도 막힘없이 소화했다. 특히 프리킥에 능했으며 다양한 프리킥으로 골키퍼들의 예측을 불허했다.

미셸 플라티니, 알바로 레코바와 함께 세리에 A 통산 프리킥 득점 공동 9위에 랭크된 키에사는 삼프도리아에서 데뷔해 여러 팀을 떠돌아다니다가 1995-96 시즌에 삼프도리아에서 27경기 22골을 터트렸음은 물론 세리에 A 평점왕인 구에린 도르를 수상해 주목받았고 1996-97 시즌에 졸라의 대체자로 파르마로 이적하며 해당 시즌 세리에 A 준우승을 이뤄냈고 1998-99 시즌에는 코파 이탈리아와 UEFA컵 우승을 달성했는데 그 과정에서 UEFA컵 득점왕에 올랐다. 그리고 피오렌티나로 이적해서는 바티스투타 또는 누누 고메스를 보좌하는 세컨드 스트라이커로 활약하며 2000-01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으나 피오렌티나의 파산으로 라치오로 떠났다가 시에나에서 말년을 보냈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는 바조, 델 피에로, 비에리와 같은 거물 공격수들에 의해 주로 2진으로 소집된 키에사는 UEFA 유로 1996에서는 체코에게 패했지만 득점을 기록했고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비에리와 델 피에로의 백업으로 나섰다.

 

23위 빈첸초 몬텔라

 


생년월일: 1974년 6월 18일
A매치 기록: 20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AS 로마

파올로 로시로부터 자신을 가장 닮았던 공격수라 칭해졌고 2000년대 이탈리아 무대를 풍미한 공격수로 체구는 작았고 다소 이기적인 선수였지만 빠른 스피드와 우수한 테크닉으로 수비를 제치고 득점할 수 있었던 선수로 골 결정력도 우수해 작은 비행기라는 별명으로 불렸는데 자신의 팔을 벌려 비행기처럼 달리는 골 세레머니로 유명했다.

엠폴리에서 데뷔해 제노아를 거쳐 삼프도리아에서 첫 전성기를 맞이한 몬텔라는 두 시즌 연속으로 공식전 20골을 넘게 득점하며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뉴 만치니로 이름을 날렸고 AS 로마에서는 본격적으로 전성기를 누리며 2000-01 시즌, 토티가 이끄는 공격 삼각편대에서 바티스투타, 델베키오와 로테이션으로 나오며 잘로로시 군단의 스쿠테토 획득에 큰 공을 세웠고 이후에도 준수한 활약을 펼쳐 2013년에 로마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그러나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는 경쟁자가 매우 많아 거의 나서지 못했는데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이 끝나고 난 후 1999년에 첫 소집, 2000년에 A매치 데뷔를 했을 정도로 기회를 받지 못했다. UEFA 유로 2000과 2002 한일 월드컵에 백업으로 참가해 전자의 대회에서는 벤치에서 준우승을 경험했다.

 

22위 파브리지오 라바넬리

 


생년월일: 1968년 12월 11일 
A매치 기록: 22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4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90년대 초중반 세리에 A 톱클래스 공격수로 190cm에 가까운 장신으로 압도적인 피지컬과 제공권 경합 능력을 가졌음은 물론 일반적인 거구의 선수와는 다르게 빠른 스피드와 우수한 민첩성을 겸비했다. 비록 기술적으로 우수하진 못했지만 강력한 왼발과 저돌적인 투지, 그리고 우수한 축구지능을 바탕으로 윙포워드 및 처진 공격수의 역할도 수행할 수 있었다.

레지나 시절 하부리그에서 명성을 날리다가 카시라기와 스킬라치가 모두 유벤투스에서 밀려나자 중용받은 라바넬리는 유벤투스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1992-93 시즌 UEFA컵 우승을 시작으로 1994-95 시즌 세리에 A와 코파 이탈리아 더블 우승을 이끌었는데 특히 1994-95 시즌에는 공식전 53경기에 출전하 30골을 기록했고 1995-96 시즌에는 윙포워드로 활약하며 구단 역사상 두 번째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공헌했다.

이탈리아 대표팀 소속으로도 UEFA 유로 1996에서 주전으로 활약한 라바넬리는 유벤투스를 떠나 미들즈브러에서도 주니뉴 파울리스타와의 좋은 호흡으로 시즌 15골을 득점하며 팀을 이끌었지만 수비진의 부진으로 팀이 강등당하자 마르세유로 떠나 1998-99 시즌 UEFA컵 준우승을 이뤄냈고 1999-2000 시즌에는 라치오에서 백업으로 세리에 A와 코파 이탈리아 더블을 경험했다. 그러나 라치오 시절부터 폼이 급격하게 떨어지며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다.

 

21위 알베르토 질라르디노

 


생년월일: 1982년 7월 5일
A매치 기록: 57경기 19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피오렌티나

2000년대와 10년대 초반 이탈리아 축구 무대를 풍미한 스트라이커로 탄탄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한 포스트플레이와 연계에 능했던 지능적인 타겟 스트라이커였으며 반 박자 빠른 슈팅으로 상대 골키퍼를 물먹이고 득점을 이뤄냈다.

피아첸차에서 데뷔해 엘라스 베로나를 거쳐 파르마에서 재능을 만개한 질라르디노는 2003-04 시즌 세리에 A에서만 23골을 득점하며 세리에 A 올해의 영 플레이어에 선정되었고 2004-05 시즌에는 세리에 A 올해의 선수 및 올해의 이탈리아 선수를 석권하며 주가를 크게 올리며 AC 밀란으로 이적했으나 밀란에서는 주전 경쟁에서 밀려 피오렌티나로 이적해서 부활에 성공하며 팀을 상위권에 올렸고 노장에 접어들 무렵에도 볼로냐, 제노아, 광저우 에버그란데, 팔레르모에서도 준수한 모습을 보이며 노당익장을 과시했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2004 UEFA U-21 챔피언십에서 조국의 우승을 이끌며 우승, 득점왕, MVP를 모두 석권하며 엘리트 코스를 탄 질라르디노는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주로 루카 토니의 백업으로 나서며 우승을 경험했는데 조별 리그 2차전에서 미국을 상대로 득점을 기록하며 특유의 바이올린 세레머니를 보여주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UEFA 유로 2008에서는 대표팀 스쿼드 승선에 실패했고 클럽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던 시절인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부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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